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19년 10월 9일[1] 8년간 장기화된 시리아 내전의 와중에 벌어진 튀르키예가 북시리아 내 쿠르드족 자치정부 로자바에 대한 대대적 군사 공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전쟁이다. 튀르키예측 작전명은 Barış Pınarı Harekâtı (평화의 샘 작전)이며, 작전 당시 기자회견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 작전이 '튀르키예에 피해를 주는 테러단체 PKK/YPG, IS에 대항하여 시작되었으며 (PKK/YPG ve DEAŞ örgütlerine karşı başlatıldığını), 작전의 목적은 튀르키예의 남부 국경에 설치중인 테러리스트들의 회랑을 파괴하기 위함(Türkiye'nin güney sınırında oluşturulmaya çalışılan terör koridorunu yok etmek)'이라고 설명했다. #
2. 배경 및 전개
- 쿠르드족에 대한 이해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이란, 시리아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온 민족으로 특히 시리아 북부는 쿠르드족의 전통적인 밀집거주지이다. 쿠르드족은 민족적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고유한 민족적 정체성과 언어,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랍 민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리아나 튀르크어를 쓰는 튀르키예 사회에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 14세기~15세기 초기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이 확장하면서 쿠르드족은 제국의 일부로 통합되었으나, 여전히 그들만의 자치적인 특성을 유지했다. 쿠르드족은 부족 중심의 사회로, 전통적으로 지역적인 지도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중앙집권적 통치에 완전히 순응하지 않았다.
- 16세기 오스만 제국
16세기 오스만 제국은 몇몇 쿠르드 지역에 쿠르드 왕국과 부족 지도자 선출을 허용했다. 디야르바크르(Diyarbakir)와 헥키리(Hakkari)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있지만, 사실상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자치적인 통치를 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어느 정도 허용하며 제국 내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 17세기~18세기 쿠드르족의 반란
16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했으나, 17세기부터 유럽 강대국들과의 군사적 충돌로 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경제적 위기와 부패 등으로 인해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이로 인해 지방의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중앙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특히 세금 부담, 기근, 부패한 지방 관리 등으로 인해 일반 민중은 고통을 겪었고, 쿠르드 지역에서 사회적 불만이 쌓여갔다. 쿠르드 지도자들은 이를 이용해 반란을 일으키거나 자치권을 넘어 더 큰 권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19세기 쿠르드족의 반란
19세기에는 근대화와 오스만 제국 쇠퇴의 시기였고, 이를 틈타 쿠르드족은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반란 중 하나는 야자르 반란(Yezidi Rebellion)으로, 야지디족의 지도자들이 주도했지만, 이 반란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쿠르드족이다. 이들은 자치권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오스만 제국군은 즉각적인 군사적 대응으로 반란을 진압했다.
-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튀르키예 공화국 설립
1차 세계 대전 패배로 세브르 조약과 로잔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은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비롯해 15개 이상의 국가로 쪼개진다. 오스만 제국의 가장 실질적인 후예국이라 할 수 있는 튀르키예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여파로 이 시기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혼란 속에 있었다.
- 1925년 셰이크 사이드 반란
1차 세계대전 직후 튀르키예 신생 공화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셰이크 사이드(Şeyh Said)라는 쿠르드 지도자가 쿠르드족의 독립을 목표로 튀르키예 동남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은 광범위하게 퍼졌지만, 결국 튀르키예 군에 의해 강력히 진압되었다.
- 1940년대 튀르키예 공화국의 쿠르드어 사용 제한
1940년대 초반, 튀르키예 공화국은 여전히 아타튀르크의 세속적, 중앙집권적 개혁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쿠르드족의 자치나 민족적 요구는 억압의 대상이었으며, 쿠르드 민족주의 활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제재를 가했다. 이 시기 쿠르드어 사용은 금지되었고, 쿠르드 민족주의 운동은 국가의 단일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되어 탄압받았다.
- 1946년 프랑스로부터 시리아 독립
독립 이후 시리아는 아랍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정치 체제를 구축했고, 시리아 정부는 쿠르드족을 소수 민족으로 간주하며 그들의 자치 요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 1950년대 튀르키예 민주당 정부 등장
튀르키예 내 단일 정당 체제가 무너지고 다당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튀르키예는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여전히 쿠르드족의 자치권 보장 요구에 대한 억압은 계속되었다.
- 1960년 시리아 정부의 쿠르드족 억압
1962년 전국민 인구조사를 통해 시리아 정부는 30만 명이 넘는 쿠르드족의 국적을 박탈하였고, 그들은 무국적자로 분류되었다. 이 사건은 쿠르드족에게 큰 불만을 일으켰고, 이후 쿠르드족은 시리아 정부에 대한 반감이 더욱 심화되었다.
- 1970년 시리아 정부의 아랍화 정책 실시로 더욱 더 커진 쿠르드족의 반감
아사드 정권은 1970년 권력을 잡은 이후, 쿠르드족 지역에 대한 아랍화 정책을 강화했다. 이는 쿠르드족의 문화와 언어를 통제하고, 아랍인들을 시리아 북부로 이주를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은 자치권이나 민족적 자아를 인정받지 못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쿠르드족의 무장 활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는 지금의 YPG(인민수비대)처럼 조직된 형태보다는 지역적인 소규모 저항 형태로 나타났다.
