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5:56:56

부부동성

1. 개요2. 세계의 부부동성
2.1. 한국2.2. 일본2.3. 중화권의 관부성
3. 특수 사례4. 논란
4.1. 일본에서의 개정 움직임
5. 부부동성제를 유지하는 이유6. 여담7. 둘러보기

1. 개요



부부가 같은 성씨를 쓰는 혼인 제도. 반대는 부부별성 제도이다.

부부가 결혼하면 둘 중 한 사람이 성을 배우자의 성으로 바꿔서 똑같은 성을 쓴다.

일반적으로는 부부동성제 국가에서는 아내의 성(maiden name)이 결혼 후 남편의 성(married name)으로 바뀌는 것이 관습적으로 잡혀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남성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고 여성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드물다. 대표적으로 영미권 기혼 여성의 경우 영국은 90%, 미국은 70%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

2. 세계의 부부동성

서양은 대부분의 국가가 과거 부부동성이었고, 필리핀처럼 미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나 일본처럼 서구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서 부부동성을 택한다. 다만, 서양 특히 현대 유럽의 경우 법적인 강제성은 없어졌으며, 어디까지나 제한적 관습으로 그러는 것이다. 아시아권 나라는 대부분이 부부별성이다.

부부별성이나 그 밖의 방법, 부칭, 혹은 아예 성씨를 사용하지 않아 아예 논외인 문화들도 많다. 자세한 건 성씨 문서 등을 참조.

2.1. 한국

한국 내에선 기본적으로 부부별성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찾기 힘들다. 물론 한국에서도 부부동성의 사례가 몇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일본의 영향을 받은 산물이다. 영친왕의 아내인 이방자 여사와 이중섭의 부인,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 독립운동가 중 몇몇이 그 예다. 이방자 여사는 원래 일본의 황족이었기 때문에 아예 성이 없었고[2], 영친왕과 결혼하면서 원래 이름인 마사코(方子) 앞에 남편의 성인 '이'를 붙인 것이다.

이중섭의 아내인 이남덕 여사의 경우는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란 일본식 성과 이름을 완전히 버리고 한국식 이름인 '남덕(南德)'을 따로 만든 후 남편의 성인 '이'를 붙였다. (공교롭게도 이남덕 여사가 원래 사용했던 일본식 이름이 상술한 이방자와 같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나 신여성들 중에는 본명이 아닌 서양식 이름으로 활동할 때 자신의 성이 아니라 남편의 성을 쓴 경우가 있었다. 하란사(河蘭史)[3], 박에스더[4], 최활란[5] 등이 있다. 이 경우는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뒤 서양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랐던 가라샤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내가 남편 성 따르는 게 성차별이라는 인식이 있는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특이하게 여겨질 수 있다.

오늘날에도 배우자가 한국인귀화인의 경우, 즉 귀화해서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한자 문화권 출신이 아닌 한 (본관은 새로 정하더라도) 성은 배우자의 성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2.2. 일본

일본 민법 제750조 (부부의 씨) 부부는 혼인 시에 정한 바에 따라 부 또는 처의 씨를 칭한다.

일본 호적법 제74조 혼인을 하고자 하는 자는 아래 사항을 신고서에 기재하여 그 뜻을 신고하여야 한다.
1. 부부가 칭하는 씨
2. 그 밖에 법무성령으로 정하는 사항
일본의 부부동성(엄밀히 말하면 부부동씨) 제도 정착은 꽤 특이한 사례로 분류된다. 보통은 일본에서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법적으로도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기에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를 수도 있다.
일본이 아주 옛날부터 부부동씨 제도를 쓴 건 아니다. 실제로는 에도 시대까지만 해도 기본적으로 부부별씨제였는데, 메이지 시대에 민법을 제정하면서 부부동씨제를 법제화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의 제도를 이것저것 본받다가 서양의 부부동씨 제도를 그대로 들여와서 법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이는 일본의 씨(氏)제도한국의 성중국의 성(姓)과는 미묘하지만 꽤나 그 의미가 다르다는 데서도 기인한다. 역사적으로 성과 씨는 다른 개념으로, 주나라 때 성씨 제도가 정착한 때에 씨란 성의 하위 개념으로서, 씨족이 정착한 거주지명이나 세습되는 관명(官名)을 따서 칭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춘추 전국 시대의 인물들을 보면 성 따로 씨 따로 있다. 대표적으로 진시황만 해도 영성이라는 성과 조씨라는 씨가 따로 있었다.[6]

