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북면 | 대청봉 · 대승폭포 · 십이선녀탕계곡 · 백담사 |
기린면 | 방동약수 | |
인제읍 | 대암산용늪 · 내린천 · 합강정 |
| |
설악산 백담사 雪嶽山 百潭寺 | Baekdamsa | |
<colbgcolor=#B9A26A><colcolor=#fff> 창건 | 647년 (신라 진덕여왕 원년) |
자장 율사 | |
소속국가 | |
주지 | 향성 스님 |
등급 |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 |
위치 | |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백담로 746[1] | |
링크 |
|
<colbgcolor=#B9A26A> 백담사 전경 (2008년) |
1. 개요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末寺)이다. 설악산 깊숙이 있다.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여러 저작을 남긴 절로 출가한 후 이 절에서 잠시 머물며 수많은 저서와 시를 남겼다.[2]
2. 역사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수차에 걸쳐 화재를 입어 다시 짓기를 반복하면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었다. 조선 1775년 현 위치에 법당 등의 건물을 중건하였고, 1783년에 백담사로 개칭하였다.원시림에 가까운 비경을 간직한 내설악의 입구에 위치해서 봉정암, 오세암 등 외딴 암자를 산내암자로 거느리고 있는, 내설악산을 대표하는 도량이다. 이에 시인 겸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이 이 곳에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와 시집 《님의 침묵》 등을 집필했다. 일반차량이 통제되고 산세가 깊은곳에 자리잡고 있어 제6공화국 성립 이후 1988년 11월 23일부터 1990년 12월 30일까지 전두환과 부인 이순자가 세인의 눈을 피해 은둔한 곳이기도 하다.
백담사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 제1182호 목조아미타불좌상이 있다. 극락보전 안에 주불로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영조 24년(1784년)에 조성된 것으로서 18세기 전반기의 불상 가운데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백담사에서 산길로 11킬로미터나 더 올라가는 1,244미터 높이의 봉정암 뒷산에 보물 제1832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석가사리탑)이 놓여 있다.
백담사 앞 계곡 한편에는 다년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은 돌탑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백담사 수렴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계곡이 구곡담과 가야동으로 나뉘는데, 왼편 가야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백담사의 또 다른 산내암자인 오세암이 나온다. 다섯 살 동자승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설악산의 긴긴 겨울을 무사히 나게 되었다는 설화가 동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어 알려진 바로 그 암자다.
3. 전설
낭천현(狼川縣: 오늘날 강원도 화천군)에는 비금사(琵琴寺)란 절이 있었는데, 주변 산에 짐승들이 많았으므로 사냥꾼들이 자주 찾아와 사냥하였다. 이런 살생 때문에 터가 부정해졌지만,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에게 공양하였다. 산신령이 이런 부정함을 싫어하여 어느날 밤 신통력으로 비금사를 설악산의 대승폭포 아래 옛 한계사(寒溪寺) 터로 옮겼다. 승려들이 이튿날 일어나 보니 절은 틀림없이 비금사인데 주변 지형은 생판 달라져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갑자기 관음청조(觀音靑鳥)가 나타나 알려주었다."낭천에 있던 비금사를 옛 한계사로 옮겼느니라."
춘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이란 지명이 있는데, 절이 옮겨질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린 사연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백담사는 그 뒤로 여러 번 불이 나서 위치를 옮겨가며 재건하기를 반복하였다. 또한 사찰의 명칭 또한 자주 바꾸었다. 조선 정조 7년(1783)에 현재의 '백담사'라는 사명을 지었는데, 여기에도 전설이 있다.
당시 주지승이 꿈을 꾸었는데, 도포를 입고 머리가 백발인 산신령이 나타나서 "대청봉에서 절 터까지 웅덩이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라." 하였다. 날이 밝자 주지가 일어나 꿈에서 들은 대로 산에서부터 절까지 물 웅덩이 수를 세어보았더니 꼭 100개였으므로 절 이름을 백담사(百潭寺)라고 지었다 한다.
4. 전두환 대통령의 유배·은거생활
1988년 국회의 ‘5공 청문회’가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정권 비리와 각종 사건의 책임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부정 여론이 폭발했다. 곤란한 처지에 놓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내 이순자와 함께 '5공 청산'의 일환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11월 23일[3]부터 1990년 12월까지 약 2년 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백담사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이는 1980년 10월, 조계종 지도부가 신군부에 비협조적이었고 불교계가 민주화 세력과 결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이유로 승려들의 대부분을 체포·구금하여 삼청교육대 수준으로 핍박하고 언론을 이용하여 불교계를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매도했던 불교 탄압 사건의 원인이 전두환이었음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4]
당시 백담사에는 입구에서 “민족성지 백담사에 민족반역자 웬 말이냐!!”는 현수막을 펼치고 그의 백담사 행을 막겠다고 나선 젊은 스님들과 학생들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인제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보낸 이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구속까지 당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은 자신이 머물렀던 백담사 내 화엄실에 옷과 유배 당시 사진을 놓고 '대통령 왔다감' 투의 문구를 걸어놓기도 했으며, 전두환 역시 은거생활 중에도 불자들과 행락객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강연을 하기도 하는 등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써먹기도 했다.[5][6]
사실 노태우와 민주정의당이 처음에 권유한 것은 백담사가 아니라 고향인 합천으로 낙향하는 것이었다. 합천 자체도 시골이거니와 절을 선택한다면 해인사까지 있어서 충분히 일리가 있었지만 해인사가 워낙 유명한 고찰인 데다 전두환 측에서 속죄와 참회를 하고 있다는 이미지 연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쉽게 가기 어려운 사찰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 뽑힌 장소가 독립운동가가 머물렀던 절이면서도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백담사였다고 한다.
