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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지우네아 로므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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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유튜브

1. 개요2. 역사
2.1. 초기2.2.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시기2.3. 차우셰스쿠의 몰락 후

1. 개요

텔레비지우네아 로므너(Televiziunea Română). 한국의 KBS에 대응하는 위상을 가지는 방송사이다. 루마니아 내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주관하고 송출한다.

2. 역사

2.1. 초기

첫 시험방송은 1930년대 후반 진행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TV방송은 꿈도 못꾸었다가 1955년 다시 시험방송을 시작했고 1956년 TVR1이 정식 개국하였다.

2.2.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시기

1968년에는 TVR2를 개국하게 되는데, 이 시절에는 보도면에서는 독재국가답게 막장을 달리기는 했어도 오락프로그램은 서방에 우호적인 외교정책으로 인하여 서방의 방송노하우를 빨리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꽤나 선진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 소련에서 미국 만화영화가 소련 말기에나 들어온데 반해 루마니아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어린이 시간대에 미국 만화영화를 많이 틀어주어서 루마니아인들이 미키 마우스미니 마우스의 이름을 알았을 정도였다. 이 기세를 이어받아 TVR은 1975년 컬러 방송 장비를 처음으로 테스트하고는 그 직후부터 컬러 방송으로의 전환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심지어 1979년부터는 아예 컬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1] 1981년 7월 19일에는 해외에 부쿠레슈티 세계대학경기대회를 컬러로 송출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도 간간이 해외에 컬러 방송을 송출하기도 했고, 1982년에는 루마니아 국산 컬러TV인 텔레컬러(Telecolor) TV가 출시되었다.

루마니아의 컬러 방송의 국내 송출은 원래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1977년 수도 부쿠레슈티에 대지진이 터지고 오일쇼크까지 겹쳐지는 바람에 늦어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난 후 차우셰스쿠 부부는 선전에 있어서는 컬러 방송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컬러 방송 국내 송출을 허용했다. 결국 루마니아는 1983년 8월 23일에야 국경일 열병식을 중계하는 것으로 컬러방송을 시작했는데, 이는 서구권 국가는 물론이고 다른 동구권 국가에 비해 월등히 늦은 것이었다[2]. 컬러 방송 송출 시작 1년 후인 1984년 기준으로 루마니아에서 컬러 방송의 비중은 20%였고, 차우셰스쿠가 몰락한 1989년 기준으로는 80%로 늘어났으나[3], 컬러 TV 가격이 자동차 가격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고가였고, 외채상환으로 인민들은 기초 생필품을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배급받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경제사정이 안 좋아졌기 때문에 당시 시점에서 루마니아에서 컬러 TV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후 루마니아에서 컬러 TV는 1990년대에야 대중화되게 된다.
1983년 8월 23일, 루마니아의 첫 컬러 방송 당시의 영상.
어린이들을 동원한 매스게임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를 찬양하는 모습이 북한을 연상시킨다[4].

사실 루마니아 최초의 컬러 방송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 컬러 중계는 당시 TVR의 기술이사였던 니콜라에 스탄치우(Nicolae Stanciu)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당 전체회의에서 루마니아는 언젠가는 컬러 TV를 도입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에 근거하여 몰래 송출한 것이었기에 차우셰스쿠 부부는 이 국경일 퍼레이드 중계가 흑백이 아닌 컬러로 중계된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5] 이후 이 소식을 들은 영부인 엘레나 차우셰스쿠는 칭찬하기는 커녕 오히려 펄떡 뛰면서 방송 책임자를 가혹하게 질책했으나, '대통령 부부의 공개석상의 위엄이 컬러 이미지로 증폭될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마음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물론 상술한 것처럼 가격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차우셰스쿠에게 충성스러운 극히 일부[6]만이 컬러 TV를 받을 수 있었던 터라 이 중계를 컬러로 본 루마니아인은 차우셰스쿠의 측근 정도를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거기다가 이 중계에서 진짜 컬러로 송출된 부분은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여전히 흑백으로 송출되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1978년부터 방송시간의 감소가 시작되었고 1985년 1월 20일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지시로 TVR2를 폐국시키고는[7] 평일에는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단 2시간씩만 방송을 하는 초유의 조치를 내리게 되면서[8][9] 당시 루마니아의 방송은 오후 8시에 시작하여 20분간 뉴스(Telejurnal)[10]를 송출한 후 전체 방송시간의 1/3이나 되는 40분 가량은 항상 전당 대회 녹화나 차우셰스쿠를 우상화, 찬양하는 방송 프로그램들만 내보냈고, 후반부는 연극, 오페라, 영화를 50분 정도 송출하고는 짧게 뉴스를 송출하는 것으로 방송을 끝마쳤다.[11] 이 때부터 80년대 후반까지 TVR은 차우셰스쿠 찬양만 가득찬 방송만 내보내다시피했고 덕택에 루마니아 인민들은 방송시간이 얼마 안되면서 볼것도 없는 루마니아 TV를 버리고 이웃 불가리아나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소련TV를 시청하려고 안테나를 돌렸다. 1988년 11월 1일에 평일 방송 시작 시간을 오후 7시로 변경함으로써 평일 방송시간이 1시간 연장되었지만 어차피 하루에 3시간 방송하는 것이라서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려웠다.