- 평야 위주의 시리아 북부, 산악 지형이 많은 튀르키예 남동부
시리아 북부는 주로 도시와 농촌 지역이 많아 산악 지형과는 달리 게릴라 전술에 적합하지 않다. 반면,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은 산악 지형을 포함하고 있어 게릴라 전술을 펼치기에 훨씬 유리한 환경이다.
- 1978년 PKK(쿠르드노동자당) 설립
PKK는 1978년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에 의해 설립되었다. PKK의 목표는 쿠르드족의 자치와 독립을 추구하며, 쿠르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조금씩 세력을 불려나가며 무장 투쟁을 시작한다.
- 1980년 튀르키예 군사 쿠데타
PKK가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세력을 점차 불려나갈 시기에 튀르키예는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1980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었고, 튀르키예 정부는 튀르키예 남동부 산악지형에서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PKK를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했다. PKK의 궁극적인 목표는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를 기반으로 쿠르드족 독립국을 건설하는 것이며, 최소한 쿠르드족의 자치권 확대와 민족적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 1984년 PKK의 본격적인 무장 투쟁 시작 및 확산, 시리아와 튀르키예 간의 연계
1984년, PKK는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시리아 북부에서 활동을 계속하면서 튀르키예 남동부로의 활동을 확장했으며, 시리아와 튀르키예 사이의 국경 지역에서 무장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PKK는 튀르키예 남동부의 쿠르드족 지역에서 활동을 강화하면서 민족주의적 주장을 확산시켰고, 동시에 시리아의 쿠르드족과 협력하며 세력을 넓혔다.
-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로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철수, YPG(인민수비대)의 설립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반군과의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시리아 정부군은 쿠르드족이 밀집한 북부 지역에서 철수한다. 시리아 정부군이 쿠르드족 밀집 지역에서 손을 떼자 쿠르드족은 자기 방어를 위한 무장 세력을 조직한다. YPG는 이러한 필요에 의해 2011년 시리아 쿠르드족 지역에서 조직된 민병대이다.
- 시리아 정부의 YPG에 대한 비공식적 협력 및 묵인
시리아 정부는 YPG와 PKK의 활동을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했으며, 쿠르드 자치 구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내전 중 YPG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협력이나 묵인을 하기도 했다. 쿠르드 자치구역은 이러한 시리아 정부와 YPG 간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 시리아 반군과 쿠르드족의 갈등
시리아 반군은 시리아 정부를 상대로 정권 교체를 목표로 싸우고 있었으며, 아랍 민족주의와 시리아 국가의 재건을 위한 통일된 국가를 주장했다. 시리아 반군은 시리아의 통합성과 단일 국가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쿠르드족의 자치적 요구를 인정할 수 없었다. 특히, 시리아 반군의 일부 세력은 쿠르드족이 자기 지역을 분리하여 자치 정부를 세우려는 시도를 반정부적, 분리주의적으로 간주했다.
- ISIS와 쿠르드족 간의 갈등 및 충돌
ISIS(이슬람 국가)는 시리아 내전의 혼란 속에서 2013년경 알-카에다의 이슬람 국가로부터 분리되면서 급격히 세력을 확장했다. ISIS는 극단적인 수니파 이슬람을 추구하며,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칼리프 국가를 선포하면서 국제적인 위협으로 떠오른 테러리스트 조직이다. 시리아 반군의 일부는 ISIS 이념에 동조하였다. ISIS는 자기 왕국을 수니파 이슬람 국가로 선언하면서, 비수니파인 쿠르드족을 불신하고 적대시했다. ISIS는 수니파 칼리프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쿠르드족의 자치적인 지역을 장악하려 했다. 반면 쿠르드족은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적인 정부를 세우고, 자기 방어와 민족적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에 ISIS와 상극이었다. ISIS는 YPG와 싸우며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를 강제 점령하려 했다.
- ISIS와의 코바니 전투에서 쿠르드족의 승리
코바니는 시리아 북부의 중요한 쿠르드족 거주지로, ISIS가 이슬람 국가를 확장하기 위해 코바니를 공격했다. YPG는 ISIS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미국과 국제 연합군의 공중 지원을 받으며 ISIS를 물리쳤다. 이 전투에서 쿠르드족의 승리는 ISIS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YPG는 쿠르드 민족주의와 자치권을 주장하는 중요한 군사적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 ISIS 퇴치 이후 YPG와 시리아 정부의 관계 변화
전통적으로 시리아 정부는 쿠르드족의 자치권 확대에 대해 매우 신중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ISIS의 등장과 시리아 내전의 격화로 시리아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었고, YPG는 ISIS와 싸우기 위해 자기 방어를 강화하면서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 자치구(Rojava)를 세웠다. 시리아 정부는 ISIS와의 전투를 계기로 YPG와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쿠르드 자치구 설립을 묵인하는 관계로 변화했다. 다만, 시리아 정부는 YPG의 자치 권한 확대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나 YPG가 완전한 자치 국가를 세우는 것은 원치 않으며, 그들의 시리아 내에서의 권력이 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KK의 YPG 지원
YPG가 ISIS와 피터지게 싸울 무렵 PKK는 이 전투에서 YPG에 군사적 지원과, 물자 지원 등을 제공했다. 특히 2014-2015년의 코바니 전투에서 ISIS가 쿠르드족이 다수인 코바니를 공격했을 때, PKK는 YPG를 지원하며 ISIS에 맞섰다. PKK와 YPG는 쿠르드 민족주의와 민주적 연방주의라는 유사한 이념을 공유하여 ISIS라는 공통의 적에 대항해 협력하게 되었다.