백담사는 설악산 내설악 산속 깊숙이 있어 일반 차량 진입이 제한되고, 주차장부터 사찰까지 계곡길 약 7km를 전용 버스 셔틀로 오가야 하는 위치라 일반 대중들이나 기자들이 함부로 난입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와 더불어 실제로 전두환이 머물던 시절의 백담사는 사복경찰과 전·의경들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법에 명시된 것도 있는지라) 24시간 철통보안을 지켰었다고 한다.
5. 교통편
자동차는 46번 국도, 대중교통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원통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고성 진부령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백담입구터미널로 올 수 있지만, 1일 10회밖에 안 들어오므로 반드시 다이어를 숙지해야 한다. 용대리 백담마을 백담사입구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부터 백담사까지는 걸어가거나 용대향토기업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7]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지만 주말 등 성수기에는 빗자루질을 하기 때문에 빨리 탈 수 있는 편이다.[8] 동절기에는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 백담사 입구부터 백담사까지 거리는 7km, 걸어서 2시간 정도다. 2022년 기준 버스 탑승료는 편도 2,500원인데 약 10~15분 정도 걸린다.[9]길이 외길인 데다 한쪽은 낭떠러지라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버스와 백담사로 향하는 버스가 마주쳐 후진하거나 살짝 버스를 비틀어 비켜주는 일이 자주 있다. 이때 어쩔 수 없이 한 버스는 낭떠러지 쪽으로 차체를 갖다대야 하기 때문에, 손님 입장에선 마치 버스가 떨어질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10] 다만, 당연한 얘기지만 이미 이와 같은 경험을 수백 수천 번 이상 한 버스기사들은 태연하게 운전한다.[11]
백담사에서 출발할 때 택시 이용은 포기하는 것 좋다. 카카오택시로 잡히지도 않을 뿐더러[12] 백담사입구 관광안내소에서 가르쳐주는 콜택시를 불러도 "차가 없다"고 답이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다른 지역과 달리 콜이 도착해서 승객을 태운 시점이 아니라 콜 받고 출발한 시점부터 미터기를 찍고 와서 바가지를 씌운다.## 다만 백담사 매표소에서 도보 약 900m 거리에 있는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이 의외로 운행편수가 많으므로,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간 다음 시외버스를 타고 가려는 최종 목적지에서 가까운 터미널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미래에 춘천속초선 백담역 신설이 예정되어 있다.
5.1.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 노선 시간표
모든 노선이 경유편이므로 기재된 시간과 실제 도착시간이 다를 수 있다.[13] 그리고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버스가 오면 정해진 출발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승객 다 타면 바로 출발하므로 기재된 시간보다 10~15분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버스 승차권은 속초 방면 정류장 앞에 있는 매표소에서 구매하면 된다. 속초, 대진 방면은 정류소에서 바로 승차하며, 동서울, 수원 방면은 길 건너 정류소에서 승차한다.
- 동서울 08:10 09:00 10:30 11:30 13:00 15:00 16:10 17:00 18:00 19:00
- 수원 07:45 11:00 13:30 16:20 19:00
- 고양 07:40 13:40 18:40
- 안산 08:20 12:20 17:20
- 의정부 09:30 12:40 17:40
- 홍천 19:30
- 간성대진 08:55 10:30 11:45 12:45 14:05 15:30 17:05 18:35 19:05
- 진부령시내 07:20 08:40 10:10 12:00 13:40 15:20 16:30 17:30 19:00 20:15
- 원통시내 07:45 09:05 10:50 12:30 14:10 15:40 17:05 18:05 19:45 20:25
- 속초(시외) 08:30 09:00 09:20 09:30 10:00 10:30 11:20 12:50 13:30 14:30 16:20 17:00 19:30
정류소에서 백담사 입구 주차장(백담사행 구간버스 타는 곳)까지는 15분 정도를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중간에 황태 요리를 파는 식당과 황태, 오징어 등 각종 건어물을 파는 직판장이 있다.
