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8:16:15

강기갑

역임한 직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비례대표 제17대 국회의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word-break: keep-all"
열린우리당
23석
장향숙 <colbgcolor=#419639> 홍창선 <colbgcolor=#419639> 김명자 <colbgcolor=#606060> 김혁규
이경숙 박찬석 홍미영 조성태
박영선 정의용 김현미 박명광
김영주 조성래 강혜숙 정덕구
이은영 민병두 윤원호 박홍수
유승희 장복심 김재홍 서혜석
신명 김영대
한나라당
21석
김애실 박세일 박찬숙 윤건영
송영선 황진하 전여옥 정화원
이계경 박재완 나경원 이주호
김영숙 유승민 고경화 이군현
진수희 배일도 안명옥 서상기
박순자 이성구 문희
민주노동당
8석
심상정 단병호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강기갑 현애자 노회찬
새천년민주당
4석
손봉숙 김종인 이승희 김홍일
김송자
16대
18대
}}}
비례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울산
경기 · 강원 · 충북 · 충남 · 전북 · 전남 · 경북 · 경남 · 제주
}}}}}}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사천시)
제16·17대
이방호
제18대
강기갑
선거구 통합
여상규[1]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아이콘.svg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대표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ord-break: keep-all"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제1·2대
권영길
제3대
김혜경
직무대행
천영세
비대위
권영길
제4대
문성현
비대위
심상정
직무대행·비대위
천영세
제5대
강기갑
제6대
이정희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63d94 10%, #803c94 20%, #873a93 30%, #903a94 40%, #953993 50%, #a33792 60%, #af3591 70%, #b63491 80%, #b63491 9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비대위·제2대
강기갑
비대위
강병기
제3대
이정희
}}}}}}}}}}}}}}}

}}} ||
<colbgcolor=#0056B8><colcolor=#fff> 대한민국 제17·18대 국회의원
강기갑
姜基甲 | Gang Gi-gap
파일:IMG_5965-683x1024.jpg
출생 1951년 6월 7일 ([age(1951-06-07)]세)
경상남도 사천군 사천면 장전2리
(現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장전2길 70-19)[2]
본관 진주 강씨 (晉州 姜氏)
현직 한국농어민당 당원
종교 천주교 (세례명: 로베르토)[3]
학력 사천사동국민학교 (졸업)
사천중학교 (졸업)
사천농업고등학교[4] (졸업)
병역 면제 (습관성탈구)
가족 4남 4녀 중 일곱째[5]
배우자 박영옥
자녀 슬하 3남 1녀
소속 정당
파일:한국농어민당_white.svg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7, 18
별명 잭스, 강달프, 쿠사나기 사이슈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정치 활동
3. 정계 은퇴 이후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학교폭력 미화 사건4.2. 국회 폭력 난동(공중부양) 사건
5. 여담6. 매체에서7. 선거 이력8. 소속 정당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경상남도 사천시 출신의 농민운동가 및 농업인, 前 정치인.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17대(비례대표), 18대(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낸 뒤, 현재는 정계를 은퇴하고 고향 사천으로 돌아가서 본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농업에 종사 중이다.

2. 생애

1953년 6월 7일 경상남도 사천군 사천면(현 사천시 사천읍)에서 4남 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사천 사동국민학교, 사천중학교, 사천농업고등학교(현 경남자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때 가톨릭 가르멜 수도회 소속 수도자였으나, 종신서원[6]이 반려되자 환속을 선택하였고, 가톨릭농민회에 참여해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는 '농촌총각장가보내기' 운동을 전개한다. 1991년 우루과이 라운드 수입 개방 반대 시위에 나갔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1999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의 부의장이 되었다.

2.1. 정치 활동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2060401110001300_P2.jpg
△ 강기갑 전 의원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6번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특히 농민 출신으로 항상 수염을 기른 외모에 두루마기고무신과 개량한복을 입은 독특한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2004년 5월 20일, 불법시위 주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으나 풀려난것으로 보인다.

