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0:11:14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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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원3. 사용4. 원문5. 구분법6. 구분법에 대한 논쟁7. 오해8. 신약 시대 이후9. 살인 금지 계명에 대하여
9.1. 전쟁9.2. 사형 제도9.3. 자살9.4. 과실 치사
10. 여담

1. 개요

히브리어:עשרת הדברות
그리스어: ἡ Δεκάλογος(헤 데칼로고스)
라틴어: Decalogus
영어: The Decalogue, The Ten Commandments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10가지 계율이기에 '십계명'으로 불린다. 기독교에서는 이 십계명을 위반한 여부를 가지고 대죄이냐 소죄이냐를 판별하기도 한다. 또한,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이 살았던 족장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문화된 경전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1] 십계명은 '말씀'을 담은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기원

원래 모세가 40일 동안 시나이산에 있으면서 깨끗한 석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서, 기쁘게 들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자기 형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화가 난 모세는 석판을 던져서 깨버렸다. 이후 모세가 자기 형 아론에게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냐고 따지니 아론은 할 말이 궁색해서 사람들이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길래, 금을 가진 사람들에게 청해 을 모아서 불에 던졌더니 금송아지가 나오더라고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했다. 이에 제대로 열받은 모세와 레위인[2]들은 우상을 숭배한 3,000명가량의 사람들을 숙청해 버린다. 그 후에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서 다시 받았다고 한다.

종교적 관점을 제하고 봐도 모세의 행동은 충분히 정당성이 있다. 기껏 고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타락하지 않기 위한 행동 지침)을 곰곰이 생각하며 새겼건만, 그 사이를 참지 못한 백성들이 그새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 숭배를 하고 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제 성서에서는 단순히 석판을 깨고 군사를 모아 우상 숭배자들을 몰살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지만, 영화 십계에선 한술 더 떠,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금송아지에 집어 던지자 금송아지 주변에 있던 땅이 갈라지는 것으로 묘사했다.

3. 사용

원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개신교의 경우 성경을 출판할 때에 따로 발췌하여 부록으로 수록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톨릭 성경에는 부록으로 발췌하진 않고 대신 기도서에 들어있다.[3] 원래 성경 겉표지 안쪽에 십계명을 넣은 이유 자체가 예배 때 외우라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의 보수적인 장로교나 개혁 교회에서는 오전 예배 시작 때 이것을 낭독하며, 흔히 생각하는 사도신경은 저녁 예배 때 낭독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배 순서에서 십계명을 외우는 개신교는 사실 별로 없다.

가톨릭에서도 가톨릭 기도서 내 주요 기도문으로 십계명이 실려 있다.

타 종교에서 비슷한 개념을 들자면, 불교에서 재가인(평신도)이 지켜야 할 규정인 오계가 있을 것이다. 음주를 금하는 것을 제외하고는[4] 오계의 내용은 십계명에서도 비슷한 규정을 찾을 수 있다. 오계 이외에도 팔계, 십계 등도 불교에 있으나 너무 빡세서 잘 안 쓰인다.

4. 원문

파일:external/iampoorandneedy.org/decalogue.jpg

성경에서 모세의 십계명에 대한 직접적 서술을 한 곳은 출애굽기(탈출기)와 신명기다. 밑의 내용은 출애굽기(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명에 대한 구절이다.
1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2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4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에까지 갚는다.[5][6]
6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7]
7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10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11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에 복을 내리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12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하지 못한다.
14 간음하지 못한다.
15 도둑질하지 못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8][9]
(출애굽기 20장 1~17절, 공동번역 성서)

