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0:49:37

대학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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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大學路)
우이동 방면
창경궁로
장지동 방면
동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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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번호
41번 서울특별시도(안내용)
도로명번호
3100002
다른 문자 표기
로마자 Daehak-ro
한자 大學路
간체자 · 신자체 大学路
기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종로5가사거리
종점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혜화동로터리
연장
1,621m
관리
서울시설공단
왕복 차로 수
4~6차로
주요 경유지
종로5가서울대학교병원 ↔ 마로니에공원 ↔ 혜화동로터리

1. 개요2. 교통3. 상권 특징4. 소재 대학교5. 연원
5.1. 조선시대5.2. 구한말5.3. 일제강점기 초기5.4. 경성제국대학 건립5.5. 해방 이후
6. 여담7. 연선 주요 시설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의 간선도로 중 하나이자 그 주변 일대의 번화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도로의 기점은 종로구 종로5가역, 종점은 혜화동로터리다. 종로5가역~이화사거리 구간은 폭 20m의 왕복 4차선이고, 이화사거리~혜화동로터리 구간은 폭 40m의 왕복 6차선이다. 총 연장은 1.6km이다.

2. 교통

종로5가 ~ 이화사거리 구간은 이화사거리 방향으로 3개 차선, 종로5가역 방향으로 1개 차선을 사용한다. 일방통행에 준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셈. 원래는 청계천 복원 공사에 앞서 교통혼잡 해소를 위해 2003년 6월 22일부터 이화사거리 방향 일방통행 4차로로 운영되었으나, 인근 주민 불편으로 인한 민원으로 2014년 6월에 창경궁로와 함께 양방향통행으로 바뀌었다.

종로5가 방향으로 진행할 수는 있으나 종로5가 사거리에서 청계5가나 종로6가 방면으로 직·좌회전은 불가능하며 우회전만 가능하다. 이는 창경궁로 일방통행 구간의 시점이었던 원남동사거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있어, 종로4가에서 원남동사거리를 거쳐 혜화동로터리 쪽으로는 직진이 불가능하다. 양방향 통행만 가능해졌을 뿐, "도심 방향은 창경궁로 / 동북권 방향은 대학로" 라는 전체적 흐름은 바뀌지 않은 셈.

도시계획상으로는 대학로와 동호로 일부[1] 전 구간이 폭 40m로 되어 있지만, 이 구간만 도시계획상의 도로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확장계획이 잡혀 있는데, 도심의 비싼 땅값 때문에 수십 년째 예정만 하고 있는 상태다. 해당 구간 신축건물들이 뒤로 많이 후퇴해서 지은 이유.

이화사거리~혜화동로터리 구간은 왕복 6차로 치고는 도로가 꽤 넓은데, 아래에 언급한 대로 개천을 복개했기 때문. 처음에는 왕복 7차로로 운영했으나 인도의 유동인구가 많아서 인도를 넓히고 차도를 줄여서 지금과 같은 6차로가 되었다. 그래봤자 노점상들 때문에 소용없다.

3. 상권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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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에서는 신촌 일원과 더불어 대학들을 끼고 있는 대학 번화가의 쌍두마차이며, 홍대거리 못지않은 젊음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단, 분위기는 대학로 쪽이 연극 극장과 같은 예술 시설들이 많은 덕분인지 클럽이 많은 홍대에 비해 좀 더 쾌적한 편이다. 하지만 엄격히 통제된 생활을 하는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의 신학생들은 밤에도 불이 밝은 대학로 주변을 '라스베가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대학로라는 이름과는 안 어울리게(?) 근처에 고궁과 종묘가 있는지라 장년층도 은근히 자주 보인다. 창경궁은 바로 옆이고, 창덕궁과 종묘도 도보로 2~30분 거리로 그다지 멀지 않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의 혼재를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당장 바로 옆에 성균관이 있다.

