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0 00:30:00

압델 파타 엘 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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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이집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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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1월 19일 ~ (만 [age(1954-11-19)]세)

1. 개요2. 집권 전 약력3. 통치4. 독재정치5. 기타

1. 개요

이집트의 현 대통령으로 군인 출신 독재자이다. 2014년 전역 당시 계급은 육군 원수.

2. 집권 전 약력

이집트군 육군에서 기계화보병부대 위주로 군 경력을 쌓아왔으며 1992년에는 영국군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했고 2006년에는 미합중국 육군 전쟁대학을 졸업하여 서방권에서 고등 군사교육을 이수하였으며, 국방장관에 지명되기 전에는 이집트군 정보정찰국장 신분으로 군 정보부대를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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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무함마드 무르시에 의해 육군 대장으로 진급, 국방부/군수부 장관 겸 이집트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2013년 7월 3일 쿠데타를 일으켜 무르시를 축출하고 헌법재판소인 아들리 만수르를 임시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러나 본인은 부총리 및 국방장관, 군총사령관 직위에 올라서 사실상의 실권을 가졌었다. 2014년 3월 26일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2014년 6월 8일에 취임하였다.

3. 통치

애당초 아랍의 봄 당시 무바라크의 독재를 종식한 후, 서방은 이집트에 서방식 민주주의가 꽃필 것이라고 착각했으나, 실제로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득세했고, 결국 이슬람 근본주의의 지지를 받는 무슬림 형제단의 무르시가 정권을 잡았는데 그가 벌인 각종 행각의 폐단이 국제사회에 논란이 될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이를테면 종교와 국적과 관련없이 모든 여성은 히잡을 두르지 않고서는 거리를 다닐 수 없다는 법이나 콥트교회의 신축과 재축을 금지하고 문의 크기도 1미터 20센치를 넘을 수 없다는 라는 하디스의 구절을 법으로 제정했다. 기독교인들이 허리를 굽히지 않고서는 교회를 통과할 수 없게하여 굴욕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구절인데 하디스가 국정 운영의 헌법이 되자 이게 이집트 행정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종류의 차별과 박해가 수도없이 많았다.

거기다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억제도 하지않고 오히려 그 사상의 원조이자 최대계파답게 권장하다보니 이슬람 극단주의의 세력이 숫적으로 크게 강화되고 자금력과 무장력이 강화되었다 그 때문에 시나이 반도를 중심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들이 우후죽순으로 생성되어 콥트정교회와 기타 소수종파는 물론이고 독실하지 않다고 간주되는 세속주의 이슬람교도들마저 초법적으로 집단 학살하는 일이 계속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안티테제로 차라리 철권 통치는 할 망정 이슬람 광신도들을 억누르고 세속주의를 보장해주는 군부 세력이 그나마 낫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실제로 이집트 내부에서도 세속주의를 보장해주는 군부가 아니면 이집트는 사우디, 이란에게 지지않는 막장 광신국가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게다가 이집트는 그 극악한 살라피즘의 원산지다! 시시는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군부 인사임에도 이슬람과 정치에 관련한 논문까지 썼을 정도로 독실한 무슬림이지만[1], 이집트 토착 기독교 종파인 콥트 정교회에는 포용적인 입장을 보인다. 엘 시시 본인이 직접 언급하기를 어렸을 때 당시 이슬람교 신자, 기독교 신자, 유대교 신자들이 자주 교류하는 환경에서 자라 타 종교에 적대적이지 않다고 한다. 소수 종교에 포용적인 면은 현대 중동권 독재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면이다.

2014년에는 직접 콥트 교황과 만나서 콥트교에 대한 테러와 차별을 단속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또한 역대 대통령중 최초로 성탄절미사에 참석하였다. 사실 무슬림이면서 성탄절을 지내는 것은 의외로 흔한 일이지만, 국가원수가 공공연히 지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토착 기독교에 포용적이었던 다른 아랍 독재자들도 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매우 파격적이다. 물론 참석 시 무장 병력을 주둔시키고 (교회에 대한 협박이 아니라, 테러방지를 위해서) 불시에 방문하여서 극단주의자의 표적이 되는 것을 방지했다. 콥트 정교 청년부 채널에서서 보이는 시시는 독재자가 아니라 천사나 마찬가지. # 그러다 보니 콥트 정교회와 교황 타와드로스 2세는 시시의 확고한 지지자들이다. IS가 콥트 기독교인 21명을 참수했을 때도 7일간의 애도 기간까지 정하며 살인마들을 반드시 처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집트의 경제가 빈곤하기 그지없고 공권력이 하도 부패하다 보니 콥트교 보호의 효과엔 의문이 있지만 최소한 광신정치 아래 학살당하진 않는다.

