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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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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변보다 높은 땅인 고지(), 정확히는 산 정상과 능선을 두고 벌이는 공방전을 뜻한다.

고대로부터 고지를 선점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일단 고지를 보다 많이, 보다 높은 곳을 점령할수록 감제(, 즉 시야) 범위가 넓어지는[1] 이점이 있다.

또 전술적으로는 화살이나 투창, 돌팔매, 탄환과 같은 투사 무기들은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날릴수록 중력가속도에 의한 위력 증대와 사거리 강화의 효과가 있으며, 반대의 경우는 중력에 의해 사거리와 위력이 줄어들고 수풀이나 바위에 가려지기 쉬워 정확히 노리기도 힘들다. 이후 저지대 측이 어떻게든 밀고 와 육박전이 벌어질 때도 고지대 측은 뛰어내려오며 가속도를 붙여 돌격의 피해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반면, 저지대 측은 공격을 뚫고 올라오느라 상처입고 피로한 상태라 대처하기가 힘들다. 이런 상식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 삼국시대 즈음 요충지에 있는 산지마다 산성을 쌓아 외적을 감제하고 유사시 여기 틀어박혀 농성을 했었다.

단, 고지라고 무조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적군들 만큼 아군들 역시 올라오긴 힘든 건 마찬가지라 보급이랑 증원 역시 느릴 수밖에 없고, 또한 불시에 보급로가 차단당하거나 사방에서 포위당하면 적에 비해 보유중인 물자가 충분치 않거나[2] 아군이 구원하지 않는 한 고립당해 말라죽기 쉬운 사지가 될 수 있다. 이것의 반면교사삼국지에 등장한 마속으로, 본격적으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고지에 틀어박혀 포위당한 뒤 알아서 자멸해 버렸다. 또한 해당 고지가 주요 길목, 전선과 외떨어져 무시해도 될 정도라면 태평양 전쟁 미군의 '개구리 뜀뛰기 작전'처럼 무시당하기도 하기에 입지 선정도 중요하다.

19세기 이후 화포가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포격에 산술계산이 도입되면서 고지의 중요성은 극대화된다. 높은 곳에 참호진지를 구축하고 기관총, 수류탄, 유탄발사기, 박격포, 대포 등 각종 화기를 날려대거나 후방 포병들에게 각종 포격들을 요청하면 밑에서 올라오는 공세를 손쉽게 감제하고 격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력이 끝을 모르고 발전하면서 시야의 이점으로 얻는 이득 이상으로 화포와 각종 공격수단이 발달하자 고지의 높이의 이점이 포병대 포병 사이에서 거의 무의미할 지경이 되기도 했다. 이 시점부터는 공격자도 공격준비사격과 전폭기들을 끼고 달려들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수는 없었다.

또 당연하게도 각 고지들마다 형상이 천차만별인데, 실제로 한쪽 방면은 방어측이 십자포화를 펼치기 딱 좋고, 또 어떤 고지는 북쪽 경사면은 완만하나, 남쪽 경사면은 급경사였던 사례들을 보면 일대의 지형지물과 피아 동태를 파악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대응하다간 203고지와 엇비슷한 참사가 나기에 상식 있는 지휘관과 참모들은 이런저런 수단으로 염탐 혹은 찔러보기 공격으로 상대의 상황과 대응을 파악한 뒤 우회기동, 포위, 보급 차단 등의 방법들을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극한의 환경 조건들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보병전을 치르게 되는데, 때문에 정글전(및 게릴라전), 시가전, 상륙전[3]과 더불어 가장 보병들이 처절한 혈투를 벌이는 전장 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보통 고지전의 전장 환경은, 전차와 헬기, 차량이 극복하기 어려운 지형들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격측이 화력우세를 점하고 싶어도 방어측이 깊은 벙커와 대피소를 파두고, 고지 전체를 요새화하여 저항할 경우 규격초월급인 ABC 무기를 떼로 동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강력한 부대와 화력 지원수단을 끌고와도 정말 지독한 수준으로 공략하기가 어려워진다.[4] 이는 20세기 후반~21세기 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벙커 버스터와 같은 강력한 첨단 무기들을 동원해도 큰 효력이 없을 수도 있다.[5]

2. 근대 이후의 사례

2.1. 제1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 왕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의 육상전투 대부분이 알프스산맥에서 벌어졌었다.

2.2. 6.25 전쟁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6.25 전쟁의 전투 및 작전 목록 파일:북한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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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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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자 : 공산군의 승리 / 첨자 : 한국군•유엔군의 승리
※ 월표기: 전투 개시일 기준, 실제 교전기간은 개별 문서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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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찹힐 전투를 다룬 1959년 영화, 폭찹힐에서의 모습.

산지가 많은 한반도의 특성상 전쟁의 전개도 대부분 고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그리고 50년 겨울 중공군의 참전으로 37도선까지 내려간 전선이 다시 38도 이북으로 올라갈 즈음 휴전 협정이 양측에서 조율되었다.

