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진항 해전 注文津港海戰 Battle of Chumonchin Chan | ||
| 한국 전쟁의 일부 | ||
| 기간 | ||
| 1950년 7월 2일 | ||
| 장소 | ||
| 주문진항 앞바다 | ||
| 교전국 | | |
| 지휘관 | 제시. D. 소웰 | 김군옥[1] 리학섭[2] 리완근[3] 최정수[4] |
| 결과 | ||
| 유엔군의 승리 | ||
| 영향 | ||
| 북한의 제해권 완전 상실 | ||
| 전력 | HMS 자메이카 USS 주노 HMS 블랙 스완 | G-5급 어뢰정 4척[5] 포함 2척[6] 수송선 10척 |
| 피해규모 | 없음 | 어뢰정 3척 격침 포함 2척 격침 수송선 10척 격침 |
1. 개요
1950년 7월 2일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소재 주문진항 앞바다에서 치러진 해전으로 북한에서는 '주문진 해상전투' 라고 불린다. 유엔 해군이 북한 해군 제2 어뢰정대의 G-5급 어뢰정 등 다수 함선을 격침시켰다.2. 배경
6.25 전쟁이 터진 직후인 1950년 6월 27일에 미국 해군과 미국 공군을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 투입시킨다는 결정이 나온 후에 당시 미국 극동해군사령관인 C. 터너 조이 해군 중장은 미국 극동해군이 수행할 임무에 관한 작전명령 5-50을 휘하 부대에게 전달했고 해당 명령에 따라 제96 기동부대(TF 96) 휘하의 제96.5 기동전대(TG 96.5)를 편성한다. 전대의 구성은 주노급 경순양함 주노(CL-119)와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되었다.당시의 미국 극동해군은 일본, 오키나와, 마리아나 제도와 필리핀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해역을 담당했으나 해군 전력은 빈약한 편이었다. 당장 5인치(127mm) 구경의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가 함포 구경중 가장 큰 수준일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래서 6월 27일에 미국 극동해군 휘하에 필리핀에 주둔하던 미국 제7함대를 배속시켰으나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타이완 섬으로 피난한 중화민국을 중공군에게서 보호하기 위해서 대만해협에 제7함대의 주력을 투입해야 했고 사실상 하와이 서쪽의 서태평양에서 동원 가능한 미국 해군 전력을 모두 미국 극동해군에게 몰아주었으나 여전히 전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영국 해군을 중심으로 한 영연방 국가들의 해군력이 한반도와 주변에 투입되면서 미국 극동해군 휘하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전력을 보충했으며 이 당시에 합류한 전력은 경항공모함 1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8척이었다. 이들 전력들은 일단 미국 극동해군 휘하에서 혼성 편제되는 방식으로 임시적인 운용을 하다가 주문진항 해전 후인 7월 5일에 미국 군함들로 구성된 제96.5 기동전대(TG 96.5)와 영국과 영연방 군함들로 구성된 제96.8 기동전대(TG 96.8)로 나누고 미국 함대는 미국 제독이 지휘해서 동해를 담당하고 영국과 영연방 함대는 영국 제독이 지휘해서 서해를 담당하는 식으로 담당구역을 나누게 된다.
제96.5 기동전대(TG 96.5)는 주노급 경순양함 주노를 기함으로 하고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개전 초반의 다급한 상황과 함께 휘하 군함들이 일본의 항구에 흩어져서 배치된 관계로 인해 사실상 각 군함별로 독자적인 행동을 했다. 주노의 경우에는 6월 28일에 거제도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동해안을 북상하며 울산에 자체적으로 소규모 상륙반을 파견해서 상황을 알아보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그 이유는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전선 상황이 혼란해서 혹시나 북한군이 부산 근처까지 남하했는지 여부를 알 수가 없었기에 서서히 북상하면서 항구가 북한군의 손에 넘어갔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6월 29일에는 북한 해군으로 오인하고 실시한 포격으로 인해 대한민국 해군의 JMS 305 두만강함을 주노가 격침시키는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고 해당 사건의 여파로 인해 유엔군 해군은 대한민국 해군과 협의한 후 북위 37도 이북의 해역에서 해상봉쇄작전을 실시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북위 37도 이남의 해역에서도 작전이 가능하다는 협의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950년 6월 29일 23시 11분부터 유엔군 해군이 함포로 지상사격을 실시했는데 첫 타자를 담당한 것이 경순양함 주노였다. 오인 포격을 막고 목표에 대한 정확한 타격을 위해서 대한민국 해군의 연락장교가 주노에 탑승해서 조언을 해주면서 실시한 함포사격은 현재의 동해시에 있는 묵호항을 대상으로 탐조등을 키면서 정밀포격을 30분 동안 가하며 5인치(127mm) 함포탄 400발을 목표에 명중시켰다. 그 이후에도 주노는 동해안의 7번 국도를 따라서 남진하는 북한군 제5사단을 비롯한 북한군 부대 및 보급수송을 막기 위해 함포사격을 실시했고 7월 1일에는 영국 해군이 가세하면서 활동영역을 넓혔다.
