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10:41:10

탁발타

<colbgcolor=#dc143c><colcolor=#fff> 회남정왕(淮南靖王)
拓跋他 | 탁발타
시호 정(靖)
작위 양평왕(陽平王) → 임회왕(臨淮王) → 회남왕(淮南王)
탁발(拓跋)
이름 타(他)
생몰 416년 ~ 488년
부친 탁발희(拓跋熙)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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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북위의 종실 출신 명장으로 아버지는 양평왕 탁발희, 할아버지는 도무제 탁발규였다.

2. 생애

키가 8척으로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신중하고 충직한 성품이었고 무예가 뛰어났다. 421년, 아버지 탁발희가 죽은 뒤 양평왕의 작위를 이었다.

434년, 탁발타는 태무제가 서하(西河)에서 백룡(白龍)을 토벌할 때 종군하고 백룡의 잔당도 함께 토벌하여 임회왕(臨淮王)으로 개봉되고 진동장군(鎭東將軍)에 임명되었다. 이후 회남왕(淮南王)으로 개봉되고 사지절(使持節)・도독예락하남제군사(都督豫洛河南諸軍事)・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임명되었으며, 호로관에 진수하였다.

이후 탁발타는 무창왕(武昌王) 탁발제(拓跋提)와 함께 병주(幷州)의 군사들을 이끌고 447년 토경(吐京)을 토벌하고자 출병했으나 승전하지 못했다. 이후 같은 해에 조복혼(曹僕渾)을 하서(河西)에서 물리쳐서 사지절・전봉대장군(前鋒大將軍)・도독제군사(都督諸軍事)로 임명되었으며, 북쪽에서 유연 제국을 정벌하고 비간성(比干城)까지 군량을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450년, 유송문제 유의륭이 북벌을 개시하자, 탁발타는 현호(懸瓠)에서 유송군을 물리쳐서 사지절・도독옹진2주제군사(都督雍秦二州諸軍事)・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개부의동삼사・옹주자사로 임명되고 장안에 진수하여 민심을 얻었다. 한편 유송의 북벌이 계속되던 가운데 태무제는 탁발타의 두터운 신임과 신망을 믿고 탁발타를 다시 호뢰진도대장(虎牢鎭都大將)으로 임명하였다.

문성제가 즉위한 뒤 탁발타는 사지절・도독양주제군사(都督凉州諸軍事)・진서대장군으로 임명되고 개부의동삼사는 그대로 받았다. 이후 효문제 때 입조하여 중도대관(中都大官)이 되었으며, 시중(侍中),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를 역임하고 485년 사도(司徒)를 지내다가 488년에 죽었다.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던 효문제는 제사를 중단하고 탁발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였다. 탁발타는 평동대장군(平東大將軍)・정주목(定州牧)・사도로 추증되었고 정(靖)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