5. 구분법

유대교, 정교회, 대부분의 개신교(성공회 포함)[10] 가톨릭, 일부 개신교(루터교회)[11]
1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마라.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12]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주일을 거룩히 지내라.[13]
4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부모에게 효도하여라.[14][15]
5 부모를 공경하라.사람을 죽이지 마라.
6 살인하지 마라.간음하지 마라.
7 간음하지 마라.도둑질을 하지 마라.
8 도적질 하지 마라.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16]
9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LXX[17] P R[18] T[19] S A C L 본문[20] 출애굽기 신명기
- - (0) 1 - - 1 -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2 6
1 1 1 2 1 1 1 1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3 7
2 2 2 2 1 1 1 1 너희는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4-6 8-10
3 3 3 3 2 2 2 2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7 11
4 4 4 4 3 3 3 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21] 8-11 -
4 4 4 4 3 3 3 3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22] - 12-15
5 5 5 5 4 4 4 4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12 16
6 8 6 6 5 5 5 5 살인하지 못한다. 13 17
7 6 7 7 6 6 6 6 간음하지 못한다. 14 18
8 7 8 8 7 7 7 7 도둑질하지 못한다. 15 19
9 9 9 9 8 8 8 8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16 20
10 10 10 10 9 10 10 9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23] 17a -
10 10 10 10 9 10 10 9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24] - 21b
10 10 10 10 9 9 9 10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못한다. 17b 21a
10 10 10 10 9 10 10 10 네 이웃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17c 21c
- - - - 10 - - - 오늘 내가 명령하는 이 돌들을 그리짐산에 세워라.(Tsedaka) 14c[S] 18c[S]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 볼 때, 사마리아교, 가톨릭, 루터교회의 제1계명이 정교회, 다수 개신교에서는 제1계명과 제2계명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대교에서는 정교회, 다수 개신교의 제1계명을 합치는 대신 서문을 제1계명으로 본다. 반면에 가톨릭과 루터교회의 제9계명과 제10계명이 정교회나 다수 개신교, 유대교에서는 제10계명으로 합쳐져 있다. 필론은 간음을 다른 것보다 앞서서 배치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와 가톨릭은 분리된 계명이 신명기의 순서를 따라 아내인 반면 루터교회는 출애굽기의 순서를 따라 집이다. 사마리아교의 경우 자신들의 토라를 따라 출애굽기 기준 14절[27]을 10계명으로 쓴다.

첫 1~4(가톨릭 및 루터교회에선 1~3)계명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나중에 있는 5~10(4~10)번은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인 도덕규범이다. 특히 앞선 계명들은 인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하느님과 같은 자리(또는 그 위의 위치)에 오를 수 없음을 의미하기에, 훗날 나타난 개념인 메멘토 모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십계명 역시 1등은 항상 하느님이 차지하고 있으니 절대로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살라는 지침이었다.

또한 굳이 유대교,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어도 5~10(4~10)번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높은 확률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살인, 강간, 위증, 절도, 강도는 모두 형법상 죄이며, 간통의 경우 한국에서는 더이상 형법상 죄가 아니지만 민사상으로 여러 가지 불이익이 뒤따른다. 굳이 따지자면, 이혼 시 높은 위자료를 청구받거나 재산 분할에서 큰 불이익을 당하는 등, 다시 말해 이혼을 요구할 권리를 잃는 모든 일을 말한다.[28]

물론 모든 도덕과 법이 항상 지켜지지 않듯, 십계명 또한 심지어 그리스도교 내에서조차도 항상 지켜지지는 않는다. 종교적 해석에 기인하자면, 인간이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날마다 계명들을 어긴다(전도서 7:20, 요한 1서 1:8, 창세기 8:21, 야고보서 1:14, 3:2-8, 시편 19:1–12, 열왕기 상 8:46). 심지어 현대에도 기복신앙에 젖은 몇몇 탐욕스러운 종교인들은 지금도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십계명을 온전히 준수하려는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며, 계명 어기는 것에 대한 여러 성경 구절들은 인간의 영적인 나약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결국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도움 없이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지론.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한두 번은 어길 수밖에 없는 마당에, 대놓고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29]

현대에 있어 가장 무시되고 있는 계명이자, 어찌 보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계명은 다음의 계명이다.
7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는 동아시아에 있는 피휘같은 관념이 있었는데 자기보다 높은 사람의 면전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건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나 가능했다. 문제는 하느님은 누구보다도 높은 존재이고 동시에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이 계명은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도 못 부르고, 적지도 못 하다 보니 이름이 실전되어 버린 것이다.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어서 히브리어로 'יהוה'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신의 이름에서 자음만 기록한 것이다[30]. 이를 라틴어계 문자로 옮기면 YHWH 또는 YHVH가 된다. 적을 때는 자음으로 적었지만, 당시에는 신의 이름을 다들 알고 있었지만, 읽을 때 절대로 부르면 안 되었다. 따라서 모두가 같이 읽을 때는 아도나이(나의 주인, 주님)라 읽게 되었다.

그리스에 전해진 이후에도 철저히 지켜지는데 하느님의 이름은 테트라그람마톤(τετραγράμματον)'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네 글자라는 뜻으로 로마 시대 이후까지 전해진다. 'יהוה', YHWH 또는 YHVH마저도 피휘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처럼 야훼나 여호아를 감히 부르는 사람은 십계명 기준으로는 지옥에 떨어질 범죄자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야훼는 하느님의 이름의 모음자만 모은 것으로 실제로 어떻게 불렀는지는 실전되어 버렸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을 부른 게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계율이라는 이상한 형태로 준수되고 있는 것이다.

