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22:12:34

백영수(화가)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은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16년
이름 백영수
분야 화가
은관문화훈장(2등급)
<colbgcolor=#d7e6f0,#000><colcolor=#000000,#dddddd> 백영수
白榮洙 | PAEK Young Su
파일:백영수 화백.jpg
출생 1922년
사망 2018년 6월 29일 (향년 96세)
종교 가톨릭 (세례명: 프란치스코)
학력 오사카 미술학교 (1945년 졸업)
수상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6)
직업 화가
가족 아내 김명애
子 백진
소속 前 목포고등여학교 미술교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 개요2. 작품세계3. 생애4. 기타5.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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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영수는 1940-50년대의 한국미술계의 거장들인 김환기·이중섭·장욱진 화백 등과 함께 1947년 창립한 신사실파 구성원으로, 향년 96세의 나이로 2018년 작고하며 신사실파 구성원 중 가장 오랫동안 살았다.

해방 이후 최초의 국전인 '조선 종합 미술전'의 심사위원과 '대한 미술협회' 상임위원을 거쳐 1977년 이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요미우리 아트센터의 전속계약 화가로 활동, 이탈리아 밀라노 파가니 갤러리를 비롯해 22번의 초대전 및 단체전, 살롱전 등에 100여 차례 참여하였다.

2. 작품세계

파일:백영수_창가의 모자(1988).jpg
창가의 모자 (1988作)

화가 백영수의 작품들은 타원형의 둥근 얼굴과 정다운 녹색을 위주로 어린아이의 순진함과 단순하고 평온한 느낌이 특징적이며, 일관되게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지상에서 유일하고 진정한 행복의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1977년 이후 프랑스에서의 백영수는 자기만의 독특한 모성애의 세계를 표현한 대표적인 소재인 ‘모자(母子) 상’시리즈를 많이 선보였고, 2000년대 이후는 ‘여백’, ‘창문’ 시리즈의 작품 활동을 하였다.

단순한 화면 안에 갸우뚱한 얼굴을 한 모자상은 눈을 감고 행복에 젖은 듯, 꿈꾸는 듯한 얼굴에서 천상의 교감을 느낄 수 있으며, 부드럽고 깊이 있는 색조, 남자아이, 새, 개, 나무 등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소재들이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절제되고 단순한 화면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정갈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작품 활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최소한으로 단순화되고 함축적인 백영수의 가족 풍경은 사랑과 평화, 행복의 참 의미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화가 백영수는 생활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로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평생을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품 활동을 하여 진정한 화가로서의 삶을 실천하였다.

3. 생애

  • 1922년 경기도 수원 출생 후 유년 및 학창 시절을 일본에서 보냄
  •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화 전공 (1945년 졸업)
  • 1945년 귀국 후 목포고등여학교 미술 교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 1948년 조선 종합 미술전 심사위원(해방 후 최초의 국전) 역임, 이후 대한 미술협회 상임위원으로 역임
  • 1950년대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
  • 1977년 이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요미우리 아트센터의 전속계약 화가로 활동 [1]
  • 프랑스의 ‘Salon Comparaison Realite Seconde’ 회원으로 활동
  • 2016년 2016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훈
  • 2018년 4월 백영수미술관 개관
  • 2018년 6월 29일 별세

4. 기타

-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바쁘셨는지 사랑을 잘 받지 못하며 자란 것 같다며 백 화백의 부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의 '모자상' 작품들이 모성애(母性愛)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하였는데, 실제로 백 화백은 자신의 모자상을 채워지지 않은 욕망으로 꾸는 헛된 꿈을 뜻하는 백일몽(白日夢)이라 불러왔다고 한다.[2]

- 신사실파 멤버 중 이중섭과 매우 친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나 가정환경으로나 가난하고 외로운 처지가 비슷하여 말수가 적어도 서로 가깝게 느끼곤 했다고 한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서로에게 창작의 에너지를 제공했다고.[3]

- 2018년 4월 그가 별세하기 몇 달 전 의정부에 있는 그의 집을 리모델링하여 '백영수미술관'이 개관하였다. 미술관에 대해서는 하부 링크 참조.

- 그의 아들인 백진 역시 아버지를 따라 화가로 활동 중이다.

5. 참고 자료


[1] 이 시기에 이탈리아 밀라노 파가니 갤러리를 비롯해 22번의 초대전 및 단체전, 살롱전 등에 100여 차례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2] 기사[3]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