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13:46:04

나의 투쟁

1.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
1.1. 출판 과정1.2. 내용1.3. 책의 목차1.4. 비판1.5. 출판 상황1.6. 기타1.7. 관련문서
2. 노르웨이의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소설

1.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

파일: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로고.png
나치즘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이념 파시즘 · 군국주의 · 인종주의 · 범게르만주의 · 반유대주의 · 국가주의
분파 국가사회주의 · 영국 파시즘 · 슈트라서주의 · 네오 나치즘
정당/조직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당 · 독일 사회주의 국가당 · 독일 민족민주당 · 국가사회주의 오스트리아 노동자 당 ·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 운동 · 영국 파시스트 연합 · 화살십자당 · 칠레 국가사회주의 운동 · 황금새벽당 · 오세바브란트바흐
군사 조직 독일 국방군 · 슈츠슈타펠 · 돌격대 · 히틀러 유겐트 · 아인자츠그루펜 · 무장친위대 · 게슈타포 · 아넨에르베 · 독일소녀동맹 · 무장친위대(오스트리아) · 아프베어
인물 아돌프 히틀러 · 하인리히 힘러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헤르만 괴링 · 마르틴 보어만 · 루돌프 헤스 · 그레고어 슈트라서 · 에른스트 룀
계획 게르마니아 · 레벤스라움 · 레벤스보른 · 우란프로옉트 · 홀로코스트
선전물 나의 투쟁 · 의지의 승리 ·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국가 나치 독일 · 오스트리아 연방국 · 헝가리 왕국
관련 문서 퓌러 · 나치식 경례 · 하켄크로이츠 }}}}}}

파일:external/photo.goodreads.com/54270.jpg

독일어: Mein Kampf
영어 번역: My Struggle
히틀러는 감옥 안에서 《나의 투쟁》을 집필했다. 히틀러의 세계관이 분명하고 광범위하게 담긴 이 책은 1945년까지 독일 안에서만 1천만 권이 팔렸다. 《나의 투쟁》에는 히틀러의 정치적 신조, 세계관, 사명감, 전망, 장기적 목표가 모두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도자 신화의 토대가 거기서 만들어졌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자신을 도탄에 빠진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불세출의 지도자로 그렸다.

《나의 투쟁》을 읽으면 히틀러가 1920년대 중반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간파할 수 있다. 그 무렵 히틀러는 역사와 세상의 모든 악을 완벽하게 규명하고 그 극복 방안까지 알려주는 철학을 개발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그것은 우월한 아리아인이 기생충 같은 열등한 유대인에게 시달리고 피해를 입는, 선과 악의 인종 투쟁으로 역사를 보았다. “인종 문제는 세계사는 물론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히틀러는 주장했다. …… 나치 운동의 사명은 오직 하나, ‘유대 볼셰비즘’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단숨에 논리가 비약해서 그래야만 독일 민족이 지배자로 군림하는 데 필요한 생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노골적인 제국주의 침탈을 정당화했다. 히틀러는 이 생각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세월이 흘러도 바탕은 달라지지 않았다. 메시아를 방불케 하는 하나의 ‘이념’에 대한 비타협적 몰입, 단순하고 수미일관하고 포괄적이며 흔들리지 않는 신념 체계는 히틀러에게 의지력과 운명에 대한 주인 의식을 심어주었고 히틀러와 접한 사람들은 누구나 거기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히틀러는 넘치는 자기 확신을 강하게 표현할 줄 알았고 주변 사람들은 자연히 거기서 권위를 느꼈다. 모든 것은 흑백으로, 승리가 아니면 완전한 파멸로 그려졌다.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
히틀러 1권 7장 카리스마(366쪽)

아돌프 히틀러가 자신의 사상 겸 그 때까지의 인생을 담은 자서전이다. 정확하게는 히틀러가 구술하고, 그의 수하였던 루돌프 헤스가 받아쓴 책이다. 유명세에 비해 내용은 매우 조악한데, 학술적인 기반이 없는 극우적 망상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해 책 안에서도 논리적인 문제점이 수두룩 하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저작권을 소유한 주정부에서 출판을 허가하지 않아 일반적인 판본으로는 한동안 출판되지 않다가, 지금은 내용에 대한 광대한 반박이 담긴 주석이 담긴 형태로 다시 발간되고 있다.