대학가+도심권인지라 대상권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명동, 신촌, 홍대거리 등과 함께 서울 강북의 손꼽히는 상업 지역으로 꼽히며, 대학로 주변으로도 음식점들이 많다. 지금은 홍대, 신촌의 아성을 뒤잇는 밀집지가 되어 있다. 대학가답게 가격대도 인근 도심부보단 그나마 양심적인 편. 그러나 역시 번화가인지라 물가가 만만친 않다. 그래서인지 아예 물가가 상대적으로 싼 성신여대입구역 주변에서 노는 사람도 있다. 그 외 카페나 노점상도 당연히 많다. 대명거리부터 대학로 일대를 걸어보면 분식이나 달고나 같은 걸 파는 가판대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학로 상권은 크게 2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학로[3] 인근, 대학로에서 창경궁로 사이 일명 대명거리, 성균관로 주변으로 나뉜다.[4] 각 부분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고 상가의 가격대도 다르다. 더 자세히 나누면 대학로 인근도 두 부분[5]으로 나눌 수 있고 혜화로터리 인근이나 방송통신대-홍익대대학로캠퍼스 등에 위치한 소규모 상권들도 있다.

한국 연극계의 메카로서 영화의 메카인 충무로와도 거리가 가깝다. 말하자면 한국의 브로드웨이[6]으로 연뮤덕들의 천국이자 돈 털어가는 헬게이트.[7] 동숭아트센터 등에서 하루에도 수십 편의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곳이며 이곳에서 연기 경험을 쌓아 데뷔한 배우나 개그맨들도 많다.

다만, 문제는 이 때문인지 각종 호객행위도 판을 친다는 것이다. 이런 호객행위를 하는 연극들 중 다수는 할인율이 쎄고 선정적인 통속극 혹은 신파극이 많다. 따라서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인터넷 등으로 충분히 공연 정보를 검색하고 표를 예매해서 가는 것이 좋다. 연극계에서는 이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듯하다. 참고로 호객행위를 녹취(음성, 영상)하여 '좋은공연안내센터'에 신고하면 우수공연 티켓을 즉시 증정해 준다고 한다. 이 '좋은공연안내센터'에서는 할인 연극 정보나 연극 팸플릿 등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호객행위에 말려들지 말고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 다만, 건물 임대료 등이 크게 오르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연극인들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성북구 쪽으로 극장을 옮기는 사태도 생기고 있다.[8]

버스킹 공연도 활발한 지역이다. 주로 마로니에공원이나 대명거리 입구, 소나무길 등에서 버스킹을 하는데, 특히 토요일에 찾아가면 높은 확률로 버스킹하는 공연자를 만날 수 있다.

오락 관련으로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PC방들이 초기부터 도입된 선구적인 지역 중 하나였다.[9] 청소년 오락실도 우리오락실[10]을 포함해 여러군데 있었지만[11], 2010년대 이후로는 우리오락실 1호점만 유일하게 계속 영업해오다가[12] 2023년 대빵오락실 체인에 인수되어서 캐주얼 대상의 업소로 리모델링되었다.

1985년부터 4년간은 주말에 차량통행을 금지시켜 차 없는 거리에 갖가지 문화 공연을 열어 젊음과 낭만의 장소로 만들고자 했으나, 지나친 음주 행위와 각종 사고로 인해 1989년 차량통행 금지조치가 없어졌다. 친구들과 차 없는 도로 위에 모여앉아 소주파티하던 낭만도 없어졌다. 대신 대명거리 바로 옆의 소나무길이 비슷한 의도로 주말에 차량통행 금지를 하고 있다.

4. 소재 대학교

대학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금도 많은 대학들이 위치하고 있다. 다음은 대학로에 있는 대학교의 목록.

그리고 거리는 약간 떨어져 있지만 동국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고려대학교도 대중교통으로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있다. 신촌에서도 도로 상황만 좋다면(...) 20분 안쪽으로 도착할 수 있다. 서울 버스 272 참고.

때문인지, 성균관대로 가는 KT 대리점 맞은편 PC방에서는 수강신청 시즌에 성균관대, 서울대, 동덕여대 학생들이 함께 수강신청 및 수강변경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도 있다.

5. 연원

현재 모습만 보면 성균관대학교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나 싶지만[20], 실제로는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이 위치해있던 데서 비롯된 것이며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성균관도 소재하고 있기에 역사적으로도 대학로가 맞다.

대학로는 경성제국대학 대학본부 및 도서관을 포함한 동숭정 법문학부 캠퍼스와 연건정 의학부 캠퍼스 사이를 가르는 12間 도로였다. 삼천리(1941년 3월호) 참조.