- YPG와 PKK의 관계
YPG는 PKK(쿠르드노동자당)와 이념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PKK는 튀르키예 내에서 쿠르드족의 독립과 자치를 추구하며 오랫동안 튀르키예 정부와 무장 투쟁을 벌여왔고, YPG도 PKK의 영향을 받은 쿠르드 민족주의와 자치권을 주장하는 세력이다. 튀르키예는 YPG를 PKK의 지부로 간주하고, YPG가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국을 설립하는 것을 자국의 안보에 위협으로 보고 있다. YPG와 PKK는 같은 민족이기도 하다.
- YPG의 쿠르드족 자치 구역(Rojava) 확장시도
ISIS가 물러난 후, YPG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ISIS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세력이 더욱 거대해진 YPG는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 구역을 세우려는 목표를 계속해서 추진했다. YPG는 쿠르드족 자치구(Rojava) 내에서 민주적 자치와 평화적 해결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고, 쿠르드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움직임을 강화했다. 이 와중에 미군이 철수한다.
- PKK와 튀르키예군 간의 갈등
튀르키예는 PKK의 남동부 활동을 강력하게 탄압해왔으며, 쿠르드족의 자치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PKK의 무장 활동과 쿠르드 민족주의는 튀르키예 정부에 의해 반정부적인 세력으로 간주되며, 자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쿠르드족의 움직임은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튀르키예 정부는 PKK를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지정하고, PKK와 관련된 쿠르드 민병대를 군사적으로 압박해왔다. PKK의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은 1999년에 튀르키예에 의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 PKK가 튀르키예에 위협이 되는 이유
PKK가 튀르키예 남부에서 더 많은 지역을 장악하면, 튀르키예의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쿠르드 민족주의가 국가 내 분열을 촉발할 수 있으며,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의 자치권과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이는 내부 정치적 갈등을 악화시키고, 튀르키예 정부의 지지층을 약화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PKK의 세력 확장은 튀르키예 남부에 경제적 타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튀르키예 남부는 농업, 에너지 자원, 그리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교통로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PKK의 영향력이 튀르키예인들의 경제적 활동을 제한하거나 생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튀르키예의 YPG 세력확장에 대한 안보 우려
튀르키예는 YPG가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구를 형성하는 것이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2]의 독립적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YPG가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적인 구역을 확립하면,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PKK의 쿠르드 민족주의 운동이 튀르키예 내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2016년 Fırat Kalkanı(프라트 방패 작전)
결국 튀르키예는 ISIS와 YPG를 동시에 목표로 삼고 시리아 북부에서 군사 작전을 벌였다. ISIS를 격퇴하고, 동시에 YPG가 튀르키예 국경 근처에 설치한 군사적 거점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 2018년, Zeytin Dalı(올리브 가지 작전)
튀르키예는 YPG 세력을 와해하기 위해 시리아 북서부 아프린을 침공했다. 아프린은 YPG가 지배하는 쿠르드 자치구이며, 튀르키예는 YPG의 군사적 거점을 제거하고, 자치구를 점령하려 했다. 이 작전은 YPG가 PKK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안보 위협을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 2019년, Barış Pınarı(평화의 샘 작전)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동부 텔 아비야드(Tel Abyad)와 라스알아인(Ras al-Ain) 지역을 다시 한번 침공했다. 텔 아비야드는 시리아 북동부의 중요한 쿠르드족 거주 지역으로, YPG의 군사적 거점 중 하나이다. 라스알아인 역시 YPG의 통제 하에 있었으며, 시리아 북부의 아랍인과 쿠르드족이 혼재된 지역이었다. YPG는 튀르키예의 공격에 저항하였고, 군사적 충돌이 심화되면서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난민들은 튀르키예, 이라크, 그리스, 독일, 프랑스 등 여러 유럽으로 유입되며 유럽 국가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미국과 러시아는 양측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중재를 시도했다. 중재 결과 YPG는 시리아 북부 국경 근처에서 일정 부분 철수하기로 하였고, 튀르키예는 국경 근처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 2020년 이후 튀르키예, YPG, PKK의 갈등 상황
2020년 이후에도 튀르키예, YPG, PKK 간의 상황은 군사적 충돌과 정치적 갈등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튀르키예는 YPG와 PKK를 국가 안보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군사적 작전을 지속했으며, YPG는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튀르키예의 공격과 국제적 고립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PKK는 튀르키예 남동부와 국경 지역에서 게릴라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튀르키예와의 군사적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3. 중동 내 갈등과 미국의 외교적 배신
