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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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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설립 이전 - 국제무역기구(ITO) 설립 실패와 GATT체제의 곡절2.2. WTO 출범 이후
3. 조직4. 규범
4.1. 다자간 무역협정
5. 주요 원칙6. 회원국7. 비평8. 한국 관련

1. 개요

世界貿易機構
World Trade Organization[1]

세계무역기구. 이 기구는 전 세계의 모든 무역 규제들을 철폐하거나 줄여나가며 궁극적으로는 세계단일경제블록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

2. 역사

2.1. 설립 이전 - 국제무역기구(ITO) 설립 실패와 GATT체제의 곡절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4년 7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만들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44개국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휴양지인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이 브레튼 우즈 회의(Bretton Woods Conference)에서 연합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금융·통화·무역의 3주 체제의 출범에 합의했고, 이 회의를 통해 국제통화체제를 조율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개발도상국의 재건·부흥을 돕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출범하는 데 합의했다. 한편, 국제무역을 담당하는 기구로 국제무역기구(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이하 ITO)를 출범하기로 약속을 하고, 이후 53개국이 ITO의 설립조약인 1948년 3월 24일에 아바나 헌장(Havana Charter)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의회에서 아바나 헌장의 비준 동의를 거부하면서 ITO는 결국 출범도 못 하고 만다.

대신 1947년에 합의한 관세무역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1947)을 기준으로, 국가간 협상인 '라운드(Round)'에서 무역 전반에 관해 합의된 내용을 추가[2]하며 세계무역체제의 질서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1947년 GATT 체제'는 국가에 강제성·구속성을 부여하는 국제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GATT협정하에 국가 간의 회의를 통한 합의를 통해 이뤄졌던지라 합의 내용의 발전 속도는 지지부진 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1960년대 이후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을 위시한 당시 신흥공업국들이 부상으로 각 국가 경제의 상호 의존도가 심화되기 시작, 1970년대에 두 차례의 오일 쇼크의 원인으로 주요 공업국들이 보호주의 무역체제로 적극 선회했던 게 주요한 원인이었다.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더 발전적인 합의사항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특히 1960년대의 신흥 공업국 중 일본의 경우 국제무역체제에서 유리한 지위를 더 빨리 얻기 위해 대장성을 위시한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기조로 삼고 수출을 지원하였으며, 일본에 뿌리를 둔 다국적 기업의 독점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3]가 일어나 금융·통화 체제에서 기존의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역 쪽 역시 신흥공업국의 부상으로 무역적자가 발생하자 결국 1971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신경제정책을 발표하고, 닉슨 사퇴 이후인 1974년에 타국의 불공정 무역을 제재하는 통상법 301조(Section 301 of the 1974 Trade Act)를 발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보호주의가 한창 일었던 1970년대에 세계무역체제에 대한 합의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영미권의 신자유주의의 대두, 세계경제의 의존성이 점점 심화되면서 이전 시대의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국가들은 1986년에 우루과이에 모여 8차 라운드인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개시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는 '1947년 GATT 체제'를 대체할 세계무역기구의 창설, 관세 및 수출보조금 감소, 수입 제한 및 수입 상한의 감소, 특허·상표·저작권 강행 협정, 국제무역법의 서비스 부문 확장-일반협정 합의, 그리고 외국 자본의 개방을 선언 등 이전의 라운드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많은 내용을 다룬 획기적으로 논의했다. 결국 이 논의가 결실을 맺어 1994년 4월 WTO의 설립조약인 마라케시 협정(Marrakesh Agreement)을 맺었고, 1995년 1월 1일자로 과거 '1947년 GATT 체제'를 대신할 '1994년 GATT 체제'의 출범과 WTO의 설립이 이뤄졌다.

2.2. WTO 출범 이후

1995년 1월 1일을 기해 WTO 설립, '1994년 GATT 체제'가 출범했고, 이후 2001년에 우루과이 라운드의 내용을 더 확장할 제9차 도하 개발 라운드(Doha Development Round)가 시작됐다. 그러나 DDR이라는 어감 때문인가(...) 개발도상국가들이 'Round'라는 명칭에 반발하여 'Round' 대신 'Agenda'로 바꿔 약칭 DDA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던 이슈 중 하나인 농업 분야의 합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환경 관련 어젠다 등 새로운 어젠다들이 강대국의 무관심 속에 처하는 등 DDA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2015년 현재 DDA 회의 체제가 지속되고는 있으나, WTO 회원국들의 의견이 한데 모이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그야말로 영 좋지 못한 상황이며, 결국 선진국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활발해지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2015년 세계 무역량 중에서 50% 이상이 FTA또는 그 이상의 경제통합(관세동맹, 공동시장, 완전경제통합)협정 체결국 사이의 교역량, 즉 역내무역이다. FTA를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들, 즉 역'외'무역을 하는 케이스는 점점 무역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2018년에는 WTO 사무총장이 WTO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는 발언을 해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왔다.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막을 수 없다는 것. 기사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WTO 탈퇴까지 거론할 정도로 강경한 인사라, WTO에 백날 제소해봤자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WTO를 무시하면 막을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이다.

