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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왕중왕 | 틀:역대 아케메네스 제국 샤한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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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 이스타크르 | |
사법 · 치안 | 불사 부대 | 사트라프 | |
교통 | 페르시아 왕도 | |
문화 | 낙쉐 로스탐 | 페르시아력 | 베히스툰 비문 | |
종교 · 신화 | 페르시아 신화 | 조로아스터교 | }}}}}}}}}}}}}}}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페르세폴리스 |
영어 | Persepolis | |
아랍어 | بيرسبوليس | |
프랑스어 | Persépolis | |
국가·위치 | 이란 파르스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79년 | |
등재기준 | (i)[1], (iii)[2], (vi)[3] | |
지정번호 | 114 |
[clearfix]
1. 개요
[clearfix]이란 남부의 파르스(페르시스) 지방에 위치한 고대 도시 유적.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2. 상세
다리우스 1세 시대인 기원전 518년부터 조영되기 시작해 계속 궁전들이 들어서고 온갖 보물들이 쌓여 부귀영화를 자랑했다. 다른 민족이 세웠다가 점령된 후 페르시아의 영토로 편입된 나머지 수도들과 달리 처음부터 페르시아인들이 세운 도시로,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상징했다. 다만 페르세폴리스는 역대 왕중왕들이 즉위식을 거행하는 의례적 수도의 역할을 했고, 제국의 실질적 수도는 최대 도시이자 행정 중심지인 바빌론이었다.기원전 330년 아케메네스 왕조를 무너뜨린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곳을 점령한 뒤 큰 화재가 일어나 파괴되었다. 이 화재가 실화인지 방화인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아리아노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쿠르티우스 루푸스 등의 고대 역사가들은 페르시아 전쟁 당시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테네를 파괴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설을 제기했는데, 이들도 알렉산드로스로부터 수 세기 뒤 사람들이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상 알렉산드로스가 저지른 일임이 확실하다. 전근대에 방화란 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중죄였고, 이런 피해 규모라면 누군가 실질적인 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 책임을 물어 처벌당하고 하다 못해 방화범이 누구인지 철저히 밝히려는 시도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고 방화의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도 별로 없었다. 대놓고 알렉산드로스가 불을 질렀다고 광고한 셈이다.
현재 연구 결과로는 궁전에서 화재가 시작되어 도시 전체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가 화재로부터 14년 뒤인 기원전 316년 시점에도 페르세폴리스가 페르시스 지역의 수도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저 화재로 페르세폴리스가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헬레니즘 동방의 패권을 잡은 셀레우코스 제국 시대에 페르시스의 수도는 페르세폴리스에서 5km 북쪽에 있는 에스타흐르(Staxr), 혹은 이스타크르(Istakhr)로 옮겨갔다. 에스타흐르의 건설에 페르세폴리스의 자재들이 동원되었다는 설도 있고, 고대 세계의 인구 밀도나 도시 분포 수준을 감안하면 5km 정도 차이는 사실상 같은 위치에 재건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단 도시가 빠르게 복구된 것과 달리 아케메네스 왕조 왕궁 단지는 그대로 폐허로 남았고, 페르시아어로 '백 개의 기둥'이라는 뜻의 사드 소툰(Sad Sotun)이라고 불렸다.
에스타흐르는 셀레우코스 제국에 복속된 반독립적 왕조인 퍼르스(페르시스)의 프라타라카(frataraka)들이 통치하는 수도였으며, 그들이 그대로 파르티아에 복속되어 퍼르스 번왕이 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서기 3세기 파르티아가 쇠퇴할 때 퍼르스 번왕 아르다시르가 반란을 일으켜 파르티아를 전복시키고 건국한 것이 바로 사산 왕조이다. 자연히 에스타흐르는 사산 왕조의 최초 수도였고, 이후 수도를 크테시폰으로 옮긴 뒤에도 왕의 주화를 찍어내는 조폐소가 위치하는 등 제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페르세폴리스-에스타흐르가 몰락한 시기는 사산 왕조가 멸망한 뒤, 이슬람 칼리프 제국 치하의 8~9세기 이후다. 에스타흐르 일대는 아랍인들의 침공에 격렬히 저항하여 한 번은 아랍인들을 격퇴하였지만 두 번째에 결국 항복하였고, 그 뒤에도 두 차례 더 반란을 일으켜 가혹한 진압을 당했다. 이런 수난에도 불구하고 에스타흐르는 이슬람 초창기 퍼르스 지역의 중심지로 수 세기 더 존속했으나, 남쪽에 세워진 신도시 시라즈에 조금씩 주도권을 내주면서 서서히 인구가 줄고 쇠퇴했다.
