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9:00:38

설인귀(대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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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덕화설인귀.jpg
1. 개요2. 특징3. 극중 행적
3.1. 1차 고구려-당 전쟁3.2. 2차 고구려-당 전쟁3.3. 3차 고구려-당 전쟁3.4. 고구려 멸망 이후3.5. 후반부 행적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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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의 등장인물. 배우이덕화. 이덕화의 유행어인 ‘이 손안에 있소이다’도 깨알같이 대사에 집어넣는 등 잔재미도 준다.

2. 특징

거란 출신의 당나라 장군으로, 이해고와 더불어 극의 양대 최종보스이자 서브 주인공. 주인공의 숙적인 만큼 극중 등장인물 가운데에서도 무력이나 지략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는 인간흉기이다. 다만 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인게 아쉬움이다.[1]

마냥 선하고 고결한 캐릭터인 대조영과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극 후반부로 갈수록 열폭하며 이미지가 약해지는 이해고와 달리 극중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 담화 및 협상의 달인이다. 극 초반에는 장군이 되기 위하여 무공을 뽐내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전투보다는 정치와 전략으로 극을 운영하고 있다.[2]

이해고와 같이 주인공인 대조영을 괴롭히는 포지션이지만 설인귀는 제왕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 대조영과는 달리 말단 당나라 병졸에서 대장군 자리에까지 오르는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이민족인 거란족 출신 문제 때문인지 반대파[3]로 보이는 자들도 많아서 대조영 못지않게 생고생을 많이 하는 인물.[4][5]

천한 출신이라 그런지 글을 못 읽는 등 무식한 모습을 제외한 모든 능력, 예를 들면 상황 판단 능력과 임기응변 등등이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만큼 캐릭터 자체는 상당히 명민하다고 볼 수 있다. 무인으로 출세한 인물답게 무력도 상당한 모습을 보인다.[6][7] 글을 읽지 못하는 탓에 병법서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한 지휘관이지만, 수많은 경험과 번뜩이는 감각[8]만으로 전술을 계획하고 실행해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이라는 대조영도 주인공 보정을 받아서 망정이지 죽어라 구르는 모습[9]을 자주 보이는 만큼, 설인귀 역시 작중 구르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빼놓을 수 없는 특징으로는 신으이신의를 중요시한다는 점인데, 대표적으로 대중상이 설인귀를 한번 살려주고 수없이 많은 도움을 받는다. 또한 2차 고구려 정벌에서 대패하자 패전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갇혀 개고생을 하는데, 측천무후나 거란에게 책임을 돌리면 장땡인데도 끝내 언급하지 않고 자신이 다 뒤집어쓴다.[10] 이들은 나중에 설인귀에게 큰 도움이 된다. 훗날 이진충이 신홍에게 살해당하여 국상이 일어났을 때, 설인귀가 적국의 왕이었던 그의 영령을 달랬다.

반대로 의리 못지않게 뒤끝도 상당한 편인데, 뭔가 상대방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면 반드시 복수를 한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전공을 모조리 가로채는 것도 모자라 매질까지 하고 쫓아냈던 부복애가 나중에 패전의 주범으로 몰리게 되어 부복애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자 단칼에 죽여버리고 적당히 둘러댄다. 뒤끝의 정도는 별 상관 없어서 방효태는 설인귀 휘하 거란 병력들을 이 옮기고 말똥냄새 나는 잡군이라고 무시하다가 나중에 이들이 큰 전공을 세우자 역으로 설인귀가 방효태의 발언[11]을 들고와서 깐다. 또한 거란이 당나라를 상대로 반기를 들었을 때, 당시 설인귀는 되도록이면 국가 간의 전쟁을 막아보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신홍의 사주를 받은 거란 장수들이 설인귀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이후, 거란에게 배신감을 느낀 설인귀는 적극적으로 거란의 멸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건들이 스노우볼을 굴린 격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설인귀는 거란국을 멸망시켰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자기의 부장인 이문은 상사인 그를 그렇게나 괴롭혀 댔지만 그는 자기의 후임을 위해 이문을 용서했고 결국에는 완벽히 복속시켰다.

의리 있는 무인의 모습부터 지략가의 면모, 또한 홍패와의 티키타카하며 개그캐릭터까지 총망라 하기에 흑수돌과 더불어서 감초역할을 넘어 주연인 대조영만큼 인기가 많았다.
작중 설인귀와 대중상의 보이지 않는 우정도 인간미를 보여줬다. 다만, 나라를 잃은 유장인 대중상의 화법이 단호함이 앞섰다면, 설인귀는 늘 여유로운 화법으로 대중상을 대했다. 서로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대중상과 설인귀는 서로 죽이려 하지 않았다. 설인귀는 가진게 없어도 빚은 지지 않고 산다는 신조를 지킬정도로 목숨을 구해줬던 대중상을 존중했다. 대중상도 마냥 설인귀를 적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결국 대중상이 먼저 이해고로 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전사하였으나, 설인귀도 그 때부터 건강이 삐걱대기 시작했고, 대조영의 발해건국 소식을 듣고 얼마가지않아 당태종 이세민의 환영을 보면서 대조영을 막지 못함을 용서구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삼국지로 치면 조조손권을 합친 느낌이다.

3. 극중 행적

3.1. 1차 고구려-당 전쟁

첫 등장 때부터 거란족 출신의 말단 병사[12]라고 당나라 장수에게 무시당했지만 극초반에 대중상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당나라 장수들을 구하는 등 상당한 활약을 펼쳤으며 그 신묘한 무예를 눈여겨본 당태종에 의해 그 자리에서 덜컥 장수로 임명되었다. 이후에 차차 공을 세워 나가며 거란 출신이라 멸시받은 와중에도 당나라에서 제일가는 명장으로 거듭났다. 이후에 고구려 멸망에도 크게 일조하였으며 계속해서 고구려의 부활을 기도하는 대중상, 대조영 부자와는 평생의 숙적으로 지냈다. 그와중에 대중상과는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를 친분을 쌓아왔다.

