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9 15:01:58

디페시 모드

파일: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고.pn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folding [ 펼치기 · 접기 ]이름디페시 모드
Depeche Mode
멤버마틴 고어, Dave Gahan, 앤디 플레처, 전 멤버(빈스 클라크, 앨런 와일더)[2]
입성 연도2020년
후보자격 연도2006년
후보선정 연도2017년}}}

파일:Depeche mode Spirit 2017.jpg
Depeche Mode
출신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에섹스 베이즐던
장르 신스팝, 뉴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닉 록
활동 1981 ~
소속 Mute, Sire, Reprise, Capitol, Virgin, Columbia
링크 공식 사이트 트위터
위 프로필 사진은 2017년 Spirit 앨범 프로모 사진[3]. 왼쪽부터 앤디 플레처, Dave Gahan, 마틴 고어


1. 소개
1.1. 결성 과정1.2. 80년대1.3. 빈스 클라크 탈퇴 이후
1.3.1. 80년대 초반1.3.2. 1983년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 1.3.3. 1984~1985년 히트작이자 문제작 Some Great Reward1.3.4. 80년대 중후반
1.4. 90년대1.5. 2000년대 이후
2. 멤버
2.1. 마틴 고어2.2. Dave Gahan2.3. 앤디 플레처2.4. 전 멤버
2.4.1. 빈스 클라크2.4.2. 앨런 와일더
3. 가사의 의미4. 음악계에 미친 영향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6. 여담


파일:external/static.guim.co.uk/Depeche-Mode-1984-001.jpg

1984년 이들의 이름을 미국 시장에 알린 <People Are People> 발표 당시.꽃돌이 시절

파일:depeche-mode-hall-of-fame-937x542.jpg
1987년 Music for the Masses 발매 당시 프로모 사진. 이 앨범 발매 후 로즈볼 스태디움에서 성황리에 투어를 마치며 미국 시장에서도 확실히 자리잡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걸린 프로필 사진도 이 사진이다.

파일:external/1.bp.blogspot.com/030_b.jpg


1993년 Songs Of Faith and devotion 발매 시절의 사진.

파일:external/www.billboard.com/2657319-depeche-mode-press2012-617-409.jpg

앨런 와일더 탈퇴 후 모습. 2009년 Sound of Universe 발매 당시. 참고로 프로필 사진과, 1987년, 1993년, 2009년 사진은 모두 안톤 코빈이 촬영한 것이다.

1. 소개

뉴 오더, 펫 샵 보이즈와 함께 80년대 신스팝을 이끌고 심지어 헤비 메탈계에까지 영향을 준 위대한 밴드
마릴린 맨슨, 나인 인치 네일스, 람슈타인, 스매싱 펌킨스, 데프톤즈, 트래비스, 린킨 파크, 콜드플레이 등 당대 최고의 밴드들이 심심찮게 그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1980년대 뉴웨이브 열풍이 유행할 당시에 결성되었던 4인조 신스팝 밴드로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뉴 오더, 펫 샵 보이즈와 함께 2010년대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신스팝적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2017년 시점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앨범 판매량이 1억 장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음반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밴드이다. 물론 투어는 말할 것도 없다.

1.1. 결성 과정

초창기 멤버는 Dave Gahan과 마틴 고어(Martin Gore), 앤디 플레처(Andrew Fletcher), 빈스 클라크(Vince Clarke)였다.

사실, 디페시 모드의 전신이 되는 밴드가 이미 있었다. 원래는 학교 친구인 앤디 플레처와 빈스 클라크는 No Romance in China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런데 1980년 어느날, 베이즐던(Basildon)에 있는 반 고흐(Van Gogh)라는 에서 우연히 마틴 고어를 만나 신시사이저를 추가한 3인조 밴드가 되었고, 밴드명을 컴퍼지션 오브 사운드(Composition of Sound)라고 바꾼다. 이후 Dave Gahan이 오디션을 통해서 우연히 보컬로 합류한다.
사실은 말이 오디션이지 순전히 우연으로 결정되었는데, 컴퍼지션 오브 사운드 멤버들이 프론트맨 역할을 할 메인 보컬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을 때, 지역의 스카우트 홀[4]에서 누가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즈를 부르는 걸 빈스 클라크가 듣고 인상적이어서 합류 제의를 했다고 한다. Dave가 훗날 말하기를, 사실 그 노래는 잼 세션 중에 여러 사람이 뒤섞여 부른 거였는데 그냥 내가 했다라고 대답하고 합류 제의에 응했다고. 링크

그리고 2주 후 빈스 클라크가 Dave에게 전화를 걸어 오디션을 치르게 했다. 이때 세 곡이 주어졌는데, 두 곡은 빈스 클라크가 쓴 곡이었고, 한 곡은 록시 뮤직의 곡이었다. 빈스 클라크의 회고에 따르면 Dave가 자신의 자작곡을 불렀을 땐 그저 그랬는데, 록시 뮤직 노래는 꽤 잘해서 합격시켰다고 한다. 링크

보컬이 정해지면서 밴드명이 바뀌었는데, Dave Gahan이 우연히 테이블에 놓인 프랑스의 패션 잡지 Depeche Mode를 보고 즉석에서 결정했다고 한다. 링크 의미는 패션을 빠르게 전달한다(fashion dispatch)는 뜻으로, 그 뜻에 걸맞게 유행을 주도하는 그룹이 되고 싶어서였다고.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유행통신 정도. 디스패치와 어원이 같다(...)

이후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인지도를 쌓았는데, 뮤지션 Daniel Miller가 자신이 세운 인디 레이블인 뮤트 레코드에 들어오라고 50 대 50으로 제안을 한다. 거액을 제안하는 회사들도 많았지만, 그가 가장 믿을만해서 뮤트 레코드에 들어간다. 링크

다만 계약서로 묶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정식 계약서 작성은 2001년부터이다. 갑을 관계로 묶이는 걸 꺼려서 이러한 선택을 한 듯하다. 그리고 그룹의 재정 업무는 지금까지도 앤디 플레쳐가 맡고 있으며, 마틴 고어는 스스로 Grabbing hands라는 저작권 회사를 세운다.

1.2. 80년대

1집은 빈스 클라크가 대부분의 곡을 썼는데, 여타 신스팝 밴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뿅뿅거리는 사운드의 발랄한 음악을 보여 주었다. 공식 뮤직비디오

하지만, 그들은 음악적인 견해 차이와 스튜디오 작업을 선호했던 빈스 클라크와 자주 다투었는데 Yazoo 다큐멘터리를 보면 빈스 클라크는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얻은 성공이 부담스러웠고, 대중들에게 대처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믿을수 없을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럼으로써 불행했었다고 고백했다. 그 당시 기자들이나 음악쪽에 종사한 사람들의 인터뷰도 같이 있는데 그 당시엔 디페시 모드와 빈스 클라크 모두 순진했었다고.
빈스 클라크와 더불어 앤디 플레쳐도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는 "그는 이미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으며 결국, 원년멤버였던 빈스 클라크(Vince Clarke)는 탈퇴하게 된다.[5] 그러나 빈스는 자기신념이 확고했던 사람이었고 그렇게 천천히 또 다른 커리어를 쌓으며 성공을 거둔다.[6]

1.3. 빈스 클라크 탈퇴 이후

1.3.1. 80년대 초반

1982년 2집부터는 마틴 고어가 팀의 주도권을 쥐면서 전곡을 작사 작곡했으며, 1983년에 발매된 3집부터는 빈스 클라크를 대신해서 앨런 와일더(Alan Wilder)가 큰 역할을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발랄 뿅뿅거리는 콘셉트에서 아예 벗어난 건 아니었다.
2집 수록곡 <Meaing of Love> 뮤직비디오를 보면 뽀뽀뽀가 따로 없다(...) 참고로 앨런 와일더가 합류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앨범 참여는 3집부터이지만, 방송 활동은 2집부터 했었다. 뒤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는 꽃미남이 앨런이다.

사실, 가사 내용은 동화적인 뮤비 내용과는 딴판이다. From the notes that I've made so far Love seems something like wanting a scar(지금까지 내가 만든 노트에서 사랑은 상처를 원하는 것 같다)라며 사랑의 의미를 확신하지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후 가사의 방향성이 암시되는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활동은 보이밴드 초통령 이미지로 갔다. 지금도 간간이 회자되는 충격과 공포의 방송이다.
독일의 TV 쇼에서 닭을 안고 2집 타이틀 곡 <See You>를 립싱크하는 모습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2015년에 Dave Gahan이 당시를 회상한 인터뷰. 텍스트본 다행히도 이 방송을 끝으로 이런 예능에 나갈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독일이다.

