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3 20:22:39

허영만

파일:/image/011/2009/06/05/miae84200906051715090.jpg
필명 허영만
본명 허형만
본관 양천 허씨
출생 1947년 8월 12일[1] ([age(1947-08-12)]세),
광복 후 전라남도 여수군 화정면[2]
국적 대한민국
직업 만화가
데뷔 1974년 한국일보 '집을 찾아서'
1. 개요2. 상세
2.1. 2000년 이전2.2. 2000년 이후
3. 오너캐4. 작품에 대한 비판5. 사건사고
5.1. 허영만 사칭 사기5.2. 표절 및 저작권 위반
6. 주요 작품 목록7. 수상8. 기타

1. 개요

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만화 정점에 있던 한국만화계의 대부이자 한국 만화 발전의 주역으로 대본소-만화잡지-웹툰 시대를 모두 경험한 만화가이다.

2. 상세

2.1. 2000년 이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화가 대신 만화가의 길을 택해 박평일, 박문윤[3], 엄희자, 이향원 등에게서 수업을 받았다.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데뷔한지 40년이 넘는 한국 만화계에서 손꼽히는 대가 중 한 명이다. 1989년에 그린 "미스터 손"이 나중에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로 만들어졌으며, 그 외에도 타짜(만화), 우주 흑기사,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식객, ,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등을 그린 경력이 있다.

무협만화가로 알려진 이재학(만화가) 문하에서 그림을 그리며 수습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재학 이름으로 연재되던 히라소니가 허영만이 그림을 많이 맡았고 이 히라소니는 각시탈을 창작할때 영향을 주기도 했다. 더불어 이재학 그림체 영향을 초창기에 허영만도 많이 받았다.

1975년에 발표한 각시탈이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인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각시탈'의 후속 시리즈, '무당거미'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고 '각시탈'의 스핀오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쇠퉁소'[4]와 '무당거미'의 비쩍 마른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강공이 등장하는 '변칙복서'를 어린이잡지 새소년에 연재, 히트를 치면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새소년에 연재한 '태양을 향해 달려라', '쟘비지강의 달무리' 또한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중반까지 주로 무당거미 시리즈와 기타 작품이 대본소를 통해 유통되었고, 이 시기에 이현세, 이상무, 박봉성 등과 함께 대본소를 장악한 대표적인 한국만화가가 되었다. 원래 주인공 이름은 각시탈까지 외자인 이영이었지만 무당거미 이후 이강토로 바뀐다. 참고로 이강토는 각시탈의 에피소드 가운데 두만강의 어느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어느 소년의 이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때 허영만은 개인적으로도 좌절을 겪기도 했는데 당시 만화시장을 과점하며 만화판을 쥐락펴락 했던 합동출판사에 맞서서 땡이문고를 통해서 만화를 출판시키려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이 때 다른 만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돈벌이를 위해서 별수없이 합동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당대 다른 만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대본소 만화와 보물섬에 '미스터 고'로 유명한 '제 7구단' 등 어린이용 만화잡지의 연재활동 등으로 작품생활을 이어가던 1986년에 허영만은 당시 만화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방식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른바 '스토리 작가'의 도입이 그것이다. 1986년 발표한 '카멜레온의 시(詩)'는 김세영과 함께 한 첫 작품인데 당대 다른 만화들에 비해 보다 심오한 내용과 대사 구성, 코믹적 요소를 완전히 들어내 버린 스토리 구성 등으로 인해 성인 만화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성공은 허영만에게 그림체도 그림체이지만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자료 수집과 다방면의 지식 등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져다 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세영과 함께 한 '고독한 기타맨', '오! 한강'도 성공을 거두는 등 한동안 이 허영만-김세영 체제는 승승장구했다. 이후 김세영 작가는 빠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소의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자료에서 확실한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성공에 따른 수익 배분에 있어서 김세영 작가의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한때 허영만과 같이 작업한 만화 '타짜' 등에 대해 공동저작물인정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김세영도 이후 수익 배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갬블 시리즈를 같이 작업한 강영환은 김세영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김세영은 강영환의 이름을 빼고 자신 홀로 그리고 작업한 것처럼 작품을 재연재하여 자신의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난을 받았다기사