이하 내용은 기사를 참조.

5.1. 조선시대

조선시대엔 특히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불타면서 메인 궁궐이 된 창덕궁[21] 옆에 있어, 지금의 서울대병원 자리인 언덕에 오르거나 낙산에 오르면 궁궐을 내려다볼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보안 구역이 되어, 한양도성 내부임에도 불구하고 개발되지 않은 토지가 상당했다.

예외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은 현재의 명륜동 일대인 성균관 인근의 반촌(泮村), 즉 성균관 노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던 공간이었다. 이 곳은 후술되어있듯 성균관 유생들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는데 현재의 대학로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묘하게도 명맥이 유지된 셈이다. 이외에는,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을 지금의 서울대병원 자리에 짓고 주변의 황량함을 개선하기 위해 이곳에 거주할 사람들을 모집하면서 형성된 연건동 일대 정도가 민가로 조성되었고, 다른 곳은 민가 자체가 드물었다.

5.2. 구한말

조선 후기부터 이미 도성 밖의 성저십리까지 인구가 집중되던 상황에 한성 내부의 금싸라기 땅을 놔두는게 아이러니해서인지 대한제국 시기 도심 개발이 이뤄지면서 이곳 대학로 연변을 포함함 교외지역 개발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 때 입지하게 된 대형기관은 공업전습소와 대한의원이었다. 해방 후 경성법학전문학교가 개편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 본관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 바로 공업전습소어다. 실업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1907년 현재의 동숭동 약 1만 평의 부지에 건설된 공업전습소는 목공, 토목을 비롯해 도기, 염직 등 여러 실습 위주의 교육을 진행하였다.

같은 해에 대한의원도 설립되었다. 대한의원은 병원과 의학교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대규모 병원이었다. 위치는 현재의 연건동 서울대병원 본원 자리로, 당시 영희전(永禧殿)[22] 남쪽의 마등산(馬凳山)과 그 인근의 민가를 매입한 약 49,000여 평의 부지이다. 현재 서울대병원이 약간 언덕인 것을 감안하면, 그 곳이 당시 마등산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5.3. 일제강점기 초기

1910년대, 한일병합조약 체결 후 조선총독부는 구한말 설립한 기관들을 격상시키며 확장해갔다. 공업전습소는 1912년 분석과 시험연구를 할 수 있는 중앙시험소를 설립하여 공업기술 발전을 보완하고자 했고, 1916년 관립학교로 승격해 구제전문학교인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가 되었다. 대한의원 역시 크게 확장되어[23]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칭되었고, 대한의원 내에 있던 의학강습소 또한 1916년 관립 의학전문학교경성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어, 혜화동 일대에는 당시 총 3개의 관립학교 중 2개의 관립학교가 자리한 셈이 되었다.[24]

이러한 대규모 거점 시설들이 지역에 자리함에 따라 이곳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도로 정비와 대중교통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15년 경복궁에서 개최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앞두고 8개의 노선이 완공되었다. 이 중 혜화동과 명륜동 일대 토지를 수용하여 창경궁 식물원에서 총독부의원을 지나 남쪽의 본정(현재의 충무로)과 대화정(현재의 필동)까지 이르는 11호선, 일명 의원통(醫院通)이 개수되었다.

5.4. 경성제국대학 건립

이러한 지역의 변화는 1920년대 최고조에 달했다. 바로,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효과였다. 1923년 청량리경성제대 예과 캠퍼스를 건설할 때에도, 6-7만 평이 필요한 학부(본과) 캠퍼스 부지는 재정 문제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의학부 부속병원이 될 총독부의원이 연건동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로 연변이 유력한 후보지로 꼽혔고, 결국 1925년 총독부의원 부지를 포함한 현재의 연건동동숭동 일대 총 9만 2천 평을 캠퍼스로 삼아 경성제국대학이 건설되었다. 경성의 시가지와 인접하면서도 저렴한 토지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러한 토지가 대규모로 남아있던 점이 경성제대 학부(본과)의 입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었다. 1923년 동숭동과 연건동의 지가는 평당 5-6원이었으나, 대학 신축 후 평당 26-27원으로 폭등했다.

