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03 13:59:42

비타협파

비타협파
Irreconcilables
<colbgcolor=#8c8c8c> 한글 명칭 비타협파
창립 1918년
해체 1921년
이념 고립주의
단일쟁점정치
진보주의 (다수파)
고보수주의 (소수파)
반제국주의
이념 빅 텐트
지도자 윌리엄 보라 (ID)
주요 인물 로버트 M. 라폴레트 (WI)
조지 W. 노리스 (NE)
하이럼 존슨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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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0년대 후반에 짧게 존재했던 미국의 상원의원 연합으로, 우드로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과 그에 따른 베르사유 조약 초안이 지나치게 개입주의, 제국주의적이라 비판하며 미국의 베르사유 조약 조인과 국제연맹 가맹에 적극 반대한 초당파적 단일쟁점정치 코커스이다. 불굴파(Bitter-enders)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2. 역사

비타협파의 유래는 미국의 1차대전 참전에서 기원한다. 당시 독일계 및 북유럽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와 서부의 진보주의 정치인들, 그리고 아일랜드계를 중심으로 한 동부의 고보수주의 정치인들은 1차대전에 대해 유럽에서 벌어진 싸움에 왜 개입해야 하냐면서 친독, 고립주의적 시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고, 루시타니아호 침몰과 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미국이 참전을 결의한 이후에도 우리는 대영제국이나 독일 제국과는 다르다며 영토나 식민지를 획득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시각이 팽배해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윌슨 행정부가 14개조 평화원칙을 제시하자, 그 내용의 일부가 문젯거리가 되었다. 제10조에서 규정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해체와 각 구성국의 민족 경계에 따른 분리독립을 미국이 감독하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에겐 '지나치게 가혹한', 보수주의자들에겐 '지나치게 간섭주의적인' 행동으로 여겨졌고, 결국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에서 도합 10여 명에 달하는 상원의원들이 이탈해 14개조 평화원칙에 따른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는 비타협파 코커스를 결성했다.

1차대전에서 지나치게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입은 미국은 의회 내에서 1차대전의 결과를 놓고 여러 파벌로 대립했고, 공화당 소속 의원인 헨리 캐벗 로지 시니어가 제안한 베르사유 조약 개정안에 대해 민주당이 비토를 선언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여소야대 상태였던 윌슨 행정부에 레임덕이 찾아오자 기회를 노린 비타협파는 양당 내에서 여론을 결집하고 필리버스터를 통해 고립주의 성향을 띠던 워런 G. 하딩이 대통령직을 차지할 때까지 미국의 베르사유 조약 조인, 국제연맹 가맹을 모두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비타협파는 베르사유 조약을 막는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놓고 정치적으로 양극단 성향을 띠던 의원들이 모인 집단이었기에 활동 내내 내부 분열이 이어졌으며, 참여 이유 또한 우드로 윌슨에 대한 반감, 반영 정서, 주요 표밭인 이민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포퓰리즘의 일환, 반제국주의, 미국우선주의 등등 굉장히 다양했다. 결국 1921년 7월 1일, 필랜더 C. 녹스를 비롯한 비타협파 소속 의원들 대부분이 태도를 바꿔 사실상 베르사유 조약의 내용을 전부 인정하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선언인 녹스-포터 해결안(Knox-Porter Resolution)을 통과시키면서 비타협파는 창설된 지 3년만에 해산되었다.

3. 소속 의원 목록



[A] 대독 선전포고안 표결 당시 반대에 투표함.[B] 녹스-포터 해결안 표결 당시 찬성에 투표함.[B] [B] [B] [A] [B] [B] [B] [B] [B] [C] 대독 선전포고안 표결 당시 기권함.[C]