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29 04:00:44

무슬림 형제단

아랍어: جماعة الإخوان المسلمين / الإخوان المسلمون (자마아트 알 이크완 알 무슬리민)
영어: The Society of the Muslim Brothers / The Muslim Brother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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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2.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2.1. 이념과 행적2.2. 역사
3. 탄압
3.1. 비판과 몰락
4. 해외 전개5. 기타6. 관련 문서

1. 설명

파일:external/www.algemeiner.com/muslim-brotherhood-hijacked-Syrian-revolution.jpg
이집트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범 아랍권에 퍼져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 조직, 정당 단체. 무려 500만~1000만 명에 이르는 회원 수[1]를 가진, 세계 최대이자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이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와하브파와 함께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의 모태라고 볼 수도있다.

2018년 현재 러시아, 이집트[2],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에서는 이 단체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2.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2.1. 이념과 행적

무슬림 형제단의 제 1목표는 활동 국가의 사회와 정치에 이슬람 샤리아를 기반한 통치(=이슬람 신정국가제)를 도입하는 것이고, 제 2목표는 범 이슬람권, 특히 아랍 무슬림권을 통합하는 것이며, 외세(서구)제국주의에서 이슬람권을 해방함을 목표로 삼고 있다.[3]

일단 이들은 민주주의 매커니즘과 이슬람의 권위를 동시에 내걸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를 견지하면서, 궁극적으로 샤리아의 전면적인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슬람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 형태로 삼권분립, 의회민주주의, 평화적 정권 교체 등을 주장한다. 이 '방법론' 때문에 비이슬람권에서는 온건 이슬람 민주주의 정당으로 오해되는 경우도 많으나, 이들의 집권 후 행보나 역사 속 이집트 및 시리아에서 벌인 무수한 테러리즘을 볼 때 이들이 온건 이슬람 정당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때와 경우에 따라서 샤리아 도입을 위해 극단주의 행보나 테러리즘을 쓰기도 하고, 어떤 때는 평화로운 조직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전술과 전략을 쓰는 과격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라고 보는 편이 객관적이다.

또 이들의 문제는 과정이나 방법이 민주적이든 아니든 간에 궁극적으로 샤리아 법에 의해 통치되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당의 강령부터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와는 억만 광년 떨어진 이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극단적인 사상 때문에 끊임없이 비이슬람 종교에 대한 차별[4], 성차별적 요소[5]가 대단히 심각하다.

이들이 창설 이래 수십년만에 정계에 집권한 이집트에서의 2011년~2013년간의 통치를 보면[6] 소위 '온건 이슬람 정당'이라고 언론플레이를 하던 이들의 본모습을 알 수 있는데, 무함마드 무르시를 필두로 권력을 잡자마자, 샤리아를 이집트 헌법보다 우위에 두었고 샤리아를 기준으로 삼아 자유주의 탄압/언론탄압/여성차별/현대식 교육 제재/타종교 차별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정작 아랍의 봄을 일으킨 경제적 어려움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해외자본 추방, 이슬람 문화가 아닌 타 학문과 기술, 종교 탄압 등을 벌이지를 않나, 사회문제 해결 의지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시대의 변화를 거슬러 오르는 종교 근본주의 정책만을 실시하였다.

또 이들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계속 이야기해왔으면서, 소위 '파라오 헌법'이라고 조롱받는 준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 헌법을 통과시키는 등 자세히 보면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은 오랜시간동안 이슬람과 공존해왔고,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슬람 세력과 연대하고 함께 시위에 나서 호스니 무바라크를 끌어내리는데 공을 세운 콥트 정교회 등 이집트 토착 기독교인들을 뒤통수쳤다. 처음에는 그나마 콥트 정교회를 보호하는 법안을 발의하려 하는 등 일말의 존중은 있었던 듯 보이지만, 알 누르 당 같은 살라피즘 계열 극단주의자들의 표심을 의식해 기독교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보 때문에 이집트의 세속적인 국민들[7]과 특히 아랍 민족주의, 세속주의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군부의 큰 반발을 사게 되었으며, 일단 민주주의를 좋게 보는 서구권에서조차 이들의 이슬람 극단주의에 질려 군부 쿠테타를 지지할 정도로 반감을 사게 되었다. 군부에서 축출당한 이후에도 평화적으로 이념을 추구한다는 당 강령이 무색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폭력적 테러와 박해를 수없이 저질러 이집트에서의 이미지가 그야말로 안드로메다급으로 추락해 버렸다.

