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9-24 22:44:41

알라위파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터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파생 종파에 대한 내용은 알레비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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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시리아에서의 위치4. 교리

1. 개요

시리아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이슬람 분파 중 하나이다. 시아파12이맘파에서 분파한 것으로 자처하나 받아들이지 않는 시각도 있다. 기원은 시아파 10대 이맘이었던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 알 나미리가 창시했으며, 이 때문에 수니파 근본주의자 등 알라위파를 경멸하는 다른 무슬림들에게서 누사이리파 라는 멸칭[1]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어로는 '알라와이트'라고 발음한다.

2. 역사

알라위는 주류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와 이븐 누사이르에게서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수백년간 시리아 소수종파였고, 시리아의 수니파들에게 잔혹한 차별과 박해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알라위는 이미 13세기에 주류 이슬람에서 불신자나 다름없는 이단취급 신세였다. 당대 근본주의적 성향의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는 알라위파를 "이슬람에 있어서 유대인, 기독교인보다 더 심각한 불신자이며, 수니파 무슬림들이 알라위 공동체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전쟁(지하드)을 한다면 알라께서 흡족해 할 것"이라는 파트와(교령)를 발표할 정도였다.

맘루크 왕조는 알라위파들을 수니파 이슬람으로 강제개종시키기 위해 갖은 탄압을 가했고, 개종을 거부하는 알라위파들은 몰살시키려 시도하기도 했다. 알라위파들은 체포되어 투옥당하거나, 공개 광장에서 채찍형이나 심지어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또 이후의 오스만 제국은 비록 직접적 탄압은 없었지만, 소수에 불과한데다 이단취급받고 힘도 없었던 알라위파를 대놓고 무시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도 알라위파 신자들의 숫자는 10만명 정도로 소수인데다, 대부분 경제력이 없는 농노들이었고, 수니파 지주들에게 대놓고 착취와 탄압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생활도 낙후되고 열악해져서, 다마스쿠스에는 1907년에 전기가 보급되었는데도, 시골의 알라위파 거주지에는 1940년대 후반까지도 전기가 보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오스만 제국군에 강제징집되어 군복무를 하는 알라위파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공공연하게 진급차별을 받았다. 나아가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알라위파들을 사실상 총알받이로 쓰려는 목적으로, 무장도 빈약하게 시키고 죽어가게끔 최전방으로 내몰았다고 한다. 교육수준도 열악해서,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가 자기 고향에서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을 정도.

1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멸망한 오스만제국 대신 프랑스가 시리아에 들어왔고, 프랑스의 도움으로 비로소 알라위파의 암흑만 가득한 역사에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알라위파를 이교도 취급하던 수니파 주류 이슬람과 달리 알라위파 역시 종파만 다른 무슬림으로 인정해주었으며, 알라위파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프랑스 위임통치령[2]으로 보호받는 알라위파 자치령을 할당해 주었다. 이를 이용해 수니파의 오랜 정치적 지배에서 벗어난 알라위파는 이어 프랑스의 도움으로 얻은 일자리로 경제력을 획득해 서서히 수니파들의 농노신세에서 해방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프랑스 군대에 출세를 위하여 대규모로 입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주류 수니파들은 프랑스 식민통치에 붙어먹는다며 이를 박박 갈았으나, 위의 역사를 쭉 읽어내려왔다면 알겠지만 알라위파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식민 지배자인 프랑스보다 자신들을 괴롭히던 수니파가 훨씬 더 미운 존재였다.

또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통해 20세기 초중반 이후부터 알라위파도 서구화되기 시작했다. 서구적인 사상들과 군인 출신 알라위파들에게서 온 군사적 전통이 알라위파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또 군대를 통해서 알라위는 프랑스 통치 이후로도 도태되지 않고 시리아 내 '군부의 실세'라는, 시리아 바트당 정권에 필수적인 존재로 급부상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난 1960년대에는 시리아의 군대조직 장교단 대부분이 알라위파였을 정도. 오죽하면, 프랑스 통치시기 고등판무관이었던 앙리 드 주베넬(Henri de Jouvenel, 1925-1927 재직)은 당시의 한 알라위 정치 지도자가 “알라위파는 과거 3-400년 동안보다 3-4년 안에 훨씬 더 많이 발전했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대로 우리를 그대로 놔둬달라”란 말을 했다고 남길 정도다. 한편 1953년까지 알라위파는 시리아 의회에 지정 의석이 있었으나, 그 이후 종파주의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슬람교도-기독교도로만 인구조사 카테고리를 나누면서 사라졌다.