6. 구분법에 대한 논쟁

이렇게 구분법이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개신교(감리회, 침례회, 성공회 등)와 정교회에서 쓰는 십계명은 유대교인이자 유대인인 필론이 구분한 십계명을 쓰는 것이며, 가톨릭루터교회아우구스티노가 구분한 십계명을 쓰기 때문이다. 다만 루터교회 소요리 문답에서는 '질투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부분을 십계명 자체에 대한 준수 여부로 해석하고 따로 떼어서 설명해 놓았다. (#) 애초에 10가지의 계명이라고만 전해졌지, 번호가 매겨져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을 장과 절로 구분지은 것도, 십계명에 번호를 붙인 것도 후대의 일이다. 성경 저자는 절대 자신이 쓴 글이 수천 년 많은 이들이 참고하는 '성경'이 될 줄도 몰랐고 장과 절로 자기 글을 토막토막 내놓을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우상 숭배에 대한 논쟁이 좀 크다. 가톨릭에서 제1 계명에 유일신 흠숭과 우상 숭배 금지를 한데 묶은 걸 가지고 일부 근본주의 성향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이 십자고상이나 성상에 대고 기도하는 등 우상 숭배를 하기 위해 (자신들 기준의) 2번째 계명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런 과격파가 아니더라도 반가톨릭 성향의 보수 개신교인들 사이에서도 '가톨릭이 성상을 교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십계명을 조작, 왜곡했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이 현실.

개신교와 유사한 분류법을 택한 정교회는 우상 숭배 관련 내용을 두 번째 계명으로 다룸에도 이콘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는 않는다. 정교회에서 필론식 2계명을 해석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이 링크로 이할 것. 성공회 역시 십계명 분류법은 타 개신교와 비슷함에도 십자고상을 비롯한 여러 형상을 사용한다. [31]

아우구스티노의 구분법에서는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를 굳이 따로 둘 필요가 없다고 봤는데, 이건 앞선 '흠숭'이라는 단어에 이미 '우상 숭배 금지'가 당연히 따라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신교에서 제10항으로 합쳐져 있는 것이 따로 분류되어 있는 까닭은, 아내를 탐내는 것과 재물을 탐내는 것은 탐한다는 것 외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죄악(배우자 ≠ 물건)이기 때문에 객체가 아닌 죄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큰 이유는 다르게 봐야 한다. 그것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하나로 합치다 보니 10계명이 9계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는 내용을 두 개로 분리해서 "남의 아내를 원하지 말라"와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로 구분하게 된 것이다.

본래 초기 가톨릭에서도 필론의 구분법을 쓰고 있었다가 성 아우구스티노가 이 십계명을 재분류하였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 분류로 바꾸게 된 것이다.

한편 가톨릭 측에서는 구약의 성상 금지 규정이 신약에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로 인하여 약화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정교회도 마찬가지이며 십계명에 대해 필론의 구분법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이콘이나 십자고상 목걸이를 잘만 사용한다. 오히려 정교회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구약 시절에는 하느님이 "보면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경고했으나, 예수가 세상에 내려온 이후 하느님은 본 모습을 예수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였으므로 오히려 성화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이단적이라고 본다. 마르틴 루터도 성인들의 통공, 성유물 등 가톨릭의 다른 교리들은 직접 쓴 대요리 문답서에서 대놓고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성화상 사용만큼은 '연약한 신자'들을 위해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교회는 가톨릭식 분류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출애굽기의 십계명에서 이웃의 아내와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말은 한 문장에 나오므로 출애굽기나 신명기나 십계명의 1번부터 10번까지의 번호가 동일하다는 가정하에서는 필론의 구분법이 우세한데, 다른 계명들은 문장 단위로 나눠지는데 마지막 두 계명만 한 문장 안에 들어있는 건 다소 억지스럽기 때문이다.