1화의 요동성 전투에서 보급부대 말단병사로 첫 등장한다. 작중 언급에 의하면 천출인데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당나라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요동성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와중에 요동성의 군량고 위치를 알아낸 설인귀는 부복애라는 장수에게 군량고를 습격하자고 제안한다. 부복애와 강하왕 이도종은 군량고를 습격해 박살을 내었고, 식량 부족에 시달린 요동성은 결국 함락당하고 만다. 이 공로로 부복애는 장군으로 승진하지만, 부복애는 자신을 도와준 설인귀에게 포상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군영 이탈죄를 물어 설인귀를 처벌한다.

이후 포로로 잡혀 나무에 매달려있던 대중상(대조영의 아버지)를 감시하는 역할로 재등장. 대중상에게 물을 주려다[13] 대중상의 계략에 낚여 오히려 인질로 잡히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대중상과 함께 요동성을 탈출한다. 도주 중 당나라 추격대에 포위당했으나, 때마침 부지광이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 추격대를 물리친다. 부지광은 설인귀마저도 죽이려고 했으나 대중상은 자신을 도와준 자를 죽일 수 없다며 설인귀를 살려보낸다.

안시성 전투에서 강하왕 이도종과 방효태가 부지광의 고육지책에 낚여 오히려 고구려군에게 몰살당하기 일보직전인 상황에서, 설인귀는 복면을 쓰고 나타나 고구려군의 추격을 막아내고 당나라 군대를 구해낸다. 부복애와 이도종 등은 설인귀의 정체를 알자 설인귀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당태종 이세민은 설인귀의 공로를 치하하여 그를 장군으로 승차시킨다. 이후 부복애의 제안으로 당나라 군대는 토산을 쌓기 시작했는데, 설인귀는 고구려 군이 분명 토산을 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선, 지형을 탐색하여 아예 예상 경로까지 예측한다. 이도종 등의 상관들은 그를 무시했으나, 설인귀는 명령도 무시하고 자기가 예측한 장소에서 매복을 하였고, 예상대로 대중상과 고구려 군이 그 곳으로 잠입을 시도한다. 매복에 낚인 고구려군은 몰살당했고 대중상역시 포로로 잡히나, 아직까진 당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없던 설인귀는 이전의 은혜에 보답한다며 대중상을 살려보낸다.

그러나 고구려군이 토산밑에 땅굴을 파서 토산을 무너뜨려버렸고, 부복애가 패전의 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부복애에게 앙심을 품고있던 설인귀는 부복애를 사로잡으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독단으로 부복애를 처단해버린다. 홍패는 원래 부복애의 부하였으나 이 쯤해서 설인귀의 부하가 되었고, 이후 평생동안 설인귀에게 충성을 바친다.

안시성 전투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당나라군에 피해가 누적되면서, 전황은 오히려 고구려 군에게 유리하게 되었고, 결국 당나라군은 안시성에서 철수했는데, 양만춘은 깃대를 화살로 맞추어 그 깃대가 당태종의 눈을 베게 만든다. 이 때 당태종 옆에 있었던 설인귀는 이세민의 상처를 지혈해준다. 이후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에게 추격당하고, 최소 3일을 버텨야 했던 이도종이 이끄는 결사대가 겨우 하루만에 전멸하는 막장 상황에서, 설인귀는 당태종에게 자신이 가짜 황제 노릇을 하여 시간을 벌겠다는 제안을 한다. 각종 패배로 인해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은데다 설인귀가 마음에 들었던 당태종은, 설인귀에게 '최대한 오래 버텨라'가 아닌 '살아서 돌아오거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여간 설인귀는 가짜 황제 노릇을 하면서 3일을 버텼는데, 하필이면 사신으로 온 인물이 대중상인지라 금방 계략이 들통나버린다. 곧 고구려군이 공세를 가했고,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는데다, 무조건 살아돌아오라는 황제의 명령도 있는 만큼, 설인귀는 도주할 준비부터 한다.

설인귀와 홍패는 간신히 살아남아 당태종에게 돌아왔고, 결국 1차 고구려-당전쟁은 오히려 고구려가 당나라의 영토 일부를 빼앗고, 국경지역을 약탈해버리는 결과로 끝난다. 자존심이 상한데다 수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충격에 빠진 당태종은 드러누웠고, 자신의 진가를 인정해준 당태종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설인귀는, 고구려를 멸망시켜 당태종을 위한 복수를 완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3.2. 2차 고구려-당 전쟁

