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01 21:19:46

묵철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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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대조영
4. 같이 보기

1. 개요

默啜可汗
(? ~ 716년)

돌궐 제2제국의 제2대 가한. 튀르크어로는 카프간 카안(Kapgan Kağan). 일테리시 카안(İlteriş Kağan, 힐질리시가한)의 동생. 이름은 아사나묵철(阿史那默啜).

2. 생애

691년에 힐질리시가한[1]이 죽고 그 아들이 어리자 왕위를 빼앗아 가한이 되었으며, 693년 12월 25일에 영주를 공격했고 당나라에 군사를 파견하자 물러났다. 696년 겨울 10월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항복을 청해 좌위대장군, 귀국공에 임명되었고 묵철가한은 혼인을 요청하면서 하서의 항복한 자들을 모두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당을 위해 거란을 토벌하겠다고 해 좌위대장군, 천선가한에 임명되었다.

696년 겨울 10월 22일에 송막을 습격해 이진충의 처자식, 손만영의 처자식 등을 붙잡았으며, 697년에는 영주를 공격하고 1월 26일에 승주를 노략질했다가 안도매에게 격파되었다. 698년 당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2], 동년 8월 26일에 비호를 공격하고 28일에는 정주를 함락해 자사 손언고를 비롯한 수천 명을 살해하면서 측천무후가 묵철을 참철(斬啜)이라 했으며, 9월 26일에 조주, 정주 등에서 노략질해 남녀 1만여 명을 모두 죽였다가 염지미를 당나라에 돌려보내고 사막 북쪽으로 들어가 40만 명을 거느리면서 만 리를 점거해 서북의 여러 이족들이 묵철가한에게 붙어 중국을 매우 가볍게 여겼다.

701년 8월에는 변경을 노략질했고 703년에는 사신을 보내 딸을 당나라의 황태자의 아들에게 시집보내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704년에 화친을 하기로 하면서 698년 8월부터 억류한 무연수를 돌려보냈다. 706년 12월 9일에 명사를 공격해 사차충의와 전투를 벌였으며, 이후 묵철은 무리를 모아 서쪽으로 가서 돌기시를 공격했다.[3]

711년 1월 7일에 사신을 파견해 화친을 청했고 3월에는 당나라에서 금산공주를 보내자 결혼했으며, 713년 가을 7월 25일에 양자를 보내 혼인을 요구해 당나라에서 남화현주에게 양자의 처로 보냈다. 714년 여름 4월 25일에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혼인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면서 스스로 건화영청태부마 천상득과보천남 돌궐성천골돌록 가한이라 호칭했다.

늙고 쇠약하면서 폭정이 심해졌고 갈라록, 호록옥 등의 부락이 당나라에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묵철가한은 군사를 일으켜 갈라록, 호록옥, 서니시 등을 공격해 여러 차례 깨뜨리자 당나라에서는 군사를 보내 구원하게 했다. 716년에 북쪽에 가서 발예고를 공격했다가 독락수에서 이들을 격파하자 승리한 것을 믿고 돌아가는 길에 대비하지 않다가 발예고에서 흩어진 병사 힐질략으로부터 미루나무 숲에서 갑자기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다.

카프간 카안이 신당서에 따르면 홀로 있을때 자장[4] 학령전과 우연히 만나 참수당했다고 하고, 통감에 따르면 반란을 일으킨 발예고를 완파하고 승리감에 취해 경비병 없이 홀로 돌아가다가 발예고의 패잔병 일부와 우연히 조우, 공격받아 사망하고 그 수급이 자장 학령전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정말 이것이 측천무후와 대등한 위치에 서서 하북을 총공깽으로 몰아넣으며 유목민족 전체를 아우르던 위대한 가한의 죽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다.

칸위는 아들 부구가한이 계승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위를 빼앗겼던 힐질리시가한(일테리시 카안)의 아들 빌게가 부구가한을 죽이고 비가가한으로 칸위에 올랐다.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대조영

