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3:33:56

오세암

1. 설악산에 있는 암자

http://en.wikipedia.org/wiki/Oseam[1]

오세암(五歲庵)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에 있는 사찰이며, 백담사에 속해 있다.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지었는데, 당시에는 관음암(觀音庵)이라 불렀다. 1548년(명종 3)에 보우가 중건한 후 1643년(인조 21)에 설정이 또 중건하면서 현 명칭이 붙었다. 1888년(고종 25) 백하화상이 박달나무를 써서 2층짜리 법당을 지었다.

5살 된 아이가 폭설 속에서 부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오세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 설화는 암자를 중건한 설정 스님의 얘기를 토대로 했으며 전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설정이란 스님이 설악산 깊은 곳의 암자에서 수행을 하던 중 잠이 들었는데 관세음보살이 꿈속에서 설정스님에게 서둘러 마을로 가라고 얘기한다. 꿈에서 깬 설정스님은 서둘러 자신이 살던 마을로 달려갔는데 마을로 오니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 무언가 이상해서 지나가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이 마을에 전염병이 크게 돌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린 남자아이 한 명만이 이 난리통에 혼자 살아남았다고 얘기한 뒤 갈 길을 다시 갔다.

설정스님은 남자아이란 말에 놀라 서둘러 자신의 형이 살던 집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 3살 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바로 스님의 조카이다. 스님은 관세음보살이 이 아이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하며 부모를 잃은 어린 조카를 데리고 자신의 암자로 갔다. 이후 홀로 어린 조카를 키우며 지내던 중 어린 조카는 이제 5살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스님이 암자를 둘러보니 양식이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산 아랫마을로 양식을 구하러 가게 되었다. 이에 혼자 남겨질 조카에게 "혼자 있는 것이 무섭거든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외우며 지내거라." 하고 일러주고는 길을 떠났다. 그런데 스님이 산을 내려가서 양식을 구할 무렵 설악산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서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봄이 되어서 눈이 다 녹은 뒤에야 서둘러 암자로 올라갔는데, 놀랍게도 조카는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가 말하길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보살펴주었다는 것.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신력(神力)에 감동해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때 KBS 전설의 고향에서도 이 오세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등장한 적이 있다. 물론 극의 진행을 위해 약간의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여기에선 주인공인 승려가 절을 찾아오는 어느 귀부인을 혼자 사모하다가 파계할 뻔하고, 번뇌를 떨치기 위해 방랑하나 오히려 번뇌에 더 시달려서 건강을 크게 해쳤다. 이를 딱하게 여긴 큰스님은 관음암이란 작은 암자에서 조용히 수행을 하도록 권한다. 관음암에 가던 승려는 마을에서 한 걸인 아이를 발견해서 데려다 키우고 이하 동문. 이 작품에서는 관세음보살이 그 귀부인으로 현신해서 승려에게 깨달음을 준 것이라는 암시가 나온다. 다른 불교 설화에서도 관세음보살을 비롯한 보살, 혹은 부처가 현신해서 승려를 시험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를 차용한 것이다. 주인공 승려 역에는 배우 김영기가 출연했다.

실제로 유명해지기 전만 해도 진짜 길이 험해 가기 힘든 암자였다. 우학 스님의 수필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를 보면 처음에 오세암을 찾아갈 때 너무 힘들어서 도착했을 때는 감격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오세암이 유명해지고 찾아가니 좁고 험한 산길은 다니기 좋게 다 정리해 놓고, 암자 주변도 자갈을 깔아 놓거나 시멘트로 정리를 다 해 놓은 탓에 처음에 갔을 때의 감격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1.1. 관련 문서

2. 동명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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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명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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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영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