그리고 경성제대와 더불어 혜화동 일대에 이미 위치하고 있었던 학교인 경성고공, 경성의전, 불교중앙학원, 경학원 등과 더불어 ‘학교촌’을 이루면서, 오늘날 '대학로'라 불리는 지역의 모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대학로가 정식명칭이 된건 후술되어있듯 해방 이후긴 하나, 말 그대로 대학들이 모여있는 거리라는 뜻의 대학로는 관습적 지명으로 이때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 경성제대 시절부터 도로를 대학로로 칭하면서 주변 지역까지 대학로로 지칭된 기록이 다수 존재한다.# 또 다른 당시 신문기사에서는 “지역 내 제복점과 문방구점, 서점, 그리고 여관 등의 상점이 즐비하게 들어설 것이라 전망”했고, “학교촌이라 이름을 전하는 혜화문 안에는 머지않아 신문화촌(新文化村)이 이루어질 것이라” 보기도 했다.

5.5. 해방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경성제국대학 본부와 예과(의예과 포함), 법문학부, 이공학부(이학계열) 등이 미군정청국대안에 따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25]으로 개편되면서,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대가 있던 서울대학교 동숭캠퍼스[26] 및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개편된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가 위치한 이곳에 한국 정부에 의해 정식으로 대학로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공식 도로명으로서 대학로의 명칭이 붙은 것은 1965년이며[27], 이보다 앞서 1955년에 이 일대를 관할로 한 대학동이라는 행정동[28]이 있었으나, 1970년에 서울시내의 행정동이 대대적으로 정리되면서 사라졌다.[29] 또 상기했듯 경성제대 시절부터 비공식적이지만 도로를 대학로로 칭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학교 동숭캠퍼스에서는 '미라보 다리'로 세느강을 건넌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때 대학로는 왕복 4차로에 동숭동쪽으로 개천이 있었다. 사실 이 개천은 북악산의 남쪽 사면을 흘러내려와 청계천에 합류하는 하천인 흥덕동천(興德洞川)이다.[30]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 그 흥덕동천을 세느강으로, 문리대 본관쪽으로 연결된 다리를 미라보다리라 불렀다. 현재의 연건캠퍼스경모궁이 있던 위치이고[31], 전 문리대인 마로니에공원을 잇는 다리이니, 이 미라보다리는 사실 조선시대 응란교(凝鸞橋)이다.[32] 관악캠퍼스가 새로 생겨서 문리대 등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고 1981년 서울 지하철 4호선 공사를 하면서 개천은 복개되어 지금의 왕복 7차로 대학로로 확장되었다. 현재 연건캠퍼스의 건물들을 제외한 구 서울대학교 건물 중 일부는 현재 연극 공연장 등 예술 관련 시설로 쓰이고 있다.

6. 여담

흥미로운 점은 조선시대부터 이곳이 현재와 성격이 비슷한 장소였다는 것이다. 과거 성균관 주위에는 성균관에 쇠고기를 제공하거나 잡일을 하는 백정, 즉 반인(泮人)들이 모여 사는 반촌(泮村)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이들은 성균관 출신 관료들의 비호를 받아가며 성균관 유생 등을 상대로 반촌 일대를 화려한 유흥가 지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대학로의 서편인 성균관로와 소나무길 일대[33]가 과거 반촌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명거리 입구에는 이를 짧게 설명하는 안내석이 있다. 또한 대학로의 동편인 혜화동과 동숭동 일대는 갖바치[34]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하니, 나름 조선시대 한양에서는 지금의 신사동 가로수길 등처럼 당시 패션을 주도했던 곳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것으로 볼때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왁자지껄한 거리라는 인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이 도로 지하를 지나며, 혜화역이 설치되어 있다. 대외적으로 혜화보다 대학로로 더 잘 알려져 있기에 이 주변에서 상업을 하는 사람들은 혜화역을 대학로역으로 바꿔달라는 민원을 넣고 있지만 그때마다 서울특별시에서는 기각하고 있다. 또한, 혜화동 로터리의 버스 정류장들에는 도심에서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등 강북 지역으로 오가는 버스의 대부분이 정차한다.

출근시간과 평시에는 마로니에공원에서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진입하는 차량이 많고 퇴근시간에는 혜화로터리/이화사거리 방향으로 가는 차량이 많아 교통정체가 심하다.

