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9 06:59:32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미국 항공모함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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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항공모함
랭글리 렉싱턴급 레인저 요크타운급
석탄운반선을 개조 순양전함 → 항공모함 완전 개방식 격납고
와스프 에식스급
타이콘데로가급
미드웨이급 포레스탈급
현측 승강기 첫 탑재 장갑갑판 적용 경사 비행갑판 적용
증기식 캐터펄트 첫 탑재
키티호크급 엔터프라이즈 니미츠급 제럴드 R. 포드급
마지막 재래식 항공모함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 핵-전기 추진 방식
전자기식 캐터펄트 첫 탑재
스텔스 함교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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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정 페가수스급R, 사이클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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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문 대형 호위함(범선) 컨스티튜션*
※ 윗첨자R: 퇴역 함선
※ 윗첨자M: 개조/개장 함선
※ 윗첨자L: 리스한 함선
※ {중괄호}: 도입 예정 함선
*: 오하이오급은 SSGN, SSBN형 둘 다 존재한다.
*: 컨스티튜션은 문화재로 현역으로서, 당시 기준 함급은 44문 대형 호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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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maritimequest.com/02_uss_forrestal_cv_59.jpg
CV-59 USS Forrestal

파일:external/www.maritimequest.com/cv60_c.jpg
CV-60 USS Saratoga

파일:external/www.navy.mil/cv61-920818.jpg
CV-61 USS Ranger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USS%20Independence%20(CV-62)%2003.jpg
CV-62 USS Independence

Forrestal Class Aircraft Carrier

미국 해군이 1955년부터 1998년까지 운용했던, 만재배수량 80,000톤급의 재래식 추진 항공모함.

1. 제원2. 개요3. 제임스 포레스탈4. 비운의 항공모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USS United States)5. 최초의 수퍼 항공모함6. 운용이력7.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목록8. 각 함정 상세사항9. 관련 항목

1. 제원

이전급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다음급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포레스탈 새러토가 레인저 인디펜던스
기준배수량 59,650톤 61,235톤 56,300톤 60,000톤
만재배수량 81,101톤 80,643톤
길이 (비행갑판) 325m 324m 319m 319m
길이 (수면) 300m 자료없음
폭 (비행갑판) 72.5m 76.8m 76m
폭 (수면) 39.42m 39.6m 40m
흘수선 11m 11.3m 11m
추진방식 증기터빈 4축식
기관출력 280,000마력
속도 33노트 35노트 34노트 33노트
승무원 5,540명 3,826명 5,287명
무장 (초기) Mk.42 5인치 함포 x 8
무장 (개장)[1] RIM-7 시스패로우
Mk.15 팰렁스 CIWS
탑재 항공기수 90대

2. 개요

최후의 대전형 항공모함 미드웨이급의 후계함인 포레스탈급은 이전의 항공모함들이 엘리베이터를 갑판 정중앙에 설치한 것과는 달리 모든 엘리베이터를 현측에 설치하였으며,[2] 기존의 직사각형 일자형 비행갑판 대신 경사갑판(앵글드 데크)을 적용하여 함재기의 이함갑판과 착함갑판을 분리시키는 등 많은 변화가 시도된 항공모함이다.[3][4] 모두 4척이 건조되었고 1955년부터 1998년까지 운용되었다.

포레스탈급의 임무 및 설계사상은 1961년에 취역하여 2009년까지 운용된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2012년에 퇴역한 CVN-65 USS 엔터프라이즈니미츠급 항공모함으로 발전 및 승계되었다.

3. 제임스 포레스탈

파일:external/www.kevinalfredstrom.com/mc-forrestal.jpg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의 개발을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미국 해군성의 마지막 장관이자 국방성의 첫번째 장관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탈(James V. Forrestal : 1892-1949)이다. 해군 대위 출신으로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포레스탈은, 1944년 해군성 장관인 프랭크 녹스(Frank Knox)가 심장마비로 타계하자 후임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관 임명 이전인 1942년에는 남서태평양 전선에 있었고, 1944년 콰잘린 전투(Battle of Kwajalein) 때는 물론 장관이 된 후인 1945년 이오지마 전투에도 전장에 있으면서 역사적인 해전을 직접 지켜보았다. 그리고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후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초대형 항공모함을 바탕으로 하는 함대의 건설에 정열을 쏟았다.[5]