파일:묵철가한.jpg

돌궐의 추장. 배우는 강재일.[5] 어째서인지 돌궐 측 인물 중 이름이 유일하게 한자로 나오는 인물이다. 자존심도 강하고 능력도 있지만 발끈하는 경우가 많다. 이진충은 묵철을 굶주린 늑대처럼 탐욕스럽다 평가했고, 측천은 대조영을 덜 자란 호랑이, 묵철은 다 자란 늑대라고 평가했다.[6]
대조영이 귀부산 노예 포로 수용소에 끌려갔을때 첫 등장한다. 포로 수용소의 죄수들 중에서 체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죄수들에게 영향력있는 모습을 보였으며, 처음엔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등 대조영 측에게 적대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수용소 측에서 사면을 조건으로 대조영 암살을 사주하자 살기 위해서 여러 번 대조영 암살을 시도한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대조영을 제거할 기회를 잡았지만 대조영이 무너지는 터널 기둥을 잡고 있어서 고민하던 찰나 대조영의 인간적인 설득에 결국 칼을 거둔다.[7] 이후 대조영과 노예들이 귀부산 인간사냥터로 끌려갈때 재등장하는데, 대조영을 믿지 않고 그대로 산 꼭대기로 도망간 다른 죄수들과 달리[8] 묵철은 처음부터 대조영의 계획에 동참하였고, 결국 대조영 일행과 함께 살아서 귀부산을 나갈 수 있었다. 귀부산 인간사냥터 생존자들이 대조영을 따르게 되고 대조영이 당나라 관직을 받게 되었을때 묵철은 돌궐 부흥을 꾀하는 자신의 형을 도우러 가겠다며 대조영을 떠나 제 갈길을 간다.

10년 후, 대조영이 동쪽에서 세력을 키우고 거란을 도울 무렵 강성해진 돌궐의 카간으로 재등장한다. 여기서는 당나라와 거란, 나중에는 대조영 사이를 저울질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제 3세력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된다. 원래는 당나라와 적대하는 관계였지만 당나라가 묵철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자 동맹을 맺고 거란으로 화살을 돌리며, 거란과 고구려측이 싸우는 틈을 타 빈집을 노려 영주성을 접수한다. 물론 항복을 받아낸 것은 백성들의 안위를 보장하기로 약속한 설인귀였지만 묵철은 우린 그런 약속한 적 없다면서 설인귀를 개무시하고 영주성을 약탈한다.

내친김에 이해고마저 제거하러 요하성으로 발길을 돌리지만 거란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손만영을 죽여버리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오히려 거란군이 결사 항전했다. 이후 잔머리를 쓴 설인귀[9]가 먼저 이해고를 사로잡아버린다. 열받은 묵철이 거란 포로들을 뺏기 위해 당나라랑 대립하던 찰나 대조영의 고구려군에게 사이좋게 포위당해서 요하성에 갇혔고, 대조영과 직접 협상을 통해 이해고를 내주는 조건으로 철군을 보장받는다.

거란을 멸망시켰음에도 당나라와 사돈을 맺으면서 계속 동맹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나라 측 왕자가 가짜 왕자라는 사실이 뽀록나자[10] 분개하여 동맹을 깬 뒤 설인귀를 죽이려 했으나, 자신을 죽이면 자기 수하 장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은 설인귀에 의해 요북 지역으로 귀환한다. 그리고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뒤 검이를 돌궐에 사신으로 보냈고, 설인귀의 명을 받은 이문이 돌궐에 사신으로 왔지만 당나라 대신 발해와 동맹을 맺는다.[11] 133화에서는 대조영에게 같이 당나라를 공격하자고 출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4. 같이 보기


[1] 이름은 쿠틀룩. 돌궐 제2제국을 일으켜 당의 북방을 초토화시켰다. 무측천이 그를 불졸록이라 칭했다고 한다.[2] 돌궐에 파견된 무연수를 억류했다.[3] 707년 당 중종 대에 장인원이 삼수항성을 쌓아 돌궐에 대한 전진 기지를 만들었다. 그 후 중종은 튀르기시, 힐알사 부족과 연계해 돌궐을 북벌하려 했으나 710년 암살당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던 것.[4] 군진에 소속된 장교 중 소장급으로, 요즘으로 따지면 잘해야 중 ~ 대대장급 쯤 되는 지위[5] 태조 왕건에서 추허조 역을 맡았다.[6] 현재로선 묵철이 더 위험해보이는 듯 하지만 차후에는 대조영이 묵철보다 더 위험하게 될것이라는 뜻. 다시 말하면 지금 당장은 묵철이 매우 위협적이라는 얘기다.[7] 이 에피소드를 전후로 해서 대조영 드라마의 캐릭터는 설인귀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상으로만 가득차게 되었다.[8] 산꼭대기는 절벽이라 그 쪽으로 간 자들은 모조리 죽었다.[9] 이문이 이해고에게 잡힌 이래 그의 밑에 있던 마인절과 이다조를 포섭했고, 마인절과 이다조가 신호를 보내자 설인귀의 당군이 요하성에 진입했다.[10] 묵철의 딸이 당 측의 왕자가 가짜인 것을 알고 그 목을 베어 묵철에게 보냈다.[11] 그동안 당이 뒤통수를 친 게 부지기수라 당을 믿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 묵철은 동맹에서 중요한 건이 신뢰라고 하면서 대조영은 신의가 있는 자라고 하였다. 대조영을 귀부산 시절부터 봐 왔던 터라 그와 동맹을 맺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