2004년 7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 국회 윤리위원회 위원에 동시에 선출되어서 겸임하였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재산등록에서 마이너스 2억 3,400만원으로 국회의원 하위 3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고, 2005년에 실시한 재산등록에서는 마이너스 2,204만원으로 집계되었다.

2005년 4월 15일, 정부의 아르헨티나 쇠고기 수입위험 평가[7]에 대해 "정부가 쌀 협상을 위해 아르헨티나 등과 이면 합의를 한 의혹이 있다"며 말하였고, 이에 농림부는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의원들에게 아르헨티나 쇠고기 수입위험 평가 합의문을 공개하였다. 같은 해 7월 18일, 부친상을 당하였다. 10월 28일, 국회에서 농성전을 벌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11월, 단식을 하다가 쓰러져 입원하였다.

2007년 6월 1일,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를 따라 당시 좌파 정권이 집권하고있던 브라질베네수엘라로 떠나 양국 진보좌파 정당간 교류 방안을 논의하고 석유와 IT 산업을 축으로 한 양국간 경제협력의 중개자 역할을 모색하였다. 2007년 6월 26일, 새만금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2008년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경상남도 사천시 선거구에 출마, 현역 의원인 한나라당이방호 후보와 대결해 단 178표(0.36%p) 차이로 승리했다. 여론조사, 출구조사에서도 이방호 전 의원이 일방적으로 앞섰던 데다가,[8] 지역 주민의 성향을 감안하면 더 말이 안 되는 기적이어서,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이는 사실 당시의 여러 복잡한 사정이 얽혀서 빚어진 기적이었는데, 가장 큰 요인은 계파 갈등이었다. 한나라당 내에서 친이계에 의한 공천 학살이 일어나자, 박근혜 팬클럽 회원들이 친이계 후보를 찍을 바에 아예 야당 후보를 찍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친이계의 실세이자 당 사무총장으로 친박 공천 학살을 주도한 이방호의 낙선을 위해, 친박 성향의 유권자들이 강기갑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방호는 구 삼천포시, 강기갑은 구 사천군 출신이었기에 구 사천군 지역에서 강기갑에게 소지역주의처럼 몰표가 쏟아진 것도 한 몫 했다.[9] 이런 조건들이 겹친 결과, 서부 경남권 최초의 진보정당 의원 당선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이방호는 이명박 정부를 포함하여 끝까지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고 정계를 떠나게 된다.

이후 한미 FTA 반대 투쟁에도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김종훈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고, 그 유명한 공중부양 하는 강기갑(강달프) 짤방은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공중부양 사건으로 인하여 검찰이 형법상 특수 주거침입, 특수 공무집행 방해, 모욕 혐의 등의 혐의로 고발하였다. 강기갑은 검찰의 출석거부 요구를 거부하는등의 사건이 있었지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의원직을 유지하였다.
파일:강기갑-3.jpg
하지만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경상남도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남해군·하동군과 사천시 선거구가 통합되면서, 하동군 출신의 새누리당 여상규 후보와 삼천포 출신의 무소속 이방호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이후 통합진보당이 분당되기 전에 당 비대위원장을 맡았으나, 혁신이 무산되자 중도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3. 정계 은퇴 이후

파일:강기갑-4.jpg
정계 은퇴 이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고 있다. 매실나무를 심고 염소를 키운다고 한다.# 강달프 매실마을 사이트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의 상임고문,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고문단이 되었다.[10] NL의 입김이 강한 전농 출신의 강기갑이 정의당을 지원하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11] 그런데 진보운동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쉽지만, 강기갑은 애초에 학생운동 출신이 아니기에 NL은 아니었다.

2013년 봄 집안을 정리하다가 정계 입문 전인 2003년에 담아놓은 매실 발효액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 묵어 다 썩었어야 했을 발효액이 놀랍게도 식초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절친한 연구원의 도움으로 그 발효액 속에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유산균을 최초로 발견하였다.[12] 유산균은 강기갑의 이름을 따 K3[13] 유산균으로 명명했고, 현재는 유산균을 이용한 미생물 농법 보급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기사

2016년 4월 10일, 정의당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기사

2017년 4월, 정의당 심상정 당시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고문단으로 참여했다. 기사

2018년, 3.1절 태극기집회에 참가했다는 가짜뉴스가 SNS를 통해 유포됐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 'GMO없는바른먹거리친환경유기농' 행사장에 참석하려다가 보수 단체들에게 막혀서 동선이 엉켰는데 이때 우연히 사진이 찍힌 것.