포레스탈의 정치적 관심은 가장 치열한 교전상대인 일본이 아니라, 당시에는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소련이었고, 따라서 후일 소련의 위협이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퍼질 것을 예견하였다. 그래서 일본을 무력으로 항복시키기보다는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쪽으로 연착륙시키고 소련의 대일참전 저지를 주장했으나 묵살되었다. 포레스탈의 소련에 대한 시각은 후일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으로 중앙정계에 입문한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에게 큰 영향을 준 한편, 소련의 대외팽창을 대양으로 뻗어 나오지 못하게 막아야하는 봉쇄전략의 수립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포레스탈의 해군성 장관 재임도중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고, 전쟁을 마친 미군은 급속도의 구조개혁에 직면했는데, 여전히 써먹을 수 있는 장비들이 해체되어 고철로 매각되거나 그냥 버려지는 일이 횡행하였다. 특히 태평양 전선에서 쓰이던 많은 장비들은 회수되지도 않은채 현장에 버려지고 있었다. 포레스탈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에 항의했으나 주장은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결국 미군의 구조조정은 그냥 무기수의 감축뿐만 아니라 즉시반응 태세도 대폭 줄이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핵무기라는 혁신적인 무기가 등장하자 트루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무기의 패러다임이 공군 위주로 바뀔 것이라고 믿었고 해군 무용론과 함께 해군의 예산을 대부분 삭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포레스탈을 비롯한 해군성 장관들은 제독들의 반란을 일으키고 트루먼 행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 과정에서 포레스탈의 우울증은 깊어졌다.

포레스탈의 선견지명은 곧 드러났다. 체코슬로바키아중국이 슬슬 공산화됐고, 소련의 서베를린 봉쇄가 노골화되는 한편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건국되자마자 주변 아랍 국가들과 중동전쟁을 벌이는 상황이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설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감소해버린 것은 큰 패착이었다. 이러한 소련의 영향력 증대는 훗날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도 동의하고 있었다.

1947년 9월 17일, 포레스탈은 육군성과 해군성이 통합된 첫 국방성 장관으로 취임하였다. 통합을 반대하는 포레스탈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그 해의 국가안전보장법을 제정하는 등 오늘날의 미군의 기초를 닦았다. 포레스탈은 1948년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뉴욕 주지사 출신의 토마스 듀이(Thomas E. Dewey)가 당선될 것으로 보고, 듀이에 협력하고 차기 국방성 장관의 지위를 보장받기로 상호합의했다. 그런데 비밀리에 있었던 이 합의가 선거 몇 주 전에 피어슨(Pearson)에 의해 공개되면서, 트루만은 격분했다. 안그래도 포레스탈은 건강문제로 언론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었는데다 사사건건 군의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있었기에, 트루만은 이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 포레스탈에게 사임을 권고했다. 그리고 1949년 3월 31일, 포레스탈은 전격 해임되고 말았다.

해임된후 포레스탈은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윌리엄 메닝거(William C. Menninger)의 진단으로는 포레스탈은 과로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부인 조세핀과 포레스탈의 친구 퍼디낸드 에버스타트(Ferdinand Eberstadt)는 그 진단결과를 무시하고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 소재 해군병원으로 포레스탈을 보내고 말았다. 포레스탈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에 나오는 시로 유서를 대신하고 1949년 5월 22일, 병원 16층에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57세.
Fair Salamis, the billows' roar,
Wander around thee yet,
And sailors gaze upon thy shore
Firm in the Ocean set.
Thy son is in a foreign clime
Where Ida feeds her countless flocks,
Far from thy dear, remembered rocks,
Worn by the waste of time–
Comfortless, nameless, hopeless save
In the dark prospect of the yawning grave....
Woe to the mother in her close of day,
Woe to her desolate heart and temples gray,
When she shall hear
Her loved one's story whispered in her ear!
"Woe, woe!" will be the cry–
No quiet murmur like the tremulous wail
Of the lone bird, the querulous nightingale–

해군 내의 인종통합 추진 및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이용한 전략적 우위확보의 양대 업적을 이룩한 포레스탈의 선견지명은 6.25 전쟁에서 잘 드러났으며 오늘날의 미 해군의 전략적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포레스탈의 이름은 세계최초의 슈퍼 항공모함인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의 1번함은 물론, 미 해군사관학교의 소위들을 위한 강연 프로그램인 포레스탈 강좌 시리즈(Forrestal Lecture Series) 및 뉴저지 주 플레인스보로 소재 프린스턴 대학교의 제임스 포레스탈 캠퍼스 등에도 남아있다.