7. 오해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로, 십계명이 로마서에서 언급되는 인간이 지키기 힘들고, 도리어 인간을 죄로 구속하는 여러 가지 구약 율법들과 동일하며, 인간을 지옥 가게 만드는 법이라는 식의 주장이 있는데, 이는 십계명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설명과 어긋난 주장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따르면, 먼저 구약의 율법을 설명한 해당 로마서의 서술은 구약 율법의 불완전성을 강조하고 '행위'가 아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서술일 뿐, "구약 율법 = 한 놈만 걸려라 식으로 사람들을 엮어서 지옥 가게 하는 법" 식으로 단정 짓는 말이 절대 아니다. 또한, 신학적으로 십계명은 구약의 의식적, 전례적 율법과 구분되는, 신약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도덕법에 들어가는 법이다. 구약 율법의 일부이긴 하나 신약 시대에도 적용되는, 영속적인 법인 것. 또한 신약 시대에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십계명의 일부 가르침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된 것은 사실이나(하단 문단으로), 성경과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은총을 받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회개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일어섬으로서 십계명을 지킬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분명히 강조한다. 즉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르면 십계명은 오히려 믿음과 은총을 통한 준수로 구원의 길을 걷게 하는 법이지, 십계명 = 사람들이 지키지도 못할 법을 만들어 지옥 가게 하는 법이라는 주장은 절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오해로, 안식일에 대한 오해가 있다. 구약 성경의 뿌리인 유대교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하여 쉬지만, 훗날 그리스도교 등에서는 일요일로, 이슬람교에서는 금요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에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 간혹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범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냥 끼워 맞추기일 뿐이고, 정작 원전인 십계명에서조차 정확하게 지정한 요일은 없다. 그저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라'(출 20:8)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32] 따라서 요일이야 어떻든 간에, 일하는 동안에는 근면하게 일하고, 6일 동안 일한 후에는 재충전의 의미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과로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하느님에 봉헌하는 행위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성경에서 이미 '주 6일 근무 제도'를 정착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 여기에 가축들에게도 쉬는 날을 보장해 줘야 한다(출 20:10)고도 확실히 언급되어 있지만, 이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목사는 적다. 실제로는 이 '쉬는 날 보장' 부분이 진짜로 중요한 부분인데도 말이다.

십계명의 한 구절은 인간에게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지시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편협하게 이해하기 쉽다. 신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 자체를 금지한 것으로 말이다.(ex. 영국의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이 만든 영화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중에 '여호와[33]를 함부로 부른 자를 처형하려던 집행관이 "...누구든 여호와라고 말하면..."이라고 했다가 되레 자신이 군중의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 계명의 진정한 의미를 따진다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나 경제적 야심, 개인적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십계명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증오할 때 "신이 그를 심판한다"라고 말하고, 땅이 탐날 때 "신이 저 땅을 원하신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웃과 분쟁이 있거나 그들에게서 땅을 얻고 싶다면, 신은 제외하고 다른 명분을 내세우거나 변호사를 찾는 게 더 합당하다는 것이다.

8. 신약 시대 이후

이후 신약에서는 예수가 등장하여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공동번역, 요한 복음서 13장 34절)"라며 새로운 계명을 주었다. 이는 곧 신, 구약과 전승을 총망라하여 핵심적으로 요약한 계명으로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계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간단히 두 개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라고 정의하였다.[34]

또한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십계명의 기존 규정에 포함되는 계명이라도 더욱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의무 / 다소 완화된 의무 등으로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는 복음서의 가르침에 따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모욕하는 것을 금하는 것도 포함되었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같은 경우는 마찬가지로 복음서에 따라 이성을 보며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을 금지하는 계명이 포함되었다. 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는 계명은 절대다수의 그리스도교 교파는 계명 자체는 유지하되 점차 주일로 변경되었고, 그 빡빡하기로 유명한 안식일 규정 역시 상당히 완화되었다.

9. 살인 금지 계명에 대하여

9.1. 전쟁

당연히 그리스도교 국가 역시도 전쟁이 많이 있고, 이는 사적인 살인과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특히 방어적 목적의 정당방위 전쟁까지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어떤 방어 전쟁이 '정당방위'인지는 고대부터 수많은 신학자들이 고민하고 매달린 주제이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 정당방위의 요건으로는, 중세부터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으로 소위 '정의로운 전쟁' 이론이 통용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쟁론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단순화시켜서 '적법한 권위에 의해서', '정당한 이유로', '올바른 의도로' 수행되는 것만이 '그마나 용인할 수 있는 물리력의 사용이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적법한 권위'는 합법적인 정부를 의미하며, '정당한 이유'는 방어 전쟁과 적의 공격으로 빼앗긴 영토의 수복을 의미한다(Asbridge, 2010).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어감 때문에 수많은 오해를 받고는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전쟁이 용인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세운 것이지, 전쟁을 정당화한 것도 소위 '성전' 개념을 내세운 것도 아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 적용하더라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쟁론은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는 논리다.

