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10-11 16:31:44

Bring Me The 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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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g Me The 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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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리 맬리아 · 올리버 사익스 · 맷 니콜스 · 맷 킨
결성 2004년
활동 지점 영국 사우스 요크셔, 셰필드
장르 메탈코어
얼터너티브 메탈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닉 록[1]
포스트 하드코어
팝 록
데스코어
레이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하 RCA 레코드[2], 컬럼비아 레코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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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음악성4. 그 외5. 멤버
5.1. 올리버 사익스 (Oliver Scott Sykes)5.2. 맷 킨 (Matt Kean)5.3. 맷 니콜스 (Mat Nicholls)5.4. 리 맬리아 (Lee Malia)5.5. 존 존스(John Jones)5.6. 이전 멤버
6. 디스코그래피

1. 개요

2003년 활동을 시작한 영국의 메탈코어 밴드. 밴드명의 유래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에 나오는 잭 스패로우의 대사.[4]

2. 역사

2000년대 중반, 영미권 마이스페이스 등지에서는 80~90년대생 10대 및 20대 초반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메탈코어/데스코어 밴드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하나의 온라인 중심 언더그라운드 씬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특유의 이모(EMO)적인 패션과 틴에이지 특유의 감수성, 그리고 DIY적인 제작 환경에서 비롯된 직선적인 구성과 로파이한 음질 등의 공통점을 보였다. 대표적인 밴드로 Suicide Silence와 Job for a Cowboy 등을 꼽을 수 있으며, Bring Me the Horizon 또한 이러한 마이스페이스 데스코어 붐을 타고 성장한 대표적인 밴드 중 하나였다.

당시 Bring Me the Horizon은 수려한 외모와 패션으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던 보컬 올리 사익스의 마이스페이스를 비롯한 온라인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홍보했으며, 로컬 공연장을 순회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2004년에 발표한 데모를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밴드는 이후 데뷔 EP This Is What the Edge of Your Seat Was Made For를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Kerrang! 등의 매체에서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Visible Noise Records와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EP를 재발매하며 점차 인지도를 쌓아갔다. 이후 2006년에는 Kerrang!과 관련된 신인상 수상 등을 계기로 더욱 이름을 알렸으며, 같은 해 10월 정규 1집 Count Your Blessings를 발매했다.해당 앨범을 통해 Bring Me the Horizon의 인지도는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상승했으며, 수록곡 Pray for Plagues는 이후에도 초기 마이스페이스 시대를 대표하는 곡 가운데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허나 Bring Me the Horizon은 인지도의 상승과 더불어 거대한 반발에 부딪혀야만 했다. 이는 당시 헤비니스씬의 시대적, 상황적 배경에서 기인하는데, 마이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씬의 DIY적인 제작 환경과 낮은 진입장벽은 젊은 뮤지션들이 손쉽게 음악을 발표하고 팬층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왔으나, 한편으로는 '결국 음악이 허접해도 팔로워만 많으면 뜨는 거 아니냐' 라는 비판도 존재했다. 또한 마초성을 추종하던 기존 서구권 헤비니스 팬덤 특유의 정서상 마이스페이스 씬 밴드 특유의 이모적 패션에 대한 반발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마이스페이스 씬 자체도 구성원의 연령대가 낮았던만큼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논란이나 충돌도 빈번했다. 이렇다보니 마이스페이스 씬 코어 밴드들의 음악은 올드스쿨 메탈헤드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부모님 속 썩이고선 적반하장으로 소리지르는 철부지 10대들의 배설물 혹은 멘헤라 고스걸 꼬시겠다고 뮤지션 행세나 해보려는 무책임한 겉멋 따위와 같은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Count Your Blessings의 제작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충분한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갑작스런 성공을 맞이해버린 멤버들은 방만한 태도로 앨범 제작에 임했으며, 레이블 또한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녹음기간을 제공하고 메탈과는 관계가 없는 프로듀서를 기용하는 등 모든 면에서 엉망진창이었다. 이렇다보니 Count Your Blessings은 당시 마이스페이스씬 코어 밴드임을 감안하더라도 독보적으로 로우한 녹음과 믹싱상태를 여과없이 세간에 드러냈으며, 향후 밴드 내부에서도 그다지 앨범의 퀄리티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할 정도였다.