그래서 1950년 7월 2일에 벌어진 주문진항 해전에서 미국 경순양함 1척, 영국 경순양함 1척, 영국 초계함 1척이라는 혼성함대가 만들어진 것이고 함대의 지휘는 주노의 함장인 제시. D. 소웰 대령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3. 전개
7월 2일 영국 해군의 크라운 콜로니급 경순양함 HMS 자메이카, 블랙 스완급 초계함 HMS 블랙 스완과 미 해군의 주노급 경순양함[7] USS 주노(CL-119) 총 3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북한 해군과 수송선을 1950년 7월 2일 오전 6시 15분에 발견했다.주문진항 앞바다를 항해 중이던 북한 해군은 트롤 어선을 활용한 탄약 수송선 10척과 북한 해군 2어뢰정대 소속 G-5급 어뢰정 4척과 소련제 OD-200급 포함 2척으로 편성된 16척이며 주문진항에 입항하기 직전인 상태였다.
전투의 시작은 경순양함 주노가 북한군 어뢰정에서 발생하는 항적을 발견한 후 북한 해군쪽으로 접근을 실시하자 북한 해군에서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어뢰정대장 겸 21호 어뢰정장 김군옥의 지휘 하에 어뢰정 4척이 돌진하며 어뢰를 발사하고 포함들도 소구경 함포를 사격했으며 여기에 대응하여 유엔군 해군이 함포사격을 가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전투 진행은 말 그대로 유엔군 해군의 압도적인 우세로 전개되었다. 어뢰정 같은 소형 군함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다수의 포탄을 날려서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보포스 40mm 포, 폼폼 포, 오리콘 20mm 기관포가 기본적으로 배치된 상태고 함포도 영국의 4인치(102mm) 함포는 기본적으로 연사속도가 빠르고 1발당 위력도 어뢰정을 박살내기에는 충분한 수준의 양용포이고 6인치(152mm) 함포도 연사속도가 빠른 편이고 사정거리도 긴 편이라 수상함과의 교전에 충분히 활용이 가능했으며 특히 경순양함 주노에 달린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는 12문이나 탑재한데다가 사격통제장치도 대공성능을 높히기 위해 정밀해졌고 대공용 신관인 VT신관은 대수상용이나 대지상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뢰정처럼 작고 빠른 군함을 상대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유엔군 해군이 압도적인데 반해 북한 해군은 수송선을 빨리 주문진 항구에 입항시켜야 할 처지고 전력은 6척밖에 안되는데 그나마 2척은 포함이라 해전에서는 사실상 열외 수준의 능력을 가지므로 결국 4척의 어뢰정만으로 해전을 치뤄야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유엔군 해군 3척의 군함이 모두 어뢰정을 잡기 딱 좋은 화기들을 대량으로 무장한 상황이니 답이 없었다.
따라서 해전 상황은 순식간에 북한 해군의 패배로 결정되고 만다. 경순양함 주노가 10,058m(11,000야드) 거리부터 VT신관이 장착된 5인치(127mm) 포탄을 일제 사격하기 시작하자 북한군 어뢰정에 레이더 관제사격으로 정확한 포탄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12문에서 쏟아지는 분당 10t에 가까울 수준의 엄청난 양의 포탄 수량과 함께 VT신관으로 인해 어뢰정이 회피운동을 하거나 빗나간 포탄도 일정 거리 이내에 어뢰정이 있다면 VT신관의 근접신관에 감지된 후 포탄이 작렬하여 치명적인 파편세례가 어뢰정을 목표로 해서 쏟아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북한군 어뢰정에 막대한 타격이 가해졌다.