2018년 7월 24일, 노회찬 전 의원의 빈소에 조문을 오면서 간만에 언론에 모습을 비췄다.

2019년 8월 21일,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특별위원회로 '좋은농협위원회'를 출범하고 위원장에 강기갑을 위촉했다.


2019년 9월 11일, 유시민의 알릴레오 한가위 특집에 출현해서 미생물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2019년 9월 25일, 박창진 · 김조광수 · 양경규 · 노서진과 함께 정의당 5대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강기갑은 5대 특위 중 국민먹거리안심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경향신문 기사

2020년 3월 9일, 농업 유튜브 채널 팜네이트 농부의 삶 2화에 출연해서 정치인이 아닌 농부의 삶을 보여줬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진보정당에서 활동해왔고 19대 대선 때도 심상정 선대위에서 활동했기에 의외로 심상정이 아니라 이재명을 지지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반응이 있었다.[14]

2023년 4월 1일, 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창녕군 제1선거구에 경남도의원으로 출마한 우서영 후보를 응원차 방문했다.#

2023년 11월 20일, 한국농어민당의 당원이 되었다.

2024년 4월 6일, 오랜만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 선거 유세에 나왔다. #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학교폭력 미화 사건

파일:external/image.kukinews.com/20090811_seob1.jpg
과거 홈페이지(#)에 소개된 어린 시절 이야기로 빈축을 산 적이 있었다. 전학생을 왕따시킨 것도 모자라서 정학에 대한 항의랍시고 죄없는 전교생들의 등교까지 방해했다는 적반하장급의 만행을 무슨 위인들의 영웅담이라도 되는 것 마냥 포장해놨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학 처분을 당했다는 서술을 보면 단순히 개구쟁이 골목대장이라고는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의 강도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폭력이 현재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된 상황에서, 엄연히 가해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행위를 지도력의 싹이 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미화로 왜곡을 해놨으니 당연히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강기갑 전 대표 측은 "이 글은 현재 홈페이지 관리자가 아닌 예전 관리자가 17대 초반에 작성했던 글"이라며 "우리도 처음 봤을 때 수정의 필요성을 느꼈다. 곧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당시부터 보고 불편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강기갑이 직접 작성한 건진 몰라도 고연령대의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15]

4.2. 국회 폭력 난동(공중부양) 사건

파일:external/blog.donga.com/2010012212135912.jpg
파일:external/blog.donga.com/2010012212135917.jpg
2009년 1월, 미디어법 날치기 시도로 벌어진 국회 공성전에서 마구 난동을 피웠던 적이 있었다. 강기갑 의원 말고 당시 민주당의 강기정 전 의원 역시 이 때 폭력 사건으로 징계를 먹었다. 이 때 강기갑 의원은 손가락 골절상을 입고 말았다.

후에 강기갑 의원 본인도 당시의 일화를 회고하며 "제가 예전에 공중부양을 했었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었다. 후회가 된다" 라고 반성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때 촬영된 사진이 묘하게 웃기기도 하고, 내용 자체도 임팩트가 매우 컸던 덕분에 해당 사건 이후로 강기갑 의원은 공중부양 국회의원, 실사판 잭스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유명해졌다.[16] 강기갑은 몰라도 저 짤방만큼은 아는 사람들이 많다.

5. 여담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농민 출신 정치인이라는 캐릭터성은 정치 인생 내내 확고했고, 그로 인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정치인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 드레스 코드 관련 논란이 있을 때마다 유시민의 빽바지 사건과 함께 단골로 소환되곤 한다.

