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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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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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盧偉聰 | 로와이충(Lo Wai Chung, 노위총)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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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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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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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1년 11월 19일([age(1961-11-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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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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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영국령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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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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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홍콩대학 (사회과학 / 학사)
복무 홍콩 경무처
복무 기간 1984년 ~ 2019년
최종 계급 처장 (Commissioner of Police)
1. 개요2. 생애3.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4. 퇴임5. 미국에서 제재 추진

[clearfix]

1. 개요

홍콩정치인. 홍콩 경찰의 前 경무처장이다. 정치적으로는 친중파, 그것도 강경파이며 당적은 무소속이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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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1년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났다. 홍콩대학 사회과학 학사학위를 딴 후 1984년 홍콩 경찰에 입직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왕립 홍콩경찰 시절부터 대표적인 친중파로 이름이 높았다. 왕립 홍콩경찰이던 1970-80년대에도 친중 성향 경찰간부들이 많았다.[2]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무력진압 선봉장 중 한 명으로 나선 PTU(전투경찰대)의 백인 경찰간부 데이비드 조던도 예전부터 친중파로 유명했던 사람이었는데 시위대를 Cockroach라고 불러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1997년 홍콩 반환으로 홍콩영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가고 왕립 홍콩경찰이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로 재편되자 친중 성향으로 고속 승진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홍콩민주파를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민주화 시위를 홍콩 경찰을 통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는데 이 성적을 가지고 안 그래도 고속 승진했던 그는 2015년 기어이 홍콩 경무처장에 올랐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10월 이후에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2015년 경무처장 취임 직후 중국 자본이 홍콩 신계 지역 부동산 개발을 하는 데 지역 주민들이 땅을 팔지 않고 저항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경찰력을 총동원해 해당 지역 주민 300여 명을 8시간 만에 강제퇴거시켜서 홍콩인들한테 악명을 쌓았다. 당시 민주파 쪽의 홍콩 입법회 국회의원들이 퇴거현장을 찾아와 강제퇴거를 반대하며 대화를 통해 해결하라고 하자 국회의원들한테까지 폭행을 일삼았다. 입법회에서 그를 거세게 비난했지만 무시했고 그의 뒤에는 다들 알다시피 시진핑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

이 인간이 나중에 자기를 비판한 야당 국회의원들을 중국공산당 쪽에 고자질했는지 한 민주파 국회의원이 중국에 여행갔다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수사관들에게 끌려가서 스테이플러 고문당했다. 참고로 스테이플러 고문은 중국 경찰들이 위구르 독립운동가들이나 민주화 운동가 등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할 때 애용하는 수법으로, 홍콩 재야인사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하러 중국 본토로 여행만 가면 귀신같이 알고 따라온 공안들에게 잡혀가 경찰서도 아닌 모 처에 감금돼 저 고문을 받고 나온다. 2015년 반중공 서적을 파는 코즈웨이베이 서점 주인도 선전시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선전시 공안들에 의해 몰래 체포되어 경찰서가 아닌 모처에 감금되어 저 고문을 받고는 추방 형식으로 풀려났는데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 서점을 넘기고 대만으로 도망갔으나 대만에서도 친중 삼합회의 협박을 받고는 한다.

2016년 몽콕 노점상 시위 당시 강경한 진압을 안 했다고[3] 일선 경찰[4]을 질타했고 2017년에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주최 측 간부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받은 경관 7명에게 사법부가 유죄 판결을 내리자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홍콩인들한테 악명을 쌓는 만큼 중국공산당, 특히 시진핑 눈에는 훌륭한 애국인으로 비쳤는지 중국 본토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경찰상을 2015년에 받았다. 홍콩 경찰이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올해의 경찰 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3.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2019년 홍콩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자 중국 경찰이나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로 의심되는 중국 본토 출신 인원까지 싹싹 긁어모아 대대적인 시위대 탄압에 나샀다.

워낙 강경 진압이 심각해서 홍콩 민간인권전선이 공식적으로 내놓은 5대 요구 중 2, 3, 4번이 홍콩 경찰의 과잉진압을 금지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홍콩인들한테는 공공의 적, 홍콩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불구대천원수 취급을 받았다.

