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71B1C,#000><colcolor=#eeeeee,#dddddd>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Fritzl case | |
발생일 | 1984년 8월 28일 ~ 2008년 4월 26일/(총 8,516일) |
사건 발각 | 2008년 4월 26일 |
발생 위치 |
니더외스터라이히 암슈테텐 입슈스트라쎄 40번지 |
범죄 항목 | 약취유인(납치, 유괴) 감금 성폭행(강간) 폭행 과실치사 사체유기 |
가해자 | 요제프 프리츨(범행 당시 49세 ~ 검거 당시 73세) [주범, 단독범행] |
피해자 | 엘리자베트 프리츨과 감금 이후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들/(감금 당시 18세 ~ 탈출 당시 42세) |
판결 | 요제프 프리츨(종신형)[1] |
1. 개요
이 사건의 가해자인 요제프 프리츨(Josef Fritzl)이 연행되는 모습.
1984년 8월 29일부터 2008년 4월 26일까지 요제프 프리츨은 딸 엘리자베트를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서 가두고, 그녀를 완전히 요제프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그녀에게 성적 학대를 하고,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취급함으로써 그녀를 노예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했다.
2008년에 전 세계를 경악시킨 오스트리아의 근친, 납치, 감금 및 강간 사건. 영화 <룸>과 <걸 인 더 베이스먼트>의 모티브가 되었다.
2. 피해자 엘리자베트 프리츨의 삶
#왼쪽 원은 어머니 로즈마리 프리츨, 오른쪽 원은 엘리자베트. 엘리자베트 왼쪽은 남동생 요제프 주니어[2]
엘리자베트의 어린시절과 1984년 감금 당시 49세의 요제프 프리츨.[3]
15세에 학교에서 찍은 단체사진이며 엘리자베트는 밑에서 두번째 가운데에 있다.
감금 직전에 비밀 남자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사진이라고 한다.비밀 남자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의 내용24년이 지나서야 근황을 알게된 비밀 남자친구 안드레아스 K과의 인터뷰
감금 이전의 엘리자베트.
엘리자베트는 1966년 4월 6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11살때부터 아버지 요제프에게 수시로 성적 학대를 당했다.
엘리자베트는 15세에 오스트리아 동부, 스트렝베르크 근처의 A1 고속도로에 있는 로젠베르거 휴게소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녀와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소녀들은 주방 아래 기숙사에서 잤다. 수년간의 학대 끝에 그녀는 처음으로 아버지로부터 해방감을 느꼈고, 그의 탐욕과 음탕함으로부터 안전함을 느꼈다.
엘리자베트는 17세인 1983년 1월 28일에 성폭행을 피해 가출하여 직장에서 나온 다른 소녀와 함께 집에서 123km 거리의 수도 빈에서 3주간 숨으며 살아간 적이 있었지만 경찰이 발견한 뒤 집으로 돌려보내졌다.[4]
그녀는 1년 반만 더 버티고 훈련 프로그램을 마치고 자유로워질 때까지 버티기로 결심했고 1984년 늦여름에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에서 62km 떨어진 오스트리아 북부의 린츠라는 도시에서 취업할 전망을 얻었다. 그녀가 마침내 요제프에게서 벗어나려고 할 때, 요제프는 지하실이 통하는 차고로 유인한 뒤, 엘리자베트에게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을 안락의자로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1984년 8월 28일이었고, 그녀는 24년 동안 다시는 하늘을 볼 수 없었다.##
2.1. 엘리자베트의 형제자매의 삶
- 언니 울리케와 언니 로즈마리 주니어[5]: 여동생 엘리자베트와 달리 성적 학대나 감금을 당하지 않았고,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기도 했을 정도로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어릴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는 것은 같았다.
- 오빠 하랄트: 여동생 엘리자베트의 탈출 이후 재판에서 아버지 요제프가 저지른 가정폭력에 대해 언급했고, 인구 1700명의 미테르키르헨에 그녀가 살 집을 마련해주었다. 다음은 하랄트가 재판에서 40분간 발언한 것의 일부이다. 하랄트는 어렸을 때 요리사와 웨이터로 수습을 받았지만, 그의 아버지 요제프는 그에게 술을 마시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하랄트는 사장의 생일 파티에서 샴페인 한 잔을 마셨고, 요제프는 그날 저녁 집에서 그 냄새를 맡고 즉시 그를 처벌하기위해 때렸다. 코피가 심하게 난 하랄트는 집 3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보내져 갇혔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요제프는 하랄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하랄트는 자신이 다친 원인을 가정폭력이 아닌, 계단에서 넘어져 코가 부러졌다고 설명해야 했다.#
- 여동생 가브리엘:
- 남동생 요제프 주니어:
- 여동생 도리스:
3. 경과
오스트리아 동부 암스테텐에 살던 요제프 프리츨은 유능한 전기 수리공이고 부동산 업자였으며 부인 로즈마리와 2남 5녀를 둔 겉으로는 친절한 이웃이었지만 실제로는 집안의 독재자이자 근친상간을 즐기는 성도착증 환자였다.[6] 그는 셋째 딸 엘리자베트가 11세였던 1977년부터 그녀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왔다. 요제프는 딸을 감금하여 지속적으로 성폭행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한편 자신의 범죄를 영구적으로 은폐할 계획을 세웠다.독일 빌트지가 공개한 엘리자베트가 갇힌 지하실의 구조도. 현장감식영상까지 있는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의 범인의 집과는 달리 엘리자베트의 지하감옥으로 향하는 1미터 높이의 흰색 작은 문, 화장실, 침대방이 보이는 좁은 통로의 사진 총 3장이 오스트리아 경찰이 공개한 전부다. 그래서 언론사에서 공개한 구조도마다 방의 형태가 모두 다르다. 독일 슈피겔에 따르면, 위 사진에서 집의 왼쪽에 있는 수영장이 엘리자베트의 지하감옥이 있는 위치라고 하기도 한다.[7] 다큐에 따르면, 위 구조도에서 화장실이 있는 방으로 가기 전에 있는 좁은 통로에 냉장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니더외스터라이히 경찰이 2008년 4월 28일에 공개한 현장 감식 사진이다.# 언론에 공개된 감식 사진은 이 3장이 전부이다.
요제프는 1981년~1982년에 걸쳐 지하실을 토굴 감옥으로 개조했는데 그곳은 원래 방공호 용도로 쓰이는 곳이라 의심하기 힘들었다. 이중문을 설치했는데 첫 번째 문은 1m 두께의 책장 뒤에 숨겨져 있었으며[8] 두 개의 문 모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 수 있는 전동식 철문이었다. 더군다나 문 두 개 외에도 비밀문까지 합쳐 총 8개의 문이 있었고 방음처리가 꼼꼼하며 각 문이나 통로는 아주 좁아서 탈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내부는 오스트리아 경찰이 공개한 사진상 겉보기엔 사람이 살 만하게 보이나, 엘리자베트의 탈출 이후 12일간 이 공간을 조사하던 40명의 경찰관들은 심리상담을 받아야했다. 이곳을 조사하는 동안 신체와 정신의 허용 한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위생시설은 곰팡이로 뒤덮혀 있었고 변기는 형편없었다. 환기구가 달린 환풍기는 하나뿐이었다.# , 24년간 갇혀있던 55평방미터의 습한 벙커를 조사하던 20명의 전문가들은 산소 부족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했다.#.
1984년 8월 28일, 요제프는 학교에서 다녀온 엘리자베트에게 지하실 정리를 도와 달라고 부탁하여 차고로 끌어들인 후 에테르에 적신 수건으로 기절시키고 감금하고 강간해 버렸다. 이후 태연하게 딸의 실종 신고를 하고 지하실에 갇힌 딸을 침대 기둥에 50cm 길이의 쇠사슬로 묶고 협박해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했으니 자신을 찾지 말라는 편지를 쓰게 했는데 그렇게 딸이 가출한 것처럼 꾸미고 여태 살아 왔다.