'소박하고 검소한 이미지가 있는 것과는 다르게 축산업으로 성공해서 수십 억의 재산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국회의원 2012년 고위공직자재산 공개에 따르면 약 2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강기갑은 실제로도 농사를 하면서 자수성가로 돈을 벌었다.

게다가 축산업은 직업 특성상 재산이 많지 않으면 제대로 경영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소 한 마리가 몇 백만~몇천만 단위인데 축산업을 하는 농부가 소를 오직 한 마리만 사육하는 경우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재산도 많아야 하고, 소에게 먹일 사룟값만 해도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 이래서 "농사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니고 농부들은 대부분 은행에 빚을 내서 농사 짓는 경우도 정말 많다.

그러다 보니 재산이 많다고 해서 꼭 생활 수준이 동급의 재산을 지닌 강남 건물주 같이 여유로운 수준인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서 거액의 빚으로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서양권에서는 "도박을 하려면 카지노에 가지 말고 밭으로 가서 농사를 지어라."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농사는 사람이나 기계가 아니라 자연과 경제가 상당 부분의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한 해 농사가 풍작이라고 해도 오히려 돈을 못 벌고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1#2#3

물론, 강기갑은 국회의원도 당선되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재산의 여유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사회 및 정치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17]

17대 국회 당선 이후, 여성계와의 인터뷰에서 "가부장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여성문제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받고 "과거에는 의식이 모자랐지만 많이 배워 가고 있다."는 답변을 하였다.[18]

기갑 갤러리 제6회 인기투표에서 T-62, K-1 전차와 함께 공동 8위를 했다. 기갑갤의 갤주라고 불린다.

파일:강기갑-5.jpg

6. 매체에서

  • 막장판타지의 후반부에서 '강기갑부대'로 나타나서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준다.
  • 실사판 잭스 드립 전까지는 쿠사나기 사이슈를 빼닮았다고 현실 쿠사나기 사이슈 드립이 돌았다.

7.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56B8><tablebgcolor=#fff,#1c1d1f><tablewidth=100%><rowcolor=#fff><rowbgcolor=#0056B8>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774,061 (13.03%) 당선 (6번)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사천 23,864 (47.69%) 당선 (1위) 재선[19]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사천·남해·하동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7,653 (24.05%) 낙선 (3위)
역대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17대 비례 민노당.jpg 파일:강기갑_18.png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6번) 18대 총선 (경남 사천시)
파일:강기갑_19.png
19대 총선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 }}}}}}}}}

8.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11 정계 입문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1 - 2012 합당[20]