이러한 전후상황 속에 급격히 인기를 얻은 Bring Me the Horizon은 기존 메탈 팬덤의 반발을 대표적으로 마주한 밴드 중 하나였다. 특히 당시의 BMTH는 음악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외모와 패션, 마이스페이스를 통한 활동 방식까지 함께 주목받았으며, 메탈헤드들로부터 '씬 키드'의 전형적인 예시로 취급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결과적으로 밴드는 Count Your Blessings을 통해 나쁘지 않은 판매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인 데뷔를 이루었으나, 동시에 평단과 골수 메탈헤드들에게는 혹평과 더불어 조롱, 멸시의 시선을 마주해야만 했다.

충격을 받은 밴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2008년 스웨덴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프레드릭 노르드스트룀과의 협업 끝에 정규 2집 Suicide Season을 발매한다. 데스코어 사운드에서 벗어난 메탈코어를 기반으로 글리치나 인더스트리얼틱한 샘플, 베이스 드랍 등 전자음악적 터치를 덧칠한 사운드는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킬링 트랙으로 손꼽히는 'Chelsea Smile'과 'Diamonds Aren't Forever' 등을 통해 평론지에서도 음악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막 두각을 나타내던 스크릴렉스 등이 참여한 전곡 일렉트로닉 리믹스 앨범 Suicide Season: Cut Up!을 선보이며 향후 시작될 장르 크로스오버적 행보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호주 출신의 테크니컬 기타리스트 조나 와인호픈을 영입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한 밴드는 정규 3집 There Is a Hell Believe Me I've Seen It. There Is a Heaven Let's Keep It a Secret.를 발매하였다. 앨범은 밴드 커리어 사상 가장 어둡고 비장한 음악성을 선보였으며, 신디사이저는 물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까지 동원해 포스트록적인 서정성을 메탈코어와 결합한 사운드는 평단으로부터 음악적으로도 성숙해졌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 뒤에는 보컬 올리 사익스의 파멸과 마약 중독이라는 어두운 이면이 숨겨져 있었다. 2008년 경부터 이미 올리는 심각한 케타민 중독 상태였으며, 이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붕괴에 시달리고 있었다.[5] 게다가 과도한 스크리밍과 약물 부작용으로 올리의 목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아 밴드는 해체 직전의 위기까지 몰려 있었다. 훗날 올리 사익스는 2014년 APMA 수상 소감에서 "3집을 만들 당시의 나는 완전히 미쳐있었고 진짜로 죽고 싶어 했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지옥 같은 중독과 재활원에서의 치료 경험은 훗날 밴드 역사상 최고의 명반이라 불리는 4집 Sempiternal과 수록곡 'Hospital for Souls'의 서사로 이어지게 된다.

3. 음악성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음악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바꾸는 밴드로, 초기 1집의 경우 데스코어였다가 2집부터는 메탈코어로 전환하였고 Sempiternal에 이르러서는 키보드 멤버인 조던 피시를 영입하면서 팝적인 멜로디와 포스트 하드코어를 접목하며 많이 유해진 모습을 보여줬고 후속 앨범인 That's The Spirit에 이르러서는 더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도입하면서 더이상 코어 장르의 밴드라고 보긴 힘들어졌다.[6] 악기의 연주나 보컬라인 외에 믹싱의 차이로도 점점 달라지는 음악적 지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편이다.[7]

놀라운 것은 4, 5집 이후 대중적 멜로디에 익숙한 대중들을 성공적으로 포섭한 것은 물론, 그토록 지속적이고 급격한 스타일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 동세대 헤비니스 밴드들 중에서도 대중적 변화를 꾀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BMTH을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중적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거나 아예 퀄리티 자체가 떨어지는 작품들을 내놓으며 상업적으로도 기존보다 좋지 못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 게다가 메탈씬에서 아티스트의 작법과 스타일의 전환을 '배신'이나 '타락'과 같이 간주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BMTH이 더욱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장르적 취향에 따른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양질의 결과물을 창출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 평론지에서도 바뀐 스타일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크게 호응을 얻어서 상업적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얻고 있다.

