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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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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생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문오장
(1975)
김무생
신구
(1976)
한진희
김진해
(1977)
}}} ||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504161451509763_b.jpg
이름 김무생(金茂生)
본관 경주 김씨[1]
출생 1940년 3월 16일, 충청남도 서산시
사망 2005년 4월 16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가족 김동구(할아버지)[2], 박천대(할머니)[3],
김장환(아버지), 장옥순(어머니),
김의숙(아내)[4], 김주현(장남), 김주혁(차남)
학력 인천송현초등학교
동산중학교
동산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연극학부[5]
데뷔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

1. 개요2. 소개3. 출연
3.1. 영화3.2. 드라마
4. 수상5. 사망6.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성우 겸 탤런트.

2. 소개

충청남도 서산시 출생으로[6]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중 1963년 동아방송 1기, 1964년 동양방송 성우 공채 1기로 데뷔하였으나[7] 1969년에 MBC가 개국한 후 특채 탤런트로 텔레비전으로 정식 데뷔했다.

주로 박근형과 비슷하게 냉철한 재벌 총수 등을 많이 맡았는데 사랑과 진실, 청춘의 덫이 대표적이다. 단 박근형이 보통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나오는데 반해 김무생은 같은 높으신 분이어도 좀 더 감정이 있는 연기를 했다는 게 차이점. 또한 박근형의 경우는 1980년대 초까지 멜로 드라마에서 주인공, 즉 청년 역을 주로 맡은 반면 김무생은 실제 연령이 박근형과 같은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나이들어보이는 인상 때문에 노안 덕에 꽤 젊은 나이인 1970년대부터 중년이나 노역을 맡았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하지만 높으신 분만 맡은 것도 아니라 서민적인 아버지 역도 많이 맡았으며 경찰특공대에서는 테러 조직 두목 역을 맡아서 간지폭풍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극에도 많이 출연하였고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역할은 단연 용의 눈물이성계조선왕조 오백년이순신이다. 가히 레전설급 연기로, '용의 눈물'에서는 태종 이방원역을 맡은 유동근과 막상막하의 연기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제2공화국, 제3공화국에서는 장면 국무총리 역을 맡기도 하였다. 용의 눈물보다 앞서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도 이성계를 연기했으며 그 영향 탓인지 그 이후 김무생은 이성계 전문배우가 되었다. 어떤 사극을 찍든 이성계역에는 거의 무조건 김무생이 배역을 맡다시피했다.[8] 용의 눈물이 한창 진행되던 때 내가 사는 이유에서는 찌질하고 몰염치한 아버지역을 맡아 연기했는데, 근엄하고 엄격한 태조 이성계와 너무나도 명백히 대비되었으며, 이 극과 극의 연기를 동시에 둘 다 잘했다는 것이 김무생의 역량을 보여준다.

3. 출연

3.1. 영화

개봉연도 제목 배역 이름 비고
1985년 깊고 깊은 그 곳에
2000년 시월애 한석진
2004년 고독이 몸부림 칠 때[9] 조진봉
어깨동무 태식 부

3.2. 드라마

방영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이름 비고
1967년 TBC 이성계 [10]
1978년 MBC 청춘의 덫 노 회장 [11]
1981년 MBC 제1공화국 조병옥
1984년 MBC 사랑과 진실 김 회장
1983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이성계
1985년 MBC 이순신
1989년 MBC 제2공화국 장면
1991년 MBC 무동이네 집[12] 무동이 아빠
1993년 MBC 제3공화국 장면
1994년 KBS 당신이 그리워질 때 이완호
KBS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양덕삼
1996년 KBS 용의 눈물 이성계
1997년 MBC 내가 사는 이유 박성달
1999년 SBS 청춘의 덫 노태섭
KBS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 마을 이장 [13]
SBS 맛을 보여드립니다 종갑
2000년 SBS 경찰특공대 김용태
KBS RNA 무라야마 박사
2001년 KBS 인생은 아름다워 유상철
2002년 KBS 제국의 아침 왕규
2002년 KBS 태양인 이제마 충원공
2003년 MBC 옥탑방 고양이 이필득
2004년 SBS 폭풍 속으로 유병석
2004~2005년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강 회장 유작

4. 수상

연도 수상 작품 비고
1969년 제5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
1986년 제13회 한국방송대상 TV 남자연기상
1976년 제1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집념
MBC 연기상[14] 탤런트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1984년 제23회 대종상 남우조연상 깊고 깊은 그 곳에
1997년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용의 눈물 서인석과 공동 수상
2005년 SBS 연기대상 공로상[15] 김주혁이 대리수상[16]

5. 사망

2005년 4월 16일 지병인 폐암이 악화되어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66세.