중국의 성씨 제도를 도입한 한국에서 씨는 사실상 사라지고 성만 남았으며, 씨의 의미는 변형되어 관향(본관)을 칭하는 의미로만 남았으나 일본에서는 거꾸로 성 대신 씨만 남았다. 그래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Legal Name은 성명(姓名)이지만, 일본인은 씨명(氏名)이다. 한국의 성이 혈통을 나타낸다면 일본의 씨는 그 사람이 소속된 가(家)를 의미한다.

이렇게 의미가 다르기에, "성을 간다"는 것이 욕설로 여겨질 정도로 금기시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씨를 간다는 것은 그 정도의 의미가 없으며(도요토미 히데요시만 해도 가문의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소속된 가가 바뀌면 씨가 바뀌는 것도 자연스럽고, 분가하는 경우 씨를 가는 경우도 있으며, 가주가 가족 분위기 쇄신을 위해 씨를 갈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씨를 바꾼 유명인들도 매우 많다.[7] 모든 성이 200여 개에 불과한 한국과 달리 일본에 십수만 개의 씨가 존재하는 것도 이처럼 성과 씨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8]

따라서 창'씨'개명 당시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창씨를 강요한 논리도 “조선인의 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성 외에 일본식 씨를 하나 만들라는(創氏) 것이다!”였던 것. 물론 조선식 성이 남는다고 해도 대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조선식 성명이 아니라 일본식 씨명이었으니, 조선인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이 시절에 와서는 일본도 이미 성과 씨의 구별이 거의 사라져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성은 그대로 남고 새로운 씨를 부여한다는 논리는 눈속임식 명분에 불과했다.

일본에서 혼인을 할 경우 혼인신고서(婚姻届) 자체에 누구 씨를 따를 것인지 택일하여 체크하게 되어 있다(婚姻後の夫婦の氏・新しい本籍). 법적으로는 남편이 아내의 씨를 따를 수도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96% 정도가 남편 씨를 따른다고 한다. 국제결혼을 하거나 처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경우[9]를 제외하고 아내의 씨를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늘날 법적으로 부부동성(동씨)이 강제되는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이전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나라도 법적으로 부부동성을 강제했으나 점차 폐지되고 일본만 남게 된 것. 위에 서술한 일본에서의 씨(氏)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혼인으로 일가(一家)를 이루는 부부가 같은 씨를 갖는다는 것이 일본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본에서조차, 부부 중 한 명이 외국인이면 부부별씨가 가능하다. 일본의 호적을 가질 수 없는 외국인이 배우자라면 부부동씨의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혼인 신고 시 일본인이 외국인 배우자의 씨를 따르는 것은 가능하다.[10][11]

또한 '혼인 신고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법률이므로, 일단 부부의 성을 일치시킨 다음 다시 개명 신청을 통해서 강제로 부부별씨로 만드는 케이스도 있다.

2.3. 중화권의 관부성

중화권에서는 본래 부부별성을 택하고 있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성 앞에 남편 성을 붙이는 관습이 있었다. 이를 관부성(冠夫姓)[12]이라 하는데, 중국 대륙에서는 성평등 의식의 향상으로 오늘날에는 이러한 관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13]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주로 중•장년층 이상에서 가끔씩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홍콩처럼 아예 구미권 국가의 식민지였던 지역의 중국계 여성들은 중국식 이름과는 별도로 구미식 이름을 정할 때 자신의 성이 아니라 남편 성을 쓰는 경우가 많다. 캐리 람홍콩 행정장관이 대표적인 경우. 결혼 전 이름은 鄭月娥(젱윗오)였으나 결혼 후 남편 성을 앞에 붙여 林鄭月娥(람젱윗오)가 되었고 영어 이름을 지을 때 남편 성을 사용해 Carry Lam이 된 것이다.