2차 고구려-당전쟁 무렵에 안시성 전투 당시 태어난 대조영(모종의 이유로 본명이 아닌 개동이라고 불렸다)이 성인이 될 무렵, 설인귀는 다른 장수들에게 밀려 뒷전 신세가 된 상태였다. 당태종 사후 다른 장수들은 천출에다 이민족 출신인 설인귀를 차별했다. 이에 설인귀는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준 측천무후의 최측근이 됐는데, 다른 장수들은 측천무후를 적대하다보니 설인귀는 더욱 미운털이 박혀 무시당할 수밖에 없던 것. 2차 고구려-당 전쟁 직전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는 5부가 귀족들을 조종하여 연개소문을 암살하고자 했으나, 암살계획이 대조영에게 발각되어 결국 실패하고 만다. 연개소문측은 암살의 배후가 설인귀임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결국 설인귀와 홍패를 당나라로 돌려보낸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재침공 했으나, 당나라 군부는 설인귀를 철저히 배제하였고, 휘하의 부하라고는 홍패밖에 없는 설인귀는 영주 쪽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거란부족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영주로 떠난다. 이런저런 고난 끝에(고려성으로 가던 대조영이 거란에 잡혔다가 초린을 인질로 잡고 탈출하기도 했다.),설인귀는 영주성을 거란에게 주는 조건 하에 거란군을 지휘하게 되었고, 이 때 이해고와 초린을 부하로 들인다. 당나라 장수들은 거란군을 냄새난다며 무시하고는 보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고는 고구려의 방어선을 우회하여 연남생이 이끄는 고구려군을 매복 공격[14]하여 몰살을 시키는 등 큰 활약을 하였고, 거란군에 대한 평가는 반대로 뒤집힌다. 이때 대조영측은 당나라군으로 위장하고는 보급선을 교란하였고, 이세적은 설인귀에게 대조영을 잡는 임무를 주었으나, 작전 도중 그만 초린과 이해고가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해고가 초린을 구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대조영에게 작전 계획을 다 불어버리면서, 당나라의 총 공세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후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 군에 쫓겨 도주하던 중, 화가 치밀어오른 설인귀는 연개소문을 향해 활을 한번 쏴봤는데, 화살이 연개소문의 가슴에 꽂힌다(나중에 연개소문은 이 상처가 악화되어 죽는다). 고구려군이 코 앞까지 쫓아오자 방효태는 혼자 남아서 고구려군을 막아보겠다고 제안했고, 설인귀는 방효태에게 시비를 걸다가 살아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방효태는 결국 대조영에게 처단당했고, 그 사이에 설인귀와 거란군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간신히 돌아오긴 했으나, 문제는 당나라 조정에서 패전의 책임을 설인귀에게 묻고자 했던 것. 거란에 있던 설인귀와 홍패는 장안으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패전의 책임을 거란에게 씌울 수 있었음에도 설인귀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24회) 마지막으로 이적은 패전의 책임을 측천무후와 거란에게 씌운다면 설인귀를 다시 복직시켜 주겠다며 제안을 하지만 설인귀는 끝내 거절하였고, 결국 설인귀와 홍패는 쫓겨나고 만다.[15] 설인귀와 홍패는 모진 고생 끝에 완전 상거지가 되어 간신히 영주에 도착하는데, 설인귀가 거란을 팔아먹기는 커녕 오히려 모든 책임을 자기 혼자 뒤집어 쓴 것에 감동한 이진충은, 설인귀를 끝까지 돕기로 약조한다. 이후 이해고, 초린 일행이 고구려에서 첩자활동을 하는동안, 설인귀는 영주에서 거란군을 조련하며 고구려 공격을 준비한다.

3.3. 3차 고구려-당 전쟁

대막리지가 된 양만춘이 암살당한 이후 당나라는 고구려를 또다시 침공한다. 이에 고구려에서는 외교로 해결한다며 설인귀에게 사신을 파견하지만, 설인귀는 사신을 만나기는 커녕 바로 사신의 목을 쳐버리고는, 거란군과 함께 안시성을 공격한다. 물론 안시성을 공격한 것은 전략적 이점 보다는 1차 고구려-당전쟁의 원한을 갚고자 했던 것. 그러나 안시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인지라 공격은 지지부진했다. 순전히 설인귀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공도 세우기 힘든 곳에서 헛고생을 하는 것에 거란족의 여론이 크게 나빠지고, 설인귀도 겉으론 고집을 부렸지만 이전 고당전쟁의 트라우마가 도져서 내심 의욕이 꺾였다. 이해고는 공을 세우기 위해 신홍의 전략을 받아들여 설인귀에게 먼저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안시성을 점령해도 늦지 않다고 제안한다.

결국 설인귀는 이를 받아들여 고구려 군 몰래 전선을 빠져나가 검산성으로 향한다. 검산성에서 당나라 본대를 막고있던 고구려군은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했고, 고구려군 본대를 이끌고 있던 지명천 장군은 설인귀와의 일기투에서 패하여 결국 홍패의 칼에 맞아 전사한다. 이후 본대와 합류해 기나긴 공성전을 지나 신홍과 모개, 설계두를 평양성에 잠입을 시켜 심리전을 벌여 고구려 내부를 분열하게 하였고, 이런 심리전에 넘어간 신홍의 형 신성과 남부욕살 부기원, 장군 사부구가 합심해 평양성의 남문을 열면서 거란군과 당나라 대군을 들어가게 하면서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3.4. 고구려 멸망 이후

시일이 흐른 후 요동 정벌로 한참 버티던 대중상의 안시성을 마침내 함락시키고 이세민의 한을 풀 생각에 들뜨지만 대중상이 숙영의 설득으로 결전 직전에 성을 텅 비워두고 백성들을 데리고 아들 대조영에게로 홀라당 튀어버리더니 남겨두고 간 편지에는 성 맡겨두고 가니 고이 잘 지키라는 티배깅성 문장을 적어놓았다. 잡힌 고사계가 말한 대로 그렇게 원했던 안시성을 너무 맥없이 얻은 허무함에다, 중요한 대조영은 병력을 비운 사이 검모잠과 합세해 안동도호부를 엉망으로 해버리고 대중상은 보란듯이 그쪽으로 도망쳤으니 사실상 소득이 없다는 결과에 극심한 정신패배를 느껴서 한참을 이게 뒤끝으로 남는다. 안동도호부 시절에는 이것 때문에 대중상에게도 우애보다 증오가 앞섰을 정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성의 안동도호부를 맡게 되지만 대조영을 비롯한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의 기습을 당하여 매번 낭패를 보았는데 이해고, 신홍이 매번 도와줘서 대조영을 제거할 계책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요동성으로 안동도호부를 옳긴 이후 다시 돌아온 대조영의 동명천제단 세력이 당나라 요인들을 살해한다. 이후 이해고를 불러 동명천제단을 추적하려 애쓴다. 이해고의 필사적인 추격과 개별적으로 잡입한 이문의 부하들이 활약한 덕에 동명천제단이 사라지고 보장왕마저 압송해간 후 안동도호부연남생에게 맡기고 본인은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문이 온갖 계략으로 사로잡은 대조영을 없애려고 획책을 부리나 귀부산의 인간 사냥터까지 가서 대패를 당하자 이현과 연관되어 죄를 묻게된 이문의 압송을 담당하고 살아남은 대조영에게 같이 동행한 대중상과 함께 충성 맹세를 받게 되었다. 그의 의도를 예측한 미모사가 대중상에게 미리 충성 맹세 하라 지시한 것. 이후 대조영은 이문을 피해 당나라의 손에서 빠져나가고 대중상도 설인귀를 직접 무력으로 설득해 그렇게 당나라를 떠났다.