2015년 1월에는 이슬람성직자들 앞에서 이슬람 종교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2017년 11월에는 이집트를 방문한 미국의 기독교인들을 초대하며 대통령 궁에서 만났다.#

2018년 6월 25일에 엘시시는 사우디의 여성운전허용은 사회진보를 위한 조치라고 칭찬했다.# 특히 엘시시 정부에서 이집트 사상 최초로 여성장관이 8명이나 임명되었다.# 거기에다 주지사를 여성콥트교도로 임명하는 조치도 취했다.#

4. 독재정치

앞서 문단만 보면 상당히 개념찬 통치자인듯 착각이 들수도 있으나 사실 엘시시가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독재자라고 비난받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양반은 안와르 사다트, 호스니 무바라크가 평범하게 보일만큼 장난아니게 악랄한 독재자인데 2011 이집트 혁명으로 취임한 무르시를 2013년에 축출한 후 독재를 행하면서 정치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만 최소 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초법적인 감금과 고문, 사법살인이 횡행하고 있다. 나세르 혁명 이후 이집트가 독재가 아니었던 적은 한번도 없으나 정부가 시민을 이정도의 규모로 무차별 학살했던 사건은 나세르 때도, 사다트 때도, 무바라크 때도 없었던 이집트 초유의 일이었다. 심지어 그 이집트 혁명 기간중에도 정부군이 시위대를 상대로 대규모 발포를 했던 적은 없었으니 말 다한 셈.[2] 더구나 당시 시위대 학살엔 헬기에서 기총소사까지 동원되어서 피해 규모가 커졌다.#

2015년 8~11월 사이에서만 340명이 '강제 실종' 당했다고 한다. 그중 일부는 처참하게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라서 2015년 1월에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 과정으로 카이로에서 노동문제를 연구하던 이탈리아인 연구원 줄리오 레제니가 돌연 실종되었는데 일주일 후 거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그의 온몸에는 고문 흔적이 선명했다. 이집트 시민 단체와 이탈리아 정부는 “경찰의 고문 자국”이라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으나 이집트 정부는 '교통사고'라고 발뺌만했다. 심지어 국제사회의 비판이 강해져도 ‘테러범의 소행’이라고 번복했다. 그러다보니 현재 이집트와 이탈리아의 관계는 단교 직전까지 악화됐다.

2014년 4월 28일에는 시위에 관련된 무슬림형제단 683명에게 무더기 사형 선고를 내리는 세계 초유의 기록을 세운다. 국제사회에서 온갖 비난이 이어졌고 UN과 인권단체는 현대사에 전례 없는 집단 사형 선고라며 무더기 사형 판결을 비판했다. 반기문도 이 행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2014년 12월에는 시위 도중 경찰서를 습격한 188명에 대해 또 다시 무더기 사형 선고를 내린다. 이 정도면 그냥 사형 때리는거에 맛들렸다고 봐도 될 정도.

2016년 6월 28일에도 자신을 비판한 레바논인 여성 앵커를 추방시켜 버렸다. 오죽하면 나세르 때보다 인권탄압이 더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겨우 민주화를 이뤘더니 정치혼란으로 흐지부지되고 다시 군부독재가 찾아온 5공화국 시절이 2016년에 벌어지고 있다고 보면 될 듯.그나마 5공때는 3저 호황 덕분에 경제적 성과가 나기라도 했지 이건 답이 없다 그리고 2016년에 사우디와 경제협력하면서 아카바 만에 위치한 2개의 섬을 사우디에게 넘긴다는 협정을 체결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 전역에서 시위가 발생되었다.# 오죽하면 이집트 인권단체 ‘이집트자유와권리위원회(ECRF)’의 모하메드 로프티(38) 사무국장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엘시시는 이집트를 중동의 북한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다. 게다가 길거리 시민을 인터뷰한 기자도 잇달아 체포해서 언론탄압이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

엘시시는 강력한 철권통치와 무자비한 탄압으로 국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걸 철저하게 통제해왔다. 하지만 이런 그의 강권통치도 경제난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가혹한 독재에 겹쳐 물가와 설탕 가격이 2배나 급등하고 경제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난공불락이던 엘시시의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3] 결국 이집트는 외환 위기에 빠져 IMF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다. 이집트의 한 재야인사는 엘시시가 철권통치 능력에 비해 경제 등 국가 운영 능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4] 엘시시 정권이 후세인이나 히틀러만큼 오래가지는 못 할 것이라고 보았다.

