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0 21:31:33

사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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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자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동양방송_LOGO.png 연기대상 대상
[1] 사미자
김성원
이순재
김희준
여운계
(1970)
안인숙[2]
(1971)
파일:동양방송_LOGO.png 연기대상 최우수 여자연기상[3]
안인숙
(1974)
사미자
(1975)
허진
(1976)
}}} ||
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4_309427_13934007501232034.jpg
이름 사미자(史美子)
출생 1940년 5월 9일([age(1940-05-09)]세), 경기도 파주시
신체 160cm, 63kg
가족 배우자 김관수, 슬하 2남 1녀
종교 개신교(성공회)
학력 이화여자고등학교
데뷔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

1. 소개2. 트리비아3. 출연

1. 소개

경기도 파주시 출생으로 10살 때 6.25 전쟁을 겪었으며 아버지를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나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1963년 성우로 데뷔해 이후 배우로 전향, 중견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예능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대한민국 여배우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미인이었다. 특히 TV 탤런트 중에는 독보적이었다. 초반에 유부녀임을 숨기고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밝혀졌다. 그래서인지 타고난 미모와 젊은 나이임에도 여주인공 역할은 들어오지 않았고, 초반부터 아줌마나 할머니 역할을 많이 맡았다.[4][5] 특히나 깐깐한 시어머니나 깍쟁이 장모 역으로 잘 등장했는데, 동갑인 여운계와 함께 이런 역의 달인이라 할만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춘향전의 월매 역할을 이보다 더 어울리게 소화한 배우는 없었다.

아래 김태희와의 비교 사진은 아주 유명하며 참고로 이 사진을 찍을 당시 사미자는 출산한 후였다.

파일:external/file.thisisgame.com/20080731114851_1064.jpg

영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북한의 김정일이 연기력을 높이 평가했던 남한 여배우라고 한다.

2. 트리비아

  • 성우 출신이라 원래 발음 등 국어 실력이 뛰어나다. 평소에도 젊은 후배 배우들에게 연기력을 키우려면 발음을 정확히 해야한다고 강조하거나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국어 파괴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등 우리말에 관심이 크다고. 국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40대까지도 일주일에 한두권씩 소설을 꾸준히 읽었고, 지금도 손녀의 국어사전을 자주 이용하는가 하면 KBS1의 우리말 겨루기를 매주 챙겨볼 정도의 국어덕후다. "황혼에도… 눈만 뜨면 공부할 생각에 신나" 그러더니 마침내 우리말 겨루기 641회에 출연해서 연예인 최초 명예 달인이 되었으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감탄과 찬양 일색이었다.관련 기사[6]
  • 그 뒤 1대 100 482회에서 1인으로 참가해 7단계 1:17까지 생존했다.(9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 어릴 때부터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다니는 기독교인이다. 이화여고 재학 당시 교회에서 하는 연극에 여주인공으로 출연을 했는데, 그 연극의 남주인공이었던 학생이 이 후 남편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연극에만 몰두하느라 다른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 대학생이 된 후 길거리에서 우연히 재회를 하게 되었다고... 이런 로맨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 개그콘서트 뿜 엔터테인먼트에서 김준호가 분했던 사기자 캐릭터가 이분의 이름을 패러디한 거다.
  • 인어아가씨 출연 당시, 장서희의 시어머니이자, 며느리로 출연했던 김용림과는 1940년생 동갑내기 친구이다.

3. 출연



[1] 첫 시상식.[2] 1971년에는 대상이 없이 남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3]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최우수남자·여자연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4] 여기에는 결혼한 여배우를 한물갔다는 식으로 취급한 시대 분위기 뿐 아니라, 사미자가 성우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1960년대 TV방송국 개국으로 탤런트 수요가 갑자기 늘면서 원래 성우였던 사람들 상당수가 탤런트가 됐는데, 처음부터 방송국 탤런트 공채로 들어온 사람들과 성우 출신으로 탤런트가 된 사람들 사이에 묘한 경쟁의식이 피어났고, 방송국에서도 탤런트 공채 출신을 집중적으로 밀어주며 성우 출신들이 차별 받았다.[5] TV 방송국이 새로 생기던 당시엔 공채 탤런트는 죄다 젊은 사람으로 뽑고, 모자란 인원을 기존 라디오 방송국 성우와 영화, 연극 쪽에서 끌어다 썼다. 그래서 나이 든 탤런트가 적었다. 당시엔 분장 기술이 떨어져서 젊은 배우가 노역을 할 때엔 꾸민 티가 많이 났는데, 나이 든 역할도 충분히 해낼 만큼 목소리 연기가 되니 분장의 미흡함을 커버하고 노역에 더 잘 맞았던 덕이기도 하다.[6] 참고로 연예인 공식 달인은 6대 우리말 달인인 최원정, 김기만 팀이 유일하며 그 뒤 704회에서 유병재가 연예인 2번째 명예 달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