2026년에는 정규 1집 <Count Your Blessings>의 20주년을 기념하는 리레코딩 앨범인 <Count Your Blessings | Repented>를 발매하며 다시 데스코어로 복귀했다. 신규 데스코어 트랙인 Dehumanized도 추가로 수록되었다. 앞으로도 데스코어 활동을 이어나갈지는 미지수.

4. 그 외

2016년 NME 어워드에서 공연 도중 콜드플레이 멤버들의 탁자 위를 뒤집고 올라가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하였다. #

올리버 사익스의 보컬리스트로써의 실력논란이나 사생활 관련 가십거리, 대중지향적 방향성의 음악적 변화와 전술한 행적 등이 겹친 결과 RYM이나 /mu 등지에서는 여론이 좋지 못한 편. 물론 이 둘은 힙스터 성향이 강한 사이트다 보니 대중적인 밴드에 대한 적대감이 섞여서 그렇기도 하다.

2020년 발표된 <POST HUMAN> EP는 4부작으로 기획되어 있으며, 발표 당시 올리버 사익스는 2020년 이내로 모든 EP가 공개될 것으로 밝혔으나,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며 2020년에는 <POST HUMAN: SURVIVAL HORROR>만 발표되었고, 2023년 현재까지 4개의 싱글[8]만이 발매되었다. 그래도 인스타 라이브나 유튜브 다큐 등을 통해 조금씩 데모가 공개되는 중.

그리고 다운로드 페스티벌 2023에서 슬립낫, 메탈리카와 함께 헤드라이너로 참가함과 동시에, 6월 9일 공연날에 새 앨범 <POST HUMAN: NeX GEn>이 발표되었다.

뮤직비디오가 하나같이 괴랄하기로 유명하다. Avalanche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예외일 뿐이고 오히려 밴드의 오래된 팬층은 난해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럼 그렇지 하며 그러려니 하는 편.

5. 멤버

5.1. 올리버 사익스 (Oliver Scott Sykes)

밴드의 리드보컬 겸 얼굴 마담. 팬들 사이의 애칭은 올리(Oli).

꽤나 인지도 있는 패션 브랜드인 드롭 데드 클로딩(Drop Dead Clothing)의 창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메탈계의 김장훈으로 평가받는 남자이기도 하다.[9]

밴드 활동 초기에는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수어사이드 사일런스의 미치러커에 비견되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하지만 독학으로 습득한 괴랄한 스크리밍[10]과 약물중독[11]이 겹쳐 날이 갈수록 보컬이 악화일변도를 걸었고, 결국 2009년도를 경계로 목에 무리가 와 이후 2차례에 걸쳐 성대결절 수술을 했다. 한창 상태가 심각했을 땐 스폰지밥 스크리밍이라며 커뮤니티에서 조롱당하는 굴욕까지 당했을 정도.

안 그래도 데스코어 시절부터 그루피들을 몰고 다니기로 유명해 마초성향이 짙던 메탈계열 커뮤니티에서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는데, 실력논란과 더불어 밴드의 음악 스타일까지 갈수록 대중친화적으로 변화하였으니, 욕을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12] 거기에 밴드의 인기가 절정이던 2016년 성대결절 또한 절정에 달해, 음원 성적과는 별개로 대중들의 반응도 썩 호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도 그 해 NME어워드에서 콜드플레이와 갈등이 벌어졌고, 배우자 한나 픽시 스노든의 불륜으로 인한 이혼 소송 공방 등 온갖 가십거리들까지 터졌다. 덕분에 한동안 그의 이미지는 더 내려갈 곳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자 그대로 모든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십자포화를 당했다 봐도 무방한 수준.

그러나 2018년부터 제대로 된 언클린 발성을 익히면서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라이브 실력을 보였으며, 2023년 AmEN 공개 공연을 기점으로 라이브에서 언클린 보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을 비추며 실력논란은 이전에 비하면 거의 사그라들었다. 다만 86년생이라 나이도 먹었고, 여전히 클린보컬은 발성이 좋지 않아 라이브에선 대부분 키를 낮춰서 공연하는 편. 고음파트는 조던에게 맡기거나 노래를 부르다 말고 떼창을 유도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래도 그간 드라마틱한 기량 회복과 발전과정을 보여주었기에 팬들의 기대치는 상당한 편.

