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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파일:고대 간다라 아미타불.png
고대 간다라 아미타불 석상

1. 개요2. 이름3. 유래4. 특징
4.1. 서원4.2. 영향4.3. 수인(手印)4.4. 십이광
5. 창작물

1. 개요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불교에서 '무한한 빛'과 '무한한 수명'을 상징하는 부처로, 무한한 자비와 광명을 상징하는 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를 다스리는 주불이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아미타바(Amitābha, 무량광불) 또는 아미타유스(Amitāyus, 무량수불)이며,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깊이 신앙되었다. 아미타불은 본래 법장비구(法藏比丘)라는 수행자로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비심에서 비롯한 수많은 서원을 세우고, 그 공덕으로 극락세계를 이루어 중생을 구제한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신앙 형태로는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믿고 의지합니다)' 라는 뜻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송하는 염불 수행이 있으며, 이를 통해 죽음 이후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할 것을 기원한다. 아미타불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삼존불로 자주 표현되며, 그 모습은 불교 예술과 의식에 널리 등장한다. 특히 고통과 윤회에서 벗어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2. 이름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미따바(Amitabha), 아미따유스(Amitayus)라고 한다. 이중 Amita는 '끝없는', abha는 광명, ayus는 삶, 수명(생명)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미따바는 '끝없는 광명', 아미따유스는 '끝없는 삶(수명)'이란 의미가 된다. 아미따바를 한자로 음역하면 아미타불이 되며 의역하면 무량광불, 아미따유스를 의역한 것이 무량수불이다. 사찰에서 아미타불 또는 아미타삼존을 모신 법당 이름이 '무량수전'인 것도 이것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이 있지만 전각 내 모시는 불상이 아미타불인지 확정되지 않았다. 법장 비구가 아미타부처로 열반하였을 때 세운 서원에 '빛', 그리고 '한량없는 수명'이 관련된 서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미타사, 미타암 등 사찰 이름에 많이 쓰인다.

3. 유래

아미타불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승 불교 경전은 기원전 1세기에 정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Pratyutpanna Samādhi Sūtra)》이다. '阿彌陀'라는 한역명은 이 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지루가참이 고안한 것이다.
발타화여,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는 계를 온전히 지키고 홀로 한곳에 머물러서 마음으로 서방의 아미타불을 염하되, 마땅히 지금 현재 들은 그대로 염해야 한다. 이곳으로부터 천억만 불국토를 지나면 수마제(須摩提, Sumati)[1]라는 나라가 있다. 그곳의 모든 보살 가운데에서 경을 설하고 계시며, 대중들은 항상 아미타불을 염한다. (...) 서방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문이나 재가자는 마땅히 그곳의 부처님을 염(念, smrti)하고 계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 일심(一心)으로 염하기를 하루 밤낮이나 혹은 7일 밤낮으로 하면, 7일이 지난 후엔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며, 깨어 있을 때 보지 못한다면 꿈속에서라도 친견하리라. (...) 보살이 이 사바세계의 국토에서 아미타불에 대해서 듣고 끊임없이 생각하면 그로 인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을 친견한 뒤에 묻기를, ‘마땅히 어떠한 법을 지녀야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 아미타불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는 항상 나를 끊임없이 염하되, 염하기를 지켜 쉬지 않으면 이와 같이 나의 국토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리라.
《반주삼매경》 K.67(7-925)

4. 특징

파일:아미타 삼존도.png
고려시대 금선묘 아미타삼존도
무량수불(아미타불)께서 발하시는 장엄한 광명은 지극히 숭고하고 존귀하여, 다른 어떤 부처님의 광명도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부처님의 빛은 백 개의 불국토를 비추며, 또 어떤 부처님의 빛은 천 개의 불국토를 비추지만, 무량수불의 광명은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어 주십니다.