이후 무려 24년에 걸쳐 요제프는 태평하게 부인 로즈마리와 엘리자베트의 형제자매와 살면서 3일에 한번 꼴로 지하실을 찾아 엘리자베트를 지속적으로 강간하고 음식을 줬으며 이 과정에서 7명이나 되는 아이가 태어났다. 그 중 세 명의 아이는 입양하고 나머지 세 명은 그대로 지하실에 감금했으며 한 명은 사망했다. 입양한 아이들은 나이가 많거나 울음소리가 컸기 때문에 입양한 것이었다.
엘리자베트가 처음으로 임신한 것은 1986년이지만 당시에는 임신 10주 만인 11월에 유산되었다.[9] 1989년 첫째 케르스틴, 1990년 둘째 슈테판, 1992년 셋째 리사가 태어났다. 1993년 5월 요제프는 리사가 생후 5개월 때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했다는 엘리자베트가 상자에 넣고 집 앞에 버리고 간 것으로 위장하여 리사를 양녀로 입양했다. 1994년 2월 넷째 모니카가 태어났는데 12월에 리사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베트가 유모차에 버리고 갔다는 것으로 위장하고 입양했다. 1996년 5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그 중 한 아이인 미카엘은 사흘만에 병으로 죽자 지하실 보일러에 집어넣어 대충 화장했다. 다른 아이 알렉산더는 1997년 8월 입양했다. 2002년 12월 일곱째 필릭스가 태어나자 입양하려고 했으나 부인 로즈마리가 돌보기 힘들다고 하자 지하실에 그대로 감금했다.
3.1. 엘리자베트가 겪은 일
감금 직후 5년간은 요제프와 말을 섞지 않고 혼자서 외롭게 지내야 했다. 9년 동안은 지하실에 방이 35제곱미터의 한 칸뿐이어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이 이루어졌으며# 1994년 엘리자베트가 지속적으로 확장을 요구하면서 요제프는 10여 년간 은밀하게 지하실을 조금씩 증축해서 방 4개를 더했는데 엘리자베트와 아이들은 맨손으로 땅을 파면서 거들어야 했다.8번 사건사고 문단에서 후술할 당시 기레기들의 행패로 인해 엘리자베트는 변호사를 통해 TV 인터뷰의 계획은 없다고 전했고#, 오스트리아 경찰과 법원의 보호 아래 지하실에서 겪은 일들이 거의 외부에 유출되지 못했다10년후:프리츨 사건의 대 침묵. 나타샤 캄푸쉬가 사진을 신문에 게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을 때, 판사는 그녀가 언론 인터뷰까지 마친 공인이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 권리가 없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24년간의 지하실 생활을 폭로하면 500만 파운드[10]를 제공하겠다는 각종 국제 언론사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사생활을 보호받기로 한 것이다.#
사건의 중심지인 암슈테텐이 속한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주도 장크트푈텐의 법원에서는 엘리자베트의 11시간짜리 증언영상의 내용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한번에 2시간 이상 볼 수 없게 했다. 실제로 요제프의 재판에서는 이 증언영상을 발췌하여 일주일에 걸쳐 틀어주었고, 엘리자베트의 증언 비디오가 송출되는 동안에는 증언이 유출되지 않도록 기자들을 퇴장시켜 비공개로 진행했다.## 그래서 많은 언론인들이 좌절감을 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아래 나열된 것들은 당시 수사관, 병원관계자, 엘리자베트의 일기장이나 요제프의 기소장 유출본# 등에서 나왔다.
그리고 증언 출처의 사실관계가 다른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당시 언론의 증언 유출본을 무조건 맹신해서도 안된다.#
[이하모든증언출처]
- 처음에 요제프는 엘리자베스를 감금하고 팔을 등 뒤로 해서 수갑을 채우고 침대 기둥에 쇠사슬로 묶었고, 쇠사슬이 너무 짧아서 침대 양쪽으로 약 50cm 정도만 움직일 수 있었다. 이틀 후, 그는 쇠사슬을 엘리자베트의 허리에 두르도록 하여 움직임을 더 자유롭게 했다. 그래서 처음 며칠 동안은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한달 후, 강제로 어머니 로즈마리에게 사이비 종파로 떠났으니 찾지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게했다. 그리고 감금 6~9개월쯤 되었을 때, 그는 "쇠사슬이 딸과의 성생활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쇠사슬을 제거했고 도망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요제프는 감금 둘째 날부터 2008년 4월 석방될 때까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성적 학대와 강간을 당하도록 강요했다. 수 년이 지나는 동안 그 빈도는 이틀에 한번 꼴로 줄었다. 처음 9개월 동안 그는 그녀를 목줄로 묶고 항상 입을 가리고 숨쉬지 못하게 했다. 요제프는 감금 내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처우가 더 나빠질 것이고 어차피 지하실에서 탈출하지 못할 것", 반항을 하면 지하실에 가스를 주입하여 질식하게 만들겠다고 협박을 했다.[12]
- 요제프는 반복적으로 엘리자베트를 때리고 발로 찼다. 또한 폭력적인 포르노 영화의 장면을 재연하도록 강요하고 엘리자베트의 몸에 물건을 넣는 등 굴욕적인 성적 학대를 가했다. 그 학대로 인해 그녀는 심각하고 지속적인 신체적 상해와 정신적 손상을 입었다. 엘리자베트는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체념하고 케르스틴이 태어난 후 일부 저항을 포기했고[13], 그 덕분에 일시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 요제프는 엘리자베트를 마치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소유물로 취급했다. 이를 위해 요제프 프리츨은 딸을 가둔 뒤 식량을 공급하여 엘리자베트를 완전히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식량 부족이 자주 발생했고, 엘리자베트가 리넨 천으로 직접 옷을 지어입도록 강요했으며, 처벌로 며칠 동안 전기를 끄기도 했다. 그래서 지하실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있었다. 습기 때문에 지하 감옥에는 곰팡이가 계속 자랐다. 신선한 공기는 주로 건물의 틈새를 통해 공급되었다. 때때로 방에 쥐가 들끓기도 했다. 엘리자베트는 맨손으로 쥐를 잡는 방법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 12년동안 출산은 모두 의학적 도움 없이 이루어졌다. 1986년 여름, 엘리자베트는 요제프에 의해 처음으로 임신을 하였으나 유산되었다. 엘리자베트는 지하감옥에 갇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완전히 좌절하게 되었다. 1987년 10월, 엘리자베트는 요제프에 의해 다시 임신하게 되었다. 많은 고집 끝에 그녀는 케르스틴의 출생 두 달 전에야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받았고, 이 책을 통해 다가오는 출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요제프는 엘리자베스의 출산을 위해 아스피린, 담요, 소독제 한병, 기저귀, 더럽고 녹슨 가위, 1960년대 의학 서적만을 주고 35제곱미터(1993년부터는 55제곱미터)의 지하실에서 혼자서 낳게 했다.[14] 엘리자베트는 출산할 때 녹슨 가위로 직접 탯줄을 잘랐고, 첫째 케르스틴을 출산하고 열흘이 지나서야 요제프가 그들을 보러 왔다.
- 종종 엘리자베트와 그녀의 아이들을 위협하면서 탈출을 시도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소장에는 "그는 문을 열려고 하면 전기 충격을 주고, 탈출하려고 하면 독극물이 지하실로 흘러 들어가 그들 모두를 즉사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했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 요제프는 며칠 동안 지하실의 모든 전원을 차단하여 완전히 어둠 속에 홀로 남겨주어 그녀를 벌주곤 했다. 엘리자베트는 1993년에 음식을 비축하기 위해 설치한 냉동고가 요제프가 휴가를 떠나는 동안 이미 끔찍하게 젖은 지하실 바닥에 해동되어 내용물이 새어나가자 울었다.
- 요제프가 엘리자베트의 자녀들에게 가한, 모든 뺨을 때리거나 위협하거나 구타한 날짜와 시간을 일기장에 기록
- 엘리자베트는 지하감옥에 햇빛이 부족한 것에 요제프가 해결하도록 설득해야만 했다. 요제프는 엘리자베트의 압력을 받아 지하 감옥에 비타민 D 제품과 자외선 램프를 가져왔다.
