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03:42:06

이정미(정치인)

파일:국회휘장.svg 비례대표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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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기(초대)는 진보정의당 시절[2] 비례대표 공천 방침에 불복하여 2020년 1월 17일 탈당.[3] 김종철 전 대표 사태에 책임을 지고 2021년 1월 29일 사퇴.[4] 진중권 복당에 반대하여 2022년 1월 29일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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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이정미
李貞味 | Lee Jeong-mi
파일:이정미_정의당프로필.png
출생 1966년 2월 7일 ([age(1966-02-07)]세)
부산직할시
(현 부산광역시)
거주지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 송도 베르디움 더퍼스트
본관 전주 이씨
현직 외로움 없는 따뜻한 돌봄사회 포럼 상임위원장
함께경제연구소 공동소장
정의당 연수구지역위원회 상임위원장
온해피NGO 고문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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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ED00><colcolor=#000> 학력 인성여자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 / 중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 / 학사)
성공회대학교 (정치정책학 / 석사과정 수료)
신체 170cm[1]
가족 남편 (이혼)[2]
종교 천주교 (세례명: 오틸리아)
MBTI ESFJ
소속 정당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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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0
주요 경력 정의당 4기 당대표
20대 국회의원(비례대표)
국회 탄핵심판 소추위원단 위원
남북정상회담 특별대표단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
국회시민정치포럼 공동대표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정의당 부대표
진보정의당 대변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심상찮은 선대위 공동상임선대위원장
}}}}}}}}}
1. 개요2. 생애
2.1. 정치 활동2.2. 20대 국회2.3. 낙선 이후2.4. 7기 당대표 임기2.5. 당대표 퇴임 이후
3. 논란 및 사건 사고4. 저술 활동
4.1. 저서
5. 여담6. 선거 이력7. 소속 정당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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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의당 소속으로 제20대 국회의원(비례대표)으로 재직했으며, 정의당 제7대 당대표를 역임했다. 노심초사[3]의 초사 중 한 명이다. 정의당의 3대 대표를 맡았으며, 이 시기 무한도전 출연과 함께 인지도를 쌓으며 게임 업계의 노동문제를 이슈화하는 등 진보정당의 네임벨류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노회찬, 심상정의 뒤를 이을 인물로 기대를 모았고, 노회찬 의원의 별세 이후에는 심상정과 함께 정의당의 인지도를 양분하고 있다.

정의당 소속 NL계열으로, 온건파였던 인천연합 출신이다. 참여계가 정치적으로 와해된 이후 인천연합은 정의당 최대 계파다.

정의당 연수구위원회 상임위원장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연수구 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사표론이 강하게 불어왔던 이번 총선에서 보수 색채가 비교적 강한 연수을에서 18.38%[4]이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본인의 정치적 역량을 일부 증명해냈다고 볼 수 있다. 낙선 이후에도 송도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생애

1966년 2월 7일, 부산광역시에서 1남 2녀 중 차녀로 출생했다. 위로는 언니가 있고, 3살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가족사가 험난한 편으로 아버지는 원래 큰 물류공장을 운영했었으나 여러 사업에 손을 대며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걸 어머니와 자식(며느리와 손주)들 탓으로 돌리는 할머니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고향인 인천광역시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인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후[5] 1988년 인천에 위치한 영원통신에 입사하면서 노동운동에 본격 투신하였다.[6]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해고당한 이후, 직간접적으로 노조 결성을 지원하는 활동에 집중하였다. 주로 NL 계열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95년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조직국장을 역임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여성국장을 역임했다.