3.5. 후반부 행적

측천이 당나라 정권을 장악한 이후에 스스로 관직을 내놓고 나갔다고 이문에게서 언급된다. 하지만 관직을 내려놓아도 그간 측천의 신뢰가 남다른지 장안성 인근에 작은 오두막에서 홍패와 함께 지내는데 측천이 무승사를 보내어 설인귀를 설득한다. 대조영이 당나라로 탈출하고 10년 후 이진충과 손만영을 설득하여 거란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16] 나름 발버둥을 치지만 조문홰와 이문이 고구려 유민들뿐만 아니라 거란 백성들까지 징집하려고 하자 결국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나, 사전에 이를 눈치챈 이문에 의해 이진충과 같이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후 대조영이 거란을 도와 반란에 성공하여 영주를 되찾는데 성공하였으며 본인 역시 영주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 당나라로 돌아가려고 한다. 당나라로 돌아가기 전 거란과 전쟁을 피하고자 조문홰를 살려달라고 이진충에게 부탁을 하는데 성공하나 당나라로 가는 날 당일 이해고가 조문홰를 살해하였고, 조문회의 목이 담긴 상자를 들고 당나라로 돌아간다. 도중에 신홍의 사주를 받은 설계두와 도협에게 습격당하지만, 홍패와 함께 역으로 제압해 돌려보낸다. 당나라로 돌아가 그간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것도 잠시 측천의 명령에 의해 거란토벌대 총사령관이 되어 원정군을 이끌고 거란을 침략한다.[17] 여기서 설인귀는 유관도안무대사로 임명된 뒤 이문은 유관도안무부사로 임명된다.[18] 이후 전투에서 이문을 미끼로 삼아 대조영과 거란군을 유인하고 그 사이에 이해고의 거란군을 급습하여 거란에 큰 타격을 입히고 이해고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19] 영주성까지 다다르면서 거란을 압박하지만 대중상이 이끄는 3만 군대가 지원군으로 오자 상황은 백중지세가 된다. 해결책을 찾는 도중 이문이 화형당하게 생기자 이해고와 대조영이 주도권 싸움을 하게 하기 위해 이해고와 이문을 포로 교환을 한다.
"나는 100명의 이해고보다 단 한 명의 이문이 더 소중하다! 비록 이해고는 훌륭한 장수이기는 하나 내 적이다. 허나 이문이 저놈은 내 수하이니 자식과도 같다. 말을 좀 안 들어도! 말썽을 피워도! 제 자식을 죽게 하는 부모는 없느니라!"
이후 설인귀가 그만 쉬라며 권하는데도 이문이 끝까지 쫓아와서 왜 자신을 구했냐고 묻자 자칭 '설인귀의 오른팔'이라는 홍패마저 내보내면서 속내를 털어놓는다.
네 질문에 진심이 담겨져 있으니 나 역시 가식없이 답을 해주겠다. 나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질 않았어. 내 이번 전쟁에 이기고 대조영과 이해고를 없애면 다행이겠지만, 만일 패배를 한다면 나 대신 누군가가 그들과 싸워줘야 한다. 난 그 일을 이문, 네놈이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어. 난, 절대 널 좋아하지 않는다. 허나, 대조영과 이해고가 이 북방의 주인이 되는 꼴은 더더욱 보기가 싫다! 허니 어쩌겠느냐? 그 놈들을 한 번이라도 이겨 본 이문, 네놈을 내 후계자로 삼을 수밖에! 싫든 좋든, 넌 내 후임을 맡아야 한다. 이건 이 설인귀의 결정이 아니다. 하늘의 결정이야! 죽을 때가 다 된 늙은이가 천명을 어겨서 하늘에 밉보일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이에 자신은 나이가 들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고백하며 이문을 후계자로 임명한다.[20] 그 동안 설인귀에게 온갖 모욕과 멸시를 주었던 이문은 설인귀가 자신을 구해준 것뿐만 아니라 위로해주면서 이런 결정을 내리자 이문은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21] 이후, 이문은 설인귀의 충복이자 오른팔이 되어 홍패와 함께 설인귀를 보좌한다. 이후 영주성을 다시 공격하지만 대조영의 계책으로 패배하고 홍패의 등쌀에 마지못해 시체로 위장하지만 대중상에게 들킨다. 대중상은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다 이지경이 됐냐"며 한탄하고, 설인귀도 이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죽이라 한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라는 설인귀의 말에도 대중상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자는 설인귀가 아니다, 죽지 않았다면 어딘가에서 살아서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있을 것이고 내 손에 죽을 자는 바로 그런 설인귀다' 라고 말하며 설인귀를 죽이지 못한 채 놓아준다.[22] 대중상이 돌아가자 '나 설인귀 맞는데...'라며 오열했다.

