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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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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대
2.1. 마리브 댐의 붕괴
3. 중세4. 현대5. 관련 문서

1. 개요

예멘 역사는 아라비아 반도 역사에서 독특한 존재인데, 불모지가 대부분인 아라비아 반도 다른 지역과 다르게 농업이 번창했던 지역인데다가 아프리카의 뿔 지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라비아 반도의 나머지 지역과는 사막지대로 인해 고립되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 지역은 다른 아라비아 지역과는 달리 동아프리카에 가까운 문화가 자리잡았다. 이웃 오만이 순니파 대신에 소수종파 이바디파가 번창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멘에서는 시아파 계열 소수종파 자이드파가 자리잡았다.

2.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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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300년 경 여러 군장 국가들이 존재했으며 기원전 8세기 무렵 시바 왕국이 예멘 내 여러 세력을 통일하고 아프리카의 뿔 일대로 진출하였다. 예멘에서 기원한 사바 왕국은 고대 악숨 왕국의 기원이 되며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해상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이후에 유대교를 국교로 하는 힘야르 왕국이 세워지고 한동안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에 정복되는 등의 역사를 겪었다

2.1. 마리브 댐의 붕괴

파일:이슬람 이전 예멘.jpg
마리브 댐의 80년대 모습. 현재 마리브가 예멘 내전의 격전지가 되며 유적의 안위가 우려되고 있다

삿드 마립 (سـدّ مَـأرِب), 즉 마리브 댐은 기원전 8세기, 마리브를 수도로 삼았던 사바 왕국에 의해 건설되었다. 예멘 지역은 옛부터 몬순 기간에 내리는 물을 저장하여 농경에 활용하기 위한 댐 건설이 활발하였는데, 그중 와디 아다나를 막고 있는 마리브 댐이 가장 큰 규모였다. 너비 580m, 높이 4m를 자랑하는 마리브 댐의 위용은 고대 7대 불가사의에 견줄만 하였고,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 건설 이후로도 댐은 수차례 보수되었다. 기원전 500년 경에는 높이가 7m로 증축되었고, 북쪽면 뿐만 아니라 남쪽면에도 관개 수로가 놓였다. 하지만 기원전 275년 사바 왕국의 멸망 후 댐에 대한 관리는 소홀해졌고, 결국 기원전 145년에 댐은 붕괴하였다. 이로써 발생한 홍수는 일대를 초토화시켰고, 현지 아랍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아라비아 반도 북부와 동부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본래 예멘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시리아 남부나 이라크 서부까지 드넓게 분포하게 되었다.

기원전 115년, 마리브를 지배하게 된 힘야르 왕국은 댐을 재건하였다. 다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에는 14m 높이로 세워졌고, 수로를 여러개 만들어 물의 압력을 분산시켰다. 이러한 대역사는 조금씩 진행되어 4세기가 지난 서기 325년에야 완성된다. 450년에도 보수가 있었고, 543년에는 악숨 왕국의 총독 아브라하가 보수를 맡았다. 하지만 이슬람 시대 이전 예멘의 마지막 토착 국가인 힘야르 왕국이 525년 멸망한 후 다시 댐의 유지 보수가 소홀해졌다. 557년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댐은 방치되었고, 전설에 의하면 575년에 마리브 댐은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붕괴하였다. 이는 반세기 이후 쓰여진 쿠란에도 아림의 홍수 (سَـيْـل الـعَـرِم)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일련의 홍수로 인해 아랍인들의 외부 이주는 더욱 활발해졌고, 그로 인해 반세기 후에 벌어진 이슬람 정복의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가산 왕국, 라흠 왕국 역시 홍수로 인한 이주민들이 세운 국가이다.

3. 중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사나(예멘)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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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무함마드 시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예멘은 이후 4명의 칼리프와 그 뒤를 이은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9세기 무렵 시아파가 예멘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893년 시아 자이드파를 신봉하는 왕조가 건설된 것을 계기로 자이드파가 예멘에서 주요 종파로 자리매김했다.