튀르키예 내에는 2021년 1월경의 공식 통계로 364만5557명의 시리아 난민이 임시거주중이다. # 튀르키예 정부는 이들에 대해 인도적 거주허가를 내렸으나 경제적인 원인으로 난민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며, 그나마도 EU와 국제단체의 지원금을 받아 이루어지는 중이다. 결국 시리아 난인들은 이스탄불을 비롯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퍼져 슬럼가를 형성하고 있으며, 사회적 불안요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 작전에서 튀르키예가 시리아 북부 내의 PKK와 YPG의 공조를 분쇄시키고, 그 지역에 안전구역을 설정해 자국내 시리아 난민들을 시리아로 돌려보내는 목적을 세운 것도 이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튀르키예 내 무장테러단체인 PKK가 시리아 국경을 넘나들며 무기를 보급하고, 군경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나 YPG측이 넘겨준 서방제 무기로 무장해 튀르키예군경, 민간인의 피해가 커지는 것도 두고볼 수 없는 문제였다. 당장 평화의 샘 작전 첫째날 보도중인 튀르키예 기자진 근처에 시리아쪽에서 날아온 박격포와 로켓탄이 튀르키예쪽 국경도시인 제일란프나르와 악차칼레의 민간인 거주지에 떨어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미국, 쿠르드, 시리아반군은 IS에 공동으로 맞섰으나 2018년 미국이 튀르키예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로자바를 동맹으로 선택함에 따라 튀르키예는 이의를 제기했으며, 미국 일각에서도 미국-튀르키예 관계가 무너진다며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 그런데 2019년 10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시리아 북동부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 철수가 이뤄지면서 로자바는 토사구팽 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였다.
이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 미국의 대 IS 전선에서 쿠르드는 1만여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면서까지 참여할 정도로 미국의 IS 공세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반면에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전 기간동안 쿠르드족을 쓸어버리겠다고 IS라는 희대의 인간쓰레기들을 열심히 물심양면으로 지원해댔고 심지어는 더 나아가 쿠르드족 잡겠다고 IS 조직원들을 용역으로 고용해 쿠르드 학살을 하청 맡기는 등 그 개막장 테러리스트들을 열심히 때려잡던 쿠르드족을 침공하는 짓이나 하고 있으니 도저히 튀르키예가 좋게 보일 수가 없는 것. 이런 존재에 대해 사실상 중동 지역의 강국이자 쿠르드족에 적대적인 튀르키예의 공세를 중간에서 막고 있었던 미군의 전면 철수는 한마디로 단물 다 빨아먹었으니 필요없다고 노골적으로 입을 싹 씻어버리는 짓이다.
그리고 튀르키예는 미국 철군선언 사흘 만에 로자바가 점유한 영토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지한파 언론인이자 쿠르드계 튀르키예인인 알파고 시나씨는 미국은 쿠르드 게릴라군과 같은 좌익 무장단체와 오랜 기간 협력한 역사가 없었고, 이들이 친러 사회주의 성향을 띠다보니 미국은 쿠르드족이 언젠가 러시아편을 들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도 미국의 배신을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쿠르드를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쿠르드의 존재 자체가 미국 입장에선 제2의 시리아나 돈바스 전쟁으로 이어지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이 초기에는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의 혈투로 시작되었다가 다에시가 개입하고, 반군과 IS가 몰락한 뒤로는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대리전쟁 양상으로 변질되어 그야말로 명분이고 뭐고 없는 헬게이트 싸움이 되어버렸는데, 튀르키예-쿠르드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그동안 쿠르드와 꾸준히 무력분쟁을 겪어왔고 국민정서 또한 전체적으로 쿠르드를 반대하는 입장인지라 쿠르드의 독립 자체가 비현실적인 방안이었다. 그런 와중에 설령 쿠르드를 친미로 끌어들여 독립에 성공한다고 할지 언정 결국 튀르키예와의 정치적 마찰을 겪어야 함은 물론, 최악의 경우 독립한 쿠르드와 튀르키예 간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튀르키예의 반미정서가 친 러시아 정서로 이어져 미국,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리전쟁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트럼프의 입장이고, 동맹국들 입장에선 신뢰에 금이 갈 수밖에 없고 이러한 조치 또한 결국엔 또 다른 분쟁의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만약 튀르키예의 공세가 소극적으로 전환되어 대치 상황이 길어지고 전선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시작하면, 러시아가 쿠르드를 지원하며, 트럼프의 바램과는 완전히 반대로 튀르키예(서방) vs 쿠르드+시리아(러시아)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의회에서 트럼프의 결정에 반발해 소규모의 미군을 계속 주둔하기로 결정했기에 최악의 수는 막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에 맞서 중동 패권을 노리는 러시아군이 사실상 튀르키예측에 개입을 한 정황이 포착되어 아직 우려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친미 성향을 띄던 튀르키예가 러시아와 협력하며 무력을 