그렇기에 1999년에 있었던 이탈리아 가톨릭 군종교구 제1차 시노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당한 전쟁'[35]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은 전쟁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무기 사용에 의존하는 각 경우에 지극히 엄격한 조건들을 부과하는 가르침이다. 교리서에서 상기하듯이
"다음의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즉,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명확하고 심각하며, 계속적이어야 하고,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하며,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하고, 무력의 사용으로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초래되지 않아야 하며, 이러한 상황 판단과 더블어 현대 무기 파괴력 또한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36]

이탈리아 군종교구, 《정의와 평화의 봉사자 -제1차 이탈리아 군종교구 시노드》Sinodo Della Chiesa Ordinariato Militare in Italia 이경상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제559항(=8장 17항)[37]
그리고 잘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쟁을 축복하는 것을 넘어서 누가 봐도 매우 엄격하기 그지없는 제한이다. 다음과 같은 매우 엄격한 제한이야말로, '정당한 전쟁론'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전쟁의 주제에 관하여 교회의 다른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상기한다.
"발생된 피해가 보호하려는 가치보다 더 크다면, 무력을 사용하여 방어하는 것보다 차라리 부당함을 겪는 게 낫다."[38]

이탈리아 군종교구, 《정의와 평화의 봉사자 -제1차 이탈리아 군종교구 시노드》Primo Sinodo Della Chiesa Ordinariato Militare in Italia, 이경상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제560항(=8장 178)[39]

9.2. 사형 제도

현대에 사형 폐지론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교파들은 사형 제도를 사적인 살인과 완전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16세기의 가톨릭 교리서에는 다음과 같이 사형제가 옹호되었고, 수많은 개신교 국가에서도 사형제를 그리스도교와 모순이 없다고 봤다.
또 다른 종류의 합법적 살인은 시민 권력에 속해 있는데, 시민 권력은 생사여탈권을 위임받았고, 이는 죄인을 처벌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합법적이고 현명한 행위이다.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은 살인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살인을 금지하는 이 다섯 번째 계명에 대한 가장 중요한 순종의 행위이다. 계명의 골자는 인간 생명의 보존과 안전이다. 범죄의 정당한 복수자인 시민 권력이 가하는 처벌은 이러한 경향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 폭력을 억압함으로서 생명을 지키기 때문이다. 다윗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나라의 모든 악인들을 아침마다 없애리니 나쁜 짓 하는 자들을 모두 주님의 성읍에서 잘라 내기 위함입니다."(시편 101,8)
트리엔트 로마 교리서(1566)

그러나 동시에, 현대의 사형 폐지론에 목소리를 내는 주요 그룹 중 하나가 그리스도교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위에서 예시로 든 가톨릭의 경우 비교적 최근까지 교리서가 제한적으로 사형을 허용하는 입장이었으나, 현재는 완전한 사형제 반대로 서술이 명시적으로 바뀌었다. 이는 교의가 변한 것도, 개정판이 원판을 반박한 것도 아니며, 오늘날에는 사형에 의존하지 않고도 더 교화에 알맞고 효과적인 형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합법적인 권위(국가)가 통상적인 재판 절차에 따라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비록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부 범죄의 중대성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자 공동선 수호를 위하여 용납되는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사람이 심지어 매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의 존엄성이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국가가 시행하는 형벌 제재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확산되고 있다. 마침내 시민들에게 합당한 보호를 보장하고 동시에 범죄자에게서 그 죄에 대한 속죄의 가능성을 앗아 가지 않는 더욱 효과적인 수감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치며 단호히 전 세계의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하여 노력한다.
『가톨릭 교리서 』제2267항
개신교의 경우 교파마다 입장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 (즉 사형이 사적 살인과 동일시될 수는 없지만,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더 나은 대안이 있으므로)} 사형제를 반대한다. 물론 여전히 사형제를 필수불가결하다고 보는 개신교 신자들도 많이 있다.

9.3. 자살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위 사항의 살인하지 말라는 내용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이 된다. 단, 순교 등의 희생은 자살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가톨릭의 철칙이 되었는데, 십계명 자체에서의 살인 범주에 자살 역시 들어간다고 보는 관점은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이미 마사다 항전 시기의 후기 유대교 등에서도 있었다.

