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1-06 18:18:53

창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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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창조설 내에도 어린 지구설, 오랜 지구설, 지적설계설 등 여러 분파가 있습니다. 이 점을 유의해서 글을 적어주십시오.

1. 개요2. 표기3. 간단한 현황
3.1. 창조설의 분파
4. 과학철학에서 바라보는 창조설
4.1. 유사과학(사이비 과학)
4.1.1. 입증 불가능성4.1.2. 반증 불가능성
4.2.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믿거나, 안 믿거나)
4.2.1. 그마저도 잘못된 믿음
5. 과학이라고 우기는 창조설자들6.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대처법7. 성서적으로도 맞는가?8. 창조설의 문제점 정리9. 세계 동향
9.1. 미국9.2. 유럽9.3. 중동 및 이슬람권
10. 대한민국
10.1. 관련 인물
11. 창조설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적 한마디
11.1. 창조과학의 도구로 창조과학 반박하기
12. 관련 작품13. 관련 문서

1. 개요

과학에는 확실성 없는 증거가 있다. 반면 창조설 신봉자들에게는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확실성[1]이 있다.
애슐리 몽태그[2]

창조설()은 우주 만물이 초자연적인 존재인 에 의해 창조됐다는 교리인 창조론[3] 과학의 영역에 도입한 가설이다. 창조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것이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저 한 종교의 교리에 과학이란 이름을 붙여 설득력을 높이려는 시도일 뿐이다. 당연히 과학자들은 반박을 떠나 굴욕감을 느끼며 무시해버린다. 과학의 기본은 끊임없는 비판과 의문과 수정인데, 종교 교리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설은 정반대로 증명할 수 없는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과 믿음과 확고함을 가져가기 때문이다.[4]

흔히 창조설을 사이비 과학으로 분류하는데 창조설(창조과학)은 나름의 체계나 추론과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의 범주에 넣기도 어렵다. 때문에 제대로 된 과학자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신학자들도 창조과학은 잘못된 주장으로 일축해 버린다. 창조과학은 엄연히 잘못된 과학이며, 과학 뿐만 아니라 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에 있어서 배척되는 반지성주의적 행태일 뿐이다. 애초부터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 교리 중 하나인데, 창조 기사를 인간적인 마인드로 가득한 과학(자연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성령의 역사와 기적을 과학으로 모두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실은 별반 차이가 없다.

따라서 창조과학의 성격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학과 신학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다수 기독교인들(주로 근본주의 교인들)이 만들고 꾸려가는 일종의 빗나간 신앙운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말하는 또 한가지 근거는 애초에 창조과학 자체가 어떤 축적된 지식이나 논리적 사유에서 얻어진 학문적 성과물이 아니라 단순히 진화론에 맞서 기독교적 신앙을 지키자는 일종의 '반진화론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쪽에서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성경의 내용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변호할런지 모르나,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인간적인 판단이 가미된 성경 내용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성경에 들어있는 내용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아니며, 자연과학적 지식은 성경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범주의 오류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자연과학적인 지식의 상당 수는 계속 갱신되고 다르게 해석되어야만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자연과학적 지식은 반증주의패러다임 등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참고로 창조설과 창조론은 엄연히 다르다. (혼동되며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자연과학은 일반적으로 우선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 '가설 → 이론 → 입증'이라는 순서를 밟는데, 진화론은 이미 각종 근거와 증거들로 입증된 상황이지만 창조설은 해석과 추측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운 헛소리만 있을 뿐 애초에 근거는 커녕 제대로 된 체계나 추론과정 자체가 아예 없으므로 '이론'의 단계에 도달조차 못했다.

2. 표기

창조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론(論)"이라는 한자어는 담론, 공론, 의논, 논문 등의 단어의 줄임말로 사용되므로 일반적인 자리에서는 창조론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사실 문자 그대로 쓴다면 틀린 용법은 아니다. 실제로 초창기에는 구분없이 창조론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창조설 지지자들의 과학 운운하는 삽질에 힘입어 디시인사이드 무신론 갤러리나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과학'란 등에서 창조"론"이라는 단어가 과학적 이론(論, theory)인 진화론(the "theory" of evolution)과 신학적 교리에 입각한 이론인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ism)을 동일한 수준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대대적으로 일었다. 이에 따라 현재 무신론 갤러리나 네이버캐스트 등에서는 '창조"설"이 대표적인 표기법이 되었다. 그후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창조신화와 창조과학을 분리시키고자 전자는 창조론, 후자는 창조설이란 명칭을 쓰는 경향이 생겼다.


이는 인터넷상에서 이용자들 간에 이뤄진 암묵적인 합의일 뿐이라서 창조설과 창조론이란 용어를 혼용하거나 바꿔써도 원론적으로는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무 집착하지 말자.

3. 간단한 현황

창조설은 과학 이론이 아니며, 애당초 신에 대한 이해와 증명을 전제로 두지 않는 기독교 교리 상 과학과 양립할 수도 없다. 공통점이 있다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만 방식은 정반대이다. 창조설 혹은 창조과학은 기독교의 문자주의적 창조교리를 과학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이며, 이론보다는 차라리 종교적 운동 혹은 현상에 가깝다. 호남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이자 현직 목사이기도 한 신재식 교수는 "창조설이나 창조과학은 사이비 과학도, 사이비 신학도 아닌 그저 문제 많은 종교 운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창조설자들이 '창조설의 내용은 객관적 사실이고, 창조설은 과학이론이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결국 하나다. 바로 성경. 즉 근거를 대라고 하면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라고 반문한다. 즉 "신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문서가 있으니 누구도 못 볼지언정 신께서는 나와 함께하신다." 는 것이다. 또한 주장근거성경으로 들면서("성경에 나와 있음") 성경 비판론에 대한 반박으로 비판 받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다시 근거로 드는 회피성 순환논리의 추태를 보인다. 이들에게 창조설은 명명백백한 사실이고, 남들이 뭐래든 신께서 부여하신 악마의 유혹이며(원천봉쇄), 신의 뜻에 따라 창조설이란 '사실'을 설득시켜 불쌍한 그들도 같이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만 남았을 뿐이다. 논리가 통할 리 없다.

참고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창조설이라고 부르는 이 개념의 명칭이 비록 '과학 이론이 아니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창조설이라고 작성되었을지언정, 창조설은 과학적 가설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과학적 가설이란 자연과학적인 방법에 따라 자연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추측한 명제다.[5] 창조설은 처음부터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해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이 문서에서 해당 개념을 창조설이라고 부르고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창조설은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에 대한 해석의 한 형태이며 유사과학이라기보다 종교적 교리이다.[6]

창조설은 생물학 교육을 받지 못한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에게 지지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창조설을 주도하고 있으며, 미국을 벤치마킹한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학자 및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창조설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가르치는 것 또한 금지되어 있다. 1990년대 초중반에 이름만 지적설계로 바꾸어 창조설을 가르치려 했으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각국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신학이나 철학으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적은 없으나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과학에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창조설은 젊은 지구설 / 오래된 지구설로 나뉘기도 한다. 젊은 지구설은 성경에 나오는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주의 나이가 6000년가량이라고 추측하는 주장으로 창조설 지지자 중에서도 한국창조과학회를 비롯한 가장 광신적인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는 주장이다. 근거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 모두의 나이를 더한 것...[7] 절대 진리라며 자기네들끼리도 분파가 갈리는게 포인트다. 오래된 지구론은 현대 물리학에서 밝혀진 것처럼 우주의 나이가 130억 년 이상이라고 추측하는 주장이다.

창조설은 단일격변설 / 다중격변설로 나뉘기도 한다. 단일격변설은 태초부터 현재까지 '노아의 홍수' 단 한 번만이 환경을 변화시켰으며 나머지 기간은 계속해서 안정된 상태였다는 주장이다. 다중격변설은 여러 번 격변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아예 부정하는 입장 / 처음 창조가 있었고 이후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방식으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입장(천주교의 공식 입장이다.) / 진화 개념을 둘로 나눠서 소진화(종 내 진화)는 인정하지만 대진화(종이 바뀌는 진화)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 등이 있다.

즉 자기들끼리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한국창조과학회 같은 단체의 글들을 보면 저런 주장들이 다 섞여있다.[8] 그런데 그게 모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창조설 지지자들의 주장도 십중팔구 소스가 창조과학회이기 때문에 계속 키보도 배틀을 하다보면 결국 앞뒤가 안 맞아 자폭한다.

이런 현상은 창조과학에 상호 모순되는 주장을 가다듬고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을 걸러낼 만한 자체 검증 시스템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일단 진화론을 까는 내용이기만 하면 그 말이 맞든 틀리든 무조건 인정해주고 보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말이 되든 안 되든 터뜨려놓고 반박을 받으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주장을 접든가 말을 바꾸는 짓을 계속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창조과학자들의 중요한 특징은 자체적으로는 연구나 실험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주장은 거의 대부분 다른 학문의 성과나 연구 결과를 그대로 가져온 후 거기에 종교색을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창조과학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상식적으로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험 설계가 과연 가능하겠는가? 결국 그러니 남들이 해놓은 연구 결과 중에 자기들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창조의 증거인 것처럼, 또는 진화를 부정하는 것처럼 덧칠하는 수준 이상으로는 전혀 생산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름은 창조인데 창조가 없는 기괴한 가설인 셈이다.

또한 창조설 설파를 위해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 창조론 중심의 자연사박물관...이라고 스스로는 주장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Creation Wiki라는 창조위키까지 만들어서 창조설을 전파하고 있다. 한 번 들어가서 뭘 설명하는지 확인해 보자.

어떤 창조론자들이 과학계에 유신론계 과학, 무신론계 과학으로 편 가르기가 있다는 식으로 개드립을 치는데, 과학자들 중에 유신론자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지만, 유신론계, 무신론계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창조론자들은 모든 유신론자인 과학자들, 특히 기독교도 과학자들이 죄다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로 사실왜곡을 벌이는데, 대부분의 유신론자인 과학자들도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 취급한다.[9]

화학진화에 대해서도 현행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화학진화을 다루는 학계 내에서도 비판이 있지만, 그것이 화학진화를 부정하고 창조과학을 지지하지 않는다. 종교계 내에서도 특정 신학적 주장에 대해서 다양한 비판이 나온다고 그게 무신론에 대한 지지로 바뀌는가? 이 것은 사이비 가설들이 과학학계 내에서의 토론이나 활동에 대한 전무하다는 걸 인증할 뿐이다.

