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00:35:14

반신론

<rowcolor=#ffffff> 의 존재에 대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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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없다
무신론 반신론 교체신론
무의미
일관적인 정의가 없다 개념 자체가 없다 신은 신일 뿐, 사유도 말할 수도 없다
이그노스티시즘 신학적 비인지주의 무/신론
사건
전지전능하지 않다 부정한 후에 받아들여야 한다
약한 신학 재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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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창조>에서 신을 향한 아담의 손가락을 으로 치환한 패러디
자신을 반신론자라 칭하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영상. 반신론자의 전형이다.
파일:attachment/nogodnomasters.png
"신도 주인도 없다."(출처)[1]

1. 개요2. 구분과 사례3. 비판
3.1. 반론
4. 어록5. 유명한 반신론자
5.1. 가상 매체의 반신론자
6. 관련 문서

1. 개요

반신론(, Antitheism)은 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을 넘어 신의 존재를 반박하는 사상이다. 종종 "신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 뿐",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해 그에 대항하여 맞서 싸울 것"과 같은 발언들을 많이 한다. 무신론이 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라면 반신론은 부재에 더하여 신에 대한 믿음의 반대, 인간의 주체성 및 자율성의 강조까지 포함한다. 반신론은 신의 존재는 당연히 없고 신이라는 개념의 설정에도 극렬히 반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반신론자 중 과격한 자들은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거기서 침묵하면서 세속주의종교의 자유 따위를 주장할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신 없는 세상을 살아가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역사와 의식 안에 뿌리깊게 박힌 신에 대한 관념을 모조리 삭제하고 그 자리에 인간의 이성을 넣으라는 말이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만 무신론에서 비롯된 의심이 완성되며, 인간 정신의 해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반신론자들은 무신론의 신념을 가진 사람은 실은 모두 반신론자라고 주장하는데, 무신론자들이 박해의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숨기고 자기기만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이 종교에 의하여 철저하게 지배당하던 시절에 무신론의 신념을 밝히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고 근대를 거쳐 세속주의가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무신론자들은 여전히 과격분자 또는 불순분자로 치부되며 차별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도 통계에 의하면 세계인의 15% 가량이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고 응답했으나 이들은 그 중 실질적인 무신론자의 수가 더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 개념의 부정은 현대에 와서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위험한 주제이며, 그러한 논제에서 무신론의 결론을 내놓은 사람들은 사회와의 분쟁을 두려워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며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 뒤에 숨어 버리는 방식을 택했다는 거다. 반신론은 그런 것들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명백하게 반-반신론적인 무신론자도 존재하므로 이런 주장도 비약일 수 있다. 일부 무신론자는 진심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줄 신적 존재와 사후세계 등이 '있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는 동일하지만 신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보다는 현실은 가혹한 것이니 받아들이자고 주장한다.

반면 유신론자이지만 그 신이 악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악신론에 해당한다.

2. 구분과 사례

이처럼 반신론은 무신론의 하위 집합이자 전투적/적극적 무신론과도 현실적으로 많이 겹친다. 반종교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으며, 반신론이 신학적, 신론적,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아이디어를 공격한다면 반종교주의는 의례와 제도, 교리로서의 종교를 공격한다는 차이가 있다. 정치적으로 국가 무신론주의와도 간혹 겹친다. 한편 현대의 신무신론 운동이 기본 베이스로 깔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현대의 신무신론 운동은 이름만 무신론이지 반종교, 반신론과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다.

대표적 인물로는 역시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신무신론의 여러 유명 논객들이 거론되고 있다. 반신론 자체의 역사가 결코 짧지는 않지만, 반신론이 사회적이고 대중적인 호응을 그나마 본격적으로 얻게 된 것은 분명히 현대의 일이다.