3. 특수 사례

영국 왕실의 경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승계할 당시 남편인 필립 마운트배튼과 성씨를 합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여왕이 즉위하더라도 성은 계속 윈저를 쓰기로 합의되어 있었다고 메리 왕비가 밝히면서 계속 윈저로 남았다.[14] 다만 딸인 프린세스 로열 앤 공주는 마운트배튼윈저라는 성씨를 쓰게 되었다. 물론 결혼하면 남편의 성씨를 따를 것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밖엔 없다.

그리고 필립 마운트배튼이라는 항목 명칭을 주의 깊게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필립 윈저가 아니라 필립 마운트배튼. 그러니까 부부 본인들은 부부별성이다.

일본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의 부친은 사토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성씨를 사토로 바꾸었다. 아들 둘 모두 원래 '사토'라는 성씨를 사용했지만, 이후 장남의 성씨를 본래 성씨인 '기시'로 바꾸어 성씨를 잇도록 한 케이스. 고이즈미 준이치로 前 총리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도, 본래 성씨는 '사메지마(鮫島)'였으나 고이즈미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면서 '사메지마'에서 '고이즈미'로 성씨를 바꾸었다.

덕혜옹주소 다케유키의 딸인 소 마사에(宗正惠)는 스즈키 노보루(鈴木昇)라는 남성과 결혼했는데, 노보루가 마사에를 따라 '소 노보루'로 성씨를 바꾸었다. 이는 장인 소 다케유키의 요구였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에선 남자 후손이 없자 여자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상속시키면서 사위의 집안과 합쳐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을 이룬 적도 있다.

이반카 트럼프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와 결혼했는데, 트럼프 성씨를 유지하고 있다. 이반카가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이반카 쿠슈너(Ivanka Kushner)라 불렸을 것이다. 다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라 '쿠슈너'가 되었고 이반카가 남편의 종교를 따라 유대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친정의 권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정치인으로서 이미지이자 브랜드가 되는 이름을 유지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본 것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 총리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의 경우, '메르켈'은 본인의 성도 현 남편의 성도 아닌 전남편의 성이다.

4. 논란

부부동성 제도는 보통 아내가 남편의 성씨를 택하기 때문에 기혼 여성의 자유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회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에게 불편을 주며, 일반인이어도 사생활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복잡다단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개명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취미로 글을 올리던 인터넷 게시판의 닉네임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평생 써 온 본명을 바꾸는 것이니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권[15], 면허증 등 신분증은 물론이요, 은행, 보험, 연금, 신용카드, 휴대폰 계약, 금융 거래나 전자상거래, 인터넷 계정(SNS, 게임 등), 항공사 마일리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개명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개명 전의 이름으로 돼 있는 자격증, 특허, 논문 등의 개인 성과물도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별도로 증명할 필요가 생긴다. 더구나 일본에서는 공적인 관계에서 절대다수의 경우 사람을 성씨만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라 결혼 개명은 커리어에도 상당히 지장을 준다. 직장 동료나 비즈니스 관계의 지인들 사이에서 익숙한 호칭이 바뀌면서 업무에 혼선이 생기는 일도 다반사. 스스로 노력해서 쌓아온 사회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이혼이라도 하면 이야기가 더욱 복잡하다. 둘 사이의 혼인 관계 해소만으로 끝나지 않고 한쪽만(대부분의 경우 여성) 원래 이름으로 되돌아가는 번잡한 절차를 떠안고, 그 과정에서 이혼 사실은 만천하에 알려진다. 결혼과 이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결정인데,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사생활을 노출시키는 결과다. 예를 들어 여자가 결혼을 3번이나 하게 되면 호적이나 주민표 등 각종 공적인 기록에 3번이나 성이 바뀌었다는 기록이 그대로 남는다. 물론 재혼하면 재혼 상대의 성씨로 또 바뀐다.

