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8 15:46:39

추허조

趨許祖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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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백제장군.

고려사고려사절요는 추허조로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사기 견훤열전에서는 '추조(鄒造)'[1], 삼국사기의 기록을 인용한 삼국사절요는 '추조(趨祖)'로 기록되어 있다.

별다른 기록은 없고 927년 대야성에서 30여 명과 함께 고려 장수 김락에게 생포되었다는 게 전부이나 견훤이 온갖 노고 끝에 점령한 대야성을 관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견훤 휘하에 있었던 상당한 위치의 장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2. 대중매체에서

파일:추허조2.pn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추허조(태조 왕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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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견훤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용맹이 뛰어나 백제군 가운데서도 필두격으로 꼽힌다. 고구려군의 환선길이나 유금필과 비슷한 위치. 성미가 급한 것으로 나오며, 지식이 모자란 면이 있긴 해도 의외로 꾀를 부릴 줄 알기도 한다. 견훤이 신라의 군졸로 있는 시절부터 능환과 함께 견훤을 따른 것으로 나온다. 배우와 관련한 사정으로 고려군에게 사로잡힌 것과 다르게 고려군의 전투로 사로잡힌 전투 때보다 11년이나 일찍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소설 삼국지 위인전에서는 여러 역사 인물들이 중국의 삼국시대로 오게 되는데, 견훤이 유비와 함께 하기로 하는 것에 불만을 품다가 견훤이 힘이 필요하면서 설득하자 받아들였고, 견훤은 추허조에게 난세이니 좋아하는 싸움을 원 없이 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1] 928년 왕건이 견훤에게 보낸 국서에서 '성 언저리에서 추조(鄒造)를 사로잡을 때에는 쓰러진 시체가 들을 덮었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