결론적으로는 의회민주주의를 이용하기만 할 뿐, 실제로는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반인권적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하려는 전체주의적 목표를 가진 정당이라는 것이 중론이다.주사파!?

2.2. 역사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역사는,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 부흥, 그리고 아랍 민족주의와의 싸움의 역사와 함께한다. 1928년 서구로부터의 독립과 이슬람 문화의 부흥을 내걸고, 하산 알 반나(Hassan al-Banna, 1906 - 1949)가 이집트에서 결성하였다. 1940년대 이슬람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 주변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현재는 수많은 아랍 국가에서 폭넓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인 하마스의 모체가 되었다.

1952년 왕정 타도에 참가하였으나, 새로 집권한 군부 출신의 나세르 대통령이 세속주의 정책을 내걸자 무슬림형제단은 여기에 반발해서 1952년 7월 26일 이집트 군부정권에게 샤리아를 이집트 국법으로 받아들이라는 협박문성명서를 발표했으나 묵살당했다. 뒤이어 1954년 수에즈 운하 반환을 둘러싼 영국과 이집트의 협정도 이교도와의 협력이라는 이유로 격렬히 반대하였으며, 이후 참을대로 참고 있던 나세르를 위시한 아랍 민족주의-세속주의 군부에게 탄압을 받게 된다. 이집트 군부정권은 무슬림 형제단의 해산을 선포하고 4000명의 단원들을 체포하여 투옥했고, 사이트 쿠틉 등 유명한 지도부들을 투옥시킨 뒤 사형시켰다. 이후 이집트 군부와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게 되며,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하고 이집트를 이슬람 근본주의 샤리아 국가로 만들기 위한 운동을 광범위하게 벌이고 동시에 지속적으로 탄압받게 된다. 1970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취임하자 조직을 재편하여 테러 위주의 극단주의를 배제하고 국회를 통한 정치 활동을 시도하는 등 합법적인 이슬람주의 운동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극단주의적 사상과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 목표를 포기한건 아니었다. 실제로 나중에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것도 무슬림 형제단의 과격파들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대중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이슬람주의의 성장을 도모하였는데, 종교 활동은 물론, 의료, 교육, 상호부조 등의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실시하였으며, 이러한 빈곤층 구제 활동을 통하여 굳건한 지지를 모으게 되었고, 이슬람주의 조직이나 단체들 중에서 가장 지지 기반과 조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았다. 나세르, 사다트, 무바라크로 이어지는 군부정권 수십년동안 끊임없이 탄압받으면서도 이러한 사회활동을 통해서 굳건한 대중적 기반을 확립했고 결국 아랍의 봄으로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자, 이집트 최대의 정파로 떠올랐다.

2010년 말부터 2011년에 걸쳐서 일어난 아랍의 봄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2011년 이집트 민주화 운동 이후, 무슬림 형제단은 정당 "자유공정당"을 결성하여,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수로 취임하였다. 자유공정당은 의회 선거에서 약진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르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3. 탄압

2013년 정변으로 무르시는 대통령 권한을 잃고 이집트 군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2013년 8월 14일, 카이로 동부의 라바아 알 아다위야 광장에서 쿠데타에 항의하던 무슬림 형제단원들을 이집트군이 학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희생자는 최소 594명[8]에서 최대 2600명.[9]

2013년 12월 25일, 차량폭탄을 사용한 테러가 발생하여 이집트 임시 정권에게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었다.