- 엘리자베트가 낳은 아이들이 거울이나 욕실 저울과 같은 일상적인 물건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를 일기장에 기록. 아이들은 무언가를 먹은 다음 체중계에 서서 체중이 변했는지 확인하곤 했다.
- 요제프가 어떻게 반복적으로 자신을 강간하고 위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를 물리치려고 했는지 일기장에 기록
- 지하 감옥의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엘리자베트와 그녀의 아이들은 종종 병에 걸렸으나 요제프는 어떠한 의료 지원도 제공하지 않았고, 치통이든 독감과 유사한 증상이든 모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스피린만 제공했다.
- 살아남은 여섯 명의 자녀들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져서 세 명은 프리츨과 그의 아내 로즈마리와 함께 위층에서 살고, 세 명은 엘리자베트와 지하실에서 함께 묻혀 살았는지 일기장에 기록.
엘리자베스는 1992년 2월 1일에 아들 슈테판을, 1994년 2월 26일에 딸 모니카를, 1996년 4월 28일에 쌍둥이 알렉산더와 미카엘을, 2002년 12월 16일에 아들 필릭스를 낳았지만, 의료적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한 채 지하 감옥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를 감싸는 담요와 기저귀 한 장만을 가지고 있었다. 요제프는 알렉산더와 미카엘이 태어날 때와 필릭스가 태어날 때만 현장에 있었다. 리사가 태어난 후에는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피고인은 아이를 버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요제프는 엘리자베트가 부모에게 사이비 종교를 빙자한 편지를 쓰게 했고, 먼저 1993년 5월에 리사를, 그다음 1994년 12월에 모니카를, 그리고 1997년 7월에 알렉산더를 지하 감옥에서 위층 가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왔다. 그런 다음 아이들을 위탁 아동으로 데려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동수당 12000
- 1996년 4월 28일, 쌍둥이 알렉산더와 미카엘을 낳는 동안과 그 후에 합병증이 발생했다. 엘리자베트는 이미 몇 주 전부터 체중 증가와 뱃속 움직임 증가로 인해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요제프에게 이러한 의심을 알렸다. 수축이 시작되었을 때, 요제프는 지하실 감옥에 있었고 그 후 몇 시간마다 지하실에 있는 엘리자베트를 확인했다. 출산 당시인 오후 6시 50분경, 요제프는 지하 감옥에 있었고, 이전에 케르스틴과 슈테판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으며, 밝은 색의 탯줄을 가진 첫째 알렉산더를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그러다 미카엘이 태어났는데, 탯줄이 목에 두 번 감겨 있었고 머리에 압박 상처가 있었다. 쌍둥이가 태어난 지 몇 시간 후, 미카엘은 호흡곤란을 겪고, 쌕쌕거리기 시작했으며, 모유 수유를 중단했고, 안색이 파랗게 변했고, 다리가 굳어졌다. 요제프는 딸이 태어난 지 약 6시간 후에 딸을 다시 방문하고, 출산 다음 날 쌍둥이를 위한 침대를 지하실 지하감옥으로 가져왔을 때 몇 시간 간격으로 지하실 지하감옥에 와서 생명을 위협하는 건강 상태를 알아챘다. 요제프는 미카엘의 굳어진 모습을 보고 유아의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요제프는 이미 죽음의 위험을 예견했다. 요제프는 유아에게 적절한 의료를 제공하기는커녕 생명을 구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엘리자베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야지!"라고 말했다. 신생아학 보고서에 따르면, 미카엘은 1996년 5월 1일 오후 12시 15분경 사망했다. 감염으로 인한 심각한 호흡곤란증후군과 이에 따른 체액 및 영양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다. 신생아학 보고서는 보고서에 언급된 미카엘의 심각한 호흡곤란증후군의 가능한 원인이 신생아 집중 치료를 통해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었고, 지역 병원에서 치료될 수 있었거나 해당 병원을 통해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효과적인 치료를 받았다면 미카엘은 장애 없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망의 위험은 제3자가 인지하고 예측할 수 있었다. 1996년 5월 2일, 요제프는 미카엘의 시신을 화덕에 태우고 그의 재를 정원에서 태웠다. 요제프는 계속된 강간 동안 피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2002년 12월 16일에 필릭스가 태어났다.
- 요제프는 지하감옥에 갇힌 엘리자베트, 케르스틴, 슈테판, 필릭스에게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반복적으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전기 트랩과 가스 트랩에 연결된 광 차단막을 설치해 두었고, 가스 트랩에서 가스가 새어 나와 몇 분 안에 그들을 죽일 수 있으며, 고전압 전선도 설치했으며, 바깥문에는 전기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엘리자베트, 케르스틴, 필릭스가 결코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슈테판은 15세 때 단 한 번 호기심에 자물쇠가 달린 출입문을 밀었는데, 그 문 앞에는 빗장이 없었다. 당시 요제프는 지하 감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제프가 언급한 타이머[17]는 잠금 장치 입구 문의 제어 요소에 장착되어 있어야 했지만, 범죄 현장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요제프는 범죄를 재구성하는 동안 이 타이머가 어떻게 설치되고 작동했는지 전기 전문가에게 신뢰할 만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타이머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엘리자베트조차도 모순된 심문에서 요제프가 그녀가 지하감옥에 있던 마지막 2년 동안 문에 타이머를 설치하는 것을 고려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는데, 그 타이머는 설정된 시간이 지나면 잠금된 입구 문이 자동으로 열리도록 되어 있었다. 요제프에 따르면 냉동고 근처에 있었던 앨런 키는 기계적으로 잠금 입구 문을 여는 데 사용되었을 수 있지만, 법의학적 조사나 범죄 재구성 과정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요제프는 앨런 키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다. 또한, 입구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지하감옥의 입구 구역에는 감옥을 보호하기 위해 잠금 장치가 있는 방화문과 모터로 작동하는 감옥 입구문도 있었다.
- 요제프가 정원이나 수영장에서 윗층 아이들을 찍은 사진으로 지하실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조롱했는지 일기장에 기록.
- 여름에는 치솟는 기온으로 지하감옥의 환기구가 벽을 타고 응결이 쏟아지는 오븐으로 변하면서 지하 생활이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여름이 끝나면 우리는 항상 더 행복하다"라고 일기장에 기록.
- 벽 아래로 쏟아지는 결로를 막기 위해 수건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일기장에 기록
- 음식 공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18]. 요제프는 화가 나면 전기를 차단하고 음식 공급을 중단하고 열흘간 휴가를 떠나버리는 바람에 그녀와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다. 위층 가족이 휴가를 떠날 때, 지하실 가족들은 한 번에 10일 동안 거의 음식도 없이 버려지곤 했다. 1991년 3월 2일, "우유와 그 밖의 식료품들은 이제 거의 다 사라졌다"고 암울하게 일기장에 기록했다.
- 요제프가 태국이나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휴가를 보냈을 때, 몇 주 동안 지하감옥에 쓰레기가 쌓였다고 한다. 따라서 엘리자베트와 그녀의 지하실 아이들은 곰팡이 질병을 앓았다.
- 엘리자베트가 처음 감금되었을 당시에는 세면대, 침실, 난방, 온수, 샤워기가 없었고 벽 틈에서 나오는 공기를 통해 숨을 쉴 수 있었다. 1993년 모니카가 태어나기 직전, 요제프는 지하 저장고를 두 개의 방으로 확장하여 처음으로 샤워실을 만들고 주방 선풍기, 오븐, 냉장고를 설치했으며, 지하 저장고의 총 면적은 40.02m²였다.
- 요제프가 생필품을 가져올 때 쇼핑백 바닥에 남겨진 영수증에 대한 일기를 씀
- 엘리자베트는 지하실에서 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고[19] 벽에 꽃과 햇빛 사진을 걸었다.