6. 백담사 가는 방법
백담사는 자연보호를 위해 일반 자동차 진출입을 절대금지하고 있다(백담사 사무 차량, 소방, 구급차만 가능). 백담사입구 백담마을에 있는 백담사관광안내센터에서 주차를 하고나서 두 가지 방법으로 가야한다.- 마을버스: 백담마을에서 백담사 본찰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이다. 별도의 운임이 있으며 경로우대는 없다. 기상악화시 운행되지 않을 수 있다. 소요시간은 약 20분 ~ 25분이다.
- 도보 : 백담계곡을 중간에 구경할 수 있지만 백담사 본찰까지는 약 7km 및 2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악조건이 따른다. 만약 걸어가겠다면 다음과 같이 준비해야한다.
- 비상약, 비상식량, 물은 반드시 챙긴다(백담계곡으로 들어가면 상점이 없으므로 주의. 백담마을에 있는 상점이나 약국 등에서 미리 구입요망.)
- 신발은 가급적 편한 신발로 착용한다.
- 물집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쓴다.
- 오래 걸으면 힘들수 있으므로 쉬어가는 것이 좋다.
- 음식물, 쓰레기를 투척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이면 운임이 들더라도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7. 둘러보기
<colkeepall> {{{#!wiki style="margin:-10px" | <tablebordercolor=transparent><tablebgcolor=transparent> | 전두환 관련 문서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4c97,#ddd> 일생 | 일생 · 구속 (재판) · 추징금 환수 | |
평가 | 평가 · 정부 평가 | ||
정부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 대한민국 제4공화국 · 대한민국 제5공화국 · 전두환 정부 (평가) | ||
문화 | 국풍81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과정) | ||
가족 | 고조부 전중봉 · 증조부 전석주 · 조부 전영수 · 아버지 전상우 · 아내 이순자 · 아들 전재국 · 아들 전재용 · 아들 전재만 · 딸 전효선 · 손자 전우원 | ||
역대 선거 | 제11대 대통령 선거 · 제12대 대통령 선거 | ||
사건 사고 | 12.12 군사반란 · 5.18 민주화운동(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 삼청교육대 ·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 국제그룹 해체 사건 ·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4.13 호헌조치 · 장항 수심원 사건 · 6월 항쟁 · 제5공화국 청문회 · 전두환 손자 폭로 사건 | ||
기타 | 민정계 · 민주정의당 · 하나회 · 신군부 · 별명 · 다른 정치인 및 대통령과의 관계 ·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 앙망하옵니다 · 백담사 · 땡전뉴스 · 일해공원 · 29만원 · 전두환 시리즈 · 전두환 회고록 · 어록 · 여담 | ||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전두환 정부와 관련된 문서는 틀:전두환 정부 참고 |
[1] 용대리 산62[2] 그 유명한 님의 침묵이 이 절에서 탄생했다. 한용운은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실 등 절 안에 있는 건물의 이름을 직접 지었고 백담사에서도 만해 한용운 기념관을 짓고 한용운이 머물던 건물을 만해당이라고 이름짓는 등 한용운 선생을 기리고 있다.[3] 공교롭게도 전두환은 이날로부터 정확히 33년 후인 2021년 11월 23일에 사망했다.[4] 물론 이에 대해서 전두환 본인은 몰랐다고 우겼지만 2007년 국방부의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27 법난 사건의 전후 과정을 보고받았다고 한다.[5] 전두환은 백담사에서 그냥 은거만 하지는 않았다. 절 옆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불교와 자신을 주제로 강연하고 단체 관광객들이 요청하면 센터에 앉아서 사진도 같이 찍어주는 등 서비스도 곧잘 챙겨줬다고 한다.[6] 메가쇼킹은 탐구생활 2에서 "맑은 물 가득한 백담사에서 유일하게 물이 흐린 곳 같다."고 깠다. #[7] 한정면허 마을버스 노선이다.[8]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만차 시, 발차하는 형태로 운행하는 듯 하다.[9] 참고로 하술된 도로 여건의 한계로 일반적인 대형버스가 아닌 중형버스인 에어로타운을 사용한다. 덕분에 좌석이 좁아서 등산가방 등을 메고 타는 승객들이 많은 성수기나 주말에는 앉아 가는 것도 나름 고역이다.[10] 실제로 외마디를 지르는 손님들도 간혹 있다.[11] 실제로 타보면 물리적으로 교행이 불가능하고 버스는 커녕 스타렉스나 카니발 한대도 들어가나 싶은 구간도 많은데, 한 쪽은 낭떠러지요 반대쪽은 나뭇가지가 빼곡한지라 상당히 스릴 넘친다. 낭떠러지 옆을 보게 되는 상행 시 운전석측 창가, 하행 시 출입문측 창가는 고소공포증 등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대쪽 좌석이나 내측 좌석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12] 애초에 인제군 자체가 카카오택시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다.[13] 도로상황에 따라 수도권에서 오는 차량이 다소 지연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