2.1. 정치 활동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당원으로 입당하여 최고위원, 대변인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2004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민주노동당 정당명부 15번에 입후보하였지만 8번까지만 당선되면서 낙선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진보 정당의 당적을 유지하면서 여러 직책을 지냈고, 2012년 진보정의당에 합류해 지금까지 정의당 당적을 지키고 있다. 정의당에서는 대변인, 부대표,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되었고, 무난하게 당선되었다.[7]

국민의당의 이종화 예비후보가 SNS상에서 이 후보를 공산주의자라 칭하면서,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사과를 받으면서 끝나나 했는데, 이번엔 이종화가 "북한을 독재국가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했고 이정미가 "답할 가치가 없다"면서 얼버무렸다는 기사가 알려지면서 종북 논란이 발발했다. 당원 게시판에서도 해명을 요구하는 당원들이 속출하며 들썩였었는데, 하루 지나 이정미 본인이 "북한은 보편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국가라는 것이 자신의 판단이며, 정의당의 판단이다."라고 입장 표명을 하면서 논란은 진화됐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흑백논리에 우리 당이 일일이 대응하거나 답변할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수년간 정의당의 대변인으로 일해 왔고 북한 관련 입장에 대해 분명히 발표해 왔었다.[8] 과연 자신의 이름으로 나간 논평 중에 그런 질문을 받을 만한 것이 있었는가 되묻고 싶다." 등의 해명도 덧붙였다. 기존 진보정당들과 달리 정의당에 종북 프레임에 크게 동요하는 신입당원들이 상당수 늘었다는 증거가 될 만한 해프닝이다.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차별금지법 입안과 동반자(시민결합) 제도 입안 등을 주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게임산업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과 숨겨진 과로사, 과로 자살을 드러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발언과 함께, 게임업계의 노동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낸 의원이다. #

7월 11일 정의당 4기 전국동시당직 선거에서 박원석 후보(43.95%득표)를 제치고 7,172표(56.05%)를 득표하며 신임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당대표로서 영향력이 심상정 개인의 영향력에 비해 못 미치는 모습[9]도 보이면서 바지사장이 아니냐는 뒷소문이 있다.

2.2.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배정됐다. 금융노조, 심상정 대표와 같이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식약처가 치약에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들어있음을 방관했음을 밝혀냈다.

탈선사고가 훈련이라고 주장한 걸 국감에서 잡아냈다.

정의당 알바노동상담센터를 열고 꺾기 등 노동법 위반을 신고받았다.

도시철도 노동자 미세먼지 산재 문제를 제기했다.

박근혜 탄핵소추위원단에 포함되었다.

인천 연수구 을 지역구에 국회의원 사무실을 두었다.[10] 그리고 앞으로 이 지역구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018년 2월에 현역인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과 함께 지역구 가정에 의정 보고서를 배부하였다.[11]

2017년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였다. 박원석을 꺾고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7년 7월 15일 퀴어문화축제에서 동성혼 등에 관련한 정책을 약속했다. #

2018년 8월 21일 환노위 교섭단체 간사회의에서 노동소위 정원을 기존 10명에서 8명으로 줄이면서 이정미 의원을 배제하고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에 배정했다. 이정미 의원은 “애초에 정의당을 더 이상 법안소위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이번 과정의 불합리성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시 생각해 달라"고 말했으나 결국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2018년 9월 18일에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의당 당대표 자격으로 합류하여 방북했으나, 이해찬, 정동영과 함께 북한측과 잡아둔 회담 일정을 별도의 언질도 없이 일방적으로 어기게 되어 국민적인 비난을 사게 되었다. 정당 대표 중 여당 대표인 이해찬 측에서 여야 3당 대표들끼리 간담회를 하느라 참석을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남북평화를 외치는 진보정당의 맏형격인 정의당의 대표로서 이번 회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인지하고 있을 텐데 같이 있던 다른 당대표에 수행원까지도 있을 텐데도 국가적인 회담에 참석하는 중 자신의 회담 일정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 변명이다. 더군다나 2018년 이전 긴박했던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더더욱 책임감이 막중한 상황에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이다. 물론 회담 전체적으로 보면 분위기가 좋으니 회담 자체가 파토날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두 당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2018년 10월 17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보수대통합’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을) 전면적으로 물갈이 하겠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불러들여서 하수 종말 처리장” 이라고 혹평했다.