3.1. 창조설의 분파

보통 한국창조과학회는 어린 지구설을 주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창조설=어린 지구설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영향력도 강하긴 하지만 사실 창조설은 여러 분파가 있다. 기본적으로 어린 지구설/오랜 지구설로 나뉘고 오랜 지구설도 또 나뉜다.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10]
  • 오랜 지구설 : 오랜 지구설은 어린 지구설에 반대하여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이나 우주,지구의 나이를 인정한다. 다만 진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래된 지구 위에 생명이 창조되었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된 창세기의 해석에 따라 이들도 둘로 나뉜다.
    • 간격 창조설 : 간격 창조설자들은 창조가 2번 있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창조는 창세기 이전의 창조로 우주의 역사와 고생물의 등장은 이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창세기에 나온 창조를 하는데, 여기서 기존의 생물들은 멸종하여 화석이 되고 인간과 현생종들이 새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 날-시대 창조설 : 성경의 행간에 무엇이 담겨있을지 모르니 섣불리 해석하면 안 된다는 창조설. 놀랍게도 저 옛날 성 아우구스티누스(354 ~ 430)가 내놓은 이론이다. 기독신학의 교부(敎父)로 추앙받는 4세기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아우렐리우스는 6일 안에 창조했다는 성경 구절에 대하여 본인의 저서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De genesi ad literam)에서, "1일이 우리가 아는 1일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주님께는 1일이나 1000년이나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보듯 날-시대 창조설은 1일이 문자 그대로 하루가 아니라 긴 지질학적 연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점진적 창조설: 오랜지구 창조설과 흡사하며, 생명의 순차적 생성을 인정한다.

4. 과학철학에서 바라보는 창조설

4.1. 유사과학(사이비 과학)

과학철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사이비 과학, 유사과학)'을 구분하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여러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과학관을 피력하는 폴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11]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은 창조설(창조과학, 지적설계론 포함)을 사이비 과학(유사과학)으로 보고 있다. 이 중 칼 포퍼, 토마스 쿤, 임레 라카토슈의 얘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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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입증 불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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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에서는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대해서 연구하는데, 과학철학자들은 창조설에 대해 '과학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는 창조설이 유사과학이라고 분류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우선, 창조설의 기초가 되는 '신의 존재'는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의한 입증이 불가능하다. 즉,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설계해야 할지도 모르고, 또 어떻게 실험을 설계한다고 해도 그게 옳은 실험인지에 대해서 알 수가 없으니 결국 뻘짓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현상 발견 → 가설 세우기 → 가설 입증을 위한 실험 설계 및 실험 → 결과 분석'이라는 과학적 연구 방법에서 '입증을 위한 실험 설계'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과학적 실험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해도, 그 신이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를 했는지, 그리고 창조 행위를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창조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는 문제에 부딪힌다. 즉, 제 아무리 실험실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신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명을 창조했다는 근거는 없으므로, 그 실험이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실험은 '뜨거운 원시 지구에서 원자들의 화학적 결합에 의하여 생명이 자연 발생되었다.'는 현대 과학의 생명 탄생 가설에 대한 강력한 실험적 증거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4.1.2. 반증 불가능성

그나마 그들에게 위안이 되는 사실이라면, 창조설은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반증(반례 제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창조설에선 '신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증을 위해 그 어떤 사례를 제시하더라도, 창조과학자들은 "그 역시 신이 설계한 것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창조설에 대해선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반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하기에 창조설은 어떻게 보면 무적(?)의 이론인 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경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막말로 확실하게 믿어지는 중력법칙도 어느날 사과가 위로 떠오르는 것이 관찰된다면 틀린것이 된다. ‘grue paradox’ 참조.

그러나 그래서 저 이론은 '틀린' 이론이 된다. 왜냐하면 창조설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대부분 "순환 논증의 오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국어적, 언어적으로 순환논증의 오류에 해당하는 논리는 애초에 반박할 필요도 없는 틀린 논리다. 일반적으로 논리란 어떠한 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근거를 들어 밝히는 언어 사고를 의미한다. 그런데 순환논증의 오류에서는 명제가 근거가 되고, 근거가 명제가 된다. 즉 '어머니'가 왜 어머니인지 밝히려면 그 근거로 어머니의 '자식'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순환논증의 오류에서는 어머니가 어머니인 이유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라고만 한다. 자식이 없는 여성을 어머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여성일 뿐이다. 창조설도 마찬가지다. 신이 생물은 설계한 게 맞다면 그 근거를 들고 와야 한다. 그런데 신이 생물을 설계하고 창조한 것은 성경에 써져 있고, 그 성경은 신이 썼다고만 한다. 신이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근거로 '신'만 내세우는 꼴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이처럼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론, 즉 반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이론은 과학이 아니다"고 하였다.[12][13] 그리고 칼 포퍼는 과학이 아님에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사이비과학 또는 유사과학이라고 불렀고, 유사과학은 과학 시간에 들여 놓아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4.2.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믿거나, 안 믿거나)

물론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이 참(true)일 수도 있다. 그리고 유신론자들 중 생물의 진화 자체는 인정하는 사람들은 '신이 생명을 설계(창조)하면서, 진화도 같이 설계해 놓았다'는 주장(유신론적 진화론)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가설 역시 참일 수도 있다.[14][15]

그런데 문제는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은 위에서 보았듯이 검증도 불가능하고, 반증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해당 가설의 참/거짓에 대해서는 연구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연구자는 할 일이 없다. 즉, 가설만 존재할 뿐, 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존재할 수가 없다.[16] 따라서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은 과학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고, 그저 믿음의 영역(예: 종교)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가설은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종교 교리적 성격을 가질 뿐이이다. 물론 그러한 가설을 믿을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믿더라도 과학적 근거는 있을 수 없고, 그저 종교 경전(예: 성경) 정도만이 그들 입장에서의 나름 근거가 될 수 있을 뿐.

따라서 과학철학계에서는 단지 종교의 영역에 속할 뿐인 창조설(창조과학, 지적설계론 포함)을 과학이라고 우기는 자들은 과학이 뭔지를 모르거나, 혹은 반(反) 지성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4.2.1. 그마저도 잘못된 믿음

또한,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이 참이라 쳐도, 그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모순이 드러난다는 치명적인 문제도 있다. 즉, 창조설 자체가 신의 능력을 폄하하는 행위이며, 이는 곧 과학적으로 사이비이자 신앙적으로도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지전능이란 말부터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말은 어디에서든 존재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능력에 제한이 없다는 것도 의미한다. 당연히 시간 조작이나 현실 조작 같은, 인간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초능력을 포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애초에 이러한 가정은 '전능 역설'로도 직결되는 가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굳이 '엿새'가 아니더라도, 단 1초만에 천지를 창조하는 것도 가능하기에, '1초 창조설'이나 '순간 창조설', 심지어는 인류 원리와 비슷한 극단적인 논리도 가능하다. 3차원에 사는 우리 인류가 2차원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듯 말이다. 또한 그 '엿새'가 실제로는 우리 인류가 보는 '엿새'와 같을 수 없다는 결론에도 도달한다. 다시 말해, 정말로 신을 믿는다면 굳이 '엿새' 같은 특정 기간에 집착할 이유도 없고, 결코 집착해서도 안된다는 것. 즉, 신을 찬양한다면서도 창조설을 내세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숫자에 집착하다 오류를 스스로 범하는 예는 십사만 사천 명 같이 숫자가 언급된 부분이라면 흔히 찾을 수 있다. 사실 독실한 목사들마저 알게모르게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애초에 성경이라는 것이 특정 구절을 정확하게 나눈 것도 아닌데다가, 이야기 전개 등을 위해 불필요한 서술은 악마 등 초자연적인 존재를 통해 생략하기도 하고, 동양에서도 그랬듯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엿새'이니 '십사만 사천'이니 하는 숫자들의 비유적인 뜻 혹은 2000년 간에 성경 필사 과정 중에 생긴 오류로 생각해야지, 그 단어의 표면적인 뜻에만 집착하는 행위는 뉘앙스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자백하는 꼴이다.

특히 창세기는 묵시문학적 표현이기에 숫자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어렵다. 지구의 형성 과정만 보더라도 '하루'의 정의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창조설 옹호자들이 고증 없이 창조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는 것과 같이, 창조에 대한 반박자들 또한 일부 신앙인들의 고증이 잘못된 근거를 창조설이 틀린 근거로 착각하지만 이 또한 명백한 논리적 오류이다. 위와 같이 잘못된 이해를 가진 신앙인들이 있다고 해서 창조설에 대한 부정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어린아이가 엔트로피법칙을 증명 못한다고해서 엔트로피 법칙이 틀린 것이 아니다.

5. 과학이라고 우기는 창조설자들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라면 엄연한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신과 종교를 독실히 믿겠다'는 사람들을 굳이 비난할 거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창조설 지지자들은 창조설이 '과학적'이며, '다른 사람이 믿어야 한다'고 하며, '공식적인 교육과정에 진화론과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거기에다 그러한 창조설 지지자들은 논리적인 주장이나 반박이 아니라 모든 것을 신앙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며, 신화와 종교적인 믿음으로 해결하려 하는 데서 과학자들의 영역을 더럽히며 많은 지성인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간혹 진화론과 창조설을 같은 위치에 놓으려고 하는 창조설 지지자들이 있는데, 창조설이 과학계에서 가지는 위치는 사학계의 환빠 그 이하이다.

창조과학의 이론들이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에 근거한 기독교 근본주의 신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면 기독교 밖에서 큰 문제될 것이 없다.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창조과학을 수많은 성경 해석의 방법들 중 하나로 주장하는 것이라면, 신학계 밖의 학자들 중에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험 설계를 통한 과학적인 입증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가지고 과학이라고 주장하기에 까이는 것이다.
▲ 과학으로 다시 쓰는 창세기. 창조설을 과학에 넣으려는 시도를 풍자하는 동영상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창조설자들에게는 '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반증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목적은 단지 과학의 이름을 빌어서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이 맞는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17] 우리가 창조과학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이라는 개념이 잘못 이해되어 사용되는 것 자체도 막아야 되는데,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창조과학에서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악용하는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되는 사안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설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진화론에 대해서 거짓이라고 공격하기만 하는 이유다. 실험적 연구가 가능하기에, 역설적으로 실험상의 오류 역시 생길 수 있는 진화론에 대해서 갖은 주장으로 공격함으로써, 어떠한 반례 제시(반증)도 불가능한 자신들의 설(창조설)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백보양보해서 설령 진화론이 거짓이라고 해도, 그것이 창조설이 우위에 있다는 뜻은 아니며(자신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결국 둘 다 똑같은 거나 마찬가지다. 최대 무승부의 결과밖에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설은 실험이라도 가능한 진화론과 달리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입증하는 과정(실험)도 할 수가 없다.

