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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르테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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孛羅帖木兒 / Бээр Төмөр / Бээру Төмө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3명 있는데 셋 다 원나라 사람들이다.

1. 위왕(魏王) 베이르테무르
1.1. 개요1.2. 생애1.3. 대중매체에서
2. 육덕왕(毓德王) 베이르테무르
2.1. 개요2.2. 생애
3. 장군 베이르테무르
3.1. 개요3.2. 생애
3.2.1. 홍건적 토벌3.2.2. 권세를 장악하다3.2.3. 황태자파의 반격과 죽음

1. 위왕(魏王) 베이르테무르

(? ~ 1353)

1.1. 개요

원나라의 황족으로, 성은 보르지긴. 노국대장공주 보르지긴 부다시리의 아버지이자 고려 제31대 공민왕의 장인이었다. 원나라 제3대 무종 카이산 칸과 원나라 제4대 인종 아유르바르바다 칸의 이복형인 위왕(魏王) 아무케의 차남이자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현손자로 고려 제27대 충숙왕의 제2비 조국장공주 보르지긴 금동과는 남매가 된다.

1.2. 생애

그의 형인 아루가 '서정왕'의 작위를 받았기 때문에 차남이었던 베이르테무르가 위왕의 작위를 계승했다. 1353년(공민왕 2년)에 백가노와 함께 하남의 요적, 즉 홍건적을 토벌하러 갔을 때, 술을 즐기고 방비하지 않다가 반군들로부터 위협받고 붙잡혀 살해당했다.

1.3. 대중매체에서

신돈(드라마)에서는 방중술에 빠져있는 순제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았고, 역모를 일으켜 제국을 건설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지만 실권을 잃었다. 이후 자신의 외손자인 쿤란이 변방으로 쫓겨났고 아유시리다라가 황태자로 임명되면서 순제로부터 아유시리다라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받지만, 태자는 쿤란 뿐이라며 거부하다가 체포되고 딸인 다나시리에게 서신을 남기고 독을 마셔 자결한다.

기황후(드라마)》의 태공왕 발라첩목아는 이 인물이 모델인 것으로 추정된다. 태공왕은 타환(원혜종)의 6촌으로 황태후 일파가 그를 허수아비 황제로 세우려고 했으며, 타환이 황태후 일파들을 비롯한 정적들을 모두 제거할 때 메르키트 토크토아가 목에 칼을 들이대자 당황하다가 제일 먼저 사망했다.

2. 육덕왕(毓德王) 베이르테무르

생몰년도 미상

2.1. 개요

원나라의 외척으로 성은 옹기라트(弘吉剌)씨. 벵부라의 아들로 제3대 무종 쿨루크 칸 카이산의 황후인 선자혜성황후(宣慈惠圣皇后)와는 남매가 된다. 혜종의 제1황후 바얀 후투그의 아버지였다.

2.2. 생애

그의 딸이 황후가 되어 육덕왕에 봉해졌다.

3. 장군 베이르테무르

(? ~ 1365)

3.1. 개요

원나라의 귀족으로, 다스바토르의 아들이었다. 원나라 말기의 장군으로 유명한 인물로, 홍건적을 토벌하는 등 군사적인 면에서 활약을 했지만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라, 차칸테무르, 코케테무르 부자 등과 내분을 일으켜 원나라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3.2. 생애

3.2.1. 홍건적 토벌

아버지 다스바토르를 따라 종군해 홍건적 토벌전에서 전공을 여러 차례 세웠으며, 아버지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다스바토르가 죽자 군사를 이끌고 정형구에 머물렀다가 1358년 정월에 하남행성 평장정사에 임명되었다. 3월에 유복통의 홍건적을 위휘에서 격파했고, 진군해 복주에서 승리했다.

4월에는 진정에 주둔했다가 6월에 무안에서부터 팽성으로 사류 등의 길을 끊어 홍건적을 격파했으며, 9월에는 군사를 통솔해 조주를 협공하게 하고 10월에는 광복에게 묘군을 거느려 서문으로 들어가게 하면서 자신은 북문으로 들어가 4문으로 진군해 조주를 함락했다. 1359년 2월에는 대주에서 맹본주의 군사를 격파해 산동을 점령했으며, 대도독농병사에 임명되었고 당월, 풍주, 운내의 군사를 통솔해 관선생의 홍건적을 격파했다.

6월에는 우루크부카, 발랄 후제 등에게 울주에 웅거한 양성을 붙잡으라고 지시했다가 조서로 회군하게 되었지만 11월에 다시 명령이 내려와 양성을 공격했으며, 1360년 정월에 양성을 추격해 비상현 동관에 이르러 양성의 군사가 달아나고 무너져 항복하자 회군해 대동에 머물렀다. 2월에 중서평장정사가 되고 3월에 흥화를 공격해 정사충을 토벌했으며, 7월에 전풍을 공격하는 것처럼 꾸며서 대주의 장수인 왕사성을 속이고 8월에 석령관 이북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다.

9월에는 기녕을 빼앗기 위해 석령관에서 군사를 보내도록 해서 성을 3일 동안 포위했지만 함락하지 못했다.

3.2.2. 권세를 장악하다

10월에 기녕을 수비하라는 조서를 받아 보보, 은홍조, 고탈 등을 보냈고, 차칸테무르가 보낸 자들과 싸우게 되었지만 패배했다. 1361년 정월에 다쉬테무르, 참정 70명 등이 가서 중재하자 물러나고 9월에 보정으로 이동해 하간 이남에서 둔전할 것을 명령받았다.