- 탈출 1년 전인 2007년에, 요제프에 의해 강제로 '사이비 종교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아직 불가능하다'는 편지를 씀
3.2. 엘리자베트의 아이들의 삶
지하실에서 생활한 아이들은 볼드 처리.- 첫째 딸 케르스틴: 1988년 8월 30일 출생 후 2008년 4월 18일까지 단 한번도 바깥세상에 나가지 못했다. 지하감옥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기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뜯고 옷을 찢어서 변기에 버리기도 했다.
- 둘째 아들 슈테판: 1990년 2월 1일 출생 후 2008년 4월 25일까지 단 한번도 바깥세상에 나가지 못했다.
- 셋째 딸 리사: 1992년 8월 29일 출생 후 1993년 5월에 생후 9개월의 나이로 바깥세상에 나갔다.
- 넷째 딸 모니카: 1994 2월 26일 출생 후 1994년 12월에 생후 10개월의 나이로 바깥세상에 나갔다.
- 다섯째 아들 알렉산더: 1996년 4월 28일 출생 후 1997년 7월에 생후 15개월의 나이로 바깥세상에 나갔다.
- ✞여섯째 아들 미카엘: 1996년 4월 28일 쌍둥이 알렉스와 출생, 태어날때 목에 탯줄이 두번 감겨 있었고, 머리에 압박 상처가 있었지만 요제프가 의학적 도움을 일절 거절했기에 미카엘은 1996년 5월 1일 오후 12시 15분경에 사망했다.# 요제프는 미카엘의 시신을 소각로에 넣어 화장했다.
- 일곱째 아들 필릭스: 2002년 12월 16일 출생 후 2008년 4월 25일까지 단 한번도 바깥세상에 나가지 못했다.
3.3. 세입자의 증언
오스트리아 경찰은 엘리자베트가 감금된 1984년부터 2008년까지 24년간 프리츨 하우스에서 살던 100여명의 이전/현재 세입자들에게 증언을 호소했다#.- 엘리자베트가 감금된 지하실의 바로 윗층인 1층에서 1995년부터 12년간 살던 알프레드 두바노브스키는 가끔 두드리는 소리, 쾅쾅거리는 소리와 물체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요제프는 아파트의 모든 주민들에게 지하실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그 지역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 합의를 어기는 사람들을 퇴거시키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한번은 그에게 윗층의 더 큰 집으로 바꾸고 싶은지 물었지만 거절했다#
- 1990년대 초에 1층의 원룸을 임대했던 셉 라이트너는 일 때문에 몇 주씩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음에도 1/4분기의 전기요금이 5000실링(400유로)이상으로 치솟고 모든 전기가 꺼져있어도 전기미터기는 계속 작동해서 요제프와의 논쟁 끝에 전기기술자를 불러 높은 전력 소모의 원인을 찾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개를 키웠는데, 개가 한밤중에도 깜짝 놀라면서 자주 깨어났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다른 세입자들의 부엌에서 음식이 자주 없어졌다고 하며, 요제프가 늦은 밤에 차에서 쇼핑백을 꺼내 정원으로 가져오곤 했다고 회상했다.##
4. 발각, 그리고 탈출 이후의 엘리자베트
요제프 일가의 가계도. 빨간색이 감금당한 아이들이며 연두색이 입양 형식으로 키워진 아이들이다.
24년 동안 벌어진 요제프의 근친상간과 감금, 4남 3녀 출산 사실을 부인이나 다른 가족들은 물론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도 전혀 알지 못했다. 권위적인 가장이었던 요제프는 부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절대 지하실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검거도 정말 우연히 이루어졌다.
2008년 4월 18일 밤, 지하실에 갇힌 3명의 아이 중 하나인 19살이었던 첫째 케르스틴이 신장에 문제가 생겨 경련이 일어나고 입술을 물어뜯다가 피가 나는 등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혼수상태에 빠지자 엘리자베트의 간곡한 호소로 요제프는 다음날인 4월 19일 이른 아침에 엘리자베트에게 케르스틴을 구급차에 데려가라고 지시했고 엘리자베트를 곧바로 지하실에 돌려보낸 뒤, 케르스틴 혼자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게 내버려 뒀다.기소장에 기록된 당시 상황 원인은 태어난 뒤 19년 동안 평생에 걸쳐 산소 결핍과 영양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엘리자베트는 24년 만에, 케르스틴은 태어난 후 19년만에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왔다. [21]
병원에 도착한 케르스틴에게는 요제프가 준 기침약 한병과 아스피린 한팩, 엘리자베트가 긴급히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쓴 편지만이 있었다. 암슈테텐 병원 중환자 치료과장인 알베르트 라이터(사건당시 57세)는 동행인 없이 도착한 이 수상한 여자를 경찰에 신고했다. 오전 10시 37분, 경찰은 모스트피어텔-암슈테텐 주립병원으로부터 수상한 여성이 입원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가능한 한 빨리 케르스틴에게 어떤 병력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녀의 어머니인 엘리자베트에게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경찰은 엘리자베트 실종사건을 다시 수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는 주민 등록이 안 되어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 진료를 받으면 그 즉시 누군지를 알 수 있는데 한두 살도 아니고 19세나 된 소녀가 등록되지 않은 것이 의심을 샀다.
4월 19일 오후 10시, 요제프가 병원에 도착하여 자신이 케르스틴의 할아버지임을 밝혔다. 그는 케르스틴이 24년 동안 실종된 자신의 딸의 자식이며, 딸이 아마도 사이비 종교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케르스틴이 자신의 집 앞에 누워 있었고 엘리자베트가 쓴 편지도 거기에 있었다고 말했다. 요제프는 또한 케르스틴이 이전에 병원에 가본 적이 없고 매우 수줍음이 많다며, 자신은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의사는 모든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경찰은 광범위한 재조사에 착수했다. 2년 전 나타샤 캄푸쉬와의 최초인터뷰를 했었던 ORF 방송국은 당일 "Niederösterreich heute"에서 말기 환자 여성의 어머니를 찾는다는 내용을 보도를 했다.#[22] 요제프는 엘리자베트가 빠졌다는 사이비 종파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반복한 다음, 평소의 수법을 꺼냈다. 그것은 엘리자베트가 2008년 1월자로 쓴, 자신과 아이들이 곧 돌아올 수도 있다는 편지였다.[23]
이 편지는 암슈테텐에서 약 70km(43마일) 떨어진 케마텐안데르크렘스라는 마을의 우편 소인이 찍혀 있었다.[24] 이로 인해 조사관들은 잘못된 마을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나, 당연히 케마텐 마을 근처에서 그들이 심문한 의사들 중 누구도 케르스틴이라는 여자를 기억하지 못했고 경찰은 점점 더 당황하게 되었다.
4월 21일 월요일 아침,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주도 장크트푈텐 교구의 종파 담당관인 만프레트 볼파르트는 즉시 암슈테텐 경찰 본부로 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경찰은 그에게 엘리자베스의 첫 번째 편지와 케르스틴이 옮겨졌다는 메모를 보여주었다. 볼파르트는 서예처럼 보이는 필체로 쓰인 파란색 글자를 살펴보았는데, 그 글자들이 이상하게 매끄럽고, 구성이 좋고, 그다지 진정성이 없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볼파르트는 편지가 받아써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결론은 사이비 종파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 결론은 엘리자베트에게는 24년이나 늦은 것이었다.