2018년 12월 6일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2019년 예산안과 같이 처리할 것을 요구하며 추진을 위해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제도와 전혀 무관한 예산안을 인질로 잡은 것과 선거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3일 전에 초안을 제시하고 통과를 요구하는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2018년 12월 12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관련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인터뷰를 했다. # 요약하자면, 선거제도의 개혁은 불가결하며 야3당의 행동을 통해 한국당을 압박할 테니 결정권을 가진 민주당과 한국당이 협의를 통해서 결론을 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 진행자 김어준은 "한국당에게 압박이 되어야 이게 먹히는 건데. 한국당에게 압박이 되겠느냐?"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고, 인터뷰 당일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12월 15일, 결과적으로 자유한국당이 입장을 선회해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큰 틀에서 합의하면서 열흘 간의 단식 농성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 이후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2019년 9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노동조합 파괴 실상을 담은 문건을 공개했다. 기사

2020년 1월 7일, "24년간 계속된 자유한국당의 연수을 독점을 끝내고 완전한 세력 교체를 이룰 것"이라며 20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지역 활동을 해 온 곳이자,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 을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민경욱 의원의 막말 논란을 비판했다.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정일영과의 단일화 얘기가 계속 나왔지만 결국 결렬됐다. 그럼에도 정의당 당 대표로서의 인지도가 있고 의정 활동이 주민들의 인정을 받아 18%의 득표율을 올렸다. 정일영도 이정미와의 단일화 없이 41% 가량의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됐다. [12] 한편 민경욱부정선거 음모론을 펼치자 "이기리라 확신했는데 져서 멘붕한 건 알겠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집착을 버리라"는 충고를 했다.

2.3. 낙선 이후

낙선 이후, 송도발전연구소[13]라는 이름으로 사무실을 차리고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여러 방송에서 패널로도 활동했다.

2020년 9월, 제6기 전국동시당직선거에서 연수구 위원장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김종철 전 대표가 직위해제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 당 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지만, 불출마했다. 당과 관련된 여러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음 대선에 출마하거나 인천광역시장에 출마해 인지도를 쌓으려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송도 지역에서 지지도가 상당한 만큼 구의원 1명이라도 배출한다면 재선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했다. (후술하겠지만 대선 출마는 경선 석패, 시장 출마는 양당에 밀려 크게 밀렸다.)

2021년 7월 7일, 배진교 원내대표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이정미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2021년 7월 20일, '외로움 없는 따뜻한 돌봄사회 포럼'을 출범시킨후 첫 공개 강연회를 열며 사실상 대권행보를 시작했다. #
돌봄 혁명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2021년 8월 23일, 첫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선언하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와 함께 공약으로 의원내각제 개헌도 내세웠고, 돌봄사회를 강조했다.그러나 최종적으로 20대 대선 정의당 경선 결선투표에서 심상정 현 고양갑 국회의원에게 2.24%p차이로 밀려 경선 탈락하였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광역시장 후보군에 포함돼 있다. 가상대결에서 7~8%대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 2022년 4월 19일에 출마선언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
더 이상 인천에서 돌봄에 방치된 미추홀 형제 화재 사건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인천에서 시민 방역을 돌보느라 주 80시간 근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공무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인천의 성장과 시민들의 비극적 삶, 그 틈을 메우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2022년 4월 19일 인천시장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이 전 대표의 인천시장 선거 득표율이 최소 7%대 전후로는 나와야 야권분열 프레임을 잠재우며 향후 입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인천시장 선거 토론에서는 양당 후보를 둘 다 비판하면서도 비교적 온건하게 두 사람의 언쟁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인천시장 양당 후보 유정복박남춘이 전현직 시장으로서 서로의 시정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공방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득표율이 그저 3%대에 그쳤다. 다만 전국적으로 정의당 득표율이 매우 처참했기에 득표율이 잘 나온 셈이다. 오히려 득표수만 따지자면 인구만 거의 4.5배 가까이 차이나는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황순식보다도 396표를 더 받았다. 윗문단에 기술되었듯 양당 후보가 둘 다 전현직 시장으로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시정 평가도 나빴는데 거기에 대고 서로 네거티브까지 해대니 여기에 피로감을 느낀 유권자의 표를 약간 흡수했기 때문이다.