본국으로 돌아온 설인귀는 측천무후에게 거란대조영을 갈라서게 만들기 위해 대중상을 진국공에 봉하라는 조언을 한다.[23] 그리고 설인귀의 예상대로 이 일을 계기로 거란과 대조영 측은 한동안 서로를 의심하고 대립한다. 돌궐의 원정군을 준비하라는 측천의 명에도 불구하고 설인귀는 묵철을 찾아가 영주를 공략하라며 회유한다. 때마침 상황이 잘 돌아가 묵철에게서 영주를 공격하겠다는 서안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측천은 예전에 총기를 잃고 약간의 광기까지 가지게 된 상태라 이문은 측천과의 만남을 피하라 권유하지만[24] 그럼에도 굳이 측천을 만나 용서를 받지만 측천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던 와중 대조영이 요동을 정벌한 탓에 신성을 지키던 양소위가 도망치듯이 장안에 오자 양소위와 대립한다.

이진충이 죽어 거란과 대조영의 유대가 예전같지 못함을 간파하고[25] 이문을 돌궐로 보내 동맹을 맺게 하고, 본인은 안시성을 찾아가 대조영에게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거란을 공격하라 권유하지만 거절당하고 대조영이 세워놓은 오합지졸 군세들을 보고 돌아온다.[26] 대신 거란을 찾아와 손만영과 이해고를 회유해 대조영을 공격하게끔 설득한다. 설인귀의 계획대로 이해고가 출병하자 그 사이에 돌궐과 당나라 연합군이 영주성을 습격하고 설인귀는 적절하게 합류한다.[27] 이해고의 부재에도 연합군이 영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대책을 세우는 도중 이문에게서 이해고가 대패했다는 사실을 듣고 손만영을 항복시키기 위해 영주성을 찾아간다.[28] 자신들을 함정에 빠뜨린 원흉을 죽이려는 손만영에게 이해고가 대패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29] 결국 손만영이 항복을 택하지만 성안으로 들어온 묵철이 본색을 드러내 손만영과 설인귀의 뒤통수를 거하게 쳐버린다. 그동안 오만방자한 돌궐의 행태에도 어떻게든 참아왔지만 자신의 이름까지 먹칠을 한 행동에 설인귀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다만 이는 오래 전 고구려 멸망 때 설인귀가 똑같이 저질렀던 짓이기도 했다. 당시에 이진충을 비롯한 거란족 또한 고구려 원정에 참전했으니[30] 같은 상황의 역지사지인 셈이었다. 어떻게 보면 악역 특유의 내로남불이고, 설인귀도 별별 일 다 겪고 나이도 먹으면서 나름 달라졌다는 표현일수도 있다.

영주로 잠입한 이해고의 포로를 통해 이해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묵철에게 이해고를 잡으러 간다 선언한다. 그러나 묵철도 거란 함락의 전공을 빼앗길 수 없기에 설인귀가 잡은 포로를 강탈하여 이해고를 잡으려들자 인내심이 폭발한 설인귀는 포로를 살해해버리고 이해고를 잡으러 요하성으로 간다. 그러나 이해고의 저항이 거센 탓에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는 사이 묵철의 돌궐군이 뒤따라온다. 묵철이 이해고를 비롯한 거란인들이 보는 눈앞에서 손만영을 참살해버림으로써 그들이 격분하는 병크를 저지르자 성을 함락시키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 와중에 예전에 이해고에게 투항한 당나라 장수들을 통하여[31] 결국 돌궐군 몰래 성을 접수하여 이해고를 비롯한 수뇌부들까지 포로로 잡는데 성공한다. 성안에 들어온 묵철이 거란 포로들을 강제로 데려가려하자 신경전을 벌이는 도중 대조영의 군사에 의해 요하성에 갇히게 된다. 대조영이 거란 포로를 받는 조건으로 길을 열어주자 영주로 귀환한다. 당의 황태자가 가짜였다는 걸 알게 된 묵철[32]이 설인귀를 죽이려 하자 본인을 죽이면 이문 휘하의 당 군사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묵철을 떠나게 만든다.

이후 대조영에게 의탁하다가 도망쳐 온 이해고를 통해 대조영이 백성들을 동모산으로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계획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측천에게 원정군의 총사로 이해고를 추천한다. 그러나 무측천의 반대로 무산될 뻔했으나 대조영을 없애지 못할 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33] 양소위, 이해고와 함께 영주로 출병하고 양소위와 이해고, 이문이 출전한 이후 영주에 주둔하고 있다가 이해고와 이문이 양소위와 장현우를 살해하자 또 뒤통수를 친 이해고는 물론 최근엔 신임했던 이문까지 같이 끼어서 사고를 친 것에 이것들이 똥은 지들이 싸고 치우는 건 자기한테 시킨다고 억울해하다가 어쩔 수 없이 측천에게 이 사실을 고한다. 벌은 받겠지만 대조영이 패한 다음 받게 해달라며 측천에게 주청한다. 이해고가 이끄는 원정군이 장기전으로 갈 경우 불리해질 것을 예상하고 군수물자를 보급해준다. 이때 포로로 잡힌 대중상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사신을 맡아달라 하지만 거절당한다. 천문령 전투에서 대중상이 당나라군을 상대로 동귀어진을 시도하자 대중상을 죽이면 고구려군이 저항이 거세질 것을 내다보지만[34] 끝내 대중상은 이해고에게 죽고 난전이 벌어진데다가 이검이 데리고 온 말갈군에 의해 본진까지 털려버리고 도주한다.[35] 도주하는 도중 이문을 만나 패배 소식[36]을 확인하고 다 같이 자살하려 하지만 차마 하지 못하고 영주로 귀환한다.