예멘 남부의 농경민 사회는 13세기 등장한 라술 왕조의 순니파 선교 정책 이후 주로 이집트와 교류하며 순니파 이슬람에서도 샤피이파를 따르게 되었다면, 북부의 유목민들은 자이드파가 우세했다. 라술 왕조의 등장을 계기로 북예멘은 시아파 자이드파, 남예멘은 순니파를 주요 종파로 하는 사회로 각각 분리되었다. 라술 왕조의 지배자들은 몽골제국 군대가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파를 시해한 것을 계기로 자신들을 직접 칼리파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라술 왕조가 관리하는 아덴 항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육된 말을 인도나 아프리카로 수출하고 인도에서는 향신료를 동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였다. 인도에서 수입된 향신료는 다시 홍해를 거쳐 이집트 맘루크 왕조로 판매되었다.

중세 모카 항을 중심으로 에티오피아로부터 커피를 수입해서 재배, 보급한 지역이기도 하다.

1517년 이후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1548년에는 포르투갈인들이 점령하고 있던 주요 항구도시인 아덴을 오스만 제국이 정복하였다. 18세기 유럽에서 커피를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직접 재배,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모카 항구를 통해 수출되던 커피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1839년에는 아덴을 노린 영국이 남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 시대가 시작됐다.[1]

4. 현대

1918년 오스만 제국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북예멘이 먼저 예멘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북예멘은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가 많은데, 자이드파의 세습 이맘이 사실상의 왕으로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2] 또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시리아가 참여하는 아랍 연합 공화국에 준가맹했다가 1961년에 연방을 탈퇴했고, 1962년 살레에 의해서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8년간이나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축출함으로 1970년에 공화국이 확정되었다.[3]

남아라비아 연방 지도
한편 남예멘 지역은 영국 통치하에 있었지만, 수십여개의 토후국이 난립해있는 상황이었고 일부 토후국은 그 안에서도 수개, 심지어 수십개의 세력이 병립하였다.[4] 남예멘 서부 지역은 1963년에 '남아라비아 연방'이라는 토후국 연맹으로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아덴은 제외), 자료에 따라 다르나 14~31개의 토후국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남예멘 동부 '하드라마우트' 지역은 여전히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었으며, 3개의 술탄국(쿠아이티, 카시리, 마흐라)로 구성되었다. 쿠아이티 술탄국은 상당히 늦은 1881년에 건국하였으나, 14세기부터 내려오던 카시리 술탄국을 내륙으로 몰아낸 신흥 세력이었으며 가장 크고 앞선 나라였다. 쿠아이티와 카시리는 1961년에 이 지방에 대한 미국의 석유 탐사가 행해지자 연합하여 사법부를 제외한 행정을 통합. 한편 16세기에 건국된 마흐라 술탄국은 마흐라인의 나라로 소코트라 섬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영국은 마흐라 술탄을 9발의 예포로 맞이했다. 이들은 석유가 나오면 남예멘과 별도로 독립할 계획이었으나, 후술한 남예멘 독립전쟁 때문에 술탄들은 사우디로 도피했다.

수에즈 전쟁으로 아덴항이 큰 타격을 입고, 같은 토후국 연방인 아랍에미리트와는 달리 석유도 없었던터라, 1967년에 소련의 지원하에서 남예멘은 독립하여 각 토후국들을 폐지하고 공산화되었다.[5] 1970년대 국경 문제로 남북간에 무력 분쟁이 잦았으며, 1972년 전면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다행히 1달도 안 되어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나 1979년에도 전쟁이 일어났다. 한국으로 치면 6.25 전쟁이 2번이나 터진 셈.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대치 시기가 이어졌다.
그렇소. 이번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요. 우리가 이기면 통일 예멘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고, 지게 되면 당신이 개입해서 우릴 구해줘야지.

