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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공화국의 행정구역 | |||
아체 Aceh | |||
국가 | 인도네시아 | ||
주도 | 반다아체 | ||
최대도시 | |||
면적 | 58,376.81㎢ | ||
인구 | 5,407,855명 (2022년) | ||
인구밀도 | 95명/㎢ | ||
1인당 GDP | $2,637 | ||
GDP | $129억 | ||
[clearfix]
1. 개요
아체어: Acèh인도네시아어: Aceh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서쪽 끝에 있는 지역. 면적은 5만 8375km²으로 남한의 절반이 조금 넘는 크기이며 인구는 약 540만 명이다. 중심지는 반다아체(Banda Acèh)다. 주민의 대다수는 아체인으로 이들의 언어인 아체어는 인도네시아어보다는 참파에서 쓰였던 참어와 가깝다.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이 다수다.
한국에선 수마트라왕넓적사슴벌레의 산지로 잘 알려진 지역으로 후술할 아체 독립운동 및 내전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나마 한겨레21의 종군기자였던 정문태 기자가 아체 독립운동에 대한 르포를 한겨레21에 기고한 정도인데 르포를 기고할 때 표지(466호 표지)에 인도네시아군에게 처형된 아체인의 사진을 올려서 큰 논란이 됐다.
2. 역사
2.1. 아체 술탄국
자세한 내용은 아체 술탄국 문서 참고하십시오.동남아시아 최초로 이슬람이 전파된 지역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 크다에서 12세기 초 국왕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게 동남아 최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크다 군주의 개종 시점을 15세기로 보는 다른 주변 지역의 역사 기록들과 교차 검증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아체 지역 일부에 해당하는 과거 파사이(파사이 술탄국) 지역의 군주는 13세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는데 크다 술탄국 군주와 최초 여부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아체 지역은 크다처럼 개종 여부 자체가 의심받지는 않고 있다. 아체 동부 지역에는 그 이전인 12세기에 이미 이슬람 국가인 프를락 술탄국(Kesultanan Peureulak)이 있었다는 신빙성 있는 설도 있다.
원래 이슬람 왕국이었던 아체 술탄국이 번영했던 지역이다. 포르투갈이 말라카 해협 건너의 말라카를 점령하자 이슬람 국가들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할 때 중간의 아체를 거쳐가면서 후추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전성기에는 말레이 반도 서부 대부분과 수마트라섬 위쪽 절반을 거의 차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1873년 네덜란드가 말라카 해협의 안정을 명분으로 쳐들어왔으며 30여년 간의 전쟁 끝에 네덜란드가 37,000명의 네덜란드 측 사망자를 내고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완전히 굴복하지 않고 인도네시아가 독립할 때까지 계속 네덜란드에 저항하였다.
2.2. 아체 내전
1949년 인도네시아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일부가 되었으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주민인 바탁 족은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고 아체인과는 언어도 크게 달랐다. 아체인들은 소요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1959년 아체는 자치권을 가진 주가 되었다.그러나 1968년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아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강해졌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결탁한 미국의 석유 회사가 아체의 석유를 착취해 갔다. 결국 1976년 하산 디 티로가 자유 아체 운동을 결성해 내전이 시작되었는데 이 때 반군 진압 중 인도네시아군이 저지른 인권 유린이 문제가 되었다.
90년대 말 인도네시아의 정정 혼란과 함께 2002년 아체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분리 독립 운동을 펼쳤던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했다. 이에 크게 고무된 아체 반군인 자유아체운동(GAM)은 아체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공세에 들어갔으나 동티모르에 이어 아체까지 독립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인도네시아는 대군을 동원해 강경진압을 강행했다.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에서 가장 먼저 쓰나미가 덮친 지역이자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지역으로 희생자 중 절반 가량이 발생했다.[1] 진앙지에서 수천km 떨어진 아프리카 동부 해안도 초토화시킨 지진이었으니 바로 옆에서 고스란히 맞닥뜨린 아체는 당연히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이 지진의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아체 반군은 2005년 독립을 포기하고 정부와 협상하여 내전이 종결되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아체를 '아체특별자치구'로 지정하여 자치권을 부여함에 따라 지방선거가 실시되어 자유 아체 운동 세력이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동티모르는 변방에 섬의 영토도 작은 편이고 곱게 분리 독립을 시켜도 실보다 득이 많았지만 아체의 분리 독립을 허용할 경우 인도네시아는 수마트라 섬의 육지 영토와 인도양, 믈라카 해협의 영해 다수 절반을 상실하며 수마트라 섬이 독립국 아체와 나머지 인도네시아령 수마트라로 나눠질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석유와 가스 등 아체 지역에 매장된 수많은 지하자원들과 지리적 요충지를 잃게 된다.