1.3.2. 1983년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

이 해에 발매된 앨범 <Construction Time Again>은 2017년 앨범 Spirit 공개 후 다시 거론되는 앨범인데, 사실상 이 앨범부터 밴드의 색깔이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있다. 링크

이는 이 앨범에 사회를 다룬 곡들이 다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폐기물에서 나오는 소리를 활용하는 등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실험적 요소가 있었기 떄문이다.
발랄한 멜로디와는 달리 'Everything Counts'는 여피 시대 기업의 탐욕을 냉소적으로 비판했으며, 'The Landscape Is Changing'은 환경 재앙을 우려하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었다.
또한 'Pipeline'은 폐기물을 이용한 소리를 넣어 노동 문제를 다루었다고 한다.
당시는 동서 냉전 시기였기 때문에 언론에 의해 막시스트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디페시 모드 멤버들은 대부분 노동 계급 출신이었기에 당시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링크
이는 80년대 초 잡지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는데, 메인 보컬 Dave Gahan은 왜 우리 나라에 미군기지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마가렛 대처의 군비 축소 정책을 대차게 깐다. 링크 참고로 마가렛 대처는 군비 축소 효과를 보기 위해 미국의 군사 정책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무렵부터 마틴 고어와 앨런 와일더는 윤리적 이유로 인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1.3.3. 1984~1985년 히트작이자 문제작 Some Great Reward

이후에는 음악 성향이 어둡고 서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 앨범인 Speak & Spell과 후기 앨범 Violator를 들어보면 같은 밴드가 만들었다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 인더스트리얼, 고딕을 대폭 수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의 성향은 점점 동시대 밴드들과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포텐은 초기의 명반으로 꼽히는 Some Great Reward에서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가사 역시도 BDSM, 페티시, 신성모독, 간통과 같은 매우 불건전한 주제를 내세워 팝 음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이들의 핵심 주제이다.
다만, BDSM을 다루었다고 해서 SM 플레이를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등장한다. 연인 관계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거나 어느 한 쪽에게 리드당하는 것을 이러한 관계에 비유한 것인데, 실제로 마틴 고어는 BDSM 커뮤니티를 통해 가사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실제 마틴 고어가 사생활에서 SM 플레이를 즐겼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곡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BDSM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 불평등에 대한 일종의 풍자라는 해석도 있다.

빌보드지 에디터가 꼽은 디페시 모드의 명곡 20선 기사에서도 단순히 BDSM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곡으로 해석했다. 링크

이들의 미국 시장 첫 히트곡 'People Are People'도 사람에 대한 차별과 증오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았기에 당시에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노래로도 인식되었지만, 게이 커뮤니티의 지지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 노래는 미국 시장에는 1985년에야 알려졌으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3위까지 올랐다고 한다. 링크

<Blasphemous Rumours>는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으나 종교계의 거센 반발로 인해 방송 금지를 먹었기 때문에 <Sombody>를 더블 타이틀 곡으로 밀었다고 한다. 링크 이 곡에는 타악기 샘플이 쓰였는데 초기 인더스트리얼 음악 스타일이 이 곡을 통해서 나타났다.

여담이지만, 1985년도에 국내에서 발매된 Some Great Reward 앨범을 보면, 곡 제목마다 번역이 되어 있었다. 링크
여기서는 <Master And Servent>가 삭제된 채로 발매되었다.

반면 본국에서 신성모독 논란이 있었던 <Blasphemous Rumours>는 아무 문제 없이 발매되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단체의 세력이 강함을 생각하면 매우 의외인 부분인데, 가사의 내용이 자살을 기도한 소녀가 자살에 실패한 후 마음을 고쳐 먹고 신앙심을 갖고 살았으나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소녀의 오빠가 이를 슬퍼하며 하느님의 유머 감각이 역겹다고 비난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참조하자.

다만, 유교 사상이 강한 우리나라 특성상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높으신 분들은 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묘사한 부분에 공감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당시는 해외 음반도 검열을 해서 발매 여부를 결정하던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이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Master And Servent>가 삭제된 것은 BDSM을 암시하는 내용 탓이 아니라, 단어를 주인과 하인으로 직역하여 좌파적인 내용으로 오해했을 가능성도 의심해 볼 만하다(...)

이처럼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20대 초중반 밴드로서는 파격적으로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었기에 이들은 종교적인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청소년들,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이 시기에 이들은 공산주의 진영인 동구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링크
당시는 냉전 시대라 서방 서계의 음악이 금지되었음에도 이들은 1985년헝가리폴란드에서 첫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이 동구권에서 특히 인기를 끈 이유로는 음악의 우울함과 인더스트리얼적인 성향이 거론되며, 공산주의 정권에 배신감을 느낀 동구권 젊은이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1.3.4. 80년대 중후반


다음 작품인 Black Celebration은 잘 만들어진 앨범이기는 했어도 전작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많았으며 상업적으로도 부진한 편이었다. 다만,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인더스트리얼과 신스팝으로 대변되던 이들의 전기와 록을 받아들이는 후기를 이어주는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음 앨범인 Music For The Masses에서 이들은 본격적으로 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평론과 대중들은 이러한 변화에 꽤 호의적인 편이었다. 이 앨범을 계기로 이들은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도 굉장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고, 이 시기에 멤버들은 101이라는 미국의 Rose Bowl에서의 라이브 실황을 앨범으로 발매하게 되며 공연은 굉장히 성황리에 끝났다.

1.4. 90년대

다음 앨범인 Violator는 팬들과 평론가들 양쪽 모두에게 극찬을 받는 명반으로, 독일의 크라우트 록과 블루스, 일렉트로니카를 모두 섞어 전기와 후기를 가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앨범이었다. 빌보드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 상위권을 모두 석권하여 이들이 미국 시장까지 정복한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음반을 발매한 후에 보컬리스트 Dave Gahan은 미국의 여러 밴드들에게 흥미를 느꼈는데 그 중에서 제일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제인스 어딕션이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그런지, 얼터너티브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들을 보고 자신이 10대 시절 펑크 밴드 댐드를 봤을 때 느꼈던 전율을 다시 느꼈다고 한다.
이 밴드의 보컬리스트 페리 페럴을 동경해서 그런지 락커 스타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부인의 취향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부인이 머리 긴 남자를 좋아했다고. 이 여성은 원래 디페시 모드의 미국 홍보 담당자였는데, 제인스 어딕션 관련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서 그에게 미국 얼터너티브 록을 소개했다. 문제는 헤로인까지 소개했다는 것.

얼터너티브, 가스펠, 트립 합, 인더스트리얼 록 음악까지 수용한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은 미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게 되고, 그들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으나 Dave의 약물 중독과 이혼, 자살 기도, 마틴 고어의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밴드의 내부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앨런 와일더는 탈퇴하게 된다.

참고로 당시 투어는 158일간 이어졌고 밴드 사상 가장 긴 투어였는데, 투어의 규모가 큰 만큼 통제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 번은 이들의 소속 레이블 사장 대니얼 밀러가 투어에 나가 봤는데 공식 마약상을 소개받고 경악했었다고(...) 링크
멤버들의 멘탈이 나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

이후 심기일전하여 제작한 1997년 재기작 Ultra로 그들은 또 한번 건재함을 알렸다.
당시 차트 성적은 좋았지만, 이 앨범은 유일하게 투어가 없었던 앨범이다. 이는 멤버들이 투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또 받고 싶어하지 않았고, 특히 보컬 Dave Gahan의 건강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서였다.