이 광명을 만나는 모든 중생들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이 씻겨 내려가며,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해집니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뛰고 춤추며, 선한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특히 지옥·아귀·축생 등 삼악도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이 광명을 보게 되면 모두 괴로움을 잠시 잊고 번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들이 생을 마친 뒤에는 모두 해탈을 얻게 됩니다.

무량수불의 광명은 찬란히 빛나며, 시방세계(동서남북과 위아래, 모든 방향의 세계)에 계신 부처님들의 국토를 모두 환하게 비추십니다. 그 빛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이 광명을 찬탄하는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모든 부처님들, 성문(聲聞)들, 연각(緣覺)들, 그리고 보살들께서도 지금 이 순간 저와 함께 똑같이 찬탄하고 계십니다.

《불설 무량수경》
아미타불은 대승불교, 특히 정토종 신앙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서방극락정토의 주재불이다. 그는 과거에 법장비구라는 수행자였으며, 스승인 세계자재왕불의 가르침을 듣고 서원을 세운 뒤, 수많은 겁에 걸친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서원들은 모든 존재가 쉽게 극락에 태어나 해탈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원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이름을 믿고 부르기만 해도 극락에 왕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원으로, 이는 정토종의 핵심 수행법인 염불의 근거가 된다.

아미타불은 단독으로 신앙되기도 하지만, 흔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서방삼성으로 표현되며, 이 세 존상은 극락정토의 구원과 이상 세계를 상징하는 불보살 군으로 예배된다. 예술 표현에서도 아미타불은 금빛 광배에 둘러싸인 부처의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며, 손 모양(수인)은 설법인이나 아미타인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임종하는 이들을 맞이하러 내려오는 내영도(來迎圖)의 형상으로도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아미타불 신앙의 실천적이고 체감 가능한 구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이다.

신앙 실천 측면에서는, 나무 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반복하여 염송함으로써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수행이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염불 수행은 지식이나 수행 경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널리 확산되었으며, 정토교의 핵심 수행으로 자리잡았다.

아미타불 신앙은 간다라 지역의 불교 전통에서 기원했으나, 이후 중국에서 정토교 형태로 발전하며 하나의 독립된 교단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졌다.

4.1. 서원

나는 깨달음을 이루어 이 서원을 널리 실천하리라.
모든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크고 깊은 평안을 마련하리라.

내가 깨달음을 이루면, 내가 머무는 나라는 가장 뛰어나고,
그 안의 존재들 또한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그 진리의 터전은 그 무엇보다 탁월할 것이다.

그 나라는 완전한 평온처럼 고요하되, 비할 데 없이 뛰어나고,
나는 고통받는 이들을 깊이 헤아려 모두를 자유롭게 하리라.

온 세상에서 찾아오는 이들은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며,
내 나라에 도달하면 기쁨과 평안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밝은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그 가르침을 나의 참된 증거로 삼아
저 나라를 향한 서원을 세우고, 온 힘을 다해 그 뜻을 이루리라.

탐욕을 여의고 정념을 깊이 지니고 청정한 지혜를 닦아
위없는 진리를 구하고자 뜻을 세워 천상과 인간을 이끄는 스승이 되리라.

위신력으로 위대한 빛 드러내고 끝 없는 모든 세계를 두루 밝히며
마음속의 어둠과 괴로움을 없애고 수많은 이들 밝게 비추어 고통에서 구원하리라.