행사 하면서 중동의 나토 동맹전선에 균열이 발생하는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Seven whistleblowers' Kushner gave Saudi Crown Prince Bin Salman permission to arrest Khashoggi: report 2019년 11월 초에 "더 스펙테이터" 에서 미군의 갑작스런 철수와 트럼프의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언행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암살 사건 때 재러드 쿠슈너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말 카슈끄지를 납치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고, 이게 튀르키예 정보당국에 도청당하여 에르도안이 이를 약점으로 이용해 트럼프에게 미군 철수를 강요했다는 미 정보기관 내부고발자들의 폭로를 기사화 했다. 물론 백악관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중. #
4. 반응
4.1. 쿠르드족의 반응
시리아 쿠르드족은 절박한 상황이다. 게다가 상대도 중동의 지역 강국 튀르키예인 데다 튀르키예도 미국의 암묵적인 외면을 확인한 만큼 이번 기회에 쿠르드족을 철저하게 짓밞아 씨를 말리기로 작정했기에 생존하기 위해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게 되었다. 현재 전문가들도 쿠르드족은 생존을 위해서 기꺼이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에게조차도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누누이 지적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은 재빠르게 외교 차관 발표를 통해 쿠르드족이 시리아 정부로 귀속해올 것을 제안하면서 쿠르드족에게 타협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시리아는 튀르키예의 군사행동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특히 시리아 정부는 쿠르드인 거주지역에 군대를 파견하고 배치하기로 했다.#
여기에 미국은 튀르키예의 군사작전에 개입을 안 한다고 했으면서, 정작 트럼프는 쿠르드가 2차 대전 때 미국을 돕지 않았다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다. ##2 이 발언은 미국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욕먹고 있는데, 쿠르드는 애초에 2차 대전 때나 지금이나 국가가 아닌 국가에 포함된 민족에다가 당시에는 정부 쪽에 참여도 없었다. 한마디로 쿠르드가 하나의 민족으로써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인정받기 전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그때 도와주지 않았다고 따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럼 임진왜란 등 미국이 생기기도 전에 있었던 전쟁에서 미국은 뭐 하고 있었냐고 비꼼을 당하는 중이다. 그런데다 단체가 아닌 개개인적으로는 2차 대전에 참여했었다는 증거까지 찾아내고 있는 중이다. Trump Says the Kurds ‘Didn’t Help’ at Normandy. Here’s the History. 결국은 트럼프가 자신이 내린 결정에 쏟아지는 온갖 비난을 무마시키려다가 더 큰 욕을 먹고 있는 셈이다.[3]
프랑스는 튀르키예 대사를 초치하여 강력 항의를 했다고 하는데, 이후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튀르키예군이 프랑스 군 특수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시리아 기지에 포 사격을 가해 부상자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게다가 이후 미군기지 주변에도 포사격이 가해졌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쿠르드 족을 공격한 것과는 별개로 NATO 가맹국들이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던 지역에서 NATO 가맹국이 다른 NATO 가맹국 군대를 공격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라, NATO의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사건이다. 물론 튀르키예는 역시 NATO 가맹국인 그리스와 외교관계가 워낙 안 좋아 서로 전투기를 띄워 대치한 적도 있지만, 지금 상황은 역사와 외교관계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에도 나토에서 단물은 빨아먹을 수 있지만 수틀리면 서로 총부리를 겨눌 수도 있다는 전례를 남기게 되는 상황이다.
결국 2019년 10월 13일 쿠르드와 시리아 정부가 튀르키예 저지를 위해 손을 잡았다 #
하지만 이 사단을 일으킨 트럼프는 정작 튀르키예와 쿠르드가 IS 포로들의 탈출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며 엄포를 놓거나, 포로들이 실제로 탈출하자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쿠르드족의 시도일 수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상식을 뛰어넘는 발언들을 퍼붓고 있다.[4]
현재 쿠르드의 지원 요청으로 시리아 정부군이 카미실리, 코바니, 만비즈, 타브카 등 시리아 내전 당시 쿠르드족이 점거하던 시리아 북부 지역으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 때문에 국지전을 넘어선 국가 간의 전쟁까지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 의회에서 미국을 배신자로 만들 거냐는 정치공세에 결국 트럼프가 튀르키예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하기로 하였으며 소규모 미군을 쿠르드에 남기기로 했다고 한다.
21일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면서 쿠르드족 주민들이 돌과 감자를 던지며 욕을 퍼부었다. #
27일. 시리아 동부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엑손모빌이나 다른 정유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개발ㆍ판매하게 해 이득을 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은 소수의 미군을 남긴 목적도 쿠르드족을 지키는게 아닌, 석유를 지키기 위함이였던 것이다.
