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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93462><colcolor=#ffffff> 루마니아 초대 국왕 카롤 1세 Carol I | |||
출생 | 1839년 4월 20일 | ||
독일 연방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국 지크마링겐 지크마링겐 성 (現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튀빙겐현 지크마링겐) | |||
사망 | 1914년 10월 10일 (향년 75세) | ||
루마니아 왕국 시나이아 펠레슈 성 | |||
재위기간 | 몰다비아-왈라키아 공작 | ||
1866년 4월 20일 ~ 1881년 3월 14일 | |||
루마니아 국왕 | |||
1881년 3월 15일 ~ 1914년 10월 10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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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독일어: 카를 아이텔 프리드리히 제피리누스 루트비히 (Karl Eitel Friedrich Zephyrinus Ludwig) | ||
루마니아어: 카롤 아이텔 프레데리크 제피리누스 루도비크 (Carol Eitel Frederic Zephyrinus Ludovic) | |||
아버지 |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의 카를 안톤 | ||
어머니 | 바덴의 요제피네 공녀 | ||
형제자매 | 레오폴트, 스테파니, 안톤, 프리드리히, 마리 | ||
배우자 | 비트의 엘리사베타 (1869년 결혼) | ||
자녀 | 마리야 | }}}}}}}}} |
공식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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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마니아 왕국의 초대 국왕.2. 생애
본래는 독일의 별볼일 없는 왕족이었다.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 출신으로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먼 친척이었다. 그러나 루마니아 공국의 공작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가 쿠데타로 인해 1866년 퇴위하자 후임 공작이 되었다. 1877년 명목상 종주국이었던 오스만 제국과의 주종관계를 청산하고 독립을 선언하였고 곧바로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러시아 측으로 참전해 승리를 거둔 후 산 스테파노 조약과 베를린 회의로 루마니아의 공식적인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881년 루마니아 왕국을 선언하면서 루마니아 국왕으로 즉위했다. 비트의 엘리사베타와 결혼해서 1870년 9월 8일에 딸 마리야가 태어났지만 1874년 4월 9일에 4살도 채 안되어 일찍 죽자 조카인 페르디난트[1]를 후계자로 낙점했다.카롤 1세는 독일인인데다가 프랑스계 혈통까지 있는 외국 출신[2]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에서 거의 전제군주에 가깝게 통치하다시피 했으며, 내정과 외정 양면에서 큰 성과를 가두었다. 그의 치세에 루마니아는 근대적 국가로 거듭났다. 루마니아 전역에 철도가 깔리고 도로가 포장되었고, 근대화된 콘스탄차항으로 루마니아산 석유와 곡물이 수출되었으며 상선단이 발족되었다. 외정에 있어서는 일찍이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승전하여 루마니아의 독립을 인정받은 바 있으며, 발칸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불가리아로부터 도브루자 남부를 획득했다. 루마니아의 가장 아름다운 성이자 대표적 랜드마크인 펠레시 성(Castelul Peleș)도 카롤 1세 재위기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친불 성향을 가진 루마니아인과 달리 그는 친독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그는 1883년 비밀리에 동맹국에 가담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의회는 물론이고 측근과 상의조차 없이 카롤 1세 독단적으로 내렸고,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협상국과 동맹국 중 어느 쪽에 가담해야 할 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3] 이 논쟁은 카롤 1세가 개전 후 3달도 지나지 않아 1914년 10월 10일 사망함으로써 해결되었다. 후에 즉위한 페르디난드 1세는 1916년 협상국에 가담했다.
왕비 엘리사베타(1843년 12월 29일 ~ 1916년 3월 2일)
유일한 딸 마리야와 함께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