아울러 1970년, 군부 출신이자 알라위파인 하페즈 알 아사드가 정권을 잡은 이래 알라위파는 드디어 시리아의 기득권층이 되었다. 알라위파 입장에서는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꿈도 못꾸던 대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알라위파 정권은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로 2018년 현재까지 권좌가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시리아의 알라위파는 시리아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해, 알라위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며 수니파 원리주의를 추구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세력의 테러, 반란시도에 시달렸다. 무슬림 형제단은 시리아 내 지역감정(원리주의 성향의 알레포-이들리브VS세속적인 다마스쿠스, 알라위파 중심의 라타키아 등)과 알라위라는 이교도 정권에 침탈된 시리아를 다시 수니파에게 되돌리자는 모토로 계속 반란과 요인 알라위파, 친 알라위 수니파에 대한 암살, 테러를 시도했다. 하페즈 알 아사드는 이런 테러와 봉기 시도에 하마 학살같은 강경책으로 대처하며, 동시에 1974년부터 레바논과 이란의 시아파 성직자들로부터 알라위파가 시아파의 일원이라는 해석을 받아내었고, 한편으로는 수니파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친정부적 수니파 종교지도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거나 정부요인 할당에 수니파도 차별하지 않고, 수니파식 예배를 하는 등의 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또 기독교드루즈 등 다른 시리아 내 소수종파에게도 손을 내밀어 이들을 존중해주고 공존하는 정책을 폈고, 세속적인 정책으로 안정적인 독재체제를 구축함과 동시에 시리아 내의 다종교 공존을 꾀했다.

현재의 시리아 내전의 양상이 매우 복잡하고, 알라위파와 기독교 세력 등 소수종파들이 아사드 정권과 정부군의 편에 서서 죽기살기로 반군과 맞서싸우고, 끝내는 정부군이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 역시 이러한 특수한 알라위파의 환경에서 기인한다. 다시말해, 지금은 수백년 알라위 역사에서 처음이자, 내전에서 패배한다면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은 리즈시절이다. 따라서 이번에 권좌에서 축출되면 아사드 정권만 끝나는게 아니라, 수백만 알라위파들의 역사 자체가 끝장이며, 수니파의 매우 잔인한 보복을 맞게 된다.#2011년에 시위할 때만 해도 시리아에 이런 지옥문이 열릴 줄 몰랐겠지 시리아 내전이 그토록 처절하고 잔혹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알라위파 청년 3명 중 1명이 이미 전쟁터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또 알라위파를 모두 죽이려고 드는 IS나, 점령지에서 알라위파를 학살한 혐의가 있는 알 누스라 전선(HTS)계열 반군들, 그리고 이 극단주의자들의 날뛰는 만행들을 제대로 통제조차 못하는 무능한 자유 시리아군은 알라위파 입장에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알라위파의 기준으로는 내전과 아사드 정권의 위기는 그들에게 있어서 거의 '인류를 노예화하려는 외계인의 침공'급으로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3. 시리아에서의 위치

전세계적으로 신도가 고작 6백만명 밖에 없다. 시리아는 그나마 그 절반 정도인 300만명이 살고 있으며 특히 해안지대인 타르투스, 라타키아 지방에 옛날부터 많이 살고 있다. 또 터키와 인접한 시리아 서북단 해안지역에도 알라위파가 살았었다. 터키에 50만명, 레바논에도 20만명 정도의 알라위파가 거주한다. 시리아 인구 2300만에서 겨우 10% 남짓이라 알라위테만 우대하다간 대다수인 순니(시리아 인구의 3/4가 수니파)가 나라 뒤집어버릴 게 뻔한지라 무조건적으로 알라위파만 우대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시리아도 당장 리비아 꼴이 난다. 시리아 독재자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 알 아사드와 그의 친가, 그리고 타이거 대령이 이 종파 신도이다.