1362년 2월에는 좌이가 양영조를 보내 대동에 이르러 항복하겠다고 속여 3월에 장수를 보내 예수부카에게 군사 50,000명으로 대동을 지키게 했으며, 베이르테무르는 태위, 중서평장정사로 승진했다가 장량필이 오자 받아들였다. 1363년 10월에 차칸테무르의 양자 코케테무르가 지키는 땅을 남쪽으로 침공해 진정에 웅거했으며, 원나라 조정에서는 라오데이샤를 몰아내 동승주에 안치하고 별개로 환관을 보내 베이르테무르를 타이르면서 군중에 머물러 명령을 내리도록 하자 태자 아유르시리다라는 관리를 보내 베이르테무르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1364년 정월에는 사람을 시켜 숙부와 아들인 조카를 죽이고 거짓으로 모르는 척하며 조문했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베이르테무르가 멋대로 날뛰자 라오데이샤의 일을 숨기고, 에센부카를 시켜 감독하게 했는데 베이르테무르는 토겐테무르와 가까이 있었다. 에센부카가 토겐테무르를 참소해 조정에서 꾸짖고 비방하면서 베이르테무르와 토겐테무르가 서로 친하게 되었다고 하자, 베이르테무르가 사람을 보내 토겐테무르는 죄가 없다고 했다.

3월에는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라가 베이르테무르에게 토겐테무르와 서로 통하고 규칙을 어긴 것을 용서한다면서 초스간과 논의해 토겐테무르의 관직을 삭탈하는 조서를 청한 후, 그 군사를 나누었는데 사천행성의 승상인 차칸부카가 혜종의 명령이 아니라면서 토겐테무르를 구원했으며, 베이르테무르는 병권에서 파면되어 사천에 안치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해 사신을 죽이고 부장을 보내 토겐테무르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대도로 진격했다.

4월에 베이르테무르는 거용에 입성했다가 청하의 열영에 이르러 대도로 침범하려 했고, 혜종이 초스간과 박부카 등을 숨겼지만, 이들을 넘길 것을 요구하며 군사를 물리기로 했다. 결국 그 둘을 넘겨받아 살해했고, 토겐테무르가 혜종에게 죄를 청하자 혜종이 사면하면서 베이르테무르는 태보, 중서평장정사 겸 지추밀원사에 임명되어 대동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고 그곳으로 돌아갔다.

5월에는 코케테무르에게 베이르테무르를 토벌하라는 조서가 내려와 코케테무르가 휘하의 쇄주에게는 경사, 양동첨에게는 거용에서 수비하게 하면서 자신은 태원에서 군사를 통솔했는데, 7월에 베이르테무르가 토겐테무르, 라오데이샤와 함께 대도를 침범했고, 이에 아유르시리다라 태자가 청하, 예수, 불란해 등과 함께 창평에서 맞섰지만 베이르테무르는 양동첨을 전사시키고, 이들 모두를 격파했다.

아유르시리다라 태자를 쫓아 습격하려 했지만 라오데이샤가 이를 멈추게 했고, 베이르테무르는 태보, 중서좌승상이 되어 나라의 권세를 장악했으며, 8월에 개부의동삼사, 상주국, 녹군국중사, 태보, 중서 우승상이 되어 천하의 병마를 통솔하게 되었다. 아유르시리다라 태자를 조정에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수 차례 사신을 보냈지만 사신들은 태원에서 붙잡혀 억류되었다.

3.2.3. 황태자파의 반격과 죽음

1365년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라가 영부, 감숙, 요양, 섬서 지역과 코케테무르에게 사절을 보내 베이르테무르를 토벌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이에 베이르테무르가 분노해 기황후를 궁 밖으로 내보내 100일 동안 가뒀다. 베이르테무르는 토겐테무르에게 상도에 있는 아유르시리다라 태자를 토벌하도록 하고, 예수에게는 코케테무르를 남쪽에서 막으라고 했는데, 예수가 주저해 나아가지 않다가 영평으로 되돌아가 사람을 보내 서쪽으로 태원, 동쪽으로 요양과 연결해 내통했다.

베이르테무르는 보안을 의심해 죽이고, 요바얀부카를 보냈지만 예수가 통주에서 요바얀부카를 죽이자 분노해 스스로 통주로 나왔다가 3일간 큰 비가 내려 되돌아갔으며, 답답해 라오데이샤와 함께 하루 종일 연회를 베풀어 술을 마시고 사람을 죽이자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화상이 혜종의 밀지에 따라 상도마, 김나해, 바얀다르, 테쿠시부카, 후르쿠다, 홍보보 등과 함께 베이르테무르를 죽일 모의를 꾸몄다. 7월에 토겐테무르가 사람을 보내 상도에서 이겼음을 알리자 베이르테무르는 일어나 입궐해서 상주해 아뢴 후, 연춘각 이수에 이르렀다가 바얀다르의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고 상도마, 김나해 등도 베이르테무르를 공격해 베었다.

그의 일당들도 모두 죽임을 당하고, 다음날 그의 수급은 함에 넣어졌다. 또한 사신을 태원에 보내 아유르시리다라 태자를 조정에 돌아오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