80년대 후반 허영만은 다소 아스트랄한 주제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블랙홀'과 '화이트홀'로 대표되는 이 작품들은 저승과 영혼, 미스테리 현상에 무속에다가 외계인 등의 신비주의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 작품은 허영만의 작품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전과 이후에서 비교적 사실적인 스토리와 배경을 강점으로 하던 작가가 갑자기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여러 독자들이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한편으로는 이 작품들 중 일부는 그림체에서 기존의 허영만 작품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80년대 말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소위 '대본소 시스템'이라는 걸 도입했기 때문이다. '대본소 시스템'이라는 건 한마디로 주요 스토리라인과 장면만 메인 작가가 그리고 나머지는 '제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리는 방식. 권당 인세가 형편없는 수준인데다가 빠르게 다음 권을 그려나가야 수지가 맞는 대본소 시스템 특성 상 작품의 질보다는 빠른 속도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주조연급 캐릭터 외에는 한 눈에 봐도 대충 그린 것이 단번에 확인되는 등 전반적인 작품의 질이 급격하게 낮아졌지만, 당시 만화가들의 경제적 형편을 살펴보면 이는 어쩔 수 없었던 고육지책이었다. 한마디로 배고픈 작가와 만화에 열정만을 가지고 있었던 그 작가의 제자들(라고 쓰는 식객이라고 읽는 사람들.)의 저렴한 노동력(혹은 세 끼 밥만 제공하는)이 만난 시대의 비극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얘기를 들어보면 허영만 본인도 이 시기를 생각도 하기 싫어한다. 오죽하면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때로 가서 말리고 싶다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한다.[5] 이때 허영만의 화실에서 허영만 이름으로 만화 그리다 독립한 인물이 조운학. 서술된 것으로만 보면 인기가 없었을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대본소에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아니 '블랙홀'의 경우는 작품성으로 보면 나아가서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명작 이다. 자신의 작품이 아니어서 문제일 뿐. 안타깝게도 지금은 찾아볼 방법이 없다.

한편, 1988년에 발표한 '미스터 손'은 1990년에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화되어 KBS에서 방영되었고, 1992년 방영 당시 42.8%라는 국내 애니메이션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만화는 어린 소년인 손오공과 미소녀가 같이 여행하는 초기부분이 드래곤볼 설정의 열화판 표절로 많은 비난을 받아 급작스럽게 그 캐릭터를 삭제하고 삼장법사와 사오정 저팔계를 투입하게 되었다. 다음 작품인 망치에서도 미래소년 코난의 설정 즉 세계종말 후 무인도에서 사는 괴력을 가진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사용되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런 표절은 해적판 일본만화가 유입된 80년대 말부터 독자들의 안목이 올라간 결과로 저질 대본소 공장만화가 아니면 기껏해야 일본 표절 만화를 만들던 작가들이 일본 만화 개방을 반대해온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도 이들에게 가려져 지금은 덜 유명해도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해온 만화가들은 존재했다.

대본소 시장이 위태위태하던 시절부터 허영만은 본인의 주특기를 살린 만화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데, 9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매우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스토리를 살린 만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퇴역전선'이나 광고회사 직원들의 애환을 다룬 '미스터Q'나 '세일즈맨' 등의 기업/직장인 만화들이 인기를 끌었고, 넓게 보면 만화 자체도, 드라마도 성공한 '아스팔트 사나이'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고, 지금까지 발표되는 작품들도 이 맥락과 닿아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2.2. 2000년 이후

꼴을 그릴 당시엔 식객과 동시연재를 하다 2009년 2월자로 식객은 지면에서는 연재가 종료되었다. 3월 19일부터 파란에서만 연재하고 한동안 쿡에서 연재하다가 2010년 3월자로 완결되었다.

인터뷰에서 70년대엔 이상무에게 밀리다가 80년대 들어와 이현세에게 밀려 편집장에게 '허선생은 2등 전문이구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콩라인 하지만 이현세의 작품들이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 더 맞았던 것뿐이고, 현재의 평가도 그렇다는 건 아니다. 평가라는 건 시대에 따라 변하게 되어 있고, 남벌등의 작품에 나오는 이현세의 과도한 마초이즘은 지금에 와서는 비판은커녕 조롱의 대상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꾸준하게 높은 평가를 받아온 허영만과는 다른 것이다.

