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20:22:07

길가메시

1.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등장인물
1.1. 수메르의 길가메시 신화
1.1.1. 길가메시와 아카1.1.2. 길가메시와 생명의 땅1.1.3. 길가메시의 죽음
1.2. 바빌론의 길가메시 신화1.3. 여담
2. 1.에서 유래한 캐릭터

1.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등장인물

메소포타미아 신화
{{{#!folding 일곱 지배신4주신(四主神)
아누(안) 엔릴(엘릴) 엔키(에아) 닌후르사그(닌후르쌍)
3천신(三天神)
이슈타르(인안나) 난나(씬) 샤마쉬(우투)
}}} ||<-4><bgcolor=white><:>
그 외 주요신
|| 아다드(이쉬쿠르) ||<-2> 두무지(탐무즈) ||<-2> 에레슈키갈(에레시키칼) || 엔킴두 ||
게슈틴안나 라하르 마르두크 네르갈 니누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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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사야 || 아눈나키 || 아사룰루두 || 아슈난 || || 엔빌룰루 || 마미/닌투 ||
남타르 닌카시 닌릴 닌순 누쿠 사르파니트
||
{{{#!folding 반신 및 영웅 길가메시 엔키두 엔메르카르
아다파 엔빌룰루
마미/닌투 남타르 루갈반다
샴하트 시두리 아트라하시스
}}} ||<-3><bgcolor=white><:>
태초의 존재들
|| 티아마트 || 키샤르 || 라흐무 ||
아프수 안샤르 라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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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 및 괴수
|| 우투쿠 || 라마수/셰두 ||<-2> 아사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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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슈투 파주주 라비수
||<-3><bgcolor=white><:>
관련 이야기
|| 길가메시 서사시 || 아트라하시스 || 아라타의 지배자 || 에누마 엘리시 ||
||
언어별 명칭
한국어 길가메시
수메르어 𒉋𒂵𒈩[1]
[빌-가-메시[2]]
영어 Gilgamesh‎[3]
중국어 번체 吉爾伽美什
중국어 간체 吉尔伽美什
일본어 ギルガメシュ[4]
ギルガメッシュ
파일:Statue_of_Gilgamesh,_U.Sydney.jpg파일:Hero_lion_Dur-Sharrukin_Louvre_AO19862.jpg
시드니 대학교 교내의 길가메시 조각상.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아시리아식 부조. 길가메시로 추정되는 남성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기원전 24세기 무렵에 정립된 길가메시 서사시주인공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수메르어 판본과 아카드어 판본으로 구별되며, 아카드어 판본은 다시 고바빌로니아 판본과 표준바빌로니아 판본으로 구별된다.

아버지는 왕 루갈반다[5], 어머니는 들소의 여신 닌순인 반신이며 신의 피가 3분의 2 섞였다고 한다. 생일 별자리는 황소자리라고 한다. 사실 이것은 그냥 생일을 따라 정해진 게 아니라, 춘분점에 맞춰 태어났다는 것을 강조하여 신성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다.[6][7]

길가메시의 길가(빌가[8])는 늙은이, 조상, 메시는 젊은이, 영웅이라는 뜻이다. 늙은이가 젊어지지 못하고 젊은이가 늙은이가 되는 운명임을 뜻하는 이름이다. 왕권은 받았으나 불멸은 그의 것이 아닌 운명이라고 한다.

1.1. 수메르의 길가메시 신화

수메르의 왕 목록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에레크(우루크) 왕국의 다섯 번째 왕이다. 수메르식 시간대에 따르면 에레크(우루크) 왕국은 대홍수 뒤에 세워진 두 번째 왕국이다. 길가메시가 등장하는 토판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9]

1.1.1. 길가메시와 아카

대홍수가 있은 뒤 최초로 세워진 나라는 키쉬(Kish) 왕국이었다. 신흥강국 에레크(우루크)의 길가메시와 오래된 강국(대홍수 직후에 하늘이 인정한 왕권을 가진 나라) 키쉬의 마지막 왕 아카[10]는 서로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키쉬의 왕 아카는 에레크(우루크)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에레크(우루크) 왕국을 포위한다. 그러나 강력한 길가메시의 저항에 부딪치고 아카가 패배하지만, 결국 두 왕국은 화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그 이후로 하늘에서 내려온 왕권이 키쉬에서 에레크(우루크)로 넘어갔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이 토판에서는 어떤 신적 존재도 등장하지 않는다.