홍콩 시위 초기에 홍콩 시위대를 캐리 람 행정장관조차 '폭도(Riot)'로 지정하는 것을 망설였으나 그가 강경하게 주장해서 관철시켰다는 정보가 대놓고 나왔다.
홍콩 민간인권전선과 야권이 내걸었던 5대 요구사안
1.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의 완전한 철회(Withdraw)
2. 홍콩 시위대에 대한 폭도 지정 철회
3. 홍콩 경찰의 시위대 무력진압에 대한 정식 사과 및 독립적 조사위원회 설치
4. 체포된 시위대에 대한 전면 석방
5.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홍콩 입법회 보통 선거/평등선거[5] 실시

이상이 홍콩 야권이 걸어 놓은 5대 요구사안이다. 1번 범죄인 인도법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한테 한 요구이며 5번은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한테 요구한 내용이다. 그런데 2, 3, 4번은 죄다 홍콩 경찰의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요구로, 그야말로 그를 비판하는 구호다.

그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온갖 악명을 쌓아 놓았으므로 자식들한테는 테러 위협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는 페이스북이 있었지만 이미 2016년 몽콕 노점상 시위 진압 과정에서 대대적인 해킹 공격을 받아 결국 페이스북을 탈퇴했다. 그러자 그의 자식들까지 신상털이를 당해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페이스북에서 대대적인 사이버테러를 당했다.

하도 동영상이 많다 보니 그는 영상을 촬영하는 외국인 기자도 폭행한 적이 있다. 애초 야당 국회의원들도 마구 때린 놈인데 기자를 폭행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홍콩 경찰반중, 반공주의 시위대를 보호해야 할 시민이 아닌 으로 봤는데 그러한 지령 자체가 이 작자에게서 내려온 것이다.[6] 그는 일선 경찰들에게 시위대를 대놓고 죽여야 하는 적군 취급하라고 지령을 내렸으며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가진지라 중국 본토에서 무경대원들까지 증원받아[7] 이들을 연수를 핑계로 경찰훈련학교에서 교육시켜 홍콩 경찰관으로 신분을 세탁한 후 전례없는 강경진압에 나섰다. 그렇기 때문에 폭동적 시위진압이 가능했다. 경찰들의 폭동적 시위진압은 거의 적군을 제압하는 것 같이 무조건 매타작에 걷어 차고 최루액을 뿌리며 덩치 작은 여성들은 업어치기로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시위대가 착용하는 안전모에 대해서는 알러지에 가까운 노이로제를 보여 체포조인 랩터 소대는 안전모부터 벗겼다. 안전모 자체가 낙하물을 빼면 아무런 방호 효과가 없는 허접한 방호구라 랩터 소대의 진압봉 공격만으로 간단히 깨져 버린다.

하물며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를 초강경 진압하였던 前 경무부처장 앨런 라우를 다시 복귀시키는 등 유례없는 초강수를 두기까지 하였다.

2019년 9월 20일 국제앰네스티에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관련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앰네스티는 시위 기간 동안 홍콩 경찰폭동적 시위진압을 하고 체포한 시위대에 대해 고문을 자행하고 자백을 강요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계 지역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사람에 따르면 이 인원은 시위를 마치고 집에 가는 중에 홍콩 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서로 압송된 후 경찰서에서 경찰에 의해 집단구타를 당하고 자백을 안 한다며 물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하였다. 또다른 시위 참가자는 홍콩 경찰이 "자백하지 않으면 전기고문을 시행하겠다."며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홍콩 행정부, 중국공산당 등 유관기관과 UN유럽연합국제기구에 홍콩 인권 상황 관련 해당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기사 블룸버그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홍콩인들의 홍콩 경찰 신뢰도가 낮고 반감이 매우 큰 상황에서 국제앰네스티의 고문 사용 보고서가 알려질 경우 시위 규모를 매우 극단적으로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사

9월 20일 국제앰네스티가 발간한 홍콩 경찰폭동적 시위진압 및 시위대 폭력, 고문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는 보고서에 대해 그는 "홍콩 경찰이 폭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전혀 없다. 순수한 거짓말(Pure Lying)이다. 국제앰네스티는 홍콩 경찰을 모욕하고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국제앰네스티를 거세게 비난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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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퇴임

2019년 11월 11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경무처장에 그 대신 부처장인 크리스 탕(Chris Tang)이 임명되었다. 크리스 탕은 그보다 더한 강경파로 폭력적인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홍콩 경찰의 존엄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망언을 한 바 있다. 기사

그는 정년퇴임 형식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결정됐는데 11월 15일에 퇴임했다. 크리스 탕은 11월 16일에 취임했다.