즉, 창조설이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주로 진화론이 가지는 불확실한 부분을 지적하며 "진화론이 틀렸으니 창조설이 옳다."라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흑백논리에 지나지 않아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창조설이 맞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누군가가 생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들의 종교에서 주장하는 식의 창조설이 맞는다는 보장 역시 없다. 가령 신이 아닌 외계인이 지구상의 생물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외계에서 왔다는 주장은 그럼 그 외계에서 온 놈은 어떻게 창조 되었냐 하는 질문 하나로 순환논리의 덫에 빠지기는 하지만... 최소한 종교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자 드립으로 무책임하게 회피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그 외계인이 아자토스라면?
기본적으로 진화론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서 계속 발전해 나가는 것이 과학이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재의 진화론은 매우 다듬어진 상태로 어지간한 약점은 거의 다 극복한 상태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진화론이 아예 뿌리가 틀렸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과학자 입장에서는 그냥 진화론을 폐기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워서 실험을 통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창조설은 결코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할 수 없는 수준의 주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창조설자들은 과학적인 주장이 있다며 외국인 교수들의 해설문이나 논문을 자료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자료들이 모두 날조거나 인정 받지 못한 논문들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국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1980년 폭발했을 때의 예를 들어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 시절의 대홍수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주장하며 지각 변동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논문이 있다. 그런데 지구과학계에서는 "말이 되냐?"라고 비웃었고,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인용된 논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또 비웃음을 샀다. 애초에 상당한 권위를 가진 지질학자 중에서 저 논문의 발표자가 한 말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 중 과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은 창조설을 굳이 과학과 연결하려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종교는 믿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데 반해, 과학은 의심하는 자세를 중요시 여기므로 둘은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영역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창조설에 과학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창조과학' 따위의 용어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비판받을 지점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창조설을 과학으로 입증하겠다고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창조설은 과학적 입증과 반증이 불가능하며, 창조설이 과학으로 입증되어야만 믿을 수 있다면, 굳이 종교로서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하지도 못하는 존재를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옳은 일인가는 또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6.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대처법

긴 세월 동안 창조설들이 진화론을 까는 내용은 정형화되었고, 나무위키에서는 미국의 Scientific American에서 발표한 반박문과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여 진화론/비방에 대한 반박으로 정리했다. 원문 보기.

그리고 괜히 공격적인 사람과 싸우려 들지 말자. 2008년 호주에서는 영국인 배낭여행자 2명이 이 주제로 격론을 벌인 결과 살인사건뉴스 기사(영어)이 발생한 적이 있다.

7. 성서적으로도 맞는가?

성서무오설 문서 참조.

이 문단은 대체로 진보신학적 입장에서 작성되었다. 다만 개혁적 복음주의(중도 보수) 포지션을 지니고 있는 한국의 신학자 중에서도 유사한 의견을 표한 경우가 많다.[18]

한국 기독교와 미국 내 근본주의에 팽배해 있는 성서무오설 때문에 진화론이 까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실제 조직신학 교과서에서는 노지구설, 진화론, 문학적 구성설 모두 양립 가능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즉 종교에 자기들 입맞에 맞게 취사선택된 단편적인 과학지식을 짬뽕을 시켜서 만든 위험한 이론(?)이 기독교의 본래 목적까지 흐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창조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실인데, 구약성서를 전공한 학자 중에서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19] 억지로 과학이론을 끌어들이다보니 성경의 논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신학자들보다는 보수적인 목회자, 신자, 그리고 무엇보다 비생물학 전공의 극히 일부 기독교인 과학자들이라는 점이 아이러니. (대부분의 기독교인 과학자들은 유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은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창조과학은 성경의 권위를 과학에서 찾는다. 신앙의 토대가 과학인 것이다. 신앙이 과학 이론을 기반으로 세워졌을 때, 그 기반인 과학 이론이 무너지면 신앙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이나 이론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며 작업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자는 "진화론이 확고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만약 진화론에 반하는 정확한 증거가 나온다면 아무런 미련 없이 진화론을 버릴 수 있지만 당장은 그 정도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일단 진화론이 사실이라 추정하고 이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강력한 증거가 나타나서 기존의 과학 이론이 폐기되는 것이 매우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오히려 기존의 이론을 폐기시킬 만큼 정교한 이론이라면 실재(實在)를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곧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는 것을 뜻하므로, 기존 이론을 뒤엎는 일은 과학자들에게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바로 그 영광을 위해, 눈이 빠져라 (진화론을 포함한) 기존의 이론들을 예의주시하며 헛점을 찾기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들인 것이다.[20] 결론적으로, 과학은 신앙의 토대로 쓰기에는 너무 부적절하다. 과학의 이런 특성도 모른 채 과학 위에 자신의 신앙을 세우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하물며 그 모래가 자신의 특정 주장에 짜맞춰진 "사이비" 과학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창조과학의 이론에 따라 자신의 신앙을 다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므로 극구 삼갈 것을 권유한다.[21]

여담으로 로마 제국 시절 유명한 교부 성(聖)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이러한 인간들을 대놓고 겨냥한 듯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대개의 경우, 지구와 하늘과 이 세상의 구성 요소, 천체의 움직임과 궤도 그리고 크기와 상대적 위치, 일식과 월식의 예측, 일년과 계절의 순환, 동물과 식물 광물 등의 종류 등에 대해서는 기독교 비신자들도 많이 알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은 이성과 경험에 의한 명확한 것이다.

그런데, 비신자에게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의미를 앞세우며 그러한 주제에 관해 사리에 맞지 않는 허튼소리를 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위험한 일이다. 이는 기독교 신자의 엄청난 무식함을 드러내어 비신자들의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그런 창피한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 수치는 단지 무지한 개인이 조롱받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믿음의 울타리 밖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신성한 성경 저자들 역시 그렇게 무식하다고 생각하게 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힘들게 일한 것도 소용없이, 우리의 성경 저자들이 배움이 없는 이라 여겨져 그들에게 비판받고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만약 비신자들이 자신들이 매우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기독교인들이 실수를 하고 우리의 성경에 대한 그런 멍청한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비신자들에게 기독교인들의 경전이 자신들이 경험과 이성으로 습득한 것들에 대해 오류로 가득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어떻게 죽은 자의 부활, 영생의 희망, 하늘의 왕국을 믿게 할 수 있겠는가?

경솔하고 서툰 성경 해설자들이 유해한 오류에 빠져 우리의 신성한 성경의 권위 밖의 이들에게 비판을 받는 것은 보다 현명한 그들의 형제들에게 전에 없는 곤란과 슬픔을 가져다 준다.

그럴 경우, 그들의 멍청하고 명백히 틀린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 그 증거로써 성경을 내세우고 심지어 그들이 기억하는 많은 문장들이 그들의 입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1:7)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I- XIX-39, A.D. 408

즉 창세기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창세기에 담긴 신학적인 의미를 꼼꼼하게 연구해서 받아들여야지, 문자로 기록된 내용 자체만 어설프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비신자들에게 망신당하고 다른 신자들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라는 뜻. 성경 창세기천지창조와 실제 우주 모델은 엄연히 다르며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을 헛소리 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이런 말을 이미 1,600년 전 사람이고 그 자신이 가장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겼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이미 그 시대부터 크리스천이랍시고 지금의 창조과학자들과 같은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었다는 소리다. 덤으로 아우구스티노는 6일 안에 창조했다는 성경 구절에 대하여 "1일이 우리가 아는 1일과 같지 않을 수 있다. 하느님께는 1일이나 1000년이나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위에서 나오듯 날-시대 창조설은 1일이 문자 그대로 하루가 아니라 긴 지질학적 연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생물학자인 로버트 바커 교수는 창조과학 주장자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읽고 와라" 라고 말한 바 있다.# 참고로 바커 교수는 공룡이 둔한 파충류가 아니라 활발하게 움직이는 온혈동물임을 주장한 '공룡 르네상스'의 주역 중 1명이며, 동시에 에큐메니컬파 크리스천이다.[22] 단 바커는 창조과학 주장자들뿐만 아니라, 신학에 대해 무지하면서 창조과학=그리스도교로 동치시키는 일부 과학자들에게도 똑같이 "너희도 아우구스티누스 읽고 와라"라는 말을 했다.

개신교장 칼뱅도 비슷한 의견을 표명했다. 사회적, 과학적, 문화적으로 담고 있는 성경의 수많은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를 믿느냐 안 믿느냐보다는 성경이 담고 있는 신학적인 진리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세는 학문적으로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상식을 지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식으로 설명했다. 반면 천문학자들은 인간 지성의 예리함이 파헤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큰 노력을 들여 연구한다. 그러한 연구에 반감을 가져선 안 되며, 과학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라면 생각 없이 거부하는 일부 광신도들의 오만으로 비난받을 존재가 아니다.

(중략)

모세가 과학적인 세부사항들을 생략했던 것은, 우리가 그러한 연구를 하지 않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지성인이 아니라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인도하라는 소명을 받았기에, 그들의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고서는 자신의 소명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가 군중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더라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성령께서 모든 이를 위한 학교를 여실 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가르치신다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장 칼뱅, "창세기 주석" (A.D. 1540).
천문학을 배우려거든 성경 말고 딴 데 가서 알아보라.
장 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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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위에 언급한 천주교 말고도, 성공회, 장로교도 창조과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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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창조설의 문제점 정리

아래 여러가지 창조설(혹은 그를 기반으로 한 창조과학)에 대한 문제점을 통합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반박을 하고자 다소 거친 표현들이 적혀있을 수 있느니 참고하고, 비판적으로 읽길 바란다.

1. 종교적인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아니다. 종교는 믿음의 영역인데, 그걸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23]. 개인의 종교적 믿음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입증시켜보려는 시도자체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나, 이런 시도의 결말은 6번 문단에 설명되어 있듯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들만 취사선택하는 체리피킹이 되기 아주 쉽다[24]. 애초에 이런 연구자가 연구자의 윤리를 준수한 (데이터조작 금지 등) 실험과 결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결과들을 얻어내면 그가 쿨하게 믿음을 버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상상해보자.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던가 하는 것은 질책당할 행위가 아니다. 또 굳이 종교를 통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갈구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가 꼭 객관적인 진리일 필요는 없다 [25]. 과학자들도 과학이 각자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기 때문에 열심히 연구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주관이 객관의 영역과 연구윤리를 침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느날 자신이 기독교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신이 모두 앞에 관측 가능하게 나타나 자신과 성경의 발언에 대해 성경무오설적 혹 축자영감설적 관점에 입각해 직접 입증 해보일 것이 아닌 이상 근본주의 개신교의 믿음에 대해 세속에게까지 객관으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실 자신의 믿음이 주관이 아니라 객관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일 것이다). 사족으로 이런 보수근본주의 개신교의 행보가 더 더욱 망신인 이유는 하다 못해 신앙-정치적 이유로 그 스스로가 그렇게 증오하는 북한마저 근래들어 그간 자기 지도자들에게 해오던 황당한 우상화-신격화적 표현들을 문자주의적 의미를 벗어나 비유로 설명변증하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최악이라 여기는 북한마저도 더 이상 쓰지 않는 방식의 선전[26]을 스스로 나서서 당당하게 "(특히 객관적) 진리"라 선포 및 주장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이런 창조설자들의 종교적 믿음의 객관적 영역에 대한 침투에서 나오는 문제는 2번 항목의 타당성 부족 문제로 이어진다.

2. 창조설자들을 제외하고 창조과학을 도입해야 할 타당성이나 개연성에 공감하는 사람은 없다.
창조설자의 종교를 믿지 않는 세속 혹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많은 자연현상이 그 종교를 통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이 되고 있는데다, 재현성의 신뢰도까지도 충분히 검증이 되어 다양한 응용과학들의 꽃으로까지 피워낸 자연의 작동원리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이제와서 굳이 종교의 시각을 통해서 보아야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하게 개연성과 타당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27]. 이는 라플라스가 굳이 신을 가정하지 않아도 자신에겐 과학적 저술이 가능하다고 나폴레옹에게 했던 발언의 태도와 같다 [28]. 이런 개연성과 타당성의 부재는 3번항목의 문제로 이어진다.