이듬해인 1998년에 베스트 앨범인 <The Singles 86-98>를 발매하면서 투어를 재개한다.
이 앨범엔 신곡으로 Only When I Lose Myself가 실렸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컬 Dave Gahan은 투어 기간 내내 전문 상담 기관의 상담 프로그램을 성실히 따랐다고 한다. 관련 기관 상담사와 지속적인 미팅을 가졌던 것인데 이 기사를 통해 미국의 재활 프로그램이 어떤 식인지를 엿볼 수 있다.
여담으로 훗날 2017년 인터뷰에서 Dave Gahan이 투어 뒷얘기를 털어놓았는데 그에게는 술을 전혀 안 마신 상태에서 참여한 생애 첫 투어였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탈의실에서 멤버들이 다 보고 있을 때 알코올 탈덕 인증 차원에서 와인 6~7병을 벽에 던졌다고 한다(...)링크 원문은 “I remember launching six or seven bottles of wine at the wall because I couldn’t drink it”

참고로 마틴은 1993-1994년 투어 당시에는 하루에 와인을 두 병이나 마셨고, 결국 과음으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후 술을 하루에 와인 두 잔으로 줄였지만, 아예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Dave에겐 주변에 애주가가 있다는 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2005년 무렵 마틴이 이혼으로 인해 과음 습관이 재발하자 이후 그도 술을 끊어, 과거 모든 멤버가 술을 즐기는 주당 밴드였음에도 밴드 내에 금주자가 2명으로 늘어났다. 유일한 음주자가 앤디 플레처인데, 주량을 많이 줄인 게 일주일에 와인 5병이라고(...)

1.5. 2000년대 이후

2001년 밀레니엄 첫 앨범인 Exciter가 발표되었고, 이후 Playing The Angel, Sounds of the Universe, Delta Machine, 2017년 발매된 최근작 Sprit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앨런 와일더의 탈퇴 때문인지 편곡이나 작곡 면에서 탈퇴 이전보다 못하다는 평도 여럿 있는 듯 하나 전체적인 앨범의 퀄리티는 준수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

2016년 인터뷰에 멤버들이 설명하는 역대 앨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2017년 3월 17일에 14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Spirit이 발매되었다. 메타크리틱이나 롤링 스톤을 비롯한 평단에서는 비교적 호평이지만, 팬들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은편. 눈에 띄게 새로운 시도는 없지만 이 정도면 수작이라는 평부터, 이제 똑같은 방식이 진부하다는 평도 있는데 전체적으론 실망스럽다는 평이 우세한 편.

2017년 독일에 기반을 둔 음악 웹진 NBHAP가 디페시 모드 역대 모든 앨범들의 최악의 부분과 최고의 부분을 분석한 기사를 내놨다. 링크
앨범으로서 수록곡들과의 유기적인 조화를 중시하는 관점이므로, 워스트 파트로 지적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곡 자체의 완성도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7년,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 공개 40주년을 맞아 이 곡을 커버한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앞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룹 탄생의 계기를 만든 곡이고, 마틴 고어와 Dave Gahan이 보위 팬이기도 하니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곡.

2017년 투어에서 보컬 Dave Gahan이 최초로 랩을 시도했다. 전체 영상
여기에 추가된 랩은 1997년 <Ultra> 앨범의 타이틀곡 'Barrel of a gun'을 부를 때 마지막에 힙합 그룹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7]의 곡 <The Message>에 나오는 랩을 인용한 것이다.
인용된 가사는 Don't push me ’cause I'm close to the edge/I'm trying not to lose my head(It's like a jungle sometimes/It makes me wonder how I keep from going under)으로 빈민가 흑인들의 비참한 삶을 묘사한 내용이라고 한다. 링크[8]


사실, 원래는 마틴 고어가 'Barrel of a gun'을 쓸 때 랩의 느낌을 가미하려고 의도했는데, 이 곡의 가사 내용은 성경의 카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절망에 빠진 죄인의 심정을 묘사한 것이었다. 내용적인 면에서나 스타일 면에서나 맥락이 있는 인용이자,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에 대한 오마쥬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1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수상후보로 본 조비, 라디오헤드 등과 함께 선정되었다. 아쉽게도 수상은 본 조비에게 돌아갔다.

2019년 11월에 안톤 코빈이 감독한 다큐 영화 <Spirits In The Forest>가 극장에 공개되었다. 디페시 모드의 투어를 보러 가는 여러 지역의 남녀 6명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내용이라 한다. 현재 온라인으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링크 블루레이도 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202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수상후보로 또 들어갔다. 결국 2020년에 공연자 부문에 헌액되었다. 링크
특기할 만한 점은 전 멤버 빈스 클라크와 앨런 와일더도 같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애초에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실시할 때도 현재 사진이 아닌, 전 멤버 앨런 와일더가 있던 시절인 1987년도 사진을 내걸었다.

이로써 디페시 모드는 존경하는 데이비드 보위 선배의 뒤를 따라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참고로 보위가 헌액된 해는 1996년인데 이 해는 Dave Gahan이 마약으로 죽을 뻔해서 디페시 모드가 해체될 뻔한 해였다(...)
여담으로, 디페시 모드의 팬인 나인 인치 네일스도 올해 같이 헌액되었다. 트렌트 레즈너가 라디오 채널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팬들과 디페시 모드에게 축하드린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2. 멤버

2.1. 마틴 고어

본명 마틴 리 고어 (Martin Lee Gore)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출생 1961년 7월 23일 / 잉글랜드 에섹스 대거넘
  • 디페시 모드에서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하고,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각종 악기(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멜로디카)와 보컬, 코러스까지 담당하는 만능 뮤지션. 1999년에 이보 노벨로 상을 받았을 정도로 작곡 실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시상식 장면.
  • 매 앨범에 마틴 고어가 부르는 솔로곡이 한두 곡은 꼭 있으며, Dave Gahan이 부르는 곡에도 코러스를 꼭 넣는다. 음반에 보너스 트랙으로 실리는 데모 버전 보컬도 마틴이 도맡았다. Dave Gahan이 진한 바리톤 음색이라면 마틴 고어의 보컬은 청량한 고음이라 좋은 대조를 이룬다.
  • 빈스 클락 탈퇴 후에는 사실상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면서 북치고 장구 치고 다 했었으나 2005년부터 보컬 Dave Gahan도 작사 작곡에 참여하고 있다.
  • 빈스클락, 앨런 와일더와 음악적 견해차로 다투어 이들이 탈퇴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독재자라는 평도 있고, 보컬 Dave Gahan도 한때 그 점에 불만을 내비친 적이 있었으나, 2005년 이후에는 음악적 접근 방식이 바뀌면서 Dave Gahan과도 협업해 곡을 만들 때도 있다.
  • 후술하겠지만, 2010년 이후에는 빈스 클라크와도 화해하여 VCMG라는 팀을 만들어 협업으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 음악적으로 데이비드 보위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학창 시절 독일로 수학 여행을 갔던 것을 계기로 독일어를 공부한 적이 있으며 1985년 당시에는 현지 여성과 베를린에서 동거한 적도 있었다. 베를린을 좋아하는 이유는 밤새 신나게 놀 수 있어서라고(...) 링크
    • 하지만, 여기엔 업계의 사정도 작용했는데, 80년대 초반 파운드화 강세로 인해, 베를린에서 녹음을 하는 것이 제작비가 훨씬 싸게 먹혔다고 한다. 보위가 <Heroes> 앨범을 녹음했던 베를린의 한자(Hansa) 스튜디오에서 그들도 녹음을 했다. 링크
    • 80년대 당시 미디어에서는 디페시모드의 음악을 아동용 크라프트베르크라고 부른 적도 있었고, 이들의 음악이 독일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라 여러모로 독일과 인연이 깊다.
  • 알고 보면 2010년대 남자 아이돌들의 아이템인 하네스를 80년대부터 착용한 패션 리더였다. 닉값 심지어 셔츠 위에 착용하는 것도 아니고 상탈한 상태에서 착용했다(...)
파일:DepecheMode-2622-1038x623.jpg
  • 당시 패션을 보면 이건 약과이고, 스커트를 착용하거나 아예 여장을 한 사진도 다수 있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여친과 옷과 화장품을 공유했다고 한다.
    벨트에 장식용 수갑을 달기도 했는데, 요즈음 세대가 보기에도 파격적이어서 팬아트로 등장한다. 그리고 Dave Gahan과 커플링으로 엮인다(...)링크
  • 2005년 투어 때는 날개를 달고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2009년 투어부터는 더 이상 날개를 달지 않는다고 한다.

