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08:02:26

캐리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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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행정장관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퉁치화 도널드 창 렁춘잉 캐리 람

홍콩 제5대 행정장관
The Honourable
林鄭月娥
캐리 람 | Carrie Lam

GBM GBS
파일:캐리 람 행정장관.jpg
林鄭月娥
Carrie Lam Cheng Yuet-ngor
캐리 람 쳉 윗 응오
출생일 1957년 5월 13일([age(1957-05-13)]세)
출생지 영국령 홍콩 완차이 파일:영국령 홍콩 기.png
학력 St. Francis' Canossian College (졸업) (-1975년)
홍콩대학교 (사회과학[1] / B.A.) (1975-1980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울프슨 칼리지
배우자람시우포(林兆波) (1984-)
자녀슬하 2남
약력 홍콩 특별행정구 재무부장관 (2007년 – 2012년)
홍콩 특별행정구 제6대 정무부장 (2012년 – 2017년)
홍콩 제5대 행정장관 (2017년 7월 1일2022년 7월 1일)
정당 무소속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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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논란4. 재임 기간5. 관련문서


1. 개요

Carrie Lam Cheng Yuet-ngor(林鄭月娥, 임정월아), 1957.5.13 ~

홍콩의 정치인으로, 본명은 "람 쳉 위엣 응오"(표준중국어로는 Lín Zhèng Yuè'é)이다. "람"은 남편의 성씨로 본래 성은 쳉(Cheng, 鄭)이다. 1984년수학자인 람시우포(Lam Siu-Por, 林兆波)와 결혼하여 남편의 성인 람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결혼 전 이름은 쳉위엣응오/캐리 쳉(鄭月娥/Carrie Cheng). 홍콩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부인은 남편의 성씨를 사용하는데 부인이 남편 성을 따르는 문화가 없는 중화권에서도 부인들은 중국식 이름을 표기할 때 자신의 성 앞에 남편 성을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 이를 관부성(冠夫姓)이라 하는데, 중국 대륙에서는 이 관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2. 생애

1957년 홍콩의 부촌인 완차이 구에서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람의 부모님은 저장 성 저우산 출신.[2] 홍콩대학을 졸업했다.

1980년 시민활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에 발전국장이었던 당시에 영국 통치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건축물 퀸스피어 철거를 진두지휘했는데 하얀 셔츠를 입고 철거를 반대하는 수백 명의 시위들 앞에 나서서 퀸스피어의 역사적 가치를 지워버리며 '전사'라는 별명을 얻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 행정수반이 된 렁춘잉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2017년 행정장관 선거(간접 선거)에서 1194표 중 777표럭키세븐[3](66.81%)를 얻어 당선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친중파(친설립파)에 속한다.

영국 통치시절의 총독과 현재 홍콩 특별행정구의 행정장관을 포함한 홍콩 최초의 여성 수반이며, 대만 차이잉원 총통에 이은 중화권 두 번째 여성 수반이기도 하다.

3. 논란

(람이 당선된) 2017년 선거가 홍콩 시민이 직선제로의 전환을 원했으나 무산된 상태에서 치러졌다는 점, 람이 2014년 이후 강경 친중파 노선을 추구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범 민주파들에게는 그야말로 만고역적으로 여겨지나[4], 일반 홍콩 시민들은 그러려니 하는 입장. 민의에 의해 선출된 사람은 아니지만 될 사람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중국 중앙정부는 매우 호의적으로 여기고 있다.

람은 현재 강경 친중파 노선을 추구하지만, 홍콩 우산 시위 이전까지 민주파 정치인들과의 교류가 컸고, 2000년대 초반에는 민주파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많이 펼쳤다.