3. 그래서 창조과학이 진화론 및 "반창조"적 자연과학들에 기반을 둔 기존의 응용과학들에 어떤 대체 학술 기반을 제공 할 수 있는가? (또는 어떤 재현성 신뢰도 높은 예측을 할 수 있는가?)
순수/기초/자연과학이 충분히 발달해 검증된 재현성 신뢰도를 쌓고 나면 종종 응용과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전물리학의 역학이 여러 공학들이 성립될 수 있게 학문적 기반을 제공했다면, 진화론은 생물학의 응용과학인 의학, 수의학, 농경학, 생태/환경공학/보호학 등에 제공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들이 된다. 예로 집단내의 유전병이나 사랑니 같은 퇴화기관, 가축이나 반려동물들의 종 개량 및 유지 보수, 멸종위기종의 유전적 다양성 같은 주제도 있으며; 2022년 현재도 진행중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에 여러 바이러스 변이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진화론은 바이러스의 변이 패턴에 대해서 논의를 하며 우리가 해볼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의 시도가 가능케 하는 학술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 분야에선 진화 및 유전적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의 최적해를 찾아내는 발상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모든 기초 자연과학이 응용과학의 기반이 될 수 있어야만 유효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창조과학이 자신을 진화론과 그를 교차검증하는 학문들의 대체제로 주장하고 싶어하는 만큼, 창조과학이 사실이라면 현재 창조과학이 반대를 하고 있는 학문들에 기반을 두고있는 응용과학들을 위해 대신 제공 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체 기반들이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코로나가 인류의 죄를 향한 신의 심판이라는 말망언이나 안나오면 다행일 것이다.
창조과학이 기존의 과학보다 신뢰도 높고 재현성 좋은 예측력[29]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기존의 과학은 더 이상 없어도 될 것이다. 단지 창조과학이 예측 한다는 게 "신 마음 내키는대로"라는 식이 될 것이 뻔한 것 뿐이다 [30]. 이런식의 예측은 창조과학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심지어 다른 종교들이라도 할 수 있는 예측이다. 엿장수 맘대로 이런 학술적으로 책임을 질 수 없는 발언들의 난립은 4번 항목의 전문성의 부재와도 이어진다.

4. 전문성이 전혀 없다.
과학이론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전문성을 가지고 제대로 해야한다. 여기서 "전문성이 없다"는 것의 뜻은 해당 전공/학부/교수 밑에서 정식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한 적이 없으므로 권위나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식이라면 융합학문이나 새로 생기고 있는 학술 분야의 학회에 논문을 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성이란 학술적 정통성이나 명성, 명문대 졸업 같은 자격이 아닌 학술적 엄밀함을 말하는 것이다.
학술적 엄밀함이란 쉽게 말해 이때까지 이 학문의 학자들이 무엇을 해왔고, 지금 학회의 흐름은 이것인데,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까지 학자들이 쌓아왔던 학술적 전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해서 학술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대답이나 반박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을 말한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나 비전공자가 어떤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단지 검증된 학교에서 그 학문을 정식으로 공부 및 연구를 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 그런 엄밀한 논의를 전개 할 수 있는 역량을 뒷받침하는 성적이나 검증된 연구경험 및 실적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을 뿐이고, 학술적으로 까고 까이는 교차검증과 피어 리뷰에서 논문이 채택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을 뿐이다. 요구되는 엄밀함을 보여줄 능력이 있으니깐. 하지만 창조설이나 창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치고 자신들의 논문을 통해 이런 학술적 엄밀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안보이며, 그 대신 5번 항목에서 이야기 할 신자와 대중을 위한 쇼맨쉽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기존 과학이론을 단순화하거나 창조설의 이야기가 맞아 보이게끔 취사선택하거나 왜곡해 사용하는 일도 밥먹듯이 한다.