2.4. 7기 당대표 임기

2022년 10월, 제7기 전국동시당직선거에서는 당대표직에 재출마하였다. 1차 투표에서 49.9%를 얻으며 타 후보와의 압도적 인지도 차이를 보여주었으나 과반 달성에 8표차로 실패하여 김윤기 후보와의 결선투표를 치렀으며, 결선투표 결과 약 64%를 득표하여 3년만에 당대표직에 복귀하였다.

당선 이후 하루만에 이태원 참사가 터졌기 때문에 이취임식을 치르기도 전에 바로 대응에 나섰다.#

2023년 6월 말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기 위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단식 중에도 일본 사회민주당등 혁신계 야당, 탈핵 운동 시민사회들이 농성장에 찾아와 국제연대를 활발히 벌이는 중이다.

2023년 7월 단식을 중단하고 일본 등 국제 여론을 움직이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

이후 뉴질랜드, 마셜 제도 대사를 만나 오염수 방류 반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했다. #

정의당이 녹색당과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이정미 대표가 11월 6일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2.5. 당대표 퇴임 이후

2023년 12월 초 건강검진에서 오른쪽 콩팥에 종양이 발견되어 2024년 1월 수술을 마쳤다고 한다. 신장암 1기로, 초기에 발견한 덕에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지 않아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다며 회복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건강 관리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 만큼, 2024년 4월로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동안 활동해온 인천 연수 을 선거구에 도전할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최종적으로 불출마했고, 이에 녹색정의당인천 지역에 부평 을 선거구의 김응호 후보 한 명만 내게 되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전형적인 인천연합계 자주파 인사이던 이정미는 NL계 특유의 반미 자민통 스탠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시절의 이후의 발언에서는 매우 전향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미군 강점 60년을 더 이상 넘기지 말자" - 2005년 9월
"미국의 대북 인권공세는 자국의 동북아시아 패권전략에 순응하지 않는 북한 길들이기와 체제 붕괴, 중국 흔들기에 목적이 있다" - 2005년 2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 없이 지금 이런 결의안(북핵 불수용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2005년 2월
"실무회담에서 우리 정부 대표가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강조하고 회담 조건으로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한 것은 남북한 간 신뢰회복과 전격적인 남북관계 정상화에 장애가 됐다" - 2005년 5월
'이정미 최고위원도 반미여성회에서 활동하는 등 민족주의계열의 색깔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으며....' - 2004년 6월

이처럼 자주파 성향을 강하게 보이던 이정미는, 후일 정의당 창당 이후 정의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당시 논평에서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핵 관련)
"북한의 핵실험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추가핵실험을 포함한 어떤 추가적 행동도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 2013년 2월
"대화와 평화적 해결에 역행하는 모든 행위는 더이상 진행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일체의 군사적 행동을 중단하기 바란다." - 2013년 5월
"이것이 북한 당국이 원하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즉각 일체의 포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 2014년 3월
"한편에서 핵을 쏘고 한편에서 대화하자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가 동의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강대강, 상호 압박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한발도 진전시킬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북한 당국은 전향적인 태도로 핵실험 압박을 중단하기 바란다. - 2014년 3월