1.1.2. 길가메시와 생명의 땅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위협은 죽음이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11] 죽음 앞에서는 자기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직시하고, 생명의 땅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을 한다. 여행 도중 길가메시는 여러번 꿈을 꾸게 되는데 한번은 꿈에서 엔키두가 나타나 생명의 땅을 찾기 위해 태양신 우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우투는 길가메시의 모험은 너무 무모하기에 도움을 줄 수 없다며 거절했지만, 완강한 요구에 밀려서 하는 수 없이 길가메시를 도와 험준한 일곱 산을 넘을 수 있도록 해준다.

길가메시는 생명의 땅에 도착해 우트나피쉬팀을 만난다. 영생을 얻은 그에게서 기어코 영생하게 해주는 무언가를 받고는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도중에 뱀이 그것을 물어갔고 길가메시는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한 채 우루크로 돌아간다.

1.1.3. 길가메시의 죽음

길가메시는 엔릴이 꿈 속에 나타나 신들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만은 명예, 부, 그리고 승리를 보장해주었다는 신탁을 듣게 된다. 이 신화의 두 번째 단락은 장례 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서 길가메시는 죽게 되며,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송가가 담겨 있다.

1.2. 바빌론의 길가메시 신화

기록된 서사시들 중에서는 가장 오랜(最古) 영웅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버전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도시국가 우루크의 왕으로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만이 인간인, 다소 기묘한 혈통을 가지고 있어 그를 대적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12]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힘에 비해 정신적으로는 덜 성숙해 있었다. 길가메시는 온 세상을 둘러보고 우루크로 돌아온 후,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다는 사실에 취해 자만하게 되었다. 그래서 허구한 날 백성들을 괴롭히고 초야권을 만들어 결혼하는 처녀의 첫날밤을 자신이 치르는 등의 악행을 일삼아 백성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천신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벌할 것을 호소하자, 이에 아누는 인간과 길가메시를 창조한 여신 아루루를 시켜 그의 짝을 만들게 하였다. 아루루가 손을 물에 넣어 씻고서 찰흙(검붉은 흙, adama)을 떼어낸 후 그것을 대초원에 뿌리자 거기에서 용감무쌍한 엔키두가 창조되었다. 이후 장성한 엔키두가 길가메시의 악행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길가메시를 찾아가 결투를 벌인 끝에 무승부로 싸움을 끝내고 친구가 되었다.[13] 자세한 내용은 길가메시 서사시 참조.

두 사람이 친구가 된 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조언을 받아들여 악한 폭군에서부터 개과천선하여 숲의 괴수 후와와(훔바바)를 물리치는 등 개념 군주로 탈바꿈한다.

막판에는 엔키두가 저주(질병)로 사망한 후에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죽음이 두려워져서인지 죽음을 피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온 세상을 여행하며 지식을 쌓았다.[14]

홍수에서 살아남아 불로불사가 된 우트나피쉬팀[15][16]을 찾아가지만, 불로불사는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는 것[17][18]을 알고 좌절한다. 대신에 늙음은 피할 수 있는 불로초를 구하지만, 그마저도 지나가던 뱀이 훔쳐먹어서 좌절해 다시 우루크로 돌아갔다고 한다.