그리고 설사 앞서 언급한 학술적 엄밀함의 측면을 떠나 소위 전공/학부 같은 정통성이나 자격의 (말했듯 아주 무의미 한건 아니므로) 측면에서 따져 본다 한더라도, 창조설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관련 과학분야를 전공하거나 관련 과학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굳이 창조설을 입증하겠다면 성경에 있는 내용부터 과학적으로 증명해야하므로 지질학, 고생물학, 천문학, 천체물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야 그나마 신자들과 대중에게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31]. 하지만 이들 내부엔 저 4개의 전공을 가진 과학자들은 전혀 없으며, 설령 비슷한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세부 전공이 다른 케이스를 볼 수 있다[32]. 그나마 이런 경우라면 다른 전공 지식도 대학교에서 배웠기에 어느정도라도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케이스도 앞의 것보단 비율이 다소 높을 뿐, 비율상으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참고로 이들 중에선 전자공학, 기계공학, 의학 등 여기에 상관이 거의 없거나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자기 전공 분야의 지식은 전개가 가능한 학문[33]을 전공을 한 (응용)과학자들도 많고, 심지어 변호사 같은 인문학 계열도 있다. 이 현상이 반복되다보니 해외에선 심지어 기계, 전자공학자들과 창조설의 상관관계에 대해 비꼬는 Salem Hypothesis 라는 가설도 있다. 과학이 워낙 거대한 학문이다보니 자기 분야의 유사과학은 잘 아는 전문가들이 옆동네의 유사과학은 잘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같은 전문성의 부재는 5번 항목의 쇼맨쉽 난립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5. 창조설을 연구한다는 과학자들이 학술적 연구성과는 보여주지 않고, 신자와 대중을 위한 쇼맨쉽으로 점철되어있다.
과학자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그가 제안한 가설을 재현가능한 실험들을 통해 신뢰도를 강화시켜 더 예측력과 재현성의 신뢰도가 높은 이론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즉 그가 제시하는 가설은 그 가설을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실험방법을 통해서 그 가설의 입증을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라는 1차원 축 위에서 수치화 할 수 있을수록 모범적 과학적 방법론의 사례로 여겨진다. 물론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 맞길 바라기는 하겠지만, 틀린다 한들 거기에서도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나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 과학자라 한들 가장 기본은 이 과정과 결과물을 자신의 논문을 통해 엄밀하게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창조설자들은 이런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한 것이 없다. 이는 1번에서 이미 언급했듯 창조설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34]. 창조과학은 썰은 많으나 엄밀한 전문성이 담긴 논문은 찾기가 훨씬 어렵다 없다. 이에 대한 반론이라는 게 미주크리스천신문 - 왜 창조과학자의 주장은 학술지에 없을까?의 경우 처럼 "세속 학회에는 진화론자들이 장악해 창조과학 논문이 출판되지 못하게 검열한다"는 식으로 표현이 되어있는 주장들이 태반이다 [* 사족으로 해당 기사의 다른 주 논변을 반박 하자면,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전자의 지식을 실험과학(experimental science)이라 부르고 후자의 지식을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 혹은 기원과학(origin science)라고 부른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관찰과 실험이 불가능한 역사과학이다. 실험과학에 대해서는 창조과학자들이건 진화론 과학자들이건 별 이견이 없다. 사실을 다루기 때문에 어떤 이론의 사실 여부를 현재 혹은 내일 실험을 통해서 확인(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실험과학적인 내용은 모든 과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게 된다."
라고 발언 한 곳인데, 그들만의 임의의 방식으로 진화론을 소위 "역사과학"으로 분류하여 거부하는 논리로 쓰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우리는 우리가 직접 목격 혹 기억하지 못하는 가장 어릴 적 기억의 이전의 모든 역사와 사건들까지 거부하는 논리로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은 사탄의 간계 이런 논리는 유아론과 같이 말 자체로써는 타당할 수 있어보이나 그렇다고 별 다른 대책이 나오는 것도 아닌 논변들과 별 다르지 않다. 역사, 혹 역사 이전의 것들을 탐구하는데에도 과학이 사용될 수 있는 이유는 과학이 말하는 자연법칙에 대해 깔려 있는 거대한 전제, 즉: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과거, 현재, 미래에도 같은 규칙을 가지고 일어날(났을) 것이다"라는 전제 위에서 전개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이 전제가 틀렸다는 걸 의심 할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을 정도로 예측/재현성의 신뢰도가 지난 몇백년간 역사(역설적이게도)를 통해 충분히 검증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해당 칼럼의 투고자의 주장대로라면 과학은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데 밖에 유효할 수 없는 것이다. 국과수 의문의 1패 이런 유아론에 가까운 논리를 관철하고 있으니 수 많은 고생물의 화석이나 오랜세월 당대의 화학적 특성들을 담아온 빙하나 지층들조차 "하나님이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갖다 놓으신 것이다" 같은 주장으로 반박하는 시늉만 해줘도 아멘과 할렐루야 박수갈채를 그리고 헌금 받는 곳이 창조과학인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같은 이유로 성경조차도 부정 못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연구와 논문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해 나가기는 커녕, 이들이 창조설을 "변증"하는 행적들을 보면 과학적 논의에 자신이 기여하는 학술적 성과는 없고 적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마침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서도 논문은 안보이고 게시판을 통해 "기존 과학의 이러이러한것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라는 비판이 태반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비판이 제대로 된것도 아니다 [* 예를들면 한국창조과학회 - 지구의 나이는 몇 살? 이라는 2004년부터 올라와 있는 게시판글이다. 여기서 첫번째 주장 으로 {{{#!wiki style="margin:1em"
 "첫째는 초기조건이다. 즉 조사하고자 하는 암석 속에 얼마만큼의 우라늄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라늄의 초기의 양을 알 수 없으면 반감기를 통한 연대측정은 무의미한 것이다."}}} 는 주장을 하는데, 이 주장이 틀린 이유는 여기서 언급된 초기조건은 생전 살아있던 생물이었던 시료 속에 생물이 죽은 후에도 오랜시간 붕괴가 거의 되지 않을 안정적인 동위원소들의 양과, 죽은 후에 붕괴가 시작되어 비율이 시간에 따라 반감하는 불안정한 방사성 동위원소의 비율을 통해서 유추될 수 있는 값이기 때문이다. 예로 이 시료에 안정적인 동위원소가 이만큼 남아있고 불안정한 동위원소는 요만큼 남아있는데, 시료가 살아 있을 때는 통계적으로 이러한 비율±오차이니 반감기를 따라 계산하면 사후 몇백만년±오차쯤 지났을거라는 계산을 하는 식이다. 해당 주장에서는 그런 비율을 통한 유추의 과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오히려 과학자가 성경과 기독교를 부정하는 정치종교적 아젠다라도 있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듯이 호소한다 너 자신을 알라. 자세한건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을 참고. 두번째 주장 에서 나오는 닫힌계 (closed system) 와 열린계 (open system) 에 대한 설명도 완전히 엉터리다. 원문은
"둘째는 이 방법이 가능하려면 지구가 닫힌 계(Closed System)여야 한다. 닫힌계라는 것은 지구가 생성된 후에 변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는 창조된 이후로 화산폭발,지진,대홍수 등등을 겪으면서 심한 풍화작용을 받아왔습니다. 반감기를 계산하려면 풍화된 암석이 아니라 풍화 받지 않은 신선한 암석을 사용해야 하는데, 현재 지구의 대부분은 심한 지각변동과 심한 풍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지구가 닫힌계가 아니라 열린계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구의 상태(열린계)에서는 붕괴속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
인데, 열역학적으로 닫힌계라는 것의 정의는 계(여기선 지구)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계와 인접한 계 (우주) 사이에 에너지의 교환이 일어나도 물질의 교환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열린계라는 것은 물질의 교환과 에너지 둘다 인접한계와 교환이 가능한 되는 계를 말한다. 허나 이 저자가 말하는 화산폭발, 지진, 대홍수 등은 지구라는 열역학 계가 열렸(open)냐 닫혔(closed)느냐 또는 고립(isolated)되었느냐와 큰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 자연현상들은 지구 밖 우주공간과의 에너지 물질 교환 보다(물론 태양의 기여를 완전 빼놓을 수는 없다)는 대부분 지구라는 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의 이야기다. 설령 고립계라고 한들 저자의 "지구가 생성된 후에 변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계가 변하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구체적으로 지구계의 어떤 수치/속성/상태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보다시피 용어와 발언에 엄밀함이나 책임감이 떨어져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인 식이다. 이런식의 변증은 종교에서나 통할 법한 화법이다. ]. 설파자 자기 자신이 그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하는 건지조차 의문이다. 이런 비판들에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과학적 용어/개념, 예제들에 대한 학술 논문은 커녕 대중과학매체에 대한 레퍼런스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반지성주의적인 신자들과 대중을 설득시키는게 목표이기 때문인지 과학 용어/정의를 심각하게 단순화 (특히 신앙에 '위험한' 부분들) 시키거나 왜곡해 설명하는 것이 태반이다. 비판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비판을 하는 시늉만 조금 해줘도 마치 다윗(창조설 혹 창조과학)과 골리앗(과학) 사이의 의로운 진리의 싸움이라도 목격 했다는 듯 신앙심이 고조되는 신자가 많은 것이 근본주의에 경도된 개신교 교회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6. 그릇된 탐구 과정을 따르기 때문에 과학 이론이라 부를 수 없다.
앞서 말한 걸 다 제쳐두고라도 가장 결정적인 항목이다. 여기서 그릇된 탐구 과정이라는 것은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종교인들이 오해하지 않길 바람은 과학적 방법이란 무슨 과학자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는 교리나 신앙고백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대게 데카르트와 뉴턴 시절 쯤의 계몽시대부터 축적되온 자연을 법칙을 알아내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쌓여오던 성공과 실패사례, 노하우와 성찰, 논리와 메타논의들의 정수를 추려내 체계적인 철학으로 정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35]. 이런 과학의 연구방법론들을 사용해서 지금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학의 산물들 – 응용과학 – 즉, 당신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통신, 의학 등 과거 초강대국들의 황제들조차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현대문명의 혜택들을 만들어내는 법을 알아내고 이룩해내게 도와준 어마어마한 실적을 생각해보면, 과학적 방법을 맹목적인 교리나 신앙고백으로 여기는 것이 오히려 부당한 것이다 [36].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적 방법론이 과학철학적 성찰을 통해 개선이 되거나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과학적 방법론의 기여도가 무가치하다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과학적 방법의 특징 중 하나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를 지지하는 증거들만 골라 취사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연구자가 자신의 가설이 맞길 바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당연한 바램이나, 그 가설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물증들을 취사선택하는 등의 연구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 가설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내는 단계까지는 귀납적인 추측(일종의 결론)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나, 그 추측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떨어지는지, 통계적으로 신뢰도가 얼마나 되는지 등의 가설에 대한 입증/반증여부는 자연에 대한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들을 분석(대체로 통계적인)해서 결정하며, 연구자 자신조차도 결과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런면에서 이 과정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귀납적인 가설에 대해 일종의 연역적인 피드백을 얻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7].
자연으로부터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또는 그 반대더라도) 성공적으로 이행한 실험내용과 가설은 학회에 발표된다. 그리고 그 연구 과정을 재현하려는 시도들이 다른 학자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현성이 떨어진다면 그 가설은 이론으로 격상되는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현성이 좋다면 이론이 되는데에 좋은 첫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 이후에는 이 실험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들로 가설을 실험해보는 시도들이 나올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설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더 높아질수도 있을 것이며, 추후에는 이론으로 격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격상된 이론이 틀렸다는 결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있거나 지지하는 근거들이 쌓이면 그 이론은 버려지게 되거나 그 반례들까지 실험으로 포괄 가능한 이론으로 보강되게 된다 [38] [39].
반면 창조설 및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전부 다 실제 일어난 일이다" 라는 결론을 정해 놓는다. 그리고 이 결론이 부정되면 자신의 신앙이 무너지기에 이 결론은 어떻게든 참이여야만 하는 것이다 [40]. 그렇기에 이 연구자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자신의 결론에 기존 과학개념들이 맞(는 것처럼 보이)도록 짜집기를 해넣을 수 밖에 없다. 즉 반증 불가능, 혹 절대 반증이 되면 안되는 결론답정너을 정해놓고서 가설/이론인 것 마냥 부르는 것이기에 정직한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는 연구자의 이해상충 혹은 이해충돌이라고 해석할 여지까지도 있으며, 꼭 과학적 방법론이나 연구 윤리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왜 치팅인지 납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앞서 말했듯 창조설자들은 학술적으로 자신이 기여하는 것은 없으면서 적을 비판만 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식이다. 창조설에 관련된 모순이 있어도 슬쩍 넘어가거나 책임감 없는 궤변[41]들로 떼워넣고, 진화론을 지지하는것으로 여기는 소위 "위험한 이론들"의 "허점"들만 집요히 찾아낸다. 근거A를 다른 근거들과 같이 보거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특정이론에 적합 하지 않지만 근거A만 따로 보면 그 특정이론에 적합해 보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42]. 창조설자들은 이를 이용한다. 수많은 과학 개념이나 연구 결과 중에 창조설자들은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어 보이면 그 개념을 창조설의 근거로 제시한다. 일명 체리 피킹이라고 한다. 체리피킹에 대한 설명
마지막으로, 창조설자에게는 자신의 설에 모순이 있어도 그 간극에 신으로 떼워 넣으면 그만이고, 자신이 무너뜨린 "위험한 이론"들의 부재로 공백이 생기던 말던 또 다시 기독교의 신으로 떼워넣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간편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43]가 따로 없다. 이런식으로 정립한 창조과학이란 물건으로 무엇을 신뢰성있고 재현성있게 예측가능하며, 무슨 응용과학을 발달시켜서 실제 상황에 적용하고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9. 세계 동향

9.1. 미국

1925년, 제대로 못 배운 정치인들이 나치처럼 우성 인종에 대한 설명을 곡해한 결과 벌어진 스코프스 재판으로 인해 40여 년간 테네시주 교육계에서는 진화론이 퇴출되었다. 종교계의 입김이 워낙 큰 나라인 만큼 교육 과정에서 진화론의 재도입은 한동안 지지부진했으나, 1951년 스푸트니크 쇼크로 인해 커다란 안보 위기가 발생하고 과학/공학 인력 확충의 필요성이 종교계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하게 대두되면서 진화론은 대다수의 생물학 교과서에 다시 수록되게 되었다. 4개의 주가 끝까지 버텼으나, 1987년 에드워드-아귈라드 재판에서 미국 대법원은 정교 분리 원칙 위반을 이유로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였다. 물론 신학대학교 같은 곳까지는 터치하지 않고, 공공교육기관에서 역사, 과학이랍시고 기독교계열 창조설을 사실인양 포장해서 약을 파는 속여 가르치는 것을 못하게 한 것. [44] 당시 대법원은 창조설 교육을 "과학으로 위장해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려는 시도"로 판단해서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인종/다민족/다종교 국가인 미국은 특정 종교의 교리를 옹호하거나 보조하는 형태의 가설이 발표될 경우 특정 민족/종교의 세력을 확대시키려는 움직임으로 판단해서 제지하곤 한다. 아무리 기독교가 미국에서 세력을 떨쳐도 여기까지 건드리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특정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지적설계설이 만들어졌지만, 야훼를 지적 설계자라는 것으로 바꾸었을 뿐,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이란 조소를 받으며 위법 판결을 받는다.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교회 연합의 높은 지지를 받던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이에 대한 소송을 걸었는데 자료부터 주장까지 신의 뜻이라는 말을 주장해서 패소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소 직전까지 자신들은 창조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뒤엎는 문서가 발견돼서 패소했다. 이 재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자.

지적 설계를 주장한 교회 연합과 신의 뜻을 주장한 펜실베니아 주의 재판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 재판에 참가한 과학자와 재판의 내용을 접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는 패러디 종교가 만들어 지게 된다.

또한 2006년, 교회 연합이 창조설을 가르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부결되었고, 교회 연합은 이에 반박 재판까지 벌였으나 3심 모두 기각되었다. 그러나 남부(텍사스, 플로리다 등등) 보수 대학들이 아직도 가르치고 있으며, 밥 존스, 리버티, 펜서콜라에서 성행하고 있다. 창조론 기반의 자연사 박물관은 미국이 원조다. Creation Museum이라 해서 몇 군데 있는데, 특히 텍사스의 칼 보(Carl Baugh)가 운영하는 박물관은 발자국 유물을 어마어마하게 위조하기로 유명하다. 어쨌거나 위의 학교를 나오면 학기당 한 번씩 무료로 갈 수 있다고 한다.

2014년 미국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창조설을 믿는 사람이 42%, 유신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3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졸자에 한해서는 양쪽 모두 27%에 그쳤다. #합치면 반이 넘는데? 그나마 현역 과학자 수준까지 올라가면 창조설 1%, 유신론적 진화론 7% 정도로 양쪽합쳐 한자리 숫자로 떨어지긴 한다.#

2015년에는 이러한 창조설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정리한 도표가 사이언스지에 직접 공개된 바 있으며, 이것으로 계통수까지 그려졌다.

미국은 생각보다 강력한 개신교 국가이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기도 한만큼 개인 의사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지켜지는데, 여전히 보수 기독교적 사고가 만연한 소위 "바이블벨트" 지역에서는 (주로 미국 중남부) 사립학교에서 창조론만 과학으로 가르쳐도 주 정부가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공립학교에서는 창조론만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될 지 몰라도, 사립 학교의 경우는 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을 때 커리큘럼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커리큘럼을 선택할 때 대표적인 침례교 베이스 출판사인 "아베카 (Abeka)" 를 선택하게 되면 과학, 역사의 영역에서 창조론만이 유일한 진리로 교육된다. 진화론에 반감을 가진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공립학교에서 자퇴시키고 보내거나, 아예 홈스쿨링을 시키는 경우 주로 이용하는 교재다.