때문에, 참여계 친노 세력이나 구 PD 계열이 집권 중인 현 정의당에서 활동 중임에도 별 마찰 없이 당직을 수행 중이다. 20대 총선에선 아예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립정권 구상을 시사하는 등 연대 관련해선 웬만한 구 PD들보다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주사파 논란에 대해서는 제가 무슨 답을 할 이유를 알 수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심하게는 주사파면 척결되어야 할 대상이고 아니라면 음흉한 속셈을 감추지 마라며 끊임없는 논쟁이 이어질게 분명해 보입니다."라는 발언 등으로 논란이 있는 편이다. 정의당 자체가 주사파 계열인 경기동부연합과 선을 그은 상태라 딱히 답변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시절보다는 확연히 온건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대 총선 기간엔 이종화 당시 국민의당 예비후보에게 "정의당은 공산주의자를 비례대표 1번에 공천했다"라는 비난을 들었다. 이후 이종화 예비후보가 중앙당에서 연락을 받고 사과하면서 끝나나 했지만, 이번엔 "북한을 독재국가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정미가 "정식 후보 등록도 하지 않은 예비후보에게 일일이 답할 가치가 없다"고 대꾸하는 바람에 본격적으로 논란이 점화됐다.[14] 정의당의 젊은 당원들도 비례 1번 후보의 종북 의혹에 적잖히 당황하는 분위기였고, 아예 이정미 후보에게 해명을 성토하는 글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이에 이정미는 입장표명문을 발표하면서 "북한은 보편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국가라는 것이 저의 판단이며, 정의당의 판단입니다. 이른바 북한의 3대 세습도 보편적 상식에서 볼 때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북한의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하자는 데에는 보수도 진보도 큰 이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언급하여 당내 논란을 종식시켰다. 이종화 본인은 이 해명을 받아들였다.

여담이지만 이종화는 정작 논란이 터지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국민의당을 탈당해 민주당의 후보(서대문 갑)로서 총선을 치렀다. 결과는 물론 낙선.

4. 저술 활동

4.1. 저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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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합창(2012.1.) 정치의 의무(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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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2017년 4월 1일, 8일에 방영된 무한도전 국민의원에 정의당 대표로 출연했다.
  • 4월 27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하여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주요 대선후보께서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 것이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13일 이전에 사드 배치를 전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라고 밝혀 논란이 있었다. #
  • 동명이인인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대표 당선 후 "탄핵 심판으로 인기 좀 얻더니 정치판에 뛰어드냐"는 악플도 꽤 있었다. 심지어 두 이정미는 탄핵 심판에서도 각각 탄핵소추위원과 재판관으로 마주했다.
  • 남아 선호 사상이 심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안그래도 구박만 하는 할머니인데 언니를 낳고 그녀가 태어나자 할머니의 구박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3남매를 키울 형편이 안되는 탓에 어머니께서 그녀를 홀로 외할머니가 있는 인천으로 보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평소 말 할 때 사투리 티가 별로 안 난다.
  • 30대 중반에 잠시 결혼생활을 했으나 이혼하였다. #
  • 조카가 두 명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증 장애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장애인 관련 캠페인에도 자주 참여하기도 했으며 본인이 정치권에 뛰어 든 것도 장애를 가진 조카 때문이라고 한다.
  •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당대표라고 지칭했다. 성평등 과제는 한국사회에서 강화돼야 할 가치이며 정의당은 성평등 과제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하였다.#
  • 키가 170cm로, 여성 정치인들 중에서 손 꼽히는 장신이다. 심상정[15]과 남성 의원인 노회찬, 여영국, 윤소하보다도 키가 크며 키 180대 남성 의원들과 서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키가 172cm인 문재인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도 있는데 키가 거의 같다. 이 정도 키면 가장 평균키가 큰 20대 여성들 중에서도 정확히 상위 3% 내에 속한다. 같이 연수구에서 활동하는 민현주 전 의원도 167cm로 당대 나이 치고 키가 큰 편에 속하는데, 연수구 행사에 같이 참여하더라도 민현주보다 독보적일 정도로 큰 편이며, 본인보다 키가 큰 여성 정치인은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을 소속인 남영희 뿐이다.[16]
  • 2018년 9월에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에 정치인 수행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다.
  • 남경필 전 경기지사나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부인 오선혜 여사와 미묘하게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20대 국회에서 동물 택배 관련으로 새로운 법안 하나를 추진하고 있다. 반발하는 일각에서는 동물산업도 파악하지 못하고 무조건 금지시키는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반대 의견을 주장하고 있다. 해당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의 영상
  • 신영복 교수의 저서 '담론'을 생각날 때마다 들춰본다고 한다. 신영복 교수는 담론을 쓰고 급격하게 몸이 나빠졌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이정미 당시 정의당 부대표가 진행하던 팟캐스트 정치카페 테라스에 출연해서 담론의 해설을 강의했다. 결국 이듬해 신영복 교수가 돌아가셨으니 이정미 의원이 '큰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인터뷰
  • 이영재의 증언에 따르면, 강연회에서 태극기부대 어르신들을 설득해낸 적이 있다. 기사
  • 2020년 3월 13일 부친상을 당했다.
  • 21대 총선을 앞두고 YTN 시사 안드로메다 415호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절대 국회에 입성해서는 안 되는 사람 4명을 적었다. 지난 20대 국회를 매우 나쁘게 만든 주범이라면서, 이 사람들이 모두 떨어지면 국회 로텐더홀에서 아무노래 챌린지를 하겠다고 했다. 명단은 공직선거법 때문에 비공개 처리되었다. # 선거 후 4명의 이니셜이 공개되었는데, H 모 씨, N 모 씨, S 모 씨, M 모 씨로 4명 모두 떨어졌다고 한다. # 4명은 황교안, 나경원, 심재철, 민경욱 4명을 의미한다는 추측이 많다.
  • 정의당에서 아는 전현직 국회의원 말해보라 하면 심상정 노회찬 다음에는 거의 이정미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17] 때문에 6대 당대표 선거에서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7기 선거에서는 결선 끝에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6. 선거 이력