영어 번역본

1.1. 출판 과정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 실패 뒤 교도소에 수감 되었지만 꽤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맥주홀 폭동사건의 실패와 자신의 수감으로 당의 해체와 지지자들의 와해를 막고, 낙심한 당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집대성한 서적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1] 이 책은 히틀러가 직접 안 쓰고 수하인 루돌프 헤스를 시켜 받아쓰게 했다.[2] 헤스 뿐만 아니라 한프슈탱글등 나치당 내 식자층도 교정에 관여했다. 형이 출판업자였던 한프슈탱글은 형에게 나의투쟁 출판을 의뢰하러 갔다가 단칼에 거절을 겪었다고 한다. 초판 제목은 '거짓과 어리석음, 비겁함에 맞선 4년 반 동안의 투쟁(Viereinhalb Jahre des Kampfes gegen Lüge, Dummheit und Feigheit)'이었지만, 당시 프란츠 에어 출판사(Franz Eher Verlag)[3] 대표인 막스 아망(Max Amann)[4]이 '이렇게 제목이 길면 아무도 안 읽겠습니다.'라면서 딱 두 단어로 줄여 다시 낸 것이 바로 '나의 투쟁(Mein Kampf)'.

히틀러가 수감되었던 시절에는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으나,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판매율이 급상승했다. 그 가운데 실제로 나치즘에 경도해서 읽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사회 분위기에 억지로 떠밀려 읽은 사람도 상당수였다라 전해진다. 심지어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릴 때 의무적으로 1권씩 선물했으며, 이 책의 인세만으로도 히틀러는 막대한 수입을 얻었는데 인세 수입의 세금은 한 푼도 안 냈다고.[5]

히틀러도 나중에는 그 책이 좀 창피했는지 집권 중반기에는 나의 투쟁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다고 한다. 특히 레벤스라움(게르만 생활권역)의 확대나 영국과의 동맹[6] 등 일개 당수로써 자유롭게 꺼낼 만했던 말들이 독일 총리로 취임한 뒤에는 구설수에 올라 그를 당혹스럽게 했던 점도 까닭이었다. 그는 집권한 뒤 "내가 총리를 맡을 줄 알았다면 그런 책은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도 했다.[7] 뒷날 두번째 책을 쓰려고 생각했고 프란츠 에어로부터 선인세도 400만 마르크나 받았으며, 1928년에 나의 투쟁 2부도 만들어 놨지만 출판하지 않았다. 먼젓번 책이 당 정책이랑 배치되는 내용으로 비웃음을 사고 히틀러도 이에 불만이었기 때문. 게다가 안 그래도 먼젓번 책에서 주장을 체계없이 늘어놓는 바람에 중간중간 논리 붕괴의 요소가 많았는데 2번째 책까지 나온다면 정적들이 공격할 보물단지 컬렉션으로 쓸까 봐 주저한 것 역시 원인이다. 일설에는 세번째 책까지 계획하고 구술까지 끝낸 상태였다고…