1971년 페르시아 건국 2500주년 행사 시의 모습
현대에도 이란 최고의 경작지로 손꼽힐 만큼 본래부터 토지가 비옥한 지역이다보니 이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대대로 거주하였고 16세기에도 아직 사람들이 거주하던 이스타크르 성곽에 반란군이 숨어들어간다던지 하는 일이 있었으며, 20세기에는 5km 쯤 떨어진 곳에 마르프다쉬트(Marvdasht)라는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팔라비 왕조 때 설탕 공장을 지으면서 인근 주민들이 모여들어 거주하게 됐다. 지금도 파르스 주에서는 시라즈 다음가는 도시(인구 약 15만)다. 마르프다쉬트의 이름도 연대가 수천년씩 올라가기 때문에[4] 학자들은 원래 이 지역의 이름이 마르브다슈트[5]인지 그냥 이스타크르나 페르세폴리스의 근교를 이르는 말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6]
페르세폴리스란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폴리스를 의미하며, 파르사란 곧 페르시아를 가리킨다. 타크트-에 잠시드란 곧 잠시드의 왕좌라는 뜻인데, 이름이 붙은 사연이 참 기구하다. 페르세폴리스가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파괴된 후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바람에 그 폐허가 원래 어떤 도시였는지 잊혀 버렸다. 그래서 후세의 이란 사람들은 이 폐허의 정체를 두고 고심했는데 결국 전설상의 왕 잠시드의 궁전일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잠시드의 왕좌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는 또 다시 파르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듯. 어쨌든 고대 페르시아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3. 구조
파노라마 사진
설명에는 안나와 있지만 길이 꺾이는 부분의 건물이 아르타크세르크세스 궁전이다. 다만 보존 상태가 안 좋아 사람들이 잘 안 간다.
아래의 사진들에서 보듯이 대제국의 수도였던 곳 답게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답다.
3.1. 만국의 문
Gate of All Nations.
페르세폴리스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이다. 라마수 두 쌍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그 사이에 4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3.2. 아파다나
크세르크세스 1세대에 지어져 크세르크세스의 대궁전으로도 불린다. 제국의 샤한샤가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신들을 접견하던 알현실로 쓰였다. 아파다나를 오르는 계단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신들이 비단, 향료, 염소 등을 바치는 행렬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거대한 건물 뒤로 다리우스 궁전, 그 뒤로는 크세르크세스 궁전으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3.2.1. 아파다나 계단의 부조
3.3. 백주 궁전
백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던 궁전이다.[7]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신들을 환영하여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그 뒤로는 크세르크세스의 하렘과 보물 창고가 이어진다.
3.4. 다리우스 궁전 (타차라)
페르세폴리스 궁전 단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궁이다.
3.5. 보물 창고
앞에 보이는 것이 보물창고
전체 유적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곳에 있던 12만 탈렌트 가량의 페르시아 국고를 약탈했고, 보물을 옮기느라 2만 마리의 노새와 5천 마리의 낙타를 동원하였다고 한다.
3.6. 왕릉군
파노라마 뷰와 아래 사진 중 위에서부터 둘은 낙쉐 로스탐이다. 페르세폴리스에서 10km 정도 거리에 있다.다리우스 대제의 무덤. 참고로 왼쪽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부조는 사산 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붙잡은 샤푸르 1세를 표현한 것이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무덤
4. 갤러리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다리우스 대제가 수도를 건설하기 천년 전부터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고 도쿄대학 학자들이 7천년된 도기를 파내기도 했다.[5] 마르프라는 식물이 자라는 평야[6] 이란 지역이 워낙에 역사가 길기 때문에,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대 이란계 및 비이란계 국가들의 수도는 의외로 지금도 약간의 변화를 거쳐 번성하는 경우가 많다. 수사도 데즈풀로 명맥이 이어지고, 엑바타나도 하마단으로 명맥이 이어진다. 크테시폰의 경우 바로 북쪽의 바그다드로 이어진다.[7] 하지만 현재는 기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