<rowcolor=#373a3c>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774,061 (13.03%) 낙선 (15번)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갑 3,352 (4.17%) 낙선 (4위)
2014 상반기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경기 수원 병

[[정의당|
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
후보 사퇴[18]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1,719,891 (7.23%) 당선 (1번) 초선[19]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연수 을 23,183 (18.35%) 낙선 (3위)
202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광역시장 38,921 (3.17%)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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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7대 비례 민노당.jpg 파일:18대 총선 이정미 벽보_화질개선.jpg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5번) 18대 총선 (서울 영등포구 갑)
파일:정의당 20대 총선 비례대표.jpg 파일:21대 총선 이정미 벽보_화질개선.jpg
20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1번) 21대 총선 (인천 연수구 을)
파일:이정미 8지.jpg
8회 지선 (인천광역시장) }}}}}}}}}
역대 후보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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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ED00> 기호 정당 이름 비고
파일:정의당 흰색 아이콘.svg 정의당 김윤기
파일:정의당 흰색 아이콘.svg 정의당 이정미 당선
18(대) · 2 · 3 · 19(대) · 4 · 5 · 6 · 20(대) · 7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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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부산시장 대구시장
권수정 김영진 한민정
인천시장 광주시장 경기지사
이정미 장연주 황순식
경남지사
여영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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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의당 흰색 아이콘.svg 정의당 김윤기
파일:정의당 흰색 아이콘.svg 정의당 심상정 결선
당선
파일:정의당 흰색 아이콘.svg 정의당 이정미 결선
파일:정의당 흰색 아이콘.svg 정의당 황순식
}}}}}}}}}}}} ||

7. 소속 정당

<rowcolor=#373a3c> 소속 기간 비고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11 입당
정계 입문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1 - 2012 합당[20]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2 탈당


