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1 13:11:26

우문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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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말당초 군웅
宇文化及 | 우문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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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천수(天壽, 618년 ~ 619년)
우문(宇文)
화급(化及)
생몰 기간 569년?[1] ~ 619년
재위 기간 618년 ~ 619년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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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나라의 장수이자, 정치가. 우문술의 장남.

수양제를 죽인 인물이다.

2. 생애

양광의 태자 시절부터 그를 섬겨 그의 총애를 받았고 604년에 양광이 수양제로 즉위하자 태복 소경에 임명되었으며, 607년에 수양제가 유림에 행차하자 아우 우문지급과 함께 금령을 무릅쓰고 돌궐과 교역을 했다가 수양제가 노해서 사형시킬려고 했지만 주위사람들이 만류해 아버지 우문술의 노복이 되게 하였다.

수양제의 딸 남양공주[2]와 결혼한 막내동생 우문사급과 가까이 지냈고, 616년에 아버지 우문술이 사망하자 우둔위 장군에 올랐다.

이후 양제가 무리하게 여러 차례로 고구려 원정을 밀어붙였다가 나라가 혼란해지자 양제의 대우에 불만을 품었고, 618년에는 여러 사람이 주군으로 삼기로 하면서 모의한 사람들과 함께 강도에서 양제와 수나라 황족들을 학살했으며, 백관들이 조당에 가서 축하할 때 급사랑 허선심만이 축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붙잡아 죽였다.[3]

우문화급은 수양제의 조카 양호를 황제로 추대하고 스스로 대승상을 칭하고 권력을 장악했으며, 진릉을 강도 태수로 삼고 동도로 돌아가려고 시도했다. 우문화급은 무리 10여만을 가지고 6궁을 점거하면서 스스로를 봉양하게 하는 것이 수 양제와도 같았고 그 와중에 사마덕감이 우문화급 곁에 용렬하고 아둔한 소인배가 많다고 해서 습격해 죽이려고 하자 사마덕감을 살해했으며, 그 무리 10여 명도 함께 몰살했다.

동도로 돌아가는 도중에 이밀과 싸워서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군량미도 떨어진 상태였고 이 사정을 파악한 이밀이 거짓으로 화해하자고 하면서 공격하려고 했다. 우문화급은 화해를 요청한 것에 기뻐하면서 그의 군사들에게 식량을 멋대로 먹도록 하면서 이밀이 그들을 먹여주기를 바랐지만 이밀 밑에 있는 사람이 죄를 짓고 도망해서 그 사정을 모두 알려주자 우문화급은 화를 내어 영제거를 건너 이밀과 동산 아래에서 치열하게 싸워 이밀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을 뻔 했다.

우문화급은 급군에 들어가서 군량을 구하고 동군의 이민들을 고문하면서 노략질해 이를 감당하지 못한 허경종[4], 왕궤 등이 이밀에게 투항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북상해서 위현에 도착했다가 장개 등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이 일을 적발해 그들을 죽였다. 우문화급은 양호를 짐독으로 독살하고는 위현에서 황제를 칭해 국호를 허나라(許)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壽)라 했다.

위주 총관 원보장을 공격했지만 40일이 되어도 이기지 못했으며, 619년 1월 18일에 이신통이 위현에서 공격하자 요성으로 달아났다. 이신통이 요성을 포위하고 식량이 떨어지자 항복을 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때 두건덕의 군사도 도착해 요성을 공격했다.

결국 우문화급의 군사는 두건덕에게 격파되어 우문화급은 붙잡혔고 양국에서 아들 우문승기, 우문승지와 함께 참수당해 처참히 목숨을 잃었다. 두건덕은 우문화급의 수급을 돌궐의 계민가한에게 시집 가 있던 양제의 동생이자 수문제의 딸인 의성공주에게 보냈다.

3. 대중매체에서

  •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배우 윤철형이 연기했다. 윤철형은 전작 신돈에서 주군 공민왕을 배신하는 김용을 연기했는데 여기서도 주군을 배신했다.[5]
    행적은 대체로 실제와 일치하는 편이다.[6] 수양제의 근위대장으로서 양제가 돌궐에 순행을 나간 길에 따라가서 밀무역을 하다[7] 발각되어 즉결 처형될 위기에 빠지는데 아버지 우문술이 수양제에게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빌어서 사형 대신 관노로 강등되는 벌을 받았다. 수양제는 "우문화급을 아버지 우문술의 종으로 삼고 부자간이 아니라 주종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압한다.[8] 그리고 수양제의 후궁 오빈으로부터 "개, 돼지와 같은 종이 됐으니 개처럼 짖어보라"는 명령을 받아 정말 개처럼 짖는 치욕을 당하는데 수양제와 오빈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수나라의 문무백관들이 다 같이 박장대소를 했으며[9] 이후 계속 수양제를 섬기지만 이래저래 시달리다 보니 그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으며 3차 원정 때 "요동성을 함락하면 노비 신세에서 면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이미 수나라의 상황이 말이 아니었던 데다 고구려곡사정을 압송하여 형식상의 항복을 청하면서 없던 일이 되어 버린다. 그 뒤 동생 우문지급과 함께 수양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데[10] 지금까지 우리를 개처럼 부렸는데 개를 잡을 때에는 목을 조른다는 이유로 그를 교살한다. 이후 황제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키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두건덕에게 피살되었다는 언급과 함께 허무하게 퇴장한다. 작중에서 이래저래 굴욕만 당했지만 나름 멋지게 나온 장면도 있기는 한데 연개소문 일행을 잡아 가둔 해적들을 소탕할 때 해적 두목을 단칼에 베어버리거나 수양제를 시해하려는 자객들을 제압하는 장면 등이다. 하지만 반대로 상황이 좋지 않은 보고를 들었을 때 그 보고를 한 병사에게 함부로 발길질을 하는 치졸한 면도 있었다.
파일:9F49B70A-6322-4DF6-B794-7043097BA4B8.png
  • 2013년 중국 드라마 <수당연의>에서는 쉬사오창(徐少强, 서소강)이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수양제보다 나이가 많게 묘사되었으며 액면가만 보면 우문화급이 아니라 아버지 우문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참고로 이 작품의 가공 인물인 우문성도(宇文成都)가 그의 아들로 나온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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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의 역대 황제
양호(수나라) 1대 우문화급 허 멸망