또 역사 항목에서 상술했듯이, 시리아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강하며, 시리아 군부의 상층부들은 모두 이 알라위파를 믿고 있다. 물론 식민지군 고위 장교들은 친프랑스 수니파 명문가문 출신들이었지만 압도적인 수를 바탕으로 군을 수월하게 장악해나갔고, 결정적으로 잦은 쿠데타로 수니파 고위 장교들이 서로 팀킬하면서 알라위파가 군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시리아에서는 알라위파를 믿지 않으면 군부에서 승진하기가 어려우며, 심지어 알라위파를 믿는 하급 장교가 믿지 않는 고급 장교를 지도할 정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 내전 종결 후 시리아가 분할될 가능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사드의 기민함과 국제역학적으로 시리아 정부군이 승기를 굳혔지만, 내전 종결 후에 온전히 시리아 정부의 전력만으로 시리아 전역을 통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드는 상황이기 때문. 이미 시리아 정부 측의 주축인 알라위파는 안 그래도 소수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는데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내전 이전보다 시리아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지는 건 기정사실이라, 이는 또 다른 내전으로 번질 위험도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 모두 내전 발발(로 인한 대규모 난민 사태)을 원치 않으므로, 결국 알라위파 및 소수 종파는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시리아 해안 및 서부로, 수니파는 시리아 동부로 분할하여 이주시킨다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아사드 정권은 항의할지도 모르지만, 알라위파는 이미 수가 크게 줄었고, 또 내전이 일어나면 그건 알라위파의 소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니파 뿐만 아니라 시리아 북부 쿠르드 로자바 연방도 지금은 시리아 정부 말을 따르고 있지만, 수틀리면 알라위파의 영향력이 줄어든 만큼 언제든지 독립하겠다고 설칠 수도 있다. 따라서 알라위파 및 소수 종파, 쿠르드가 주류 수니파와의 내전 수습을 위해서는 수니파와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계획이 있었다. 이는 아사드 정부가 패색이 짙던 2014~15년경에 미국에서 심각하게 고려했던 방안이지만 2016년 이후로 시리아 정부가 생각보다 수복된 국토를 잘 통제하고, 알라위파의 영향력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지금은 사실상 폐기된 아이디어다. 2018년 현재는 시리아 정부가 이들리브-북알레포를 제외한 사실상 시리아 전역을 수복하고 유지하는데 성공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거의 종식된 상황.

4. 교리

자세한 교리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들은 기독교처럼 신의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한다. 신이 나뉠 수 없다고 믿는 무슬림들에게는 그야말로 이단 중의 이단인 셈[3]. 그 때문인지 시리아 정교회와 꽤 친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이슬람의 5주(五柱: 신앙 고백, 예배, 희사, 단식, 성지순례)가 꽤 완화되어 있는 종파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종교와 마찰이 많지 않은 편으로, 시리아만 보더라도 기독교인(오리엔탈 정교회)과 무슬림들이 별다른 마찰 없이 공존하며 살고 있다. 문서로 쓰여있는 경전이 없으며, 모든 교리는 늙은 장로가 후계자로 정한 사람에게 말로 전해준다고 한다. 그러니 교리의 내용을 더더욱 알기 어렵다.

그리고 성탄절, 공현절,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리아 막달레나의 축일을 기념하고 기독교식 이름(first name)을 가지는 등 기독교의 영향이 많은 것으로 보이며, 원래 그들은 자신들이 별이거나 신성한 빛이였지만 불복종으로 인해 천국[4]으로 돌아갈 때까지 반복된 환생을 겪어야 한다는 윤회설을 믿는다. 지상에서의 행위가 어땠느냐에 따라 다음 생에서 지상에서의 환생 결과가 정해진다고 믿는다.

또한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않고 세속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중동의 기독교 세력과 정치적인 연합관계이며, 그리고 이슬람 교리적으로는 같은 시아파로 인정받게 된 이란, 헤즈볼라 등의 시아파 세력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우호적인 경향이 있다. 시아파 교세가 강한 레바논 남부지역을 가보면, 대놓고 알라위파 신도인 아사드 대통령의 사진을 길가나 도로상에 걸어놓은게 보일 정도라고 한다.


[1] 이들을 무슬림으로 보지 않고, 창시자인 누사이르를 믿는 사람들로 본다는 뜻이 있다.[2] 1941년까지.[3] 이슬람 수니파는 지금도 알라위파를 이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시아파도 원래는 인정하지 않았다가 1974년이 되어서야 이슬람의 일부로 인정한 것이다.[4] 주류 이슬람에서는 천국은 절대적인 영역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천국과 비슷한 곳인 정원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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