요제프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4월 22일, 사건이 장기화됨에 따라 경찰은 솅겐지역으로까지 수사범위를 확대했다.# 그때까지 요제프는 꾸준히 "절망적인 아버지"로 묘사되어 왔지만, 지하감옥에 있는 엘리자베트도 "의사들이 케르스틴의 어머니를 수색하고 있고, 이것은 그 소녀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보도하는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엘리자베트는 요제프에게 자신을 병원으로 갈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4월 26일 토요일, 요제프는 그의 아내 로즈마리와 다른 아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 엘리자베트, 슈테판, 펠릭스를 지하 감옥에서 데리고 나왔다. 저녁 8시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깡마르고 늙은 여자가 접수 데스크에 서서 "저는 케르스틴의 어머니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요제프는 병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병원에서 의심스러운 사람이 케르스틴을 방문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경찰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 두 사람 모두 경찰 본부로 압송되어 일단 구속한 뒤 각각 격리한 채로 추궁한 끝에 엘리자베트로부터 요제프를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 줄 것과 자신과 아이들이 보호받을 것을 조건으로 요제프가 친딸을 감금하고 무려 31년간이나 성폭행을 저질러 왔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엘리자베트는 단 2시간 만에 24년간의 포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전 12시 15분, 경찰이 3페이지 분량의 심문록을 다 작성했을 때, 그들은 이 사건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요제프는 아내에게 24년 만에 딸이 돌아왔다고 되도 않는 구라를 쳤지만 이미 수사에 들어간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경찰은 요제프의 집을 꼼꼼히 수색하여 지하실을 발견했다. 이 공간에 대해 요제프는 당연히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결국 2008년 4월 29일, 지하실 아이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 요제프와 딸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임이 밝혀졌다.# 근친상간임이 확실했고 이에 따라 경찰은 다시 요제프에게 이 사실을 근거로 강하게 추궁했으며 요제프가 결국 모든 걸 자백하여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학창시절 사진과 목격담으로 재구성된 탈출 직후의 모습이다. 엘리자베트는 24년간 햇빛을 못 보고 지냈기 때문에 피부가 창백했고 백발에 밀랍인형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26] 엘리자베트의 생애 8,516일 동안 해가 뜸과 짐은 인공 조명을 켜고 끄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창문이 없으니 하루를 다음 날이나 전날이나 구분할 수 없었고, 시간의 흐름은 아이들이 나이가 들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일시적인 삶의 특성에 의해서만 알아볼 수 있었다. 해방 당일, 그녀의 머리카락은 완전히 하얗게 변해있었다.[27] 그리고 엘리자베트의 입에는 썩은 치아 3개만 남았다고 한다.#
요제프가 엘리자베트에게서 얻은 6명의 자식 중 중 요제프의 양자로 위장되어 밖에서 길러진 리사, 모니카, 알렉산더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평범하게 성장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감금당하기 전에 이미 18세였기 때문에 바깥 세상에 대한 기억이 있어 풀려난 후 곧 사회에 적응했다.
반면 엘리자베트와 감금되었던 케르스틴, 슈테판, 필릭스 세 아이는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으며 그저 지하실에 설치되었던 텔레비전, 비디오 등으로만 세상을 접해 왔던 슈테판과 필릭스는 처음 보는 바깥 세상과 햇빛에 감동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언어 능력으로 자신들끼리 신이 나서 대화를 나누었고 필릭스는 '바깥에 나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9년 요제프가 재판을 받고 수감된 뒤 엘리자베트와 여섯 명의 아이들은 오스트리아 북부 인구 1700명의 미테르키르헨[28]으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함께 살게 되었으며 프리츨이 기른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이 거짓말이고 자신들의 아버지는 바로 할아버지이기도 한 요제프며 어머니와 지하에 감금되어 있었던 다른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비극적인 점은 모든 아이들이 오랜 감금 생활로 치아 상실, 산소부족, 비타민D 결핍으로 인해 지적장애 등의 다양한 신체,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29] 평생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었던 아이들은 더했는데 치과를 비롯한 병원에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보니 맏이인 커스틴은 발견 시점에 이미 치아 대부분을 잃은 상태였고 지하실의 천장이 낮았기 때문에 세 아이들은 자세도 심하게 굽어 버렸으며 스테판은 시력과 청력의 손상 가능성도 제기됐다.
거기다 이들은 TV를 통해서만 바깥 세상을 접해 왔던 탓에 현실 적응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필릭스는 바깥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으며 아이들의 어휘력도 동년배에 비해 현저히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 엘리자베트가 읽기와 쓰기를 조금 가르치기는 했지만 책 한 권 없는 지하실에서 나고 자랐으며 엘리자베트 자신이 11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데다 18세 때부터는 아예 지하실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세 아이 모두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2008년 5월 14일 오스트리아 암스테텐의 한 상점 창문 뒤에 24년 동안 감금당한 엘리자베트와 아이들이 만든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우리 가족 모두는 이 기회를 빌려 우리의 운명에 대한 여러분의 동정심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연민은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며,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5. 범인 요제프 프리츨의 삶
왼쪽이 부인 로즈마리, 오른쪽이 요제프 본인.
빨간 원 안의 인물이 1956년 6월 당시 16세의 요제프 프리츨##[30]
요제프 프리츨은 1935년 4월 9일, 42세의 어머니에게서 외동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이혼한 홀어머니의 갖은 학대에 시달렸으며[31] 이 과정에서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성욕과 결합된 형태의 성도착증[32]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단, 상술했다시피 페도필리아는 아니었다.
그는 전기 기술자로서 견습을 받는 동안 다양한 전기 제품의 제조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으며, 훗날 지하실 던전의 잠금 장치 입구 문의 전기 설치에 이를 응용할 수 있었다. 요제프 프리츨은 1969년에 콘크리트 회사에서 공장 관리자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그는 콘크리트 기술을 배웠고 수년 후 지하실 던전의 콘크리트 문을 제조하는 데 그 기술을 적용했다. 요제프 프리츨은 18세 또는 19세쯤에 미래의 아내 로즈마리를 만나 1956년에 결혼했다. 당시 로즈마리는 17세였다. 이 결혼으로 7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요제프의 아들이자 엘리자베트의 오빠인 하랄트는 그를 심리적 테러를 자행한 가장으로 묘사했으며, 부인 로즈마리와 형제 로즈마리 주니어, 엘리자베트를 손바닥과 주먹으로 반복해서 때리고, 발로 차고, 수년간 일상생활 속에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요제프 프리츨은 자신이 강간범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자신의 사악한 면을 인식한다.
법의학적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요제프는 포괄적이고 심각한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인증될 것이라고 심리학 전문가 아델하이드 카스트너가 말했다. 그녀는 보고서에서 그의 행동의 이유를 그의 어린 시절에 있었다면서 그의 수년간의 굴욕, 두려움, 고립이 권력 행사로 보상받았다고 말하며 심각한 정서적 결핍에 대해 언급했다.
정신 질환, 정신 지체, 심각하거나 동등한 의식 장애 등 형사 책임을 지지 않는 법적 근거는 배제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이고 집중적으로 내부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야 한다. 원인을 찾으려면 피고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가족 사정은 조부모 세대까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혼외정사로 태어난 그의 어머니에게 그는 부담이었고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족 중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일에 익숙했다. 요제프와 그의 부모가 있는 집의 분위기는 구타, 두려움, 그리고 동시에 그가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인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으로 특징지어졌다. 요제프의 어머니 마리아 프리츨은 그에게 안정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는 아무런 기본적인 신뢰도 경험하지 못했다. 카스트너는 이런 감정을 경험할 때에만 사랑하는 능력이 발달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감정적 문맹자"가 된다고 말했다. 요제프는 자기만의 사람을 원했다.
두려움에 찬 삶은 장기적으로 참을 수 없다. 반대 전략은 감정을 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영구적으로 억제될 수 없다. 하지만 요제프는 자신이 똑똑하고, 뭔가 성공할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춘기 때 전환점이 찾아왔는데, 더 이상 어머니로부터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상황을 바꾸었다. 권력에 대한 욕구가 커졌고, 동시에 누군가를 독점하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더 이상 그 사람을 잃을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엘리자베트가 그와 가장 비슷했기 때문에 그는 의도적으로 그녀를 희생자로 선택했다. 카스트너는 요제프의 목적은 그녀의 의지를 꺾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요제프는 자신이 잘못하고 과실이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인간 공존의 법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쾌한 것들을 간단히 차단하는 능력이 있었다. "지하실을 나와 문을 닫는 순간, 그 문은 사라졌다. 그는 아래층의 삶에 얽매이지 않고 위층에서 삶을 살 기회를 얻었다." 카스트너는 요제프가 잠들기 직전과 깨어난 직후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기분이 나빴다."
