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0 21:30:34

폴란드 인민 공화국

폴란드의 역사 (Historia Pol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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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조약 (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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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니아는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프라하의 봄을 유혈 진압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로 1968년 9월 13일에 탈퇴.

파일:낫질망치질_2.png 소련의 위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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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인민 공화국
Polska Rzeczpospolita Ludowa
파일:폴란드 국기.png파일:폴란드 인민공화국 국장.png
국기 국장[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Poland_1956-1990.svg.png
1944년[2] ~ 1989년
위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정치체제 일당제, 공산주의, 군정(1981~1983)
국가원수 공산당 서기장
주요 서기장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에드바르트 기에레크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언어 폴란드어
민족 폴란드인
종교 가톨릭[3], 개신교, 정교회
통화 즈워티
성립 이전 폴란드 총독부
주요사건 1944년 설립
1989년 붕괴
붕괴 이후 폴란드 제3공화국

1. 개요2. 형성3. 영토4. 역사5. 사회
5.1. 경제5.2. 교육5.3. 여권신장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에 수립된 공산주의 국가. 소련위성국이였다.

2. 형성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될 무렵 얄타 회담에서의 합의를 통해 연합군은 폴란드에 임시 정부를 세우고 자유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소련의 최고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그렇게 폴란드를 서방의 품에 안기게 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고, 폴란드는 중세 이후로 늘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였다는 민족감정과 제2차 세계 대전 중 흘린 소련군의 피만 생각하더라도...임시 정부의 권력장악을 막고 공산주의자와 소련의 통제 하에 위성국으로 만드는 사업에 주력했다. 이후 1947년의 선거를 통해 80%라는 말도 안되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노동자당을 이끈 볼레스와프 비에루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서 권력을 공고히 하였다.

지지율은 당연히 공권력을 동원한 반대 정당 탄압[4] 및 부정선거를 통해서 이룩한 투표율이었고 일설에 의하면 스탈린 본인이 고른 숫자였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냉전 후 발표된 NKVD의 당시 비밀 보고에 따르면 실제로 노동자당이 얻은 득표율은 대략 50%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에는 노동자당과 사회당이 합당을 선언하며 실질적으로 일당독재체제가 된 데 이어 1952년에는 인민 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며 허울뿐인 공산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런던에 머무르고 있던 폴란드 제2공화국의 망명 정부는 1947년의 선거를 부정선거로 선언하고 폴란드 인민 공화국의 승인을 거부한 채로 1989년 폴란드 제3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런던에 머무른다.

다만 타 공산국가와 비교해볼 때 특이한 점은 있는데 냉전 시기 타 동구권 공산국가에서는 시위로 정권이 변화하는 일이 없었던데 반해[5] 폴란드는 두 차례에 걸쳐서 시위로 정권을 변화시킨 적이 있었고, 그래서 공산권에서는 인민의 힘이 강한 나라로 손꼽혔다. 또한 자유노조가 10년에 걸쳐서 투쟁을 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 또한 타 공산국가였었으면 진압되고도 남았다는 점에서 당대 폴란드 정치의 유연성은 공산권에서 유고슬라비아와 함께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도부 두명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았는데 고무우카는 집권 중반기 이후로 지식인층의 실망을 얻었고, 1960년대 중후반의 경제위기와 1970년의 생필품 가격인상으로 노동자층의 지지마저 상실하여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실각했고, 그 뒤를 이은 기에레크도 초반에 잘 나가는 듯하다가 결국에 외채문제로 인해 경제난에 빠졌고, 자유노조가 결성되는 일까지 벌어지며 쓸쓸히 퇴진했다. 물론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겸 민주화 운동가였던 레흐 바웬사도 결과적으로 고무우카나 기에레크와 크게 상황이 다른건 아니기는 했지만.

3. 영토

새로운 폴란드를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바로 영토 문제였다. 원래 전쟁 당시 폴란드 망명 정부는 전후 동프로이센, 상부 슐레지엔, 그리고 포메른 지방의 일부 국경 지대를 할양받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전후 소련이 폴란드 침공 당시 점령했던 영토를 전후 폴란드에게 돌려준다는 가정 하의 얘기였고 스탈린은 당연히 폴란드 침공 과정에서 차지한 영토들을 다시 내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6] 대신에 독일의 슐레지엔동프로이센 지역을 뺏은 땅에 대한 보상으로 폴란드에게 주려고 했다.
전후 폴란드의 영토변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Curzon_line_en.svg.png
○빨간 영역은 새로 얻은, 이전 나치 독일의 영토.
○검은 영역은 소련에게 빼앗긴 영토.
○연두색으로 변경된 국경선오데르-나이세 선
○파란색으로 변경된 국경선커즌 선.

이 결과 폴란드 인민 공화국은 폴란드 제2 공화국의 영토 중 빌노, 르부프, 브제시치 등 약 17만 8천 km2를 소련에게 잃었으나 독일로부터 동프로이센 절반, 포메른과 슐레지엔 등 약 10만 1천 km2를 할양받아 영토적 손실을 벌충했다. 하지만 소련에게 빼앗긴 영토가 너무 컸으므로 전후 폴란드의 면적은 전쟁 전에 비해 오히려 7만 7천km2 가 줄었다. 잃은 지역에 비해 얻은 지역의 산업기반 등의 가치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땅크기만으로 손실이라고 볼 순 없긴 하나, 이로 인해 생긴 외교적 갈등과 더불어 맘대로 영토를 빼앗고는 자기 맘대로 새로운 땅을 생색내면서 던져주곤 국경을 바꿔버린 스탈린의 행각에 폴란드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또 강제로 동부 폴란드의 고향에서 밀려나 낯선 땅에 정착하게 된 폴란드 사람들은 조만간 공산권과 서방 간에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폴란드 영역이 원래대로 회복될 거라고 생각해 1970년대까지 새로 얻게 된 땅을 개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동부를 잃고 서부를 얻어 전체적으로 서쪽으로 이동한 국경선 덕분에 민족과 국가의 영역은 예전보다 잘 일치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폴란드는 역사상 최초로 단일 민족 국가가 된다. 다만 원래 그 민족이 거기 살아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나치의 대규모 학살과 전후 독일인 추방, 우크라이나인들의 재정착 등 강제적인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게 되어서... 이렇게 새로 바뀐 영토로 인해 추후에 불거진 논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폴란드 영토 논란를 참고.