1.2. 내용

대체로 자신의 자서전적인 내용과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담았다. 자서전적인 내용은 사실 과장과 구라가 많지만, 이런 것을 교차검증하여 골라낸다면 히틀러의 정계 입문 전의 사상을 알 좋은 사료이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대충 이런 주장들을 내세운다.
  • 유대인공산주의는 나쁘다. 유대인은 독일이 겪어온 모든 시련의 원흉이며 평화시에도 독일을 무너뜨리러 암약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대인이 독일을 정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유대-볼셰비즘이[8][9] 없어져야만 독일이 안전할 수 있다.
  • 독일은 재무장을 신속히 하고 대영제국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동유럽의 나라들과 함께 전쟁을 벌이고, 마지막으로는 유대-볼셰비즘의 수괴 소련을 공격해 독일 게르만 민족이 영구히 살아갈 권역을 확보해야 한다.
  • 역사의 진보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계급투쟁이 아닌 인종투쟁이다.
  • 인류의 모든 창의적이고 훌륭한 예술과 기술의 발전은 아리아인이 이루었다. 아리아인이야말로 인류의 표본이라 할 수 있으며, 이렇게 위대한 아리아인은 모든 민족 위에 군림해야 한다. 아리아인이 없어지면 세계는 망한다.[10]
  • 요즘 독일 문화는 쇠퇴해져가고 점점 저속하고 천박한 수준으로 바뀐다. 이런 퇴폐 문화를 없애고 순수한 문화를 유지해야 우리 민족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11]
  • 모든 예술의 으뜸은 건축과 음악이다. 유대인들은 두 분야에 공헌한 바가 전혀 없다.[12]
  • 연극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있는 것을 모방하는 예술이므로 유대인들이나 하는 저급 예술이다.[13]
  • 창녀는 인류의 수치다. 그러므로 젊은 남녀를 빨리 결혼시켜서(...) 매춘을 막아야 한다.[14]
  • 민주주의는 유대인의 음모다. 아리아인 같이 위대한 민족에게 평등 같은 것은 필요없는데(...) 유대인들이 자꾸 민주주의나 평등 같은 쓸데없는 사상을 퍼트려 아리아인을 쇠퇴시키려 한다.
  • 20세 이상의 국민들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군대입대해야 한다. 그렇게 민족에의 자긍심을 깨우치고 교육현장이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스스로가 어떤 민족인지를 깨우치게 하려면 우선 군대에 가야 한다.
  • 담배는 인류에게 해롭기 그지 없는 독물이다. 유일하게 맞는 말[15]
  • 민주주의는 다수결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의 소재를 흐리게 하며, 또한 바보 100명에게서 천재 1명이 나올리는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폐지시켜야만 한다.
  • 외교의 목표는 국가의 실질적인 생존이어야지, 절대로 영웅적인 몰락이어서는 안 된다. 이 목표에 이르는 모든 길은 선한 것인데 반해, 그 실패는 범죄적인 직무유기로 봐야 한다. 정작 히틀러 자신이 몰락할 때 패배자인 독일 국민은 살아남을 자격이 없다는 소위 '네로 명령'을 내린 것을 감안하면... 자기가 말하고도 자기가 안 지켰기에 옳은 말이다.(...)
  • 국가의 권위는 절대 스스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폭정이라도 스스로를 불가침화하고 신성화한다. 만약 국가의 권력수단이 민중을 폐허로 이끈다면, 저항은 모든 개개인 시민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던 양반이 웬일로 저항권을 긍정을 했다니...[16][17]
    위 인용문은 독재를 한, 미래의 자기 자신을 디스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직속 건축가알베르트 슈페어로 하여금 히틀러를 암살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는 명문(...)이다. 참고로 슈페어가 (이 인용문을 접하기 이전에) "나의 투쟁"을 읽어 보려 했을 때, 정작 저자인 히틀러는 "그거 절대 읽지마. 부끄러워."(...) 라며 그를 말렸었다고.

1.3. 책의 목차

  • 저자의 서문
  • 제1부
    • 생가에서
    • 빈 시절의 수업과 고난
    • 뮌헨
    • 세계대전
    • 전시 선전
    • 혁명
    • 정치활동의 시작
    • 독일 노동자당
    • 붕괴의 원인
    • 민족과 인종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당의 최초의 발전시대
  • 제2부
    • 세계관과 당
    • 국가
    • 국덕 소유자와 국가의 시민
    • 인격과 민족중의 국가의 사상
    • 세계관과 조직
    • 초기의 투쟁 - 연설의 중요성
    • 적색선전과의 투쟁
    • 강자는 혼자일 때 가장 강하다
    • 돌격대의 의미와 조직에 관한 근본적 생각
    • 연방주의의 가면
    • 선전과 조직
    • 노동조합에 관한 문제
    • 전후 독일의 동맹정책
    • 동방노선과 동방정책
    • 권리로서의 정당방위
  • 맺는말
  • 옮긴이의 말

1.4. 비판

이 책을 연구한 문헌학자들의 비평에 따르면, 이 책의 논리적 흐름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머리만 굴려서 쓴 글의 전형이라고. 당연히 비문이 넘치고, 앞뒤가 안 맞는 내용도 많아서 루돌프 헤스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어 수없이 뜯어 고쳤다는데도 저 모양이다. 심지어는 베니토 무솔리니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재미도 없으며 뻔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욕했으니...[18]애초에 히틀러 자신도 이불을 찼다 그런데 전세계에 뿔뿔히 있는 네오 나치들은 아직도 이 책을 신봉한다니 흠좀무. 어느 네오 나치는 아직 제정신이 남았는지, 이걸 읽고 나서 내가 얼마나 미친 사상을 믿었는지를 깨달았다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히틀러 개인을 연구하거나, 당시의 나치즘과 국제정치 및 독일의 정치실태를 연구하는 등 학술적인 면으로는 쓸만하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대학 국제정치학 및 전쟁 관련 강좌에서는 나의 투쟁을 주요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삼기도 한다. 특히 유대인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부분과 히틀러가 독일 영토 확장의 최대 명분으로 삼았던 게르만 생활권역(Lebensraum)의 확대 주장이 나오는 부분 등 히틀러는 어떻게 독재자가 되었나 차원으로 연구하는 것만은 가치가 높다. 이거 빼면 히틀러의 정치적 사상을 들여다볼 문헌이 거의 없고, 그래서 독일에서도 이 책을 출판하는 것 자체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19] 다만 히틀러의 개인사 역시 '자화자찬'이나 '과장', '왜곡'이 많아서, 이 책에서 히틀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고 다른 연구가들의 비판적인 연구와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실제로 유럽 밖에서 출간되는 나의 투쟁도 비판 주석을 달거나 달지 않아도 최소한 이런 책이니 주의하라는 경고 정도는 해둔다.