4. 비운의 항공모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USS United States)

또한 포레스탈 급 항공모함을 논할때, 기공 5일만에 중단되어버린 프로젝트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CVA-58 USS United States)을 빼놓을 수 없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S_United_States.jpg
추정 일러스트. 건조를 막 시작했다가 스크랩당했으므로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1948년 7월 29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초대형 항공모함 5척 건조안 및 제작사인 뉴포트 뉴스 조선소(현재의 노스롭 그루먼 조선사업부)에 자금지원을 승인하였다. 그리고 1번함인 CVA-58의 함명에 미국 군함으로서는 3번째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SS United States)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1949년 4월 18일에 기공이 시작되었지만, 기공 5일째인 23일에 돌연 취소되고 말았고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항공모함의 건조계획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해임된 후 베데스다 해군병원에 보내진 포레스탈은 이 소식을 접한 후 크게 실망하고, 살아갈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의 설계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특히 두가지 방안이 대립했는데, 그 중 하나는 소련의 해군기지 타격을 위한 핵공격 전용 플랫폼으로서 소수의 핵무기 및 투하수단으로서의 대형폭격기를 탑재하여 운용하는 방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항공모함처럼 다수의 재래식 공격전력을 지니되 압도적인 크기를 바탕으로 한 대규모 비행대 운용 및 그에 걸맞는 군수능력을 보유하게 하는 방안이었다. 경합 끝에 채택된 방안은 핵공격 플랫폼 방안으로, 45톤급의 함재기를 운용하고 5톤 중량의 핵무기를 함재기의 주무장으로 할 것을 전제로 하였다.[6]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은 비행갑판 길이 332m, 폭 58m로 현행 니미츠급 항공모함이나 후속 함종으로 건조중인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에 비해 비행갑판의 폭이 좁은 것을 빼면 길이는 거의 비슷하다. 표준배수량은 68,000톤, 만재배수량은 83,350톤으로, 1955년에 등장한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은 물론이고 1961년에 등장하는 미 해군의 마지막 재래식 추진 항공모함인 키티호크급 항공모함보다도 만재배수량이 더욱 컸다. 또한 28만 마력의 증기터빈, 현측에 장비한 4대의 엘리베이터 및 캐터펄트, 함미로부터 착함하고 함수에서 캐터펄트로 이함하는 함재기 운용방식 등의 선진적인 설계사상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항공기의 관제 및 재래식 추진에 없어서는 안될 굴뚝의 설치공간 기능을 수행할 함교는 없었다.

그런데 해군에 예산을 몰아준다고 육군 및 갓 신설된 공군이 끊임없이 불평을 제기했기에 이 프로젝트는 정치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제2대 국방성 장관인 루이스 존슨(Louis A. Johnson)은 1949년 4월 23일 건조중단을 천명하였다. 이 때문에 미 해군 사상 최대의 항명사태인 제독들의 반란이 일어나 루이스 덴펠드(Louis E. Denfeld) 제독이 사임하는 사태까지 속출했다. 그리고 1개월 뒤인 5월 22일에는 초대 국방성 장관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탈이 투신자살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결말은 비극적인 사태로 점철되고 말았다.[7]

육해공 3군의 대립은 이후 항공기의 제식명 부여에서부터 전략무기의 개발까지 각각 독자노선을 걷는 것으로 이어지고, 1957년 소련이 세계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 때까지 지속되었다.

5. 최초의 수퍼 항공모함

위 사태에 한이 맺힌 해군은 최초의 수퍼 캐리어의 네임쉽에 포레스탈 장관의 이름을 붙였다.

포레스탈급은 기존 미 해군에서 운용하던 대전형 항공모함의 규모를 초월한 만재배수량 약 8만톤급의 대형 항공모함으로, 슈퍼캐리어(Supercarrier)라고 부르는 최초의 항공모함이다. 이는 당시 제트엔진을 장착한 전투기가 배치되고 함재기가 점점 대형화되는 추세에 맞춘 설계사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실제 미 해군에서도 최소 80기 이상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한 상황이라 기존 에식스급이나 미드웨이급 규모로는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웠기에 새로운 항공모함이 필요했다. 선체가 대형화된 만큼 기관출력의 향상도 필요하여, 28만 마력의 증기터빈 기관을 설치하여 기존 항공모함처럼 30노트 이상의 고속항해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대전형 항공모함 설계의 잔재가 남아있어 자체 방어용으로 5인치 함포 8문이 장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항공모함이 직접 다른 군함을 상대로 함포를 쏠 일도 없고, 원래 대공대함 양용으로 쓰던 5인치 포였지만 이미 대공미사일이 발달한 점과 CIWS 시스템의 발달 등으로 인해 결국 철거되었고, 1980년대 초반에 시스패로우 함대공 미사일과 20mm 팰렁스 CIWS로 교체되었다.