6. 여담

슬하에 아들만 둘을 뒀는데, 작은 아들이 배우 김주혁이다. 김주혁은 아버지가 반대를 하는 바람에 몰래 배우를 지망했다고 하며 김주혁 본인도 배우로서 성공했다. 사망 두 달 전에 그는 아버지와 대한화재 하우머치 광고에 출연했는데, 이 작품은 부자가 공동 출연한 유일한 사례였다.

이후 김주혁은 1박 2일 시간여행 특집에서 젊은 시절의 김무생과 자신이 합성된 사진을 받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박 2일 절친노트 특집에 의하면 김주혁의 소속사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에게 김주혁을 친동생처럼 대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주혁과 김종도는 정말 형동생같은 사이라고 한다. 2017년 김주혁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김무생의 장남 김주현은 아버지, 어머니, 친동생을 떠나보낸 슬픔을 혼자 견뎌내며 김주혁의 상주까지 혼자 다 도맡아 하게 되었다.[17]

생전에 수석을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아들인 김주혁1박 2일에서 회고하길, 맨날 아버지를 따라서 강에 돌을 주우러 갔었고, 어렸을 때 돌을 줍는 것이 놀이였다고 말했다. 사망 한해 전 2004년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에 계신 외삼촌을 만났다.

충무로역에 그의 사진이 걸려있었다.[18]

1976년 <집념>이라는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여담으로 아들인 김주혁도 30년 후인 2006년, 백상예술대상에서 프라하의 연인으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아들 김주혁도 세상을 떠난 1주기를 앞둔, 2018년 제55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그의 유작인 독전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19] 이로써, 두 부자가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생전에 상당히 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20]



[1] 묘에서 "慶州金六十二世" (경주 김씨의 62대손)[2] 묘: "慶州金六十世" (경주 김씨의 60대손), "慶州金公東九" (경주 김씨 동구 군), 1876-1906[3] 묘: "密陽朴氏千代" (김동구 아내 밀양 박씨 천대 양), 1879-1966[4] 본관 김해; 묘에서 "金海金氏義淑" (김무생 아내 김해 김씨 의숙 양)[5] 아들 김주혁과 동문이다. 1박 2일에서 김주혁이 밝히길, 합격자 명단 발표 때 동행했다고 한다.[6] 태어난 것은 충남이지만 청소년기 학창시절은 인천광역시에서 보냈다고 전해진다. 인천 동산고등학교 출신이다.[7] 당시 동기로는 유강진.김종성 등이 있다. 직속 후배였던 배한성의 말로는 라디오 드라마에서 코믹한 조연 연기가 돋보였다고.[8] 조선왕조 오백년보다도 훨씬 이전 드라마인 1967년 TBC에서 방영한 이성계(극본 신봉승)에도 김무생이 출연했지만, 이성계 역은 김성원이 연기하였다.[9] 충무로에서 오랜만에 중견~원로배우들이 주축인 영화를 제작해 화제였다.[10] 그야말로 이성계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한 필모그래피의 시작이다. 16년 뒤인 1983년 MBC에서 만든 조선왕조 오백년의 첫 에피소드인 추동궁 마마에서 이성계 역을 맡았고 조선왕조 오백년 이후 13년 뒤인 1996년 KBS에서 만든 용의 눈물에서도 같은 배역을 또 연기했다.[11] 21년 뒤, SBS 리메이크작에도 출연하여 같은 배역을 또 연기했다.[12] MBC에서 했던 인기 드라마였다. 나무위키에는정보가 없다. 아는 사람이 추가바람.[13] 《용의 눈물》의 조연출이었던 이교육 PD의 첫 연출작이었다. 이 인연으로 유동근도 함께 출연하였다. 어린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호화 캐스팅[14] 現 MBC 연기대상.[15] 유작이 SBS에서 방영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였기 때문에 이를 기리며 수상.[16] 수상 당시 눈물의 수상소감을 전해 시상식장을 잠시 숙연하게 만들었다. 당해에 프라하의 연인이 흥했던 관계로 김주혁 본인도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아까는 울다가 지금은 웃으니 뭔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농담은 덤.[17] 김주혁 상주때는 다행히도, 김주혁과 1박 2일을 같이 했던 차태현이 같이 상주를 해주었다.[18] 1984년 제23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사진이 걸려있다.[19]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특별상도 수상하였고, 이후에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도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20] 이를 안 팬들이 추모하는 마음에서 요절한 둘째 아들 따끔히 혼내라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