1.5. 출판 상황

저작권을 보유한 바이에른 주정부[20]에서는 이 책의 출판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이전까지는 그저 히틀러의 광기를 비판하고, 학술적인 측면으로만 사용되는 한에서 출판이 가능하다는 여지를 주었고. 독일 내에서 학술적 목적으로 출판된 책에는 보통 히틀러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오류에 대한 부가 설명이 붙여져 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출판한 나의 투쟁도 거의 비슷하다.

2015년 12월 31일 이후부터는 히틀러가 죽은 지 70년이 넘어서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렸다. 2014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2016년 이후에도 출판을 통제하기 위해 원문 그대로 출판하면 나치 선전죄로 처벌하겠다고 선포했지만 다른나라까지 자유롭게 번역하거나 배포하는 것은 전적으로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이제는 전세계인 누구든지 나의 투쟁을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게 되었고,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사상을 비판하는 주석을 달면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의 한 연구기관에서는 나의 투쟁에 대한 비판을 달아 새로운 나의 투쟁을 출판했고[21] 책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기사. 네오 나치들도 많이 사가지만 나치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기보다는 유럽 난민 사태유로마이단, 브렉시트 이래로 대동하는 등 혼란스러운 범유럽 정치 상황 속에서 히틀러가 뭐하는 인간이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모양. 사실 이 책만큼 히틀러를 알기 쉬운 책도 없다. 근데 하필 2016년 유럽 난민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 유럽이 들썩이는 상황이라... 2017년에도 독일에서 논픽션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독일 내 유대인 단체들 반응은 극과 극이다. 히틀러 신봉이 다시 늘어난다고 우려하는 것에서 아니 히틀러라는 광인에 대하여 제대로 연구한다면 될 것. 저 책을 보면 히틀러가 이런 미친놈이었나 라고 다시 보게 한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대한민국에도 범우사가 상, 하 2권으로 나눈 번역본을 오래 전부터 내놓았다.[22] 이 책자도 마찬가지로 번역자가 이 책을 냄은 히틀러를 신성시하는 게 아니라, 이 책을 거쳐서 그가 얼마나 맛탱이가 갔는지, 그리고 독재자의 심리분석에 기여하는 뜻으로 번역했다고 쓴 바 있다. 이걸 700쪽이 넘는 고급 통합판으로 낸 적도 있었는데, 당시 가격도 7,000원으로 팔았다. 참고로 당시는 보통 유명 신간이 3,000원도 안 하던 시절이었다.

2014년에 동서문화사에서 1154쪽 분량의 번역본을 출간했다. 1부와 2부를 통합했음은 물론이고 히틀러에 대한 평가(제바스티안 하프너 저), 나의 투쟁의 대한 논설(앙투안느 비트키느 저), 생애와 저작들에 대한 이야기(역자 황성모 저), 정치적 유언, 연보까지 추가하였다. 범우사의 나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히틀러를 신성시하는 게 아닌 정신나간 정치 계획일지라도 과소평가하지 말고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23], 민주주의에 야만적인 사상이 편승할 수 있다는 것, 인종차별이 낳을 결과를 경고한다는 것, 읽고 교훈을 얻는 게 금서로 묶는 것보다 유익하다는 점에서 번역했다고 기술했다. 가격은 25,000원

파일:external/ec2.images-amazon.com/61MNd-bddjL._SL500_AA300_.jpg
일본에서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 가운데 한 작품으로 만화화시켰는데, 바이에른 주 정부가 '나의 투쟁을 설명하기엔 부적합한 매체'라 클레임을 걸어서 판매 중단했지만 2016년부터는 다시 출간이 가능하다.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는 한국에도 신원문화사가 정발했으니 관심있는 위키러라면 서점이나 도서관, 대학교 도서관을 찾아보자.

