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13 05:00:30

우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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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文部

1. 개요2. 우문부 관련 인물

1. 개요

선비족의 집단 중 하나로 시라무렌 강 유역에 거주하였다. 동호흉노가 융합하면서 탄생했으며 우문태는 남선우의 후예이다. 본래 음산(陰山) 지역에 거주하였다가 1세기경 요동 일대로 이주하면서 점차 선비화 되었고, 마침내 우문선비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서위를 건설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북주의 지배집단을 형성하였다.

수렵을 하다가 옥새 3개를 얻었는데, 그들의 풍속에는 천자를 우문이라고 해 하늘의 뜻이라 여겨 우문을 성씨로 삼아 탄생되었으며, 이후 요서로 이주했다가 서진단부와 함께 강성해져 모용부와 사이가 험악하면서도 그들로부터 공물을 받았다. 319년에는 최비의 주도 하에 고구려단부와 연합해서 모용부의 수도인 극성을 포위했지만, 모용부가 연합군을 이간질하는 바람에 고구려와 단부는 철수하고, 우문부는 크게 패배하였다.

344년 우문부는 모용부에게 패배한 후 소멸되었다. 이후 우문일두귀는 막북으로 달아났다가 얼마 안 가 죽었고, 모용황의 휘하 장수가 부락민 5,000여 호를 창려로 옮김으로써 우문부는 그 무리가 흩어져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우문부의 소수 집단이 시라무렌 강 주변을 차지했는데 이들이 바로 훗날 거란으로 불리게 되는 사람들이다.

훗날 북주에서 다시 우문씨가 나타난다.

2. 우문부 관련 인물

우문부가 세운 국가의 인물들은 제외
  • 막천혼(莫淺渾) - 재상으로 343년에 우문일득귀의 명으로 전연을 공격했고, 연나라의 군사가 일부러 대응하지 않자 모용황이 두려워한다고 생각해 술을 마시고 사냥을 나가면서 방비 시설을 두지 않았다. 이때 모용한의 공격을 받아 대패했다.
  • 섭야간(涉夜干) - 선비족 남라의 대인. 섭혁간(涉奕干)이라고도 한다. 우문부의 삼군에서 용감하기로 유명했으며, 우문일두귀의 명령으로 344년에 전연이 공격할 때 이를 맞아 싸웠다. 모용한의 군사와 싸우다가 모용패의 군사들에게 옆에서 공격당했고, 섭야간은 참수되었다.
  • 소노연(素怒延) - 소연(素延), 소서연(蘇恕延)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302년 우문막규의 동생 우문굴운이 이끄는 모용부 원정에 별수로 참전하였고, 첫 전투에서 패배한 뒤 10만 대군을 일으켜 극성을 포위했으나 모용외의 반격을 당해 1만의 병력을 잃고 격파당했다. 303년에는 이민족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왕준의 딸과 혼인하여 왕준의 동맹 세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1]
  • 우문걸득귀(宇文乞得龜) - 우문실독관의 아들로 그를 이어 우문부의 대인을 계승했다. 325년에 석륵으로부터 관작을 받고 325년에 그의 명령으로 모용외를 공격했으며, 요수를 점거해 모용황을 막으려 했지만 모용황, 모용인의 공격으로 패퇴했다. 우문걸득귀가 군사를 버리고 달아날 때, 모용황과 모용인 등의 추격을 받아 나라의 귀중한 보배 및 가축 100만 두를 빼앗기고 백성 수만 명이 모용부에 항복했다. 333년에 우문일두귀의 공격을 받자 밖으로 달아났다.
  • 우문구불근(宇文丘不勤) - 우문보발의 아들로 그를 이어 우문부의 대인을 계승했다.
  • 우문굴운(宇文屈雲) - 우문막규의 동생으로, 302년에 형의 명령으로 모용외를 공격했다.
  • 우문막괴(宇文莫槐) - 우문부의 대인이었으나 백성들을 함부로 대한다고 하여 293년에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 우문막규(宇文莫圭) - 우문구불근의 아들로 그를 이어 우문부의 대인을 계승했다. 부족이 강성해지자 스스로 선비의 선우를 칭했고 302년에는 동생 우문굴운과 장수 소노연 등을 보내 모용외를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2]
  • 우문보발(宇文普撥) - 우문막괴의 동생이었다. 293년에 형이 살해되고 부락 사람들에 의해 새 대인으로 추대되었다.
  • 우문실독관
  • 우문실발웅(宇文悉拔雄) - 우문걸득귀의 형의 아들, 즉 조카이다. 325년에 모용외를 공격하기 위해 요수를 점거하고, 우문걸득귀의 지시로 모용인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공격에 패배해 참수되었다. 위서에서는 우문걸득귀의 형인 우문실발퇴(宇文悉跋堆)가 모용인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행적과 이름이 비슷해서 우문실발웅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
  • 우문일두귀

[1] 우문실독관의 다른 이름인 우문손닐연(宇文遜昵延)과 비슷해 동일 인물이라는 설도 있으나 비슷한 행적이 없어 불확실하다.[2] 우문막외(宇文莫廆)라는 이름도 기록에 나오는데 탁발규와 휘가 같아 피휘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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