[1] 동생 우문사급이 572년생이라는 일부 주장이 있다.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우문술의 나이를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다. 일단 중국어 위키백과에는 569년생으로 기술하고 있다. 참고로 그의 주군 수양제도 569년생이다. 우문화급이 569년생이 맞다면 자기 동생의 장인과 동갑내기라는 것이다. 막냇동생과 나이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는 듯.[2] 그런데 나중에 우문화급과 우문사급 형제가 수양제를 죽이자 충격을 받은 남양공주는 우문사급과 이혼하였고, 훗날 우문사급이 남양공주를 만나 재혼하자고 요청하자 남양공주는 "너와 나는 원수 사이다. 네가 죽고 싶으면 나를 따라와라."고 크게 화를 내며 거부하였다. 사실 이건 전 남편 자체가 불순한 목적으로 재혼을 청한거라 반성도 아니고 심지어 사랑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니 안타까워 할 것이 없다. 남양공주는 수나라 두문덕 세력에 붙었고, 우문사급은 당나라측에 붙었기에 전 부인을 설득해서 이득을 보려한 것이다. 수양제의 딸인 부인의 회유에 성공하면 당나라 쪽이 명분도 가지고 남은 신하나 백성들을 쉽게 설득하는데 개이득이라 이연이 좋아할 것이고, 우문사급 본인도 새 황제가 될 이연에게 높은 자리를 받아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문사급은 말은 벼슬과 귀족 작위까지 받은 대단한 듯해보이는 사람이며, 우문씨 집안의 최후 생존자라지만, 평생 한 짓들을 살펴보면 실상은 부인도 배신하고 장인어른도 배신하고 나라도 배신하고 동료들도 배신하고 산 그냥 얌생이 같은 인간이다.[3] 허선심은 우문화급의 아버지 우문술이 생전에 미워한 인물이었다. 우문술에 의해 좌천됐다가 결국 그의 아들 손에 죽임을 당했다.[4] 우문화급이 절의를 굽히지 않고 자신을 거역했다고 하여 살해한 허선심의 아들이다.[5]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 작과는 달리 이번 작에서는 작중 내내 수양제에게 능욕을 당하는 포지션이었다는 것. 사실 작중에서 당한 학대나 대우를 보면 반란을 안 일으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수준이다. 그리고 김용은 원나라의 부추김을 받아 반역을 하였는데 공민왕은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잘못도 없었고 정상적이고 멀쩡한 군주였으며 김용은 홍건적을 물리친 정세운 안우 김득배 이방실을 이간질하여 모함해 죽인 간신배이면서 역적인데 비해 우문화급은 밀수한 죄로 노예취급을 받았지만 지은 죄에 비해 지나친 학대와 굴욕을 당하였고 수양제가 인간말종 폭군이라 반역을 일으키는 명분은 충분하였다.[6] 수양제의 사위 우문사급의 형이나 상술했듯 중국인들은 우문화급을 그의 주군 수양제와 동갑내기라고 여긴다. 마침 우문화급을 연기한 윤철형이 수양제를 연기한 김갑수보다 고작 3살 어리니 적절한 캐스팅이지만 문제는 아버지인 우문술 역의 임혁주랑도 고작 5살 차이라는 것이다. 이건 살수대첩 당시 70을 바라보던 노장이었던 우문술의 분장을 중년 정도로 묘사해놓은게 문제였다.[7] 소금과 단비가죽을 바꿨다. 이 때 당시 소금은 사사로이 거래하는 게 금지되어 있는 전매품목이었다.[8] 그나마 극중에서 우문술을 주인님으로 부르는 장면은 없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실 개나 마찬가지인 노비라는 부분만 강조되지 우문술의 사노라는 점은 첫 번째 원정을 준비하면서 "종 노릇 잘 하고 있느냐? 그러게 왜 소금 가마니는 끌고 가가지고는."하고 한 마디 하는 게 끝이다.[9] 사실 이 장면은 수양제가 이들을 살려주려면 어쩔수 없이 해야만 했던 굴욕이다.[10] 아버지 우문술이 죽기 전에 "하극상은 안 된다"고 하였으나 그동안 황제에게 받아온 학대와 굴욕적인 대우를 생각하면 그렇게 될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