유신론적 반신론도 존재한다. 유신론적 반신론은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신을 인간 처지에서는 타도해야 할 대상이자 만악의 근원 정도쯤의 존재로 보거나, 인간에 대한 신의 간섭에 휘둘리지 말고 저항하여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다. 여기까지 가면 사실상 악신론(Dystheism)/혐신론(Misotheism/Maltheism)과도 맥락이 통하게 된다. 종교 중에서는 불교에서도 교파에 따라 다소 유신론적 반신론의 요소가 있다고 풀이할 여지가 있다. 우선 불교는 교리적 측면에서 인격을 갖춘 천신의 존재를 긍정하지만, 천신[2]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가정은 천신의 착각일 뿐, 알고 보면 그릇된 것으로 본다. 또한 무속에서 섬기는 신에게 조종받지 않도록 호신주나 진언을 외우게 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3]

조금 더 알기 쉽게 무신론과 구분하자면, 무신론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거고, 반신론은 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거다. 무신론이 신을 있지도 않은 존재라고 보고 그걸 섬기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 본다면, 반신론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든 간에 그딴 걸 인류가 섬길 필요가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아나키즘과 여러모로 뜻을 같이 하기도 한다. 당장 이항목의 그림의 문구인 'NO GODS, NO MASTERS'는 아나키즘의 상징 문구이다. 다만 아나키즘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서 종교적 아나키즘도 존재할 정도라 아나키스트라고 해서 모두가 반신론자는 아니고, 반대로 반신론자라고 해서 모두가 아나키스트도 아니다.

3. 비판

일반적으로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신과 종교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종교가 개인과 사회에 이로운 작용을 할 수 있기에[4] 긍정적인 점도 있다고 여기는 무신론자들도 많다. 하지만 반신론자들은 아예 '신은 나쁜 존재다', 또는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신을 믿는 건 족쇄를 차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면서 건전하게 신을 믿는 사람들까지 모욕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무신론이나 유신론 중 어느 쪽이든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니 신에 대한 믿음을 강요해서도 안 되지만, 무조건 신을 나쁜 존재라고 비난하거나 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무지한 노예와 같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다만, 정확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반신론자들의 논점은 단순히 '신 자체가 나쁜 존재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마치 근대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이 군주제가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므로(군주 개인이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폐지해야 한다고 본 것처럼, 신도 인간의 삶의 방식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존재라면 그것은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에 그런 신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신 자체에 대한 가치 평가보다는 신과 인간의 관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5] 위에 나온 것처럼 반신론이 아나키즘과 자주 연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단순히 유신론에 대한 비방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반신론을 지지하는 사람도 성향이 제각각이라 조용히 개인적인 신념으로 가질 수 있으며, 다들 대놓고 종교를 비방하거나 남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다니는 부류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반신론은 말 그대로 에 반대하는 사상이므로 그 생각 자체에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가 중요하며, 그 생각을 가진 사람이 타인을 대하는 행동을 지적하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다(만약 그들의 주장 '자체가' 정말 타당하다면, 설령 그것을 강요하더라도 정당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적절하게 반신론을 비판하려면, 이 사상의 핵심 명제인 "신의 존재 또는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에 근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부터 지적하는 것이 맞다. 반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 종교가 사회적 억압의 도구가 되거나 인간을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사례가 분명히 있지만[6], 그렇다고 아예 신이 없어야만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가 부족한 비약 또는 도그마에 불과하다. 즉 반신론에는 종교나 신에 대한 일방적 공격만 있을 뿐, 오히려 종교가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자유를 얻게 도움으로써 사회 진보에 기여할 수도 있고, 맹목적이지 않고 합리적인 신앙도 가능할 수 있다는 반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반신론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뚜렷한 체계가 있는 사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말이나 글에 나온 단편적인 생각들을 뭉뚱그려 놓은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7]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는 있어도 엄밀함이나 설득력 면에서 부족하며, 세속화된 현대에도 다른 여러 신론에 비하면 인기있는 사상이 아니라고 유신론자들은 주장한다.