5. 미국에서 제재 추진

이로 인해 미국 의회직접 제재 명단에 등재했다. 이른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이라는 법안을 심사했는데 여기에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인원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 금지 및 은행 계좌 동결과 같은 경제제재가 포함되어 있다. 법안의 제재 명단에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에 이어서 스티븐 로 홍콩 경무처장이 당당하게 포함되었다.

2020년 8월 7일(미국시간) 미국 정부에서 그를 포함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크리스 탕, 테레사 쳉 법무장관, 존 리 보안장관 등 친중파 홍콩 요인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효하였다. 제재 대상에 오른 인물들은 영구적으로 미국 입국 금지되고 이들이 미국에 보유하거나 미국 은행에 맡긴 자산들에 대한 동결 조치가 들어간다. 기사 중국 관영 언론들은 미국의 제재 조치를 비난했다. 기사


[1] 앞줄 우측 세번째 안경쓴 경찰이 스티븐 로다.[2] 사실 1985년 이후 중영공동선언에 따라 홍콩 반환이 확정되자 영국계 백인이고 중국계이고 간에 경찰 내에선 친중파들이 득세했고 반중 성향 경찰들은 대거 은퇴를 택했거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아 사실상 축출되었다.[3] 근데 이 노점상 시위는 시위가 아니고 사실 폭동이었다. 경찰들의 어그로를 있는 대로 끌었는데 지나가는 행인을 폭행하고 경찰관 납치 같은 짓들을 저질러서 기어이 경찰이 실탄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때 노점상 시위의 주축은 홍콩인이 아니고 본토 중국인들이었다.[4] 특히 앨런 라우 작전처 지휘관 겸 홍콩내 경찰기동부대 총사령관이 엄청 질타받았다. 폭동 진압 경찰을 지휘할 수 있는 사령관인 데다 고작 50명 내외만 체포하였기 때문이다.[5] 유감스럽게도 홍콩 입법회보통 선거평등선거가 아니다. 홍콩의 선거는 선거인단에 등록할 때 복잡한 유권자 등록 신청서를 작성하고 약간의 인두세, 즉 세금을 내야 선거인단 등록이 가능하다. 홍콩 입법회 70석 중 절반인 35석은 홍콩 행정장관 및 각 구청장, 홍콩 상공회의소 추천 인사 등으로 친중파 위주로 구성하고 민주파 1~2명을 구색 맞추기로 넣어준 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추인한 의석(말하자면 홍콩판 유신정우회)이다. 나머지 35석을 뽑는 홍콩 입법회 선거도 친중파와 민주파 간 평등 투표가 되지 않아 친중파는 1명당 9만 표를 받으면 당선인데 반해, 민주파는 17만 표 이상을 받아야 1명이 당선되는 차등 선거이다. 이 때문에 홍콩 선거 투표율은 40%가 매우 높은 투표율이다. 선거 유권자 등록하는 데 돈을 내야 하고 투표하는데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랑 남이 지지하는 정당이랑 1표 가치가 다른 상황에서 누가 투표하려고 할까.[6] 물론 이 사람이 이런 지령을 내리도록 영향을 준 사람이 위에 더 있긴 했다. 그 중 결정적으로 크게 영향을 준 건 다름아닌 현직 홍콩 행정장관인 존 리 되시겠다.[7] 이 설이 사실이면 홍콩 경찰 병력은 5만 명까지 잡아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도 굳이 홍콩 특별행정구의 요청이 있어야 하고 시끄러워질 인민해방군 투입 대신 합리적으로 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서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