이후 영주에서 노환으로 쓰러지면서도 이문에게 대조영을 물리칠 마지막 계책을 알려준다.[37] 허나 이문은 실패하고 죽어가는 설인귀에게 차마 실망감을 줄 수가 없어 이문은 거짓으로 돌궐과 동맹이 성공했다는 거짓보고를 하고 설인귀를 대조영과 이해고를 넘는 진정한 영웅이라 추켜세운다.[38] 이에 설인귀도 기뻐하며 이문이 있었기에 자신이 그 동안의 숙적들(대조영, 이해고 등)과 싸울 수 있었다며 고백한다.
설인귀: 이문아... 정말 고맙구나. 내 비록 몸이 늙어갔어도 한순간도 대조영이 두렵지 않았느니라. 그건 말이야...이문이 니가 날 지켜줬기 때문이야.
이문: 장군이야말로 이 못난 이문에게 진정한 사람의 길을 가르쳐주셨사옵니다.
설인귀: 그리고...홍패야.
홍패: 예, 장군...
설인귀: 날 위해서 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홍패: 아니옵니다, 장군. 이 홍패가 허구헌 날 장군의 속만 썩혀드렸사옵니다.
설인귀: 아니야, 아니야... 너는 내가 가장 낮은 밑바닥에 있을 때도 날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느니라... 내가 가자고 하면 그 곳이 불 속이든 물 속이든 가리지 않고 따라주었느니라...

그리고 이문이 장안성으로 떠나자 당태종의 환영을 보면서 자신의 여정을 회상하고 극에서 퇴장했다.
폐하...이 설인귀를 용서해주시오소서... 이 못난 놈이 끝내 고구려의 부활을 막지 못했사옵니다. 대조영... 그 놈에게... 패하고 말았사옵니다... 폐하... 선황 폐하... 폐하! 이... 이 설인귀도 데려가시오소서! 폐하...! 폐하...!

그렇게, 설인귀는 당태종에게, 마지막까지 대조영과 고구려의 부활을 막지 못함을 용서를 구하며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유언과 함께 눈을 감는다.