미국이 상소위원 공석이 생길 때마다 신규선임에 반대해와서 2018년 9월부터 분쟁조정기구(DBS)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될 예정이다.기사

3. 조직

  • 각료회의
    최소한 2년에 한 번씩은 개최되는 비상설기구로, 최고 의결기구. 모든 회원국의 대표[4]가 참석하며, 어떤 문제든 의제로 다룰 수 있다.
  • 일반이사회
    제네바의 정기 상설기구로, 각료회의 아래의 최고 의결기구. 각료회의의 결정을 집행하며, 각료회의가 열리지 않을 때는 최고 의결기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이사회 산하에는 부문별 이사회와 위원회를 둔다. 부문별 이사회는 다음과 같다.
    • 상품이사회: WTO 부속서 1A 관련 이사회
    • 서비스이사회: WTO 부속서 1B 관련 이사회
    •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이사회: WTO 부속서 1C 관련 이사회[5]
  •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 약칭 DSB)
    회원국 간의 무역 분쟁을 담당한다.
  • 무역정책검토기구(Trade Policy Review Mechanism, 약칭 TPRM)
    회원국들의 무역 정책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한지를 평가한다.

이하 개별 부문별로 위원회와 이사회가 있다.

4. 규범

기본적으로 WTO의 규범이란 WTO의 협정을 의미한다. 회원국은 이들 협정을 반드시 비준해야 하며 모든 협정은 국제법과 동등하다. WTO 협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WTO 설립 협정에 관한 마라케시 협정(Marrakesh Agreement)
  • 다자간 무역협정(Multilateral Trade Agreements, 약칭 MTA) [6]
  • 복수간 무역협정(Plurilateral Trade Agreements, 약칭 PTA)Trade Agreements[7]

4.1. 다자간 무역협정

사실상 WTO의 본체라고 볼 수 있는 중요한 협정으로, 기본적으로 WTO 협정의 부속서로 되어있다. 부속서는 각각 1A, 1B, 1C, 2, 3이 있다.[8]
  • 부속서 1A: 일반적으로 상품에 적용된다.
    • GATT 1994: 우루과이 라운드 때 체결. WTO의 창립을 회원국들의 의무 중 하나로 지정하고 있다.
    • WTO로 복귀하는 협정: 농산물과 섬유에 대한 협정[9][10]
    • 도쿄 라운드에서 다자간 무역협정 중 다자화된 협정: 기술 장벽, 반덤핑, 관세, 수입 허가절차, 보조금 지급 등에 대한 협정
    •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새로 도입된 다자간 협정 : 위생, 검역, 투자, 선적검사, 원산지 표기, 긴급수입제한조치 등에 대한 협정
  • 부속서 1B: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
  • 부속서 1C: GATT 때 다루지 않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규범(TRIPS) 설정. 이 이후 지적재산권은 국제적 규범에 의해 다뤄지게 된다.
  • 부속서 2: 분쟁해결의 규칙과 절차(DSU): WTO설립협정, 부속서 1A, 1B, 1C, 2, 4 관련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가 마련된 협정이다.
  • 부속서 3: 무역정책 검토 제도(TPRM)

5. 주요 원칙

  • 차별 없는 무역을 추구한다.
  • 예측이 가능하며[13], 시장에 언제나 접근이 가능한 무역을 추구한다.
    • 시장의 안정과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최소한의 무역장벽은 존치한다.
  • 공정한 경쟁을 장려한다.
  • 후진국개발도상국의 순조로운 경제 개발을 도운다.[14]

6. 회원국

2013년 3월 2일 기준으로 159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참여하며, 30개 국가는 회의에 참여할 수 있으나 영향력이 없는 옵저버 자격을 가지고 있다. 회원국 목록은 이곳을 참조.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입과정에서 뒷정치거래가 오고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우루과이 라운드로 쌀개방을 약속했으나 농민들의 반발로 매우 곤란한 상태였다. 필리핀과 함께 쌀개방이 유예되어 있는 둘뿐인 나라였으나, 필리핀이 대한민국에 앞서 쌀개방을 했고, 대한민국 역시 2015년부터 강제로 관세화 개방을 하게 된다. 2015년 이후로 쭈욱 적용되는 관세율은 무려 513%.
한편, 국가가 아니더라도 독자적인 개별관세영역도 WTO에 가입할 수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과거의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ies) 시절에 가입했다. 특이하게도 EU는 EU회원국 수만큼 투표권이 부여된다. 유럽연합 가입국은 WTO 회의를 참관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지만, WTO 회의에서 투표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투표권은 유럽연합이 EU 가입국을 대신해서 행사한다.