하지만 어떤 성향이든 일반 대학을 가고싶다면 정상적인 진화론을 공부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미국의 수많은 명문대와 주립대는 현대 과학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렇게 창조론 교육을 받고 온 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신학대학이 있는 하버드 대학교조차도 현대 과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하고 있을 것을 필수적으로 요구할 정도다.[45] 특히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고등학교 출신자들을 입시과정에서 모조리 퇴짜를 먹이기도 했는데, 이에 창조론자들이 반발하면서 입시과정이 정당하지 않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소송전까지 갔으나, 캘리포니아 법정에서는 현대과학 이론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학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대학 측의 정당한 권리라는 이유로 캘리포니아 대학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당 사건을 다룬 블로그 포스트

9.2. 유럽

2007년 유럽의회 의원총회(PACE)는 47개 회원국의 공립학교에서 과학 수업시간에 창조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표결했다. PACE 측은 "종교적인 이유로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며 "이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인권도 위협할 수 있다." 고 밝혔다.

2009년 영국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51%가 "진화론이 생명체 탄생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중요한 단계에 '설계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46]에 동의했다. 40%는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나머지 9%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신이 1만 년 이내의 어느 시점에 우주를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진실로 믿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32%가 '믿는다'고 답했고, 60%는 '믿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8%는 '모른다'고 답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영국인들이 과학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나타내는 설문조사라고 평가하였다.

다만 유럽의 기독교는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와는 달리 진화론과 다투려는 경향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유럽의 기독교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거치면서 자연 연구는 과학에 맡기고 우리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만 집중하자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20세기에도 이어져서 20세기 기독교 신학이 실존주의적인 성향을 띄게 된 원인이 되었다. 어찌 보면 스티븐 제이 굴드의 NOMA 개념과 비슷하게 과학은 과학의 언어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경향이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고 볼수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서로 담 쌓고 지내면 발전이 없다고 해서 과감하게 진화론 등을 수용하는 측도 있긴 하다.

9.3. 중동 및 이슬람권

이슬람권에서 진화론과 창조설에 대한 의견은 학자마다 이견이 있다. 사실 의외로 기독교권보다는 이슬람권에서 성직자나 학자들이 진화론을 적대시하는 비율이 훨씬 적은 편이다. 근본주의자들 역시 진화론을 주 타겟으로 공격하는 일은 썩 많은 편은 아닌데, 개신교 근본주의자와 가톨릭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것이 차이가 있듯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역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권도 중등교육과 고등교육 과정에서 서구와 똑같이 수학과 과학을 배운다. 그러기에 우수한 인재들이 서구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종교 교육은 따로 하지만, IS나 탈레반 같은 사이비 막장이 아닌 이상 국력과도 관련이 되어 있는 과학을 안 가르칠리가 없다. 따라서 진화론을 대충이나마 배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신정국가인 이란 학교 과정에서도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한다 한편 세속주의 국가인 터키에서는 터키 독립전쟁 이후 쭉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었으나 2017년 교과서에서 삭제한다고 밝혔다. #기사.

일반 무슬림 대중 역시 진화론과 창조설을 받아들이는 의견이 갈린다. 일반 대중은 창조설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처럼 진화론을 적대한다는 의식을 명확하게 하고 창조설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교육을 꾸란으로 받았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면이 크다. 상당수의 이슬람권 국가들은 소수 엘리트를 제외하면 보통교육이 잘 완비되어 있지 않고 평균적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통계에 따르면 무슬림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비율은 개신교인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비율보다 낮지만, 복음주의 계열[47] 기독교인들보다는 높다.

가끔 이슬람 창조설 지지자들과 기독교 계열 창조설 지지자들이 종종 힘을 합치기도 한다.[48]

이슬람에서도 기독교권과 마찬가지로 창조설을 비유로 받아들여한다는 의견이 예전부터 있었다. 찰스 다윈보다 1000년이나 앞서 진화론을 주장한 알 자히즈 라는 신학자도 있었다. 사실 꾸란성경보다 훨씬 뒤에 (성경의 영향을 받아)성립되었다.[49] 구약성경의 창세기가 대체로 기원전 400~1500년 정도에 성립되었다는 설들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꾸란은 구약성경의 창세기보다 최소 1000년 이상, 최대 2000년 뒤에야 쓰여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집 방식 자체가 창조부터를 연대기순으로 다루는 성향이 아니다보니 성경에 비해 과학과 충돌할 여지가 훨씬 적은 편이다.

1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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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60년대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 집필 규정에는 창조설이 들어갈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재를 걸어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활발한 포교 활동을 하던 교회들이 창조설을 주장하였고, 이를 아니꼽게 본 당대의 지식인들이 훗날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관직에 오르면서 금지시켰다는 설이 지지를 받고 있다[50].

1970년대 중반, 일부 미션스쿨계열의 고등학교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냥 무시되었다.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되어 계속해서 창조설을 퍼뜨려 왔으며, 2009년 5월 창조과학회에서는 창조설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법규의 삭제를 요청하는 헌법소원을 준비했지만, 이들의 주장은 무참히 씹혔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과서 진화론 개정추진회 출범.

창조과학 콘서트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자. 대략 '창조설이 옳아요. 왜냐하면 사실이니까요.'로 시작해서 '왜 사실이냐고요? 하느님이 말씀하셨으니까요.'로 전개되고 '하느님이 왜 옳냐고요? 사실이니까요.'로 끝난다. 게다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화석이 원숭이의 화석으로 "밝혀졌다"고 말하는 오류까지 저지른다. 아래 도표를 참고하자.[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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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진화론을 옳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대략 60% 정도. 원본 글처럼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에서 나온 것이라면 2009년의 조사 결과로,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가톨릭[52]개신교의 차이가 인상적이다. 사실 불교 쪽도 의외로 비율이 낮은데, 그건 불교 쪽에서 창조론을 만든 게 아니라,불교는 불교적으로 별로 중요치 않아서 그럴 확률이 높다.[53], 종교 없음인 경우도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라서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오히려 가톨릭은 교황청이 진화론을 인정했고 진화론을 권장하기 때문에 불교와 무종교보다 높게 나온다. 즉 사실상 개신교 쪽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셈이다.

근래에 들어서 일부 개신교계 선교단체에서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인정하려는 듯한 추세를 보이는데 그 이유인즉슨 사범대 자연과학계열 학생들의 집단 반발 때문이라는 아주아주 신빙성 있어보이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54] 요즘 창조과학 세미나에서는 '창조설만 맞는다고 하진 않아요. 하지만 진화론과 같은 레벨의 가설적 이론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에 초점을 맞춰서 강의를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잘못된 발언이지만(아예 레벨 자체가 다르다) 인식 변화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추세 말고도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에 비판적인 시각이 한국 기독교 내에도 제법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장대익, 신재식, 김윤성의 "종교전쟁"을 참조하기 바란다. 특히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히트 이후로 무신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의 궤변이 도킨스의 무신론을 불렀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유신론적 진화론, 혹은 진화론적 유신론이 대안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기 때문에 창조과학 협회 측에서는 유신론적 진화론이나 진화론적 유신론도 결국 진화론에 불과하다고 어떻게든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라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되는 한국 창조과학 협회의 창조과학 탐사에서 진화론적 유신론도 결국 진화론이며 현실과 타협한 매우 잘못된 이론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쨌든 2017년 기준의 대세는 기독교에서도 진화론을 인정하는 추세이나 한국에서는 아직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세간의 인식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편.

기독교에서 만든 신문인 국민일보는 창간 초기에 지속적으로 창조설을 밀었다. 심지어 정근모 박사까지도 비슷한 글을 올렸으니... 앞서 말한 여러 논문들이나 이론도 국민일보에서 한두 번 정도 다루었다. 90년대 이후로는 미션 섹션에 단순히 신앙이나 QT 선교 관련 기사만 실어주고 창조설이나 환빠, 뉴에이지 비판 주장은 없어진 상태이다. 하지만 2018년,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가짜뉴스를 인용해 다시 창조설을 주장하는 황당한 행동을 시작했다. 해당 뉴스는 완전 가짜뉴스로 밝혀진 상황.[55]

크리스천투데이에서도 창조설을 민다.

2015년 8월 11일, 연세대학교에서 2학기에 창조과학 수업을 개설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학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1학점 짜리 교양으로, 수업을 담당할 교수는 전기공학 전공자이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진화론도 빅뱅 이론도 모두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며 누가 본 것도 아니므로[56]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수업 내용은 생명의 출현, 종(種)의 기원, 노아의 홍수, 우주의 기원, 공룡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의 계획서에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전의 장로교 계열 4년제 대학교인 한남대학교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에 기초한 창조과학 교양과목을 진행한다.

그리고 2017년 3월 기준으로 부산의 고신대학교에서 정병갑 교수가 창조과학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 중임이 확인되었다

포항의 한동대학교에서는 교양 필수 과목으로 '창조와 진화'나 '기독교 세계관'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둘 모두 창조과학을 다루며 진화론을 부정한다. 그 외의 종교 과목에서는 교수의 강의 스타일에 따라 정도나 비중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같다.

2017년 들어 문재인 정부의 첫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인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였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2017년 8월 25일에 이사직을 사임하고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의 자기 기고 글을 삭제했다. 그전에 역시 문재인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첫 장관인 유영민도 창조론자 논란이 있자 청문회에서 자신이 창조과학론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25일 네이버-JTBC뉴스룸 비하인드 뉴스 종교관 논란 …다시 등장한 '창조론'
[기자] 첫 번째 키워드는 < 다시 등장한 '창조론' >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지명이 됐는데요. 박 후보자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앵커] 한국창조과학회. 낯선 시청자분들도 계실 텐데 어떤 단체인지 간단히 설명을 해 주시죠.
[기자] 설명드리면 그러니까 진화론을 부정하면서 과학을 통해서 성서에 등장하는 창조론을 증명하고자 하는 학회입니다. 그래서 박 후보자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이렇게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모든 분야에 성경적인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지난달에 임명된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같은 논란이 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유 장관은 "자신은 창조과학론자가 아니다. 그리고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명을 해서 논란이 잠재워졌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박 후보자의 과거 이런 활동들 청와대에서도 미리 알고 있었겠죠.
[기자] 그렇다고 합니다. 오늘 청와대에서 "임명 전에 알고 있었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그러면서 종교가 공직자의 임명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종교관이 만약에 문제가 된다면 청문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본인의 해명을 듣는 게 맞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 후보자의 비주류 과학에 대한 신념이 새로운 기술을 다루는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냐, 이런 지적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좀 커지니까 박성진 후보자가 오늘 이사직을 사임했습니다.
[앵커] 창조과학회 이사직을 사임했다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제까지 이렇게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기고글도 삭제가 된 상태고요.
대한민국 공군 공군교육사령부 의 교회는 아직도 창조론을 주장한다고 한다. 훈련병들에게 신의 발자국,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따위 같은 창조과학을 응호하는 책을 배포하기도 하며, 훈련병, 교육생들 앞에서 진화생물학을 비방하며 창조론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