작품 하나 그리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위해 엄청난 양의 자료수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나 부자사전은 예외. 자료를 많이 모으다 보니 자료와 만화가 역전되어 만화를 위해 자료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모은 자료들 중 만화로 그리기 적당한 에피소드를 추려내어 만화로 그려놓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식객은 후반부로 갈수록 실존인물에 실화를 사용하는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

원로 만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쟝르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드라마가 만들어져 인기를 끈 경우가 많다. '식객'과 '타짜'는 둘 다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외에 영화화 된 작품으로는 '각시탈', '비트'와 '48+1'이 있으며, 2013년에는 미스터 고 3D가 개봉되었다. 2013년까지 드라마화된 작품으로는 '각시탈',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Q', '사랑해'가 있다.

이런 허영만의 다양한 행보와 경력에 대해, "엄청난 자료수집과 다양한 장르 시도는 허영만과 함께 했던 김세영을 비롯한 여러 스토리작가의 공이 크며, 스토리작가가 따로 있는 작품임에도 허영만 글 그림으로 만화가 나오면서 스토리작가가 받아야 할 칭송을 허영만이 받은 경우들이 많다"라는 평가도 종종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시도의 공을 스토리 작가에게만 돌리는 것은 작화가의 역할에 대해 약간 오해가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평가이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만화 제작 시스템 하에서는 스토리 작가의 만화력이 작화가를 상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만화가는 글 작가의 스토리를 콘티화하는 과정에서 기본틀만 남기고 구성 자체는 다시 하게 된다. 다만 감독이 시나리오를 재수정할 경우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는 영화계와 달리 만화계에서는 스토리 작가 자리에 작화가 이름이 이중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이건 한국의 경우만이 아니라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스토리 작가가 자료수집을 철저히 하더라도, 단어 하나 문장 몇 마디 조차도 비주얼화가 필요한 만화화 과정에서는 작화가가 별도로 자료수집을 해야 한다. 실제로 허영만이 '취재하는 만화가'의 이미지로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작화가가 해당 분야에 대해 취재와 자료수집이 부족하다면 스토리작가가 좋은 스토리를 넘겨도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단, 이런 점을 관점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한 만화가가 받는 게 맞다'는 이야기라는 관점도 있다.

2013년 4월 식객2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다른 웹툰들과 다르게 유료 웹툰이다. 월 2000원이라고 한다. 올 컬러라고 하니 기존에 식객을 보았던 사람들에게 어필이 가능할지도 흑백에서 올컬러라고!!참조 더불어 앞으로 10년은 계속 만화가로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5년에는 웹툰 사이트 미스터블루중앙일보커피 한잔 할까요?를 연재 중.

2018년 1월 28일부터는 네이버 웹툰 아버지의 컵을 정식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경제 TV 와우넷에 주식투자를 그린 <3천만원>을 연재했다.

3. 오너캐

파일:메밀국.jpg

오너캐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식객에선 베레모를 쓰고 옆구리에 종이들을 낀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60회 메밀묵 편에서 등장한 까다롭기 그지없는 암행어사가 바로 허영만 오너캐였다고. 부자사전에서는 애완견 처칠과 함께 나오는데 대학생 자식을 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회춘한 모습으로 그렸다.(...)[6] 40대만 해도 머리카락이 많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탈모가 많아졌다. 더불어 식객 냉면 편에서 냉면가게 주인으로 나온 게 허영만 60대 모습이기도 했다.

4. 작품에 대한 비판

일부 작품에서 드러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다. 예를 들어 식객의 경우 1회 에피소드에서 생모를 찾아 한국에 온 해외 입양아에게 한국문화니 받아들이라며 냄비에 담긴 찌개를 함께 떠먹기를 강요하는 부분,[7] 외국인에게 김치 먹이기[8]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러시아에 살던 고려인이 나는 한국을 조국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9] 라며 악역으로 나오다가 참혹하게 죽거나, 무당거미에서 에릭이라는 한국계 교포 후예가 한국계임을 부정하고 금발 염색하고 살아가며 권투선수로 나오는데 주인공 강토가 한국인으로서 자존심도 없냐며 경기에서 두들겨 패주고 그를 폐인 상태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게 만든 묘사와 같은 부분에서 민족주의적 색채가 드러난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인 시각으로 보일 수 있으나, 90년대까지 정부가 미디어, 교육 매체 등을 통해서 '한민족은 단일민족' 이라는 아젠다를 퍼뜨리던 걸 돌이켜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IMF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의 가치관은 급변했고, 그 부분에서 시각차이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90년대 당시에 나오던 한국 만화의 이해같은 책자에서조차 허영만의 국수주의라고 비판했던 부분이다.