마로니에의 '동숭로에서' 노래의 동숭로가 바로 이 대학로이다.

대학로 하면 서울의 대학로가 제일 유명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대학교가 있는 도로는 웬만하면 대학로라고 부르다 보니 대학로라는 도로명이 알고 보면 엄청 많다. 대학로 문서 참조.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관악구로 이사가면서 그 부지에 조성된 것이 바로 마로니에공원이다. 서울대학교가 떠나면서 본래는 고층아파트를 세우려고 했으나, 학교와 사회 각계의 반발로 공원 부지로 돌렸다고 한다. 마로니에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과거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교문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바로 앞에 큰 나무가 서 있었는데, 이 나무가 마로니에 나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일본인 교수가 심은 일본 칠엽수였고, 지금 마로니에공원에 있는 나무들도 대부분이 일본 칠엽수이다. 진짜 마로니에 나무는 3그루 정도뿐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야외공연장과 풍류마당 등이 있으며, 거리의 예술가(주로 미대생)들이 마음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허용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서울대학교 문서 참조. 2012년 봄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 2013년 10월에 공사가 끝났다. 바닥을 대리석으로 포장하고 야외 공연 시설을 크게 개량했다.

마로니에공원에서 동쪽으로 걸어가면 낙산공원이 있는데, 과거 해방 이후에는 시민아파트 중 하나인 낙산 시민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시민아파트가 노후화되는 등의 원인으로 낙산 시민아파트가 해체된 후 일대의 낙산 성곽을 복원, 지금은 시민공원이 되었다. 공원내의 작은 박물관에 가면 이 일대의 역사를 간략하게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할 것. 단, 대학로에서 낙산공원 정상까지 올라가기가 빡세다 [35]

대학생들이 많이 모이던 특성상 1987년 6월 항쟁 시기에는 주요 시위 거점이기도 했다. 서울대학교가 1975년에 동숭동에서 관악산 기슭으로 옮긴 것도 이와 관련 있다는 해석이 있다. 서울 시내와 매우 가깝고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대학로-동숭동 일대보다는 당시만 해도 산골짜기인 관악산 자락이 학생 시위를 진압하는데 더욱 쉽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대학로 11길 갈림길 근처에서 춤추는 종이인형을 팔던 노점이 있었다. 각종 판촉문구들이 노점에 새겨져있었는데 가장 압권이었던것은 차카개 살자(...). 피카츄, 뽀로로 그림 밑에 실을 개발새발로 연결하고 바닥에 놓아서 그 실발달린 종이인형이 춤추는 듯한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사기로 밝혀졌다.[36] 실제로 거기에 혹해서 종이인형을 사가지고 온 사람들이 아무리 스피커와 실을 연결해도 미동하지않는 종이인형을 보고 땅을 치고 울었다는 후문이 있다. 아무튼 그 종이인형 노점은 대학로뿐 아니라 명동 등지에도 있었는데, 나름대로 길거리 명물이었지만 신고받았는지 2010년대 이후로는 사라졌다.

매주 일요일엔 혜화 로터리 주변에서 필리핀인들이 길거리 시장을 열고 있다. 필리핀은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이라, 필리핀인들이 인근에 위치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길거리 장터가 생겨난 것이다. 대학로의 필리핀 장터 혜화동 성당에서 일요일에 따갈로그어 미사를 따로 할 정도로 필리핀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주로 필리핀식 먹거리를 판매하는데,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맛이나 가격은 필리핀 현지와는 다를 확률이 높다 참고로 만약 가볼 생각이라면 교통상황이 복잡하니 대중교통이나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혜화로터리에 있는 우리은행 혜화지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요일에도 업무를 본다. 다만 당연히 한국인 상대론 영업하지 않는다. 애초 일요일에 영업하는 것 자체가 혜화동 성당에 모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송금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요일에 혜화영업점을 찾는 고객은 모두 외환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

