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0 18:13:54

윤회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하치(요네즈 켄시)의 보컬로이드 오리지널 곡에 대한 내용은 윤회(VOCALOID 오리지널 곡) 문서를, 조선 세종 때의 문신(文臣)에 대한 내용은 윤회(조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인도 계통의 종교 내 개념
1.1. 타 계통 종교에서의 인식
2. 대중매체에서3. 철권에 등장하는 데빌 진의 기술4. 하스스톤의 등장 카드5. 인명6. 불교의 윤회(환생) 부정?

1. 인도 계통의 종교 내 개념

무릇 중생들은 여덟 번 다시 태어난 다음에야 반드시 불도(佛道)를 성취한다는 확신을 얻었으며

그러나 사천하의 네 배, 세 배, 두 배 티끌 수에 해당하는 보살들은 각기 네 번, 세 번, 두 번 더 태어난 다음에야 반드시 성불(成佛)하리라는 확신을 얻었고

혹 사천하 그 만큼의 티끌 수에 해당하는 보살들만큼은 한 번만 더 태어나게 되면 반드시 일체지(一切智)를 이룬다는 확신을 얻었으니

분별공덕품 17

輪廻 / संसार(saṃsāra)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의 종교용어. 산스크리트어로 (세상을) 둥그렇게 돈다는 뜻이다.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었다가 죽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마치 바퀴가 돌듯이 세상을 도는 듯하다고 붙인 단어로,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바퀴 륜(輪)을 써서 윤회(輪廻)라 하였다. 영어권에서는 흔히 Reincarnation이라고 하지만 이 단어는 윤회와는 의미가 다르다.

어원을 살펴보면, '윤회'의 원어인 Samsara는 산스크리트어로 '정처 없이 헤매다, 빙글빙글 돈다.'는 뜻에서 나왔다. 그래서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하여 윤회(輪廻)라 한 것이다. 그에 반해서 Reincarnation은 Re(재再)+incarnation(육체화肉體化)의 합성어로, 죽은 생명체가 다시 육신을 얻는 것을 뜻한다. 윤회라는 말에는 '끝없이 반복한다.'는 의미가 있는 반면, Reincarnation은 그런 의미가 전혀 없다. 환생을 한 번만 하는지 끝없이 하는지는 신경 안 쓰는 것. 그래서 영어권에서도 산스크리트어를 로마자로 써서 Samsara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윤회란 구체적으로는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듯, 중생이 번뇌와 때문에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세계를 멈추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을 뜻한다. 즉 나 자신이 사망한 뒤 영혼이 되었다가 새로운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친 뒤 다시 영혼이 되어 또 태어나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1] 이러한 윤회의 흐름은 일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몇 겁, 또는 몇억 겁 세월에 걸쳐 계속된다.

카스트 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연관되는 경우, 선업을 쌓으면 내세에는 더 존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고 악업을 쌓으면 내세에는 더 비천한 신분, 또는 짐승이나 아귀로 태어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해도, 축생으로 여겨져 인간보다 못한 환생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일화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이 죽어서 동해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지의법사(智義法師)는 이 말을 듣고 "용이란 축생의 업보인데 어찌 그것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즉 용이라 해도 결국 축생이므로, 불교식 윤회관으로 봐서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남만 못하다는 것이다. 문무왕은 나쁜 응보를 받아 축생이 되더라도 감수하겠다고 밝히고 왕 중 최초로 동해 바다 대왕암에 장사지냈으며 그 아들 신문왕감은사를 바다와 연결되는 수로 구조로 지어 바다의 용이 된 아버지의 넋을 위로했다.
흔히 말하는 천상세계도, 불교의 관점에서는 윤회에 속박된 상태에 불과하다. 삼계 육도(三界六道). 천상세계에 다시 태어나도, 거기서 해탈하지 못하는 한 언젠가는 다시 죽어 환생할 것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면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번뇌와 업을 끊었기 때문이다. 번뇌와 업의 힘으로 윤회가 되는데, 그걸 끊었으니 더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 십이연기는 이 원리를 담은 불교 교리이다. 그리고 해탈하여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 사람을 깨달은 자. 다른 말로 부처라고 한다.[2]

불교적 이타행의 이상인 보살은 윤회를 이미 벗어났음에도 중생에 대한 크나큰 자비심으로 윤회세계에 들어와 화신으로서 활동한다고 한다. 서브컬처에서 ~보살의 화신이라는 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석가모니는 과거에 보살로서 억겁[3]의 세월 동안 수많은 세계에서 윤회하여,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인 부처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한다. 본생담이라고 불리는 이 윤회 전생담에는, 이솝우화 등의 모티브가 된 각종 우화들이 포함된다. 여기서 보살이었던 전생의 석가모니는 사슴, 용 등의 다양한 축생으로도 태어난다.

비슷한 말로는 생사윤회ㆍ윤전ㆍ윤회생사ㆍ윤회전생ㆍ육도윤회 중생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윤회를 반복한다. 윤회천생술 등이 있다.

윤회를 정치용어로 사용할 때에는 국가의 발전 단계에 인간의 성장 시기를 결부하여 설명하는 이론을 뜻한다.