람의 취임식에는 홍콩 반환 20주년을 기념하여 시진핑이 중국/홍콩의 국가원수 자격으로 방문한다[5]. 그냥 단순 자리 차이로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시진핑이 상석(위쪽 중앙 자리)에 앉는 구도에서도 갑을관계가 보인다는 관측이 있다. 연합뉴스

인사도 16명 중 15명이 친중파이며, 유일하게 친중파가 아닌 인물은 노동·복지국장(장관격)에 지명된 민주당 창립 멤버 로치퀑(羅致光) 홍콩대 부교수이다.#

2014년 홍콩 우산 시위를 강경 진압해 79일 만에 해산시켰고, 이후 1000명에 달하는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는 데도 앞장섰다.#

2019년 들어서서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에 대해서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100만이 넘은데도 불구하고 범죄인 인도법을 강행하겠다고 하였다.[6] 또한 해당 시위를 '조직적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 방침을 밝힌 바 있다. # 홍콩은 어 그거는 우산을 들고 일어난 하나의 그 폭동이야.

그리고 소위 '어머니론'이라고 불리는 발언을 했는데 시위대의 요구에 대해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 며 크리스 패튼 뒷목 잡을 소리를 하였다. 시민의 공복이어야 할 행정장관이 시위대를 버릇없는 아이 취급하는 듯한 발언을 해 홍콩시민들의 강한 비난을 받았다. # 사임 가능성까지 나온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지배-피지배 관계였던 식민지 시절 외국인 총독조차 이런 시건방진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게 개그. 이에 홍콩 시민들은 林鄭唔係我老母(람쳉[7](캐리 람)은 우리 엄마 아님!!라는 재치있는 구호로 맞서고 있다.

4. 재임 기간

취임식에서 국가안전법(보안법) 제정을 주도할 방침임을 천명하고 나서서 홍콩 내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의 부동산 대책 일환으로 72조 원에 달하는 인공섬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이다. #

2019년 6월 중에 촉발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사태가 장기화되고 200만 명이 거리로 나서면서 사태가 통제가능한 수준을 넘어 레임덕에 들어섰다는 게 전체적인 관측이다. 본인과 중국 정부 측에서는 시민들과 서구의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를 보이기 싫은 모양인지 퇴임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그와 별개로 정국 장악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사퇴하려고 했으나 중국에게 거부당했다고 한다.#혼란을 수습하고 그만두라고 보면 행정장관 교체가 가시화 되는것 같다.#

5. 관련문서


[1] 2학년 무렵에 학과를 바꿨다.[2] 홍콩은 광동어를 쓰는 지역이며 행정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문화적, 지리적으로는 광둥 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저우산은 광둥 지방과는 관련이 없는 지역이다. 다만 중국 공산혁명 이후 많은 중국인들이 대만과 함께 홍콩으고 피난했고, 홍콩은 다민족, 다문화를 표방하는 지역이다. 홍콩 토착인인 광동인과 함께 상해인, 하카 등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또한 홍콩에는 광동인이라 할지라도 홍콩 토박이가 아니라 주변 광둥 성 지역에서 태어나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3] 재밌는게 7은 광동어 발음으로 cat1이라고 읽는데, 성조를 달리하면 영 좋지 않은 곳과 관련있는 욕이 된다. 결국 777의 광동어 발음 '찻찻찻'은 갓갓갓에 해당하는 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고보니 갓갓갓도 광동어 발음처럼 들린다[4] 람의 경쟁자였던 존 창(짱춘와)은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으려 했으나 실패한 이후 민주파와 홍콩 독립운동의 지지를 얻는 방향으로 선회했다.[5] 일국양제이므로 홍콩의 형식상 국가원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나, 실질적으로는 행정장관이다.[6] 현재도 시진핑 정권에 반대하는 책을 쓴 홍콩인들이 중국 요원들에게 납치당해 중국 본토에서 징역을 살고 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이 법이 개정되면 이제 홍콩에서 시진핑을 비판했다가 합법적으로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갈 수 있다는 것으로, 홍콩의 자치권이 사실상 종결된다는 의미이다.[7] 관부성과 본래 성을 붙여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