10.1. 관련 인물

가나다순, 확인된 프로필 중심

강석일 :
강현수 :
권영헌 :
권진혁 : 영남대 물리학과 KAIST 물리학과 이학박사
권택운 : 육군종합군수학교 교수
권혁상 : KASIT 신소재공학과 교수
길소희 :
길원평 :
김경례 :
김경태 :
김광 :
김기봉 : 기상청
김동수 : 한국재료연구원
김만복 :
김명현 :
김병훈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성경적 창조론 프로젝트 디렉터
김성현 : 건국대 시스템생명특성학과
김영길 :
김오현 :
김원석 :
김정욱 :
김정한 :
김정훈 :
김종배 :
김준곤 : 목사, 창조과학회설립자
김학유 :
김해리 :
김형길 :
김홍석 : KC대학교 교육목사
남수우 :
노정구 :
노희천 :
마윤정 :
민성기 :
박상진 :
박성진 :
박재원 : 서울대 원자핵공학 박사
박은조 :
박창성 :
박형진 :
백석원 :
백행운 :
백현주 :
서병선 :
손기철 :
손봉호 :
송만석 :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신현길 :
양승훈 :
오경숙 :
우상두 :
원동연 :
유병우 :
유영민 :
유재원 :
이경호 :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이광진 :
이기은 :
이동권 :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 공학박사, 지오스캔 이사
이동원 :
이병수 : 경인여대 보건의료관리과
이병호 :
이승엽 :
이웅상 : 명지대
이은일 :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이은호 :
이재만 :
이재영 :
이재훈 :
이정구 :
이정옥 :
임번삼 : 고려대 미생물학 농학박사
임용철 :
장근식 :
장순흥 :
전창진 :
정계현 :
정대균 :
정명균 :
정병갑  :
정선호 : 건국대 시스템생명특성학과
정성수 :
정우성 :
정창균 :
조덕영 :
조진호 :
차종순 :
최동진 :
최승철 :
최용준 :
최윤식 :
최종걸 :
하용조 :
하주현 :
한윤봉 : 전북대 화학공학과 교수
허정윤 : 평택대 피어선신대원에서 철학박사

11. 창조설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적 한마디

  • 찰스 다윈 : 아마 우리는 절대로 어떤 강(Class)의 구성원들 사이의 복잡하게 얽힌 유연 관계를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목표[57]를 눈앞에 두고, 어떤 미지의 창조 계획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느리지만 확실한 진보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58]
  • 리처드 도킨스 : 신앙이란 증거가 없어도(심지어는 반대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맹신; 눈앞에 반박 증거가 보여도 눈을 감고 믿는 것)을 말한다.[59] / 지적설계설에서 거론되는 '지적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
  • 스티븐 호킹 : 우주에 시작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창조주가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모든 것을 완전히 품고 있으며, 우주에 경계선도 가장자리도 없다면,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가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창조주의 자리가 어디일까?
  • 토마스 헨리 헉슬리 : 나는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는 사실보다[60]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더욱 수치스럽습니다.
  • 정재승 :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단지 종교적 선택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과학적 성취를 부정하는 '반과학적인 태도를 지녔다'는 뜻이다.
  • 이정모[61] : 창조론을 믿어도 된다. 창조과학자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신앙을 과학이라고 우기면 안 된다. 신앙은 신앙이고 과학은 과학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성서의 말씀은 신앙과 과학의 문제에도 유효하다. 과학은 신앙을 넘보지 않는다. 신앙도 과학을 넘보지 말고 각자 자기 영역을 지키며 착하게 살자.

11.1. 창조과학의 도구로 창조과학 반박하기

진화생물학 문서 참조.

12. 관련 작품

13. 관련 문서

창조설이 커리큘럼에 정식으로 포함된 강의를 포함하는 대학교의 경우 전공필수, 전공선택, 교양필수 수준에서 가르치는 경우에만 추가하기로 하자. 자유선택으로 들어가는 교양과목의 경우 과목이나 강사 충원이 굉장히 유동적이므로 등재를 자제할 것.