단, 가톨릭에서는 현재 '자살자는 사회에 의한 살인으로 볼 수 있어서, 판단은 하느님이 하실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만 하면 된다.'라는 소극적 스탠스이다.

9.4. 과실 치사

야훼는 부지중의 살인, 즉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타인의 죽음을 초래한 경우에는 사형의 벌을 면제했다. 대신 범인은 당시의 대제사장이 사망할 때까지 야훼가 선정한 '도피성(城)'으로 들어가 그 지역에만 살아야 했고, 피해자의 가족이 도피성에 함부로 들어가 복수하는 것은 금지되었으나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 범인이 도피성을 벗어나면 성 밖에서는 유족이 범인을 죽여도 살인의 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물론 고의 살인은 도피성 제도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야훼는 만약 자신이 선별한 성들로 고의 살인자가 도피한 경우에는 당연히 그를 인도받아 사형하도록 했다.

10. 여담

"I can sum up the ten commandments in ten words: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난 십계명을 열 단어로 요약할 수 있어요.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 맨 프럼 어스[40]
  • 조지 칼린은 더 쌈빡하게 십계명을 "너희는 항상 정직하고 배우자에게 충실해라"와 "살인을 하지 않도록 엄청 노력해 봐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연놈들 빼고"라고 단 2가지로 정리해 놓았다. 그러나 가장 압권은 맨 마지막에 개인적으로 있었으면 하는 계명이라며 말한 "믿고 싶으면 혼자 믿을지어라." #

파일:이집트 시나이 브리검영.jpg
  • 80년대 미국 브리검 영 대학교 학생들이 시나이산으로 비정되는 이집트의 자발 무사에 올라 십계명을 받은 모세 퍼포먼스를 행한 바 있다.
  • 멜 브룩스의 코미디 영화 '세계의 역사'에서는 모세가 원래 15계명을 받았는데 실수로 석판 하나를 깨뜨려서 십계명만 받았다고 둘러댄 것이라고 한다.
  •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이 십계명에서 전설적인 오자를 낸 적이 있었다.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지니라'(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에서 인쇄사의 실수로 'not'을 빼먹어서 간음할지니라(Thou shalt commit adultery)로 잘못 써버린 것. 그 바람에 실수를 저지른 인쇄사는 무거운 액수인 300파운드[41]의 벌금형을 받았고, 해당 판본은 대부분 회수되었다. 약 40여 부 정도가 세상에 남아 있는데, 모두 고가에 거래되는 등 희귀 수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 에반 올마이티의 엔딩 크레딧에는 신이 11번째 계율로 너희는 춤출지어다!(Thou shalt do the dance!)를 선포하자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 클라우드에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여 태블릿에 저장한 최초의 인간이 모세이고, 그 데이터가 십계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클라우드(cloud)는 구름, 즉 하느님의 인도를 상징하고, 태블릿(tablet)은 태블릿 컴퓨터가 나오기 전부터 판때기(성경에서는 석판)를 의미했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스갯소리.
  • 과거 메탈슬러그 3의 보스 중 하나인 UFO가 '모세의 십계명'으로 잘못 알려져서 일부 메탈슬러그 유저들이 이 명칭으로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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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십계명 때문에 서구에서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오 마이 갓'이라는 식의 표현조차 십계명을 어긴다며 안 좋게 여긴다. 그래서 갓을 발음이 비슷한 가쉬(Gosh)로 바꿔 말하는 경우가 많다.[43]

