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군주제에서 군주의 국정을 통할하는 최고 책임자인 재상 중 왕과 나라를 잘 보좌하여 이름을 날린 이들을 일컫는다.2. 현실(및 전설)의 명재상
2.1. 한국
- 고구려 - 을두지, 을파소, 명림답부
- 백제 - 성충[1]
- 신라 - 김거칠부, 김세종, 김후직, 김유신, 김양
- 고려 - 최승로, 서희, 강감찬, 서눌, 최사위, 최항, 채충순[2], 최충, 이자연, 윤관, 김인존, 이장용, 김방경, 왕후, 이제현, 정몽주
- 조선 - 정도전, 조준, 하륜, 황희, 맹사성, 남지, 김종서, 정인지, 신숙주, 이준경, 류성룡, 노수신,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오윤겸, 김육, 최명길, 박문수, 채제공
2.2. 동북아시아
- 중국
- 상나라 - 이윤, 부열[3]
- 주나라 - 강상[4], 주공단[5], 윤길보, 중산보
- 춘추전국시대
- 진(晉)나라 - 조선자 돈, 한헌자 궐
- 제나라 - 관이오, 안영, 맹상군, 추기
- 조나라 - 인상여, 평원군[6]
- 위나라 - 이회[7]
- 한나라 - 신불해
- 초나라 - 투백비, 투누오도, 손숙오, 오기, 춘신군
- 연나라 - 소진, 곽외
- 정나라 - 자산
- 송나라 - 목이[8], 화원[9]
- 진나라 - 백리해, 건숙, 상앙, 장의, 위염, 이사[10]
- 전한 - 소하[11], 조참, 진평, 위상, 병길
- 후한 - 등우, 조희
- 조위 -
순욱[12] - 촉한 - 제갈량
- 동오 - 장소[13], 육손
- 후조 - 장빈
- 전연 - 모용각
- 전진 - 왕맹
- 동진 - 왕도, 사안
- 소량 - 범운, 주사(周捨), 서면(徐勉)
- 수나라 - 소위, 고경
- 당나라 - 방현령, 두여회[14], 위징, 장손무기, 적인걸, 요숭, 송경[15], 위원충, 장열
- 오대십국시대 - 풍도[16]
- 북송 - 이방, 여몽정, 장제현, 이항, 구준, 왕단, 왕증, 여이간, 범중엄, 부필, 문언박, 한기, 왕안석, 사마광, 포증
- 남송 - 문천상, 육수부, 진의중, 조여우, 사호, 사미원, 주승비, 우윤문
- 요나라 - 야율융운, 한연휘
- 원나라 - 톡토 테무르
- 명나라 - 유기, 이선장, 장거정, 양정화, 양사기, 양영, 양부, 왕서, 마문승, 유대하, 우겸
- 청나라 - 진정경, 이홍장, 증국번
2.3. 동남아시아
2.4. 남아시아
2.5. 중동, 아프리카
- 고대 이집트 - 임호텝[17]
- 셀주크 왕조 - 니잠 알 물크
- 아바스 왕조 - 야히야 이븐 칼리드
- 오스만 제국 - 이브라힘 파샤,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 쾨프륄뤼 가문 재상
- 카자르 왕조 - 아미르 카비르
2.6. 유럽
사실 입헌군주제의 시초인 지역이니만큼 지금도 몇몇 나라는 수상들이 일종의 재상통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포르투갈 왕국 -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18]
- 영국 - 로버트 월폴
- 독일 제국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러시아 제국 - 세르게이 비테, 표트르 스톨리핀
- 오스트리아 제국 -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프랑스 왕국 - 쉴리 공작, 리슐리외, 장바티스트 콜베르
- 프랑크 왕국 - 카롤루스 마르텔
- 스웨덴 제국 - 악셀 옥센셰르나[19]
- 후우마이야 왕조 - 알 하지브 알 만수르
3. 가공의 명재상
- 궤적 시리즈 - 길리아스 오스본
- 레젠다리움 - 마르딜 보론웨
- 얼음과 불의 노래 - 바스, 비세리스 2세[20], 바엘로르 타르가르옌, 존 아린, 타이윈 라니스터, 티리온 라니스터
- 은하영웅전설 - 오토프리트 3세
-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 박규수
- 왕의 삶 - 아데마르 공작
- Warhammer 40,000 - 말카도르
[1] 백제/인물에도 나오지만 기록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으니 쓸만한 인물도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삼국시대 전반에 걸친 문제기도 하지만, 백제는 (더 심각한 가야와 함께) 더 그런 편이다.[2] 문하시랑평장사, 판서경유수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문신. 현종을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제2차 여요전쟁 때 지채문과 함께 목숨을 걸고 현종을 끝까지 호종했다. 전쟁 이후 그의 치세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중신이기도 하다.[3] 원랜 노역장에서 길 닦던 죄수였으나, 상왕 무정이 꿈에서 본 인물과 같다고 해 대화한 후 인재라 등용해 함께 상나라를 다스렸다.[4] 강태공이란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5] 애초에 성왕의 숙부라 한동안은 본인이 섭정도 했다.[6] 평원군은 장평대전에서 대패하는 계기를 제공해서 애매하다.[7] 법가. 위문후의 변법정치를 주도했다.[8] 송양공의 서형.[9] 미병지맹을 주도했다.[10] 말년에 조고와 손을 잡고 말많은 2세를 세우는 등 문제도 있었지만, 전국시대 도량법을 통일하고 각종 제도를 신설하는 등 공도 많았다.[11] 중국사에서 명재상하면 한손가락 안에 꼽히는 네임드다.[12] 공식 직함은 '한나라'의 상서령이었고, 촉한을 제외하면 상서령이 명실상부 재상급으로 격상하는 것은 남북조시대 이후이다.[13] 주경칙의 수고조론에서 언급했다.[14] 당태종을 보좌한 재상으로, 이 두 사람을 방두(房杜)라고 불렀다.[15] 당현종을 보좌하여 개원성세를 이룩한 명재상들로 요숭, 송경 두 사람 성을 따서 요송(姚宋)으로 불렀다.[16] 충성의 대상을 자주 바꾸었지만 민생 안정에 역할을 하였다.[17] 임호텝을 요셉과 동일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18]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 폼발 후작. 리스본 대지진 당시, 그러니까 통신망이라고는 우편제도가 전부였던 1755년에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내진설계도 없던 시절이다. 모먼트 규모 8.5~9.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자연재해에, 바다에서는 해일이 밀려오고, 도시는 지진으로 폭삭 내려앉았으며, 건물은 화마에 사로잡혀 있었다. 카르발류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도래한 리스본을 훌륭하게 수습해 재건하였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저 정도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면 과연 행정부가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 견주어보면 대단하다. 18세기 중반에 사망자 수습, 난민 구휼, 도시 재건의 삼박자를 깔끔하게 해낸 것.[19]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시대 스웨덴 제국의 재상. 구스타브 2세가 뤼첸 전투에서 전사하자 어린 나이에 즉위한 크리스티나 여왕을 보좌하며 섭정을 했다.[20] 즉위하기 전에 오랫동안 재상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