이로 인해 결혼이혼, 재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 강제 공개당함은 물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개인의 커리어를 쌓는 경우가 늘어난 현대에는 결혼 전에 쌓은 명성이 초기화되는 셈이다. 따라서 부부동성을 택하는 나라라도 연예인 같이 본인의 이름이 결혼 전에도 오랫동안 인지되었던 여성은 법적 본명은 개명하더라도 결혼 전 성씨를 예명처럼 쓰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16] 주민 등록상으로는 남편 성씨를 쓴 이름이 본명이지만 결혼 전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 야노 시호(아키야마 시호), 칸노 미호(사카이 미호), 사사키 노조미(와타베 노조미), 우에토 아야(이가라시 아야), 쿠도 시즈카(기무라 시즈카), 하세가와 쿄코(신도 쿄코), 미야자키 아오이(타카오카 아오이 → 오카다 아오이), 데미 무어(데미 진 가인스), 조앤 롤링(조앤 머레이), 타라 스트롱(타라 채런도프)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학계에서도 이는 문제가 된다. 논문은 연구자의 이름을 반드시 적어야 하고 학자의 이름이 일종의 브랜드나 다름없으며, 그 인물의 평가 지표는 자신의 명의 또는 공저자로 얼마나 많은 논문을 등재했는지로 갈리기 때문. 부부동성 제도로 인해 성씨를 바꾼 여성 연구자는 이 점에서 불편한 요소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박정자고길동과 결혼을 해도 똑같이 박정자, 이혼을 해도 똑같이 박정자이지만, 일본에서는 타나카라는 여성이 코이즈미, 스즈키, 나카무라라는 남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하면 성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바뀌게 된다. 만일 자신의 본명으로 학계에 꾸준히 논문을 발표했다면 타나카, 코이즈미, 스즈키, 나카무라 총 4개의 이름으로 발표되고, 이때 논문 검색기에서는 전부 다른 사람 명의로 인식된다.

때문에 이를 검색한 외부 연구자는, 논문의 저자를 '겨우 몇 년 동안 활동하며 몇 편의 논문을 냈고 후속 연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별개의 별 볼 일 없는 학자 4명'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름 변경 내력을 외부에 공표하거나 ORCID 같은 것을 활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 자신의 결혼 및 이혼 이력이 제3자에게 모두 노출되는 것은 덤. 언어학에서는 Joan Bybee가 이걸로 유명하다. 형태음운론을 접할 때 제일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학자인데 과거 논문은 남편 성씨인 Hooper로 되어있어서 논문을 찾다 보면 저자의 결혼 이력까지 알게 된다.

거기다 이혼 후 다시 결혼할 때까지 싱글로 지내는 기간 동안에 논문을 발표했다면, 다나카 명의의 논문이 몇 년 간격으로 나오는 괴악한 상황도 발생한다. 부부동성이 법제화되어 있는 일본은 부부가 이혼하면 원래의 성으로 돌아가기 때문.[17] 일본은 이로 인해 특이 사례이긴 하지만 연구 실적을 위해 서류상 이혼을 해버리는 사례도 나올 정도다. #

이 분야에 대표적인 사례로는 앙겔라 메르켈 8대 독일 총리가 있다. 앙겔라 메르켈은 원래 성씨가 카스너였는데, 첫 결혼 때 남편을 따라 메르켈로 바꾸었다. 이후 첫 남편과 이혼했지만 성씨는 바뀐 채로 유지했는데, 이후 2번째 결혼 생활에서는 성씨를 바꾸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전남편의 성씨를 계속 쓰고 있다는 것. 이는 메르켈이 당시 화학자로 활동했던 탓에 '앙겔라 메르켈'이라는 이름으로 쓴 논문이 여러 편 있어서 이름을 바꾸기 곤란했던 이유였다. 논문을 자주 쓰는 연구자의 경우는 이런 이유로 부부동성이 보편화된 문화권이어도 개명이 매우 곤란하다. 그나마도 서양권은 부부동성을 어디까지나 관습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특이 사례가 용인받을 수 있는 것이지, 강제화되어 있는 일본은 그마저도 얄짤없다.