2014년, 무려 683명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지도부에게 사형, 종신형을 수없이 겹쳐서 날리고 있다. 현재 지도부는 망명하여 외국을 전전하는 등. 이집트의 형제단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기사

무슬림 형제단에 우호적이던 카타르가 형제단 지도부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집트로부터 송환 요구가 반복되고 사우디, UAE, 바레인 등에서 압력이 가중되자 결국 형제단은 재망명을 떠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문민독재자인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기사

3.1. 비판과 몰락

"국민들이 무슬림 형제단에 반대하여 일어나자, 그들은 적어도 67개 이상의 (콥트 기독교)성당을 불태웠어요. 성당에 대한 강도질도 판을 쳤죠. 그들은 나라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건 이집트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것이죠."

- 이집트 콥트 정교회 신자인 모합. 2017년 독일 언론인 DW와의 인터뷰 증언.
무슬림 형제단의 이집트 통치는 이슬람 근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과격하고 성급한 시도 때문에 군부 + 이집트 민중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파탄을 맞이했다. 현재, 이집트 국민들은 이전과는 반대로 무슬림 형제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형제단에 대한 지지도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기사 다만, 이것이 이집트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 전반적으로는 오히려 보수화와 종교화가 강화되고 있어 형제단과 같은 조직이 좀 더 성향을 온건하게 바꿔서 부흥할 여지는 아직 적지 않다.

내정 측면에서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무슬림 형제단은 야권 가운데서는 가장 큰 세력으로 상당한 시민 운동 경험이 있었지만, 행정 경험은 부족한 인사들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능력보다는 형제단에 충성하는 인물들만 발탁하다보니 친목질 논란이 일어났고, 형제단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국가 문제를 해결할 인재는 세속주의자라는 이유로 등용하지 않고 이슬람 꼴통 인사들만 주요 요직에 배치하는 등 근본주의적인 친목질과 바보짓을 일삼았고, 당연히 하루종일 쿠란만 파는 인간들이 세속 행정에 대해 아는 게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국가 능력 하락과 다양한 혼란으로 이어졌다. 즉, 갑작스런 혁명으로 집권한 탓에 전형적인 '준비되지 않은 정권'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의 군부 독재는 오랜 세월동안 견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형제단의 급격한 이슬람 극단주의 움직임은 세속주의 야권 세력들과 군부에서 "이러다 이집트가 근본주의 신정국가가 되어 버리는 것 아니냐" 같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민주화를 주도한 세속주의 세력들이 성급한 민주화를 포기하고 다시 과거의 앙숙이었던 군부와 결탁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무슬림 형제단 내부 역시 분열되면서 광신도 극단주의자들이 내부의 실권을 장악하여 악화되는 여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군부의 재집권과 몰락 이후에는 가까운 시리아이라크에서 테러조직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발호가 무슬림 형제단의 이미지도 함께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10]기사 예비역 장성으로 보안전문가인 사예드 알 가브리는 중국의 신화통신에 "다수의 사람들이 IS와 무슬림형제단 및 기타의 살라피스트 성전주의자들을 동류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IS의 테러 활동으로 무슬림 형제단의 세력이 위축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무슬림 형제단에 동조했던 일부 국민들도 IS가 이슬람의 이미지를 어떻게 왜곡시켰는가를 깨닫자, 등을 돌렸다."고 말했다. 또한 압델 파타 엘 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IS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면서 IS와 무슬림 형제단을 묶어 "근본주의적 어두움"의 세력이라고 비판하며 무슬림 형제단을 IS와 연결시키려 하였다. 엘 시시 장군의 쿠데타로 축출되었을 당시 여당이었던 형제단의 주요 구성원들에게 있는 죄 없는 죄를 다수 씌워 수백명에게 사형 선고를 때린[11] 이집트 군부의 가혹한 조치 때문에 무슬림 형제단은 서구나 이집트에서 어느 정도는 동정을 받고 있었지만, IS가 악명을 떨치자, 무슬림 형제단도 이들과 똑같은 부류로 묶이면서[12] 동정의 시선이 증발했다. 심지어 이집트인들 마저 무슬림 형제단을 이집트를 시리아나 이라크처럼 지옥으로 만들 테러단체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이 발생한 것은 이슬람권 국가에 만연해 있는 궁핍한 경제 문제와 양극화 문제인데 무슬림 형제단은 이러한 경제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샤리아에 근거한 이슬람주의 정책 밀어붙히기와 외국기업 추방, 성차별, 콥트교 탄압 등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여 일반 무슬림들도 반발하며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13] 이미 몰락이 예고되어 있었다.