대통령 임기 종료 1년 앞두고 임기를 기존보다 2년 연장하는 방안이 의회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2017년에는 다에시가 상습적으로 콥트교를 공격하고 테러를 일삼자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이와중에 이집트 내의 NGO를 강력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가비상사태 선포에도 콥트교에 대한 테러가 계속 발생하자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연장했다.

2017년 4월에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져 미국과 이집트 양국의 우호를 다지며 대테러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2017년 7월에는 테러를 근절할 대통령 직속의 국가위원회를 설립했다.#

2018년 1월에 이집트를 방문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과 회담을 가져 팔레스타인을 돕겠다고 밝혔다.#

엘 시시 집권 이후 이집트에서 무더기 사형 판결과 더불어 실제 사형 집행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에는 2016년에 비해 2배, 2015년에 비해선 무려 7배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2018년 대선을 앞두고 엘 시시에게 대항해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체포되거나 출마를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

2018년 3월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독재국가답게 97.08%라는 막장 득표율을 보이며 불과 2.92%를 얻은 상대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선거과정 또한 막장의 극치였는데 이집트의 전 육군참모총장인 사미 아난이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가 군 당국의 허가없이 출마를 선언했다는 되도 않는 이유로 체포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나마 경쟁력 있던 야권 후보인 아흐메드 샤피크[5]UAE에서 이집트로 귀국했다가 당국에 의해 행방불명된 후 시간이 지나 다시 나타났지만 스스로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포기하면 편해. 인권변호사 칼레드 알리는 '풍기 문란'이라는 이유로 징역 3개월형에 처해졌고 결국 불출마했다.이렇게 후보가 1명 1명 차례로 제거되고나서 이집트에 이름 하나 알려지지 않은 무명 후보가 유일한 경쟁 후보로 대선에 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그 후보는 대선 직전까지 자기 입으로 엘 시시를 지지하고 다녔던 인물이니 1인 단독 출마 선거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었다.

그리고 재선에 성공한 뒤, 엘시시는 4월 14일에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더 연장했다.#

2018년 5월 18일 가자지구의 국경을 라마단 기간 한달동안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이집트에서 5000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모든 SNS 유저를 감시한다는 초유의 막장 법안이 통과됐다.## 이미 이 법이 통과되기전에 500개 이상의 웹사이트가 강제 폐쇄된것은 덤.

2018년 9월, 기어이 5년전 쿠데타 반대 시위대 75명에게 사형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 사형 선고에 대한 항의로 7월에 이집트 SNS에선 #시시, 물러가라’는 태그가 30만건 이상 리트윗 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에선 이 판결을 지독하리만큼 불공정한 재판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집트 정보부가 민간 TV 방송국과 라디오를 닥치는데로 사들이면서 이집트의 언론 탄압이 더더욱 극심해져가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근 몇주간 유명 쇼프로 진행자들이 사라지거나 해고되었고 이중엔 심지어 엘시시의 정부 정책을 열렬히 찬양하던 사람들까지 포함되었다.#

2019년 4월 11일 수단을 30년간 지배하고 있던 오마르 알 바시르가 축출되면서 과도정부를 이끄는 수단 군부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수단의 민주화 운동이 자국으로 퍼지지 않게 하려는듯.#

2019년 4월 15일, 리비아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부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 최고사령관과 회담을 갖고 지지를 선언했다.#

2019년 4월 16일에 이집트 의회는 엘 시시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도움이 되는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4년이었던 대통령 재임기간이 6년으로 늘어났고 재선할 경우2030년까지 독재할 수 있게 되버렸다.

5. 기타

현재로서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무바라크처럼 장기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1] 이는 무르시가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이유로 추측된다.[2] 혁명 기간동안 이집트 전역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수백명이 사망하긴 했으나 엘시시의 경우처럼 하나의 사건에서 보안군이 시위대 수천명을 무차별 사살로 학살한 케이스는 없었다.[3] 절대 수치로만 보면 아직 지지율이 높아 보이지만 푸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독재국가에서 대통령 지지율 수치는 걸러서 봐야 한다.[4] 물가를 잡으려면 개혁을 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촉구해 비웃음만 당했다. 한국에 와서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집트의 좋은 점이 어떤게 있는가는 제대로 말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투자만 해주세요'라는 소리만 해 보는 사람들 어이만 날렸다. 당연히 이집트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투자 안한다.[5] 2012년 대선에서 무르시와 맞붙었던 세속주의자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