[[무소속(정치)|
무소속
]][21]
2012 - 2023 탈당
정계 은퇴

파일:한국농어민당_white.svg
2023 - 현재 창당

9. 둘러보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진보 진영 관련 문서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000,#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대한민국 진보정당
파일:진보당(2020년) 흰색 로고.svg 파일:기본소득당 흰색 로고.svg 파일:사회민주당(2024년) 흰색 로고.svg 파일:노동당(대한민국) 흰색 로고.svg 파일:녹색당(대한민국) 흰색 로고.svg 파일:미래당 흰색 로고.svg 파일:정의당 흰색 로고.svg
김재연 용혜인 한창민 이백윤 이상현 손상우 권영국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정치인 대통령 후보 조봉암 · 서민호 · 김철 · 홍숙자 · 백기완 · 권영길 · 김영규 · 금민 · 이정희 · 심상정 · 김선동 · 오준호 · 이백윤 · 김재연
주요 당대표 이우재(범민주) · 장기표(범보수) · 김혜경 · 천영세 · 조준호 · 노회찬 · 조승수 · 나경채 · 현린 · 용혜인 · 천호선 · 여영국 · 이정미 · 하승수 · 이성윤 · 김종훈 · 오태양
소속 정치인 국회의원 · 당대표
정파 평등파 중앙파 · 현장파 · 노동정치연대 · 평등사회네트워크 · 새진보통합연대 · 모멘텀 · 전환 ·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 · 노동자연대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자주파 국민파 · 인천연합 · 울산연합 · 광주전남연합 · 경기동부연합 · 겨레하나
기타 · 신좌파 국민모임 · 21세기 · 참여계 · 글로벌 그린스 · 사회당계 · 새로운진보
정당연대 진보동맹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그린뉴딜 포럼(정의당·녹색당·미래당 공동캠페인) · 반기득권 공동정치선언 · 민주노총·진보정당 연석회의 · 노동자민중 사회주의 좌파 공동투쟁본부 · 정치개혁연합 (해체) ·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해체) · 녹색정의당 · 새진보연합 · 더불어민주연합
역사 제1공-노태우 · 문민-이명박 · 박근혜-문재인 · 윤석열-현재
관련 정당 대한민국당 · 민중민주당
다른 진영 관련 문서 (민주당계 · 보수)
}}}}}}}}}}}} ||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비례대표 제17대 국회의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word-break: keep-all"
열린우리당
23석
장향숙 <colbgcolor=#419639> 홍창선 <colbgcolor=#419639> 김명자 <colbgcolor=#606060> 김혁규
이경숙 박찬석 홍미영 조성태
박영선 정의용 김현미 박명광
김영주 조성래 강혜숙 정덕구
이은영 민병두 윤원호 박홍수
유승희 장복심 김재홍 서혜석
신명 김영대
한나라당
21석
김애실 박세일 박찬숙 윤건영
송영선 황진하 전여옥 정화원
이계경 박재완 나경원 이주호
김영숙 유승민 고경화 이군현
진수희 배일도 안명옥 서상기
박순자 이성구 문희
민주노동당
8석
심상정 단병호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강기갑 현애자 노회찬
새천년민주당
4석
손봉숙 김종인 이승희 김홍일
김송자
16대
18대
}}}
비례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울산
경기 · 강원 · 충북 · 충남 · 전북 · 전남 · 경북 · 경남 · 제주
}}}}}}

파일:경상남도 휘장_White.svg 경상남도 제18대 국회의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권경석 권영길 이주영 안홍준 김학송
진주 갑 진주 을 [[사천시(선거구)|
사천
]]
김해 갑
최구식 김재경 이군현 강기갑 김정권
김해 을 거제 양산
김태호 조해진 윤영 박희태 조진래
남해·하동
여상규 신성범
* 김해 을 최철국 의원직 상실 (2010.12.9.)
* 양산 허범도 의원직 상실 (2009.6.23.)
}}}
비례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울산
경기 · 강원 · 충북 · 충남 · 전북 · 전남 · 경북 · 경남 · 제주
}}}}}}

{{{#!wiki style="margin: -7px -10px -10px;"
{{{#!wiki style="margin: -6px 0px -1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ee7700><tablebgcolor=#ee7700>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아이콘.svg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tablebordercolor=#ee7700><tablebgcolor=#ee7700>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강기갑 권영길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
}}}}}}

{{{#!wiki style="margin: -7px -10px -10px;"
{{{#!wiki style="margin: -6px 0px -1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782b90><tablebgcolor=#782b90>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svg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tablebordercolor=#782b90><tablebgcolor=#782b90>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조승수 권영길 강기갑 김선동 곽정숙
홍희덕 이정희 }}}
}}}}}}