부당함을 구구절절 나열할 것도 없이, 남녀평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에 반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제도가 있는 나라들에서 여성은 미혼일 때는 아버지의 족보에, 결혼 후에는 남편의 족보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될 것을 요구받는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과는 상반된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 전근대적인 제도의 모순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보니 일본에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삶을 영위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이 상당히 많다. 각각의 사연은 다양하지만, 의외로 많은 커플이 부부 별성 제도가 시행될 때를 기다리며 혼인신고를 미루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혹은 결혼 때문에 개명은 했지만 직장에서는 결혼 전의 이름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두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다. 워낙 그런 사례가 많으니 관공서나 직장의 행정 서류에 ‘개명하기 전의 성씨(旧姓)’를 쓸 칸을 아예 마련해 놓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부부동성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사채꾼 우시지마에서는 계속 돈을 빌리기 위해서 결혼을 반복해 성을 갈아치우는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4.1. 일본에서의 개정 움직임

일본에서는 여성의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이 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으며, 이 제도가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우려도 커졌다. 일본 법제처는 1990년대에 이미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라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가족의 성씨를 통일할지 말지를 당사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전처럼 가족의 성씨를 통일해도 괜찮고, 개명이 부담스러우면 별성을 써도 좋다는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 제도가 30년 가까이 입법화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반대파의 명분은 “가족이 동일한 성씨를 써야 가족이라는 일체감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자녀에게도 이득”이라는 것이다. 민진당사민당이 11차례나 민법 개정안을 냈지만 자민당의 반대로 매번 부결되었다. 일본 법무성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에서도 1996년에 이미 부부가 동성으로 할 것이냐 별성으로 할 것이냐는 국민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자민당에서는 가족의 일체감을 해친다며 반대해 법안 제출이 무산됐다.

일본 법무성민주당 집권기인 2010년 3월에 부부가 각자의 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부부별성제를 각의 결정하여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고, 자민당으로 정권이 다시 넘어간 2013년에 다시 시도되었으나 또 무산, 결국 2015년 일본의 최고재판소[18]에 위헌 신청까지 올라가게 되었으나 부부동성제가 합헌이라고 결정이 났다. 2019년에도 합헌이라고 결정이 났다. 그리고 2020년 최고재판소에서 위헌 심판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이번에도 합헌으로 결정되었다. 2020년의 여론 조사에서는 70%가 선택적 부부동성을 찬성한다.#

일본에서도 상당히 보수적인 논조로 유명한 산케이 신문은 "부부별성 제도가 가족의 일체감을 해치고,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법 개정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라는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부부별성을 허용하는 법 개정이 가정 붕괴를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반면 도쿄신문은 여성의 입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부부별성제에 찬성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19]

결혼하면 부부는 호적에서 같은 성씨가 되는 것이 민법으로 의무화되어 되어 있는데, 이러한 부부동성을 강제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며 UN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도 일본에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가족의 유대 관계가 무너진다'라든지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상에 위배된다' 등의 반대 의견을 비판했다.

일본에선 연예인도 아닌데 남편과 아내가 대외적으로 부부별성을 하기로 했다면 대단한 괴짜나 페미니스트로 보는 분위기가 강했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달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본래 자민당을 비롯한 일본의 보수파는 선택적 부부별성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래도 찬성 여론이 강한 걸 무시할 수 없어 아베 총리와 자민당도 예전보다는 반대가 소극적이어졌다고 한다. 일본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자 야당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부부별성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2020년에 자민당과 공명당 내에서 다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1 #2 주류는 여전히 선택적 부부별성을 거부하고 있다.#1*2

지방 의회 중심으로 부부별성 도입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가결하는 곳이 있다.#

2021년 6월 23일, 3건의 부부동성 위헌 소송에 대해서 합헌으로 판결이 나왔다. 2015년의 합헌 판결 때는 15인 중 5명이 위헌 의견이었으나, 2021년에는 15인 중 4명이 위헌 의견으로 전보다 보수적인 경향이었다.