길가메시는 비록 좌절하지만, 그와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것의 헛됨을 깨닫고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19]

1.3. 여담

  • 이 서사시에 기록된 영웅이자 왕이 성경에 나오는 지상 최초의 권력자 니므롯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영국인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고대 도시 니네베에서 발굴되어 영국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진 수천 점의 파편을 연구했으며, 이 점토판에 기록된 대홍수와 성경의 연관성을 비교 발표해 학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이끈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1862년[20],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이 서사시의 주인공이 성경에 나오는 니므롯이라 주장했는데, 당시 학자들도 그의 주장에 동의해 한동안 이 점토판의 내용을 '니므롯 서사시'라 불렀다. 하지만 바빌로니아 홍수 신화 발견을 선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연구했던 대홍수 신화는 아주 기다란 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서사시의 주인공은 자신이 주장했던 것과 달리 니므롯이 아니며,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그 서사시를 길가메시 서사시라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학계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니네베로 날아가 추가 발굴작업에 임했지만, 몸이 약했던 까닭에 36세라는 젊은 나이로 발굴현장에서 요절했다.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의 원형이라는 설이 있다. 그렇게 되면 엔키두와 함께 떠나는 모험은 헤라클레스가 겪는 열두 가지 고난의 원본이 되는 셈. 둘 다 황소를 격퇴하거나 사자를 죽이고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쓰는 등 일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 서사시는 전체 모습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원형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증명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전 세계 수메르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석학으로 추앙받는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Samuel Noah Kramer)는 저서에서 그리스, 인도, 튜턴의 영웅시대가 수메르 영웅시대와 서로 내용이나 형식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고, 그것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셋 중 가장 오래된 그리스 영웅시대보다 무려 1500년 이상 앞서는 수메르 영웅시대에서 서사시의 기원이 확립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저술했다. 수메르고고학이라는 학문을 근본부터 뒤집는 충격적인 발견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2016년 현재까지 학계에서 인정하는 가장 오래된 문명이기 때문이다.
  • 수메르 판본과 바빌로니아(셈족, 아카드어) 판본이 존재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엄밀히 말해 바빌로니아 판본이다. 수메르 영웅 서사시는 같은 인물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에피소드 별로 파편화되어 있으며 무미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것을 가지고 후대인 바빌로니아 시인들이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웅의 개성이나 감정 묘사를 집어넣어 각색한 것. 물론 바빌로니아 판본에 상응하는 대부분의 수메르 점토판이 있는 데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나 주제가 똑같기 때문에 그 기원이 수메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는 그의 저서에서 바빌로니아 판본에만 존재하는 부분이 그들만의 창작인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수메르 원전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21], 파편화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세련되게 다듬어 통합된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은 바빌로니아 인들의 혁신이요, 성취라고 추켜세웠다.