그래서 북한군 어뢰정들이 어뢰를 발사하면 명중을 기대해볼만한 3,657m(4,000야드)까지 거리가 좁혀질 시기에는 이미 북한군 어뢰정 중에서 1척은 정확한 명중탄을 맞고 유폭이 일어난 후 침몰했으며 다른 1척은 피탄으로 인해 어뢰정 전체에 화재가 발생한 채로 그 자리에 멈춘 상황이었으므로 공격은 실패했다. 남은 2척의 어뢰정은 방향을 돌려서 도주를 시전했는데 1척은 해안 쪽으로 도주하고 나머지 1척은 외양 방면으로 지그재그 항진을 하며 도주했다. 그리고 함께 항해하던 영국 해군이 마무리 타격을 가하면서 전과를 확대했다.
주문진항 해전의 결과 북한 해군은 기함인 21호 어뢰정을 제외한 군함 5척과 수송선 7척이 격침되는 큰 피해를 보았다. 살아남은 수송선 3척은 필사적으로 도주를 시전했으나 경순양함 주노가 주문진항에 초근접할 정도로 고속 추격하면서 모조리 격침했기 때문에 사실상 북한군 함대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21호 어뢰정뿐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 육군 포병이 사격한 포탄중 1발이 경순양함 주노 코 앞에 떨어지긴 했으나 직격탄은 커녕 지근탄 수준도 아니라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 외에 경순양함 자메이카가 북한 해군과 수송선을 공격하면서 직전의 교전에서 격침당한 어뢰정에 탑승했던 북한 해군 2명을 바다에서 구조하여 포로로 확보했다.
영국 해군 입장에서는 미국 경순양함 주노가 적극적으로 선제적 행동을 개시해서 이미 북한 해군에게 큰 타격을 준 뒤에 전과확대의 목적으로 참여한데다가 전투 자체가 시시하게 끝나서 그런지 본격적인 해전으로는 간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메이카의 전투 기록을 보면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지상지원중 북한군 어뢰정이 접근하자 포격을 해서 쫓아냄' 정도로 기록했다.
4. 결과
유엔군의 피해는 전무하였지만, 북한 해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어뢰정대 전력의 60%에 해당하는 3척의 어뢰정[8]과 포함 2척과 수송함 10척 전부를 잃으면서 보급 및 작전에 차질이 생겼고, 격침된 어뢰정 23호의 어뢰정장 최정수는 UN군에 의해 '4호 포로'로 잡히게 되는 상황도 벌어졌다.그리고 주문진항 해전이라는 단 1회의 해전으로 인해 북한 해군의 동해안 방면 전력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북한 해군의 제해권이 완전히 상실된다. 그래서 7월 4일부터 동해안 방면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함포사격이 수시로 실시되었으며 영덕 방어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삼팔선 이북의 북한쪽 해안에 대한 습격이나 함포사격도 1950년 7월 11일에 시행한 함경남도 성진 남방을 지나는 함경선 철도 터널을 미국 UDT요원을 포함한 10여명의 폭파팀으로 폭파작업을 실시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5. 북한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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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선사령관 김책이 2어뢰정대에 하달한 축하 전신 | 조선인민군 사령부 문화처가 2어뢰정대에 하달한 축하 전신 |
결과적으로 북한 해군이 유엔군 함대를 공격했다가 큰 피해만 입고 패퇴한 전투지만 북한의 거짓선전 측면에서는 중요한 전투다. 북한에서는 이 해전에서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을 격침시키고 미군을 대파하여 대승을 거뒀다고 북한 사람이면 모두 알만큼 크게 허위 선전해왔다.
북한에서는 단 4척의 어뢰정으로 미 해군의 중순양함 USS 볼티모어(문화어 표기로는 발찌모르)[9]함에 3발의 어뢰를 명중시켜 볼티모어함을 격침시켰다고 주장한다. '세계해전사에 유일무이한 기적' '세계해전사에 수수께끼를 남긴 주문진 앞바다에서의 기적'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에서 승리'라는 식으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의 선전이 거짓인 이유는 볼티모어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6년에 이미 퇴역한후 1951년 재취역할 때까지 미국 워싱턴주 브래머튼항에 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역해서 미국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함선을 자신들이 격침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생존한 어뢰정의 승조원들이 발찌모르를 격침시켰다고 허위로 보고를 올린 것을 북한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들은 해전 당일 아침 주문진항에서 자신들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주문진 출신들과 종북주의자들 중에서는 이 해전의 북한 해군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침몰한 발찌모르를 찾으려는 이들이 있었다.