[1] 에녹이 에녹서를 썼다고 하나 이는 외경으로 취급받는다.[2] 레위 지파가 제사장 지파가 된 이유를 이 일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3] 이는 기도서의 유무에서 비롯된 차이인데,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정형화된 기도문이 많기에 따로 기도서를 발행하고 십계명도 여기에 적은 것이다. 즉 개신교 입장에서는 정형화된 기도문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주기도문, 사도신경 정도가 전부이기에, 성경의 부록으로 합쳐서 휴대성을 극대화한 것.[4] 그것도 평신도에게는 완화되어 '술에 취하지 말라'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승려들은 '술 마시지 말라'라고 해석한다.[5]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자꾸만 왕가가 망하는 것 역시도 우상을 섬겨서(여로보암, 바아사, 예후), 아예 이방 신을 섬겨서(아합) 등의 일을 저질러 야훼가 저 꼬라지를 보고 빡쳐서 예언자를 시켜 "너 망할 거야"라고 말하고 진짜 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개중에는 예후처럼 아예 "니가 저놈들 다 죽여 버리고 니가 왕 해라 그럼 니 다음으로 4대까지 보장해 주마"같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것도 조금은 기준이 달라서 유다 왕국은 그래도 다윗에게 한 약속 때문에 자주자주 벌을 주지만 므나쎄 전까지는 나라는 안 망하게 해줬고 빡치게 해도 예를 들어 이방 신을 들여왔다고 미치도록 까이는 아합도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다가 예언자 엘리야가 "니 하는 꼴 보니 니 대에 가문 망함"이라고 한 것에 싹싹 빌며 사과하자 "좀 봐줄게 니 다음 대에 망한다."라고 바꾸었고 므나쎄도 이쪽도 이방신을 들였다고 므나쎄 대에 망할 뻔했지만 일단 안 망하고 다음 대인 요시야가 조상들의 죄를 뉘우치고 평생 동안 열심히 야훼를 섬기자 봐줘서 요시야 대에는 망하게 하지 않았다고 기술한다. 아무리 요시야가 잘 섬겨도 망할 수밖에 없던 건 워낙 므나쎄가 죄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기술한다.[6] 열왕기에서는 왜 안 망했는지 나오지 않고 역대기에서 중도에 회개하였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기술된다. 다만 열왕기에서도 무려 44년이나 재위했다고 언급하여 간접적으로 므나쎄가 죄는 저질렀어도 야훼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언급한다.[7] 다윗이 야훼를 잘 섬겨 솔로몬 사후에도 나라가 반쪽으로 갈리긴 했어도 왕관은 지켰고 치드키야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왕위를 지켰다고 기술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제대로 안 믿는 왕도 있었지만 안 믿는 왕과 믿는 왕이 번갈아 나타나서 어느 정도 유지는 되었다. 물론 므나쎄 때는....[8] 아합이 혼쭐난 이유가 이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합은 궁 근처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소유한 포도원을 탐냈다. 그런데 닥치고 뺏기는 찝찝했던지 나봇에서 값을 잘 쳐줄 테니 팔라고 했으나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에게 땅이란 하느님이 내려주신 것이기에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고 여겨서 나봇이 거절하자 포도원은 탐나는데 먹지를 못해 끙끙대자 아내 이세벨이 그걸 알고는 나봇을 모함하여 죽이고 포도원은 빼앗아 남편에게 주었다. 어찌 되었든 나봇의 포도원을 먹은 아합이 희희낙락하며 포도원에 가보니 예언자 엘리야가 빡쳐서 아합에게 니 대에 가문이 망할 거라고 예언을 내린다. 물론 아합이 아차 싶어 싹싹 빌어 그나마 아합의 대에 망하게 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예언대로 아합의 가문은 아합의 아들 대에 폭삭 망하며 심지어 예언대로 아주 비참하게 멸망한다.[9] 이세벨도 성경에서 아주 제대로 까이는 사람인데 아예 이방인에 이방 신인 바알을 믿으며 남편에게서 종교 문제를 일임받아 이스라엘에서 믿는 야훼 신앙을 탄압하는지라 까이는 정도가 아합보다 더하다.[10] 모르몬교도 이 십계명 구분법을 사용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 동일.[11] 여기에 인용된 구절은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된 십계명을 따랐다.[12] 정교회와 성공회에서는 "하느님"으로 표현한다.[13] 이 구절 때문에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등에서 가톨릭이 성경을 변개했다고 딴지를 걸기도 한다.[14] 이 부분이 조선 역사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기해박해로 인해 정하상이 잡혔을 때 정하상은 천주교를 옹호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때 조선에서는 천주교도들을 두고 무부무군(無父無君; 아버지도 임금도 안중에 없는 이들)의 무리라 불렀다. (신해박해 당시 정하상의 아버지인 정약종의 책에서 무부무군이라는 표현이 나온 바 있는데, 왜 썼는지는 둘째 치고 어쨌든 썼다는 이유로도 문제였다. 정약종은 천주교인이었다. 안 그래도 천주교는 이미 정조 시절 진산 사건으로 인해 불효자 집단 취급을 받아왔는데, 이 일로 그러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졌다.) 이에 정하상은 십계명에도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구절이 있다고 하여 해명하려고 했다.[15] 이 계명에는 기혼자 한정으로 자식과 부부에 대한 사랑과 존중도 포함된다.[16] 이 부분은 흔히 "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17] 정교회[18] 개혁교회 및 성공회 등 다수 개신교[19] 유대교[20] 공동번역 기준. 