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6:44:19

마라시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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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잔다란 이란.png
1425년의 북부 이란. 초록색이 마라쉬 왕조의 영토이다
1. 개요2. 역사

1. 개요

페르시아어: مرعشیون
영어: Mar'ashis / Marashiyan Dynasty

중근세 이란 북부 카스피 해 일대에 세워졌던 이란계 왕조이다. 1359년부터 1596년까지 존재했으며 시아파(12이맘파)를 국교로 했던 왕조였으며, 지금의 이란 북부 및 투르크메니스탄 남서부 일부를 점유하였다. 하지만 사파비 왕조에 점령되어 멸망했다.

2. 역사

바반드 왕조를 배신하고 멸망시킨 출라브 가문의 키야 아프라시얍이 세운 아프라시얍 왕조에 대해 마잔다란 주민들은 그를 찬탈자로 여겨 반발하였다. 아프라시얍은 무함마드 혈통, 즉 사이드인 미르 부즈루크의 지지를 요구했으나 부즈루크의 추종자들 역시 반발하자 그를 감금해버렸다. 그러나 미르 부르주크는 1359년에 추종자들의 봉기로 석방되었고 이후 마잔다란 반군을 이끌고 아몰 부근에서 아프라시얍과 그의 세 아들들을 전사시켰다. 이로써 미르 부르주크는 아몰을 수도로 하는 마라쉬 왕조를 세웠고 출라브 가문을 거의 멸족시켰다. 그러나 아프라시얍의 아들 중 한 명인 이스칸다르 샤이키가 아득바득 살아남아 티무르에게 망명하였고 이는 왕조에 큰 우환이 된다. 어쨌든 아프라시얍 왕조를 제압한 뒤인 1362년에 미르 부르주크는 종교에 헌신하며 아들들 중 리다 앗 딘을 아몰, 카말 앗 딘을 사리에 봉지를 하사하였다.

그리고 미르 부르주크가 죽자 복수의 때를 기다리던 이스칸다르 샤이키가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그는 티무르를 설득해 지원을 얻어서 1393년 경에 마잔다란을 정복하였고, 아몰의 총독으로 봉해졌다. 마라쉬 가문은 트란스옥시아나로 유배되었고, 이스칸다르는 미르 부르주크의 무덤을 파괴하였다. 이에 아몰의 주민 상당수가 사리로 이주하였다. 그러다 1402년 이스칸다르는 티무르에 반기를 들었다가 패하고 이듬해 자살하였다. 1406년 티무르는 카말 앗 딘의 아들 사이드 알리 사리를 석바하여 아몰 총독으로 봉하였다. 동시에 이스칸다르의 두 아들 역시 사면하여 피루즈쿠에 봉하여 마라쉬 조를 견제하게 하였다.

1405년 티무르의 사후 마라쉬 조는 사리를 수복하며 재차 마잔다란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15세기 중반 마라쉬 조는 아몰과 사리의 왕공들끼리 내전을 벌이며 쇠퇴하였고, 내전은 1489년 사리의 왕공 지나 알 아비딘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다만 1502년 지나 알 아비딘의 동생 샴스 앗 딘이 사망한 후 장군 루스템이 찬탈하였는데, 그 역시 사망한 후 미르 부르주크의 아들로 아몰에 봉해졌던 리다 앗 딘의 고손자인 미르 알리가 아몰을 기반으로 마잔다란을 통합하였다. 한편 아프라시얍 왕조의 키야 후세인 2세는 백양 왕조의 해체를 틈타 라이와 셈난을 점령하며 이란 중부로 진출했지만 1504년 이스마일 1세에게 패하고 자살하였다. 그들과 달리 샴스 앗 딘, 루스템과 마찬가지로 미르 알리는 이스마일의 심복이 되었고 후자의 경우 찰디란 전투에 참전하여 후퇴하던 이스마일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1521년 미르 알리가 자녀 없이 사망하자 다시 알리 사리의 5대손인 압둘 카림 2세가 계승하였다.

압둘 카림 2세에게는 미르샤히와 마흐무드의 두 아들이 있었다. 그중 미르샤히가 타흐마스프 1세의 지원을 받으며 제위를 유지하였고, 그가 사망하자 마흐무드의 아들 압둘라 2세가 계승하였다. 불안정한 권력을 누리던 압둘라 2세는 딸 카이르 앗 니사 베굼 (마흐디 울야)을 타흐마스프 2세의 장남 무함마드 호다반다와 결혼시켰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바로 후일 사파비 조의 중흥을 이끈 아바스 1세이다. 한편 민심의 반발을 사던 압둘라 2세는 결국 사촌인 미르샤히의 아들 술탄 무라드 칸에 의해 폐위된 후 살해되었다. 무라드 역시 얼마간 통치하다가 사망하였고 그후 아들 미르자 칸이 계승하였다. (1575년) 그 이듬해 타흐마스프 1세가 사망하고 차남 이스마일 2세가 즉위했는데, 1577년 암살당하고 동생인 무함마드 호다반다가 계승하였다. 후자는 정치적으로 무능하였기에 왕후인 마흐디 울야가 전면에 나섰다. 그녀는 부친 압둘라 2세의 복수를 하고자 하였다.

당시 원수인 당숙 무라드가 이미 죽은 상태였기에 마흐디 울야는 그의 아들이자 자신의 6촌인 미르자 칸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다. 1579년 그녀는 미르자 칸의 폐위를 선포, 자신의 조카 미르 알리 칸을 마잔다란 총독으로 삼았다. 그후 미르자 칸에게 수도 카즈빈으로의 소환을 명령하며 미르 알리 칸에게 2만 기병을 주어 마잔다란으로 파견하였다. 소환을 거부한 미르자 칸은 격렬한 저항에도 사파비 군에 패배하자 피루자 성채로 피신해 농성하였다. 공성전이 길어지자 사파비 군은 성내로 향하는 수로를 끊었고, 미르자 칸은 목숨 보장을 대가로 항복하였다. 이때 미르 알리 칸을 비롯한 키질바시 장군들이 함께 쿠란을 걸고 맹세했는데, 카즈빈으로 압송되던 중 결국 미르자 칸은 살해되었다. 자신들의 약속을 파기한 것에 분노한 키질바시 군부는 카즈빈의 하렘으로 쳐들어가 마흐디 울야를 살해하였다. 이후 미르자 칸의 아들 미르 무라드가 마라쉬 왕위를 이었다.

비록 미르 무라드가 계승하긴 했지만 이미 1579년의 침공으로 마라쉬 조의 세력은 미약해진 후였다. 마흐디 울야의 살해 후 이어진 혼란에 1590년 무함마드 호다반다가 폐위되고 즉위한 아바스 미르자, 즉 아바스 1세는 내우외환을 극복한 다음 자신이 압둘라 2세의 외손임을 내세워 마라쉬 조를 병합하였다. (1596년) 그는 외가측 조상 미르 부르주크 영묘의 돔에 황금을 입혔다. 이로써 바반드 왕조 때부터 5세기간 이어지던 마잔다란 지역의 시아파 왕조들의 계보가[1] 끊어졌고 이후 2년뒤 옆집의 바두스판 왕조가 멸망하며 사산 왕조의 그림자도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이후 이 지역은 이란 제국에 포함되었다.


[1] 그나마 이들을 정복한 사파비 왕조도 12이맘파를 믿는 시아파 국가였기 때문에 토착 왕조가 사라진 것일 뿐 시아파의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