3.1. 반론

이에 대해서는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자유를 얻게 도움으로써 사회 진보에 기여'한다는 종교의 공익적인 이득을 주장하는 종교인(및 유신론자)들에게, "그런 공익적인 이득을 반드시 종교, 특히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로써의 신을 상정해야만 얻을 수 있는가?"라는 반론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윤리학이나 인문학, 철학, 도덕법률, 논리과학과 같은 대체제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는 것. 당장 동양 문화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는 "살아있는 동안의 일도 다 모르고 사람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죽은 뒤의 일이나 귀신은 무엇 하러 알려고 하느냐", "귀신은 공경은 해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 "군자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다"와 같이 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존재(신적인 존재)를 상정하여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도 인간 스스로의 지성과 논리를 토대로 하는 가치 판단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윤리와 도덕을 함양하고 교육하려는 노선울 추구하였다. 또한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 역시 열반에 들기 전에 "내가 열반에 들고 나면 나라는 존재를 신격화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법과 진리에 의지하고 너희들끼리 그것을 가지고 토론하고 합의하면서 거기서 나온 결과에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니 마왕이니 하는 영적인 존재도 결국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번뇌에 사로잡혀 윤회를 되풀이해야만 하는 딱한 존재일 뿐이다" 라고 말하여 진리나 도덕을 추구하는데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고, 오히려 유해할수도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물론 공자나 붓다는 신적인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므로 현대의 기준에서 반신론의 정의에 부합하는 주장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것을 당연시하던 당시의 사회상에서 그것에 의지하는 것이 공익적 이득을 얻는데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유해할수도 있음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신적인 존재를 믿어야만 (유신론자 및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공익적 이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그 후 수천년에 걸쳐 발전해온 현대 사회에는 세계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고 그것을 유익하게 활용하도록 해주는 과학, 사회적 규범과 인간의 행동원칙을 제시하는 인문학법률등 기존 종교의 역할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대체제들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비판론자들은 반신론이 '건전하게 신을 믿는 사람들까지 모욕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그대로 뒤집으면 종교 자체를 공격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사례를 보자.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고, 무슬림들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로다"고 말하며, 이는 해당 종교의 교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즉 해당 종교들의 교리에 따르면 그 종교에서 신앙하는 신은 유일하고 전지전능한 창조주이자 만물의 주재자이고, 해당 종교의 교리는 진리이기에 그 종교를 믿는 이에게만 구원의 여지가 있으며, 그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고, 그 잘못된 행위를 하는 이에게는 구원의 여지가 없다.
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지극히 배타적인 교리로써 지극히 폭력적인 태도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위의 소위 '반신론 비판'과 같은 수준에서 문제제기한다면 그런 교리를 내세우는 종교를 믿는 행위 자체(최소한 그 신앙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그 종교를 믿지 않는 타인을 모욕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행위라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종교 자체(종교를 믿고, 그 신앙을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면? 아마 적지 않은 종교인들이 "어떤 교리를 믿는 것은 개인의 신념에 속하는 문제이고, 누구에게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믿을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 믿음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반신론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문제이다. 종교인들에게 (그 교리가 무엇이건) 자신이 원하는 종교와 신을 믿고, 그 신앙을 공공연히 드러낼 권리가 있다면 반신론자들 역시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위험하고 유해하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가지고 공공연히 드러낼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그 권리가 비판받거나 제약받아야 한다면, 그 기준은 누구에게든 동등하고 공정해야지 유독 한쪽에만 엄격하고 가혹해서는 안된다.

이 연장선상에서, 비판론자들은 <반신론의 핵심 명제인 "신의 존재 또는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에 대한 근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반신론의 한계>라고 지적하는데, 이 역시 거꾸로 뒤집으면 그대로 유신론, 특히 종교적 유신론자들에게 치명타로 작용하게 되는 논리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수준에서 유신론의 핵심 명제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신은 존재한다"이며, 따라서 위와 같은 논증 요구를 현존 종교를 신앙하는 종교적 유신론자들에게 적용한다면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도 못하면서 종교를 믿는 것이 종교인들의 한계"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에게 "만약 종교를 믿고 싶다면, 먼저 신의 존재부터 증명하라,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서 종교를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요구인지 생각한다면, 위의 비판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점에서는 해당 <비판론> 자체가 가진 지리멸렬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부분에서는 '반신론자들은 종교인을 모욕해서 상처입히니까 반신론은 나쁘다', '신은 나쁜 존재이고, 신앙을 가지는 것은 유해하다는 반신론의 주장 자체가 폭력적이다' 라는 수준에서 비판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중 전자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 대해 비판이 이뤄져야 할 문제이지 반신론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될 문제가 아니고, 후자는 개인의 신념으로써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비판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는 일이다. 위에서 지적된 대로 이 문제를 종교인들의 문제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간단히 이해 가능한 일이 된다. 일부 광신적 종교인들이 종교를 내세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다닌다고 해서 그것을 종교 자체의 문제라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또한 많은 종교들이 절대적인 진리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추구(또는 신앙)을 포함하는 으뜸가는 가르침을 지향하는 만큼 배타적이고 자기우월성을 주장하는 측면 역시 분명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타자에 대한 일종의 폭력성이 아닌가?