4. 기타

  • 상당히 인간적인 미가 무척 많은 것이 주목할만한 점이다. 오랜 원수였던 대조영도 애증의 관계였던 대중상의 눈물과 호소에 감동받아 풀어주는 등, 대인배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부관인 홍패와의 코메디 씬 등이 돋보인다. 예를 들자면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설인귀가 편지를 받아들고 읽는 척 하자 곁에서 홍패가 "장군, 거꾸로 드셨습니다."라고 툭 내뱉는 등 이덕화의 열연이 특히 빛났던 캐릭터로, 그 인기는 주인공인 대조영을 뛰어넘었으며 사실상 이 드라마를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민족에 대해서라면 지극히 배타적이었던 기존 사극의 틀을 깨부수고 설인귀와 같은 주요 악역에게도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과 호쾌함, 그리고 코믹함을 불어 넣어 훌륭한 캐릭터를 창조해낸 점은 획기적인 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인공이 사극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개고생을 하는 사극의 주요 악역인 만큼 역시 온갖 개고생을 겪는데 극 중에 패전의 책임을 지고 쫓기던 중에 마구간에서 여물을 훔쳐먹는다거나 권력 투쟁 중에 별 추태스러운 일도 겪는 등 갖은 개고생을 하며 주인공인 대조영에 지지 않는 포스를 발산하면서 성장형 캐릭터가 뭔지 보여줬다.
  • 작 중 수많은 인물들이 설인귀와 교감하거나 적대하더라도 실력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란족과도 거란국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적대하기 전까지 계속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며[39] 평생 적대한 고구려 세력에서도 대중상과 걸사비우와 인연을 맺고 그를 늙은 오랑캐로 보고 천대하던 이문마저도 끝내 진정한 수하로 만드는 강력한 인물이다.
  • 역사 속의 설인귀와는 달리 드라마 속에선 무려 10여년을 더 살아서 최종회까지 나와 나중엔 좀비로 불렸다. 실제로 설인귀는 683년[40]에 죽었고, 이진충의 반란은 695년. 발해는 698년에 건국되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발해 건국 이후에도 설인귀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생몰년도가 실제 생몰년도와 다른 인물이 수두룩한데, 일단 제3차 고구려-당 전쟁 전 667년에 죽은 소정방과 고구려 멸망 다음 해인 669년에 죽은 이적도 고구려 부흥운동 당시까지 살아있고, 발해 건국 전 천문령 전투에서 전사한 걸사비우도 발해 건국까지 살아있는 채 나왔다.[41] 당연히 역사 속의 설인귀는 대조영과 전혀 엮이지 않았으며, 이미지를 훼손했기 때문에 나당전쟁에서의 패배도 다 묻혔다.
    • 후반부 행적 중 일부는 실제 역사에서의 적인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정사에서의 적인걸은 본래는 처형되었어야 할 이해고와 낙무정을 당의 무장으로 등용함으로써 천문령 전투가 일어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 이세민 이후의 주군인 측천무후와는 오래전부터 공생해온 관계이고 설인귀 쪽에서 지략도 뛰어난데다가 오랫동안 충성을 바친 탓에 남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측천에게서도 신뢰를 받는다.[42] 이 때문에 설인귀가 당나라를 배신한 이해고를 추천했을 때도 이해고는 못 믿지만 설인귀를 믿는 기분으로 원정군을 이끌게 했다.
  • 하층민 출신의 천하장사이며, 능력이 출중하지만 천한 출신 때문에 오랜기간 멸시와 차별을 받았다는 점,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상관을 진정한 주군[43]으로 여겼다는 점, 그리고 임혁이 연기한 캐릭터와 애증의 관계라는 점에서[44], 이덕화가 전작 무인시대에서 연기한 이의민 캐릭터와 비슷한 점을 보인다. 차이점이라면 이의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설인귀는 간간히 개그캐릭터 모습을 보였다. 배우 개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설인귀는 68회에서 계필사문의 도적단과 접전을 벌이던 도중에 양손 도끼를 빼앗아 휘두르기도 했는데, 도끼 휘두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이의민이다.
  • 뛰어난 무예를 당 태종에게 보여 출세한 만큼 무력도 상당히 뛰어난데, 흑수돌과 합을 맞출 수 있는 설계두가 이진충과의 반란 이후 당나라로 돌아가던 설인귀가 중간에서 자는 도중 급습하는데도 역으로 제압해버렸다. 설계두도 거란에서 손꼽히는 무력을 가진 무인에 장군 반열에 있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무예다.
  • 초반 촬영하던 중 이덕화가 대형 사고를 겪어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아래 앞니 전체를 다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현재 앞니는 전부 임플란트라고 한다.
  • 만두를 아주 좋아한다. 어디를 가든 만두부터 찾는다.
  • 장군이 된 이후로는 휘하 장졸들을 이끌고 등장할 때마다 양팔을 위로 들며 어깨를 들썩이며 푸는 듯한 특유의 자세를 취한다.
  • 초반에 낚시를 좋아한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 마찬가지 배우 개그로 44화 에서 하오, 페이 챙 하오! (好, 非常好!- 좋아 아주 좋아))라 외치는 장면이 있다.
  • 작중 행적 중에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 재미있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사서에는 설인귀가 주필산 전투에서 흰 옷을 입고 무쌍을 찍었다고 나오지만, 작중에서는 붉은 옷을 입고 날뛴다. 그런데 설인귀의 조상이자 남북조시대의 맹장인 설안도가 붉은 옷을 입고 전장에서 홀로 무쌍을 찍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작중 설인귀는 제2차 고구려-당전쟁의 패배를 거란이나 측천무후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이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 역사에서 설인귀의 아들인 설눌은 거란에게 대패한 뒤 다른 장수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워서 처형당하게 만든 기록이 있다. 설인귀가 실제 역사와 다르게 거란족으로 설정된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1] 그래도 수족과 같은 홍패가 늘 곁에 있어 서한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2]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데 고구려가 멸망한 뒤의 시점에서는 설인귀는 나이가 지긋이 든 노인장인지라 아무래도 젊은 대조영이나 이해고처럼 싸움만 하기에는 체력이나 기력이 딸리는지라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전투를 하기가 힘들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3] 순수 당나라 혈통 문무신료.[4] 대조영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노비로 전락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제자리를 찾긴 하지만 백제성에서 대조영의 관상을 본 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는 마을 촌장이나 전쟁에서 세운 공이 크다하나 노비한테 장군 자리를 주는 것은 반대하는 신료들에게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본래 신분은 노비가 아니었다고 반박해주는 등 순수한 능력만으로 자수성가했다고는 하기 어렵다. 오히려 저주받은 아이로 찍혀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였던 대조영을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살렸으니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5] 설인귀는 작중 나오는 자신에게 적대하는 웬만한 네임드는 모두 상대하였다. 대조영과 이해고는 두말할 필요없고 고구려의 연개소문, 양만춘, 보장왕, 심지어는 신라의 문무왕까지 상대했다.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과는 두 말할 필요 없는 일생일대의 숙명의 라이벌이다.