2.3. 차우셰스쿠의 몰락 후

1989년 12월 루마니아 혁명때 차우셰스쿠의 마지막 연설을 방영했을 때 TV는 중간에서 끊었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시위대에 점거되어 1990년 상반기까지 TVRL(Televiziunea Română Liberă, 자유 루마니아 텔레비전)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0년 상반기에 이온 일리에스쿠에 의해 TVR로 다시 바꿨고 이 때를 기점으로 상업광고도 시작하였다. 하지만 90년대까지도 정권의 영향력이 남아있었던데다가 보도면에서도 정권의 영향을 받는건 여전했고 덕택에 90년대 중반부터는 민영상업방송에 의해서 시청률이 급속히 하강하였고 2000년대 초반에는 방송사 존폐위기에 다다랐을 정도였다. 그나마 대장금 방영 이후로는 수입드라마로 겨우 숨통이 트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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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시 1980년 녹화된 영상으로, 북한의 아리랑마냥 어린이들을 동원해 매스게임을 했다. 다만 70년대 후반~1980년 한국에서 제작된 컬러 프로그램과 비슷하게 송출은 다 흑백으로 해야만 했다.[2] 이는 세계적으로도 컬러 방송 시작이 늦었던 대한민국(1980)보다도 3년이나 늦은 것이며, 하다못해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 이상으로 폐쇄적이었던 엔베르 호자알바니아1981년에 컬러 TV 방송을 시작했다.[3] 그런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1980년대 말에도 방송시간의 20%를 흑백으로 채웠다는 이야기가 된다.[4] 실제로 차우셰스쿠가 생전에 매우 존경했던 사람이 김일성이었고, 차우셰스쿠의 우상화 정책도 김일성을 본뜬 것이다.[5] 사실 차우셰스쿠는 그 이전부터 극도의 긴축 정책을 실시했기에 컬러방송을 근시일에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6] 정황상 차우셰스쿠의 측근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7] 사실 TVR2는 이 무렵쯤 되면 방송을 토, 일에만 하던 상황이었고, 자금 부족으로 인해 특수한 경우에 컬러로 방송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흑백으로 방송했다고 한다. 물론 TVR2는 차우셰스쿠의 축출 후인 1990년 2월 19일 다시 개국했고, 당연히 이때는 100% 컬러로 방송했다.[8] 당시 TVR1은 주말에는 13:00~15:00, 19:00~22:30에 TV를 방송했고, 특히 일요일에는 11:30~12:30에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방송했다.[9] 하다못해 오일쇼크 당시 대한민국이나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도 이 정도로 TV 방송 시간이 짧지는 않았다.[10] 1989년 루마니아 뉴스 모습 참고로 영상의 인트로는 차우셰스쿠가 막장 독재자로 변하기 시작한 1977년부터 쓰인 것을 1983년 컬러 방송이 시작하며 약간 변경한 것이며, 차우셰스쿠가 쫓겨난 1989년까지 쓰였다. 영상 댓글에 실린 증언에 따르면 차우셰스쿠 관련 뉴스는 항상 컬러로 송출했으나 그 외의 뉴스는 흑백으로 송출했다고 한다.[11] 물론 라디오 방송도 하루종일 차우셰스쿠를 찬양하는 데에 여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