30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11월부터 러시아와 함께 안전지대에서 합동순찰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시리아군과 튀르키예군은 북부의 국경지대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31일. 시리아의 원유시설을 지키기 위해 미군병력이 새롭게 500명규모로 배치되었다.#
11월 1일. 튀르키예군은 시리아 북부의 완충지대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공동 순찰을 실시했다.#
11월 5일.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 군사경찰과 튀르키예 국경수비대가 시리아 북부의 안전지대에서 제2차 공동 순찰 임무를 마쳤다고 밝혔다.#
11월 8일.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공동순찰에 항의하던 쿠르드족 주민 1명이 튀르키예군 차량에 치어 숨졌다.#
11월 9일. 튀르키예군과 시리아군이 시리아 북동부 국경지역에서 충돌했다.#
2020년 5월 3일에 튀르키예군의 군용트럭 30대로 구성된 수송부대가 이들리브에 진입했다.#
미국의 에너지 기업이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과 원유 수출 계약을 체결하자 튀르키예가 강하게 반발했다.#
4.2. 미국 공화당
트럼프의 정당인 공화당에서 우려를 표했는데 공화당의 일부 정치인들도 트럼프의 토사구팽 결정에 공개 반대를 표했다. 미치 매코널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통해 "IS와 알카에다는 시리아에 여전히 위험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계속되는 시리아 내전은 중대한 안보와 인도주의 위협을 드리운다", "갑작스러운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는 오직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정권에 득이 될 뿐"이라며 "이는 IS와 다른 테러리스트 단체의 재편성 위험을 증가시킨다" 튀르키예군의 토벌 위협에 맞닥뜨린 쿠르드족 문제와 관련, 우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인 튀르키예와 시리아 현지 대테러 파트너 사이의 중대한 갈등을 막기 위해 미국의 지도력을 발휘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공화당에서는 튀르키예에 대한 경제, 군사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북부 시리아 미군 철수는 IS에 맞서 우리가 얻은 것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비극적인 실수"라며 "우리 쿠르드족 동맹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쿠르드족을 저버림으로써 우리는 '미국은 믿을 수 없는 동맹'이라는 가능한 한 가장 위험한 신호를 보냈다" "쿠르드 동맹을 버리고 시리아를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로 넘기는 이번 결정은 모든 극단 이슬람주의자들을 강하게 만들 것"이며 "나쁜 이들을 격려하고 좋은 이들을 파괴한다" "당신을 지지하며 희생한 동맹을 버리는 건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 "튀르키예는 IS의 재부상을 막을 능력이 없다. 그들의 주된 타깃은 IS가 아니라 쿠르드족" 이라고 일침을 놨다.
4.3. 미국 민주당
민주당 하원 수장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북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는 대통령의 결정은 심히 충격적"이며 "IS 근절이라는 우리의 임무에 중요한 파트너였던 쿠르드족을 배신하는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쿠르드족 파트너를 저버렸다. 이 결정은 지역 안보 및 안정성에 끔찍한 위협을 드리우고, 이란과 러시아는 물론 "우리 동맹에도 '미국은 더 이상 신뢰할 파트너가 아니다'라는 위험한 메시지를 보낸다"고 우려를 표했다."4.4. 시리아 주둔 미군
시리아에서 쿠르드족들과 함께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조차도 동요하고 트럼프의 결정에 극구 반대하고 있다. 시리아의 상황과 대규모 지상군을 파견하기 힘든 미국 사정상 시리아에 파병된 미군들의 대다수는 쿠르드족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물적 및 인적 지원해주는 특수부대인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출신의 대원들이다. 어찌 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인 셈인데, 자신들이 훈련시키고 교육해 IS와의 전쟁에 내몰았던 그 군인들을 IS가 완벽히 패퇴하기도 전에 미국과 같은 NATO 가입국인 튀르키예가 공격해 죽이고 있고, 미군들은 자기들 정부가 손을 놔버렸으니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다.이 상황을 미군들 스스로도 납득할 방법이 없을 테니 충격이 적지 않을 테지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이제 이들이 무슨 말과 행동을 취해도 쿠르드인들의 신뢰를 얻을 방법은 없어진 셈이다.[5] 더군다나 미국은 이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군사 동맹쯤은 아무 때나 던져버릴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든 터라 민심이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게릴라전, 대테러 전시 동맹국 국민과 군인들의 진심 어린 협력을 받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언론의 인터뷰에 응한 미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튀르키예군의 만행을 최전방에서 목격하고 있다"며 "내 직업을 선택한 이후 처음으로 부끄럽다."라고 개탄하며 "튀르키예는 그들이 동의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끔찍하다. 우리는 모든 안보 협정을 충족시켰고, 쿠르드도 튀르키예와 맺은 모든 안보 협정을 충족시켰다. 국경 이쪽에서는 튀르키예인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없었다."라고 하며 튀르키예의 쿠르드족 공격에 대해 비판하며 이를 수수방관만 해야 하는 현재 미군과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분노와 실망감을 드러냈다.