러시아에서는 2010년부터 금서로 지정했다. 이쪽은 네오 나치 덕에 골머리를 썩고 있으니...

프랑스는 제2차 대전 당시 나치와 히틀러에게 침공당한 아픈 기억이 있어서 불구대천의 원수 히틀러의 저서를 금서목록으로 지정하였으며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세르비아, 폴란드 등에서도 금서로 지정하였다. 모두 나치와 히틀러에 의해 침공의 희생양이 된 나라들이었다.

저작권이 만료되었음에도 독일어 위키문헌에는 나의투쟁이 없고, 생성 불가능하도록 보호되어있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여기에 나의 투쟁의 영문 번역본이 올라와 있다. 이 영문번역본의 저자 James Vincent Murphy는 1946년에 사망했다.

1.6. 기타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제1차 세계 대전때 가스에 끔살되어 일기 형식으로 출판하고, 레니 리펜슈탈이 '우리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한다.(...)잠깐, 그러면 이 책이 나오기는커녕 히틀러가 나치에 입당하는 일도 없잖아?

라이어 게임에서 요코야 노리히코가 읽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진정한 지배자가 될 수 없다고 깐다..

여담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의 부제가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24]이라서 움찔하는 사람들이 있다 카더라.

<에이스 가이>라는 코미디 영화에서는 인간 사냥꾼의 서재에서 주인공이 이 책을 발견하였다.

쇼크 트루퍼스 세컨드 스쿼드에 등장하는 악역 나카토미의 애독서이기도 하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히로인 인덱스가 기억하고 있는 금서목록 중 하나이다.

래퍼 뉴챔프가 이 책을 모티브로 제작한 "나의 투쟁"이란 곡도 있다.

2016년. 나의 투쟁 이전 첫 자서전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히틀러의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일본에선 학교 재량에 따라 수업 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기 위함이고 만약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식으로 쓴다면 처벌한다고 하였다.#

1.7. 관련문서

2. 노르웨이의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소설

Min Kamp

당연히 1번 항목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의 책이다. 중산층 가장이 겪는 삶에서의 '투쟁'을 다룬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출판 후 당연히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의도가 무엇인가', '히틀러의 책 제목을 따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작가는 '순수하게 책 내용을 표현 한 것이며 히틀러의 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상업적인 의도 또한 없다.'라고 답하였다.