- 1979년 2월, 북예멘과 전쟁을 시작한 데 대해 소련 대사가 불만을 표시하자[6][7]

하지만 둘 다 경제적인 상황은 영 안 좋은 개도국이었던 탓에 통일해서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얘기는 많이 나왔다.[8] 결국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상호 합의하에 1990년 5월 남북 협상에 의해 무혈 통일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얼마 못 가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종교 및 각 부족끼리의 정체성이 강한 동네라 정부간의 합의안으로는 통일이되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무력 통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무혈 통일을 먼저 하고 내전을 치르게 된 역사적 과정 때문에 해외에는 가끔 무력 통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종종 보인다.[9]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1994년 7월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예멘 내전(1994년) 항목 참조. 통일 이후 직선 투표에서 다시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어 장기집권했지만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곧바로 예멘 내전이 발발하면서 북부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남부는 수니파 정부군이 장악한다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활개치는 한편,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은 남부 과도위원회를 결성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켜 나라가 셋으로 쪼개진 상황. 여기에 외세의 개입(사우디는 정부군, 이란은 후티, UAE는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을 지원.)은 덤.

이런 배경 탓인지 냉전 시절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북한학이나 통일 관련 정치외교학 쪽에서는 베트남 분단이나 독일 분단에 비해 남북 분단의 참고자료로서의 가치가 적다. 다만 통일 후 내전이나 갈등 폭발 가능성 연구에 있어서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5. 관련 문서



[1] 이때 남예멘은 1937년까지 뜬금없이 인도 제국의 일부였다. 1937년 아덴 식민지라는 이름으로 분리된다.[2] 다만 자이드파는 다른 시아파의 견해와는 달리 후세인 이후의 이맘은 '무오성'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자이드파는 우마르, 우스만 등 수니파 정통 칼리프나 그들의 가르침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자이드 파의 교리는 시아파 가운데서는 비교적 수니파에 가깝다고 평가되고 있다.[3] 이집트 군대는 이 내전에 너무 발 벗고 도와주다가 1967년 6일 전쟁 중에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뒤통수를 털리고 만다.[4] 아덴 보호령에서 영국은 1954년까지 90명 이상의 족장과 보호조약을 체결하고, 하드라마우트 보호령에는 1934년에 영국 특사가 파견되어 2천여명의 족장과 1400건의 조약을 체결했다나...[5] 한국이나 베트남 같은 다른 분단국과의 차이가 이것인데, 두 지역이 서로 다른 외세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게 아니라 먼저 북예멘이 독립하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남예멘이 독립했다는 것. 그래서 분단국이란 인식이 적었던 편이었다.[6] Andrew, Christopher, and Vasili Mitrokhin. The World Was Going Our Way: The KGB and the Battle for the Third World. New York: Basic Books, 2005. p.218[7] 당시 소련은 당연히 남예멘을 지원했지만 북예멘과도 관계 개선 노력 중이었기 때문에 뒷목을 잡았고, 남예멘은 남예멘대로 북예멘과 소련의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빅엿을 먹였다고 볼 수 있다.[8] 남예멘은 소련 등 동구권 국가의 지원으로 겨우겨우 먹고 살았고, 북예멘은 남예멘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봐야 인근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가난한 국가였다. UN에 의하면 1990년 북예멘의 1인당 GDP는 392$, 남예멘은 273$로 인접국인 사우디아라비아(7,236$)나 오만(6,377$)은 물론 해협 건너의 지부티(774$)보다도 훨씬 낮았다.#[9] 실제로 아랍권은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단일문화권내지 단일국가로 볼 여지가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단일국가로의 통일, 통합이 상상 이상으로 잘 안 되는 지역이다. 일례로 1990년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하여 쿠웨이트를 이라크에 합병시키려다 실패한 전례도 있었고, 1950년대 말 시리아와 이집트가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통합을 시도했다 실패한 전례도 있는 등 단일 민족 국가들로 통합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마다 배타적인 씨족주의, 지역주의, 종파주의 의식이 강하다. 사막 지대다보니 다른 곳보다도 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고(사막지대가 그러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착하여 생활하는 여건이 아닌데다가 이민족들이 침략하기에도 결코 쉽지않고 좋지못한 환경이기에 그런이유로 씨족 혹은 부족끼리 유목생활을하면서 가족(부족)간의 연대성이 어느 지역보다도 강해진 것이다.), 근대 이전 일대를 통일했던 왕국들조차도 이들에게 사실상의 봉건제를 실시했을 뿐이었다. 오죽하면 국명을 유력 가문 이름으로 정한 경우까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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