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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호평
후삼국시대의 비주류적 인물들을 재조명했다는 면에서 호평을 얻었고, 예전에 주로 제작됐던 조선 시대 사극들의 궁중 음모와 정치, 임진왜란이 주를 이루는 내용과 비교하여 전쟁과 영웅적인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후삼국시대를 다루었다는 점이 큰 호평을 받았다.이 시대는 고증을 살리기엔 역사서에 실린 내용이 너무나도 적어 필연적으로 다양한 각색을 섞어 넣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각색이 드라마의 개연성과 재미를 극대화 시킨것을 부정 할 수 가 없다.
그 중 하나의 예시로 삼국사기에 적힌 궁예의 행적은 왕건을 장수로 부려 같이 나라를 세웠으나 갑자기 폭정을 일으켜 왕건이 이를 처단했다는 내용이 전부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생불에 가까웠던 궁예가 암살 시도로 인해 생긴 고통과 간신들의 꾀임으로 서서히 타락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었고 나중에 이러한 문제요소가 어느정도 해결되었음에도 궁예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미친 절대악이라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어 결국 4기장들과 왕건이 궁예를 처단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구조로 개연성을 확보했다.
이후 삼국시대부터 고려 등 고대 ~ 중세사 사극, 대조영 등의 전쟁 사극 위주로 사극 역사를 바꾸는데 아주 큰 물꼬를 틀었다. 200부작으로 역대 사극 중 최장편 드라마이며 KBS 대하드라마 중 역대 최고의 시청률[1], 블록버스터 사극의 시초로 방영 당시 최고의 스케일, 20여 년이 넘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력, 명장면 등 한국 역대 최고의 사극을 뽑을 때 항상 들어가는 작품이다.
2.1. 캐스팅 관련
왕건 역은 최수종이다. 궁예 역을 김영철, 견훤 역을 서인석이 맡았다.주인공 셋 중 삼국기, 서궁, 한명회 등 꾸준히 대하 역사드라마에서 굵직한 연기를 선보인 서인석의 경우는 캐스팅 후 뒷말이 전혀 없었지만 김영철의 경우 드라마에서 주로 순박하고 나약한 소시민역, 아버지 역을 주로 맡았기에 과연 잔혹한 폭군연기가 가능할까 우려가 있었고 최수종의 경우도 캐스팅 당시만 해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청춘 스타의 이미지[2]가 강했던 탓에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김영철의 경우 알다시피 궁예가 마치 재림한듯한 열연을 펼쳐 궁예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후 기존이미지를 완전 탈피하고 주로 왕이나 보스 역을 맡게 되면서 이후에 출연한 대다수의 사극에서도 왕을 맡게되며 우리 모든 역사에 관여한 배우가 된다.
사실 최수종이 했던 왕건 역의 경우 극중에서 궁예가 살아있는 시기까지는 김영철의 연기력과 비중에 가려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또한 젊은 나이의 왕건을 분하기 때문에 목소리도 굵지 않은 현대극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궁예의 죽음 이후 견훤과 대립하면서부터 캐릭터가 분명해지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황제의 목소리로 변모하며 이후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최수종은 1962년생이지만, 동안 중에 동안이라 10대 후반 시절[3]을 맡아도 위화감이 별로 없는데다 어쨌든 중년이니 중년 가능, 게다가 연기력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보장되어 있어서 적응도가 높았다. 또한 왕건의 위기를 전개하는 동안에도 그 특유의 슬픔 표현을 멋지게 소화해내며 방영 초반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었다는 평가다.
2.2. 캐릭터 관련
전중반에는 궁예, 중후반에는 견훤이 너무 부각 되었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럭저럭 무난한 성장형 영웅인 왕건에 비해 성장적이며 극적인 면이 많은 궁예나 견훤이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궁예와 견훤은 후삼국시대의 한 주축이 되는 나라들을 밑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낸 군주들[4]이고, 왕건은 이미 만들어진 나라(태봉)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자리를 넘겨받아 국호 고려를 되돌린 군주이다. 전자의 과정이 더욱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다.작가도 이 사실을 인지했던지 아직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이전인 아역 시기부터 왕건을 등장시켜 비중을 높이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전개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거기다가 서라벌에서의 둘의 결투(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자 결투)는 비겼다. 이후, 드라마는 견훤과 궁예의 성장부터 시작해 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지다가, 궁예의 자멸과 죽음으로 1기가 끝나고[5], 최종적으로 견훤의 말년 건강 악화된 죽음과 후삼국시대의 통일로 종결되는 드라마다. 사실상 제목만 태조 왕건이지, 실제적으로는 궁예와 견훤,그외 인물들이 더 부각된 작품인 것이다. 특히, 궁예는 전반부 출연 기간에는 이견이 있기는 하나 실질적인 진 주인공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6] 견훤도 후반부 보면 말년까지 꽤 비중이 있었다. 그래도 주인공인 왕건이 성장하면서 궁예와 견훤을 결국에는 최종적으로 꺾는 과정을 보면 전체적으로 성장형·만능형 군주인 왕건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맞다.
3. 비판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태조 왕건/비판 문서로.[1] 역대 사극 시청률 1위는 MBC의 허준이다.[2] 태조 왕건이 첫방송되던 당시는 최수종의 배우 커리어에 있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첫사랑과 야망의 전설이 종영되고 불과 2~3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3] 최수종은 태조 왕건 방영 4년 전에 방영된 첫사랑에서도 극 초반 고등학생이던 성찬혁 역을 맡기 위해 머리카락을 빡빡 깎기도 했었다. 참고로 왕건 방영 시작 무렵의 최수종은 만 38세였다.[4] 정확히는 궁예가 더 밑바닥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견훤은 서라벌의 군관 출신에서 지역 군영의 장군으로 임명되어 내려오면서 해적들과 싸운 후 어느 정도 자산은 있었기 때문에...[5] 궁예는 120화에서 사망하고, 이후부터 131화까지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볼 수 있다. 이 동안 환선길이나 이흔암, 임춘길 등 궁예를 추종하던 인물들이 서서히 제거되고, 청주와 명주(지금의 강릉)의 반란이 겨우 진압되는가 하면 왕건이 철원에서 송악으로 천도하는 등 궁예의 흔적이 깨끗하게 지워진다. 또한 1기의 분위기 담당이었던 아자개도 사실상 퇴장하며(극 최후반에 다시 나오기는 하는데, 캐릭터의 역할이 전혀 다르게 퇴장한다.), 견훤의 셋째 아들 용검이 그제야 등장하는 등 견훤의 아들 교육과 후계자 선정, 신검파와 금강파의 대립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6] 1화부터 120화까지 거의 각 화의 맨 마지막 장면만 모아놓고 보면, 궁예가 나오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나 된다. 신 스틸러라고 불러도 한참 넘치는 수준. 이와 비슷한 케이스는 MBC 선덕여왕의 미실이 있다. 심지어 두 인물 모두 분량이 늘어난 것까지 같다. 이 때문에 궁예 역의 김영철은 2000년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