1956년부터 영업하고 있는 오래된 다방이 있다. 이름은 '학림다방'으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옛 동숭동 캠퍼스를 나온 사람들의 회고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 고풍스러운 옛 인테리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편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이 애용하던 다방으로 나와서 더욱 유명해졌다. 학림 사건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소극장을 상징하는 '학전'은 33주년이 되는 2024년을 맞아 문을 닫을 뻔 했으나, 문예위는 창작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건물주와의 임차계약이 끝나면 내부 공사를 거쳐 다시 학전의 문을 열 계획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로가 그동안 거쳐온 길을 다룬 글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음식점인 '진아춘'이 아직도 영업 중이다. 원래 주인은 1970년대에 가게를 팔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이후 재개발 및 지대 상승 문제로 2번이나 이사했지만 새 주인이 명맥을 이어서 계속 영업 중이라고 한다. 다만 이때 부동산에 관련된 분쟁이 상당했는지, 옛 진아춘 자리엔 한동안 건물주를 비난하는 글들이 붙어있기도 했다. 여담으로 진아춘의 원래 주인은 이민가기 직전, 1960~70년대 당시 서울대생들이 외상을 하면서 맡겨놓은 손목시계들 중 끝끝내 안 찾아간 손목시계 100개를 서울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당시에는 손목시계가 현대의 스마트폰 같은 느낌과 비슷했기에 시계를 맡기고 외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이 시계들은 서울대학교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다만 서울대 박물관은 인근의 연건캠퍼스가 아닌 관악캠퍼스에 있다.

성균관대학교에 중국 유학생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혜화동 로터리 쪽에 중국어 서적을 파는 곳(화문서적)이 하나 있는데, 중국어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하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 성균관대 앞을 중심으로 마라탕, 마라샹궈, 꿔바로우[37], 훠궈 등의 중식 요리를 파는 곳이 늘어나서 보면 육개장집보다 마라탕집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일 정도. 특히 마라탕집들은 맛으로 유명해 유명 맛집으로 소개되어 있다.

대학로 인근인 성균관로 주변은 좀 옛날 대학가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균관로 위쪽으로 올라가면 서울 시내에서 가장 오래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재래시장이 남아있다(명륜시장). 이 시장에는 여전히 돈없는 대학생들의 배를 채우기 좋은 싼 식당이나 싼 술집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물가가 오르고 대학로 상권이 성균관대 정문 쪽으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시장 내 가격도 점점 상승세다. KT 앞에서 성균관대 정문 쪽+유림회관 반경 50m 지역까지는 아예 대학로 상권과 물가가 같다고 봐야 하며, 예전에 그렇게 많지 않았던 대형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세렌디피티, 테이크파이브)도 들어와있다.

성대사거리에 티플러스와 GS왓슨스가 자리한 건물이 있었으나 건물이 통째로 세븐스헤븐(현 Kings Bean Coffee)으로 바뀌었고, 이후에 1층에 롭스가 입점하게 된다. 대신 성균관대 정문으로 올라가는 길에 올리브영이 하나 더 생겨서 왓슨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38] 성대 정문으로 올라가다 보면 개인사업자들이 운영하는 테이크아웃 카페가 입점해 있고, 정문을 지나 삼거리에서 쪽문 방향으로 올라가면 저렴한 식당+쥬시 같은 음료 가게 등이 많이 있다.[39]

쪽문진입 전 볼 수 있는 유림회관 옆 골목에는 곱창, 치킨 등을 파는 술집이 쭉 늘어서 있다. 삼거리에서 쪽문 방향인 왼쪽으로 가지 않고 직진하여 좌회전하면 성북구한양도성혜화문숙정문 사이 구간, 서울과학고등학교, 서울국제고등학교 방면으로 갈 수 있다.

대학로 내 공연장들은 극한의 여초 시설이므로 여자 화장실의 수요가 무척 높다. 이를테면 브릭스시어터는 지하 1층에 남자 화장실 및 여자 화장실을 설치했음에도, 계단에 여자 화장실을 하나 더 설치했다. 링크드림아트센터는 매표소 겸 객석 2층을 담당하는 지하 1층에 남녀 화장실이 각각 설치했지만, 객석 1층을 맡는 지하 2층에 여자 화장실을 두 개나 설치했다.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은 여성용 칸막이가 9개나 있음에도, 여성 관객들은 줄을 선다.

