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2 18:24:07

목축


牧畜

, 돼지, 등의 가축을 기르는 일. 유목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유목과 목축은 조금 다르다. 유목은 '돌아다니면서 목축한다.' 라는 의미가 섞인 말로 엄밀히 말해 목축의 하위 개념이다.

유목 항목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유목을 하는 이유는 가축을 먹이기 위한 풀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농경민족의 경우 식량을 곡물류로 충당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처럼 유목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농경이 불가능한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 사는 경우가 많고 때문에 풀에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양, 말 따위를 키우는 것이다.

이렇게 지력이 약한 곳에서 살다 보니 가축들에게 풀을 뜯기면 풀이 없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가축들에게 풀을 뜯긴다. 풀은 계속해서 자라는 데다가 풀도 너무 억센 풀이면 가축들이 먹기가 힘들기 때문에 일정한 장소에서 원을 그리듯이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농경민족은 일단 곡물만 먹어도 되는데다가 목축에 있어서 밀짚, 볏짚, 옥수수 사일리지 같은 부산물이 있는데다 곡물을 이용한 '사료'를 쓰면 되기 때문에 가축을 키워도 유목을 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농경은 농업의 부산물을 보다 유효하게 활용하고, 농업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물자를 얻기 위하여 목축을 병행한다.

다만 정착민의 목축도 어느 정도는 이동을 하면서 가축을 키우는 경우(이동 방목/이동 목축(transhumance), 이목(移牧))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 켈트 족의 불리잉(Booleying)으로, 겨울에는 축사에서 가축을 키우다가 겨울이 끝나고 산중의 공동 방목장에 새 풀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그곳으로 가축들을 이동시켜 방목한다. 알프스 지역에서는 지금도 계절에 따라 더운 여름에는 상대적으로 시원한 고지대로, 겨울에는 저지대로 일정 지역을 오가며 이목을 한다. 이런 이목은 유목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유목과 달리 거주지에 가까운 곳으로 오가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유목 항목 참조.

또한 목축하면 '소', '양', '말' 등의 큰 동물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가축의 개념 역시 상당히 포괄적이므로,[1] 닭, 오리 등의 가금류, 사슴 등을 키워서 팔아도 목축이다. 당연히 낙농업 계열도 목축이다.

전근대 시기의 목축은 고기으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었고, 가죽이나 등으로 옷을 만들 수 있었으므로 농사 만큼이나 중시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죽이나 모피보다는 '우경' 때문에 중시된 경향이 짙다. 우경은 쟁기를 이용해 '깊이갈이'[2]가 가능했으므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했고,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를 굉장히 중요시 한 이유이다. 단 민정문서를 보면 소보다 말을 더 많이 키우듯이 삼국과 신라는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보다 말을 더 우선시하였다. 이는 여말선초 때까지도 비슷했고 조선중기부터 소 사육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하루 500~1000마리를 도축할 정도로 늘어났다.

대부분의 원시사회에서 신석기혁명[3]이후 농사와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으며 병행을 했으며 기후에 따라 농사가 더욱 중시되기도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없거나 농업 생산성이 낮은 곳에서는 목축을 중시하기도 했다. 고기나 가죽 등의 물자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목축이 매우 중요하다.

[1] 인간이 식용 등의 목적을 위해 키우거나 종을 개량하는 동물이 가축이다.[2] 모든 땅에서 농작물이 잘 자라는것은 아니다. 토지에는 각각 영양분들이 분포해 있으며 식물들은 뿌리를 통해 그 영양분을 공급받는데, 이때 땅의 영양상태를 지력이라고 한다. 일정한 장소에서 많은 양의 농작물이 자라 지력이 약해지면 생산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땅을 엎고 깊은 땅의 지력을 이용해 새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땅을 가는데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주로 소를 이용해 땅을 갈아왔다.[3] 식량 채집 위주의 생활방식에서 식량 생산 위주의 생활방식으로 변환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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