파일:Forrestal_Class_Aircraft_Carrier.gif

그 외에 처음 설계를 하면서 운용상 장점을 고려하여 빠르게 함재기를 수용하고 갑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경사갑판(앵글드 데크)의 앞쪽 끝 부분에 설치했던 좌현의 4번 엘리베이터가 오히려 함재기의 이착함을 방해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실컷 설치만 해놓고 쓰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일단 함재기가 이착함을 하는 동안에는 4번 엘리베이터가 경로를 방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경사갑판을 통한 이착함이 어려워진데다가 4번 엘리베이터 자체의 활용도 어려워졌고, 거기다가 경사갑판 위에 설치해 놓았던 3번 캐터펄트 및 4번 캐터펄트까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문제점까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함교와 연돌 등이 수납되는 갑판 위의 상부구조물인 아일랜드의 위치가 우현의 1번 엘리베이터 바로 뒷쪽에 있기에 갑판 위의 실질적인 항공기 수납면적까지 좁아져 버린 애로사항도 있었다. 포레스탈급의 우현 엘리베이터들은 아일랜드 전방에 1번 엘리베이터가 배치되고 아일랜드 후방에 2번 엘리베이터와 3번 엘리베이터가 배치되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설계 시점에서는 미처 몰랐던 일이었지만 이 엘리배이터 배치는 그다지 좋은 배치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4번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경사갑판의 뒷쪽으로 바꾸고 아일랜드의 위치도 좀 더 후방으로 옮겨야 하며 우현 엘리베이터들의 배치도 전반적으로 변경해야 하는 등 항공모함을 완전히 다시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포레스탈급 내에서는 결국 해결하지 못했고, 후계함종인 키티호크급 항공모함을 설계할 때 이 부분을 반영했다.

6. 운용이력

1955년에 1번함 CV-59 포레스탈이 취역한 이후로, 1956년에 2번함 CV-60 새러토가, 1957년에 3번함 CV-61 레인저, 1959년에 4번함 CV-62 인디펜던스가 취역하여 미 해군에 배치되었다. 이후 미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양키 스테이션[8]에 배치되어 북폭에 참가했고, 이후로도 여러차례 재개장과 수명연장을 거쳐 중동전쟁이 벌어지자 지중해에 파견되기도 했으며 그레나다 침공, 리비아 공습, 걸프 전쟁까지 참가하였다. 하지만 포레스탈급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항공모함이었고, 무엇보다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급 항공모함이 성공적으로 배치되면서 재래식 항공모함들을 모두 도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1993년부터 1998년까지 포레스탈급은 순차적으로 퇴역했다.

운용 과정에서 포레스탈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 큰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고, 새러토가 소속 VF-74의 F-14A 전투기가 훈련도중에 공군 정찰기 RF-4C 팬텀을 격추시키는 사고를 터뜨려 지휘관들이 뒷목을 잡기도 했다. 더불어 새러토가는 1992년 에게해에서 모의훈련을 하다가 진짜로 시스패로우 미사일을 발사하여 터키 해군의 기뢰부설함[9]을 명중시키는 대형사고를 터뜨려 함장을 비롯한 관련 인물들이 단체로 해임되기도 했다.

퇴역한 포레스탈과 인디펜던스는 훈련 목표물로 사용되다가 수장시켜 인공어초가 될 예정이었으나 2015년 현재 인디펜던스를 제외한 포레스탈급 3척은 모두 텍사스 주 소재의 폐선처리업체에 인도되어 고철로 처리되었다. 매각대금은 1척당 달랑 1센트였다.