  • 위 동영상은 마틴의 날개옷이 등장한 공연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스커트도 착용했는데, 80년대와는 달리 바지 위에 착용했다. 우리나라의 철릭과 비슷한 느낌. 썸네일에 등장하는 Dave는 제이린드버그의 수트를 입었다. 2분 경에 마틴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을 때 Dave가 등 뒤로 다가와 합체하는 부분이 하이라이트(...)
  • 금발에 벽안인 전형적인 백인의 외모라 믿기진 않지만, 사실 마틴 고어는 친부가 미군 육군 병사인 흑인 혼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부모는 이혼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틴 고어가 태어났을 당시만 하더라도 흑백 결혼은 범죄시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틴 고어가 어렸을 때 친모는 백인과 재혼하여 그는 새아버지가 친아버지인 줄 알고 자라왔다고 한다.
  • 마틴이 쓴 80년대 초반 히트곡 <People are People>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 곡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마틴 고어는 자신의 친부가 흑인인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으로 미국에서 친부와 감동적인 상봉을 했다는 훈훈한 사연이 전해져 온다.
  • 평소 성격은 내성적이고 과묵하다고 한다. Enjoy the Silence 가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서 좀처럼 드러내놓고 남을 칭찬하는 일이 없지만, 일단 표현을 하면 깊숙이 진심을 담는 타입인 듯하다.
    멤버 Dave Gahan은 2017년 인터뷰에서 마틴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를 소개했다.
    언젠가 자신에게 이메일“Well, I’m so happy the universe somehow came together at some point and the universe pushed us together so we’ve got to do this.”(그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주가 어느 순간 함께 왔고, 우주가 우리에게 힘을 가했기 때문에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정말 기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평소에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얘기라 그 메시지를 받는 순간 정말 기뻤다고.
  • 디페시 모드 활동 전에는 테스코에서 계란 파손 관리를 했다고 한다. 링크 20분마다 깨진 계란을 치우고 새 박스를 놓았는데, 20분 후에 가 보면 새 박스에 든 계란도 깨져 있었다고(...)
  • 만 16세[9] 때인 1977년에 은행 캐셔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주말에 밴드 활동을 해 오면서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은행 업무로 번 돈으로 야마하 CS5 신시사이저를 구입했다고. 빈스 클라크의 말에 따르면 이 장비 때문에 같이 밴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링크
  • 운전을 배운 적이 없어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Behind The Wheel은 자전적인 가사였다(...)
  •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다. 80년대 초반 인터뷰를 보면 좋아하는 게임 목록이 나온다. 링크

2.2. Dave Gahan

본명 David Gahan(개명 전 David Callcott)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출생 1962년 5월 9일 / 잉글랜드 에섹스 에핑
  • 디페시 모드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다. 독보적인 바리톤 음색이 매력적이며, 영국의 음악잡지 Q 매거진이 선정한 위대한 가수 100명 중에 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라이브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링크
  • 알고 보면 성씨 발음으로 인해 영고라인에 든 유명인사다. Gahan의 원어 발음은 간ː에 가까우나 영국 현지에서도 제각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주로 가한이라고 잘못 읽는 경우가 많다. 데뷔 이후 30년이 넘도록 이러한 일들이 워낙 많다 보니 본인도 포기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독일 미디어에서 올바른 발음을 알리는 동영상까지 만들었다.
    참고로 이 동영상에 garn이라고 쓰인 실타래가 나온 것은 꼬아서 만든 실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garn과 발음이 같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어디서든 영고라인을 못 벗어나고 있다(...) 한국이면 "어데 씨인고?" 드립이 나올 듯.
  • 본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다면 데이브 가안이 되어야겠지만,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다면 이라고 써야 한다(...) 그래도 에밀 졸라보단 양호하다(...)
  • 여담으로 Dave Gahan의 새아버지가 아일랜드계이다. 1989년 팬클럽 소식지를 통해 밝혀진 내용인데, Gahan이란 성씨가 아시아계 성씨냐는 팬의 질문에 아일랜드계 새아버지의 성씨라고 답변했다. 링크 훗날 자신의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새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 Dave Gahan의 친부는 말레이시아[10] 영국인인데, Dave가 아기였을 때 가정을 버렸다. 이후 어머니는 아일랜드계 남성과 결혼하여 그에게 Gahan이란 성을 물려주었고 그는 새아버지친아버지인 줄 알고 자랐다. 빅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던 새아버지 덕분에 그는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랐다. 링크
    하지만, 새아버지는 그가 10살 무렵 돌아가셨고, 이때 갑자기 친부가 나타났다가 사라져 그에게 정신적 혼란을 주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Dave는 자동차를 훔쳐 타고 폭주를 즐기는 비행청소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을 접하면서 정신을 차렸고 이것이 Depeche Mode 가입으로 이어졌다.
  •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를 걱정하여 친부에 대한 것은 일절 묻지 않았으나, 훗날 가정을 꾸리고 아들이 태어난 뒤,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친아버지의 행방을 찾았다. 1989년에 팬클럽 소식지를 통해 자신의 혈통을 밝힌 것도 이 시기의 일이며, 같은 시기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무슨 사연으로 가정을 떠났는지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아버지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셨다면 연락을 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이 90년대 초 사망 소식이었다고 한다. 1997년 인터뷰에 따르면 누군가를 통해서 소식을 듣긴 했는데, 그의 친부도 그가 디페시 모드의 멤버인 걸 알고, 아들의 기사를 스크랩해 두고 있었다고 한다. 호테이 토모야스 생부 이야기와 비슷하다(...) 여담으로 그의 친부도 몸에 문신이 많았다고 한다.
  • 비행청소년 시절에 그래피티를 하다 경찰에 잡혔는데, 자신의 성씨태그로 써서 꼬리를 밟힌 웃픈 일화가 있다. 그리 흔한 성씨도 아니어서 금방 들켰다고 한다. 차라리 일지매를 태그로 쓰지.
  •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 번째 고비는 1993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대성공을 거둔 투어를 돌 때였는데, 공연 도중 마약으로 인한 심장 발작을 겪었다. 두 번째1995년에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을 때였다.
    세 번째1996년헤로인코카인을 섞은 스피드볼 주사를 놓아 심정지가 2분간 왔었을 때였는데, 구급대원이 포기하지 않고 응급조치로 살려냈다. 갓급대원 이때 임사체험 비슷한 것을 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마약을 완전히 끊는다. 당시 외신에 따르면 재활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마약을 했기 때문에 내성이 없어서 금방 쓰러진 것이었다고 한다. 이미 1994년부터 치료는 시도해 왔으나[11] 금방 재발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다 막다른 곳에 와서야 겨우 끊을 수 있었다. 마약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재활에 성공한 후에 딸이 태어났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때 구급대원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던 아이였다. 구급대원의 나비효과[12]
    네 번째2009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공연을 할 때였는데, 갑자기 대기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처음에는 위장염 진단이 나왔으나, 추가로 한 초음파 검진 결과 방광암 초기임이 밝혀져 바로 암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보시오 의사양반, 내가 암이라니 다행히 치료가 성공적이라 지금까지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금연까지 본인 말에 따르면, 초기에 암을 발견한 덕분에 항암치료 기간이 짧아서 모발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이 때문에 별명이 Cat인데 고양이 목숨이 9개라는 속담에서 온 것(...) 그리고 본인도 고양이를 좋아한다.
  • 같은 멤버인 마틴 고어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데이비드 보위 덕후이다. 게다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형으로 만나는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자신의 딸이 보위의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나이도 비슷해서 자주 얼굴을 봤다고 한다.
  •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Dave Gahan에게 데이비드 보위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자신은 결국 납지붕[13]이나 훔치는 좀도둑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링크 펑크 음악과 데이비드 보위를 접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보위의 <Heroes>를 부르는 그를 우연히 본 마틴 고어, 앤디 플레쳐, 빈스 클라크가 그를 밴드의 보컬로 영입해 디페시 모드가 결성되었으니, 여러모로 운명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보위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끼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때 아내와 딸이 다가와 안아주며 위로했다고. 링크 한 소년의 인생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동네 지붕, 차량까지 구한 위대한 영웅 보위 선생
  • 2009년 인터뷰에서는 보위가 마약에 대해 경고하는 메시지에 좀 더 귀를 귀울였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 본래 작사 작곡은 마틴 고어가 전담해 왔으나 2005년 앨범부터 작사 작곡에 참여하기 시작해 2009년 앨범 때는 작곡 멤버로 자리 잡았다. 보너스 트랙으로 실린 <Oh Well>은 마틴과 공동 작곡했다. 본인의 솔로 앨범을 이미 두 장 낸 바 있으며, Soulsavers라는 팀과 컬래버를 하는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 자녀들의 근황이 허핑턴 포스트에 실렸다. 첫아들 잭은 이미 결혼했고, 딸 스텔라 로즈는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동영상을 보면 아버지의 TS 버전이라 여겨질 정도로 외모와 목소리가 아버지를 빼닮았다. 링크 아빠 앨범의 표지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2015년에 발표된 Soulsavers와의 컬래버 앨범 표지가 딸의 작품이다. 링크 기사에는 디페시 모드 앨범 이미지라고 나와 있지만, 기자의 착오인 듯하다. 여담으로 이 앨범의 수록곡 Shine 뮤직비디오는 둘째 아들이 찍어줬는데 현 부인이 이전 배우자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삼남매의 사이는 좋은 듯.
  • 자신의 공연에서 팬을 며느리로 맞게 되었다. 디페시 모드가 이스라엘에서 공연했을 때 Dave의 아들이 아버지의 공연을 보러 왔는데 마침 그 자리에서 현지 여성과 대화를 트게 되고 결혼으로 이어졌던 것.
  • 딸바보이다. 2013년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딸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LOL이라고 나름 유행어를 써서 보냈더니 딸이 아빠.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 80년대 리즈 시절 모습이 샤이아 라보프가 연상된다는 반응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있다. 링크 해외 웹에선 앞으로 디페시 모드 영화가 나온다면 젊은 시절 Dave Gahan은 샤이아 라보프가 맡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링크