지혜의 눈을 열어주어 이 어둡고 어리석은 혼란을 없애고
모든 악한 길을 막고 선한 길의 문으로 인도하리라.
《불설 무량수경》[2]
아미타불이 성불하기 전 법정보살이었을 당시, 부처 앞에서 48가지의 크고 깊은 서원을 세운 뒤, 오랜 세월 동안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한 수행에 몰두하였다. 그의 서원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머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깊은 자비심과 흔들림 없는 결심으로 그는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어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래는 대략적인 48대 서원의 내용이다.
  • 내 불국토(이하 극락)에는 불행과 근심, 번뇌, 또는 그에 이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 내 불국토에는 수없이 많은 수행자들이 태어나며 목숨이 끝없어야 한다.
  • 내 불국토에 태어나는 보살은 반드시 모두 '일생보처'라는, 보살 중에서도 최고의 보살이 된다.[3]
  • 보살들이 내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죽은 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청정한 보살행을 닦아 선한 공덕을 갖추며, 소원대로 뵙고 싶은 부처님을 뵙고 듣고 싶은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최후에 반드시 성불하게 된다.
  • 내 불국토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이 생에서 바로 열반이 결정된 부류에 들어가 필경에 성불할 것.
  • 선하고 바르게 살면서 내 불국토에 오고자 하는 이는 모두 극락에 왕생한다.
  • 어떤 중생이든지 지극한 마음으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내 불국토에 태어나려는 이는 내 이름을 열 번만 불러도 반드시 왕생한다.[4] ||

4.2. 영향

아미타불 사상은 대승불교가 추구하던 중생 구제의 이상을 보다 현실적이고 친근한 방식으로 드러낸 신앙이었다. 전통 불교의 수행은 고도의 선정(불교)과 지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인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아미타불 신앙은 믿음과 선행 그리고 간단한 수행법으로도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구원의 길이 되었다.

특히 과거에는 문자나 경전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농민, 여성, 병자, 노인에게 복잡한 교리나 수행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 극락에 태어나 해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들에게 특별한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불교가 출가 수행자 중심에서 벗어나 재가자와 민중에게까지 깊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이 신앙은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보살의 이상과 결합하여, 단지 개인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모두가 함께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보다 넓게 실현해 나가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중국에서 정토종의 성립으로 이어졌고, 한국과 일본에서도 정토교 계열의 교단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본에서는 특히 법연과 친란에 의해 정토종과 정토진종이 형성되면서 아미타불 신앙은 하나의 종교적 독립체계로 발전하였다. 한국에서도 고려시대 이후 정토사상이 승려뿐 아니라 일반 불자 사이에서도 유행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억불 속에서도 염불 수행은 꾸준히 이어졌다.

또한 아미타불 사상은 불교 미술과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미타불의 내영도, 극락정토를 묘사한 불화,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는 사찰의 건립 등은 모두 이 신앙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경전적으로는 『무량수경』[5], 『관무량수경』[6], 『아미타경』[7]이 정토신앙의 교리적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이들 경전을 중심으로 한 주석서와 수행 지침서들도 각국에서 활발히 편찬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미타불 사상은 대승불교의 이상인 "일체 중생의 구제"를 신앙적 실천으로 구체화하였고, 불교의 대중화와 지역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타력신앙, 염불 중심 수행, 보편적 구원이라는 특징을 통해 아미타불 신앙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실천 가능한 불교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파일:아미타내영도.png
아미타내영도, 임종순간에 아미타불과 천신들이 극락정토로 인도하기 위해 내영[8]하는 모습을 그린 불화

4.3. 수인(手印)

아미타불을 불상으로 표현할 때는 흔히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이라고 불리는 아홉 가지 수인 중 하나를 취한다. 불상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로,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취하는 수인인데, 엄지와 검지로 고리를 만드느냐 엄지와 중지로 만드느냐 엄지와 약지로 만드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손을 둘 다 아래에 모으는지 한손만 위로 올리고 있는지 양손을 모두 위로 올리고 있는지에 따라서 하품하생, 하품중생으로부터 상품중생, 상품상생까지 총 9품으로 나뉜다. 중생이 극락에 올 때 그 중생이 얼마나 덕을 쌓았는지에 따라서 아미타불이 다른 수인을 취한다고 한다. 정말 염불'만' 외고 악행을 저지르며 불도를 닦지 않은 사람은 하품하생이고 아주 공덕을 많이 쌓고 불법에 충실히 노력한 사람은 상품상생이라는 식.