게다가 아체를 독립시킬 경우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민족들이 너도나도 독립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가 입응 타격은 어마어마하므로 아체를 포함한 자국 내 분리주의 운동에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유지하며 현재까지 독립에 성공한 지역은 동티모르뿐이다.[2]
한편 아체 독립운동 반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외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와 앙숙관계인 말레이시아조차도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체의 분리 독립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여기에 인도네시아 중앙정부가 아체 반군과 전쟁을 벌일 때 항복 조건으로 아체 자치권 부여를 제시했으나 아체 반군 측이 분리 독립만을 앞세우며 타협 불가로 일관하는 바람에 분쟁이 장기화된 측면도 있었다.
2.3. 특별자치주 수립 이후
2003년 이래로 샤리아를 법으로 채택하고 있다.이곳 주민들에게 원리주의 이슬람은 다른 지역, 특히 사이가 나쁜 중앙정부와 구분되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다(#). 주변국들을 보면 무슬림이 대세인 말레이시아가 오히려 더 세속적이고 무슬림이 약세이며 차별의 대상인 필리핀이나 태국 남부의 무슬림들이 더 적극적으로 엄격한 율법을 따른다.[3]
아체 주정부는 샤리아를 반대하는 세속적인 주민들에게까지 독재 정치를 펴며 폭력적으로 강요해 대는 통에 인권탄압 문제가 심각하다. 인도네시아의 자유주의 단체나 국제사회에서 아체의 현실을 알고 인권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아체 주정부를 말 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까는 걸 볼 수 있다.
아체에서 샤리아법에 따른 공공장소에서의 태형은 일상이며 거리 곳곳에서는 샤리아 종교경찰들이 시민들에게 위압을 가한다. 아체의 소수 기독교 교회와 성당들은 아체 주 정부 경찰과 군의 보호를 받는 무슬림 관리들의 주도로 도끼와 해머를 사용해 무참히 파괴되고 있으며 방화 사건도 연이어 벌어지고 무슬림들과의 폭동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는 등 기독교인 박해도 나날히 심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체의 소수민족이나 화교들은 대부분 수마트라의 다른 주로 이주하는 상황이다.
외국인에게도 샤리아가 적용되는데 처음에는 종교경찰의 경고로 끝나지만 두 번째부터는 봐주지 않으며 술을 팔았다는 이유로 기독교인 여성이 이슬람 법원에 끌려가 태형을 당하기도 했다.기사 혼외정사를 했다는 이유로 남녀에게 체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2018년에는 살인범에 대한 처벌로 참수형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성애자 15명이 태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10대 커플이 포옹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태형을 선고받았다.# 이 형벌은 코로나 19 와중에도 집행되었다.#
2020년 12월경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에 응한 아체 종교경찰이 이를 당연시하며 자랑스럽다는 듯한 내용의 답변을 했다.# 링크의 한국일보 기사를 보면 해당 기자가 아체를 방문한다고 말하자 인도네시아인들이 위험한 지역에 왜 가냐고 말렸다고 하는데 말리는 이유는 물론 아체 주정부가 저지르는 샤리아 폭정이다. 이를 보면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서도 아체의 이미지가 수꼴 동네이며 아체 주정부의 폭정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4] 인터뷰에 응한 아체 주민들도 샤리아 적용이 뭐가 나쁘냐는 반응을 보였다.
2021년 1월 29일에 동성애 커플에게 77대 태형이 집행되었다.# 2월 9일에 기독교인 등 3명이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태형을 선고받았다.# 6월 28일에는 혼전 성관계를 맺은 남녀 5명이 태형을 선고받았다.#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도 아체 주정부가 저지르는 극단주의 정책과 샤리아 폭정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칫 이 문제를 가지고 아체 주정부를 압박하거나 개입해서 주의 집권세력을 처벌히면 인도네시아와 아체 사이에 전쟁이 재발할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체가 분리주의를 포기한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아체에 여전히 분리주의 세력이 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아직 대지진 시기에 파괴된 인프라의 복구가 완전히 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의 군사력이 압도적이라 승산이 없기 때문에 자치권을 받는 것으로 타협했을 뿐이다.
3. 문화
아체인, 말레이인, 가요인(아체주 동남부 고지대에 거주하는 민족), 바탁인, 알라스인(아체주 동남부에 거주하는 민족) 등 다양한 종족이 거주하는 아체는 다채로운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동남아시아 후추 무역의 한 축이었던 아체 지역의 부와 풍요를 바탕으로 궁정과 귀족, 대상인은 종교, 문학, 공연 문화를 후원했다. 파사이 술탄국 이래 신빙성 높은 자체 역사 기록이 다른 수마트라 및 말레이 반도 지역에 비해 오래 남아 있는 등 풍부한 기록 문화가 오래도록 독자적으로 이어져 왔으므로 지역민들이 지역 정체성에 품는 역사적 자긍심도 크다.3.1. 요리
다양한 닭과 생선 요리로 유명하며 커리와 비슷한 걸쭉한 스튜 요리도 많다. 인도네시아 지역 요리 가운데 아직 자바, 발리, 파당, 마나도 요리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체인들은 지역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과거 군도 무역로의 입구이자 출구였으며 막대한 양의 후추를 생산했으므로 다양한 향신료를 접하기 쉬웠고 자연히 풍부하고 다양한 향신료를 넣은 요리가 발달했다. 아체식 닭튀김 아얌 탕캅(ayam tangkap), 아체식 볶음면 미 아체(mie Aceh), 걸쭉하고 매운 소스로 만드는 면 요리 미 찰룩(mie caluk), 새집처럼 생긴 전통 과자 크카라(keukarah) 등이 대표적이며 아체식 나시고렝, 아체식 커리 라이스 등도 일반적인 요리다.