[1]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2] 지번 주소로는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장전리 838[3] 후술하겠지만 정치인으로 익숙한 모습과 다르게 과거 가톨릭 가르멜 수도회 소속 수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사실 그가 수사로 살아가지 못하고 정치인이 된 이유도 그가 수도직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의 '종신서원'을 수도회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만약 수도회가 그를 받아줬으면 어쩌면 우리가 아는 그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을지도...[4] 1996년 이후 경남자영고등학교.[5] 형 강기인, 강기성, 누나 강일남, 강숙남, 강정남, 강기연, 남동생 강기학.[6] 평생토록 수도자로 살겠다는 서약. 수도회에 입회하면 (수도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지원자 → 청원자 → 수련자 → 유기서원자의 단계를 거쳐 종신서원을 한다. 종신서원까지는 대략 10년 가까이 걸린다.[7] 수입 위험평가는 농축산물이 병충해에 오염되었는지를 검증하는 절차로 수입 협상 전에 거치는 단계다.[8] 심지어 출구 조사도 경합이 아니었다.[9] 정확히는 구 삼천포시인 동 지역에는 남양동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이방호를, 구 사천군 인 읍면 지역에서는 서포면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강기갑을 지지했다.[10] 역시 정계 은퇴를 선언한 권영길도 평당원으로 정의당에 입당해서 활동하고 있다. 이미 옛적에 정계 은퇴한 평당원을 능가할 인물이 별로 없는 엽기적 상황이, 정의당이 얼마나 열악하고 작은 정당인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정계로 완전히 복귀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은 편.[11]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사태 때 겪은 경기동부연합의 패권주의에 염증을 느껴서일 수도 있다. 실제로 전농의 다른 주요 인사들은 통진당 해산 이후 경기동부가 중심이 되어 창당한 민중연합당에 들어갔다. 정의당 내에서 영향력이 큰 NL계 인천연합(정파)과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인천연합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광주전남연합과 동맹관계였고, 이들과 가까운 전농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통진당에서도 여성농민운동가 윤금순을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로 당선시켰다.[12] 무려 식초에서 수년을 버틴 유산균이다. 사람들이 유산균을 위산에서 보호하고 장까지 살리겠다고 코팅까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13] Kang Ki Kap[14] 다만 당대표 시절 이정희, 노회찬과 민주당과 선거 연대를 적극적으로 했던 인물이다.[15] 사실 요즘 학생들이 폭력적으로 되어 가고 청소년 범죄가 늘어가고 있다는 기성세대와 청년들 모두의 오해와는 다르게 청소년 범죄는 과거에 비해서 감소한 편이다. 사회적 문제인 학교폭력 역시 과거라고 지금보다 덜했던 것은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학교 VS 학교 집단 패싸움 등 현재로는 일진들도 거의 안 할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말죽거리 잔혹사친구(영화)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중년이나 노인들은 그러한 학창시절도 일종의 추억이라 여기며 낭만화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과거에는 폭력적인 사회였지만, 공동체주의적인 면을 띠고 있었기에 구성원을 배제하는 일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과 양상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 식의 긍정적 시각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싸우면 곧 죽는 일로까지 번지는 심각한 경우로 일이 커진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학부모로서 자녀가 피해를 보는 일을 겪어보지 않는 이상 현재의 고연령대들은 학교폭력에 대해 둔감하고 인식이 모자란 부분이 있다.[16] 2009년 1월 당시는 롤이 출시되기 이전이었기에 점프하는 쿠사나기 사이슈 같은 드립이 돌았다. 실제로 사이슈 점프 모션과 굉장히 유사하다.[17] 사실, 한국은 정치자금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당히 엄격한 규정으로 채워져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이 없으면 활발한 정치 활동이 매우 어렵다. 흔히 '한국 국회의원 연봉이 억 단위네' 하는데, 사실 국회의원들의 각종 정치 활동에 필요한 비용이 워낙 많아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사비까지 투입하며 적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UN 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이 대통령 후보 불출마 선언을 한 이유는 후보 등록 이전에 하루에 천만 원씩 깨지는 비용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세 차량, 포스터, 비서, 캠프 직원들, 광고 등 전부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또 다른 사례로, 박지원 국정원장은 뉴욕에 건물이 4개나 있었을 정도로 잘 나가는 사업가였으나 정계에 입문한 후부터 현재까지는 단 17억밖에 재산이 남지 않았다.[18] 사실 강기갑은 적어도 공적으로 여성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적은 한번도 없다. 그냥 농부 + 한복 + 수염이라는 구시대적인 차림새가 어우러져 이미지가 그렇게 보일 뿐이다.[19] 서부경남에서 진보정당 소속으로는 최초로 당선되었다. 강기갑이 당선되기 전까지는 창원, 마산 등 동부경남과 달리 서부경남에선 진보정당 의원이 나온 적이 없었다.[20] 국민참여당과 신설 합당.[21] 정의당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입당은 하지 않아 당원은 아니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