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9 17:23:55

편두

1. 褊頭
1.1. 설명1.2. 만드는 방법과 효능(?)1.3. 한국에선1.4. 기타
2. 扁豆

1. 褊頭

파일:T4QwXu7.jpg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변형 두개골.

1.1. 설명

http://www.koreatimes.co.kr/www/news/tech/2012/12/325_127317.html

외모지상주의가 먼 옛날부터 존재했다는 증거 외모지상주의와 낮은 인권 의식의 합작

원시사회에서 널리 행하여졌던 두개변형(頭蓋變形)의 일종으로, 어린이머리를 천이나 노끈으로 감든지, 또는 작은 목판 같은 것으로 압축하여 두개골을 변형시키는 풍습을 말한다. 이러한 풍습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넓은 지역에서 행하여졌던 것인데, 한국에서도 고대까지 행해졌으며 프랑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북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에서는 20세기 초까지 행하여졌다. 아마도 이 풍습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마야 문명과 고대 이집트일 것이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미용이나 권위, 민족적 동질감 등을 나타내기 위해 발치나 신체 일부의 절단, 문신 같은 온갖 신체 변형 풍습이 남아 있는데, 편두는 이런 풍습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변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귀를 뚫거나 코를 뚫거나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신체 변형의 일종인 셈.

또한 편두까진 아니더라도 현대 한국인들도 아기를 낳으면 '두상을 예쁘게 만든다'며 반듯이 눕혀 재운다거나, 엎혀 재운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편두는 이런 것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형태라 볼 수 있다.

그 밖의 가설로는,

1. 전투시 화살의 표적이 되는 정면의 얼굴크기를 작게하기 위해서
2. 신분을 구별하기 위해서 [1]
3. 외계인이라서[2]

파일:YRT1t3Y.jpg
치누크 족의 편두 풍습

1.2. 만드는 방법과 효능(?)

아직 뼈가 무른 갓난아기 때 납작한 돌이나 판자 등을 이마에 대고 끈으로 묶어 키우면 된다. 참 쉽죠? 다만, 이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걸리는지, 신생아 건강이나 두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건, 초능력을 쓰게된다거나, 신이나 외계인과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능력이 생긴거나 하지는 않았다. 편두를 해서 뭔가 특수한 능력들이 생긴다면, 편두가 잊힌 풍습이 되었을 리가 없다. 지금 당장 이 항목을 읽고 있는 수많은 위키러들도 편두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출산할때 아기의 머리가 눌려서 편두처럼 나오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Cone Head라고 부른다. 원인은 사람의 두개골은 여러개의 뼈로 구성됐고, 아기일때는 이 뼈가 무르기까지 해가지고 변형이 매우 잘 된다. 아마도 출산할때 유리하게 진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게 한달에서 두달정도 지나면 다시 동그란 모습으로 돌아간다.

1.3. 한국에선

1.3.1. 삼한 & 신라

고대 한국의 진한 지방에서 행해졌다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兒生, 便以石厭 其頭, 欲其褊. 今辰韓人皆褊頭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에, 지금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3]
실제로 김해 예안리 85호 고분에서 편두 인골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사실로 확인되었다. 단, 이곳은 진한이 아닌 변한 지역이고[4], 편두가 확인된 유골들은 모두 여성들이라한다. 반면 옆동네 금관가야 왕릉급 고분군인 대성동 고분군의 유골들을 조사해 본 결과[5] 편두의 흔적은 하나도 없어서 일단 변한지방의 보편적 풍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참 후대의 일인 통일신라기 인물인 최치원이 지은 지증대사비 비문에서도 偏頭居寐錦至尊(편두거매금지존)이라는 문장이 있다. '매금'이란 신라 왕의 호칭인 마립간의 다른 한자표기이므로 이 문장의 뜻은 편두이신 신라왕지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 금관들은 하나 같이 지름이 작아 성인 남성이 실제로 썼다고 보기 어려운데, 신라 왕들이 편두를 했다고 가정하면 이치가 맞아 떨어지게 된다.

다만, 이 문장은 단순히 우리편 대빵 신라임금님 킹왕짱 정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삼국지 기사의 '편'자는 (좁을 편)이고 지증대사비의 '편'자는 (치우칠 편)이다. 또, 삼국지의 기사는 편두에 대해서 빼도 박도 못하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적고 있지만, 지증대사비의 기사는 아무 설명없이 여기서만 '편두'라는 낱말을 쓸 뿐, 이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무 설명이 없다.