메단 등 수마트라 내 말레이 문화권뿐 아니라 말레이 반도 및 싱가포르와 가까우므로 파당, 메단 요리나 말레이시아 요리, 싱가포르 요리와도 비슷한 음식, 예를 들어 면 요리 미 르부스(mie rebus), 스튜 요리 굴라이(gulai, 주 재료에 따라 굴라이 아얌[닭], 굴라이 이칸[생선] 등) 등을 아체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아랍 요리나 인도 요리도 로컬라이징된 것이 있는데 아랍식으로 속을 채운 팬케이크 무탑바끄(مطبق, mutabbaq)의 아체 버전 마르타박(martabak)이나 아체식 비르야니가 대표적이다.
3.2. 사만
▲ 가요 전통 복장을 갖추고 공연한 사만. 0:40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대표적인 아체 전통 무용 양식으로 사만(Saman)이라는 것이 있는데 원래는 가요인들의 무용이지만 오늘날에는 아체주를 상징하는 무용이 되었다. 여러 명이 '앉아서' 주로 상체(손, 팔, 어깨, 머리)을 이용해 춘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으로는 남성 무용수가 공연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여성 무용수가 공연하기도 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고도로 양식화된 자바나 발리의 전통 무용처럼 정적이지 않고 직관적이고 시원시원한 동작에 기반해 이 지역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 즐기거나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역을 막론하고 중학생들이나 고등학생들이 장기자랑 등으로 사만을 연습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튜브나 틱톡 등에서 학생 팀이 공연한 사만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때는 전문가가 공연하는 것이 아니므로 위 영상처럼 빠르고 숙련된 동작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3.3. 수피 사상
아체를 이슬람 규범을 엄격하게 지켜 오기만 한 곳이라고 도식적으로 이해하면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아체 술탄국이 존재하던 16세기 이래로 다양한 이슬람 사상들을 수용해 왔고 그 가운데는 수피 신비주의 사상도 있었다.전성기인 17세기 아체 술탄국에서는 수피 사상을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전파한 시인이자 사상가 함자 판수리(Hamza Fansuri)가 활동하였으며 함자 판수리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인도네시아 이슬람 사상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함자 판수리는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일자, 즉 신이며 세계는 신의 유출 내지 징후(tajalliyāt)라고 보았다.
함자 판수리 외에 아체에서 활동한 17세기 수피 사상가로 샴숫딘 앗수마트라니(Shamsuddin al-Sumatrani), 압두르라우프 앗싱킬리(Abdurrauf al-Singkili) 등을 꼽는데 누룻딘 아르라니리(Nuruddin al-Raniri) 등 아체 궁정의 동시대 정통파 순니 학자는 이들이 설파하는 신비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4. 관광
전술한 내용만 보면 무슨 이슬람 근본주의 판치는 위험한 지역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현재는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수마트라 최북단인 만큼 자연이 좋은 곳도 많고 이슬람이 초강세인 지역인 만큼 외관이 좋은 모스크도 많아서 이슬람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오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인터넷이나 뉴스에 나오는 아체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의 당사자들은 주로 현지인들이지 외국인이라고 해코지 하거나 그런 것은 없으며 테러 위험도 파푸아나 말루쿠 같은 분리주의가 판치는 지역에 비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5]한국에서의 직항은 없으며 에어 아시아를 타고 쿠알라 룸푸르에서 술탄 이스칸다르 무다행으로 갈아타면 올 수 있다. 아니면 가루다 인도네시아 타고 자카르타에서 국내선 편으로 환승해서 오는 것도 가능하다.
5. 기타
6. 관련 문서
[1] 지진의 진앙지가 아체 근처였기 때문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2] 심지어 동티모르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에 일방적으로 합병한 나라라서 독립의 당위성과 국제적인 지지를 얻었다.[3] 실제로 필리핀 민다나오의 모로족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적 성격을 띄는 경우도 흔하며 태국 남부 말레이계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인들이 더 세속적으로 보이기도 하며 엄격한 이들조차 태국, 필리핀 무슬림들은 너무 원리주의적이라거 할 정도다.[4] 일반적인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은 아체가 다에시나 다름 없다고 까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5] 그러나 자카르타, 발리, 수라바야, 메단 등 다른 인니 도시에 비하면 조금 높다.[6] 다른 하나는 바로 옆의 파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