또한 시리아에서 철수하는 미군 컨보이에서 쿠르드 휘장을 달고 있는 군인도 포착되었다.#
4.5. 튀르키예
튀르키예 입장으로는 국내에서 테러활동을 하는 PKK와 연계된 PYD(정당)-YPG(준군사조직)가 점거한 시리아 영토 가운데 튀르키예 국경에 접한 30km 거리의 안전지대를 확보해 테러리스트의 튀르키예 국내 유입을 차단해야한다는 입장이다. 1990년대부터 PKK는 이라크, 시리아 북부와 튀르키예를 넘나들면서[6] 군경,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해왔고 이미 튀르키예군이 이라크 북부에 진입해 소탕작전을 벌인 적이 있었으며 2018년 1월에는 올리브가지 작전(Zeytin dalı harekatı)으로 쿠르드 세력들이 점거하던 아프린 시를 함락시켜 유프라테스 강 서안의 시리아 지역에 안전지대를 확보한 바 있으며, 평화의 샘 작전(Barış pınarı harekatı)으로 명명된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군이 물러간 이후 튀르키예의 국내안보에 우려가 될 수 있는 유프라테스 동부 지역의 안전영역을 확보해야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또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CNN튀르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적은 테러리스트이지 쿠르드인이 아니며, PKK와 YPG가 서로 다른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미국 실무자들은 공공연히 알고있는 상황이다. YPG는 2003년 PKK의 리더인 압둘라 외잘란이 시리아에 세운 무장단체로 PKK의 시리아 지부다." 링크 라고 못박은 상황이며 튀르키예 국경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YPG에 의한 민간인 마을을 대상으로 한 저격, 박격포 공격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했다. 10월 13일 튀르키예와 YPG의 전쟁으로 인해 양측 모두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물론 상기 민간인 피해의 탓을 YPG에 겨냥하는 건 튀르키예가 구사하는 프로파간다성 주장으로 서류상 3주 남짓한 단기간의 전역전개에도 불구하고 전쟁범죄 오명의 기록에 한건을 더 얹은건 실상 튀르키예지원세력 "시리아 국민군"'이다, 8년 내전이란 장기간동안 거듭 입증된 시리아 반군세력의 질적수준이 재차 확인된 셈. 지역 정치인을 살해한 혐의[7] 및 동영상으로 촬영된 관련증거까지 명확한 이 문제에 튀르키예도 여기선 오리발을 거두고 수긍과 재발방지의 약속을 겸해 발빠른 입장 표명을 13일 하였다. 표명한 내용이 이렇다.
"우리에겐 시리아 영토를 점거할 의도나 시리아 민주연합당(PYD)의 구조변경을 꾀할 의사가 없다. 진공지의 강제개종이나 주민소개의 뜻 또한 없다. PKK 테러리스트의 시리아 지부 토벌을 기할 뿐이다.[8] (중략) (민간인 살해와 같은) 이같은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자세한 조사가 후속될 것이나 또한 이런 사태들이 (튀르키예의) 작전목표을 모함하는데 이용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튀르키예는 우리가 테러공격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지구촌과 동맹에게 유프라테스강 동편 시리아 북부지역이 PKK 테러범들의 근거지로 이용되도록 방임치 못한다고 수년간 설명해왔다. 테러조직 하나를 계몽한다고 다른 조직도 마찬가질 수는 없는데 이건 오바마 행정부 당시부터 지속돼온 오류로 PYD-YPG는 미국이 지원한 장비와 훈련으로 무장됐고 이런 군사역량이 계속 PKK를 통해 튀르키예로 투사돼왔다. 이놈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강역을 근거한 쿠르드 독립국가건설이 목적인 시리아 분리주의자이고 이건 국제법 위반이며 엠네스티는 이들의 점령하에 벌어지는 전쟁범죄를 다수 보고해왔다. 우리는 지금 이들의 강점기간 자행된 범죄를 원상복구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YPG가 퇴각한다 해서 다에시가 이 지역에 복귀할 가능성은 낮다, 이슬람을 다에시가 대표하는게 아니듯 마찬가지로 수천 분파가 있는 쿠르드족을 마르크스 레니니즘 추종세력 YPG가 대변하지도 않는다. YPG를 보라, 거리낌 없이 대립관계를 이어오던 아사드 정권과도 표리부동하게 제휴하는 신뢰 불가능한 테러조직이다. 여기서 확인되는 한가지 진짜 역설은 (같이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나토 동맹국인) 튀르키예를 비난하고 인민방위대와 같은 공산주의 무장세력을 미국과 불미스럽게도 프랑스를 포함한 일부 유럽이 동맹으로 골랐단 점인데 심히 유감이다."
10월 18일에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을 향해 튀르키예가 설정한 이른바 '안전지대'에서 물러날 것을 압박했고 물러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밝혔다.#
10월 9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시리아 북부 군사 공격을 만류하는 경고성 서한을 보냈는데, 이 친서에 대해 10월 20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튀르키예는 진지한 국가”라면서 “이런 편지가 갈 곳은 어디일까. 쓰레기통이다”라고 말했다.##
2020년 현재 해당 지역은 튀르키예와 러시아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심심하면 들려오던 PKK, YPG 테러소식도 잠잠해진 상태이다. 다만 원래 튀르키예의 목적은 해당 지역의 안전을 확보하고 자국 내 흩어져있는 시리아인들을 한 곳으로 모아서 관리하려는것이었으나 이 목적은 아직 달성되지 못했다.