    • 파일:depeche 움짤.gif
  • 밴드 이름을 패션 잡지에서 따와서 지어준 장본인답게(...) 패션 브랜드 광고에도 여러 번 출연했었다. 2004년SPA 브랜드 H&M 광고에 출연했으며, 2006년에 제이린드버그 광고에 출연했는데, 당시 투어와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했던 회색 수트도 이 브랜드 제품이었다. 2017년에는 디올 옴므 광고 캠페인에도 등장했다. 링크 갈수록 브랜드 가격대가 높아진다(...)
  • 사실 가수를 하기 전에 패션 관련 분야를 전공했었다. 괜히 패션 잡지에서 밴드 이름을 따온 게 아니다. 배우 클로에 세비니와의 인터뷰에서 언급된다. 구체적으로는 Window Dressing이라고 매장 쇼윈도 디스플레이에 대한 것을 배웠는데, 밴드 활동과 병행할 수 없어서 3년 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그때의 경험 때문에 무대에서 입을 의상을 선택할 때도 원단까지 꼼꼼하게 고른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가 다녔던 학교는 South Essex College로 빈스 클라크가 결성한 야주의 보컬 알리슨 모예도 이곳 출신이다. 일종의 전문대학 같은 교육기관인 듯하다. [14]
  • 2년 후 같은 잡지에서 이번에는 반대로 인터뷰어의 입장이 되어 당시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프리다 지아니니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링크 참고로 이 잡지는 패션계 인사들의 인터뷰가 실리는 인터뷰 전문 잡지이다.
  • 현란한 마이크 돌리기가 특기이다. 앞서 언급된 클로에 세비니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에는 수줍음을 타서 뭐라고요? 땅만 보고 노래를 불렀지만,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무대가 커지면서, 넓은 공간을 메꾸기 위해 이런 개인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안톤 코빈이 처음으로 감독한 A Question of Time 뮤직비디오에 살짝 등장한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잘 돌린다. 링크 1 링크 2 본인 말에 따르면 마이크는 댄스 파트너라고 한다.
  • 트렌드를 빠르게 전달한다는 밴드 명칭과는 대조적으로, 의외로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었다.
    2000년년에 전 멤버 앨런 와일더의 홈페이지에 팬들이 이메일로 별의별 질문을 다 보내왔는데 그중에는 Dave의 팬들이 그는 왜 우리가 보낸 생일 축하 메일을 씹었느냐고 질문한 것도 있었다(...)
    이에 대해 앨런은 그가 컴맹이어서 그러니 이해해라. 그는 팬들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할 거다라고 답변했다.졸지에 컴맹 인증당한 Dave. 이메일을 보냈는데 왜 읽지를 못하니
    앨런의 말에 따르면 Dave Gahan이 디페시 모드 공식 홈페이지를 볼 수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50년대생도 능수능란하게 하는 인터넷을 밴드 내 막내가 못했다.
    • 다만 현재 Dave Gahan은 이메일은 보낼 수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2013년 타임지 인터뷰에 이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핸드폰 문자 메시지는 주고받지만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 또한 2009년클로에 세비니와 했던 인터뷰에서는 팬들의 반응을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해 일부러 인이어 착용을 안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최근 공연에서는 착용하고 있다.


2.3. 앤디 플레처

본명 Andrew John Leonard Fletcher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출생 1961년 7월 8일 / 잉글랜드 노팅엄

본래는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였는데, 음악 업무보다는 재정 실무나 매니저 업무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매니저가 24시간 상주하는 게 아니라서 매니저가 근무하지 않는 시간대에는 그가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한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노팅엄이지만 두 살 때 베이즐던으로 이주해서 빈스 클라크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2011년에 단독 내한한 적이 있었다. 클럽 Eden에서 디제잉을 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안경을 착용했던 멤버였다. 그래서 멤버들이 대기실에서 앤디의 안경을 감추는 장난을 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무렵부터 Dave Gahan이 노안 때문에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으므로 이젠 옛말. 그러나 공연 때를 기준으로는 유일하게 안경을 착용하는 멤버이다.

2.4. 전 멤버

전 멤버인 빈스 클락과 앨런 와일더에 대해서는 이 에 대략적인 스토리가 소개되어 있다.
한때 사이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현재는 모두 화해한 상태. 빈스 클라크와 마틴 고어는 합동 음반을 냈고, 2010년 로열 앨버트 홀 자선 공연 때는 앨런 와일더가 깜짝 출연하여 Somebody를 공연했다.
2010년 앨런 와일더가 디페시모드 현 멤버들과 재회한 소감을 말하는 인터뷰

2020년에 이들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 디페시 모드의 멤버로서 모두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 참고로 이 부문은 단지 그룹의 멤버였다고 무조건 드는 것이 아니라, 멤버별 개별 심사까지 거쳐 선정되는 것이다. 이는 심사 위원들이 이들의 기여도를 높이 평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4.1. 빈스 클라크

본명 Vincent John Martin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출생 1960년 7월 3일 / 잉글랜드 사우스 우드포드

1집을 마지막으로 떠난 창단 멤버이다.
2011년 리믹스 앨범인 Remixes 2: 81–11에 참여했다. 링크 그가 리믹스한 곡은 'Behind the Wheel'이다.

2020년에 디페시 모드의 멤버로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 같이 들어갔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5월에 열리는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디페시 모드가 후보로 지명되었던 2018년에 이미 입장을 밝혔는데, They deserve all of the credit. All I did was started the band — you know what I’m saying? I wouldn’t go. Apart from that, I don’t have a nice suit.(그들은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저는 밴드를 시작한 것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저는 안 갈 거예요. 그거 말고도 이유가 또 있는데 저는 멋진 수트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한다.

2.4.2. 앨런 와일더

본명 Alan Charles Wilder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출생 1959년 6월 1일 / 잉글랜드 런던 해머스미스

1982년 합류 이후 1995년까지 함께했던 멤버. 디페시 모드의 최고 명반으로 손꼽히는 Violator 앨범에 큰 공헌을 했다. 해당 문서에도 언급되지만, 본래는 심플한 발라드 스타일이었던 'Enjoy the silence'에 비트를 가미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앨런이었고, 편곡에 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왔다고 한다. 본래는 키보드 연주자로 영입되었으나, 드럼도 연주할 줄 알아서 1993년 <Songs of Faith and Devotion> 앨범 때는 드러머를 맡는다.

멤버 중 유일한 런던 출신[15]으로 중산층 가정에서 부모님의 격려를 받으며 8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St Clement Danes School 그래머스쿨[16]에서 플루트를 배웠다. 방과 후에는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을 배웠다고 한다.