그래서 앞부분의 비판이 가진 문제점과 모순을 인식한 것인지 뒷부분에서는 반신론의 전제 자체를 논박함으로서 비판하겠다는 태도를 취하는데, 진짜 문제는 오히려 이 뒷부분의 시도가 훨씬 더 무모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론(신의 존재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들)에 대한 논쟁에서 각각의 견해들이 가지는 전제 자체를 논증하고 논박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터무니없이 무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좀 비꼬아서 설명하자면, 만약 유신론-무신론 논쟁에서 논쟁이 정말 이 쪽으로 흘러간다면 거기 끼어있던 대부분의 반신론자들은 기뻐서 환호성을 터트릴 것이다. 왜냐하면 '핵심 명제에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유신론자들에게는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 신이 그래서 어떤 신인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증명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반면 무신론자들은 "저는 딱히 신의 부존재를 적극적으로 증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유신론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회의적 불가지론) 라는 편안한 포지션을 취하고 팝콘나쵸를 먹을 수 있다.
이것은 논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이라는 주제 자체가 민감한 주제이면서도 논증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토론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견해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논박하지 말자'는 선을 지켜야 토론이 가능해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비판론을 제기한 이가 왜 반신론에 대해서는 그 선을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선을 안 지키기 시작하면 제일 심하게 타격을 입는 것은 반신론자들의 아치에너미인 종교적 유신론자들인 것이다.

위 비판론의 논리 대부분이 '뒤집으면 그대로 종교 자체를 공격(비판)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어떤 점에서는 해당 비판론 자체가 어느정도는 좋지 않게 전개된 종교 관련 토론, 즉 광신적 입장을 보이는 종교인이 개입한 토론과 비슷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종교의 기반은 논리 보다는 신앙이다. 즉, 대부분의 종교가 가지는 사유체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제가 되는 부분은 굳이 논증을 거치지 않고 '그것을 믿음으로써' 종교가 성립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신의 존재와 그 역사함' 같은 것이 이 핵심적인 전제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다른 이들이 그들의 종교를 존중해준다는 것은 굳이 그런 부분에 대한 논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종교나 신론(신에 대한 관점)에 대한 토론이 건설적으로 진행되려면 많은 경우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굳이 따지지 말고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 받아들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 그런데 종교에 지나치게 경도된 상태로 토론에 임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상대의 핵심 논거에 대해서만' 그 선을 넘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작 그 선을 넘으면 가장 무거운 부담을 지고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종교적 유신론, 그중에서도 특정 종교의 입장을 주장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에게 자신들의 핵심 명제는 '논증이 필요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상대방도 그 선을 넘어올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신론의 핵심적인 전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요구를 자신들의 꽃놀이패로 착각하고 휘두르려 드는 것.
위의 비판론 역시 이와 비슷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애초에 특정 신론의 관점 자체를 비판하여 반박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어이없을정도로 터무니없고 무모한 것이다. '주장 자체가 타당하다면 그것을 강요하더라도 정당한 것이 아니냐'고 쉽게 말하지만 신의 견해에 대한 관점의 정당성, 또는 부당성을 입증해내는 것은 수천년간 어떤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그러니까 특정한 신론 자체에 대한 비판도 성립하기 어려운 것. 그런데 유독 반신론에 대해서는 그런 거대한 위업이 쉽게 가능하다고 믿고 털어주겠다고 덤벼드는데, 그 내용물은 위에서 조목조목 지적되었듯이 조잡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해당 논지를 전개한 이는 자신이 반신론에 들이댄 잣대가 다른 신론(신에 대한 관점과 견해)에도 적용될 수 있고, 그 경우 대부분의 견해들이 성립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4. 어록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이성정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를 가장 결정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인간들을 명실상부한 노예 상태로 이끌 것이다. 인간이 노예 상태로 전락하고 타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신학적인 신에게도, 형이상학적인 신에게도,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이처럼 신비로운 글자 속에서 신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신으로 끝나야 할 것이다. 신을 숭배하길 바라는 사람은 유치한 환상을 품지 말고, 단호히 자신의 자유와 인간성을 포기해야만 한다.

신이 존재하면 인간은 노예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로워야 한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불신한다.