지나다니다보면 출퇴근하는 배우들을 볼 수도 있다. 성균관대학교 주변답게 성균관대 과잠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7. 연선 주요 시설

8. 관련 문서


[1] 종로5가역에서 장충체육관까지.[2] 대학로의 터줏대감이었던 김철민-윤효상 콤비의 버스킹. 1989년부터 시작해서 2019년까지 계속되었던 길거리 공연이다. 보통 마로니에공원에 주말 15시경 가면 볼 수 있었으나, 김철민이 2019년부터 암을 진단받고 2021년 12월 16일 사망하게 되면서 안타깝게도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물론 윤효상은 김철민 사후에도 마로니에공원을 지키고 있어 가끔 길거리 공연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3] 도로 이름으로의 대학로. 혜화역 옆.[4] 취소선을 치고 2부분이라고 한 이유는 마지막 성균관로 주변은 대학로 상권으로 보지 않고 성균관대 상권이라고 별도로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위기도 대학로와는 제법 다르다. 오히려 고려대학교 인근과 비슷하다[5] 예전 서울대학교 동숭동캠퍼스 지역은 학교가 이전하고 구획 정리를 잘 해놔서 상가 건물을 네모반듯하게 짓기 쉬운 관계로 넓고 개성있는 건물이 많고 당연히 임대료도 비싸며 그에 걸맞은 높은 가격대의 업종이 들어와 있다. 다만 이 일대는 북촌이나 홍대거리와 같이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모습도 보인다. 반면에 예전 주택가였던 곳은 대지 특성상 건물 상태가 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혜화역에서 먼 탓에 임대료도 저렴하고 업종도 그에 맞는 업종이 들어와 있다.[6] 하지만 실상 브로드웨이라기보다는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분위기에 조금 더 가깝다.[7] 다만 대학로의 뮤지컬 작품들은 마니아층이나 신인 극작가들 위주의 소규모 뮤지컬들이 많은 편이다. 메이저 뮤지컬 작품은 대규모 극장에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8] 이미 오래 전부터 공연만 대학로에서 하고 연습실이나 극단 사무실은 인근 한성대입구역에 위치시킨 극단도 많았다.[9] 국내 인터넷 허브격인 KT 혜화지사(혜화전화국)가 여기 있는 관계로 농반진반 모뎀으로 연결하던 초창기 인터넷 문화는 대학로에서 발원했다는 말도 있다. 아무래도 저렴한 가격에 '속도'가 제대로 나오니... 1996년 인터넷 행사 때는 KT 혜화지사에서 재능교육 사옥까지 당시로는 초고속인 T3 라인을 구축한 일이 있었다.[10] 정확히는 1호점. 2호점은 한성대학교 인근 골목에 있다.[11] 혜화역 2번 출구에서 바로 옆의 現 이음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건물 지하에 위치한 <만남의 오락실>과 KFC 혜화점 건물에 입주한 <게임월드>라는 지하오락실이었다. 규모는 후자가 좀 더 컸고 옛날 방송에서도 촬영 로케 삼을 정도(1998년도? KBS의 TV는 사랑을 싣고였던 듯하다.)로 꽤 대형화된 오락실이었던듯하다. 이외에도 2000년 전후로 추정되는 시기에 조이폴리스라는, 일본 세가오다이바 등지에서 운영하는 동명의 오락실을 심하게 의식한듯한 이름의 대형 게임센터가 반짝 있었다는 듯하다. 이후 2020년 기준으로 만남의오락실은 횟집(?)으로 쓰이다 이음예술원이 건물을 통째로 써서 지하는 이음예술원의 연습실이며, 게임월드는 주점이 한두 번 들어섰다가 지금은 대학로의 흔한 연극상영장으로 바뀐 듯하다. 물론 상영장이 그렇듯 상영되는 연극 프로그램에 따라 간판이 바뀐다.[12] 본점만 해당. 한성대입구 분점에는 영향이 없다.[13] 마로니에공원(구 동숭동 캠퍼스)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해있다. 간호대학, 의과대학, 치의학대학원, 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학교치과병원이 연건캠퍼스에 위치해 있다.[14] 대학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캠퍼스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모든 출석수업은 전국의 지역대학에서 이뤄지고 대학본부의 역할만 하고 있으므로 중앙도서관 정도를 제외하면 일반 학생들은 굳이 들를 일이 없기 때문.[15] 대학로 초입에 위치해 있다. 해당부지는 과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이 위치해 있었으며 관악으로 이전 후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사용했다. 