디페시 모드에 합류한 계기는 1982년에 음악 잡지 멜로디 메이커에 실린 구인 광고였다.
광고에는 Keyboard player needed for established band – no timewasters(기존 밴드에 필요한 키보드 연주자 - 시간 낭비자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단 21세 이하라고 연령 제한이 있었다.
59년생인 앨런은 당시 나이가 만으로 22였으나 나이를 속이고 지원한다(...) 그래서 멤버 중 유일한 50년대생이자 최연장자가 되었다.
파일:Alan Wilder.jpg

- 나이 속이고 지원한 당시 사진 나이 속인 게 들켰어도 회사 측에서 그냥 묻고 더블로 가자고 했을 듯

처음에는 투어를 위한 키보드 연주자였지만, 이듬해인 1983년에는 앨범 녹음에도 정식 참여했다.
이 앨범에는 그가 작곡한 곡도 두 곡 있는데 <Two Minute Warning>, <The Landscape Is Changing>이다.

1995년 7월 탈퇴를 선언한다. 마틴 고어와 앤디 플레처에게는 직접 통보했고, 미국에 거주하는 Dave에게는 그의 집주소로 팩스를 보내 알렸는데, 당시 헤로인에 쩔어 살던 Dave는 답장을 안 했다고(...)링크

다만, 앨런이 본인의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뒷얘기에 따르면 1996년에 앨런의 딸이 태어났을 때 Dave가 크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내 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뒤늦게 연락을 하긴 했던 것 같다. 링크

Dave가 약을 끊은 후 앨런 와일더는 다시 연락을 주고받고 왕래를 해 왔으며[17], Dave도 종종 미디어를 통해 앨런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곤 했다.
2000년 무렵, 앨런 와일더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1999년 Dave Gahan이 현 부인과 결혼할 때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날 앨런은 스케줄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으나, 이후 부부 동반으로 만나 오랜 만에 회포를 풀었다고 한다.링크


2000년 시점의 발언이라 이미 과거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당시엔 Dave와는 여전히 가까이 지냈던 반면 마틴에 대해서는 다소 불편한 감정이 남았던 듯하다. [18]
1997년 앨범 <Utra> 프로모션 당시 마틴은 전 멤버 앨런 와일더를 염세주의자라고 불렀는데, 이를 기억한 앨런의 팬들은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그가 염세주의자라는 것은 이상하다고 질문을 보내 왔다.
이에 대해 앨런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사람을 매우 가려서 사귀는 편이라 어떤 의미에선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마틴이 말한 염세주의자앨런이 매우 냉소적이고 비꼬기를 잘한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참고로, 1997년 NME 인터뷰에 실린 마틴 고어와 앤디 플레처의 반응을 보면, 앨런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느껴진다링크
다만, 앨런 본인 피셜 중에는 미디어가 일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며, 마틴과 앤디의 말을 크게 담아 두지 않는다고 언급한 부분도 있으니 판단은 알아서.[19]

한편, 비슷한 시기에 Dave가 라디오 채널 전화 인터뷰에서 앨런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앨런이 밴드에 공헌한 부분을 많이 언급하며, 10년 넘게 함께 한 가족 같은 존재임을 강조했다. 링크 더불어, Dave가 멤버들을 미운정 고운정 쌓인 형제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나는데, 훗날 앤디 플레처가 Dave에 대해 비슷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이 밴드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부분.

외부에서 추측하는 것과는 달리, 앨런 본인은 밴드 활동 당시의 경험을 부정적으로만 기억하지는 않는 듯하다. 밴드 탈퇴 후 3년 시점에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은 그룹 내에서 많은 보상을 받는 특권을 누렸고,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고 한다.링크

홈페이지를 보면, 탈퇴 이유에 대한 미디어의 뇌피셜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는 부분이 곳곳에 있다. 밴드 멤버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보다는 자신의 삶을 누리려는 결정이었던 듯하다.

여담으로, 활동 당시엔 일부 매체에서 앨런과 앤디를 구분하지 않고 기사를 내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앨런은 It just shows how little research some of these so-called journalists do.(소위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일부가 얼마나 조사를 안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어딜가나 기레기들은 존재한다.

1994년 말에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퍼스셔에서 직접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영국 공군(RAF)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그가 운전하는 차량 바로 옆 언덕에 쳐박혀 비행사 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링크 앨런의 말에 따르면 10초만 더 나아갔어도 자신은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한다. 10억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나는 드문 일이 자기한테 있었다고(...) 공교롭게도 같은 밴드에 죽을 뻔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2010년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청소년 암 환자 돕기 자선 공연에 깜짝 출연하여 옛 멤버들과 재회한 후, 이듬해인 2011년에 디페시 모드 리믹스곡 앨범인 <Remixes 2: 81–11>에 참여했다. 그가 참여한 곡은 <Sound of Univerce> 앨범 수록곡인 'In Chains'이다. 링크

이 때문에 앨런 와일더가 디페시 모드 멤버들과 재결합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나 앨런 본인은 개인 활동에 만족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3. 가사의 의미

가사의 콘셉트가 노골적으로 성적인 의미가 강하다. 어떻게 보면 얀데레적인 요소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가사의 화자로 등장하는 마조히즘적인 캐릭터들은 서브컬쳐에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BDSM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은유적인 표현이라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휘둘리겠다는 내용을 담은 지금의 아이돌 가사 콘셉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20]. 어찌 보면 특이한 콘셉트로 활동하는 몇몇 아이돌의 선구자 격인 셈. 앞서 언급한 <Master and Servant>가 대표적이다.
There's a new game 새로운 게임이야
We like to play you see 우린 놀고 싶어 보다시피
A game with added reality 현실이 더해진 게임

You treat me like a dog 넌 날 개처럼 다루고
Get me down on my knees 날 무릎꿇게 하지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우릴 주인과 하인이라 불러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그건 삶과 많이 닮았어
This play between the sheets With you on top and me underneath
종이 한 장 차이로 넌 위에 난 밑에서 놀지

Forget all about equality 평등은 모두 잊어버려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주인과 하인 놀이를 하자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And that's what's appealing
그건 삶과 많이 닮았고 그게 매력이지

There's a new game 새로운 게임이야
We like to play you see 우린 놀고 싶어 보다시피
It's a lot like life And that's what's appealing
그건 삶과 많이 닮았고 그게 매력이지

There's a new game 새로운 게임이야
We like to play you see 우린 놀고 싶어 보다시피
A game with added reality 현실이 더해진 게임

You treat me like a dog 넌 날 개처럼 다루고
Get me down on my knees 날 무릎꿇게 하지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우릴 주인과 하인이라 불러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그건 삶과 많이 닮았어
This play between the sheets With you on top and me underneath
종이 한 장 차이로 넌 위에 난 밑에서 놀지

Forget all about equality 평등은 모두 잊어버려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주인과 하인 놀이를 하자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And that's what's appealing
그건 삶과 많이 닮았고 그게 매력이지

If you despise that throwaway feeling From disposable fun
네가 일회용 재미로 날 깔본다면

Then this is the one 그래 바로 이거야

Domination's the name of the game 게임이란 이름의 지배

In bed or in life 침대에서나 삶에서나

They're both just the same 그건 똑같아

Except in one you're fulfilled At the end of the day
네가 결국엔 만족했다는 걸 빼면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주인과 하인 놀이를 하자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Come on master and servant 어서와요 주인과 하인

이같은 연인간의 주종 관계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노예가 되겠다는 희생적인 태도를 보여 주는 설정으로 활용되기도 하므로 디페시 모드의 가사에는 은근히 여심을 공략하는 요소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Behind the Wheel>인데, 여기서 여자에게 운전대를 넘기겠다는 것은 그녀에게 기꺼이 조종당하겠다는 것을 암시한다.
My little girl 나의 작은 소녀여
Drive anywhere 어디든 달려요
Do what you want 그대가 원하는 대로
I don't care 난 걱정안해요
Tonight 오늘 밤
I'm in the hands of fate 난 운명의 손 안에 있어요
I hand myself Over on a plate 나 자신을 기꺼이 넘겨요
Now 지금
Oh little girl 오 작은 소녀여
There are times when I feel 내가 이 시간을 느낄 때
I'd rather not be The one behind the wheel 난 차라리 운전대를 잡지 않겠어요
Come 다가와
Pull my strings 날 조종해요
Watch me move 내가 움직이는 걸 봐요
I do anything 난 뭐든지 해요
Please 부디
Sweet little girl 귀엽고 작은 소녀여
I prefer You behind the wheel And me the passenger
난 그대가 운전하고 내가 승객인 게 더 좋아요
Drive 달려요
I'm yours to keep 날 가져요.
Sweet little girl 귀엽고 작은 소녀여
I prefer You behind the wheel And me the passenger
난 그대가 운전하고 내가 승객인 게 더 좋아요
Drive 달려요
I'm yours to keep 날 가져요.
Do what you want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I'm going cheap 비싸게 굴지 않을게요.
Tonight 오늘밤
You're behind the wheel tonight 당신이 운전대를 잡는 오늘밤

4. 음악계에 미친 영향

신스팝 밴드이지만, 헤비메탈계에도 은밀하고 위대하게 영향을 미친 밴드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이쪽 뮤지션들에겐 우상과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글의 자료가 되는 롤링스톤 기사를 참조하길 바란다.