카스트너는 화산에 대해 말했다. 표면 아래에서 지배와 통제에 대한 욕구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요제프는 자신의 사악한 면을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가 강간범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그는 자신을 잘 통제할 수 있지만, 통제력을 늦추면 돌파구가 생긴다고 정신과 의사는 그녀에게 그가 저지른 강간 사건을 상기시켰다. 요제프는 가족에게는 강력해야 한다는 욕구를 충족시켰지만 성생활에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환상은 말하자면 눈사태와 같이 생겨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뭔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고, 언제든 끊을 수 있다는 메커니즘의 예로, 카스트너는 흡연자들이 중독과 싸우는 것을 예로 들었다. 말하자면 그는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있는 셈이다.
딸 엘리자베트는 그녀의 자식을 통해 그와 인연을 맺었다. 요제프에게 환상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고, 더 이상 모순도, 위험도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온전히 혼자가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게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더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엘리자베트는 그에게 더욱 얽매이게 되고, 동시에 다른 남자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카스트너는 요제프가 "치료가 성공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칙적으로는 자신의 성격 장애에 대처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한 치료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그에게서 범죄 행위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야 한다고 카스트너는 강조했다. "그의 권력에 대한 주장을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요제프의 기소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정신과 보고서에 따르면 요제프 프리츨은 심각한 복합적 인격 장애와 성적 취향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고인은 범죄 기간 전체에 걸쳐 형법 제11조의 초기 기준을 충족하는 어떠한 장애나 질병도 없었으므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건강을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신과 보고서에 따르면, 언급된 장애는 유형과 범위 면에서 형법 제21조의 의미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정신적, 영적 비정상성에 해당한다. 요제프 프리츨이 지속적인 성격적 편차로 인해 앞으로도 다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를 저지를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있으므로, 형법 제21조 제2항의 조건이 적용된다(ON 143 AS 259).[33]
성폭행 피해자는 어린 시절의 친딸을 빼면 모두 성인이고 그 친딸은 성인이 된 뒤에도 성폭행을 당했으며 주변 사람들도 프리츨이 여자에게 관심이 많다고는 했지만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증언은 하지 않았다.
또 이러한 성도착증을 내면에 지닌 그는 징역 1년 6개월을 복역한 강간 전과가 있었으나 오스트리아에서는 15년 이하의 징역형 전과는 삭제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프리츨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업을 계속했고 이 과정에서 친딸이 낳은 자식들을 입양할 만큼의 정당성까지도 확보할 수 있었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에게 입양을 허가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지만 전과가 삭제되어 확인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범죄자의 제2의 인생을 생각해서 전과 기록은 삭제하더라도 오스트리아 사회는 최소한 프리츨이 성범죄를 저지른 뒤 재범하지 않도록 정신적인 치료 및 관리를 했어야 했다. 이런 사건에 대한 대중의 경계가 심각해지자 세계 각국은 성범죄자의 신상을 장기간 공개하고 거주지 제한, 전자발찌 착용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이러한 사건의 전말과 발단에 대한 일화는 어린시절의 학대가 얼마나 끔찍한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낳는지 보여준다.
6. 24년간 범행을 지속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
요제프는 딸을 감금하기 위해 굉장히 치밀한 계획을 짰는데 당시 냉전기 방공호 제작이 유행했던 탓에 사람들이 요제프가 인부를 불러 집에 몇달씩 지하감옥을 만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전기 기술자로서의 지식을 활용하여 토굴을 만들고 출입구를 자신 외에는 드나들 수 없도록 개조했다. 따라서 가족들은 물론 이웃들도 요제프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으며 그의 연기가 너무나 철저하여 경찰조차도 꼬리를 잡기 어려울 지경이었다.물론 이웃들이 아예 아무 의심조차 없이 요제프의 폭력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진 않았다. 요제프는 평소에도 가족들에게 가혹했고, 혹독한 구타와 학대, 협박에 사실상 노예화된 가족들은 요제프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엘리자베트와 다른 가족들의 차이는 강간을 당했다와 당하지 않았다의 정도 였을 뿐, 가족들 역시 요제프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고, 이웃들도 그의 성질을 잘 알았기에 '또 폭행하는구나' 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무시했다. 한마디로 아무리 남이라지만 허구헌날 폭행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웃들 역시도 비난을 면치 못할 일이다.
한편 엘리자베트는 탈출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 요제프가 출입구를 철저히 통제한 데다 평소 전기를 끊거나 식료품을 갖다주지 않는 일이 허다했으며 수시로 구타를 일삼았고 더욱이 그녀가 낳은 자식들의 생명줄을 들고 협박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완전히 아버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엘리자베트가 아이들을 출산했으니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혼자가 아니게 된 후에는 함께 저항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이들 모두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34]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지하실에서 살아 온 세 아이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미성숙했다. 안타깝게도 요제프의 양자로 처리되어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 온 나머지 세 아이도 상태가 좋다고 보기 힘들었다.
요제프의 부인 로즈마리는 딸이 감금되기 전인 11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요제프의 협박으로 엘리자베트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엘리자베트는 어머니 로즈마리가 어린시절부터 지속된 요제프의 학대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윗층에서 살던 아이들에게 자신을 할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부르게 한 것 때문에 그녀와 사이가 멀어졌다.# 그러나 로즈마리가 기른 3명의 아이들이 린츠의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게 된 그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면접교섭을 허락했다.
7. 결과
당시 재판 관련 인물들 소개이 사건이 알려지자 당연히 오스트리아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범죄가 잊을 만하면 벌어졌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성욕에 눈이 멀어 사람이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친딸을 성노예화하고 24년간 사육한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요제프는 다음과 같이 강간치사 혐의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35] 정신과 치료감호소로 보내져 계속 복역 중이다.
- 아동 성범죄
- 학대
- 과실치사 - 요제프는 태어난 직후 죽은 아이에 대해 관리 소홀로 죽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반박할 확실한 증거가 없어 과실치사만 적용되었다. 엘리자베트의 증언도 이 부분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요제프의 변호사 루돌프 마이어는 "그래도 크리스마스엔 트리를 함께 만들었다", "요제프는 괴물이 아니며 만약 괴물이면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뒀을 것이고 그는 지하실의 아이들을 돌보며 교과서를 가져다주고 명절과 생일을 함께 축하했다. 그는 단지 지하실에 제2의 가족을 만들고 싶어했다#"등의 궤변을 내세우면서 요제프가 감옥에 가선 안 된다고 그를 변호하다가 요제프와 함께 살해협박을 받기도 했다.#
안 그래도 당시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등 납치, 감금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감금의 나라'로 찍힌 상황에서 경악할 만한 사건이 또 드러나면서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국가 이미지가 망가졌다고 한탄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오스트리아인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요제프 프리츨이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오스트리아에서 또 일어나기도 했다.