출애굽기와 신명기가 다른 경우 각주로 NRSV 서술.[21] Remember the sabbath day, and keep it holy.[22] Observe the sabbath day and keep it holy.[23]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24] You shall not desire your neighbor's house.[S] 사마리아인이 사용하는 토라 버전.[S] [27] 기존 출애굽기 기준 17절이다. 사마리아 토라에서는 살인부터 거짓 증언까지 13절로 합쳐져있다.[28] 다만 6번째 혹은 7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그 중요성이 크게 감소한 계명이긴 하다. 간음간통이나 문란한 성행위만을 의미하진 않고 '결혼 관계 외의 모든 성행위'를 일컫기 때문에 연인 간에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충실하고 심지어 결혼을 약속했더라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면 둘 사이의 성관계는 간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실한 그리스도교도들은 혼전 순결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에 이르러 서구 사회나 한국 사회에서는 충분히 책임질 준비가 된 연인 간에 갖는 혼전 성관계는 도덕적 타락으로는 여겨지지는 않고 있다. 물론 이슬람권이나 하레디 사회 등 아직도 혼전 순결이 당연한 문화권 역시 많이 남아있다.[29] 그런 행위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예레미야 7:9절에서 대놓고 까발렸던 이유이기도 하다.[30] 애초에 히브리 문자는 모음을 안 쓴다. 이건 셈어파 언어들을 표기하는 토착 문자의 공통적인 특징.[31] 논외지만, 성공회에서 예외적으로 십자고상을 성상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모세 시기 막대에 들려 올려진 뱀(민수기 21장 9절)처럼 예수도 들려 올려진다'(요한복음 3장)는 성경 구절에 기반한다.[32] 물론 정확히 토요일이라고 표기가 안 되었을 뿐 애초에 유대인들이 철저히 지키던 토요일의 안식일은 창세 시절 하느님의 안식을 따라서 이뤄진 것이며 또 성경상에선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했기 때문에 맥락상으론 토요일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33] 원대사가 Yahweh가 아니라 Jehovah이므로 대응되는 표기인 여호와로 서술[34] 마태오의 복음서 22장 37절~40절[35] (문헌 내 주석) 아우구스티누스, Contra Faustum, XXII, 75.[36] (문헌 내 주석)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9항[37] 원문: La tradizionale dottrina della “guerra giusta” non è una dottrina che “benedice” la guerra: è una dottrina che impone condizioni rigidissime per giustificare ogni ricorso all’uso delle armi. Come ricorda il Catechismo, “occorre contemporaneamente: che il danno causato dall’aggressione alla nazione o alla comunità, sia durevole, grave e certo; che tutti gli altri mezzi per porvi fine siano risultati impraticabili o inefficaci; che ci siano fondate condizioni di successo; che il ricorso alle armi non provochi mali o disordini ancora piú gravi del male da eliminare... Nella valutazione di quest’ultima condizione ha un grandissimo peso la potenza dei moderni mezzi di distruzione”.[38] (문헌 내 주석)COMMISSIONE PONTIFICIA JUSTITIA ET PAX, La Santa Sede e il disarmo(1976.3.10.)[39] 원문: A tale proposito, in un suo altro documento la Chiesa ricorda che: “Quando non vi è piú nessuna proporzione tra il danno causato e i valori che si tenta di salvaguardare, è meglio subire l’ingiustizia piuttosto che difendersi con tali mezzi”[40] 개신교, 정교회의 방식을 따르면 4번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와 5번째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Don't'가 아니라 'Do'다. 따라서 이 문장은 "Don't, don't, don't, do, do, don't, don't, don't, don't, don't"가 되어야 맞다. 가톨릭, 루터교회의 방식을 따르면 첫 번째, 3번째, 4번째를 Do로 바꿔야 한다.[41] 약 6,000만 원.[42] 단, 가톨릭과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정당하지 못한 권위(종교 박해나 정치적 탄압과 폭정을 가하는 국가 권력지도자, 상급자라든지, 학대나 박해를 저지르는 부모 등)에게는 해당 명령과 지도에 대해 순종할 의무가 없다고 본다.[43] God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אלוהים(엘로힘), 헬라어로는 Θεός(테오스), 라틴어로 Deus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엄밀하게 따져서 테트라그람마톤을 부르지 마라는 계명에 해당되는 표현은 아니지만, 어쨌든 안 좋은 상황이나 비속어에서 신을 부르는 것을 막기 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