2024년, 요시다 히로시 도호쿠대학 교수가 일본이 부부동성을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를 계속 유지할 경우 500년 뒤면 모든 성씨가 '사토'로 통일될 거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아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조사 결과와 함께 일본 내 40개 기업이 부부동성 제도의 부작용을 알리는 민간 프로젝트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5. 부부동성제를 유지하는 이유

법적인 강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국가에선 부부동성제가 유지되고 있다. 미국에선 여성 70%가 남편의 성을 따르고, 영국에선 85%의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고 11%의 여성이 남편의 성과 본래의 성을 합친 혼합 성을 선택했다. 2016년 영국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미혼 여성 59%는 결혼 뒤 남편의 성을 따르기를 원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 지수가 높은 국가인 노르웨이는 대부분의 기혼 여성이 남편 성을 따랐고, 그중 절반은 본래 성을 중간 이름으로 가져가 이전 성씨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현대 시대에도 부부동성 문화를 유지하는 이유를 알아낸 영국 브래드포드 대학교, 영국 웨스트잉글랜드 대학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의 합동 연구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가부장적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을 바꾸는 관습이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넘겨주는 결혼식 전통(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해 장인이 사위에게 딸을 넘겨주는 퍼포먼스)이나 청혼은 남자가 하는 것이라는 인식 등과 관련돼 있음을 시사한다. 즉 여성이 성을 바꾸는 것은 결혼 통과 의례 같은 것이다. 부부동성 국가의 여성들은 성을 바꾸는 것을 "로맨스의 일부", "이 전통들이 자신과 남편을 더 단단하게 묶어 준다고 믿는다.", "결혼식 이후 서로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런 큰 행사를 계획하고 한 가지 성을 공유한 게 효과가 있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대중의 인식 때문이다. 연구진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게 표면적으로 '헌신과 통합'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인식된다고 분석했다. 피면접자는 성을 바꾸는 것이 "개인이 아닌 가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가 있는 여성일수록 이러한 '이상적인 가족' 서사를 드러내길 더 원했다. 결혼 직후엔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았지만 첫 아이 출산 후 성을 바꾸기도 했다. 심층 피면접자들은 "아들과 더 강한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 성을 바꾸길 원했다", "우리 셋이 같은 성을 갖게 된 것, 해외여행 등을 다닐 때 여권의 각기 다른 이름 때문에 번거로운 행정 문제가 생기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외에도 자녀 교육을 위해서, 본인 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전통을 따라서, 폭력적인 가족과 연을 끊기 위해서 등 이유는 다양했다.

미국에서는 나이가 많고, 교육을 더 많이 받았으며 재정적으로 독립한 여성일수록 본래의 성을 지키려는 경향이 더욱 컸다. 성을 바꾸면 전문직 면허, 학위, 집문서 등에 기재된 성을 모두 수정해야만 해 더더욱 수고로움이 크다. 상대적으로 어리고, 소득 수준이 낮으며 결혼 시장에서 덜 선호되거나, 미국계 흑인 여성인 경우엔 자신의 본래 성을 고수하는 경우가 더 적었다. 이런 경우는 성을 바꿔서 오는 손해나 번거로움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6. 여담

부부동성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의 창작물에서는 등장인물의 성을 바꾸는 것으로 해당 인물이 결혼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등장인물이 부부로 함께 소개되는 경우, 성만으로 묶어서 XX 부부(대표적으로 영미권의 경우 Mr. & Mrs. Surname) 식으로 쓰기도 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이인 경우 자신의 성씨에 좋아하는 사람의 성씨를 붙여서 망상하거나 자신의 이름에 좋아하는 사람의 성을 붙여서 혼자 기뻐하다가 들키는 클리셰가 있다. 특히 일본의 창작물은 등장인물의 결혼 사실을 직접적으로 밝히기보다 캐릭터의 성이 바뀐 것을 보여줌으로써 결혼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들 국가에선 창작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는 상대의 성과 합쳐보는 것을 짝사랑상사병의 신호로 생각한다.