With all due respect, then, to the metaphysicians and religious idealists, philosophers, politicians, or poets: The idea of God implies the abdication of human reason and justice; it is the most decisive negation of human liberty, and necessarily ends in the enslavement of mankind, both in theory and practice.

Unless, then, we desire the enslavement and degradation of mankind, as the Jesuits desire it, as the mômiers, pietists, or Protestant Methodists desire it, we may not, must not make the slightest concession either to the God of theology or to the God of metaphysics. He who, in this mystical alphabet, begins with A will inevitably end with Z; he who desires to worship God must harbor no childish illusions about the matter, but bravely renounce his liberty and humanity.

If God is, man is a slave; now, man can and must be free; then, God does not exist.
I defy anyone whomsoever to avoid this circle; now, therefore, let all choose.
미하일 바쿠닌, 《신과 국가(God and the State)》
Religion has actually convinced people that there's an invisible man living in the sky who watches everything you do, every minute of every day. And the invisible man has a special list of ten things he does not want you to do. And if you do any of these ten things, he has a special place, full of fire and smoke and burning and torture and anguish, where he will send you to live and suffer and burn and choke and scream and cry forever and ever 'til the end of time! But He loves you. He loves you.
He loves you, and He needs money! He always needs money! He's all-powerful, all-perfect, all-knowing, and all-wise, somehow just can't handle money!
종교는 실제로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투명인간이 우리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어. 그리고 이 투명인간은 우리가 하면 안 되는 10가지 목록을 갖고 있지. 만약 우리가 이 중에 하나라도 하면, 우리를 불과 연기와 고문과 고통으로 가득찬 특별한 곳에 보내서 영원히 고통받고 불타고 질식하고 비명지르고 울게 할거야... 그러나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지. 그는 우리를 사랑하셔.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돈이 필요하지! 그는 늘 돈이 필요해!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고, 모든 걸 알고, 현명하기까지 한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돈 문제는 해결을 못해!
조지 칼린
I cannot believe in a God who wants to be praised all the time.
항상 찬양받고 싶어하는 신은 믿지 않겠다.
프리드리히 니체
God is the concept by which we measure our pain
신은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재는 개념이야
존 레논, <God>