8. 사건이 일어난 건물과 요제프의 근황
8.1. 프리츨 호러 하우스
1890년에 건설되어 1959년에 요제프 프리츨이 이 집을 구매했다.2008년 8월 21일, 세입자들이 모두 떠나고 사건이 일어난 집은 텅텅 비어버렸다.#
2011년 2월 15일, 겨울에는 이 집의 8개의 지하실이 비행청소년들의 파티현장이 된다는 소문이 떠돌고 영국의 황색언론 데일리 메일에서 그것이 진실이라는 보도를 내었지만 현지 경찰서 관계자와 요제프의 파산 관리인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일축했다.#
그런데 다음날, 이에 대한 보고서가 공개되어 암슈테텐 경찰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파티현장의 사진도 공개되었다.#
이후 이 집은 지하실 문을 용접해서 접근을 막아버렸고 2013년 6월에 외부에서 지하실 천장을 뚫어 콘크리트를 주입하여 영구적으로 봉쇄하기 전까지 반달리즘의 대상이 되었다.1층 현관이 그래피티로 얼룩지고 유리가 깨진 모습, 1층 현관을 봉쇄한 모습, 콘크리트 주입 현장 사진
2017년 4월 15일, 이 집은 부동산 처분업자로부터 지역의 사업가 부부가 16만 유로에 구입하여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사건 10년 후인 2018년, 리모델링하여 아파트먼트로 개조된 후의 모습과 세입자들의 사진#
8.2. 요제프 프리츨
요제프는 엘리자베트의 탈출 당시 계획되어 있었던 부동산 프로젝트의 미지급 채무# 등 350만 유로의 빚을 갚기 위해 경찰 심문 기록을 영국의 황색언론에 판매하려다 실패했다#.요제프 프리츨은 과거 수도원이었던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에 있는 가르스텐 교도소의 정신질환 범죄자를 위한 특별 구역에서 지내고 있다. 2012년에는 면회를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55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 로즈마리와 이혼하여 그녀가 연금을 수령할 권리를 박탈했다. 로즈마리는 남편의 노예나 다름없었지만 딸에게 저질러진 만행까지는 참지 않아 남편과 연을 끊어버린 것이다.#
2019년 3월 오스트리아 국영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고령의 나이[36]에 오랜 수감 생활로 요제프의 건강 상태가 심히 나빠지고 있으며 치매에 걸려 정신도 오락가락 하다고 한다. 교도소 측에서는 그를 하루종일 자신의 호실 안에서만 지내도록 조치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이런 죄수는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범죄를 저질러서 전 세계적인 사회적 매장감이 되었고 공격에 대한 죄책감을 일절 가질 필요가 없어 다른 죄수의 학대 1순위 타겟이 되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치매가 심해져 교도소 내 요양병원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이 되어 수감된 지 15년을 넘기자 오스트리아 법에 따라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월이 되자마자 요제프 프리츨의 변호인이 이미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없는 치매 환자가 된 프리츨이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며 가석방을 신청하였다.
변호인은 일반 구치소로의 전환과 요양원 배치를 요청했으나, 2024년 3월, 비엔나 고등법원(OLG)은 요제프 프리츨의 가석방을 기각했다. 조건부 전환 심리에 공인된 치매 진단서 등의 정신과 보고서가 제출됐으나, 추가적인 의료 문서가 필요하다는 사유로 가석방이 기각됐다. 변호사 아스트리드 바그너(Astrid Wagner)는 88세의 프리츨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no longer dangerous)다며, 기각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전해졌다. 또한 다음 가석방 심리에 대해 변호사는 "프리츨 씨는 기다릴 수 있고, 100% 석방될 것이다."(Mr. Fritzl can wait. He is one hundred percent released from prison.)라고 자신했다.#
9. 사건 사고
2008년 당시 이 사건에 대해 토론하는 포럼 사이트가 만들어졌는데, 독일 베스터발트 아스바흐에 거주하는 한 장애인 남성이 이 포럼에 자신도 요제프 프리츨처럼 납치감금을 하겠다고 예고글을 썼다고 한다. 연방 경찰은 당일 그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컴퓨터를 압수했다고 한다.#2008년 당시 인터넷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의사와 오스트리아 경찰이 제발 그들의 사생활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 기자와 파파라치들이 탈출 직후 정신병원의 안전가옥에 묵고 있는 엘리자베트 가족의 사진[37]을 찍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색언론의 기자들이 병원에 침입해 접근시도를 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하자, 대테러부대가 병원 보안을 위해 투입되었다.[38] 결국 그녀의 변호사는 언론의 기대와 다르게 그녀의 TV 인터뷰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39] 이 기레기들의 행패로 인해 엘리자베트의 마음의 문이 닫히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24년간 지하실 안에서 있었던 자세한 일들이 거의 유출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40]. 영국의 황색언론 더 선의 파파라치가 2009년 2월 9일에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X[41]에 잠입하여 그녀와 딸 리사를 촬영#[42]하고 그녀의 집 부엌에 쳐들어가 엘리자베트에게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하고[43] 다시 정신병원에 가게 만든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엘리자베트의 모습은 언론에 공개되어있지 않다.[44]
엘리자베트와 아이들이 암슈테텐 마우어 클리닉에 있는 동안, 같은 시기에 해당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하인리히 슈마츠가 몰래 그들의 사진 1051장을 찍어서 언론에 판매하려고 했다.####[45]
2009년 요제프 프리츨의 재판을 앞두고 프리츨 슈니첼을 판매한 장크트푈텐[46]의 식당이 벌금 5천유로를 내야 한다고 판결이 내려졌다.#
이어 2013년에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프리츨의 지하실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려던 펍이 여론에 굴복하고 이름을 바꾸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10. 기타
- 4chan 유저들이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2008년에 요제프 프리츨로 밈을 만들기도 했다. 배경음악은 호주를 상징하는 노래 월칭 마틸다다.
- Encyclopedia Dramatica의 요제프 프리츨 문서. 아카이브되어있기 때문에 광고나 혐짤이 나오지 않는다. 위의 4chan 유저들이 2008년 당시에 만들었던 그의 밈이 나열되어있다.
11. 대중매체
- 영화 걸 인 더 베이스먼트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 영화 룸(영화)도 이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
-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my eyes deceive라는 게임도 있다.
12. 유사한 사건
-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프리츨 사건과 동일한 오스트리아에서 2006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탈출 2주만에 언론에서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바람에 사생활 침해를 당해도 오스트리아 법원에서 공인으로 인정받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에 나타샤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언론의 요청을 거절하고 사생활 보호에 힘쓴 엘리자베스 측과 달리 나타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한국어로 검색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튜브에서 최근까지 언론 인터뷰를 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언론 대응 용으로 2007년에 자신의 인터넷 웹사이트도 개설했고, 자서전 3096일도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있으며, 감금 생활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 제이시 두가드 감금사건
- 니가타 소녀 감금사건
- 한국에서 1985년도부터 딸을 강간하여 태어난 손녀도 강간한 70대 남성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1] 15년 후에 가석방이 주어지는 종신형이었다. 오스트리아에는 사형이 없다.[2] 이 가족관계도에서 보다시피 언니와 남동생은 부모와 이름이 같았다.