신문 연재만화였던 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없이 너무 미신적인 내용을 장황하게 다루는거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변명하듯이 노력하면 꼴에 나온 관상에서 나온다느니 뭐니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 꼴에서 젊은이들이 쉽고 편하게 대기업이나 들어가려고 한다는 멘트로 젊은 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다만 이 시각차이는 식객에서도 나오던 바 있다. 식객에서 순대 편에 나오던 순대공장 일을 외노자가 하는 일을 두고 힘든 일은 안 한다고 한다든지, 이는 꼴에서도 직업없다고 하는 것들은 힘든 일 안한다고 징징거린다고 비난만 한다. 알다시피 힘들고 위험함에도 돈도 적게 주는 일이라 안하는 것임에도 그걸 그저 힘들어서 안 하니 문제라는 사고방식이나 담아 비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점 때문에 보수적인 방식으로 한국 부유층 미화라든지 노력 타령을 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스포츠조선에 연재하고 김영사에서 낸 책인 부자사전에서 허영만은 세계에서 한국만큼 부자가 살기 어렵다느니 하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은 선거때마다 부유층에 대한 세무조사를 한다 뭐다 이런다고 부자가 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 알다시피 대기업을 엄청 위해주고 정치인들도 선거 때만 그렇지, 막상 실제로 그러는 게 얼마나 있던가. 세무조사를 탄압이라고도 할 수 없는게, 법에서 정한 조세의무를 다하였는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1년 365일 매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며, 오히려 조사를 탄압으로 여기는 것은 그만큼 부자들 사이에서 탈세가 상식화 되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만화는 그저 원작이 한국의 부자 100인이라는 책을 만화화한 것이고 그 책에 나온 내용대로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원작이라고 있는 그대로 만화화했다면 작가 그 자신의 가치관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든가, 원작자와 완전히 일치하든가 둘 중 하나인데 어느 것이라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정작 허영만 스스로 취재하여 넣은 내용에서도 똑같이 공감을 했다는 부분에선 반박하지 못한다. 그리고 부자사전에서는 "착하게 사는 것, 법을 지키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나온다.[10] 그외에도 작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넘쳐나서 댓글에서 비웃음을 많이 들었다. 주식투자에서 3년 전의 사례라면서 4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오를거라는 내부자 정보에서도 자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면서 주식에 재능이 있다고 이틀에 걸쳐 설명한 부분인데 2010년대 후반에 허영만은 주식관련 만화를 그리면서 실제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다만 작품에서 등장했던 이런 꼰대적 멘트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 우리나라의 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작가도 독자들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2010년도 이후의 만화에선 더 이상 꼰대적 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2012년까지 연재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몽골까지 가서 사전답사하고 그렸지만 초중반부만 해도 수작의 전형으로 손꼽혔으나, 중반부의 드라마 스토리와 후반부의 급작스러운 전개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자무카가 죽어버리자 후다닥 그리면서 자무카를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던 모양 허나 다음 연재 당시 댓글 보는 재미가 매우 쏠쏠했다. 특히 자무카 관련 드립이 흥했다.

5. 사건사고

5.1. 허영만 사칭 사기

2011년 9월 말경부터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 부근을 중심으로 허영만을 사칭하며 행인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기꾼이 출몰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혼자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타겟으로 삼아 '택시비가 모자라니 돈을 좀 빌려달라',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책이 나오면 매니저에게 이야기해서 한권 보내주겠다'는 등의 말로 행인들을 속여 돈을 빌려간다고 한다.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을 보여줘 넘어가게 한다고. 실제 허영만과는 전혀 닮지도 않은 꾀죄죄한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속출했는데, 사칭범의 언변과 특정 직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고정관념('만화가=후줄근한 외모'라는 인식)이 맞물려 사람들이 사칭에 쉽게 속아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심지어 허영만의 실제 얼굴을 아는 사람들조차 속은 사례가 있다는 것. 사기꾼이 30대 가량의 꾀죄죄한 외모를 가진 남성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천계영 사칭범[11]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커 보였는데...