한국에서는 아미타불상이 대부분 하품중생인(또는 중품하생인)을 취한다. 이를 두고 일본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親鸞 1173-1263)이 주장한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로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선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스스로도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만, 악인은 불법의 힘이 아니고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번뇌를 떨쳐내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미타불에게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악인정기설이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서 하품중생인 또는 중품하생인을 취한 아미타불상을 제작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불도를 닦지 않는 자들이 구제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만약 악인정기설을 따른다면 아미타불상이 취하는 수인은 하품하생인이어야 적절하고, 하품중생인이나 중품하생인은 애매하다. 또한 위에서 한국의 아미타불상이 주로 하품중생인, 또는 중품하생인을 취한다고 설명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수인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같은 수인을 두고 하품중생인, 또는 중품하생인이라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정답이 나오질 않아서 학계에서도 아미타구품인에서 품(品)과 생(生)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체계가 병용되는 판이다.

상품상생, 중품중생, 하품하생 등 3가지 수인을 제외하면 품과 생을 반대로 해석하여 이름 붙이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상품하생인'이라고 하는 것을 두고 다른 누구는 '하품상생인'이라고 하는 식이다. 일단 한국에서는 손의 위치가 품, 손가락이 생을 결정한다고 보는 체계를 따르는 이들이 더 많은 듯하다. 한국의 아미타불이 취하는 수인을 두고도 중품하생인보다는 하품중생인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다.

한국 아미타불상의 수인을 아미타구품인으로 해석함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미타구품인이란 개념은 일본 불교, 그마저도 17세기 에도시대 중엽에 들어서 나타났는데, 아미타구품인과 별개로 제작된 한국의 옛 아미타불상들이 취한 수인을 일본 불교학의 영향 때문에 억지로 구품인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관련 논문

삼국시대의 불상 중에는 아미타불인데도 (원래는 석가모니불상이 취해야 할) 항마촉지인을 취하는 사례가 있다. 그 때문에 정체가 불명확한 오래된 불상을 두고 학계에서 아미타불상인지 석가모니불상인지 논란이 벌어질 때가 있다. 심지어 석굴암 본존불상을 두고도 아미타불이라고 주장하는 소수 학자들이 있을 정도.

이런 불상이 나타난 이유는 한국의 석상들은 재료가 주로 화강암이라서라는 추측이 있다. 화강암은 단단하면서도 매우 무거운지라, 어쩔 수 없이 항마촉지인처럼 팔과 다리를 붙혀서 팔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4.4. 십이광

아미타불의 광명·빛의 12가지 공덕을 십이광(十二光)이라 하는데 다음과 같다.
  1. 무량광(無量光): 이익이 한량(限量)이 없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두루 미치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2. 무변광(無邊光): 십방(十方)세계와 중생을 빠짐없이 다 비추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3. 무애광(無碍光):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부처가 발하는 지혜나 자비의 빛.
  4. 무대광(無對光): 다른 것에 대비할 것이 없이 밝은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5. 염왕광(燄王光): 그 누구도 미칠 수 없는 자유자재의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6. 청정광(淸淨光): 탐욕에 젖은 중생들을 비추어 더러운 마음을 멸하고 청정한 불문에 나게 한다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7. 환희광(歡喜光): 그 빛이 보문을 밝히는 신통력이 있다 하여 일컫는 아미타불의 빛.
  8. 지혜광(智慧光): 중생의 무명(無明)의 어둠을 비추는 아미타불의 지혜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광명.
  9. 부단광(不斷光): 삼세에 늘 있어 끊임없이 세간에 비추어 이익되게 한다는 아미타불의 빛.
  10. 난사광(難思光): 그 덕이 깊고 묘하여 생각하거나 형용하기 어렵다 하여 일컫는 아미타불의 빛.
  11. 무칭광(無稱光): 그 밝음의 양을 말로써는 얼마라고 나타낼 수 없다고 하여 일컫는 아미타불의 빛.
  12. 초일월광(超日月光): 해와 달의 빛을 뛰어넘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5. 창작물