이유인 즉슨 이미 1.4 후퇴와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및 이에 대응한 반격 등을 거치면서 양측 모두 상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낼 힘 없이 사상자만 계속 속출하는 소모전 상황이 되었음을 인지했기 때문.[6] 하지만 협정이 진행될 동안 양측이 싸움을 멈추기로 합의한 건 아니었기에 보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한 대대급 수준의 고지 쟁탈전이 1951년 하반기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7]

일단 고지를 확보하면 그 위에서 주변 전황을 두루 둘러볼 수 있을뿐더러, 일대의 적들을 향해 사격 및 포격을 보다 멀리, 더 정확히 가할 수 있게 된다.[8] 더군다나 고지를 보다 많이 확보해 거기에 진지와 기지 등을 지어놓으면 향후 전쟁이 재개될 시 방어 측에선 시간벌이, 공세 측에선 그만큼 시간절약, 기동에 유리했기에 너도 나도 고지 쟁탈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몇몇 고지는 계속된 쟁탈과 포격, 폭격 속에 곳곳이 화약과 피 냄새 진동하는 민둥산이 되었으며[9], 가칠봉 전투에선 아예 시체들을 모아 진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2.3. 베트남 전쟁

여기에서도 고지를 두고 전투가 벌어졌다.

1966년 두코 전투, 1967년 짜빈박 전투, 1968년 케산 전투, 1969년 햄버거 힐 전투, 1972년 안케패스 전투 모두 고지를 두고 공세를 펼치거나 쟁탈전을 벌였다.

2.4. 중국-베트남 전쟁

중국과 베트남 국경지역은 산지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서 본격적인 전쟁 기간에도 고지전이 벌어졌고, 중국군의 철군 후 1990년대까지 국경에서 쌍방간에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었다.

2.5. 카길 전쟁

히말라야산맥 인근에서 벌어진 전쟁이라 당연하게도 고지전이 주 전투 양상이었다.

3. 현대

항공정찰이나 무인기, 정밀 타격무기가 발달된 현재에는 예전에 비해 그 중요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래도 엄연히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적에게 고지를 내주고 더 많이 염탐, 공격당하는 게 좋을 리 없기에 보병 단위의 전술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 근시기에 벌어진 아프간 전쟁에서도 일단 미군이 특정 지역에 진출하면 고지에 화력기지부터 세우고 있으며, 전투의 상당 부분 또한 고지전이었다. 지형 대부분이 산악 지대인 한반도 역시 만약 전쟁이 재발한다면 보병, 포병 중심으로 고지전은 필수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현대에는 시가전이 전투양상의 대부분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건물 위처럼 높은 곳에서 엄폐하고 공격하는게 유리한 것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현재 공군의 레이더부대나 이동식 레이더부대, 그리고 결정적으로 통신중계소가 전개하는 장소가 특정지역의 가장 높은 고지임을 생각하면 현대전에서 고지의 중요성이 낮아진것 같지도않다. 특히 적의 항공기 침투를 감시하기 위한 저고도 탐지레이더는 주변이 뻥 뚫려있는 고지대에 설치해야된다.

4. 인터넷 밈

주로 인터넷의 댓글창에서 각 세력간의 추천, 비추천으로 댓글창을 점령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고지전에 빗대어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2020년대 들어 젠더 갈등, 진영논리 등의 갈등이 심해짐에 따라 네이버 뉴스 같은 매체에서 이런 양상이 자주 보이는 편. 바른연애 길잡이 남성혐오 논란 당시 웹툰 댓글창에서 남초와 여초 세력이 별점, 댓글로 싸움을 했던 것이나 네이트판의 찬반좌가 대표적이다.

디시인사이드에선 졸, 방대, 문대를 이르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1] 특히 일대 최고봉이라 주변 대부분을 감제할 수 있는 고지를 감제고지로 별칭할 정도다.[2] 그래서 평시엔 대다수를 그 밑에 두되, 틀어박혀 농성할 것에 대비한 물자들 및 이를 지키기 위한 경계병력을 일정량 올려놓기도 한다.[3] 상륙 작전에서 선봉을 담당하는 보병들[4] 예: 이오지마 전투, 햄버거 힐 전투[5] 예: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고지전.[6] 그리고 필요 이상의 자극과 확전을 피하기 위한 분위기도 조성되어 1951년 4월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밴플리트 장군의 맹조의 발톱 작전 제안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나마 격전 속에서 북쪽으로 돌출된 전선을 완만하게 만들고 전선을 10~20km 올리려는 제한적인 목적의 대규모 공세는 그와 수뇌부 모두 공감했기 때문에 이를 여름과 가을 사이에 실행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7] 사실 이는 모험을 피하기 위한 찔러보기식 전투로, 병력을 일제히 투입하면 당장은 머릿수=화력에서 앞서지만 이들이 전멸시 그 공백을 메우기가 힘들기 때문.[8] 실제로도 저격능선 전투에서 중공군 저격수가 고지 위에서 미군들을 자꾸 저격해댔고, 이에 고지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다.[9] 이것의 극단적인 예가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로, 아예 민둥산이 된 것도 모자라 모래폭풍 수준의 먼지까지 일어 소총을 내팽개치고 수류탄만 가득 챙겨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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