부부동성이라는 단어는 일본어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고, 부부동성으로 검색하면 동성결혼 관련 내용이 주로 검색된다. 이 경우는 한자로 쓰면 夫婦同性이 된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부부별성이 당연했기에 굳이 이를 구분하고 지칭할 단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성 부부"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동성(同性) 부부는 성별이 같은 부부를 말한다. 또는 동성동본 부부처럼 원래부터 성이 같은(同姓) 부부를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부부동성으로 맞추지는 않지만 성을 바꾸지 않아도 처음부터 성이 같은 사람끼리 만나 부부가 되어 동성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는데 김씨와 이씨는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만큼 가능성이 낮지 않다.

결혼으로써 성이 바뀔 때 별난 이름이 발생하는 상황이 있다. 한국이 부부동성을 채택했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조민, 김민 등이 고씨와 결혼해서 고민이 되고, 서씨와 결혼해서 서민이 되며, 인씨와 결혼해서 인민이 된다.
박태희, 김태희 등이 변씨와 결혼하면 변태희가 된다.
김복자, 이복자 등이 정씨와 결혼하면 정복자가 된다.
김가영, 정가영 등이 나씨와 결혼하면 나가영이 된다.
물론 부부동성 자체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이, 이름과 성 사이에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주로 세 음절로 작명되는 한국식 이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가 있는데 부부가 동명이인인 경우도 있다. 일례로 남편과 아내 둘 다 이름이 동일한 '고경봉'인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한국경제의 고경봉 기자, 아내는 MBC의 고경봉 리포터이다.#

일본 BL·GL 팬덤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의 동성커플이 결혼하면 누구 성을 따르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7. 둘러보기