퇴역 이후인 2010년에 포레스탈은 필라델피아 국제공항 옆에 정박되어 있었는데, 이 항공모함을 본 비행기 파일럿과 공항 관제탑의 관제사들이 항공모함에 관해 오만가지 농담을 하기도 했다.#

7.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목록

함번 함명 기공일 취역일 퇴역일 상태
1 CV-59[10] 포레스탈 1952.7.14 1955.10.1 1993.9.11 스크랩
2 CV-60 새러토가 1952.12.16 1956.4.14 1994.8.20 스크랩
3 CV-61 레인저 1954.8.2 1957.8.10 1993.7.10 스크랩
4 CV-62 인디펜던스 1955.7.1 1959.1.10 1998.9.30 스크랩 예정

8. 각 함정 상세사항

  • 1번함 포레스탈 (CV-59 USS Forrestal)
    버지니아 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노스롭 그루먼사 소유)에서 건조되었다. 구호는 First in Defense. 그런데 항공모함 포레스탈 화재 사건으로 대참사를 낸 후에는 Forrest Fire, Firestal, Zippo 등의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다녔다.

    실전 참전기록은 1964년 브라질 쿠데타 지원, 1967년 베트남 전쟁 당시 통킹만에서의 작전, 1968~1973년 사이의 튀니지 수해구호작전, 1981년 시리아-이스라엘 미사일 위기 등이 있다.

    1963년에는 C-130 수송기가 자력으로 비행갑판 위를 21차례 뜨고 내리는데 성공한 실험기록도 있다. 그러나 C-130이 STOL 성능이 뛰어났음에도 운용하려면 그 크기 때문에 다른 함재기를 다 격납고로 치워야해서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함재수송기의 필요성은 이후 1966년 그루먼 C-2 수송기의 개발로 이어져 지금까지 잘 운용하고 있다.
  • 2번함 새러토가 (CV-60 USS Saratoga)
    함명의 유래는 렉싱턴급 순양전함 3번함이자 개장으로 인해 항모화한 렉싱턴급 항공모함의 2번함 새러토가.

    브루클린 뉴욕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 새러토가도 처음에는 일자형 갑판이 설치되었으나 이후 경사갑판으로 개수되었다.

    2번함 새러토가도 여러 사고를 많이 당했다. 1960년 5월 24~25일 사이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앞바다에서 독일 화물선 베른트 레온하르트(Bernd Leonhardt)와 충돌하여 상부구조물을 파손하는 사고를 쳤다. 이 사고로 미 해군은 독일 화물선 소속 해운사에 250만 마르크의 손해배상을 했다.

    1987년 9월 22일에는 새러토가에 배속된 VF-74 "Be-Devilers" 소속의 F-14A 톰캣 전투기 1대가 공군의 RF-4C 정찰기를 격추시키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정찰기 조종사 2명은 탈출했으나 심한 부상을 입었고, 사고를 낸 F-14의 조종사는 비행임무에서 영구배제 조치를 당했다.[11]

    1990년에서 1991년에 걸친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에서는 21명이 전사했으며, 최초의 전사자도 역시 새러토가에 배속된 전투비행대 조종사 출신이었다. 전쟁 당시 이라크는 다국적군 함대를 요격하려는 절망적인 시도로 스커드 탄도 미사일을 새러토가 방향으로 발사했다. 이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새러토가를 '격침'시켰다고 기세를 올렸다. 물론 실제로는 미사일이 약 200km(...) 정도 빗나갔다.

    이후 해군박물관으로 개조될 예정이었으나 포레스탈과 같이 방치되어 낡아가고 있다가 선박해체업자에게 단돈 1센트에 팔렸다.#
  • 3번함 레인저 (CV-61 USS Range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50px-USS_Ranger_%28CV-61%29_aerial_port_bow_view_1983.jpg

    레인저급 항공모함의 이름을 물려받았으며 1957년 취역하였다. 버지니아 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처음부터 경사갑판을 채용하였으며, 동급함 중 가장 먼저 퇴역했다.

    레인저는 1986년 영화 탑건의 촬영장소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스타 트렉의 촬영장소로도 활약하는 등 미디어에 자주 등장했다.


    1991년 1월 18일 기뢰살포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A-6E 1기가 이라크 해안 인근에서 대공포에 격추, 조종사 2명이 사망했는데, 며칠 후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VF-1 울프팩 소속 F-14A가 AIM-9 사이드와인더로 이라크군의 Mi-8 헬리콥터를 격추시켰다(...).