이집트의 정치평론가이며 중동정치연구소 소장인 암마르 알리 하산은 "IS의 출현으로 서방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고 이집트의 신 정부(압델 파타 엘 시시)에 미국 주도의 대IS 연합전선에 참가하도록 요청함으로써 무슬림 형제단은 큰 손해를 보았다"고 진단했다.

미국측에서도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무슬림 형제단 회원들에게 법원이 종신형을 선고했다.#

4. 해외 전개

무슬림 형제단은 주로 범 아랍주의 정당인 바트당과 마찰을 빚었다. 극단적 살라피스트들은 서구적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무슬림 형제단은 '반 이슬람적' 요소가 많으며 순수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카타르를 제외한 걸프 왕정 국가들은 무슬림 형제단을 좋게 보지 않는다.
  • 시리아 : 시리아의 무슬림 형제단은 알라위파인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하페즈의 독재정치에 반대한다는 명목상 이유를 내걸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시리아에서 알라위파 세속주의를 몰아내고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신정국가를 건설하는게 목표였다. 시리아 무슬림형제단은 60년대 이후로는 사실상 반군조직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극심한 테러와 암살을 계속해대었고, 무고한 민간인, 친정부 인사, 알라위 군인들, 정부 공무원, 사회원로에 대한 연쇄살해로 악명을 떨쳤다. 또한 반정부 세력을 육성하는 등 정부에 대한 반란을 계속 시도했고 결국 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를 암살하려 했다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2년 거점[14]인 하마가 공격당하여 하마 학살이 일어났다.
  • 카타르 : 무슬림 형제단의 강력한 지원자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2017년 6월 발생한 카타르 단교사태의 한 원인이 되었다.
  • 팔레스타인하마스 -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가 떨어져 나와 1987년 성립되었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단과는 결별하여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특히 이집트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않기에 무슬림 형제단과는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다.
  • 수단 공화국의 국민회의당(National Congress Party) - 악명높은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가 이끄는 수단의 살라피즘-와하비즘 성향 여당이다. 독재자 바시르의 하수인들로 수단에서 악명높은 광신정책을 펴는 것으로 유명하다.

5. 기타

무슬림 형제단은 개요에서 서술했듯이 러시아, 시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에서 테러 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내세우는 가치관(와하브파)이 무슬림 형제단보다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우스운 일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에서 이슬람은 대단히 근본주의적이지만 동시에 관변 종교의 성격이 강해서, 정권에 위협이 되면 근본주의 이슬람이나 다른 사상이나 다 때려잡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일종의 정치적 결정인 것. 거기다 사우디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 비이슬람적 사상인 '민주주의'를 이슬람에 도입하려 하기 때문에 이단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8년의 제주 난민 사태 때, 예멘 난민들 중 일부 난민의 SNS 과거 글에서 무슬림 형제단 홍보물을 자기 글에 올린 것이 뒤늦게 발견되어 안그래도 난민들에게 나쁜 여론이 더 악화되기도 했다. 해당 난민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했었지만, 이 단체가 무슬림들도 살해하는 집단이라는 걸 알고 나서 지금은 지지를 철회한 상태이다"라고 해명하였다.