[1] 서양의 경우 부부동성도 부성주의도 법적인 의무는 없어서 관습일 뿐이라 어떤 선택지도 자유롭게 고를 수는 있고, 이 부부동성이 부부가 같은 성을 쓴다는 의미일 뿐 반드시 아내가 남편 쪽 성을 따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대체로 아내 쪽이 성을 바꾸고 자식이 아버지 성을 따른다. 아내의 집안이 더 쎄서 남편이 성명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는 스웨덴의 베스베르예틀란드 공작 다니엘이 있다. 그의 결혼 전에는 이름은 '올로프 다니엘 베스틀링'으로, 결혼 후 아내의 성(왕가의 성씨)을 따라 이름을 '올로프 다니엘 베스틀링 베르나도테'로 바꾸었다. 다만 그는 왕세녀 빅토리아와 결혼했으므로, 차기 국왕의 성씨를 자기 이름 뒤에 붙이는 게 그로서는 당연하며, 이렇게 하는 게 신랑 수업, 지위, 공작 작위 등 얻는 게 오히려 더 많다. 장명부 또한 아내의 성을 따른 사례이지만, 그는 결혼과 동시에 일본에 귀화하며 성을 바꿨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귀화 전 통상적으로 쓰던 일본 성명이 있긴 했다.) 결혼으로 성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귀화로 인하여 바꾼 것이다. 또 그가 데릴 사위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전자와 후자 두 사례 모두 "평범한 가정이 결혼 후, 아내가 가장이기에 남편이 자연스럽게 아내의 성을 따른다"는 대표적인 예시로 보기에는 어렵다.[2] 나시모토노미야라는 궁호만 있었다.[3] 본래 김씨였으나, 남편을 따라 하씨로 성을 바꾸었다. '란사'는 Nancy라는 영어 이름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한국 여성 최초로 미국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이화학당에서 교사와 사감으로 일했으며, 각종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한 신여성이다.[4] 한국 최초의 근대 여의사. 본래 이름은 김점동이었으나 이화학당에 다니면서 '에스더'라는 서양식 이름을 받았고, 박유산과 결혼한 후 남편을 따라 박씨로 성을 바꾸었다.[5] 본래의 성은 김씨이다. 친일파 김활란과는 동명이인이므로 주의.[6] 이후로는 그런 개념이 없어졌는지 야사에 따르면 임진왜란 시기 이덕형도 이씨고 그의 아내도 이씨라는 사실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같은 이씨끼리 결혼하다니 무슨 금수 같은 짓이냐고 했다가 이항복의 변명에(본디 김씨였는데 나라에 세운 공이 많아 왕이 국성인 이씨를 하사했다고 둘러댔다. 사성 정책이야 어쨌든 임금의 권한이니 그런 변명을 할 수 있던 것)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7] 한국처럼 이성 양자(異姓養子)가 특수한 경우(환관 등) 제외하면 인정되지 않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양자가 양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생부의 성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것은 씨가 아닌 성 제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지금은 생부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가정 법원의 허가를 받아 양부나 심지어 계부의 성으로도 수월하게 변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식 씨 제도하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으나 한국의 전통적 성 제도의 특징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한국 전통의 성 개념이 희미해지고 일본식 씨 개념과 혼합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8] 사실 또 이게 당연한 것이 한국은 두 글자 성은 드물고 대부분 한 글자 성이다. 근데 일본은 두 글자 씨도 많으니 글자를 조합하여 더 많은 씨를 만들어낼 수밖에, 더욱이 만들어내는 것도 자유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9] 남편의 집안보다 부인의 집안이 격이 한참 높거나, 처가에 별달리 후계자가 없어 부인이나 사위 될 자신이 처가의 가업을 이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딸로 부친을 이어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오부치 유코의 남편이 이런 경우다.[10] 배우자가 미들 네임이 있는 국가의 외국인이라면 미들 네임까지 포함해서 성씨 변경을 하는 것이 가능하며, 본인의 성과 배우자의 성씨를 합쳐서 만든 복수 성씨를 쓰는 것도 가정재판소(한국의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기만 하면 혼인 신고가 가능하다. 이혼 후 3개월 안에 신고만 하면 간단히 옛 성으로 되돌릴수 있으며, 이혼 후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가정재판소의 허가를 받으면 옛 성으로 되돌릴 수 있다.[11] 반대로 일본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의 경우에는, 외국인 아내에게 법률상 호적이 없는 관계로 일본인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나,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통칭명(일명 "통명")을 신청하거나, 기존에 사용 중이던 통명의 성씨를 남편의 성씨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12] 중국 문화를 공부한 적이 없더라도 중국 무협지를 많이 읽은 사람이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사조영웅전의 주인공인 곽정(남)과 황용(여)은 후속작 신조협려에서 결혼한 상태인데 이때 무림인들이 곽정을 곽대협, 황용을 (황여협이 아니라) 곽여협 또는 곽부인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황용의 이름은 변하지 않았고 무림인들도 그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존칭으로 부를 때는 남편의 성을 붙여 쓰는 것이다.[13] 현재 중국은 부성주의, 형제 동성동본도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14] 흔히 그의 외삼촌 루이 마운트배튼이 설레발을 쳤다가 메리 왕비가 격노해서 윈저로 고정한다고 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이건 이야기가 퍼지면서 왜곡된 내용이다. 실제로는 루이 마운트배튼이 확실하지 않지만 이러지 않을까(결혼했으니 바뀌지 않을까) 정도로 이야기한 뒤 메리 왕비가 정확한 정보(계속 윈저를 쓴다)를 알린 것뿐이다.[15] 일본에서 성명 변경으로 인한 재발급 수수료는 웬만해서는 무료지만, 여권만큼은 무조건 유료다.[16] 가끔 미들 네임 형식을 유지해 남편과 자신의 성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로빈 라이트가 숀 펜과 결혼 생활 했을 때 로빈 라이트 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17] 다만 사별은 본인이 희망을 하지 않으면 원래 성씨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18] 일본은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가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겸하여 위헌 법률 심사도 겸한다.[19] 도쿄신문은 아사히 신문보다도 훨씬 좌파적인 성향인 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