디페시 모드는 인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두운 내면을 음악으로 표현해 왔는데 이것이 헤비메탈 뮤지션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데프톤즈, 린킨 파크, 스매싱 펌킨스, 더 킬러스, 트렌트 레즈너가 좋아하는 밴드 중에 하나이다. Personal Jesus는 마릴린 맨슨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또한 보컬 Dave Gahan은 이와 관련해 디페시 모드와 메탈리카가 의외로 공통점이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링크

이들의 곡을 좋아하는 뮤지션들은 장르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위 글에도 나오지만 디페시 모드의 곡을 리메이크한 뮤지션 중에는 수잔 보일, 조니 캐시도 있다. 팝페라, 헤비메탈, 컨트리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초월한 것이다.
마틴 고어의 말에 따르면 리메이크 요청을 한 뮤지션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닌 뮤지션들도 있었지만, 팬심에 화답하여 웬만하면 허락한다고 한다.
그 덕분에 애플뮤직 같은 해외 음원 사이트에 엄청나게 많은 커버 버전들이 있다.

이들의 대한 헌정의 의미로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는데, 참여 라인업이 매우 화려하다. 스매싱 펌킨스, 데프톤즈, 람슈타인, 더 큐어가 참여하였고 미국과 독일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람슈타인이 공연에서 자주 부르는 Stripped가 바로 이들의 곡이다.

린킨 파크의 마이크 사노다가 이들의 히트곡 Enjoy The Silence를 리믹스하기도 했다. 또한 이 밴드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은 어린 시절 디페쉬 모드의 5번째 멤버가 되고 싶어했다고 한다.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 Speak & Spell (1981)
  • A Broken Frame (1982)
  • Construction Time Again (1983)
  • Some Great Reward (1984)
  • Black Celebration (1986)
  • Music for the Masses (1987)
  • Violator (1990)
  • Songs of Faith and Devotion (1993)
  • Ultra (1997)
  • Exciter (2001)
  • Playing the Angel (2005) - 이 앨범부터 Dave Gahan이 작사 작곡에 참여한다. 프로듀서는 Ben Hiller이며 이후 Delta Machine 앨범까지 그가 담당한다.
  • Sounds of the Universe (2009)
  • Delta Machine (2013) - Ben Hiller가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 3부작의 마지막이란 의미로 타이틀에 델타가 들어갔다고 한다. 참고로 국내 라이선스반 해설지를 불싸조의 한상혁이 맡아서 내용이 매우 알차다. 밴드의 역사뿐만 아니라, 레코딩 관련 정보까지 꼼꼼하게 담았다.
  • Spirit (2017) - 프로듀서는 악틱 몽키스와 클락슨스의 프로듀싱을 맡은 제임스 포드가 맡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할 것.

6. 여담

  • 밴드명을 따온 프랑스 패션잡지 디페쉬 모드는 1976년에 창간되어 2001년에 폐간됐다. 이젠 디페시 모드하면 밴드를 먼저 떠올리는 상황이 되었다. 참고로 원조 디페시 모드 잡지 표지는 이렇게 생겼다. 링크
  • 우리나라에서 유독 표기법 때문에 영고라인에 든 밴드이다. 프랑스어를 따서 이름을 지은 영국 밴드라는 점 때문인지, 한글 표기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국내 매체 보도를 보면 데페체 모드, 데페셰 모드 등 뒤죽박죽이다. 게다가 메인 보컬 Dave Gahan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게이한, 게헌, 개헌, 게이언, 가한 등 천차만별이다. 그나마 원래 발음에 가까운 표기가 '간', '가안'인데 한글로 적으면 이상해 보여서 그런지 잘못된 표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찌 보면 이케아아이키아로 잘못 알려진 것과 비슷한 듯.
  • 이들의 히트곡 Everything Counts에는 뜻밖에도 Korea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다만 Korea는 'Career', 'Insincere'단어와의 라임을 맞추기 위해 들어가서 특별한 뜻은 없다. Martin Gore에 의하면 동양의 다국적 기업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당시 전 세계를 쥐어잡고 있었던 동양의 다국적 기업은 일본(Japan) 기업밖에 없어서 당연히 Japan이 들어갔지만 들어보니 라임이 영 아니여서 Korea로 변경했다고 한다.[21] 가사의 내용은 모든 것을 계량화하려는 경쟁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곡이다.
  • 동성애자들이 굉장히 선호하는 밴드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멤버들은 그런 성향이 없다고 밝혔다.
  • 현재 이레이저(Erasure)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초창기 멤버 빈스 클라크는 이레이저 동료인 앤디 벨이 동성애자인지라 덩달아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2004년 결혼했다고 한다.
  • 듀란 듀란의 보컬리스트 사이먼 르 본이 당시에 싫어했던 밴드였다고 한다. 디페쉬 모드가 2005년에 모 방송에 출연해 회상한 바에 따르면, '너, 너! 내 앞에서 걔네 얘기 하지 마!' 라고 했다고 한다. 해당 동영상 4분 44초 쯤에 나온다.
    •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이들에 대해 호의적이었다고.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가 Dave Gahan과 록시뮤직 트리뷰트 앨범에서 컬래버를 한 적도 있었다. 음반 정보 1997년에 발매된 음반으로 보컬은 Dave Gahan, 베이스 기타는 존 테일러가 맡았다. 아쉽게도 애플뮤직에서도 검색이 안 되는 절판 음반이라 유튜브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영상에 존 테일러가 없는 건 넘어가자(...) 참고로 표지에 나온 여성은 존 테일러의 당시 와이프였던 아만다 드 카드네(Amanda De Cadenet)라고 한다. 사실 이 앨범 제작에 록시 뮤직의 팬인 존 테일러가 돈을 댔다.
    • 또한 듀란 듀란의 키보디스트 닉 로즈는 2011년 'Personal Jesus' 리믹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링크 Personal Jesus (M.A.N. Remix)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여기서 M.A.N.은 Andrew Wyatt, Mark Ronson, Nick Rhodes를 말한다고 한다.
  • 기독교를 비판하는 가사가 많은 편이다. Blasphemous Rumors는 신앙의 아이러니를 꼬집는 내용이고, Personal Jesus는 TV를 통해 설교하고 전화를 통해 헌금을 모금하는 TV선교사들과 그에 빠져드는 신도들을 비꼬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그들의 거의 모든 음반에는 종교에 대한 메시지를 꼭 넣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멤버들이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다. 무신론이라기보다는 종교계의 편협함을 꼬집는 내용들이 많은데 이는 마틴 고어의 예전 여친이 지나치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그를 속박했던 것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링크
  •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밴드의 보컬 Dave Gahan은 그리스 정교회 신자라는 점이다. 출처 원래 어머니가 구세군에서 일했기에 어린 시절 기독교를 접하긴 하였으나, 종교와는 거리가 먼 방탕한 생활을 해 왔는데, 헤로인 중독으로 2분 동안 심장이 멈췄다가 살아난 체험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문자 그대로 죽었다 깨어났다(...) 복학왕 김원호 현실판 당시 그가 마약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 준 여친이 그리스계 미국인이었고 이 커플은 정교회식으로 혼인한다. 즉 부인따라 개종한 것.
  • 이후 Dave Gahan은 2008년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종교적인 언급을 해 왔고 이에 관한 팬의 질문에 답변한 인터뷰도 있다. 대략 요약하자면, 종교에 관해서는 수천 년 동안 혼란이 이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솔직히 무엇을 믿는다고 확언하긴 어렵지만 어떤 종류의 높은 힘이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 사실, 1997년 NME 인터뷰에서도 이미 신에 대한 믿음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엔 주일학교를 땡땡이쳤지만, 마약 중독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마약을 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발언이 선교사 발언처럼 비치는 것은 싫다면서 이런 부류 사람들은 또 다른 종류의 약쟁이라고 신랄하게 디스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마틴 고어와 종교관이 매우 비슷하다. 2012년 CNN 인터뷰에서도 종교와 관련해 마틴과 비슷한 의구심을 느낀 적이 있다고 밝힌 바가 있다. 당시 소울세이버스라는 팀에 피쳐링을 했을 때 가사를 쓴 곡 중에 Presence of God(신의 임재)라는 곡이 있는데,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열린 눈과 귀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진정하게 이해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 마틴 고어는 딱히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01년 Q 매거진 인터뷰에서 저는 매일 일어나서 햇빛을 보고 놀라운 산 경치를 봅니다. 그리고 저는 신이 무엇이든 간에 신의 손길을 좀 더 느낍니다(I wake up every day and I see sunshine and I see amazing mountain views and I do feel a bit more in touch with God, whatever God is)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후 Q 매거진 인터뷰에서는 그동안 종교를 가지기를 원했지만, 어떤 종교도 따를 수 없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링크 1 링크 2 종교에 속하기를 거부하지만 신의 존재를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 입장인 듯하다.