1.1. 타 계통 종교에서의 인식

인도 계통 종교에서의 개념이기 때문에, 다른 계통의 종교들에서는 생소한 편. 특히 내세에 그런거 없이 천국과 지옥이 있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와 명백히 대비를 이룬다. 한편 피타고라스 등 몇몇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역시 환생을 믿었고, 그리스 철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영지주의 일파에서도 일부는 환생을 이야기했다.

도 계통의 종교에서의 인식은 추가바람.

2. 대중매체에서

코에이 테크모가 제작한 RPG 게임 인왕의 주제이기도 하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서는 인도의 신들 대부분을 흡수한 아르주나 얼터가 세계의 윤회를 가속 시킨 이문대인 창세멸망윤회 유가 크셰트라가 나온다.

3. 철권에 등장하는 데빌 진의 기술

철권 6 BR에서 데빌 진에게 추가된 기술. 커맨드는 8RK. 8입력을 유지해서 비공자세로 파생가능하다. 이전작 철권 6에서 데빌 진에게 추가된 연옥에서 3타를 단독으로 쓰는 기술.

점프 스테이터스 기술이기 때문에 하단과 낮은 중단기술을 피하는데다가 상단회피까지 있는 미친 기술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윤회-비공이행-아마라(비공자세에서 LK)-(바운드)-콤보 를 넣지만, 비공자세에 위험이 크기 때문에 비공자세로 가지 않는 윤회로 상대방이 헛치도록 하는 낚시도 존재한다. 거기다가, 전술한대로 미친 수준의 회피성능 때문에 막판 딸피싸움에서 조커카드로 사용하기도 한다.

철권 태그 토너먼트 2에서는 오우거에게도 윤회가 생겼다. 커맨드도 같고, 역시 비공자세로 이행이 가능하다. [4] 오우거의 윤회는 오우거 몸집이 너무 크다보니 상단회피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조금 특이한 상황에서 벽콤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파트너의 태그 어설트 이후에 윤회(비공이행)으로 높은 벽꽝[5]-마르픽(비공자세에서 RP, 지상 및 공중에 있는 상대를 잡는 풀기불가능 잡기)으로 벽콤이 가능하다.

4. 하스스톤의 등장 카드

하스스톤 낙스라마스의 저주 확장팩에 추가된 주술사 일반 주문카드인 윤회.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를 참조.

5. 인명

흔히 쓰이는 이름은 아니나 정윤회가 있다.

6. 불교의 윤회(환생) 부정?


흔히 윤회라 하면 죽고 난 뒤 다시 태어나는 것, 또 이승에서 죄를 지으면 다음 생에서 개나 돼지로 환생하므로 착하게 살아야 하는 근거 중 하나로 생각한다. 하지만 불교 철학의 과학성과 합리성에 매료됐던 사람들은 이 윤회 사상 앞에서 당혹스러워한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며, 게다가 축생으로까지 환생한다고? 이 윤회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해인사 주지인 현응 스님이 펴낸 ‘깨달음과 역사’(해인사 출판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스님은 우선 사람들이 윤회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윤회란 말은 본래 불교 언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윤회의 개념은 불교 이전 고대 인도 종교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붓다가 살던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은 한 번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며 끝없이 재생한다’고 믿고 있었다 한다.

먹을거리와 일용품이 부족한 빈곤하고 불평등한 사회체계에서는 삶이란 괴로움의 연속이므로 삶의 재생, 즉 다시 태어나는 것을 싫어했다. 그것이 ‘다시 태어나지 않는 삶’에 대한 동경을 낳았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윤회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해탈 사상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이런 해탈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고행이나 제사 같은 종교적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우리 삶이란, 존재란 변화와 관계를 통해 이뤄나가는 것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에 위배된다. 현재 삶에 대한 불만족이나 고통은 단지 빈곤이나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어떤 도달해야 할 ‘절대’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한 사고방식이다. 이런 이들에게 현재의 삶이란 왜곡된 모습이기 때문에 탈피해야 하고 따라서 해탈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현응 스님은 윤회가 아니라 ‘연기’적 삶을 강조한다. 연기적 삶은 ‘나’ 혹은 ‘내 삶’에 얽매임 없이 변화와 관계로서의 열린 자세로 자유롭게 역사를 꾸려가는 것이다. 윤회가 현실에 두려움을 갖고 죽고 태어나는 일에 얽매이는 것이라 하면, 연기는 삶을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원처럼 연속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다시 스님의 말이다.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이니 하루에도 수만 번 나고 죽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바로 윤회의 실상 아니겠는가. 곧 윤회란 변화를 뜻하는 말이며 그 내용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다. …현 상태에서의 안주와 좌절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뜨거운 윤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다.[6][7]





[1] 영혼이 된다는 것이 대중적인 윤회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불교 심층교리에서는 무아설과 윤회설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윤회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고유한 개체로서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2]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 전에 저지른 업의 결과는 피할 수가 없다고 한다.[3] 삼아승지겁이라고 한다.[4] 윤회와 비공은 두 캐릭터의 기술이 같으나, 비공자세에서 파싱되는 기술들은 다르다.[5] 이미 벽꽝이 된 상태거나, 낮은 벽꽝이 되어버리면 뒤의 마르픽이 안들어간다.[6] 윤해의 오해와 진실[7] 제314회 전생과 윤회에 대하여(윤회를 완전히 부정하는것은 아니나 일부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