그리고 신라 왕관에 대해선, 지름이고 뭐고 간에 그 쓰는 법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두건이나 상투 같은 것을 하고 그 위에 왕관을 썼다면, 왕관 지름이 머리 지름보다 작은 것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최치원 시기의 신라는 당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는데, 당나라의 기록에선 편두에 대해서 찾아볼 수가 없다. 당장 무열왕부터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 기사가 전해지는데 편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결국, 원삼국시대 와 달리, 통일 이후 하대 신라, 특히 왕족에게 편두 풍속이 행해졌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확실하게 입증할 수 없다.

어쨌든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삼한의 편두가 고대 신라의 샤머니즘이나 천손 강림 신화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긴 하다. 삼국유사에서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이 입 부분이 닭처럼 생겼다[6]거나 김알지가 닭이 우는 숲에 있던 알에서 태어났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 왜냐면, 편두를 하면 사람의 얼굴 형태가 주둥이구강부가 튀어나오고 이마가 들어가기 때문에 의 두상과 흡사한데, 초기 신라의 각종 과 관련된 설화와 그 형태성이 유사하지 않냐는 것.

하지만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어 추론에 그칠 뿐이다.

1.3.2. 고려

한편, 송사[7]에선 고려의 특이한 풍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首無枕骨, 背扁側.
(고려)사람들의 머리는 침골枕骨이 없고 등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일단, 사람이 침골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이 기사가 편두의 일종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앞통수를 누르는 형태의 편두가 아니라 뒤통수를 평평하게 하는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같은 것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침골이 없다"는 표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흔하게 쓰이는 한문 숙어이기 때문. 영화 관상(영화)에서도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다니는 한명회를 침골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혹자는 좌식 문화로 인한 척추측만증으로 인해 등이 한쪽으로 휘고, 고개가 삐딱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고려시대 귀족들은 입식 생활을 했으며, 서긍이 1달간 고려에 체류하면서 만난 고려인들 대다수는 수도인 개경에 거주하는 귀족층 중심이었다. 좌식생활로 인한 것이라면 입식생활을 주로 하는 귀족층과 좌식생활을 주로 하는 평민층이 차이가 나야 할 텐데 그런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1.4. 기타

이러한 풍습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인류라는 종 전체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백인이든 황인이든 흑인이든, 모든 갓난아기의 머리뼈는 무르기 때문에 단단해지기 전에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은 종족 본능에 따라 인간들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2. 扁豆

불콩·제비콩·까치콩이라고도 한다.


[1] 중앙아시아에서는 노예에게 편두를 시켰다. 김해 예안리의 토광묘 유골에는 편두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된 노동으로 척추가 눌려있는 것으로 보아 노예로 추정된다. https://books.google.co.uk/books?id=hEdRDQAAQBAJ&pg=PA85&lpg=PA85&dq=%ED%8E%B8%EB%91%90+%EB%85%B8%EC%98%88&source=bl&ots=2Id52eDG12&sig=j5xdXIGGvxN6LnrtrE3U1GFDrro&hl=ko&sa=X&ved=0ahUKEwjKtYXfo_7UAhWLwbwKHbikDbkQ6AEIQTAH 일본 구마모토에는 6구의 유골중 한구의 여성이 편두여서 김해에 살던 여성을 데려와 노예로 삼았는지 아니면 무당이였는지 확실치 않다.[2] 농담같지만 서양 쪽에선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있다(...). 인디아나 존스 4편이 괜히 그러는게 아니다.정작 서양인본인들이 그런 두상이라는 건 함정[3] 이 기록에 대해 청나라 건륭제는 <어제삼한정류(御製三韓訂謬)>라는 글을 직접 집필하여 "그 말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으로 궤변을 늘어놓아 세상을 미혹하게 한 것으로 의심이 된다. 무릇 돌로 머리를 누르면 어른도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갓 태어난 아기를 돌로 눌러놓는다는 것은 실로 인정상 마땅치 않은 것이다."고 반박하며 "우리나라의 옛 풍속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서 수일이 되면 요람에 두는데 반듯하게 오래 눕혀두면 뇌골이 저절로 평평하게 되어 머리 형태가 편두(扁頭)처럼 되었다."고 하며 만주족의 옛 풍속을 들어 반박했다. 위의 치누크 족이 편두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돌이나 널빤지로 아기의 머리를 누른다기보다는 아이를 반듯하게 눕혀서 고정시키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진한 사람들도 아이 머리를 돌로 누른 게 아니라 딱딱한 요람에다 반듯이 눕혀서 재웠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4] 다만 변한과 진한은 제천 행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풍속이 같았다.[5] 메인 덧널은 도굴피해가 심해 알기 힘들고 순장된 사람들의 유골로 조사.[6] 다만 잊지말자. 알영 설화에서는 그 입의 부리 부분이 애를 씻기니까 떨어졌다.[7] 조광윤이 세운 송나라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