  • 기독교 비판 메시지와는 반대로 은근 찬송가스런 가사와 곡들도 있다. 특히 <Songs of Faith and Devion> 앨범은 가사의 모티브를 성경에서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가스펠의 영향을 받았다.
  • 한편, 신성 모독 논란을 불렀던 <Personal Jesus>를 조니 캐쉬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디페쉬모드도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참고로 조니 캐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조니 캐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공교롭게도 이분도 과거의 삶이 Dave Gahan과 공통점이 있다.
  • 서구권 특성상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탈퇴한 멤버를 포함해 대부분이 이혼 경력이 있는데, 재혼 이후에는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가장 가정사가 파란만장했던 Dave Gahan[22]은 2005년 12월에 현재의 부인과 Suffer Well 뮤직비디오에 동반 출연했다. 그리고 솔로 부대에게 염장을 시전했다(...)아니, 참교육인가? 뮤비에서 천사로 등장한 여성이 와이프인데, 해당 곡이 Dave Gahan이 직접 가사를 쓴 자전적인 내용이자 흑역사 셀프 디스임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
  • 배우 클로에 세비니가 이들의 열성 팬이다. 클로에 세비니가 2009년에 Dave Gahan과 대담을 나눈 인터뷰 기사도 있다. 입덕 초기에 1988년에 열린 101 콘서트를 가려고 했는데, 베이비 시터 알바로 받는 돈은 티켓을 사기에 너무 부족해서 아는 남자애를 통해 티켓을 구하려 했더니 핸드잡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순진했던 그녀는 그 말이 뭔지를 몰랐는데, 친구들이 하지 말라고 해서 응하지 않았고, 결국 콘서트는 못 갔으나 그 뒤에는 콘서트를 여러 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1988년 스핀 인터뷰에 따르면 전 멤버 앨런 와일더는 합성섬유 제품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링크 원래는 synthetics이란 단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성 질문이다.
  • 80년대에는 관객들이 신발을 던지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90년대에는 공연장에서 관객이 마약 봉지를 던지기도 했다고(...)링크
    21세기에 들어서는 다크 초콜릿 투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링크
  • 마틴 고어와 Dave Gahan은 열성적인 데이비드 보위 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보위가 별세했을 때 각각 자신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애도 메시지를 남겼다. Dave의 페북 메시지 특히 마틴은 평소 과묵한 성격에 비춰 보면이례적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본문에 동료인 Dave Gahan의 보위 사랑도 깨알 같이 언급했다.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전 멤버들도 디페시 모드의 멤버로서 같이 헌액되었다[3] 참고로 1983년 앨범에도 망치를 들고 있는 이미지가 있다.[4]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보이스카웃에서 쓰는 건물이라고 나온다. 아마 지역 문화 시설 같은 개념인 듯. 링크[5] 멤버들이 화나있었다고 위에 언급한 다큐멘터리에서 빈스가 말하는 부분이 있다.[6] 후에 그는 Alison Moyet과 Yazoo를 결성. 그 후 The assembley. 이후 앤디 벨과 함께 이레이저를 결성한다.[7] 1979년에 데뷔한 힙합계의 전설적 그룹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들어간 힙합 아티스트이다.[8] 1982년에 발표된 이 곡은 그 전까지만 해도 파티용 음악이었던 힙합이 흑인들의 삶의 목소리를 담아 내는 음악이 될 수도 있음을 알리는 의미 있는 곡으로 평가된다.[9] 참고로 영국은 의무 교육 기간이 만 16세까지이다.[10] 해외 사이트에선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이 부계 쪽 조상이라 나온다. 나무위키의 말레이시아 문서에도 나오듯이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민족 중에는 인도계도 있다.[11] 훗날 2002년 잡지 <Uncut> 인터뷰를 통해 그 시절 일을 적나라하게 털어놨었는데, 1994년 연말에 자신의 어머니와 전처 소생 첫아들이 오랜 만에 자기를 보러 집에 찾아온 날에도 마약을 하다 기절했었다고 한다. 깨어난 후에도 마약 주사기를 찾았다고(...) 다만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어머니와 7살 난 아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 뉘우치고 재활원에 들어갔지만 나오자마자 재발했었다(...) 아들이 인생 2회차[12] 참고로 이와 아주 비슷한 일이 이미 9년 전에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머틀리 크루의 니키 식스 관련 내용을 참조할 것. 이 때문에 지금도 해외 음악계에서 이들의 사례가 죽었다가 살아난 뮤지션들의 사례로 같이 묶여서 회자된다.[13] Lead roofing이라고 치면 나오는 이미지들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슬레이트 지붕 같은 오래된 싸구려 지붕인 듯하다. 이걸 뜯어다 파는 놈들이 당시에 많았던 듯(...)[14] 참고로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에도 언급되지만 영국에서 college라는 단어는 미국에서와는 쓰임새가 다르다.링크[15] 사실 디페시 모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에섹스이다. 영어권 사람들이 느끼기에 에섹스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에섹스 특유의 액센트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에서 결성된 밴드의 유일한 서울 출신 멤버 같은 위치인 듯.[16] 7년제 대학입시 대비 인문계 중등학교를 말한다.[17] 앨런의 말에 따르면 약만 안 하면 Dave는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과거 Dave의 마약중독에 대해 도덕적인 이유로 비난하지 않고, 마약 때문에 본래의 좋은 성격을 잃어버린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18] 앨런이 디페시 모드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전 뉴비였던 Dave와 가장 친했다는 얘기도 있다. 디페시 모드의 전신인 컴퍼지션 오브 사운드 멤버들이 영입한 게 Dave였으니 어찌 보면 뉴비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링크[19] 사실, 잡지에 실린 인터뷰는 기자의 질문에 인터뷰이가 답변하는 심플한 형식으로 구성되지만은 않으며, 기자의 주관을 길게 늘어놓은 부분이 인터뷰이의 답변을 압도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실제로 팬들이 갈무리한 과거 기사들을 보면, 기자의 개입 일절 없이 멤버들이 팬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된 글과 기자가 작성한 글 사이의 온도 차가 매우 크다. 후술하겠지만, 보컬 Dave가 응한 라디오 채널 전화 인터뷰도 기자가 작성한 기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며 좀 더 둥글둥글한 늬앙스.[20] 빅스의 <다칠 준비가 돼 있어>라든가 블락비의 <Toy> 등이 이런 계열이다. 심지어 빅스는 <Chained UP> 활동 시 노예 콘셉트를 내세우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블락비의 리더 지코의 솔로 앨범 19금 수록곡 <유레카>에는 너의 조수석 승차를 원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상대방이 원하는대로 따라가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돈 잘 버는 영계가 자기 차에 여자를 태우지 않고 굳이 여자의 운전석 옆에 앉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디페쉬 모드의 <Behind The Wheel> 가사와 유사한 표현이다.[21] 다만, 실제 80년대 중반엔 전 세계로 퍼진 다국적 기업은 우리나라엔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국내 기업이 전 세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90년대 와서의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22] 2번 이혼하고 3번 결혼하였는데, 2번째는 불륜 상대였다(...) 2번째 부인이 그에게 헤로인을 권해서 둘이 같이 마약을 했지만, 그가 더 깊숙이 빠지자, 아내가 질려서 떠났다고(...) 현 부인은 Depeche Mode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그가 유명인인지도 몰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