[3] 원본사진
[4] 엘리자베트가 탈출하던 2008년과는 달리 1980년대 오스트리아는 가정의 일은 가정에서 해결해야된다는 분위기였다.[5] 남동생 요제프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로즈마리와 이름이 같다[6] 그의 시누이 크리스틴 R은 요제프는 '검은색을 10배 희게 만들어도 무조건 그것은 검은색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성격이 꽉 막혔다고 전했다.[7] 다만 세입자의 증언 문단에서 보듯이, 1층에 살던 세입자들이 지하감옥에서 나는 소음을 들었으므로 빌트지의 구조도가 정확할 것이다.[8] 요제프는 건축 허가를 받을 때 지하감옥 공간을 숨겨두었고, 이것은 1999년에 소방 점검을 받을 때 지하감옥이 발각되지 않는 원인이 되었다.[9] 이때 엘리자베트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영혼이 산산조각 났다고 하며, 처음으로 자살충동에 시달렸다.#[10] 2009년 3월 당시 환율이 1파운드에 2200원이니, 약 110억원이다. 기사의 출처가 영국언론이라 단위가 유로가 아니다[이하모든증언출처] Was Fritzl vorgeworfen wirdJosef Fritzl trial: 'She spent the first five years entirely alone. He hardly ever spoke to her', Fritzl's daughter's diary reveals her hell, Fritzl trial puts spotlight on Austria but grisly case leaves long shadow, My Life in the Dungeon, Austrian man threatened to gas family, Daughter tells of Fritzl first sexual advances at age 11, Fritzl began plans for dungeon in 1978, Neue Verhöre im Inzestfall von Amstetten. Josef Fritzl trial: court hears daughter's account of cellar ordealAustrian cellar trial: Josef Fritzl pleads guilty to rape of daughter[12] 현장조사결과, 실제로 가스주입 기구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3] 이는 요제프가 피임을 하지 않고 엘리자베트가 계속 임신하도록 내버려 둔 원인이 되었다. 요제프의 변호사 루돌프 마이어는 이를 두고 "요제프는 지하실에 제2의 가족을 만들고 싶어했다" 등의 주장을 펼치다가 요제프와 함께 살해협박을 받았다.[14] 엘리자베트에게 지하실에서의 출산은 공포였지만 이는 감금 직후 5년간 자살을 고민하던 그녀에게 살아갈 목적을 제공했다.[15] 1996년 4월 28일 쌍둥이 알렉산더와 출생, 미카엘은 태어났을때 목에 탯줄이 두번 감겨있었고, 머리에 압박 상처가 있어 3일도 안되어 1996년 5월 1일 오후 12시 15분경 사망했다.[16] 엘리자베트의 탈출 이후 경찰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여덟 개의 전자 문을 뚫고 들어가야 했는데, 지하실에 산소가 너무 부족해서 수사 중에 산소통을 사용해야 했다.[17]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자식 문의 잠금이 풀린다고 재판장에서 변명한 것[18] 특히 요제프가 휴가를 가버렸을 때 음식 공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19] 엘리자베트는 18세에 감금되었기 때문에 독일어를 할 줄 알지만, 그녀의 아이들은 동물처럼 으르렁거리며 말하는 법을 배웠다.#[20] 엘리자베트의 형제자매 중 하랄트는 2009년 재판 증언 당시 46세였으므로 이 가계도에서 그의 나이는 34세가 아니라 45세다.#[21] 엘리자베트는 4월 26일에 완전히 탈출하기까지 일주일간 지하실에서 24년만에 햇빛을 보게 된 것에 관한 일기를 썼다.[22] 이때 엘리자베트는 병원에서 2km 떨어진 곳의 창문 없는 지하감옥 침대에서 그 뉴스를 보고 있었다.[23] 후에, 경찰은 요제프 본인이 이 모든 일을 끝내려고 생각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2008년 1월에 받아쓰게 한 편지에서는 "아들 필릭스가 2007년 9월에 심하게 아팠고, 간질 발작과 마비 증상을 보였지만 회복되었다. 케르스틴이 혈액 순환 장애와 찌르는 듯한 가슴 통증 등 건강 문제도 있었다. 엘리자베트, 슈테판, 필릭스가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어쩌면 리사와 케르스틴과 함께 생일을 축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활동과 이동성이 제한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와 아이들의 침 샘플을 채취해 친자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압박감도 커졌다."라고 수석 연구원인 에츠는 말했다.[24] 요제프는 엘리자베트에게 거짓 편지를 받아쓰게 하고, 아내 로즈마리에게 이 편지를 부치기 위해 차를 타고 수 킬로미터를 운전하곤 했다.#[25] 왼쪽은 15살에 학교 단체사진에 찍힌 것이다.
[26] 그녀의 정신과 의사 하이디 카스트너영상가 그녀의 모습이라고 떠도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27] 다만 TV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송출되는 뉴스나 일기예보로 오늘 날짜와 바깥 세상을 볼 수 있었다.[28] 원래는 오빠 하랄트 프리츨이 남에게 세를 주기 위해 비워둔 집이었다.[29] 근친상간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근친상간으로 인한 유전적 변형 및 문제 등은 단 한 세대만에 이루어지진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주걱턱은 근친으로 인한 세대가 대를 이어갈수록 심해진 것이지 단 한 세대만에 심해지지는 않았다. 참고 기사 친족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서 유전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기정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피해자인 아이들에 대한 2차 가해다. 아이들은 장시간 빛을 보지 못하고 사회화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제외하면 유전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타임즈 기사에서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상황을 우려할 뿐 현재는 이상이 없음을 밝혔다.[30] 단체사진이 포함된 welt의 기사에서는 엘리자베트가 (2008년) 5월 26일에 언론 인터뷰를 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변호사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전했다.[31] 어머니는 (문서 속 사건 4년 전인) 1980년 사망했는데, 요제프는 어머니가 늙고 힘이 없어지자 그녀를 창문을 벽돌로 막은 다락방에 최대 20년간 가둬 죽을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뒀다고 한다. #[32] 이런 성향을 도미넌트(Dominant)라고 한다. BDSM의 D가 이 단어의 약자일 정도로 에세머들 사이에서는 메이저한 성향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에세머들은 반대 성향, 즉 지배받는 것을 원하는 서브미시브(Submissive) 성향과 사전 합의를 하고 즐기지, 이런 식으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33] Aus dem psychiatrischen Gutachten geht hervor, dass sich bei Josef FRITZL auf psychiatrischem Gebiet eine schwere kombinierte Persönlichkeitsstörung und eine Störung der Sexualpräferenz feststellen lassen. Bei dem Angeklagten lägen für den gesamten Tatzeitraum keine Störungen oder Erkrankungen vor, die die Eingangsmerkmale des §11 StGB erfüllen würden, sodass von einer durchgängig erhaltenen Zurechnungsfähigkeit auszugehen ist. Laut dem psychiatrischen Gutachten erreichen die angeführten Störungen nach Art und Ausmaß die Dimension einer höhergradigen seelisch geistigen Abartigkeit im Sinne des § 21 StGB. Es stünde komplett zu befürchten, dass Josef FRITZL auch in Zukunft auf Basis seiner überdauernden Persönlichkeitsdeviation wieder Taten mit schweren Folgen begehen werde, sodass die Bedingungen des § 21 Abs. 2 StGB zutreffen (ON 143 AS 259).#[34] 사실 근친상간으로 인한 유전질환이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으나 근거가 없는 얘기다. 근친상간으로 인한 유전적 변형 및 문제 등은 단 한 세대만에 이루어지진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주걱턱은 근친혼이 몇 세대에 걸쳐 거듭되면서 대를 이어갈수록 심해진 것이지 단 한 세대만에 심해지지는 않았다. 즉 실제로는 앞서 언급된 커스틴처럼 영양실조와 열악한 환경이 문제였다. 참고 연구 자료(워싱턴대학 연구팀이 유전자상담저널에 게재한 논문. 미국 유전상담가학회, 보건성 후원), 참고 기사[35] 사형이 없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법정최고형이다.[36] 2019년 3월 기준으로 83세였다.[37] 황색언론에서 100만유로를 제안했다고 한다[38] 이때 투입된 AST 보안국 소속의, 엘리자베트보다 23살 어린 경호원 토마스 바그너(Thomas Wagner)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2019년에 결혼했다는 찌라시가 나돌기도 한다. 다만 기사에서 나머지 정보는 실제와 일치한다. 엘리자베트와 케르스틴, 슈테판, 필릭스는 병원에서 나온 직후 미테르키르헨으로 이주했고, 필릭스가 거기서 맥도날드를 처음 갔다고 했는데, 그 근방에 맥도날드는 페르그에 있었고, 병원에서 엘리자베트 가족의 사진을 1천장 넘게 찍었다고 주장한 하인리히 슈마츠가 그들 가족이 페르그로 갔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미용사는 그녀의 흰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다음 현대적인 컷으로 조정했다.": 후술할 더 선의 파파라치가 찍은 그녀의 사진에서 엘리자베트는 2008년 4월 당시의 목격담과 달리 금발의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39] 역시 오스트리아에서, 2년 전인 2006년에 탈출한 나타샤 캄푸쉬도 같은 일을 겪었다. 그녀는 인터뷰 요청을 받아주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고 탈출 2주만에 인터뷰를 받아주었지만 언론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2007년에 자신의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각종 풍문에 대응하고 3096일이라는 자서전까지 내야 했다.[40] 마찬가지로 엘리자베트의 11시간 동안 녹화된 법정 증언(아버지를 다시는 만나지 않는 조건으로 증언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요제프는 엘리자베트의 증언 영상을 보면서 재판에 임했다.#)과 지하실 일기도 언론에 매우 조금 흘려졌을 뿐이다.[41] 인구 약 1700명의 미테르키르헨이라는 작은 마을이다.#오빠 하랄트 프리츨의 현지 축구단 정보[42]
[43] 현지 경찰이 그들을 찾아나섰지만 이미 영국으로 떠난 후였다.[44] 2024년의 취재에 따르면 여전히 오빠 하랄트가 소개한 미테르키르헨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디가드 남편은 앞서 언급한 토마스 바그너를 가리키는 말이다.[45] 그는 사기 전과가 있으므로 1천장 넘게 찍었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46] 요제프가 재판을 받은 법원이 위치해 있는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주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