2011년 SBS 방송을 탄 후부터 경찰에서 공개수배를 한 결과 결국 11월에 허영만 사칭 사기범이 체포되었다. 일부의 의혹대로 비슷한 수법을 쓴 앵벌이들이 아닌 강풀천계영 사칭범과 동일인물.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지만 대략 맞춰보면 한때 만화가를 꿈꿨지만 가정형편으로 어려워지자 5년 전에 가출해서 만화가의 일반적인 이미지로 돌아다니며 만화가 행세를 하면서 행인들의 돈을 사기로 갈취했다고 한다.

5.2. 표절 및 저작권 위반

우주 흑기사는 표절 작품이며, 아스팔트 사나이다카르 랠리에 도전했던 카레이서 최종림이 쓴 책인 사하라 일기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당해 법원에서 10%정도의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어 일부 패소 판결을 받았다.[판결문]

6. 주요 작품 목록

7. 수상

  • 2009년 자랑스러운 전남인상
  • 2008년 제 9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만화 애니메이션 부문

8. 기타

  • 화실에는 총 7명이 있는 듯. 그래서인지 한 푼도 안 가져간다는 전제하에서 작업실 운영에 월 3500만원이 필요한다고 한다. 그렇긴 해도 만화가로서 이름이 높은 편이고 영화 제작 및 여러가지로 들어오는 돈이 많아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타짜나 식객이 흥행에 성공해서 큰 보탬이 됐을 듯.
  • 오디오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식객에서도 오디오 관련된 편이 자주 나오고 아예 오디오를 좋아하는 형제가 직접 등장하는 등 오디오에 관련된 언급이 많다. 부자사전에서도 1000만원대의 스피커를 일반인도 살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하는 등(...).[23] 오디오 관련 내용이 많다.
  • 식객으로 유명해서인지 전문 요리사가 아님에도 불구, 무한도전 식객특집 때 유재석 팀이 멘토로 찾아가서 요리비법을 전수받았었다. 그리고 유재석팀이 방송내내 요리대결마다 압승을 거뒀다. 박명수팀 멘토해준 요리연구가 안습[24]
  • 등산을 좋아해서인지 식객에서도 등산을 소재로 한 경우가 여러번 나왔고 등산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식객 6권에는 고 박영석 대장을 등장시킨 바 있으며, 19권 단행본 바지락 칼국수 편에선 연재도중 등산가로 잘 알던 이현조, 오희준 두 사람이 등정 도중 숨진 일로 네팔까지 가서 위령식 참가하느라 작품을 쉰바 있다. 그리고 2011년 10월말, 박영석 대장이 실종되자 역시 위령식 가느라 말무사 연재가 약간 타격을 받긴 했으나 연재를 중단하지 않았다.
  • 1박 2일에도 한차례 출연했었는데 그때 멤버 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드라마화 한 각시탈의 주인공 주원이 끼어있었다.