북한 당국의 대대적인 선전으로 이 신화를 굳게 믿는 인민들이 많다보니 실상을 알고 충격받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탈북자들이 고향 사람들 놀려먹는데 쓰기도 한다.
2024년 기준으로 종북주의자들은 주문진항 해전 현장에 볼티모어함이 없었다고 알려진 것은 미국이 패전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록을 날조해 볼티모어호가 동해에 갔다는 기록을 삭제했기 때문이라고 망상하고 있다.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은 주문진항 해전에는 볼티모어급의 보스턴함이 주문진항 전투에 참여했고 현존하는 보스턴함은 복제품이라고 주장했는데, 당연히 제대로 된 증거는 전혀 없다. # 그리고 무엇보다 중순양함급이 가라앉았다는건 1,146명이나 되는 승조원들도 상당히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들에 대한 미국의 대응도 없고, 만재배수량 17,273t이나 되는 큰 군함이 바다 깊은 곳에 빠졌는데 그 당시 기술로 전쟁통에 그걸 인양을 했을리도 없으니 지금 동해 바다를 스캔해보면 바로 잔해가 나와야한다. 그러나 당연히도 잔해는 없다. 가라앉은 적이 없으니까. 북한에서는 주문진항이 현재 대한민국 영토이다보니 검증할 수 없다는걸 알고 일부러 내부 선전용으로 써먹는것뿐이다.
아무튼 북한에서는 주문진항 해전에서 승전했다고 주장하기에, 북한 해군 2어뢰정대는 근위 칭호를 수여받고 근위대가 되어 '근위 제2어뢰정대'로 승격되었다. 2어뢰정대 정대장 겸 21호 어뢰정장 김군옥과 격침된 22호 어뢰정의 어뢰정장 리완근[10]은 북한 최초로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후 2어뢰정대장이었던 김군옥은 조선인민군 해군 장령(소장)까지 진급하였으며, 2009년 사망한 이후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또한 김군옥이 탑승하였던 어뢰정이자 주문진항 해전에서 볼티모어 함을 격침시켰다고 주장하는 어뢰정인 생존한 21호 어뢰정은 현재 평양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야외장비전시관에 정태보존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
또한, 이 주문진항 해전이 발발한지 62년이 되는 2012년에는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정령으로 당시의 생존함인 21호 어뢰정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2023년 9월 6일, 근위제2어뢰정대의 후신인 근위제2수상함전대가 소속된 조선인민군 해군 동해함대는 주문진항 해전 당시 지휘관이었던 김군옥의 이름을 딴 김군옥영웅급 잠수함을 진수하였다.
북한 외부에서는 월미도 승전과 함께 북한의 거짓 신화의 예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6. 같이 보기
[1] 2어뢰정대 정대장 겸 21호 어뢰정장. 1950년 북한의 선전용 인물로 쓰기 위해 공화국영웅 훈장을 수여받고 해군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훗날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강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후 중풍으로 인해서 2009년 12월 18일에 사망했다.[2] 2어뢰정대 문화부정대장[3] 22호 어뢰정장[4] 23호 어뢰정장[5] 21, 22, 23, 24호[6] 소련제 OD-200급[7] 애틀랜타급 경순양함의 개량 및 후속함급이다. 5인치 양용포 12문으로 무장했다.[8] 왜 75%가 아니라 60%냐면, 본래 2어뢰정대가 보유한 어뢰정은 4척이 아닌 5척이었으나 한 척이 기지 정박으로 인해 출항하지 않아 4척만이 해전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9] '볼티모어'의 러시아식 표기 발티모르(Балтимор)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볼티모라고도 부르는 듯.[10] 격침된 22호 어뢰정장은 주문진항 해전 당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중인 2001년에 사망한 인물인데, 격침 직후 21호 어뢰정에 구조되어 생존한 것으로 보인다.[11] 주문진항 해전의 근위 2어뢰정대가 관여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