2019년 무슬림 형제단 간부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하였고,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선 거부하였으나 법원이 이 결정을 취소하며 난민으로 인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이 난민으로 인정한 이유는 이집트로 돌아갈 경우 무슬림 형제단이라는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무슬림 형제단이 비민주적인 샤리아 강요, 타종교 및 신도 탄압, 외교공관 인질극 등 테러공격 자행을 일삼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집트 정부의 대응을 일반적인 정치적 의견에 대한 박해와 동일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6. 관련 문서


[1] 대표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도 많아봐야 10만단위 규모다.[2] 2013년 3월, 무슬림 형제단은 공식적으로 이집트의 NGO로 등록되었지만, 2013년 중반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의 쿠데타 이후 수립된 이집트의 신군부 정권 하에서 NGO자격을 도로 박탈당하고 과거 군부정권때와 마찬가지로 테러 조직으로 규정되었다. 사실 기독교인들에게 했던 짓, 그리고 정부를 겨냥한 차량 테러 등을 보면 테러조직 맞기도 하고.[3] firstly the introduction of the Islamic Sharia as "the basis for controlling the affairs of state and society" and secondly, working to unify "Islamic countries and states, mainly among the Arab states, and liberate them from foreign imperialism". 출처 : 무슬림 형제단 영어 공식 홈페이지.[4] 일례로 무슬림 형제단이 잠시 집권했다 물러났던 이집트에서는 정당 고위 인사들이 정권이 실각했다는 이유로 비이슬람 토착 기독교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선동하여 수없이 많은 콥트 정교회 성당과 신자들이 공격당하게 만들거나, 쿠란 소각으로 물의를 일으킨 미국인 목사 테리 존스에게 궐석으로 사형선고를 하지를 않나(!), 이슬람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이집트 여성이 징역 15년을 받는 등 도저히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탄압이 벌어졌다.[5] 2012년 외신 취재에 따르면, 무슬림 형제단계열~살라피즘에 치우친 단원들 중에서는 여성 정치인의 정계진출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6] 참고로 이집트는 민주화 직후 선거 이전부터 세속주의 vs 원리주의의 갈등이 심했다. 무함마드 무르시의 대선 득표율은 51.1%로, 당시 2위를 기록했던 세속주의자 후보(48.9%)를 근소하게 앞섰다.[7] 2013년의 언론 보도를 보면, 특히 카이로같은 대도시의 기득권층들이 무슬림 형제단을 정말 싫어했음을 알 수 있다.[8] 이집트 보건부 집계[9] 무슬림 형제단 자체 집계[10] 참고로 이 집단은 그 악명 높다는 탈레반알 카에다가 등을 돌리고, 소말리아에서 활개치며 수시로 케냐에 테러 원정을 나가는 그 알 샤바브조차 서로 무시하고 살자고 말할 정도의 악질 테러 단체다.[11] 실제로 재판 과정이 막장이었다고 한다. 특히나 세속 세력과 형제단이 같이 충돌해서 수십명이 죽었는데, 형제단은 법을 FM대로 적용해서 사형을 수십건씩 때리는 반면에 세속 세력 쪽은 주동자 몇 명 빼고는 적당히 몇 년 가둬두는 불공평한 형 집행도 이뤄지고 있다.[12] 묶인다는 표현을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듯 무르시가 집권하고 한 일들을 보면 이들이라고 별로 나을 것도 없다. IS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상당수도 못봐줄 만한 인간 이하의 만행을 저지르고 다녀서 상대적으로 부각되었을 뿐이다.[13] 어느 정도로 이집트인들의 반감이 심했냐면, 이미 군부 쿠데타 직전에도 시위만으로 정권 갈아엎을 기세로 무슬림형제단을 비난하는 거대한 민중 시위가 연일 벌어졌을 지경이다.[14] 다만, 하마에서 봉기를 일으켰던건 무슬림 형제단이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