    1993년에 퇴역하였다. 본래 기념함으로 보존되어 남겨질 예정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2014년 12월 22일 퇴역한지 무려 21년이 지나서 2015년에 스크랩. 보도내용
  • 4번함 인디펜던스 (CV-62 USS Independence)
    브루클린 뉴욕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되었고 동급함 중 마지막으로 1998년 퇴역했다.

    취역한 해인 1959년에는 38톤 중량의 A3D 스카이워리어 전략폭격기의 이착함에 성공했다. 이것은 당시 항공모함에서 뜨고 내린 군용기 중에서는 가장 무거웠던 기록이었으나 1963년에 포레스탈에서의 C-130 이착함 성공으로 4년만에 깨지고 말았다. 1991년에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미 해군 제7함대에 배치되어 퇴역후 CV-63 USS 키티호크가 임무를 이어받을 때까지 주로 서태평양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9. 관련 항목



[1] 대략 198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다.[2] 현측 엘리베이터는 이전의 2차대전형 항공모함 CV-7 와스프에서 처음 실험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이후 에식스급미드웨이급이 본격 채용하였다. 다만, 당시 항공기 운용사상상 에섹스급과 미드웨이급 모두 갑판 중앙 엘리베이터를 함께 갖추고 있었다.[3] 경사갑판(앵글드 데크)의 아이디어 자체는 영국 해군이 처음으로 생각해낸 것이며, 경사갑판을 갖추고 완공된 최초의 항공모함은 HMS Ark Royal이다. 물론 영국은 이 아이디어를 미국과 공유했고, 당시 영미해군의 많은 구형 항공모함들이 경사갑판으로 개조되는 중이었다.[4] 기존의 일자형 비행갑판은 강습상륙함에 그대로 남아있다.[5] 초거대함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핵 폭격기들을 운용하며 적국 소련을 개발살낼 계획이었다.[6] F-14의 최대이륙중량이 33,720kg이다. 1940년대의 기술로 45톤급의 함재기를 운용하겠다는 생각은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7] 참고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겨우 함저기판 하나만 만들어놓고 취소되었다.[8] 하이난섬 인근의 해상 한 가운데. 여기서 미 해군 함재기들이 북베트남으로 미친듯이 폭탄을 실어날랐다.[9] 군사월간잡지 플래툰의 출판사인 호비스트에서 낸 <밀리터리 실패열전>에서는 터키 해군 구축함 무아베넷의 함교를 대파했다고 나온다. 그 자리에서 터키 승조원 9명이 사망했는데 이 배는 제2차 세계대전에 건조된 구축함이었던지라 터키 해군은 이 배를 폐선하고 다음해 미 해군에게 사망자 배상금과 별도로, 1970년대에 건조된 녹스급 중고 프리깃 1척을 인도받아 함명을 그대로 이어붙여 운용하고 있다. 16년된 중고지만 이미 50년이 되어가는 이전 함과 견주면 신형이나 다름없었다. 동맹군을 상대로 저지른 팀킬 사건이기는 했지만, 미군은 대공 유도탄이 선박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고, 터키군은 헌 배 버리고 새 배를 받았다. 죽은 사람들만 불쌍해진 경우.[10] 애초 건조시에는 CVA-59(일반공격항공모함)였으나 1975년 6월 미 해군의 함정 분류방식이 바뀜에 따라 Attack을 뜻하는 접미사 A가 빠지면서 CV-59로 재명명되었다. 당시 이미 취역하고 있었던 키티호크급 등의 항공모함도 마찬가지.[11] 그런데 2013년 초에 이 F-14의 조종사였고 이후 해군 예비역 정보장교로 복무하여 대령까지 진급했던 티모시 도르시(Timothy Dorsey) 대령이 제독 진급 대상(...)이라는 사실이 보도되자 피해자였던 마이크 로스(Mike Ross) 前 공군중령(7번에 달하는 등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평생 지속되는 통증을 겪고 있다.)이 분통을 터뜨렸음이 보도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제독 진급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고는 하나 이런 사고를 친 사람이 대령까지 계속 진급한 것도 문제다. 참고로 당시 티모시 도르시 중위는 아버지가 키티호크급 항공모함의 3번함인 CV-66 USS 아메리카의 함장을 지내고 있었고 중장까지 진급할 정도여서 비행자격 박탈에도 불구하고 해군 예비역으로서 법학 학위도 따고 예비역 대령까지 계속 진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빽이 막강하다고는 해도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