신무협 소설이나 퓨전 소설에서는 소림사 스님이 말 끝마다 아미타불이라 외고, 무당파 등 도가문파에서는 무량수불이라고 외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불교에 무지한 독자들이 둘이 서로 다른 개념인 줄 잘못 알곤 하지만, 이는 청색과 푸른색이 다른 색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미타불=무량수불이고, 도교에서 모시는 대상은 태상노군이나 원시천존 혹은 그 자체다. 실제 승려나 도사들의 어투를 잘 모르는데, 부족한 지식으로 캐릭터성을 부여하려다가 결국 도사가 부처를 찾는 더 이상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다만 이게 클리셰가 되어 무량수불이 도교에서 모시는 신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표현을 넣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실제로 도교의 세계관이 불교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풀이한다. 요새는 이러한 클리셰를 비꼬아 "도가의 무량수불이 불가의 아미타불에서 유래했음을 아시오?"나 "도사가 왜 뜬금없이 불을 찾습니까?"와 같은 식으로 주로 소림이 도가문파를 깔 때 이를 써먹기도 한다.

물론 서로 옥신각신 다투며 설전을 하면서도 각자의 교리, 교세, 사상에 영향을 받은 당시 불교-도교의 상황을 감안하면 도인이 무량수불 명호를 염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관세음보살도 도교에선 관음낭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신선으로 숭배받기도 했으며 민간에서 인기가 좋은 정토 사상, 현세구복 사상에 편승하고자 했던 몇몇 도관은 관 내에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외에 석가모니불 등의 불가의 불보살을 선인들과 함께 모시며 도제와 불사가 합쳐진 격식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앞서 언급한 상황의 문제점이라면 굳이 도인이 원시천존, 태상노군 등의 도교의 신을 마다하고 불보살의 명호를 우선적으로 염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필요한 바를 아버지에게 구하지 않고 옆집 아저씨를 찾는 격이라 할 수 있다.
[1] 묘의(妙意)를 뜻한다. 극락의 여러 별명 중 하나다.[2] 吾誓得佛,普行此願,一切恐懼,爲作大安。令我作佛,國土第一,其衆奇妙,道場超絕。國如泥洹,而無等雙,我當愍哀,度脫一切。十方來生,心悅淸淨,已到我國,快樂安隱。幸佛信明,是我眞證,發願於彼,力精所欲。離欲深正念,淨慧修梵行,志求無上道,爲諸天人師。神力演大光,普照無際土,消除三垢冥,明濟衆厄難。開彼智慧眼,滅此昏盲闇,閉塞諸惡道,通達善趣門。[3] 일생보처의 경지에 든 보살은 다음 생에서 무조건 해탈하여 부처가 된다.[4] 국사 과목에서 말하는 원효의 '불교 대중화' 공헌이 바로 이것이다. 백성들에게 "절에 뭐 바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나무아미타불만 외우시면서 부처님 믿으면 극락 갈 수 있습니다."라고 전도하면서 불교가 부담 없이 민중 속으로 파고 든 것. 간혹 배움 없이 기복신앙이나 다름없는 종교가 된다며 이와 같은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입장이지만 이름 석자 못 쓰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백성들에게 불경을 읽게 하고 수도하게 함은 불가능하다. 당시 야만인으로 취급받던 게르만족에게 가톨릭이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리가 있음에도, 하느님을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성화를 발전시켜 성상으로 만들고 보여주며 교육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앞 주석에서의 내용을 보면 알듯 불교를 믿고 선하고 바르게 살지만 불경을 읽고 수도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단지 불경을 외지 못하고 수도하지 않았다고 극락에 못 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공평한 일이다.[5] 법장비구의 서원과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6] 위제희 부인에게 열다섯 가지 관상 수행법을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7] 부처님이 아미타불과 극락세계를 간결하게 찬탄하며 염불을 권하는 경전이다.[8] '내영(來迎)'은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서 인간이 머무는 사바세계로 내려와 임종이 임박한 왕생자를 영접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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