2026년에는 데스코어 트랙 위주로만 구성된 공연도 무리없이 소화할 정도로 언클린 실력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이다.# 다만 언클린 보컬만 계속 내지르다보니 공연 후반에는 조금 지친 모습을 보여주기는 한다.

무신론자로 유명하며, 대부분의 곡들의 가사에서 그의 반종교적인 면들을 엿볼 수 있다. 입도 매우 거칠어서 말을 할 때 Fuck이 안 나오는 경우가 드문 편.

어릴 때 인터넷에서 동물을 도축하는 영상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2017년 7월 22일 브라질의 가수 겸 모델인 알리식과 재혼했으며, 2025년 7월 16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레이와 젤리아라는 남녀 쌍둥이 자녀가 태어났음을 공개했다.

5.2. 맷 킨 (Matt Kean)

베이시스트.

멤버들 사이에선 비건(Vegan) 이라고 불린다.

팀 내에서 제일 장신이다, 185cm인 올리버 사이크스보다 조금 큰편. 축구를 좋아한다. 최애팀은 맨체스터 시티.

5.3. 맷 니콜스 (Mat Nicholls)

드러머.

밴드 커리어가 진행됨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가 수면위로 떠오른 올리와는 달리 이쪽은 활동 초기에 드러머로써 자질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분야 본좌인 라스 울리히와 비교하면 기교 면에선 나았지만, 라이브에서 어지간히 박자가 왔다갔다 했기 때문. 밴드 내부에서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으며, 이후 3집부터는 상당한 연습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박자 관련 문제는 거의 사그라들었다. 다만 더블베이스 속주나 블래스트비트 같은 화려한 기교나 필인을 라이브에서 구사하는 모습이 점점 줄어들며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많은 편.

특유의 기묘한 드러밍 모션과 무대공연 중 관중들이 얼마나 열광적이건 상관없이 침착하게 가라앉은 무대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편. 이와는 별개로 백스테이지에선 끼도 부리고 소소한 장난도 치는 등 나름 개그캐스러운 면이 있다.

5.4. 리 맬리아 (Lee Malia)

리드기타 및 백보컬[13]

사용하는 기타가 깁슨 레스폴로, 장르에 비해 상당히 독특한 편이다.[14] 시그니쳐 모델은 깁슨의 하위 브랜드인 에피폰에서 구할 수 있으며 밴드 성향과 달리 따뜻하고 블루지하다. 기타 자체의 소리는 5집 이후 특유의 사이버네틱한 사운드보다는 3집의 그것에 가까운 편.

조던이 합류하기 전까지 올리와 함께 작곡을 리드하는 멤버였으며 특유의 공격적인 리프디자인과 레스폴 특유의 클린웜톤을 십분활용한 감성적인 리드 멜로디라인이 특징.

5.5. 존 존스(John Jones)

투어 멤버로서 리듬기타 및 라이브 시 백보컬을 담당한다.

멤버가 5인 체제였을 때도 투어 멤버로 얼굴을 비추며 라이브에서 리 맬리아의 어시스턴트 기타를 맡아왔다. 조던 피시의 탈퇴 이후로 사실상 고정 투어 멤버로 연주 및 백보컬을 담당 중이다.

예전부터 골수팬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왔고 연주력은 물론 백보컬로서의 퍼포먼스도 준수해서 팬들 사이에선 그냥 공식멤버로 영입하라는 말도 자주 나오는 편이나 본인도 밴드도 딱히 이러한 여론에 응답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존스 본인이 녹음 작업이나 음반 참여에 열의를 드러내지 않거나 프리랜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돌아다닐 뿐이다.