중국의 압력으로 국제적인 고립을 면치 못하는 대만 역시 WTO에 가입해 있다. 2001년중국과 동시에 가입할 때 중국과 미국의 빅딜로 대만의 가입국명이 정해졌다.(...) '타이완, 펑후, 진먼, 마쭈 개별관세영역'(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으로 가입했다.

7. 비평

NGO 등 비정부기구에게는 세계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원흉으로 비난받는 존재. 물론 국가간에 공평한 무역을 하자는 취지로 창립된 것은 좋지만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게 유리하게 조약을 만든 면이 있어서 주위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관세로 인한 무역마찰을 줄이는 데 큰 공을 세운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하다.

그러나 상기했듯, WTO 내부에서도 도하 개발 어젠다(DDA)가 지지부진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자 강대국들은 'WTO는 제쳐두고 국가 대 국가로 무역협상하는 것이 낫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양자적 혹은 지역적 자유무역협정/관세동맹/공동시장이나 TPP가 대두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8. 한국 관련

출범 당시 초대 사무총장으로 김철수 통상산업부 장관이 도전했으나 무산되었다. 대신 초대 사무차장으로 4년 동안 재직했다.

미국은 2013년부터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9~1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이를 부당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WTO에 제소해 2016년 9월 최종 승소했다. 미국은 판정 이행기간인 2017년 12월까지 끝내 관세를 철회하지 않았고 한국은 2018년 1월 미국을 상대로 연간 7억 1,100만 달러(한화 약 7천 990억 원)의 양허정지[15]를 하겠다고 WTO에 신청했다. 2019년 2월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한국이 연간 약 950억 원의 양허정지를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는 후쿠시마와 주변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방사성물질 세슘이 나올 경우 추가 검사를 요구한 우리나라의 조치에 대해 일본은 과도한 차별이라고 지난 2015년 WTO에 제소했다. 2018년 1심에선 일본이 승소했지만[16], 2019년 4월 11일 최종심[17]에서 우리나라가 승소하면서 최종적으로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 불허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자세한 것은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한 WTO 분쟁 참고.


[1]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같은 로망스어군 사용국은 OMC를 약자로 사용한다. 그래서 NATO처럼 WTO OMC라고 병기한다.[2] 먼저 공산품의 관세를 낮추는 데서 시작하였고, 6차 라운드인 케네디 라운드에서는 반덤핑 문제를, 7차 라운드인 도쿄 라운드에서는 비관세 무역 장벽 문제를 새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덤핑 협정은 당시 미 상원이 딴죽을 걸며 비준동의에 반대하는가 하면, 비관세 무역 장벽 해당 라운드에서 언급만 했을 뿐 더이상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3] 미국은 자국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천조국스러운 자비로 세계 제1의 통화인 미국 달러화를 타국의 금을 확보하면서 달러화로 바꿔주는 금태환을 했고 타국의 고정환율제를 인정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 나라들이 달러를 확보하느라 달러를 많이 찍어내는 바람에 달러화의 가치가 급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즉, 미국 재정의 적자 문제와 미국 달러화의 가치하락이 동시에 발생했던 것.[4] 각국의 경제장관[5] 2005년에는 대한민국의 최혁 전 제네바 대사가 의장을 맡기도 하였다.[6] 모든 회원국에 해당된다.[7] 수락한 회원국에만 효력을 발휘한다.[8] 부속서 4는 복수간 무역협정으로, 민간 항공교역, 정부 조달, 국제 낙농업, 쇠고기 등에 대해 다룬다.[9] 우루과이 라운드 이전에는 회원국 간의 알력으로 이 두 부문에 대해서는 협정이 이뤄지지 않았다.[10] 한편, 섬유협정은 1995년 WTO 이후 10년간 발효하다 2005년에 실효(失效)됐다.[11] 학계에서는 국경에서의 무차별이라고 한다. 한 국가에 A라는 특혜를 주게 되면 다른 국가에도 A라는 특혜를 제공해야한다는 원칙이다.[12] 학계에서는 국내에서의 무차별이라고 한다. A라는 국가의 수입품이 B국에 들어왔을 때, B국 내부에서는 A국의 수입품과 B국의 자국생산품을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13] 특히 서비스 무역에 있어 투명성을 제일로 중시하고 있다.[14] GATT 1994에서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해 지원과 특혜를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반특혜관세제도(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15] 협정 등을 통해 특정 품목의 관세를 낮추거나 없앤 것을 다시 부과하는 조치[16] 박근혜 정부에서 방사능 관련 실태조사를 중단시키면서 법적 자료가 엄청나게 부실했단 의혹이 있다.# 여담으로 일본이 1심을 이긴 이유가 '바다는 오염되었지만 수산물은 다르다.', '후쿠시마 앞바다의 물을 떠다 수출하는 게 아니다.'란 논리였다고.#[17] 2심 재판이라 상소심이 사실상 최종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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