[1] 맥주홀 폭동사건과 이에 관련한 재판의 영향으로 바이에른 지방에서 민족주의자들은 크게 성장했다. 맥주홀 폭동 사건 뒤 한 바이에른 지방의회 선거에서 민족주의자들은 크게 선전했고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적 성공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뭉쳤던 그 사이의 결속을 끊어버리게 하였고, 그 와중에 히틀러의 지도를 받던 전투동맹도 와해했다.[2] 사실 히틀러는 독일어 문법에 약했다.그의 편지나 연설문들에는 비문과 오타가 많다. 애시당초 학교성적만 봐도 문법 수준은 엉망진창이었고 그 때문에 대필을 선호했다. 물론 여기에는 남을 조종하려는 일종의 지배욕도 있었던 듯하다.[3] 나치의 어용 출판사로 알려저 있지만, 나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히틀러의 개인소유 출판사로 부정축제에도 동원되었다. .[4] 출판사 경영부터 시작, 히틀러의 개인 축재와 자산 관리를 전담하여 큰 신임을 얻었다.[5] 헤르만 괴링 등 워낙 크게 해먹은 인간들이 많아서 안 드러나지만 히틀러도 부정축재자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히틀러와 돈(볼프. C. 슈바르츠벨러 저)> 참고.[6] 나치가 세계의 지배국가를 한 21세기를 그린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나의 적 앞에서>에서는 나의 투쟁 초판은 금서이다. 다름아니라 작품 속에서 속국인 영국과의 동맹을 주장한 대목 때문. 다만 새로운 총통이 집권한 뒤 금서 목록에서 해제한다.[7] 히틀러의 건축가이자 전시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전쟁 전에 히틀러에게 자기가 아직 나의 투쟁을 읽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자, "그거 절대 읽지 말게. 지금 보면, 아니 내가 지금봐도 내용들이 횡설수설하고 무지 부끄러워"라면서 강력하게 만류 했을정도였다. 이 때문에 슈페어는 전범재판 결과 수감될 때까지 나의 투쟁을 읽어보지 못했고, 그것도 안 읽어봤냐고 어그로 거는 소련심문단에게 열받아서 '읽었다'고 뻥쳤다가 '너 위증'으로 몰려 '진술에 진실성이 없다'고 까일 뻔했다. 심문 스킬에 제대로 말려든 사례.[8]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부터 레온 트로츠키까지 초기 공산주의 사상가 중엔 유대인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서 공산주의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유대인의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여담으로 흔히 나치가 공산주의를 까려고 만든 표현인 줄 아나, <독일국방군>이라는 책에서 말하길 이미 극우화한 모든 군인들 사이에서 매우 자주 쓴 단어라 한다. 나치는 이 단어를 빌린 것 뿐이었다.[9] 당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음모론은 현대에도 서양 국가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특히 영화계, 뉴스, 미디어를 휘어잡는 유대인들 = 좌파 빨갱이들이 다문화, 혼혈가정을 장려해서 백인이라는 인종과 문화를 말살시키려 한다는 이야기와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면 거품을 물 만큼 싫어하는 미국에서 이스라엘 = 유대인 = 공산주의자놈들이 뒤에서 미국 정치인들을 조종해서 미국을 자꾸 비헌법적인 중동전쟁에 개입시키더라는 이야기는 서양 쪽 포럼 안에서는 거의 사실처럼 거론하는 단골 떡밥. 그렇다고 반유대주의의 광풍이 불던 20세기 초반 유럽의 좌파 진영 내에 반유대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사실 유대인=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이 쪽 역시 만만찮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파의 반유대주의가 유대인 공산주의 혁명가에 대한 적개심을 떡밥으로 삼는다면 좌파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자본가에 대한 적개심을 떡밥으로 했던 것. 그래서 결론은 양쪽 다 유대인을 몰아내자.(...)[10] 그러면서 같은 아리아인인 슬라브족과 집시들을 학살했다. 애초에 히틀러가 생각한 '아리아인'은 넓은 의미의 아리아인이 아니라 바로 게르만인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11] 나치는 근현대예술을 퇴폐미술로 규정하고 탄압했다.[12] 물론 히틀러의 생각과 다르게 유대인들은 건축과 음악 모두에 나름대로 공헌을 했다. 음악계에서는 미국의 유명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이고,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또한 유대인이다. 건축계에서도 모더니즘 건축 최후의 거장이라 불린 루이스 칸이 유대인이다.[13] 정작 히틀러 본인은 극적인 요소가 분명한 바그너오페라를 즐겨 보았다.[14] 정작 히틀러 본인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결혼을 했고 자녀도 없다.[15] 그럴 법도 한 게 실제 히틀러는 당대 정치인들 치고 거의 드물게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16] 자유와 관련해서 미국 우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미국 우파들이 다 네오 나치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총기소유를 국민의 권리로 인정한 미국의 수정헌법 2조도 이러한 시민과 국가의 갈등상황에서 시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히틀러가 한 말이라서 그렇지 어쨌든 말 자체는 분명히 맞는 말이라서 자주 인용되는 것. 실제로 이 말을 한 사람이 세운 독재국가는 "스스로를 불가침화하고 신성화하는 폭정"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였다.[17] 물론 히틀러는 이 글을 읽고 저항권을 행사하여 자신을 암살하려 시도한 슈타우펜베르크 이하 다수의 독일 국민들에게 사형연좌제화답했다.[18] 무솔리니는 애초부터 히틀러와 달리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잠시나마 교사로도 근무했고 정계 입문 전에는 신문사의 주필로 있었고 독서량도 많았기때문에 애시당초 문장력이 다를수밖에 없었다.[19] 혹시나 해서 말하면 이런 주장 하는 사람들은 네오 나치가 아니다. 오히려 학술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다수.[20] 히틀러가 자손 없이 죽었기 때문에 연합국은 저작권을 바이에른 주에 넘겨버렸다.[21] 중간중간 히틀러의 주장에 반박하는 내용의 주석만 2천 개 이상이 포함되어 있어 무의식적으로라도 히틀러의 사상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22] 당시 반공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과 사회 기조로 인해 대한민국 내에서 파시즘 연구는 공산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었고 정부도 파시즘, 전체주의 관련 이념 서적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지 않았다.[23] 당시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의 정치사상으로 발생할 결과를 전혀 모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음이 최근에 드러났다. 눈에 띄는 반발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단지 용기와 의지의 힘을 갖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용기를 냈던 사람들이 붙잡혀 어떠한 결과를 당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24] 독일어로 번역하면 "Mein Kampf für die Demokrat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