5.6. 이전 멤버

  • 커티스 워드 (Curtis Ward) - 리듬 기타 (2004–2009)
    초기 원년멤버로, 2집 투어 활동 도중 청력에 문제가 발생하여 밴드에서 탈퇴하였다. 다만 이를 밴드 내부에선 이를 일종의 배신으로 받아들였고, Blacklist라는 곡을 통해 그를 대차게 씹어댔다. 이후로는 갈등이 봉합되었는지 2014년 영국 투어 당시 1집 트랙 Pray for Plagues를 연주할 때 객원 멤버로 참여하였으며, 라이브 앨범 'Live at Wembley'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조나 와인호픈 (Jona Weinhofen) - 리듬 기타, 키보드, 보컬 (2009–2013)
    적절한 연주력, 그리고 살벌한 그로울링으로 보컬파트를 보조하며 라이브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자랑했으나, 2013년 이유를 밝히지 않고 밴드에서 탈퇴했다. 팬들은 조던 피시의 영입과 4집의 작업 과정에서 멤버들과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고, 조나 본인은 2023년 인터뷰에서, 4집 녹음이 한 번 마무리된 상태에서 갑작스레 퇴출 통보를 받았다는 입장을 폈다. #
  • 조던 피쉬 (Jordan Fish) - 키보드/퍼커션, 백 보컬 (2012-2023)
    항목 참조.

6.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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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Bring Me The Horizon/디스코그래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4집부터.[2] 글로벌 배급 담당[3] 미국 배급 담당[4] 대한민국 상영에서는 자, 날 저 수평선으로 데려다 다오로 해석되었다[5] 실제로 3집의 가사들은 은유를 넘어 약물 중독자의 피폐한 독백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특히나 'It Never Ends'에서 그러한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난다.[6] 이런 음악성의 변화 때문에 해외의 일부 코어 팬들 사이에서 Bring Me The Horizon이라는 이름이 조롱의 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Eskimo Callboy와 Fail Emotions의 신보가 예전같지 않게 말랑말랑한 음악으로 발매되자 각각 Bring Me The Callboy와 Bring Me The Emotions 라는 칭호를 얻었다.[7] 2집과 3집의 경우 특유의 찍어누르는 듯 묵직한 베이스의 음압으로 공격성을 강조하고 나머지 악기들은 크런치한 질감을 형성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으며, 4집부터는 멜로디를 주도하는 기타와 보컬에 비중을 크게 둠으로써 공간감과 자잘한 사운드들을 살리고 베이스보다는 드럼 자체의 댐핑감을 강조해 그루브를 만드는 편이다.[8] DiE4 u, sTraNgeRs, LosT, AmEN[9] 농담이 아니라 김장훈과 평가의 변천사가 매우 흡사하다. 초창기엔 자신만의 발성으로 매력있다는 평가를 받아오다가, 목 상태가 맛이 가고 나서는 라이브 실력 등으로 조롱을 받고, 이후 창법과 장르를 바꾸며 나아지게 됐다는 점, 무엇보다 음원과 노래는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10] 그나마 데스코어를 할 당시에는 독자적인 발성 비슷한 무언가라도 잡혀있었지만, 2집부터 목관리 차원에서 선택한 창법이라는 것이 단순히 특유의 하이톤 보이스를 조여서 소리를 지르는 미친 짓이었기에 더욱 성대에 독이 되었다.[11] 2014년 제 1회 얼터너티브 프레스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뒤 그 자리에서 장기간의 케타민 남용과 중독증세를 겪었음을 밝혔다. 본인曰 "내 밴드가 나를 죽이고 싶어했고, 부모님이 나를 죽이고 싶어했고, 빌어먹을 형제들이 나를 죽이고 싶어했다" 라고. 이러한 자전적 경험은 It never ends와 Lost 등의 곡에 투영되어 있다. 특히나 It never ends가 수록된 세 번째 앨범은 앨범 전반이 이러한 테마를 중심으로 제작되었고, 이후 밴드 커리어에서 명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12] 당시 인터뷰에선 더 이상 데스코어를 듣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 본인의 재활원 생활 이후 팬들의 수요에 맞춰 억지로 헤비한 음악을 작곡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올리의 목상태에 맞춰 음악성이 변화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변명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클린보컬을 처음 시도했을 당시 음정조차 제대로 못 맞추는 형편없는 가창력을 선보인데다, 변화한 스타일도 서구권에서 이미지가 영 좋지 않은 이모코어에 가까웠기에 더더욱.[13] 3집까지 스튜디오 앨범 한정.[14] 2집까지는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