2. 1.에서 유래한 캐릭터


[1] 유니코드 6.0의 쐐기문자를 지원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 코드는 차례대로 U+1224b, U+120b5, U+12229 이다.[2] /Bil-ga-meš/[3] /ɡɪlˈɡɑːmɛʃ/[4] 촉음 'ッ'을 생략한 이 쪽 표기가 더 널리 쓰인다.[5] 서사시와 달리 수메르 역대 왕조석판에서는 길가메시의 아버지가 리라(나무위키에선 리루)라고 한다. 허나 김산해의 길가메쉬의 서사시에는 리라를 영혼으로 해석했다.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6] 서사시가 시리즈물로 정리될 당시인 바빌론-아시리아 시대에는 양자리가 아니라 황소자리춘분점에 있었다고 한다.[7] 각각의 길가메시 설화들이 별개로 발생하고 나서 수천 년쯤 구전되다가 채록되고, 채록된 뒤에도 다시 수천 년을 파편적으로만 나누어 기록되었다가, 기원전 24세기가 되어서야 바빌론에서 이걸 각색도 끼얹고서 짜맞춘다. 당연히 처음 채록된 시대 내지는 원형설화가 발생했던 시대의 춘분점은 달랐을 것이다. 아니면 별자리 개념이나 춘분점 개념 자체가 없었거나.[8] 수메르인들은 그 당시 길가메시가 아니라 빌가메시라고 불렀다.[9]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조철수, 수메르 신화(서해문집, 2003)를 볼 것.[10] 아카드라는 말의 유래가 되는 이름이다.[11] 가뭄의 신인 구갈안나, 즉 하늘의 황소를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죽인 후에 신들은 회의를 했는데 여기서 엔키두를 죽이자는 결론이 나온다[12]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반반씩 섞는 유전자 조합에서 어떻게 하면 2/3가 나오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수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신과 인간이 번갈아가며 혼혈을 반복할 경우 세대가 내려갈수록 신의 혈통이 2/3에 가까워진다고 설명할 수는 있으나, 말끔하지는 않다. 이에 반해 주류 사학계의 해답은 보다 단순하고 깔끔하다. 길가메시가 특이한 혈통을 가졌다고 설정함으로써 당대 설화의 흔해빠진 반인반신들에 비해 길가메시의 영웅성을 한층 높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또, 물론 주류는 아니지만 혼령이 된 아버지와 여신인 어머니의 교접으로 태어났기에 3분의 1, 3분의 2로 계산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수메르 신화 지식이 살짝 필요한데, 길가메시는 우르크를 지배하던 왕조의 5대손이다. 그 왕조의 시조, 다시 말해 1대였던 왕은 수메르 신화의 주요신 우투(샤마쉬)가 인간 여자와 관계해 낳은 반인반신이었다. 게다가 길가메시의 어머니 또한 하늘의 여신 닌순. 한마디로 왕조 가계도에 신이 무려 두 명이나 포함된 것이다.[13] 아카드어 버전에서는 엔키두와 길가메시의 관계가 거의 동등해 보이지만, 수메르어 버전에서는 엔키두가 하인으로 나온다.[14] 이때 저승까지 갔다는 전승도 있다.[15] 여담이지만, 우트나피쉬팀의 홍수는 엔릴이 인간과 신의 혼혈 때문에 빡쳐서 일으켰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도 길가메시가 신과 인간의 혼혈인 것을 보면 신이나 인간이나 정신 못 차린 듯. 물론 홍수설화의 다른 판본으로는 그냥 시끄럽다고 인간을 싹 쓸어버리자는 정신나간 계획들을 세웠다고 한다.[16] 엔릴은 신과 인간의 혼혈들이 늘어나면서 큰 문제를 일으키자 홍수를 일으켜 인간들을 쓸어버렸는데, 너무도 잔인한 그 광경을 하늘에서 지켜보면서 내심 엄청난 후회를 한다. 그래서 우트나피쉬팀이 인간들을 보존한 것을 알았을 때 입장을 바꿔 그 공로를 치하했고, 그동안 하찮게 여기던 인간에게는 본격적으로 문명을 전수해준다. 그리고 대홍수 이후에는 신과 인간들끼리 관계를 맺는것에 대해 암묵적인 허용을 해줬는데, 길가메시는 대홍수 이후에 태어난 반인반신이다.[17]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점토판 손상 부분)에서 나오는 주문을 다 들으면 불로불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길가메시는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다 했지만 결국 사흘을 채 못채우고 서서 잠들었다.[18] 우트나피쉬팀은 대홍수 때 자신이 세운 공로를 설명하며 영생은 신들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하자, 길가메시는 더 이상 자신의 힘만으로 영생을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에 절망해 그대로 쓰러져 7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고 설명한 책도 있다.[19] 죽은 뒤에는 사후세계의 왕이 되었다는 전승도 있다. 정확히는 하급신(lesser god)[20] 그가 언제 논문을 정리해 발표했는지는 책마다 몇 년씩 차이를 보인다. 이 문서에서는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의 저서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1862년으로 적는다.[21] 실제로 '엔키두와 우정을 쌓는 과정', '엔키두의 죽음과 매장'은 바빌로니아 판본에만 있으며, '길가메시의 죽음'은 수메르 판본에만 있다. 게다가 '길가메시, 엔키두 그리고 저승세계'같이 두 판본에 모두 존재하지만 바빌로니아 판본의 이야기 구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에피소드도 존재하기 때문에 관련된 점토판의 추가 발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