이후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이전하고 홍익대학교가 부지를 매입, 대학로캠퍼스로 만들었다. 이 때문인지 부지 매입 당시 홍익대학교는 단순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디자인 역사의 산실에 캠퍼스를 세운다고 밝힌 바 있다.[16] 아름관, 다음관.[17] 공연예술학부.[18] 융합예술학부.[19] 한성대학교 본교도 근처에 있지만 대학로 인근에 별도의 캠퍼스가 있다.[20] 직접 가보면 알 수 있지만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와 대학로는 거리가 꽤 있다. 정문을 기준으로 걸어서 빠르면 15분, 보통은 20분 정도 걸린다. 성대생들은 공강 때 대학로 가서 놀면 되겠네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강의실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왕복으로 1시간 가까이 잡아먹는다. 그래서 공강시간에 대학로까지 가는 성대생은 없다. 물론 이전 역사까지 고려하면 성균관이 조선 시대 내내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대학로 분위기가 있긴 했다.[21] 여기도 불탔었지만 선조~광해군 집권 시기 복구했다. 참고로 경복궁 복구는 흥선대원군 시절 이뤄진다.[22]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었으나, 1899년 종묘로 사도세자의 신위를 옮겨 그 기능을 잃은 후 변화한 명칭.[23] 본래 사당 자리였기 때문에 토지를 매수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한적하며 자연 풍광이 우수한 자연친화적 병원을 조성할 수 있었다.[24] 나머지 하나는 광화문통에 있었던 전수학교가 승격된 경성법률전문학교로, 이후 경성법학전문학교로 개칭되며 국대안으로 경성제대 및 관립전문학교들이 서울대로 통합될 당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서울법대가 2009년 지금의 서울대학교 로스쿨이 된 것.[25] 현 인문대학 + 사회과학대학 + 자연과학대학.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통합되기 이전까지는 인문-사회-자연의 기초3과 학문이 묶여있었던 문리과대학이 소위 학문의 성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성에 걸맞게 당시 서울대학교 대학본부도 이곳에 위치해있던 경성제국대학 본부를 계승하여, 동숭캠퍼스인 현재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가의 집'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다.[26] 당시 캠퍼스 풍경(3번 째 슬라이드)[27] 많은 자료에서는 1985년부터 대학로라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대학로가 문화거리로 지정된 해이다.[28] 관할 법정동은 효제동, 연건동이었다.[29] 이후 대학동이라는 이름은 서울대학교가 새로 이전한 관악구 신림동의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구 신림9동)의 명칭으로 부활한다.[30] 1900년대 들어 대학천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출처: 흥덕동천 관련 블로그.[31] 지금은 경모궁의 흔적은 없지만, 근래에는 서울대학교병원 부지 내에서 함춘원지를 복원하는 등 궁궐로써의 경모궁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32] 참고문헌: 위키백과 흥덕동천 항목.[33] 대명거리는 반촌을 가로지르는 반수천이 복개된 곳이다.[34] 조선 시대 가죽신 따위의 가죽 물건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팔던 사람.[35] 다만 낙산공원이 1차 목적지면, 동묘앞역에서 내린뒤 서울 버스 종로03을 타고 낙산공원 꼭대기 종점에서 내릴수 있는 우회루트가 있긴 있다.[36] 게다가 이 수법이 원래는 스페인, 일본 등 해외 관광지, 번화가에서 유행하던 수법이었는데, 그 사기를 고대로 수입한것이라 한다.[37] 성대 600주년 기념관 식당(삼성웰스토리 직영)에서도 학식 메뉴로 팔고 있다.[38] 현재는 롭스와 올리브영 모두 폐업한 상태이다.[39] 그러나 쪽문 쥬시는 2018년 폐업하여 가장 학교 안쪽에 있는 집이 쥬스식스가 되었다.[40] 대학로의 기점이다.[41] 대한민국의 모든 해외망 통신이 통과하는 유일한 통신관문국이다.[42] 최초의 학생관이다.[43] 서울대학교 동숭캠퍼스가 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