파일:진보정의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2 - 2013 창당


[[정의당|
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
2013 - 2024 당명 변경


파일:녹색정의당 흰색 로고타입.svg
2024 당명 변경


[[정의당|
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
2024 - 현재 당명 변경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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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심상정 여영국
윤소하 이정미 추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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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역사 (진보정당 · 민주당계 · 제3지대 · 보수정당)}}}}}}}}}}}}


[1] 7:39부터 참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남영희와 함께 여성 정치인 중 손꼽히는 장신이다.[2] 출처[3] 노회찬, 심상정+ 초선 국회의원 4명.[4] 선거비용 전액 보전이 가능한 투표율이다.[5] 비록 운동을 하기 위해 중퇴했지만 한국외대 스마트도서관 출범식을 포함한 다양한 학교 행사에 초청받는 등 사실상 동문 대우를 받고 있다. 본인 역시 애교심은 여전한 모양인지 인터뷰 때마다 대학교 1학년 시절을 자주 회고한다.[6]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전태일 열사 이야기였다고 한다.[7] 당원 총 투표로 결정됐다. 남성 후보들보단 득표수가 적었지만, 홀수번을 여성으로 하는 규칙에 따라 1번으로 공천받았다.[8] 보통 북한이 도발을 강행하면 정의당은 일단 북한을 규탄한다→그런 사태를 방지하지 못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다→정의당의 입장을 밝힌다 식으로 브리핑한다.[9] 대표적으로 노회찬 사망 후 정의당 의원들은 심상정의 의원실에서 대책회의를 했다.[10] 카페와 같은 스타일의 사무실을 개소하여 지역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게 특징이다.[11] 연수을 지역구는 그동안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분류되었으나 지난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송도국제도시 기준 43.4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승리한 곳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은 5.9%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8.7%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최다득표를 하며 비교적 진보 성향 지역구로 돌아섰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인천에서 가장 높게 나온 것을 감안하면 진보와 보수의 경합지역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박남춘 당시 후보에게 60%의 표를 몰아준 곳이며, 광역, 기초 의원의 경우에도 민주당에 과반의 득표를 몰아준 지역구이다. 연수을 지역구에서 정의당과 후보의 득표율은 전국적으로는 비교우위에 섰던 바른정당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12] 나중에 정일영이 말하기를, 진심이 아니라 단순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단일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정미와도 정정당당히 승부를 해 이기면 좀 더 원활하게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겨 자기가 더 반대했다는 인터뷰를 했고 이 생각은 적중했다.[13] 현재는 함께경제연구소로 변경.[14] 물론 답할 가치가 적은 질문이긴 하다. 종편과 보수성향 기자들의 소위 '사상검증적' 질문은 통합진보당 분당으로 종북몰이에서 자유로운 정당인 정의당에게 큰 결례로 작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똑같이 받은 심상정 대표가 정확하게 답하고 오히려 기자를 비판해 화제가 된 것과 상반된 답변이라고는 할 수 있다.[15] 심상정은 미디어에서 드센 이미지를 갖고 있어 체격이 별로 안 작은 이미지지만 실제로는 체격이 상당히 작다. 노동운동하던 시절에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여러 명을 한번에 재판하던 판사가 서류만 보고 누가봐도 남자 이름인 심상정을 불렀다가 임산부인 데다가 여성 치고도 체격이 작아서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심상정이 후문으로 들었다는 바로는 형사들끼리도 '저 자그마한 여자가 그 악명 높은 심상정일 리가 없다'고 의심했었다고.[16] 참고로 남영희는 승무원 출신 정치인이다.[17] 21대 국회에서 류호정, 장혜영 전 의원들의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진보지지층들 사이에선 불호가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 그나마 배진교 전 의원은 전직 구청장이라 인천 지역에서, 강은미 전 의원은 광주 지역에서만 인지도가 있고, 나머지 전현직 의원들은 거의 인지도가 바닥인 상태.[18]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후보와 단일화.[19] 4번의 선거 중 첫 당선.[20] 국민참여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