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 | 아이언 버터플라이 Iron Butterfly | }}} | ||
<colcolor=#fff><colbgcolor=#000> 국적 | 미국 | ||||
결성 | 1966년 | ||||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 |||||
해체 | 1971년 | ||||
재결성 | 1974년–1985년, 1987년–2012년, 2015년–2021년 | ||||
멤버 | 에릭 브랜 (기타) 론 부시 (드럼) 리 도먼 (베이스) 더그 잉글 (키보드, 보컬)[1] | ||||
장르 | 사이키델릭 록 애시드 록 헤비 사이크 하드 록 | ||||
레이블 | 애틀랜틱 레코드, MCA, 퍼플 피라미드, 앳코 | ||||
1. 개요
미국의 사이키델릭 록 밴드.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세계 최초의 헤비 메탈 밴드[2]중 하나다.2. 상세
프로그레시브 록과[3] 헤비 메탈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한 밴드이자, 레드 제플린과 함께 사이키델릭 록과 헤비 메탈을 이어준 록 음악사 사상 가장 중요한 밴드중 하나였다. 한때 그들은 전미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사이키델릭 록 밴드중 하나로, 레드 제플린과 함께 1960년대 후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다. 1970년대 이후로는 비교적 대중적인 헤비 블루스 노선을 걸은 레드 제플린에 밀리면서 음악적으로 슬럼프를 겪었고 1971년 해체하게 된다.1974년 재결성하여 신보를 발매했으나 빌보드 앨범 차트 13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이후로 신작을 발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활동했던 원로 밴드중 하나다. 밴드 역사만 50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멤버들이 제쓰로 툴이나 킹 크림슨 뺨치게 많은데 역대 멤버들을 총합하면 66명이다. 전성기 시절의 라인업은 에릭 브랜(기타), 리 도먼(베이스), 더그 잉글(키보드), 론 부시(드럼). 2020년대에 들어서는 원년 멤버는 커녕 In-a-gadda-da-vida 시절의 멤버들도 단 한명도 참가하지 않은, 그야말로 테세우스의 배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론 부시는 꽤 오래 재적했고 2018년 탈퇴 후 타계 직전까지도 게스트 드러머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2021년 8월 29일 결국 79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하면서 전성기 라인업의 멤버들은 단 한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결국 부시 사망 후 아이언 버터플라이로서 명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2021년 최종 해체했다. 한편 더그 잉글은 1999년 탈퇴 후 음악계에서 종적을 감췄고 2024년 5월 24일 사망하면서 In-a-gadda-da-vida 시절 라인업은 전부 고인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밴드는 아니고 현재에 들어서는 5~60대들을 제외하면 거의 잊혀진 밴드이지만, 당시에는 주로 "철나비"라는
3. 음악성
지미 헨드릭스와 크림 등이 선보였던 사이키델릭한 하드 록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헤비 메탈 음악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작으로는 In-A-Gadda-Da-Vida가 있다. 이 앨범은 400만장정도 팔린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최대 히트작이다. 1969년 빌보드 200 연말 결산 1위에까지 오른 앨범이다.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Side B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앨범과 동명의 곡 In-A-Gadda-Da-Vida인데, 이 곡은 총 17분 길이로 내달리는 헤비 사이키 곡으로 1960년대 후반에 프로그레시브 록과 헤비 메탈을 동시에 예견한 사이키델릭 록 역사상 최대의 명작중 하나로 불린다.
Ball까지는 비교적 몽환적이고 기괴한 헤비 사이키의 노선을 견지했지만 1970년 8월 발매한 음반 Metamorphosis에서는 사이키델릭이 탈색되었다. 자신들과 똑같이 헤비 사이키로 시작했다가 하드 록, 헤비 메탈로 음악을 발전시킨 레드 제플린을 의식한 행보였지만 아이언 버터플라이만의 색체를 잃었다는 지적을 받으며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4. 디스코그래피
- Heavy (1968) : 헤비 메탈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빌보드 200의 78위를 기록.
- In-A-Gadda-Da-Vida (1968) : 아이언 버터플라이 최대의 히트작으로, 미국내 400만장 판매고를 기록했다. 평론적으로도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앨범중 가장 훌륭하다.
- Ball (1969) : 빌보드 차트 3위를 기록하여 2집보다 더 흥행한 앨범이다. 판매량에서는 2집보다 약간 딸리지만 그럼에도 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 Metamorphosis (1970) : 전술했듯 헤비 사이키가 탈색되고 하드 록을 추구한 음반인데 그야말로 망했다. 그래도 빌보드 200의 16위를 차지하며 나름 선방했지만 이 앨범의 실패로 아이언 버터플라이는 약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 Scorching Beauty (1975) : 1974년 재결성 이후 제작한 음반이지만 상업적으로 더욱 참패하였다.
- Sun and Steel (1975) : 아이언 버터플라이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200에 진입하지 못했을 정도의 똥반이다. 이 이후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신보는 없다.
4.1. 빌보드 핫 100 싱글
4.1.1. 빌보드 핫 100 11위~30위
- In-A-Gadda-Da-Vida (1968, 30위)
5. 기타
1969년 1월 31일에 뉴욕 필모어 이스트에서 열린 레드 제플린과의 합동 공연 포스터. |
- 영국의 레드 제플린과 초기 음악성이 비슷하여 많이 비교되는 밴드다. 레드 제플린의 초기 별명이 제2의 아이언 버터플라이이기도 했다. 두 밴드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정작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멤버들은 레드 제플린이 미국 내에서 얻고 있던 엄청난 인기에 제플린을 약간 두려워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두 밴드가 초창기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고 받은 선의의 라이벌이었다는 점은 대부분이 동의하는 사실이며, 실제로 두 밴드는 합동으로 콘서트에 선적도 있었다.
-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아이언 버터플라이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Philip Taylor Kramer는 컴퓨터 공학자 겸 발명가였으며 특히, 미국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LGM-118A 피스키퍼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의 유도 장치를 개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미스터리한 사망 사건으로 각종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더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1995년에 동료 사업가를 마중나가기 위해서 LA 국제공항으로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나갔다가 "계획이 바뀌어서 지인이 자신을 만나지 않고 곧장 호텔로 가기로 했다."며 아내에게 전화한 것을 마지막으로 갑자기 실종되었으며 실종된지 4년만인 1999년에 말리부 근처에 주차되어있던 낡은 포드 에어로스타에서 백골로 발견되었다. 당시 수사기관이 발표한 공식적인 사인은 자살이지만 실종되기 직전 크레이머가 지인들에게 "자신이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라고 털어놓으며 무서워한 점, 실종 당시의 상황이 전혀 자살을 염두에 둔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니었다는 점 때문에 2024년인 지금까지도 크레이머를 협박하고 있던 모종의 세력이 결국 그를 납치하여 살해했다는 설이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 In-A-Gadda-Da-Vida가 심슨 가족에 나왔었다. 바트 심슨이 교회에서 찬송이라며 주보를 나눠줬고 로큰롤을 증오하는 교회에서 로큰롤을 부르게 만들었다. 17분 짜리 노래를 끝까지 연주한 오르간 연주자 앨리스 글릭은 결국 그대로 기절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