5. 유명한 반신론자

5.1. 가상 매체의 반신론자

신 죽이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매우 크다.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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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1] 사실 아나키즘과 연관된 그림이다. 그래서 우측 하단을 보면 아나키즘의 상징 중 하나인 서클 A가 있다.[2] 특히 인격신에 해당하는 타화자재천.[3] 물론 엑소시즘은 기독교에도 존재하지만, 기독교는 더 상위에 위치하는 창조신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으려 한다는 점이 다르다. 불교의 호신주나 보호주는 번뇌에 사로잡힌 귀신에게 정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켜 제 발로 물러가게 하려는 목적이 많다.[4] 물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이비 종교광신도는 제외한다. 사이비 종교는 교주들이 신자들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종교의 형태를 차용한 것이고, 아무리 정상적인 종교 신자라도 광신도가 되면 건전한 신앙관이 아니기에 비판받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건전한 종교와 마음의 평안을 위해 종교를 믿고,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인들을 존중하는 무신론자들도 많다.[5] 물론 신에 대한 가치 평가 때문에 신을 적대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신을 나쁘게 여기는 것과 반신론이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다.[6] 전술한 사이비 종교나 광신도가 대표적인 예시.[7] 아래 유명인 목록에서도 히친스를 제외하면 자신을 직접 반신론자라고 부른 사람은 사실상 없다.[8] 일단은 무신론자로 분류되며 본인도 그렇게 주장하지만, 사상을 하나하나 놓고 보면 단순히 신이 없다는 걸 넘어 신 같은 건 무익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반신론에 더 가깝다. 엄밀히 따지면 이 사람의 책에서 주로 공격하는 대상은 종교라는 체계이므로 반종교이기도 하다[9] 반기독교적 신흥종교인 '사탄 교회'의 창시자[10]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람도 반종교에 가깝다.[11] "신은 죽었다"라는 구절로도 유명하다.[12] 사실 과학자들 중에서도 무신론자가 많이 나오는데 과학만능주의를 외치며 나머지를 불순분자로 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말이 필요없다.[13] 그런데 이 쪽은 신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게 되었으니 저렇게 될 법도 했다. 누가 미쳤다고 신의 지시라고 가족을 죽이는 것도 옳다고 보겠나? 그래서 크레토스가 아브라함의 안티테제라고 한다 게다가 신인 아버지도 자신의 동생을 납치해서 고문했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그를 죽이고 나라까지 파멸시켰다. 그러나 신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수단방법을 안 가려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마구 죽여댔으며, 본의 아니게 친한 이복누이 아테나를 죽이게되었고 신들을 죽인 여파로 세상이 멸망해버렸다. 수백년 후 시점에서는 크레토스 스스로가 자신이 복수 때문에 과한 깽판을 쳤다는 걸 깨달으며 변화해간다. 특히 이 시점의 크레토스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인격이 완성되어 있는 편이다. 물론 전쟁의 신이었지만 모두에게 사랑 받는 선한 신으로 살았던 티르 정도를 제외하면 신을 혐오하는 것은 변함없다.[14] 오랜 숙적인 악마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력자들인 천사마저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배신했다.[15] 생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영혼들은 사후세계에서 신으로 될 수 있다는 '뼈의 전당(Hall of Bones)'이라는 신앙을 믿었으나 사후세계에 뼈의 전당따위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신들에 대한 신앙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사후세계에서 자신의 왕국 '미트나 라크넌(Mitna Rachnun)' 을 세웠다.[16] 그러나 정작 진짜로 신이 사라지자 업무에 치이며 온갖 고생을 다 한 결과 점점 암왕제군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암왕제군 피규어를 충동구매한다거나 하는 극성 빠순이로 각성했다.[17] 사실 이렇게 된 것은 부모님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어린 나이에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뒤 자신도 죽을 고생을 하며 비참하게 살다가 굶어죽을 뻔하는 등, 온갖 험한 꼴을 겪는 과정에서 신의 선함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18] 인간이 신에게서 독립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쐐기 역할을 받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신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신에게 친구를 잃은 탓에 신성 랭크가 떨어질 정도로 신을 싫어하며 신들이 준 쐐기 역할을 거부하고 신대를 끝냈다. 청년기 길가메쉬에 비하면 성격이 괜찮은 꼬마 길가메쉬, 현왕 길가메쉬 역시 신성 랭크가 떨어질 정도로 신을 싫어한다.[19] 타락하기 전의 헤라클레스(Fate 시리즈) 역시 신들에 의해 인생이 뒤틀리고 가족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만들었기에 신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복수심을 접었다.[20] 잔 다르크(Fate 시리즈)를 죽게 내버렸다며 신에게 자신을 벌해보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살해 하는 캐스터로 타락했다. 타락 전 모습인 세이버 클래스로 나온 질 드 레는 대놓고 신을 모독 하진 않지만 싫어 하는 걸 입 밖에 내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걸 보면 속으로는 신에게 반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1] 포세이돈(Fate 시리즈)에게 당한 일을 계기로 신을 혐오하게 되었다. 아예 그런 일이 벌어졌던 범인류사 자체를 혐오해 일반적으로는 소환조차 불가능할 정도.[22] 셈족은 유대인 종족을 이른다. 즉 기독교의 하나님을 죽인 것이다! 다만 사이트 설정상 공식은 없기 때문에, 죽었을 수도, 죽은 사실이 가짜일 수도 있다. 쥐구멍 캐논은 태양신의 죽음 후 발생한 세계관 내 이야기를 다룬다.[23] 올드 월드 시절에는 다른 슬레이어들처럼 조상신들 중 그림니르를 숭배했었으나 에이지 오브 지그마 시점에서 그와 함께 행동하던 동료들이 전원 사망하였는데다 오랜 친구인 펠릭스와 올드 월드에서 그림니르에 의해 강제로 헤어진 것, 정작 자신을 데리고 갔던 그림니르는 혼자 불카트릭스랑 싸우다 동귀어진하는 등 현재 그림니르에 대해 사기꾼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신들을 쓸모없다고 비판할 정도로 신앙이 사라진 상태다.[24] 반신론자들은 신성모독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발언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애초에 반신론 자체가 종교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이다.[25]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반신론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26] 안톤 라베이의 사탄 교회처럼 정말로 악마를 숭배한다기보다는 '사탄'을 에 대항하는 상징적 존재로 해석하는 곳도 존재한다. 즉 기독교의 안티테제적 신흥종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