4. 역사

5. 사회

5.1. 경제


폴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로 전쟁 이전 폴란드의 인구는 3500만 명 정도였으나 종전 후에는 인구가 2400만까지 줄어드는 피해를 입었으며 산업기반도 38% 가량이 파괴되어 버렸다. 이후 소련의 지원 아래 경제를 복구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강력한 공업화 정책과 집단농업화를 감행했다. 초기에는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는 듯 싶었으나 결국 경제성장이 둔화되었고 잦은 반소 시위 아래 경제가 침체되었다. 또 1960년대 후반의 경기침체는 재정적자가 가중화시켰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는 서방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빌리고 경제개방 정책을 시행했고 처음엔 상당한 효과를 내서 경제가 다시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서 1970년대 중반기에 오일 쇼크가 닥쳐오면서 수출이 급속히 악화되는 바람에 경제는 다시 악화되었으며 이 여파는 1990년대까지도 폴란드 경제에 막대한 후유증을 남겼다.

1988년 기준으로 폴란드의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0$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당시의 한국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나 실제 이 수치는 뻥튀기 된 것에 가깝다. 실질적으로 폴란드는 198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따라잡혔던 상태였고 서유럽에 비하면 매우 가난한 국가였다. 사회주의 나라들 가운데 서유럽 수준의 의식주를 향유한 나라들은 소비에트 연방(러시아 SFSR 및 유럽 지역 한정)과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독일 민주 공화국, 헝가리 인민 공화국 뿐이었다.

5.2. 교육

2차 대전 동안 절대다수의 폴란드의 아동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며, 교육을 책임질 만한 지식인들은 나치와 소련에게 살해당하거나 정치적으로 망명을 떠났다. 망명을 떠나 살아남은 사람들도 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 공산주의 이념을 아동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종전 후 폴란드 공산정권은 적극적으로 교육제도 개혁에 나섰다. 그 결과 7년 과정의 초등학교 과정과 4년 과정의 중고등학교 과정이 도입됐으며, 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직업 학교도 폴란드 곳곳에 설립된다. 1970년대의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공교육 제도 도입의 효과로 폴란드 전역에서 문맹률이 대폭 개선됐으며[7] 노동자 사이에서 의무교육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의 비율도 4~5%대로 크게 떨어졌다. 또한 나치에 의해 대부분 파괴당한 대학교도 재건되어 1950년대 말에 이르면 인구 당 대학생의 비율이 전쟁 전보다 3~4배 가량 증가하는 성과를 얻었다.

5.3. 여권신장

마리 퀴리 항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여권이 낮은 국가 중 하나였다.[8] 하지만 공산정권 수립 이후 폴란드에서는 여성들의 권리 신장 및 사회 진출이 급속도로 빨리 이루어지면서 냉전 말기에 이르러서는 서유럽보다도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실례로 1980년대 통계에서 의학, 건설, 공학[9] 등의 분야에서 직업을 갖고 있던 여성들의 비율이 서유럽보다도 높았던 것으로 드러나며 심지어 의학의 경우 여성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1]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는 달리 낫과 망치나 별 등 공산주의를 나타내는 상징이 없는 것이 특징. 물론 국기와 국가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폴란드 제3공화국 국장과의 차이는 왕관이 없다는 것.[2] 영문위키에 따라 임시정부 수립연도 기준이다.[3] 물론 정권에서는 탄압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다수 폴란드인들의 신앙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가톨릭국교는 아니다.[4] 1946년에 모든 우익 정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노동자당과 그 자매 정당만을 합법 정당으로 규정했다. 독일 사민당 지도자 쿠르트 슈마허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공산당에 대해 '저 XX들은 그냥 스탈린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붉은 나치일뿐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따름.[5] 1953년 동독 시위나 1956년 헝가리 항쟁, 1968년 프라하의 봄이 결국 체제자체를 변모시키지 못하고 강제진압되었다.[6] 예외적으로 원래 커즌 선 서쪽에 있던 비아위스토크 지역만은 폴란드에 돌려주었지만 커즌 선 서부에 위치한 리비우는 전통적으로 폴란드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던 도시였음에도 반환하지 않고 그대로 집어삼켜 버렸다.[7] 폴란드 제2공화국이 1919년 수립될 당시 농촌 지역으로만 따지면 70% 가까운 인구가 문맹이었다. 물론 이건 러시아 제국이 의도적으로 폴란드를 우민화시키려고 했던 정책에 따른 결과지만.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피나는 노력 끝에 1937년에는 문맹률이 18%까지 낮아졌다.[8] 물론 폴란드 여성의 대학교 진학을 막았던 것은 폴란드인들의 남성우월적인 태도보다는 당시 폴란드를 통치하던 러시아 제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하겠지만.[9] 느낌이 오겠지만 이 분야는 보통 남초현상이 두드러지는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