튀르키예는 꾸준히 IS와의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9 2014년 이전 튀르키예측이 반 아사드쪽인 시리아 반군을 지원할적에는 반군이면 닥치고 지원하는 식으로 주먹구구였기 때문에 튀르키예측의 물자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쿠르드에게 흘러가기도 했고, IS 발흥 초창기부터 튀르키예는 2013년 9월 30일에 제5428호 명령으로 IS(당시에는 ISIL)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같은해 10월 23일자 관보에 게시했다.# 이후 튀르키예는 2013년 레이한르 테러와 2016년 아타튀르크 공항 테러를 비롯한 IS의 테러에 시달려가면서 IS의 진입을 차단하고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20년 1월에는 튀르키예 내 IS지도자인 마흐무트 외즈덴(Mahmut Özden)을 체포하기도 했다. #
4.6. 러시아
러시아는 이번 튀르키예의 쿠르드 족 공세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라브렌티예프 시리아 문제 특사는 “튀르키예군과 시리아군의 충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당연히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9년 10월 16일 러시아 군 당국은 “시리아 정부군이 만비즈와 그 주변을 완전히 장악했다”며 러시아군이 시리아군과 튀르키예군 경계선을 따라 순찰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그와 더불어 튀르키예에 직접적인 외교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실무방문 형식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을 10월 말쯤 러시아로 초청했으며, 에르도안이 초청을 받아들였다. 이는 시리아 전선에 러시아가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과 더불어 러시아군이 기존의 시리아 정부군 지원에서 벗어나 시리아 내의 분쟁을 관리하는 역할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은 11월 26일에 시리아 쿠르드군이 미국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휴전협정을 지켜아한다고 밝혔다.#
4.7. 대한민국
한국 정부에서는 2019년 10월 14일 외교부 성명에서 군사작전에 우려를 표하며, 현지 사정이 조속히 안정되고, 특히 민간인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기대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반응을 나타냈다.상당수의 한국 언론들은 미국에 행동에 대해 비난했다. 비교적 보수 성향의 조선일보 역시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전보좌관의 발언을 인용해서 동맹을 늑대에게 넘겼다고 매우 강경한 비판 어조로 해당 보도를 하였다.[9]
반전 시민단체들은 튀르키예의 군사 행동을 규탄하는 한편, 한국이 튀르키예로의 군수 물자의 수출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경향신문 기사 기사에 나오듯이 튀르키예에게 한국은 중요한 군수물자 수입 대상국이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국뽕영상의 5:38 부분을 보면 "취급주의"라는 표시의 국산 120mm 전차포탄 케이스가 잔뜩 쌓여있는 모습을 볼수있다. 페인트칠을 바꿀틈도 없이 쿠르드 침공에 사용된다는 증거.
5. 관련 문서
[1] 튀르키예 현지 시간[2] 특히 PKK, 튀르키예 내에는 PKK 외에도 많은 쿠르드족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들이 PKK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PKK의 규모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면 그 때는 대처할 수 없다.[3] 항목에도 잘 나와 있지만 사실 악명높은 오스만 제국 말기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아르메니아인 뿐만 아니라 인근 아랍인, 아시리아인, 폰토스 그리스인, 등 '튀르크 민족 국가'란 청년 튀르크당 지도부의 비전에 반대되는 집단은 모조리 아주 사이도 좋게 인종청소했다.(…) 이 와중 쿠르드 부족들은 초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아르메니아인 박해에 참여했지만 전시 상황의 악화와 함께 오스만 제국 군부의 폭주가 더 심해지면서 막상 본인들도 그 '청소 대상'에 포함되었던 역사가 있다. 그렇다보니 1차대전-튀르키예 독립전쟁이란 거대한 역사적 격변을 살아 남은 쿠르드인들은 적지 않은 수가 이웃나라로 망명을 갔다. 그런데 원래 쿠르드족 자체가 이슬람 개종이 늦고 아랍인, 심지어 튀르키예인들에 비해서도 느슨한 무슬림이란 평판이 일반적일 뿐더러 원래 반유목 민족이다 보니 현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일대에도 연고가 있던 경우가 많아 그 중 적지 않은 세속적 성향의 쿠르드인들은 소련으로 망명을 갔고, 자연스럽게 이들 중 몇몇은 붉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4] 해당 탈주사건에 대해 튀르키예측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지들이 YPG를 공격해서 IS 포로 수용소에 빈틈을 만들어 놓은 주제에 그들을 붙들고있던 YPG가 여론을 뒤집기 위해 일부러 풀어줬으며,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IS와 한패라는 적반하장식의 헛소리를 주장했다.[5] 군사작전 지역의 주민들을 푸대접하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장 이라크 전쟁 전후처리 과정에서 미군이 이 때문에 어떤 사달이 났는지 보라.[6] 시리아 전쟁 이후 튀르키예로 밀려든 난민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튀르키예와 시리아-이라크를 잇는 국경선은 매우 길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군경이 지속적으로 순찰중이고 취약지점에 대해서는 장벽을 세워 막고있으나 2019년 현재까지도 역부족이다.[7] 해당 사건 및 살해당한 정치인과 관련된 심층취재는 2020.03월 BBC에서 이루어졌다.[8] 물론 실제로는 튀르키예군이 친튀르키예 시리아 반군과 합세하여 시리아군을 공격하면서 시리아 정부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튀르키예vs시리아 : 시리아-나이라브 지역 전투 정리)[9] 미국의 쿠르드족 토사구팽은 쿠르드족을 반서방 세력으로 만들어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반서방 진영에 힘을 줄 수 있으므로, 보수진영에서 반발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