[1] 음력 6월 26일.[2]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3] 계몽사 학습그림과학으로 유명한 분.[4] 쇠퉁소는 어깨동무에 연재[5] 식객에서도 보성레스토랑 일행 가운데 하나인 만화가 김경민이 성찬과 같이 국수공장을 작품 소재 취재로 가서 국수를 뽑는다는 사장의 말을 듣고, 수십 명씩 두는 대본소 만화공장 사장이 "만화를 한달에 얼마나 뽑습니까?" 말한 걸 생각하면서 "만화가 국수냐! 뽑게?" 자기도 모르게 화내는 묘사를 넣은 걸 보면 만화공장체제를 엄청 싫어하는 걸 알 수 있다.[6] 다만 부자사전 작중에서 허영만의 화실이 딱 한 번 나오는데, 거기서는 본인과 닮은 캐릭터가 따로 나온다.[7] 이건 나중에 엄마랑 같이 밥먹을 때 엄마 숟가락이 찌개에 들어가면 안 먹을 거냐고 물으니 수긍하긴 했다.[8] 정확히는 청국장.[9] 여행전문가인 이지상이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고려인들은 한국이 해준 것도 없는 주제에 한국인의 뿌릴 잊지마라고 할 때 구역질이 난다.(당연하지만 북한에게도 똑같았다고)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조선인이라면 한국에서 질색하고 한국인이라면 북한에서 질색하니 중립적이라며 스스로를 고려인으로 부르는 그들을 한국에서 얼마나 생각했나는 분석이나 의견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교포들에 비해 그들을 조선족이나 차이가 없게 대한다고 씁쓸하게 이지상도 거론했다. 오죽하면 재미교포에게 투표권을 준다고 하던 반응에 고려인들이나 조선족은 왜 빼냐는 반응에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당황하던 반응을 보일 정도로 그들은 한국계로서 잊혀진 터. 이런 걸 따지지 않고 그저 한국계 뿌리를 잊었다면 악역으로 나오는 아스팔트 사나이는...[10] 아예 엄연한 불법인 알박기로 축재하는 사례(그것도 알이 땅에 반쯤 파묻힌 그림까지)는 물론, 탈세 증거인멸로 세무서 직원들이 허탕치는 장면까지 그려놓았다![11] 천계영도 자신을 사칭하면서 행인들에게 돈을 빌려가는 사기범으로 인해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그런데 천계영은 여자다[판결문] -崔씨의 소설 `사하라의 일기'와 許씨의 만화가 전체적인 표형양식과 주제 및 구성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부 사건구성에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적으로 볼 때 대략 10%상당의 저작권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13] 지금 기준으로도 독특한 감독없는 무명고교야구팀을 소재로 한 만화다. 주인공 영이 팀의 주장이자 감독을 겸한다.[14] 허영만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연재되었다. 같은 잡지에 같은 이름으로 두 편의 만화를 연재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편법이다. 같은 무렵 이두호 역시 서로 다른 이름으로 같은 새소년의 만화부록에서 두 개의 만화를 연재했다. 허영만의 만화에서 흔치 않은 무협판타지만화다[15] 80년대 유행하던 열혈근성물의 결정판같은 만화. 180이 넘는 키에도 극한의 감량으로 페더급을 유지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세계의 강자들과 싸운다. 매번 강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지옥같은 감량을 겪으며 새로운 필살기를 얻기 위해 훈련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허영만다운 소소한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나머지를 채운다. 다만 마지막에 당시 유행하던 기와 초능력으로 빠지며 엉뚱한 길로 가버린 듯한 마무리는 아쉬운 부분. 큰 키에 뼈만 남은 앙상한 몸, 그리고 장발이 비장한 주인공의 외모와 함께 상당히 인상적이다.[16] 단행본은 《마운드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발매.[17] 태권도 선수였다가 권투선수로 전향한 청년 강공이 주인공이다. 근데 이 태권도란게 좀 이상한 것이 삼전서기를 한다? 빼도박도 못하게 만화에서 삼전 자세를 잡으며 삼전서기라는 대사를 친다. 그리고 주인공이 필살기로 쓰는 등권, 배권, 장권 등은 권투 항목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모두 변칙을 넘어 "반칙"이다...지못미.[18] 타짜보다 먼저 나온 도박 만화다. 타짜와는 달리, 도박에 빠져 파멸해가는 인간들의 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았다. 1995에 영화로 나왔으나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해서 거론도 안된다.[19] 1995년 SBS에서 드라마화.[20] 1998년 SBS에서 드라마화.[21] 원작은 한희작, 리메이크로 영챔프에서 연재했다. 도중 하차하여 김재연이 마무리했다.[22]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23] 물론 수억 원의 스피커와 비교하면 저렴한 건 사실이지만 일반인 중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백~수천 만원의 오디오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썩 현실적인 구절은 아니었다.[24] 물론 멘토해주신 분 잘못은 아니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박명수 팀이 간을 너무 못 맞췄다(...).[25] 프로야구 태동전에 상경하고 쭉 살아온 이유가 큰듯.[26] 식객의 삼계탕매생이 에피소드에서 구회장이 출연한 적도 있다. 다만 작품에서의 회사 이름은 쌍동그룹(...). 쌍둥이 빌딩 때문에 그렇게 지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