[6] 흑수돌에 살짝 처지는 무력을 가진 설계두가 설인귀의 노숙 중 기습을 가했음에도 역으로 제압당할 정도이다. 더욱이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이 나이가 들어 전성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1 VS 1이라면 아직도 이해고는 물론 대조영에게조차도 우위를 보이는 것을 볼 때 대중상의 숙적이자 최대 라이벌인 설인귀 본인 역시도 1 VS 1이라면 이해고는 물론 대조영보다도 우위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7] 물론 전성기였다면 이해고는 물론 대조영조차도 1 VS 1로는 상대가 안되고 두 명이 동시에 덤벼야지만 그나마 싸움이 성립될 것으로 보인다.[8] 작중에서는 전장의 피냄새를 맡고 싸운다고 스스로 말했다.[9] 사극 주인공들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개고생을 많이 했다.[10] 설인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적과 소정방이 원하는 답이 저 둘이었다. 측천무후는 정치적으로 엮였다 쳐도 거란은 패전의 주범이라고 봐도 무방하므로 적에게 잡혀 기밀을 술술 분 이해고를 당나라로 압송하면 끝인데 오히려 기회를 주고 자신이 잡혀간다.[11] 설인귀 왈, 왜? 이옮는다며?[12] 실제 설인귀는 오늘날의 산시 성 윈청(运城) 허진 시(河津市)에 해당하는 강주 용문 출생으로 엄연한 한족이다. 등용문으로 유명한 바로 그 용문이다. 말 그대로 용 된 꼴. 다만 북방 출신인 점을 들어 한국 야사나 사극 등지에선 이민족 출신으로 설정하기도 한다.[13] 동정이 아니라 자신이 관리하는 포로가 죽으면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14] 첫번째 공세에서 연남생은 당나라 군을 방어선 뒤쪽의 골짜기로 유인하여, 당나라군을 박살내었다. 이해고는 방어선을 멀리 우회하여 골짜기로 숨어들었고, 똑같은 전술을 시도하던 연남생은 역으로 거란군의 매복에 걸리고 만다.[15] 설인귀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던 측천무후가 남편 당 고종에게 과거 설인귀가 선황을 구출한 공을 상기시킨 게 받아들여져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16] 본인 역시 거란 출신인지라 이진충에게는 거란이 멸족되는 것을 보고 싶지않아 지금은 참고, 뒷일은 후손들에게 맡기라고 한다.[17] 설인귀는 처음에 측천의 명령을 거부했으나 측천이 경고를 하는 것은 물론 고민에 빠져있을 때 홍패의 설득으로 총사령관이 되기로 한다. 그 대신 측천을 찾아가 감옥에 갇혀있는 장현우와 마인절은 물론 그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문을 풀어줄 것을 요청하였다.[18] 실제 유관도안무대사로 임명된 건 무삼사였고, 부사는 요숙이었다.[19] 장현우와 마인절이 이해고를 추격하고 이해고는 이들과 싸우지만 이해고는 결국 사로잡힌다.[20] 원래는 이해고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지만 이해고가 당나라가 아닌 거란국의 장수가 되었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대조영과 이해고를 이긴 이문을 후계자로 생각한 것이다.[21] 이때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이문을 보며 "멍청한 놈"이라며 웃으며 독백하는데 비록 원수지간처럼 지냈지만 얼떨결에 개과천선을 시켰으니 했던 말과 달리 기분은 좋았던것으로 보인다.[22] 예전부터 설인귀가 쌓아온 친분 탓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대조영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적이 있어서 차마 죽이지 못했다.[23] 역사적 사실로 걸사비우도 허국공에 임명하는데 그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는 내레이션으로 '걸사비우를 허국공에 봉하였다.'라고 한마디 짧게 나오긴 하는데 너무 금방 지나가버리는데다 드라마에선 멀쩡하게 걸사비우보다 위인 대조영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어색한 장면이다.[24] 설인귀가 원정군을 준비하라는 측천의 말을 어겼기에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에 피하라고 권유한 것이다.[25] 더군다나 거란은 유민들을 주겠다는 수차례 약속에도 불구하고 대조영의 통수를 친 탓에 사이가 안 좋았다. 물론 이진충은 대조영과의 동맹을 위해 유민들을 내어주자는 입장이었고, 자신의 사후에도 이를 지키라는 유지를 남겼지만 이해고와 인간쓰레기 신홍을 비롯한 강경파들이 실권을 쥐고 있던데다가 황제인 손만영은 유우부단한 성격인 탓에 지켜지지 않았다.[26] 사실 설인귀도 이게 가짜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설인귀의 목적은 거란국의 군사력이 빠져나가는 것이어서 대조영의 의도대로 이해고가 요동으로 출병하도록 유도한다.[27] 이 와중에 설인귀를 알아보지 못한 돌궐인들에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28] 다만 처음에는 성문으로 유인하여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초린과 검이가 들어오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한 탓에 결국 성 안으로 들어왔다.[29] 여기에 이문이 이해고의 깃발까지 보여 확인사살까지 해준다.[30] 부기원이 요구한 평화합병에 약탈도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제일 앞장서서 반발했던 게 거란족이었다. 고구려 멸망하기 전 연남생이 설인귀와 거란족에게 한 말이 비슷하게나마 들어맞은 셈이다.[31] 마인절과 이다조가 이문과 내통했다. 마인절과 이다조가 조인사에게 당으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조인사는 이를 거절하고, 마인절과 이다조가 성문을 열었다.[32] 사위로 보냈던 황태자가 가짜였다는 걸 안 묵철의 딸이 가짜 황태자를 죽였고, 그걸 묵철에게 전했다.[33] 비록 무측천의 허락을 받았으나 무측천은 대조영을 없애는 즉시 이해고의 수급도 함께 가지고 오라고 했다.[34] 홍패가 '어차피 고구려군은 한 줌인데 무서울 게 뭐냐'고 말하자 홍패에게 네가 대조영과 고구려놈들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냐고 쏘아붙이며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귀'라고 치를 떤다.[35] 홍패는 대중상이 죽었으니 잘 되었다며 기뻐하지만 설인귀는 되레 홍패의 뺨을 연신 후려치며 "대중상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되었다"며 노발대발하면서 슬퍼했다. 개인적인 슬픔도 있었지만 고구려군이 격분한 사실에 불안해했다. 당태종 이세민을 따라 종군했던 안시성 전투를 시작으로 일생동안 고구려인과의 전투를 벌이면서 그 경악스러울 정도의 악바리 근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온갖 일을 겪으면서 수많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36] 대본에 따르면 이문을 포함하여 10여 명 밖에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37] 대조영이 나라를 세웠다고는 하나 이미 천문령 전투에서 군사를 많이 잃어 군력이 허약하므로 돌궐을 부추겨서 발해를 치도록 만들라는 것이었다.[38] 사실 설인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생각하는 이문의 정성을 생각해서 거짓으로 속은 척 해준 것이다.[39] 사실 설인귀의 출생이 (어디까지 드라마상에서) 거란족인데다가 당나라 조정과 군대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워낙 왕따를 당하다 보니 그를 받아주는 사람들이라고는 거란족이나 측천무후가 전부였다.[40] 당 고종이 세상을 떠난 해이다.[41] 드라마를 매개로 한 소설에서는 대조영 사후 흑수말갈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그러졌다.[42] 측천은 문무대신들을 무능하다고 까내리지만 설인귀에게는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이런저런 지략을 내보이는 설인귀에게 감탄을 하고 믿어준다. 아무래도 측천 입장에서는 온갖 고초를 겪고 그 자리에 오른 자신과 이민족 출신으로 수많은 고행을 겪으며 자수성가한 설인귀를 동일시 한 모양이다.[43] 설인귀는 당 태종, 이의민이의방.[44] 무인시대에서 임혁은 두경승, 이덕화는 이의민으로 등장하며, 대조영에서도 비슷하게 애증의 관계로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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