[1] 겉으로 보면 진화론을 까고 창조설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자의 확실성 없는 증거는 확률이 가장 높고, 뒷받침되는 증거가 가장 많은 증거와 동의어인 반면 후자인 경우는 맹목적인 신앙, 믿음과 동의어이다. 즉 이걸 쉽게 바꾸면, "과학은 확률이 가장 높고 뒷받침되는 증거가 충분한 증거들의 집합체인 반면, 창조설은 단지 맹목적인 신앙, 믿음의 집합체다."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확실성을 맹목적인 신앙, 믿음으로 바꾸면 된다. 과학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증거로 주장하는데 창조설은 증거가 아니라 맹목적인 믿음으로 주장한다는 이야기. 참고로 이 말은 과학은 증거가 있어야 발전되는 학문이라는 중요한 사실도 담겨져 있다.[2] Science and Creationism. Oxford University Press. p. 9.[3] 보통 이 문서의 내용을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위키에서는 둘을 구별하고 있다. 창조론은 종교 교리를, 창조설은 사이비 과학 이론을 말하는 것으로 쓰인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 후술.[4] 애당초 신의 존재하심을 증명할 수 있으면 신앙을 '믿음'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음'이란 확실하지 못하지만 그러하다고 맡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5] 이론이 법칙이 되기 전 단계라는 글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창조설자들이 진화론에 어떻게든 흠집을 내 보기 위해 주구장창 우려먹는 논리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이론 문서 참조[6] 즉, 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종교적 교리를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 과학 자체가 아니다.[7] 더 정확히는 성경에 나오는 창세 이후 인류의 계보나 예수의 족보 등에 나오는 사람들의 나이를 더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조금씩 다르다는 함정.[8] 예를 들어 젊은 지구 창조설을 주장하다가 늑대→개 같은 자료를 가져오면 "그건 소진화일 뿐이라능! 대진화를 보여달라능!"을 외친다. 6천 년(노아의 방주가 있었으므로 더 짧다.)은 그 사람들이 말하는 소진화도 불가능한 짧은 시간인 건 중요하지 않다.[9] 그리고 유신론자인 과학자들이 자기 시간 할애해서 창조과학의 오류를 지적하면 이에 대한 타당한 반론은커녕 곧 그 과학자의 신앙을 공격하는 형태의 비난이 쏟아진다. SNS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러니 과학자들은 굳이 창조과학에 관해 언급할 가치를 못느끼고,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스스로 고립된다. 욕설만 없다 뿐이지 호의로 다가오는 상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방하고 상처주는 행태를 보노라면 보는 이가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10] 강건일,'진화론 창조론:논쟁의 이해',참과학,2009,p76-78[11] 폴 파이어아벤트의 주장을 다원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12]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하는 게 있는데, '현재 반례가 제시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어떤 이론에 대해 현재까지 (다행히도) 반례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반례 발견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 아닌 한,(이론과 모든 경우가 완전히 완성되어 더 이상 가능한 모든 반증이 틀렸다는 게 증명되어 완성되는 경우도 포함해서) 그 이론은 과학이다. 예컨대 지동설은 현재까지 반례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반례가 영원히 발견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즉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진 않다. 따라서 지동설은 반증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고, 그러므로 과학이다.사실 지동설의 경우는 이미 반례가 있다.그 반례는 목성으로 목성과 태양 사이의 공통 질량 중심이 태양 밖에 있기 때문에 목성은 태양을 공전하지 않는다.[13] 과학철학에서 명제의 반증 가능성은 해당 명제가 과학적(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칼 포퍼의 주장으로 인해 특히 유명해진 반증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하나, 현실적으로 과학적 명제를 분간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현장의 과학자들은 사실 과학철학자들처럼 그리 과학 여부에 대해 엄격하게 따지지는 않고, 논리실증주의 내지는 이런 반증주의적 입장을 막연히 따를 뿐이다.[14] 다만,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론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종교적 방법이지 과학은 아니며, 애초에 과학인 체 하지 않았으므로 유사과학 역시 아니다.[15] 물론 여기서 참일 수도 있다는 것은 내가 통 속의 뇌일 수도 있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담론이다. 즉, 얼마나 믿을 만 한가는 또다른 문제라는 것.[16] 그러다보니 창조과학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대부분 진화론 비판에만 몰두해 있고(그나마 그 비판도 틀린 것 투성이다),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 자체에 대한 검증/반증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고 할만한 것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설령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진화론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창조설이 옳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17] 이들이 과학에 의존하지 않으면 신앙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믿음이 부족한 건지, 이미 약속된 규칙이나 개념 등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야훼의 영광을 추구할 정도로 광신적인 것인지는 판단에 맞긴다.[18] 물론 어디까지가 진보냐 보수냐라는 것이 애매하고 상대적인 문제라서, 근본주의자들이 보기에는 그 사람들도 좌파, 자유주의 신학, 해방신학으로 보일 수도 있다.[19] 한 명 적극 지지하는 구약학자가 있긴 있다[20] 이런 상황에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뒤엎는다며, 진화론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부실한 창조과학을 들이대고 있으니, 해당 영역의 과학자들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 커뮤니티가 아닌, 공평한 링 위에서는 이미 창조과학은 진화론의 상대가 될만한 이론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입장에서 진화론에 대해 비판을 하는 건 언제든 환영이지만, 어떤 주장을 펼치려면 최소한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학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주류 이론을 무시하는 건 전혀 옳지 못하다.[21] 크리스트교에 호의를 가지고 접근했다가, 창세기 처음부터 과학이 밝혀놓은 사실들과 잘 맞지 않는 구절들에 막혀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더 첨언하자면, 창세기 1-2장을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경외를 표현한 고대 히브리인들의 찬미시라고 가볍게 갈무리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고대의 다른 종교 문헌들에도 이런 종류의 창조에 대한 찬미시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조에 대한 경외가 배제된 종교는 없다시피 하며, 경전의 첫머리를 창조에 대한 찬미시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구조이기도 하다.[22] 여담으로 쥬라기 공원 2에 등장하는 고생물학자 로버트 버크의 모델이기도 하다.[23] 물론 과거 인간이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엔 우리가 과학으로 알고 있는 자연의 작동방식도 철학의 형이상학의 범주에 머물러있었다. 일례로 우리가 아는 과학을 예전에는 자연철학이라고 불러 서술한 서적이 많았다. 하지만 르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계몽시대 이후 과학적 방법론이 발달하면서 자연이 그리 이해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신이 마음내키는대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닌 변하지 않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비로소 자연이 형이하학의 범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과 신의 창조라는 것은 그 신이란 존재가 직접 모두 앞에 관측가능한 방법으로 나타나 소통하고 입증시키지 않는 이상 입증도 반증도 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특히나 신은 그 신자들에 의해 언제나 인간이 모르는 미지의 것들이나 메타 중의 가장 메타 영역에 배치되오던 그 특성 상, 기존에 신이 담당하던 메타의 영역을 형이하의 범주로 가지고 내려와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들 종교인은 그 것에 대한 또 다른 메타에 호소하여 다시 신의 권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재귀함수[24] 사실 현대 과학의 시초가 중세의 기독교 사회 속에 태어나 너무 당연하게 모태부터 기독교인일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자연철학 및 과학자들을 통해 발달이 시작된 공로를 생각해보면 아예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자연철학, 과학자들의 많은 사고방식과 관심영역은 애초에 교회가 아직 딱히 생각을 해보지 않았거나 기독교인으로써 이단사상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연구자체는 용납되는 식의 회색지대의 영역인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인 예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적 사고는 전통 및 정통적인 교회의 사고라 보기 힘들며, 엄밀히 말해선 이단적 사고라는 기독교 교리적 분석이 많다 # #. 이들이 애초에 공로를 세울 수 있었던 이유가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데카르트의 <<제 1철학에 관한 성찰>>데카르트의 악마에서 보이는 인식론적 확실성에 대한 고민과 의심)를 가지고 그런 영역(소위 박사학위 레벨의 영역)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라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대의 근본주의 개신교의 반지성주의적 태도와 비교하는 것은 이들이 추구한 학문과 진리 그 자체(결과적으로 기독교적 '진리'를 뒷받침 하건말건)에 대한 열정에 대한 모욕이다. 이들의 진리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태도는 기독교 사회에서 성장한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진리가 정말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진리라면 제 아무리 '금기'에 대한 의심을 하더라도 여전히 진리로 남을 것"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성질에 대한 믿음에 더 가깝다 할 수 있어보인다.[25] 예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반드시 객관적인 진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26] 보수 및 근본주의 계열 개신교 언론들이 북한에 대해 꾸준히 집중조명, 비판하는 면들을 관찰해봤다면 그들의 북한에 대한 가장 큰 반감 중 하나가 지도자의 우상화 및 신격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27]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과학이라고 불리는 피땀흘려 신뢰도를 쌓아 겨우 일구어 놓은 다 된 밥에 이제와서 종교가 착한"과학"이니 창조"과학"이니 하며 숟가락을 올리는 행위다.[28] 사족으로, 혹자는 라플라스의 악마를 떠올리며 라플라스가 가졌던 "신을 배제하고도 설명할 수 있는 자연"의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에 라플라스의 악마에 한계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걸 신이 증명되었다거나 라플라스의 생각이 틀렸다라는 식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근본주의 개신교 외에는 사실상 없다. 라플라스의 악마에 담긴 아이디어는 그 한계가 있으나마 지금까지도 온갖 수학 및 과학분야에서 연구하는 역학계들의 유한요소법수치해석의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다.[29] (1) 기상청의 기상예보도 최선을 다해 계산은 하지만 항상 맞지는 않는다.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비가 올 확률이 50% 50%이라는 무의미한 확률을 제공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며, 항상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는 기상 이벤트에 60% 40%같은 최소한의 의미와 책임감이 담긴 "편향된" 확률을 붙여서 제공하려고 노력 한다. (2) 많은 산업이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부품, 상품들은 모두 원자단위까지 정확히 같은 규격을 맞출 수 없지만 적어도 ±오차 같이 개런티할 수 있는 (규격, 수명, 품질 등) 범위 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오차범위만큼 품질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대게 더 작은 오차를 보장하는데에는 들어가는 돈이나 기술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30] 당신이 A라는 사람의 행동을 예측 한다고 해봤자 A는 당신이 말한 반대로 행동하면 그만이지만, 당신의 가설이 "A 마음 내키는대로"였다면 A가 어떻게 행동하던 당신의 가설은 항상 참이 되듯 말이다.[31] 자세한 건 정보적 약자의 2번 문단 참고[32] 대표적으로 같은 생물학전공인데, 유전공학, 면역학등의 다른 세부 전공을 가지고 있는 경우[33] 예를들어 의사라 유전학은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서 "소진화만 인정하고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경우[34] 창조설을 과학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논변이 어느 순간까지 가면 결국에는 신을 불러들여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것에 신에 대한 서사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고대부터 인간이 늘 해오던 일이다.[35] 일례로 과학(Science)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부터가 "way of knowing" #, 즉 "(자연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키고 있다.[36] 그렇다고 해서 과학만능주의에 주화입마 하자는 말도 아니다.[37] 정확히 같은 실험조건을 재현한다면 자연은 거짓말 하지 않고 항상 같은 결과를 내놓을 (혹은 결정할) 것이라는 점에서[38] 오히려 이론이 폐기되지 않고 고전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고전역학이 상대성이론이 나온 뒤에는 엄밀히 말해서는 비상대론의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만 맞는 반쪽짜리 이론이 되었지만 일상의 비상대론적인 상황의 공학에서는 여전히 쓸 수 있을만큼 충분히 신뢰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겠다.[39] 이를두고 종종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한데 과학은 어제 했던 말을 다음날이 되면 말을 바꾼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라도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비판이다.[40] 좋은 예시로, 미국의 창조설 개신교 근본주의 단체 Answers in Genesis의 회장 켄 햄과 현재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의 어린시절 과학교육 프로그램 빌 나이 아저씨의 과학이야기 진행자로 유명한 빌 나이(한국의 김영만 아저씨나 그 이상의 위상을 생각하면 되겠다)의 창조설 vs 진화론 토론 영상 중 시청자들과의 Q&A 코너에서의 답변이 있다. 시청자의 질문으로 "만약에 당신의 생각을 (상대방의 입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에 각 토론참여자의 답변을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빌 나이는 "증거입니다" 라고 답변하는 반면 켄 햄은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한다. 이걸 두고 해외에서는 아예 밈화가 되어있는 상태이다.[41] 워낙 애드혹 논변을 남발하다보니 다른 창조설자, 변증가, 신학자, 교리, 혹은 심지어 다른 성경구절들의 주장들과 모순이 되던 말던 별 상관이 없다. 어차피 반지성주의에 경도 된 신자들은 그런 디테일들까지 직접 다 찾아 교차검증해 볼 만큼 지적인 부지런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42] 예를들어 조건부확률의 함정 같은 경우들.[43] 보통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문학에서의 이야기의 전개 형식을 말하는 단어지만, 그 형식을 형식논리의 언어로 분석해보면 컴퓨터 과학이나 형식논리수학에서 말하는 자유변수의 성질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식의 지역 문맥의 계산 과정 영향 바깥에서 그 값을 변경 해버리는게 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에 여러 수식의 지역 문맥(혹 스코프)의 의미(보통은 계산 결과)를 전혀 생각도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용적 혹 공학적 관점에서는 수식이나 함수의 계산 따위의 입-출력 재현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결과그리고 엉켜버린 수많은 버그와 부작용를 낳게된다. 더 구체적인 실생활의 예제로, 만약 당신이 프로그래밍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왜 전역변수를 남발하는게 좋지 않은지에 대한 격언은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더 경험이 있는 프로그래머라면 이 부분이 왜 명령형 언어나 절차적 언어적 사고에 비교해 함수형 언어적 사고의 장점이 부각되는 부분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44] 물론 사립교육기관에선 뭘 가르치건 불법은 아니지만 교육 시스템의 인정을 받으려면 제대로 된 과학/역사를 가르쳐야 한다[45] 지잡대/외국을 보면 알겠지만, 미국지잡대는 많고 비명문대 출신에 대한 차별은 극심하다. 즉, 자기가 사는 주의 네임드 대학(그러니까 주 내의 명문대) 정도라면 진화론을 포함한 현대 과학 이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입시는 꿈도 꿀 수 없다는 소리다. 앞서 커리큘럼에서 창조론을 가르친다는 남부 지역 대학들은 현지 주민들에게도 듣보잡 지잡대 취급받는다. 개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패트리어트 바이블 대학교다.[46] 창조설, 지적설계설, 유신진화론을 모두 포함.[47] 근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중도 보수적인 신학을 지닌 대형 교단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48] 세속주의자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진화론 반대를 위해 연대하는 것을 싫어하고 다문화주의를 위해 연대하는 것을 좋아하겠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다문화주의를 위해 연대하는 것을 싫어하고 진화론 반대를 위해 연대하는 것을 좋아한다(...).[49] 물론 일부 무슬림들은 부정할 수도 있으나, 종교학, 역사학적으로는 이것이 정설이다.[50] 사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종교 근본주의를 극도로 경계하는 풍토가 강하다. 조선 초의 개국공신들 중 한 사람인 정도전불씨잡변이라는 책을 통해 불교 교리의 모순을 미친듯이 깐 바 있으며, 가톨릭이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한 18세기 이전에 17세기의 한 유학자가 가톨릭의 교리와 신약 성서의 내용을 소개한 책인 천주실의를 구해다 읽고는 기독교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철두철미하게 까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래서 굳이 서구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아니어도, 창조설같은 허황된 얘기가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51] 사실 도표에서 '진화론을 믿는 정도'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진화론은 믿음체계가 아니라 이해하고 관찰하는 학문이기 때문. 따라서 제목을 '진화론을 인정하는 정도' 혹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다.[52] 참고로 교황청에서 진화론을 인정했다(!)[53] 애초에 불교는 신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러한 존재도 있다고 인정은 하지만, 그러한 신들도 궁극적으로는 (부처와 달리)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이 세상의 번뇌에 얽매인 존재들로 보기 때문에, 그러한 신적인 존재들에 대해 굳이 매달리고 보채고 해봤자 결국 허망할 뿐이니 그러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 차라리 무신론에 더 가깝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54] 의외로 신빙성이 있는게, 자연과학계열 중 진화론과 연관되지 않는 과목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물리교육과 계열도 진화론과 어느정도 연결고리가 있다.[55] 국민일보의 가짜뉴스, 그리고 이를 비판한 뉴스 앤 조이의 기사. 해당 논문 저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일보의 글은 완전한 가짜뉴스로 판명되었다[56]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역사는 다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논리는 신 자체의 존재를 공격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예:누가 신을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신이 존재함?[57] 공통 조상으로부터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을 통해 생물이 분화해온 계통수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58] 한국 기독교에서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 찰스 다윈을 종교인으로 아는 사람이 적지않은데 사후 공개된 편지와 자서전에서 자신이 신앙을 포기한 불가지론자임을 명확하게 밝혔다.[59] 그런데 이쪽은 목사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도 예수도마에게 말했다. "증거없이 믿는 놈이 더 훌륭하다."라고. 즉, 완전히 똑같은 방법이 한쪽에서는 비난의 말이 되고 한쪽에서는 정론이 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애초에 창조설 지지자들과 과학적인 패러다임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희한한 것은, 창조설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거의 100%의 확률로 화를 낸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먼저 자기들은 과학을 믿지 않는다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나?[60] 여기서 진화론에 대해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데, 절대 진화론에선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원숭이와 인간(호모 사피엔스)이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토마스가 잘 모르고 말한 게 아니라 창조설 주장자들의 오해를 비꼰 것.[61] 참고로 이 사람은 위 사람들과는 달리 개신교 신자다.[62] 지금은 강의가 없어진듯 하고 다른 이름으로 바뀐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